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느린 용서

[단편소설]

 

 

높고 느린 용서

 

 

조해진

 

 

 

    어제 저녁 경진은 효진이 일하는 보습학원 근처 커피숍에서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런 질문이 있다, 답을 찾게 하기보다 그 질문 안에 머물게 하는. 새벽에 일어나 수업 준비를 하는 지금도 효진은 경진의 그 질문이 공명을 일으키는 벽 같기만 했다. 효진이 노트북 옆에 놓인 휴대전화를 유심히 내려다보다가 충동적으로 아빠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본 건 그저 막막해서였다. 지금, 번호, 확인, 서비스, 체크, 그런 단어가 들어간 기계적인 목소리와 함께 이내 삐, 하는 데시벨 높은 소음이 들려왔다. 아빠의 휴대전화가 언제까지 유효했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 문자를 받았던 9년 전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그날 아침, 효진은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혼자 경찰서로 가서 떨리는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당시 중학생이던 경진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였다. 아빠는 이미 실종신고 된 상태였으므로, 더욱이 한동안 그가 원하지 않았을 방식으로 유명해져 있었으므로 경찰서에선 바로 출동을 결정했다. 효진을 태운 경찰차가 아빠가 문자로 알려준 곳을 향해 가는 동안 효진은 온 힘을 다해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 그는 운전석에 놓아 둔 편지들을 거두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미안하다고, 경진에게 잘 설명해 달라고 문자를 보내면서 지도앱에서 자신의 위치를 캡처한 이미지 파일을 첨부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파일이 경찰들에겐 길잡이가 되어 준 셈이다. 차 안에서 효진은 수도 없이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봤지만 그의 휴대전화는 내내 꺼져 있었다. 세 시간 넘게 달리다가 마침내 멈춘 경찰차에서 내린 순간, 지금도 그 강도와 촉감, 그리고 수분의 함유 정도를 모두 기억하는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효진은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한 채 경찰 중 한 명이 손짓을 해올 때까지 불가해한 기호인 양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산을 말없이 건너다보기만 했다. 강원도와 경상북도 경계에 위치한 그 산에서 아빠는 증발 — 실종이 아니라 증발이 맞는 표현이라고 효진은 생각해 왔다 — 되기 전 마지막 석 달을 살았다.
    9년 전, 고소와 파면, 추한 소문과 열띤 논쟁과 언론의 공격으로부터 도망친 그는 중고 에스유비 차량 한 대를 구매하여 그 산으로 갔다. 외부와의 연락을 끊은 채, 챙겨간 최소한의 현금을 아껴 쓰면서, 그야말로 가까스로 연명하다가 그 중고차마저 버리고 사라진 것이다. 산 입구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 그러나 작정하고 찾지 않는다면 결코 눈에 띄지 않을 듯한 외진 곳에서 그 에스유비 차량이 발견되긴 했지만 운전석에 있어야 할 편지들은 보이지 않았다. 길 잃은 등산객이 잠기지 않은 차문을 열고는 편지들을 포함해 이런저런 쓸모 있는 것들을 집어간 것일까. 어쩌면 호기심 많은 산짐승이 물고 간 것일 수도 있고 산을 휘돌고 온 큰 바람이 엉뚱한 곳으로 편지들을 실어간 건지도 몰랐다. 세상을 향한 그의 마지막 변론마저 알 수 없는 이유로 원천적으로 거부됐다고 생각하니 효진은 저절로 무릎이 꺾였다. 등 뒤편에선 유서나 자살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상부에 보고하는 경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서가 아니라고, 그 편지들이 유서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느냐고 효진은 따지고 싶었지만 입술조차 떼어지지 않았다. 효진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수업을 준비할 의욕은 일지 않았다. 