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을 기다리는 저녁

[단편소설]

 

 

태풍을 기다리는 저녁

 

 

서장원

 

 

 

    태풍이 북상한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유준과 도경이 휴게소에 도착할 때까지 날은 화창하기만 했다. 유준은 태풍의 경로에 대해 이야기 중인 라디오 방송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기상캐스터는 태풍의 진입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는데, 결국 태풍이 오는지 마는지는 확언하지 못했다. 하기는 저치들은 어제도 틀렸지, 유준은 차에서 내려 탁 소리 나게 문을 닫으며 생각했다. 어제의 예측대로라면 유준과 도경은 지금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하늘은 맑았고 바람도 거의 없었다. 오히려 햇살이 따갑게 느껴질 만큼 화창한 날이었다.
    “나 오래 걸려.”
    유준을 따라 차에서 내린 도경이 말했다.
    “커피 사놓을게. 아이스로 할 거지?”
    유준이 뒤돌아 도경을 바라보며 물었다. 햇볕 때문에 눈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도경은 한 손으로 해를 가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유준과 마찬가지로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는데, 그것이 햇볕 때문인지 다급한 볼일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유준은 미간을 찌푸린 도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에게 몇 가지 생활수칙을 일러주던 도경의 모습을 떠올렸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막 세간이 갖춰진 아파트로 들어갔을 때였다. 도경은 비닐 포장이 벗겨지지 않은 소파에 앉아서, 결혼 뒤에도 서로에게 약간은 거리를 둬야 한다는 얘기를 꺼냈다. 도경의 표현에 따르면 그건 ‘로맨틱한 거리’로, 부부 사이에 확보해야 할 최소한의 간격이었다. 그 간격을 확보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서로를 아이들 엄마 아빠로만 생각하게 될 거라고 도경은 경고했다. 유준은 그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도경의 불안을 십분 이해했으므로 ‘로맨틱한’ 생활수칙을 따라 주었다. 온종일 집에만 있는 날에도 무릎이 튀어나온 트레이닝 바지나 목이 늘어난 티셔츠는 입지 않았다. 큰일을 볼 때면 반드시 환풍기를 켜놓은 다음 화장실에 들어갔다. 가끔은 엠티에 참석한 대학 신입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헛웃음이 났지만, 스무 살 남자애의 기분을 서른 넘어 느끼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았다. 그게 불과 이 년 전의 일들이었다.

 

