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대체 어디에 있나요?

[문학더하기(+)]

2010 다시-읽기 Re-View
– 《문장웹진》에서 실시한 2010년대 문학 설문 결과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우리가 ‘다시’ 읽어봐야 할 작품에 대한 리뷰

 

 

악마는 대체 어디에 있나요?

– 임철우『돌담에 속삭이는』

 

 

양진영

 

 

 

1

 

    2차 세계대전의 전범으로 체포된 나치 독일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다정한 남편이었고, 자상한 아버지였고, 예절 바른 이웃이었다. 재판정에서 그를 지켜본 방청객들은 그가 “수백만 명의 남녀와 아이들을, 상당한 열정과 가장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죽음으로 보낸”1) 사람임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무자비하거나 영혼이 없는 괴물도 아니었고, 변태적이거나 가학적인 정신병자도 아닌,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법정에서 아이히만은 자신이 결코 누군가를 죽일 의도가 없었으며 유대인을 학살한 데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오로지 독일군 장교로서 주어진 명령과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을 뿐이므로 자신은 법률적인 의미에서 죄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수백만 명을 학살하라는, 그 명령을 거역했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방청객들은 아이히만이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사람들처럼 정상적인 삶을 살아왔고, 사형에 처해지는 순간까지 정상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그 정상이라는 사실이 그의 모든 만행을 합한 것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했다고, 한나 아렌트(Hanna Arendt)는 회고한다.
    아렌트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그 법과 명령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없었고, 인식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수백만을 학살하는, 지극히 부조리한 명령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는 사유 없는 인간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행위가 얼마나 극악한 것이었는지, 왜 사형당해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아이히만의 태도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돌아보고 사태의 본질을 자주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사유 능력의 총체적인 부재로 특징된다.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순전한 무(無)사유였다.”2) 그동안 임철우가 써 온 많은 소설은 바로, 이 무사유에 대한 분노와 각성이다. 그는 휴전선(「아버지의 땅」), 남해의 낙도(『붉은 산, 흰 새』), 광주(『봄날』), 태평양전쟁(『이별하는 골짜기』), 베트남의 전쟁터(「연대기, 괴물」)를 전전하면서 무사유를 문제 삼는다. 임철우의 소설은 그가 섬에서 자라면서 전해 들은 6·25 전쟁의 무사유,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직접 목격한 무사유, 용산사태, 세월호에서 되풀이된 무사유, 그리고 앞으로 또 목도하게 될 무사유에 대한 규호(叫號)이다.
    임철우가 제주로 이주한 뒤 펴낸 첫 장편소설(『돌담에 속삭이는』, 이하『돌담』)3)에서도 무사유에 대한 그의 핍진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소설에서 윤천엽 할머니는 육지에서 건너온 주인공, 한민우에게 70여 년 전의 기억을 털어놓는다. 육지에서 파견된 토벌부대의 장교는 마을사람을 모두 모아 놓고 빨갱이로 지목된 남자들을 이웃들이 직접 처단하도록 명령한다. 폭도 세 명을 찌르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에 천엽의 아버지는 거짓말처럼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세 사람의 가슴에 쇠창을 꽂는다.(93) “그 지옥 가운데서 온갖 악마들과 마주쳤지요. 그들은 순전히 재미로, 놀이로, 장난삼아 사람을 죽였어요.(···) 그 자들에겐 그 모두가 다만 한바탕 심심풀이 유희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그들이 인간이라고요? 그들이 인간이라면 악마는 대체 어디에 있나요?”(169, 밑줄은 인용자.) 그날 이후 자신의 눈에는 지옥과 이 세상이, 악마와 인간이 하나로 겹쳐 보인다는 윤 할머니는 “단지 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하필 그 지옥에 함께 있었다는 죄뿐”(168)이라고 한탄한다. 한민우가 전하는, 이렇게 살해된 4·3사건의 희생자는 공식적으로 집계된 통계가 14,232명이며, 최대 3만에 이른다.(178)
    아이히만과 같은, 평범하고 자연화된 악은 임철우 소설에서 흔히 등장한다.『봄날』에는 독자를 섬뜩하게 만드는 전시적 폭력 장면이 빈번히 서술된다. 여성의 젖가슴을 대검으로 난자하고, 눈알이 튀어나와 덜렁거리고, 임산부가 배에 총을 맞아 죽고, 군홧발에 얼굴이 형체 없이 뭉개지고 등등 잔인한 장면이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이런 배치는 지나친 폭력성으로 비난 받았던 셈 페킨파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잔혹한 영화를 연상시킨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일부 서사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사실의 기록에 천착한 저자의 의도와, 그런 폭력의 재현이 미학의 대상인가에 의문을 갖는다.『봄날』에서 악의 평범성을 상징하는 인물은 추상사인데, 베트남전 참전 용사이기도 한 그는 아이히만처럼 상부의 명령을 여과 없이 받아들여 기꺼이 자발적 폭력을 수행한다. 그는 대검으로 여성의 옷을 찢고, 무고한 시민을 구타하고, 심지어 살해하는 데 일말의 가책이 없다. 1980년에 광주에 등장한 그는 윤 할머니가 1948년에 제주에서 목격한 토벌대처럼 순전히 재미로, 놀이로, 장난삼아 사람을 찌르고 죽인다. 그 역시 작전을 마치면 평범한 가장으로 돌아갈 것이다. 임철우는 이런 자연화된 악이 내 아버지, 내 형제, 내 친구라는 사실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돌담』에서 토벌대가 지른 불에 타 죽은 일곱 살 아이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1)  한나 아렌트, 김선욱 옮김,『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2006, 78쪽.
   2)  위의 책, 391쪽.
   3)  이하『봄날』(문학과지성사, 1997),『붉은 산, 흰 새』(문학과지성사, 1990),『돌담에 속삭이는』(현대문학, 2019)을 인용 시 권, 쪽수만 표기한다.