효진은 노트북을 한쪽으로 치우고는 책상의 맨 아래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는 먼지가 묻은 메모지와 해지한 적금 통장, 가전제품의 매뉴얼 책자들, 다시는 탑승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외국 항공사의 마일리지 카드와 갱신기간이 지난 운전면허증 같은 것이 한데 엉켜 있었다. 이사를 오면서 버릴지 말지 고민하다가 방치해 둔, 한때는 유용했으나 이제는 더 이상 서랍에서 반출될 일이 없을 것 같은 사물들이었다. 유에스비를 떠올리지 않았다면 다시 이사를 갈 때까지 책상 마지막 칸 서랍 같은 건 열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네모난 은유, 닫으면 탁, 하는 소리가 나며 암전되는 세계, 작은 망각의 공간…….
    유에스비는 다행히 서랍 안쪽에 있긴 했다. 아빠가 증발하고 몇 해가 지난 뒤의 어느 여름날, 효진은 침대에 누워 빗소리를 듣다가 우산 없이 산속 어딘가에서 비를 맞고 있을 그를 상상했고 그 상상 속에 안개처럼 옅게 깔린 자신의 걱정을 천천히 인식했다. 곧 난폭한 마음이 일었고, 효진은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휴대전화와 노트북에 저장된 사진 파일 중에서 아빠 얼굴이 나온 사진만 지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맹목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여 기껏 삭제했으면서, 삭제한 파일들 중 복구할 수 있는 것은 복구한 뒤 빈 유에스비에 따로 저장해 놓은 건 그의 얼굴이 아예 기억나지 않는 먼 미래의 어느 날이 두려워서였을까. 아니……. 아니라고, 그저 그의 편지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였을 뿐이라고 효진은 이제라도 항변하고 싶었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에게.
    수년 동안 열어 본 적 없는 유에스비 안의 파일들이 오염되거나 파손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지만 효진은 일단 유에스비를 노트북에 연결했다. 아빠의 사진을 본다고 해서 경진에게 들려줄 말이 찾아질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효진은 파일들 하나하나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리고, 효진은 아빠와 Y씨가 함께 있는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사진 속 장소는 아빠가 교수로 있던 대학의 연구실 근처 벤치였다. 기억이 났다. 그날 효진은 학부생들의 졸업논문을 검토한다며 연구실에서 밤을 새운 아빠에게 커피라도 사다줄 생각에 집을 나섰다. 마침 겨울방학이라 할일이 없기도 했고 허랑해 보이는 외투만 입고 다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밟혀서이기도 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땐 작은 눈송이가 흩날렸다. 그날 아빠와 Y씨는 우산 없이 눈을 맞으면서도 자세를 바꾸지 않은 채 그들만의 대화에 집중해 있었다. Y씨는 일전에 아빠의 연구실에서 서너 번 마주친 적이 있긴 했지만, 효진이 그녀에 대해 아는 거라곤 박사 과정에 있는 대학원생이라는 객관적인 정보뿐이었다. 커피 홀더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휴대전화를 꺼내 그들의 모습을 찍으면서도 효진의 눈에는 눈송이의 결정체가 부서지는 소리마저 들릴 것만 같은 고요한 교정의 풍경이 훨씬 더 구체적으로 들어왔었다.
    사진은 그대로인데, 효진은 이제야 사진 속 Y씨가 경직되어 있는 것을 알아보았다. 화장기 없이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머리칼을 하나로 대충 묶은 모습은 사진 바깥에 부유하는 Y씨의 단호하고도 고단한 마음을 유추하게도 했다. 그날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난 뒤 Y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아빠와의 일을 올렸다. 아빠가 산으로 도망가기 1년여 전의 일이다.   
    효진은 노트북에 떠 있던 사진 파일을 모두 닫은 뒤 이번엔 인터넷 창을 열었다. Y씨는 최근까지도 여러 곳에서 강연을 했으므로 그녀의 이메일 계정은 금세 찾을 수 있었다. 효진은 Y씨의 이메일 계정을 오랫동안 건너다보다가 메일함을 열었다. 딱 한 번만이라도 경진을 위해 무모해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Y씨의 답장을 받기 전까지, 효진은 그 선택이 불러올 또 다른 마음의 파장을 깨닫지 못한 셈이다.

