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한 골짜기 외 1편

[신작시]

 

 

불쾌한 골짜기*

 

 

신정민

 

 

 

    살아있다, 는 영화에 출연한다고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배역은 좀비였다

 

    밑도 끝도 없는 연극판에서 얻은 기회라고 했다

 

    초기 자본 2천이면
    연 매출 2억이란 말에 솔깃해서
    있는 돈 없는 돈 털어 꽃뱅이를 키워 볼까 생각하던 참이었다고

 

    꿈틀거린다는 것
    징그럽기로 치자면 살아있다, 는 것이 으뜸이라고

 

    쫄쫄 굶긴 굼뱅이로 먹기 좋은 환 만들어
    부자가 되어 볼까 생각하던 참이었노라고 했다

 

    생각만 잔뜩 하고
    초기 자본도 배짱도 없어 세월만 꿈틀꿈틀 보냈다고

 

    엑스트라가 너무 많아서 찾아보기 힘들 거라고 했다

 

    개봉 첫날 20만 돌파 관객들
    데이터가 소생시킨 좀비들 아니겠냐고

 

    실은 자신도 어느 컷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어떤 좀비가 자신인지 솔직히 좀 헷갈린다고 했다

 

    비슷비슷해서 잘 모를 거라고
    여기쯤, 이라고 짚어 줘도 눈에 띄지 않을 거라고

 

    어딘지 좀 들뜬 목소리였다

 

   *  사람 아닌 존재가 사람 같을 때 느끼는 불쾌감

 

 

 

 

 

 

 

인화

 

 

 

 

감식계 형사였던 그는 퇴직하면서 운전면허증에 증명사진 옮기는 일을 했다 창이 없는 작은 방 하나를 암실 삼아 들어가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붉은 불빛 아래서 서서히 살아나는 얼굴들을 씻어내고 건조시키는 일 그의 몸에선 항상 현상액 냄새가 났다 밥에서도 같은 냄새가 났다 3×5 사이즈의 무표정한 얼굴이 그 사람을 증명했다 산과 알칼리를 견디는 플라스틱 그릇들 속에서 각양각색의 얼굴들이 태어났다 비닐 시트처럼 바스락거리는 눈동자가 선명해지길 기다리는 흑백사진술, 세상엔 같은 귀를 가진 사람이 없다는 걸 알았다 저마다 다른 콧날과 광대뼈가 포인트였다

 

그보다 열 배 백 배 일을 더 잘 해낼 기계가 만들어졌을 때 그는 하던 일을 잃었다 한두 해만 더 했어도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을 텐데 그의 늙은 여자는 지난날이 아쉬운 듯 말하고 말하고 말했다 늦은 밤 지상으로 달리는 지하철을 볼 때마다 소용없게 된 그의 필름들이 재생되었다 불빛이 망쳐 놓은 생의 필름들 칸칸마다 채워져 있는 안전광 속에서 짓이겨진 피사체들 제대로 어두워 본 적 없는 도시의 길쭉한 스테인리스 그릇이 차르르륵 사라지고 나면 버려진 필름에 남아 있던 현상액 냄새가 훅 달려들었다

 

 

 

 

 

 

 

 

 

 

 

 

신정민
작가소개 / 신정민

전북 전주 출생. 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저녁은 안녕이란 인사를 하지 않는다』 외.

 

   《문장웹진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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