 

    당신들은 우릴 알아보지 못하지. 왜냐면 당신들이 애초에 우릴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지. 보려    하지 않으므로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으므로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거야.(49)

 

    유령 화자인 몽희는 “우리가 당신들과 똑같이 이 세상에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우리가 모른다고 말한다. 이런 몽희의 응시를 김형중은 제3의 눈으로 부른다.4) 그에 따르면 세상에는 보려고 하는 눈, 보지 않으려고 하는 눈의 두 개의 눈이 있다. 이 소설에는 특별한 눈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이 제3의 눈이다. 그것은 “우린 이렇게, 당신들 눈앞에 존재하고 있어”(49)라고 말하는 유령 화자 몽희의 응시이다. 그 유령은 “우린 당신을 잘 알고 있어”(9)라고 하면서 귤이 혼자 뚝 떨어지거나, 강아지가 꼬리를 물려고 뱅글뱅글 맴을 돌거나, 강이나 호수에서 물고기가 느닷없이 튀어나오면 그 눈이 우리를 응시하는 징표라고 알려준다.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보는 주체가 아니라 보이는 객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하는 응시 덕분에 이 소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섬뜩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제3의 눈이 존재한다면 길가에 쓰러진 사람을 못 본 척 지나칠 때, 이웃의 눈물을 외면할 때 우리는 곤혹스럽다. 어딘가에서 제3의 눈이 지켜본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불편하고, 불안할 것이다.
    다행히 몽희는 이런 눈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소수라고 말한다. 몽희는 한민우에게 “우리들의 은밀한 기척을 어렴풋이나마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신도 바로 그런 특별한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63)이라고 반가워한다. 남다르게 아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런 마음의 눈, 영혼의 눈을 통해 몽희 같은 유령의 존재를 알아보고 공감한다고 하는데, 문제는 “그 눈이 열리는 순간부터 너무나 힘든 시간이 시작된다”.(205) 역설적으로 보면『돌담』은 악의 평범성을 거부하는 용기는 지난하므로 현재와 미래에도 아이히만은 여전히 산재할 것임을 환기하고 있다.

   4)  김형중,「나야, 몽희」,『돌담에 속삭이는』, 현대문학, 2019, 232-233쪽.