 

*

 

    어제 경진은 효진이 일하는 학원 근처 커피숍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타인에게 조심하는 게 지나치게 많은 경진이 미리 약속도 하지 않고 무작정 효진을 찾아오는 건 희소한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 있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수업이 끝난 상태여서 효진은 곧바로 학원에서 나와 커피숍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몇 번이나 오른발이 왼쪽 샌들의 풀어진 끈을 밟아서 넘어질 뻔했지만 달리는 걸 멈출 수는 없었다. 커피숍 앞에는 횡단보도가 있었다. 커피숍 창가에 앉은 경진은 어딘가에서 호되게 꾸중을 듣고 온 아이인 양 풀죽은 모습으로 테이블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효진은 차오르는 숨을 씩씩 내뱉으며 그런 경진을 눈이 아플 만큼 뚫어지게 건너다봤다. 신호가 바뀌고, 효진이 횡단보도를 건너 커피숍 안으로 들어설 때까지 경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남자친구가 결혼하재.”
    그리고, 효진이 폐를 한껏 부풀게 했던 숨을 고르며 경진 맞은편에 앉았을 때 경진은 그렇게 말했다.
    경진은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이었다. 스물다섯 살에 결혼을 해도 되는 걸까, 옳은 것일까, 생각하며 효진은 커피숍 직원이 가져다준 커피 잔을 두 손으로 보듬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쁜 소식은 더더욱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해야 하는 소식이었다. 선택과 별개로 결혼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닌데 왜 그렇게 시무룩한 거냐고 효진은 묻고 싶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캄캄하게 불이 꺼진 경진의 두 눈이 이제부터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할 테니 인내를 갖고 들어 달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효진은 도로 커피 잔을 내려놓고는 경진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경진은 수도권에 있는 간호전문대에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했고 졸업한 뒤엔 중소 규모의 종합병원에 취업했다. 영화 공부를 포기한 채 취업률이 높은 학과에 들어가 이른 나이부터 경제적으로 자립한 건 경진다운 선택이었다. 하긴, 아빠가 그렇게 증발해 버린 뒤부터는 효진 역시 늘 생계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문학 공부를 계속하다가 미국이나 유럽 어딘가에서 비교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겠다는 계획은 게으르고 비현실적인 포부일 뿐이었다. 대학에서 파면당한 아빠 앞으로 약간의 퇴직금이 나오긴 했지만 소송 비용 — 그의 부재로 소송은 흐지부지 중단됐는데도 비용은 청구됐고, 효진이 소송 철회와 비용 수납 같은 절차를 밟아야 했다 — 을 지불하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 함께 살던 아파트는 급매로 서둘러 처분했다. 유리로 만들어진 감옥 같던 그곳, 그러니까 효진과 경진 자매가 지나갈 때면 떠들던 것을 멈추고는 눈으로 신호를 주고받는 입주민들과 마주쳐야 하는 그곳에선 한순간도 인간적으로 살 수 없었다. 함부로 다루어지는 사람으로는 단 한순간도…….
    그 뒤 경진은 간호대학 기숙사로 들어갔고 효진은 대학 근처 원룸에서 살면서 보습학원 강사를 시작했다. 졸업을 1년 앞둔 채 연거푸 휴학을 했고 졸업한 후에도 강사 일을 계속했다. 학원 강사 외의 또 다른 가능한 미래는 품지 않았다. 평균 이상으로 존대 받고 명예를 누리는 삶은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이 지긋지긋하면서도 그 생각에 함몰되어 있는 게 편리했다. 그사이 경진은 직장인 병원에서 물리치료사인 남자친구를 만났다. 그는 효진과 동갑으로 경진보다는 여섯 살이 많았다. 나이스한 사람, 처음 경진에게서 그를 소개받은 날 효진은 그런 인상을 받았다. 상냥한 말투를 쓰고 상냥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사람이긴 했지만, 그는 식당에서 경진이 수저를 놓아 주고 물을 따라 주는 걸 당연하게 여겼고 경진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게 빤히 보이는데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은 채 맛있는 것, 맛있고 건강에 좋은 것, 제철에 먹어야 하는 생선과 채소에 대해 끊임없이 나열하며 혼자 즐거워했다. 상냥하지만 자신을 최우선으로 아끼느라 곁을 보지 못하는 사람, 그에 대한 효진의 인상은 그렇게 확장되었고 효진은 더 이상 음식을 넘기지 못했다. 못마땅했다. 그도, 그와 함께 있는 경진도 효진의 마음에는 차지 않았다. 미리 포기하는 법을 배운 동생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만은 절대적인 지지와 배려를 받아야 한다고,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고 효진은 내내 소망했으니까.
    “근데…….”
    경진이 긴 침묵 끝에 말을 꺼냈다.
    “근데, 대답을 하지 않았어. 아니, 할 수 없었어. 그이는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한다고 생각한단 말이야. 언니, 내가 아이를 낳아도 되는 거야?”
    “무슨 그런 말이 있어?”
    가까스로 되물으며, 효진은 한없이 황량해지는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언니, 내 아이가 무감각한 사람으로 성장할까 봐 무서워.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품었는지, 그런 걸 전혀 모르는 어른이 될까 봐.”
    “그렇게 안 키우면 되지. 경진아, 넌 잘할 수 있어.”
    “맞아, 난 그렇게 키우지 않을 거야. 근데…….”
    “…….”
    “근데, 아이가 외할아버지에 대해 뭔가를 알게 되면? 외할아버지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말한 뒤, 경진은 방금 내뱉은 말에 스스로 놀란 듯 한 손으로 입술을 세게 문질렀다.
    “……모르게 해.”
    효진은 온도가 내려간 목소리로 대답했다. 경진이 그게 가능하냐고,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어떻게 그걸 가능하게 할 수 있느냐고 항의하는 듯한 눈길로 효진을 건너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언니, 아빠 말이야.”
    “…….”
    “우리 아빠, 누구였을까. 언니는…….”
    “…….”
    “언니는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경진이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지만 효진은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커피는 식어서 썼고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세상의 표면과 마찰하며 빚어지는 빗방울의 파열음은 쓸쓸했다. 슬픔을 터득하고는 어깨를 떨며 흐느끼는 거인의 품에 안겨 있다면 이런 기분일지 몰랐다. 효진은 그 빗소리에 기대어 비겁한 사람, 이라고 속삭였다. 경진이 그 속삭임을 들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