    유준은 휴게소 안의 도넛가게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했다. 매장은 꽤 넓었지만 손님은 그를 제외하고 젊은 여자 둘뿐이었다. 유준은 도넛 진열장 앞을 서성이며 음료가 나오길 기다렸다. 진열장에는 도넛들이 종류별로 놓여 있었다. 그는 도넛도 몇 개 사볼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여기서 먹고 갈 만한 분위기는 아닌 듯했고, 차 안에 빵 부스러기를 흘리기도 싫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자 유준은 양손에 컵을 하나씩 들고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지금쯤이면 도경도 볼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듯했다. 그러나 여자화장실 문턱까지 다가갔을 때도 도경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도넛가게로 돌아가 봐도 마찬가지였다. 유준은 매점 앞에 마련된 테이블들을 훑으며 도경을 찾다가 마침내 흡연부스 유리창 너머로 익숙한 옆모습을 발견했다. 도경은 화장실 옆에 마련된 직육면체 모양의 흡연부스 안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유준은 도경의 모습이 낯설어서 부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바깥에 잠깐 서 있었다. 도경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처음 본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은 모두 흡연자였는데, 결혼 후 아이 가질 준비를 하면서 함께 금연을 시작했었다. 언제부터 도경이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된 것인지 유준은 알지 못했다. 유리창 밖에 서 있는 유준을 발견한 도경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다음 유준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도경은 흰 바탕에 푸른색 꽃무늬가 큼직하게 박힌 원피스를 입고 있었었는데, 도경이 움직이자 푸른 꽃들이 일제히 일렁거렸다. 유준은 커피를 들고 있던 한쪽 손을 위로 들어 도경에게 답했다. 컵에 든 얼음이 달캉달캉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곧 도경이 부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유준은 도경에게 커피를 건네주었다.
    “날이 좋네.”
    도경은 말했다.
    “그러게. 일기예보가 틀렸나 봐.”
    유준은 태풍이 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이번 여행은 도경이 제안한 것이었다. 유준은 그 사실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갖는 일을 완전히 포기한 뒤 두 사람은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유준보다 도경이 더 그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갖는 일에 더 적극적이었던 건 유준보다는 도경이었으니까. 유준이 불임 판정을 받은 후 도경은 불임 전문 병원을 알아내 유준을 데려갔다.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아가 약을 지어오기도 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애써 오던 치료를 포기할 무렵에 설상가상으로 도경의 전남편이 캐나다에서 돌아오지 않겠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그곳에 완전히 정착하게 된 모양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도 아니었건만 도경은 그 일로 또 한 번 무너졌다. 그건 곧 제 아빠를 따라간 딸아이와 영영 요원해진다는 뜻이었으니까. 유준이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도경은 집에 불도 켜놓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늦은 밤이 되면 딸아이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전화 후에는 아이가 점점 한국말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며 눈물을 보이는 것이 순서였다. 그런 도경을 다독여야 하는 사람은 온종일 격무에 시달린 유준이었다. 이번 나들이를 계기로 그런 날들이 지나가 주기를 유준은 바랐다. 다행히 오늘 아침 도경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목적지에 가까워 왔을 때 도경은 마트에 들러야 한다고 유준에게 말했다. 펜션을 예약할 때부터 몇 번이고 들었던 말이었다. 펜션 사장은 고속도로를 빠져나오자마자 보이는 3층짜리 대형마트에서 고기나 상추 같은 것들을 사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기를 지나치면 제대로 된 마트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필요하지 않은 걸 사보자.”
    도경이 차창을 열면서 말했다. 바람결에 도경의 진갈색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필요하지 않은 거?”
    “마트에서 말이야. 소풍가는 거니까 예쁘고 신나는 걸 하나씩 사보는 거야. 난 모자를 살게. 날이 좋으니까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싶어.”
    아, 유준은 짧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예쁘고 신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나는 뭘 사야 될지 모르겠는데.”
    “당신은 선글라스를 사는 게 어때? 지금 있는 거 너무 낡았어.”
    유준은 좋다고 대답했다.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그들은 여성복을 파는 삼층으로 향했다. 도경은 매장을 돌며 피크닉용 밀짚모자가 있느냐고 물었고, 직원들이 권하는 거의 모든 제품을 한 번씩 써보았다. 유준이 보기에는 모양이나 기능이나 별 차이가 없었지만, 도경은 디자인과 챙의 크기, 색감을 따져 가며 물건을 골랐다. 도경이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고 유준은 생각했다. 지난 몇 달간, 도경은 유준에게나 자신에게나 무성의했다. 전처럼 출근하는 그와 함께 아침을 먹지 않았고, 혼수로 장만한 일제 식기들에 음식을 담는 일도 그만둔 채 반찬통을 식탁에 그대로 올렸다. 똑같은 트레이닝 바지를 며칠째 입고 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유준은 기대했다. 해변의 펜션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꽤 많은 것이 변하게 될 거라고. 도경이 마침내 넓은 챙에 연보라색 리본이 달린 모자를 골라 들었다. 유준은 모자가 썩 잘 어울린다고 도경을 칭찬했다. 도경은 모자를 카트에 담는 대신 머리에 얹고서 이번에는 유준이 쓸 선글라스를 사자고 말했다. 직사각형의 가격표가 챙 끝에서 달랑거리고 있었다. 마트를 나서면서 유준은 자동차 천장에 달린 작은 창을 열었다. 그들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펜션으로 갔다.

 