 

 

2

 

    제3의 눈을 가진 한민우는 몽희의 경고대로 악몽에 시달린다. 그는 꿈속에서 자주 바닷물 속에 내던져져 있다. 수면 위에 익사체처럼 둥둥 떠서 어디론가 하염없이 흘러가기도 하고, 까마득한 심해의 암흑 속으로 납덩이마냥 까무룩 가라앉기도 하고, 거대한 싱크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한다. 제주에 이사 온 뒤부터는 4·3의 유령들이 꿈에 자주 출몰한다. 수많은 사람들과 사냥감이 된 채 무작정 쫓겨 다니기도 하고, 손목이며 팔뚝을 철사 줄로 결박당한 채 굴비 두름처럼 한 줄로 나란히 엮여 있기도 하고, 팔다리가 잘려 나가거나 얼굴이 짓이겨지기도 한다. 이런 꿈에서 깨어나면 그의 입안에서 짧은 단어 하나가 기포처럼 흘러나온다. 아. 버. 지······.(17-21)
    섬마을에서 자란 한민우는 아버지의 얼굴을 모른다. 그가 태어난 섬은 6·25 전쟁의 와중에 국군과 인민군이 수시로 점령하면서 양민을 학살한 현장이다. 언젠가 경찰들이 섬에 들어와 인민군에 협력했다는 명목으로 5백여 명을 총살 후 수장했는데 한의 아버지도 거기에 끼어 있었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은 “내 아버지는 지금······ 저 바다 밑 어디쯤에 홀로 잠들어 있을까.”(220)라는 한의 독백으로 마무리되는데 이 장면에서 임철우의 개인사와 겹쳐진다. 전쟁 중에 점령군이 인민군에서 국군으로, 혹은 그 반대로 수시로 바뀌면서 그때마다 무수한 주민들이 희생되었던 섬의 역사는 임철우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의 초기 소설인『붉은 산, 흰 새』는 말과 웃음을 잃은 천 노인의 회상에서 시작된다. 전쟁 시 국군과 인민군이 번갈아 드나들며 반대파를 학살했던 낙일도에서 천 노인처럼 살아남은 사람들은 말을 잃고 실어증 증세를 보인다. “이부자리 속에서 나누는 얘기조차 행여 새어 나갈까 봐 귀를 종그릴”(14) 만큼 섬사람들은 말을 꺼리고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믿어서도 안 되는 세상으로 변해 간다. 악몽 같은 시간을 겪고 살아남은 섬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슴 안으로만 두껍고 단단한 껍질”(65)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말이 결여된 섬은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고, 모두가 굶주린 육식동물의 눈빛에 살기를 띤 곳으로 묘사된다. 임철우는『붉은 산, 흰 새』를 통해 6·25와 같은 제노사이드를 겪은 한국인 모두가 ‘가슴 안에 단단한 껍질’을 안고 있음을 상기시키는데 그런 ‘껍질’은 30여 년이 지나서 쓴『돌담』에서도 한민우에게서 여전히 발견된다.
    프로이트가 트라우마로 명명한 이런 껍질을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가슴에 영구히 뿌리박은 일종의 유령으로 보았다. 주체가 스스로 마음속에 묘지를 만들어 죽은 자를 거기에 안치시키는 방식이다.5) 니콜라스 아브라함(Nicolas Abraham)과 마리아 토록(Maria Torok)이 개념화한 내사(introjection)와 합체(incorporation)를 통해 보면 이 유령이 좀 더 뚜렷해진다. 내사란 살아남은 자가 죽은 자의 좋은 기억을 자신의 일부로 동화시키는 정상적인 애도를 의미하고, 합체란 살아남은 자가 죽은 자의 면면을 자기화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지하 묘지를 만들어 그를 살아 있게 하는 비정상적인 애도를 뜻한다. 내사는 프로이트가 말한 애도 작업의 성공을, 합체는 애도 작업의 실패 즉 우울증의 경우를 지칭한다. 내사는 적절한 상징화 과정을 통해 부재, 간극의 장애를 극복하고 이를 통해 자아를 강화하므로 정상적인 애도 작업이다. 반면, 근원적으로 환상적인 성격을 지니는 합체는 대상의 부재를 상징화 과정을 통해 은유화하지 못하고 이 대상을 자아 안으로 삼켜버림으로써 이 합체된 대상과 스스로를 동일시한다.6) 임철우의 소설에서는 애도에 실패하고 가슴 속에 유령을 간직하고 사는 주인공들이 흔히 등장한다.『돌담』역시 한민우처럼 평범한 악에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가슴 속 지하 묘지에 웅크리고 있는 유령들의 이야기이다.

   5)  자크 데리다, 진태원 역,『마르크스의 유령들』, 그린비출판사, 2014, 36쪽.
   6)  위의 책, 389-391쪽.