 

    메일, 잘 받았습니다.
    실은 귀하와 귀하의 여동생을 종종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귀하의 짐작보다는 자주 그랬을 거예요. 귀하의 연락이 놀랍고 반가우면서도 바로 답장을 하는 건 쉽지 않더군요. 귀하가 동생을 생각해서 제게 그런 부탁을 하기까지 어떤 질감의 고민을 했을지 잠작됐으니까요. 아니, 어쩌면 우리 각자가 이 세상 어딘가에서 애쓰며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제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저의 근황을 물었으니 그 이야기부터 할게요. 아시다시피 저는 대학을 떠났고, 대신 종종 강연을 나가고 있습니다. 그 일 이후 출간된 책이 꾸준히 읽히고 있고 저의 경험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날마다 새롭게 생겨나고 있으니까요. 책 덕분에 저는 제법 유명한 사람이 된 셈이죠. 그렇다고 제 고통이 경감된 건 아닙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증발을 선택 — 귀하가 표현한 증발이라는 단어에 공감하지만 그 증발은 엄연한 그의 선택이었습니다 — 한 뒤로 저는 제 잘못과 상관없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했으니까요. 때로는 울분을, 때로는 서글픔을…….
    귀하는 모든 것을 잃은 그 사람을 용서해 줄 수 없겠느냐고, 용서가 힘들다면 결혼을 결정하지 못하는 동생에게 용기의 말이라도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제게 부탁했습니다. 저는 귀하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용서란 무엇인가요? 저에게 용서는 그 사람이 저만큼 고통을 느끼고 그 고통을 표현하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 고통에는 저에 대한 미안함뿐 아니라 그 자신을 향한 부끄러움이 포함되어야 하고요. 저는 9년째 상담치료를 받고 있어요. 약을 먹지 않으면 불안해서 집 앞 편의점도 갈 수 없습니다. 한때 대학에서 함께 공부한 적 있는 동료들 중 누군가는 그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믿고 싶어 하는 진정성 때문에 실수를 한 것뿐이라고 제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더한 짓을 한 사람들도 자리를 지키는데 그 사람은 그나마 양심적이었다고, 심지어 제가 그 사람을 몰락시킨 대신 이름을 얻은 거라고 떠들어대는 동료도 있었습니다. 정말 괴로운 게 뭔지 아세요? 때때로 제가 그런 시선과 말에 침습된다는 것입니다. 제 책을 읽었다니 아시겠지만, 그 사람은 구애가 반복적으로 거부되자 자신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제 감정을 조작했죠. 그의 세계에서 저는 그를 사랑하지만 세상의 편견과 싸울 용기가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그 뒤부터 그 사람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제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겪은 몇 번의 추행은 이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폭로 이전까지 그런 무기력한 분노의 시간이 분명 존재했는데도 어느새 저는 내게 조금만 더 융통성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지는 않았을 거라는, 혹은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그 사람을 망친 뒤에 얻은 부당한 이익일지 모른다는 스스로를 향한 의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 날이면 저는 어쩔 수 없이 폭주했습니다. 내 몸 어딘가에 상처가 나기를 바라며 날카로운 것들을 함부로 잡았고 먹다 남은 약을 처방과 상관없이 삼키기도 했습니다.
    귀하, 저는 그런 과정을 거치며 이렇게나마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귀하의 말대로 그 사람도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야말로 뼈아프게 다 잃었죠. 그러나 그는 선택해서, 혹은 지독한 오만으로 잃은 것이고 저는 선택하지 않았고 그저 제 감정과 의지대로 살았을 뿐인데도 잃었습니다. 그 사람의 제자로서 그를 존경했고 닮고 싶어 했던 저는, 그 사람과 사적인 관계로 확장되길 원한 적이 없고 그런 빌미를 준 적도 없다고 확신하는 저는, 어째서 이렇게나 나쁜 상태로 훼손된 건지 저는 지금도 의아하기만 합니다. 심지어 저는 그 훼손을 복구할 기회조차 잃었죠. 귀하에게 다시 한 번 묻고 싶습니다. 사과를 받은 적 없고 앞으로도 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 제가 용서마저 내어준다면, 그럼 제게는 무엇이 남는 겁니까. 저는 무슨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겁니까.