    펜션은 긴 해변의 끝자락에 있었다. 횟집과 카페들로 복작대는 해수욕장과 동떨어져 있으면서도, 창밖으로는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유준은 마음에 들었다. 도경은 그보다 좀 더 세심해서, 새하얀 외벽에 베란다 위로 달린 차양만 파란색인 것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유준은 동감했다. 펜션의 이름은 산토리니였는데 건물만 떼놓고 보면 정말 그리스의 해변에 있을 법해 보였다. 유준은 마당 겸 주차장에 차를 댄 다음 숙소 건물과 마주 보고 있는 안채로 가서 예약을 확인했다. 그러는 동안 어디선가 작고 흰 개가 다가와 그의 발치에서 꼬리를 흔들었다. 사람을 잘 따르는 모양이라고 유준은 생각했다. 도경이 쪼그리고 앉아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 주자 녀석은 금세 배를 보이며 드러누웠다.
    “전에 왔던 손님들 중에 한 팀이 버리고 간 개예요. 맘에 들면 데려가요.”
    열쇠를 들고 나온 펜션 사장이 말했다. 그는 환갑쯤 된 남자로, 작은 키에 머리가 반쯤 벗어져 있었다. 유준은 펜션을 이 남자 혼자서 운영하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입을 다문 채 숙소 건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사장을 뒤따라갔다. 사장은 직접 열쇠로 방문을 열어 보여주더니 유준과 도경보다 앞서 방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제일 좋은 방이에요, 여기가. 태풍 온다고 여기저기서 난리를 쳐가지고 예약이 다 취소됐거든. 근데 봐. 날이 어때?”
    펜션 사장이 방 한가운데 서서 말했다. 유준은 일기예보란 믿을 수 없는 법이라며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펜션 사장은 에어컨디셔너 리모컨 사용법을 알려주더니,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사용하는 법까지 설명한 다음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도경은 침대 위로 털썩 주저앉았다.
    “저 아저씨 말 많다. 무슨 선생님 같아.”
    도경이 말했다.
    “우리가 어려 보였나 보지. 자기가 좀 동안이잖아.”
    유준의 말에 도경이 웃음을 터뜨렸다. 유준은 방금 전까지 펜션 사장이 서 있던 자리에 서서 도경을 내려다봤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도경이 웃음을 멈춘 뒤 물었다.
    “물론이지.”
    유준은 도경이 자신보다 다섯 살 연상인 것에 대해 때때로 부담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그렇게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보겠지. 내 나이를 아니까.”
    도경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상체를 젖혀 침대 위로 드러누웠다. 유준은 휴게소에서 도경을 찾아다니며 들었던 트로트 가사가 떠올라 실소가 났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그런 멜로디와 가사가 귀에 박히는 걸 보니 이제 정말 나이를 먹은 모양이라고 유준은 생각했다. 동시에 몇 달 전 그보다 한참 어린 여자 직원에게 동안이라는 칭찬을 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인사치레로 한 말이란 걸 알면서도 유준은 무척 기뻐했다.

 

