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침의 문장들 외 1편

[신작시]

 

 

어느 아침의 문장들

 

 

홍경희

 

 

 

    쉰 넷 생일 아침에
    안면 없는 당신의 유고시를 만난다

 

    하루치의 알약을 삼키고
    하늘에 매달리려는 기대와
    사람에 기대려는 문장의 실밥들을
    한 올 씩 풀어 헤치며 남겨 놓은 시편들

 

    나와는 울음을 해명하는 방식이 다른
    당신의 유언을 읽으며
    매듭짓지 못한 문장을 많이 가진 나는
    조금 무서워진다

 

    씁쓸한 독백을 선물로 받는 생일이
    한번쯤 있어도 상관없겠지

 

    문득, 고쳐 쓰고 싶은
    그러나 끝내 바뀔 수 없을 것만 같은
    나라는 문장들이 떠오른다

 

    너무 뻣뻣해서 등이 아프다

 

 

 

 

 

 

 

 

귀덕 歸德

 

 

 

 

    가만히 떠올리기만 해도
    나지막한 슬픔이 되는 이름이 있다

 

    당신에게도 말하지 못한
    늙은 어머니의 투병기 같은 것

 

    절기와 물때를 따라
    텅 비는 날이 많았던 마당과
    골목을 버린 아이들은
    거북등대가 보이는 바닷가에서
    스스로 자라는 법을 배웠다

 

    사금파리 위에 반짝이는 빛은
    바다를 건너오는 것이라고
    수평선 너머가 궁금했던 아이들이
    하나 둘 마을을 떠나자

 

    잣담이 내려앉은 밭들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풍경들은 조금씩 허물어기도 했지만

 

    바다는 여전히 푸르고
    몸이 조금 불편할 뿐 정신은 맑은
    골목길 팽나무는 갈수록 품이 넓어져서

 

    어떤 지명들은 가만히 입술위로 옮기기만 해도
    견딜 수 없는 반성이 된다

 

 

 

 

 

 

 

 

 

 

 

 

 

 

 

 

 

홍경희
작가소개 / 홍경희

2003년《제주작가》 신인상, 2006년 <제3회 오누이시조공모전> 장원.
시집 『그리움의 원근법』.

 

   《문장웹진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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