 

*

 

    변기가 막혔다.
    늦은 점심을 먹고 있을 때 갑자기 배탈 기운이 느껴져 화장실로 들어갔던 차였다. 효진은 난감하게 변기 안을 내려다봤다. 배설물은 몸 안에서 부식된 음식물의 잔여라는 상식을 빤히 알면서도 효진의 눈에는 그것이 자기 몸의 연장으로 보였고 순간적으로 구토감이 일기도 했다. 문득 경진이 초경을 했던 날이 떠올랐다. 경진은 열여섯 살 때, 그러니까 평균보다 훨씬 늦은 나이에 초경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아빠와 Y씨 사이의 일이 세상에 알려지던 무렵이었다. 그가 적을 둔 대학교에는 대자보가 붙기 시작했고 그의 연구실 문은 포스트잇으로 빼곡해졌으며, 각종 인터넷 사이트와 기사 댓글란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는 그의 구애가 폭력인지 아닌지에 대한 열띤 논쟁이 일었다. 세상의 관심이 폭발하자 미온적이던 대학은 아빠에 대한 징계 절차를 서둘렀고 Y씨는 고소를 진행했다. 그런 날들이었다, 도무지 다른 사람의 혼란과 무너져 나가는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던 날들, 집에서 아빠와 마주치기라도 한 날이면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걸 온힘을 다해 참아야 했던 때……. 그날 효진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소리 내어 우는 경진을 화장실로 데려가 생리혈이 묻은 팬티를 벗게 한 뒤 생리대 착용법을 알려주었다. 경진은 효진이 가르쳐준 대로 생리대를 새 팬티에 반듯이 붙이는 동안에도 계속 울었다. 화가 났다. 너무 화가 나서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왜 우니? 대체 왜 울어! 효진이 이성을 상실한 채 소리를 내지르자 경진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무섭다고, 이런 게 무섭다고, 그렇게 말했다.
    무섭다…….
    9년 전에는 흘리듯 들었던 그 말이 뒤늦게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당혹스러웠지만 경진의 무서움이 어디에서 비롯된 건지 효진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생명의 보호자가 될 가능성을 얻는 것, 그런 식으로 이 세계의 평형을 유지하는 일, 미지의 고통이 반복될 수 있다는 예감, 경진은 이미 그때부터 그런 것을 무서워하며 자격을 의심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거의 본능적으로.
    물이 자연스럽게 내려가길 바라며 효진은 일단 변기 뚜껑을 닫았다. 화장실을 나오자 문제집과 읽다 만 책들 옆에 밥과 된장찌개와 김치가 놓인 테이블이 한눈에 들어왔다. 방금 전 그 일부가 배설물이 되었고 앞으로 또 배설물이 될 예정인 음식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효진은 쓰레기봉투를 꺼내와 냄비와 밥그릇과 접시를 몽땅 그 안에 털어 넣었다. 무슨 자격으로, 감히, 이제 와서, 요구해, 불쌍한 척, 연민을, 강요, 하고, 어떻게, 너, 까지, 그, 럴, 수, 가, 있, 어, 어! 신경질적으로 설거지를 하면서는 그렇게 중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했고, 바로 그 순간 세제가 묻은 머그컵 하나가 손에서 미끄러졌다. 바닥에 주저앉아 깨진 사기 조각을 줍는 동안 오른손 검지에는 금세 핏물이 맺혔다.
    일주일째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찢긴 손가락에 밴드를 붙이며 켜놓은 유튜브 뉴스에서는 전국적인 폭우를 전하는 기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쪽 도시에서는 둑이 붕괴되어 실종자와 사망자, 이재민이 속출했으며 서울과 경기도의 여러 하천도 범람 위기에 있다고 했다. 폭우 피해 특보가 지나간 뒤엔 앵커와 환경운동가의 대담이 이어졌다. 이례적인 폭우는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바이러스 역시 최적화된 자연의 질서가 교란되어서라고 환경운동가는 말했다. 효진은 무심한 눈으로 노트북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인터넷 창을 닫았다.
    어느 집에선가 의자나 테이블을 끄는지 울퉁불퉁한 소음이 전해져 왔다. 예고 없이 침입해 오는 생활 소음은 이 집의 정체성이었다. 뉴스에서 보도된 그 바이러스로 인해 효진이 맡은 수업이 절반으로 준 건 올해 초였다. 가난은 갑작스럽게 찾아와 일상의 틈새로 느슨하고도 강렬하게 스며들었다. 효진은 언제부터인가 밖에서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았고 식사는 가능한 집에서 해결했으며 옷과 신발과 책을 최대한 구매하지 않게 됐다. 수업이 없는 날이면 노트북 앞에 앉아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고 나이가 변수로 작용하지 않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는 데 시간을 썼지만 그런 자리가 기다렸다는 듯 준비되어 있을 리 없었다. 월세마저 부담되던 차에 전에 살던 집의 계약이 만료됐고 효진은 전세 매물로 나온, 서울 서북쪽에 위치한 이 연립주택으로 무리해서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서울 끝에 위치한 데다 지어진 지 30년이 넘어서 비교적 저렴한 전셋집이긴 했지만 그 전세금을 마련하느라 효진은 적금과 보험을 모두 해지해야 했다. 프리랜서로는 제약이 많은 전세자금대출은 신청 도중에 포기한 채였다. 그렇게 어렵게 이사를 오긴 했는데, 막상 살아 보니 이곳은 그야말로 생활 소음의 저장고나 다름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세탁기나 청소기, 헤어드라이어가 작동하는 소리, 텔레비전 혹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오줌 누는 소리와 가래 끓는 소리, 수도꼭지와 샤워기와 변기통에서 쏟아지는 물소리, 시계 알람 소리, 신음소리……. 소음이 심해지는 새벽에는 그 잡다한 소음을 영상화화지 않기 위해 애썼고, 그러다 보면 잠은 더 달아나곤 했다. 생활에 필요한 움직임에서 빚어지는 악의 없는 소음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거주지란 비행기의 일반석 같은 것이고 시간의 마일리지가 아무리 쌓여도 그 좌석은 업그레이드되지 않을 거라는 비관도 자주 마음을 어지럽혔다.
    효진은 책상에 앉아 닫아 놓은 서랍을 열었다. 이번엔 천천히 사진들을 검토할 생각이었다. 모자이크처럼 흩어진 아빠의 조각들을 모으다 보면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가 스물네 살이나 어린 Y씨에게 사랑을 느끼고는 같은 마음을 요구했던 이유를, 그것이 자신 쪽에선 비참한 구걸이며 상대 입장에서는 폭력이 된다는 걸 인지조차 하지 못했던 이유를……. 효진은 서랍에서 꺼낸 유에스비를 곧 노트북에 연결했다.

