잠풀 외 1편

[신작시]

 

 

잠풀*

 

 

원양희

 

 

 

드리워진 나뭇가지의 각도 때문에 달빛이 서러워 보이는 걸까 몸을 오그리는 꽃잎은 언제부터 달빛에 민감하였을까 새가 떠난 잔가지가 가늘게 떨린다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누군가를 울리는 일도 있을 수 있겠다 검은 덤불 속을 바라보면 그 속에 끔찍한 것이 감춰져 있을 것 같은 무섬증이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덤불 속에는 어떤 따스한 빛깔이 어떤 순한 짐승이 살고 있을지 모르는데, 내게로 다가서던 그 사람도 나는 저 덤불 속처럼 두려워 쉬이 마음 주지 못하였을까 잠들지 못하는 시간 어둠 속으로 가만 가만 부려놓으며 밤의 산책은 길어진다 물소리 새소리 소리들이 도드라진다 소리만으로 정한 마음을 알겠다 이따금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처럼 슬퍼질 때가 있다 미처 건네지 못한 말 영원히 건넬 수 없는 말 물거품이 되어버린 말 내가 아프고 답답했던 만큼 아프고 답답하였을 그 마음을 가늠해 본다 빈터에 이르자 몸속으로 무언가 통과해 가는 느낌이 든다 몸과 마음이 투명해지는 것 같다 원망 없이 억울함 없이 안온한 잠에 들 수 있을까 내가 순간순간 부끄러워했다는 것이 진정 위로가 되는 밤이다

 

   * 잎을 건드리면 시든 것처럼 잎을 모은다. 그 모습이 부끄러움을 타는 듯하여 ‘함수초含羞草’라고도 불린다.

 

 

 

 

 

 

 

도깨비풀

 

 

 

 

강물은 어디쯤서 바닷물과 몸을 섞는 걸까 걷다 보니 강의 끝자락이다 억새밭이다 억새는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 함께 흔들리는데도 황량해 보인다 사막 같다 헛것을 사랑하고 헛것에 애태우고 헛것마저 잃어버린 내 마음 같다 흐려졌다 맑아졌다 마음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믿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한 계절 살아내며 저 손짓하는 저 끄덕이는 것들의 저 여위어 감을 경외할 뿐,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수면 위로 날아오르는 새 떼 개벽開闢하듯 놀라운 소리를 낸다 박차고 날아오르다니 저리 힘찬 순간을 살 수 있을까 내 안에 갇혀 있던 비명도 빗장을 풀고 터져 나오려 한다 진흙 속에 음각을 새기고 있는 발자국들 발보다 가벼운 날개 날개보다 무거운 발 내게 있는 것보다 내게 없는 것에 언제나 목을 매었을까 물결 위 반짝임에 눈이 찔린다 꼼짝없이 흘러가는 것들 오체투지 기어가는 것들 무수한 것은 무수한 대로 제 길이 있는 것을 내게 작은 발이 있어 걸어온 길 멀리까지 뒤돌아본다 그러나 어찌하여도 가시지 않는 쓸쓸함으로 휘휘 흔들리다 헤매고 헤매이다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와 옷을 벗을 때서야 만났다 무한 우주 속 하필 내 옷자락을 물고 여기까지 따라온 이 독하고 가련한

 

 

 

 

 

 

 

 

 

 

 

 

원양희
작가소개 / 원양희

2016년 ≪시와정신≫ 등단.

 

   《문장웹진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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