 

 

3

 

    임철우와 그가 쓴 소설의 서술자들이 여전히 역사나 역사적 사실에 천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돌담』은 과거의 임철우의 소설과 다르다. 그동안의 그의 소설에서 서술자들은 대개 싸움닭이나 투사를 연상시켰다. 반면,『돌담』의 서술자는 부드럽고 동정심 많은 심퍼사이저에 가깝다. 그동안 임철우는 뭔가에 쫓기는 듯한 절박함 속에서 글을 쓴다고 말해 왔다. 그래서 소설의 호흡이 빠르고 거칠 수밖에 없다. 작가의 말을 참고하면『돌담』과 다른 소설들은 뚜렷이 비교된다.『봄날』은 “뜨거운 불의 기억에 대해 동시대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의무”(1권, 12)를 느껴 썼고,『백년여관』은 “죽은 자와 아직 살아 있는 자, 그들의 이름 없는 숱한 시간들을 잊지 못해”(343) 썼다. 그런데『돌담』은 “그해 겨울 아주 잠시 이 섬에 머물렀다 떠난 수많은 어린 혼들 앞에, 이 작은 꽃 한 송이를 바치려고”(238) 썼다.
    소설을 들여다보면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봄날』에서 서술자는 공수부대를 파충류 같은 혐오 생명체, 폭탄 같은 위험물, 물체의 덩어리 같은 물질성, 세포 같은 비하적 시선으로 반복적으로 치환시켜 공수부대에 대한 극도의 분노와 거부감을 표출한다. 반면,『돌담』의 서술자는 사람들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그냥 꽃송이가 되어 땅에 툭 하고 떨어진 거란다. 사람들이 아니라 꽃이, 꽃들이 떨어지고 만 거야.”(55)라고 서술한다. 제주 섬의 황금가루를 뿌린 듯한 귤밭과 아득히 펼쳐진 청회색의 바다가 육지에서 병들었던 작가를 위로했을지 모른다. 급기야 제주 신화까지 등장시켜 희생된 아이들의 유령을 위무한다. 이 신화는 열다섯 살을 넘기기 이전에 죽은 어린아이들은 모두 서천꽃밭으로 간다고 믿는다. 서천꽃밭은 어린아이의 영혼이 머무는 곳, 즉 그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낙원이자 천국이다. 한민우는 이 꽃밭은 “저승과 이승의 중간에 위치하는 공간, 즉 하늘이 아니라 제주 바다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하는 섬”(194)이라고 말한다. 상투적인 설교조로 “이 섬은 산 사람의 눈에는 정작 보이지 않는데 사람들이 애초에 보려고 하지 않으므로 보이지 않는다.”(195)고 우긴다. 마지막 장에서 한은 그 서천꽃밭 섬을 목도한다. 영롱하고 파르스름한 빛에 둘러싸인 채 달빛 속에 유유히 떠 있는 그것은 분명 그 환상의 섬이다.(219)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던 몽희와 어린 유령들이 그 섬으로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소설은 마무리된다.『봄날』이나『백년여관』이 비장미로 마무리된다면『돌담』의 에필로그는 우아미와 숭고미가 돋보인다.
    이 책의 해설에서 김형중은 임철우의 글쓰기를 “한국 문학의 사도 바울”로 일컫는다. 기독교를 이방인에게 최초로 전파한 바울은 자신의 믿음을 위해 2만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도보로 행군했다. 바울처럼 임철우도 우리가 보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악의 평범성을 알리는 데 지난 30여 년을 바쳤다. 그가 앞으로 선보일 소설에서도 역시 그동안 그가 추수(追隨)했던, 인간의 존재론적 의문에 천착할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임철우는 더 이상 규호하지도, 채근하지도 않을지 모른다.『돌담』의 서술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작가는 악의 평범성을 내면화하고, 가슴 속 묘지의 유령과 작별 중임이 드러난다. 지상 모든 곳에 편재하는 고통스런 영혼을 볼 줄 아는, 제3의 눈을 가진 임철우가 언젠가 “안녕, 아저씨, 나야, 몽희”(48) 하고 우리 앞에 미소 지으며 나타날 날을 기대해 본다.

 

 

 

 

 

 

 

 

 

 

 

 

 

 

 

양진영 작가소개 / 양진영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 2019 중앙일보 신인문학상(평론), 경상일보 신춘문예(시), 김만중문학상, 송순문학상, 목포문학상 외 다수 수상.

 

   《문장웹진 2020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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