 

*

 

    용서…….
    귀하의 지난 메일을 읽은 이후 용서라는 단어가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군요. 머릿속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처럼 굴러다니는 그 단어를 더 깊이 숨기지도, 꺼내어 제거하지도 못한 채 지난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제가 먼저 메일을 쓰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는 자문위원으로 있는 여성단체에 회의차 참석했는데, 그 건물 계단참에서 무심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흘러가는 구름을 보게 되었습니다. 구름은 아주 느리게, 높은 곳에서 천천히 이동 중이었습니다. 그제야 오랜 장마가 끝났다는 것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귀하, 어딘가에서 저의 용서도 그런 모양으로 오고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 사람이 어딘가에 살아 있으리라고 확신하는데, 그렇다면 분명 저와 있었던 일을 날마다 되새기고 있을 테지요. 저를 떠올리며 강도 높은 원망만 할지 깊은 회한에 잠길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저에 대한 생각이 쌓여 갈수록 그 사람의 어떤 고유한 성분도 변해 갈 거라고, 그 변화가 열려 있다면 그 사람을 향한 제 용서 역시 가능성이 열려 있는 거라고, 저는 그 계단참에서 생각했습니다.
    동생 분에게 전해 주세요.
    당신의 삶은 그저 당신의 것이니 제 용서 없이 떳떳해도 된다고, 아니 그래야 한다고, 자격이라는 혹독한 심문에 더 이상 걸려 넘어지지도 말라고요. 동생 분이 행복하게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귀하가 저 대신 곁에서 용기를 주세요. 그리고 귀하도 이제 그만 자유로워지기를, 저는 진심으로 바랍니다.

 

    추신. 제 마지막 인사를 함께 담습니다.

 

*

 

    경진은 테이블 위의 노트북 화면에서 삼십 분째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Y씨가 보낸 두 통의 메일을 읽을 때는 심각하기만 했던 얼굴이 사진을 볼 때는 편안하게 이완됐다. 간간이 눈동자에 생기가 돌면서 입가가 올라가기도 했는데, 엄마 사진이 나올 때마다 그랬다. 엄마와 아빠가 팔짱을 낀 채 산책로 앞에 서 있는 사진이라든지 놀이공원 대관람차를 배경으로 가족 네 명이 촌스러운 외출복을 입고 포즈를 잡은 사진, 엄마가 네 번째 항암치료 후 잠시 집에 들렀을 때 아빠와 경진 사이에 앉아 마른 얼굴로 활짝 웃는 사진 같은……. 빛이 사선으로 스미면서 테두리부터 조금씩 환해지는 그늘 아래 풍경처럼 효진의 기억 속에서 사진의 서사가 어렴풋이 되살아났다. 그날 그 공간의 분위기라든지 오가던 대화, 그리고 사진을 찍으면서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효진은 더듬더듬 떠올릴 수 있었다.
    “어, 이건 뭐야?”
    경진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노트북 화면을 효진 앞으로 돌렸다. 사진은 아니었고, 인터넷에서 찾은 세 줄짜리 단신 기사 — K대학교 화학과 2학년 학생이 재학 중인 학교 앞 육교에서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는 유인물을 살포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 를 저장한 파일이었다. 기사는 거기서 끝났지만, 체포된 학생은 보름 동안 유치장에 갇혀 있었고 구류가 끝난 뒤엔 바로 입대하게 된다. 1983년의 11월 28일, 스물한 살의 아빠가 체포된 그날 서울의 기온은 아침 영하 4도에서 영상 3도였고 최고온도는 4도에서 9도였다. 쌀쌀했지만 맑은 날이었다. 효진이 기상청 홈페이지를 뒤져 찾아낸 기록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효진은 그날의 장면을 자주 상상했고 그 상상 속에는, 비록 매번 달라지긴 했지만, 아빠의 머리 위로 흘러갔을 구름의 모양과 색과 속도도 재현되곤 했다.
    그 일화는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한 상에 둘러앉은 아빠의 대학 동기들이 대화하는 걸 우연히 엿듣게 되면서 처음 알게 됐다. 아빠가 유인물을 제작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그들 중 한 명이 당시 아빠의 문장이 아주 좋았다고, 반파쇼니 미제국주의 타도 같은 슬로건을 내건 글이긴 했지만 정치적이라기보다 문학적이었다고, 그런 문장으로 연애편지를 쓴다면 백 퍼센트 성공하리라 장담했다며 연하게 웃었다. 근데 참 이상하지?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켠 그가 다시 말했다. 우리 배 교수가 그렇게 운동에 투신한 학생은 아니었잖아? 가끔 데모나 나가는 정도였지. 맞아, 오히려 깍쟁이 같았지, 아주 깍쟁이 같았어. 아빠의 또 다른 동기가 주변의 숙연함을 흩뜨리는 고음의 목소리로 거들었다. 멋도 좀 부리지 않았나? 머리는 늘 장발에, 다림질한 셔츠만 입고 다니면서 말이야. 우리 때는 흔하지 않은 아우라를 풍겼다고, 저 친구가. 누군가 그런 말을 하자 그들의 상 바깥으로 잔잔한 웃음소리가 번져 갔고 그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유에스비에 담긴 아빠 사진을 자꾸 들여다봐서인지 그 유인물 사건이 문득 생각이 났다. 그가 남긴 다른 문장들을 읽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그때부터 효진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전 짐을 뒤져 찾아낸 엄마의 장례식장 명부에는 상주와의 관계랄지 연락처 같은 문상객의 정보가 적혀 있지 않아서 그 유인물 조력자의 이름을 알아내거나 따로 연락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빠가 선고받은 구류 판결이 기록으로 남아 있을까 싶어 지난 금요일엔 가까운 법원을 찾아가기도 했지만 재판 기록은 5년까지 보관되며 심지어 구류 판결은 기록으로 남지도 않는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더 이상 다른 시도를 못 하고 낙담하고 있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빠가 다니던 대학교 이름과 국가보안법, 유인물, 구류 같은 키워드로 구글에서 검색을 해보자 그동안의 고생을 비웃듯 바로 기사가 떴던 것이다. 단신 기사로는 그가 유인물에 남긴 문장 전체를 유추하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효진은 그 기사를 경진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유인물엔 뭐라고 썼을까? 궁금하긴 하다.”
    골똘한 얼굴로 효진의 긴 설명을 들은 경진이 그렇게 말한 뒤 노트북 뚜껑을 닫았다. 노트북을 도로 가방에 넣으며 언뜻 커피숍 창밖을 보자 그새 가장자리부터 어둠에 잠겨 가는 도시가 보였다. 어떤 문장은 끝내 부재하기에 망각될 권리도 갖지 못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질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효진은 그 흐린 어둠을 마주 보며 천천히 인정했다. 낮이 지나면 저녁이 오듯, 누군가는 저녁을 위해 낮의 고단함을 잊어야 하듯…….
    “근데 언니, 상상이 돼? 난 아빠가 정치적인 행동을 했다는 것보다 멋을 내고 다녔다는 게 더 상상이 안 돼.”
    “그건 나도 그래.”
    경진의 말에 효진은 웃으며 대답했고 자매는 이내 서로를 마주 보며 함께 키득거렸다.
    커피숍에서 나오자마자 경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통화를 끝낸 경진은 집에 남자친구가 와 있다며 카카오택시를 불렀고 효진은 경진 곁에서 함께 택시가 오기를 기다려 주었다.
    “언니도 누구 좀 만나면 안 돼?”
    먼 시선으로 택시가 오는 쪽을 살피며 경진이 심상한 말투로 물었다.
    “나도 그래, 나도 언니가 이제 그만 자유로워지면 좋겠어.”
    “…….”
    마침 앞창에 예약이라는 초록색 글자가 켜진 택시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경진은 택시에 오르기 전 효진 쪽을 한번 보았고, 효진은 경진이 탄 택시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같은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유 없이 혼나고 주눅 든 아이 상태로 성장한 건 경진만이 아니다. 효진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밤이 깊어 가는지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어른거리는 간판 조명과 사람들의 신발 바닥에서 부서지는 가로등 불빛, 나뭇잎 끝에 아직 남은 빛의 열기를 밀어내는 어둠의 소란함이 들려왔다. 남은 여름 동안 짝을 찾아 현생을 기록하려는 벌레들이 그 어둠에 기탁한 채 등껍질이 부서지도록 세게 울고 있었다.

 

*

 

    유에스비를 넣자마자 바로 서랍을 닫으려 했지만 서랍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경첩이 고장 났는지 삐걱거리는 소리만 커져 갔고 그 소리는 이내 방 전체로 퍼졌다. 어느 순간 효진은 등 뒤에서도 서랍에서와 같은 소리가 나는 것을 느꼈다. 차 위에 종이를 대고 문장을 적어 나가는 동안 팔꿈치가 차체를 누르는 소리, 그렇게 짐작하자 아빠가 숨어 있었던 그 산의 쌀쌀한 바람이 또다시 두 뺨에 와 닿는 것만 같았다.
    뒤를 돌아봤다.
    방금 효진의 세계로 건너온 아빠가 보닛 위에 몸을 수그린 채 편지를 쓰는 중이었다. 무언가에 열중할 때면 늘 그랬듯 미간을 잔뜩 좁힌 채였다. 편지를 다 쓴 뒤엔 굳은 얼굴로 차의 바닥과 트렁크를 정리했고 의자와 창문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신중하게 모든 정리를 마친 그는 석 달 동안 거주지이자 은신처가 되어 준 에스유비 차량 주변을 돌기 시작했는데 그가 걸음을 옮길수록 계단이 생겨났다. 날이 찼다. 그가 숨을 내쉴 때마다 번져 나온 입김은 흩어지거나 소멸하지 않고 불가해하게도 끊임없이 높은 곳으로 떠올랐고, 효진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 광경을 하염없이 올려다봤다.
    그가 걸어 올라간 계단 끝에는 육교가 있었다. 육교에서 그는 노련하지 못했다. 수상쩍어 보일 만큼 자주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그때껏 손에 쥐고 있던 편지, 아니 유인물을 허공에 날린 직후엔 도망가기는커녕 제각기 다른 형태로 허공에서 흩날리는 종이의 궤적을 넋 놓고 내려다보기까지 했다. 누군가, 아니 손으로만 존재하는 어떤 형태가 그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는 발버둥 쳤지만 손은 그악스럽게 그를 육교 밖으로 끌어내려 했다. 멀리 가. 어느 순간 그의 시선이 효진에게 닿았을 때, 효진은 속삭였다. 멀리 가, 아빠. 그는 발버둥을 멈추었고 효진이 한번도 본 적 없는 얼굴로 효진을 응시하다가 이내 기화하듯 사라졌다.
    육교는 텅 비었다.
    마침 단 한 장 남은 유인물이 날개를 다친 나비처럼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얹혀 있는 게 효진의 시선에 들어왔다. 효진은 그제야 허둥지둥 육교로 올라가 그 종이를 낚아챘다. 읽어 보려 했지만, 절박하게 읽고 싶었지만, 종이에 적힌 글자들은 하나같이 뭉개져 있어서 해독이 불가능했고, 효진은 그것이 가슴이 터지도록 답답했다. 결국 단 한 글자도 읽지 못한 채 그대로 주저앉자 마치 효진의 세계를 순례하듯 천천히 이동하는 구름이 보였다. 구름은 멀리 있었지만 흩어지거나 소멸하지는 않을 터였다. 꿈에서 깬 뒤에도 영원의 경첩에 묶인 채로 꿈속에 남아 있을, 높고 느린 한 시절…….
    휴대전화 벨소리에 효진은 가까스로 눈을 떴다.
    책상 아래서 몸을 만 채 누워 있다가 전화를 받은 효진은 남자친구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날짜는 천천히 정해 보겠다는 경진의 목소리를 들었다. 잘했네. 잘했다. 짧은 침묵 뒤에 효진이 그렇게 말하자 경진이 돌연 흐느끼기 시작했다. 기껏 힘내서 말해 놓고 왜 우느냐고 나무라면서도 효진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경진의 진정을 기다리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아직 열려 있는 서랍이 눈에 들어왔다. 효진은 허리를 숙여 서랍을 밀어 보았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서랍이 닫혔다. <끝>

 

 

 

 

 

 

 

 

 

 

 

 

 

 

 

조해진

작가소개 / 조해진

2004년 《문예중앙》에 중편소설을 발표하며 등단.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등이 있다.

 

   《문장웹진 2020년 09월호》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