    유준과 도경은 해변을 따라 늘어선 횟집 중 한 군데서 점심을 먹었다. 그러는 동안 소나기가 내렸다가 그쳤다. 두 사람이 식당에서 나왔을 때는 날이 개고 있었다. 수평선이 가느다란 빛줄기처럼 바다와 하늘을 가로질렀다. 두 사람은 한동안 해변을 걸어 다녔다. 모래가 젖어 있어 오히려 걷기가 더 편했다. 도경은 갈매기 발자국을 발견하고는 아기 발자국 같다고 유준에게 말했다. 유준은 도경이 ‘아기’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놀랐다. 한동안 길거리에서 유모차만 마주쳐도 표정이 달라지던 그녀였다. 그러나 도경은 지금 이렇게 웃고 있었다. 유준은 도경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돌아오는 금요일 저녁에는 도경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단골 술집에서 맥주를 마실 수도 있겠다고 유준은 생각했다. 그건 결혼 후 한동안 지속되었던 두 사람의 데이트 방식이었다. 그런 나날을 이어 갈 수 있다면, 나중에 두 사람은 어려운 시기를 함께 지나왔다고 서로를 다독일 수 있을 것이었다. 더 먼 미래에는 차라리 아이가 없는 편이 나았다고, 그래서 서로에게 더욱 충실한 부부가 될 수 있었다고 얘기할지도 몰랐다. 유준은 바닷바람을 들이마시며 지난봄과 여름을 돌아봤다. 의사로부터 임신이 어렵다는 말을 들은 건 초봄의 어느 날이었다. 병원을 나서면서 유준은 이혼을 생각했고, 도경에게도 그렇게 전해 주었다. 자신을 떠나도 괜찮다고, 원망하지 않겠다고 그는 말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도경이 아이 있는 가정을 얼마나 원했는지 알고 있었기에 한 말이었다. 그러나 도경은 유준을 떠나지 않았다. 가능성이 희박한 불임치료를 시작하자 했고, 그걸 포기한 뒤에도 우울한 얼굴로나마 유준의 곁에 남았다. 입양이나 정자은행 같은 차선책을 단칼에 거절한 유준을 존중했다. 사실 도경은 그전부터 유준보다 많은 것을 감내해 왔었다. 두 사람의 결혼이 유준 어머니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을 때, 도경은 직장을 그만두고 내조에만 전념하겠다는 약속을 해 유준의 어머니를 설득했다. 도경의 경력을 아쉬워한 건 그녀 자신보다는 유준이었다. 도경과 유준은 같은 식품회사 선후배 사이였는데, 도경이 그보다 직급이 높았고 사내 평판도 더 나은 편이었다. 차라리 손주라도 하나 낳아서 나중에 찾아뵙는 것이 어떻겠냐고 결혼 전 유준이 물었을 때 도경은 제 의견을 확실히 했다.
    “나는 원하는 게 분명한 사람이야.”
    그때 도경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나 원하던 것을 가지지 못하게 되자 유준보다 더 크게 절망했다. 유준은 도경과 달랐다. 그는 대체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살아갔다. 불임 진단을 받고 나서야 유준은 자신이 아이를 갖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을 닮은 아이, 건강하고 영특하고 애교 많은 아이를 유준은 원했다. 아니, 원했다는 표현은 맞지 않았다. 그건 때가 되면 자연히 갖게 되는 무언가라고 예전의 유준은 생각했었다. 문득 그는 아이 없이 늙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상상해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겨를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올해 초 승진 이후 정시에 퇴근할 수 있었던 날은 한 달 중 일주일이 채 안 됐다. 퇴근 후에는 늘어져 있는 도경을 상대해야 했다. 하루 중 편히 있을 수 있는 때라곤 잠들기 직전의 몇 분이 전부였다. 그리고 여유롭게 도경과 해변을 걷고 있는 지금, 유준은 자신이 도경과의 결혼생활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유준과 도경이 해변 산책을 마치고 펜션 쪽으로 걷기 시작할 즈음 다시 비가 쏟아졌다. 이번에는 소나기가 아니었다. 빗줄기가 짧은 시간 동안 눈에 띄게 굵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편의점에서 큼직한 장우산을 하나 사서 함께 썼지만, 비스듬한 빗줄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이 펜션으로 돌아왔을 때는 발과 어깨가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펜션 입구에서 개가 그들을 반겼다. 비를 맞으며 마당에서 뛰어다녔는지 온몸이 젖은 채였고 네 발과 배가 진흙으로 더러웠다.
    “너무 한다. 안에 좀 들여놓지.”
    펜션 입구로 들어가면서 도경이 말했다. 유준은 폭우로 여기저기 웅덩이가 파인 마당을 둘러봤다. 그들이 고기를 구워 먹기로 했던 테이블은 비를 그대로 맞고 있었다. 테이블 한가운데에 꽂힌 파라솔은 접힌 채였다. 유준은 펜션 사장이 자리를 비운 것일까 생각했다. 펜션을 나오기 전에 유준은 고기를 구울 숯불을 피우기로 예약해 두었다. 원래대로라면 두 시간 뒤였다. 물론 취소되어야 할 약속이었다. 날이 바뀌어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일은 불가능해졌으니까. 펜션 사장은 보이지 않았다. 유준이 들어가 예약을 확인했던 안채도 비어 있었다.
    “안 들어가?”
    도경이 숙소 건물 입구에서 서성이는 유준을 잡아끌었다. 유준은 혹여나 무슨 사고가 난 것이 아닐까 잠시 동안 생각했다. 손님들이 머물고 있는 펜션을 두고 자리를 비우는 일은 그에게 상식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머, 얘 좀 봐.”
    도경이 재미있다는 듯 소리쳤다. 현관문 앞에서 얼쩡대던 개가 어느새 유준과 도경을 따라 건물 내부로 들어와 있었다. 녀석은 추위로 몸을 떨면서도 꼬리를 흔들었다. 유준은 개를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에 현관문을 연 다음 개에게 손을 까딱였다. 그러나 개는 폭우 속으로 다시 나갈 마음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계단 두 개를 단숨에 올라간 다음 뒤돌아 그들을 응시했다. 잠시 후 유준과 도경이 계단을 하나씩 오르자 개도 속도를 맞추어 그들을 뒤쫓아 갔다. 마치 유준과 도경이 제 주인이라도 된다는 듯 보여 유준은 헛웃음이 났다.
    “우리가 얘 좀 데리고 있을까?” 도경이 개와 유준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가엾잖아. 비가 이렇게 오는데.”
    “그래, 잠깐이니까.”
    유준은 그렇게 대답했다. 잠시 동안이니 별 문제는 없을 듯했다. 방문 앞에서 유준이 열쇠로 문을 열어 주자 개는 제 집으로 들어가는 애완견처럼 자연스레 문턱을 넘어갔다. 도경은 개를 내려다보며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이참에 개를 정식으로 길러 보는 것은 어떨까 하고 유준은 잠시 생각했다. 어쨌거나 도경에겐 돌봐야 할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았다. 실내로 들어선 개는 부르르 몸을 떨어 물기를 털어낸 다음 방 안 곳곳을 걸어 다니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개가 지나간 자리마다 진흙 발자국이 남았다. 유준은 이제 어쩌지 하는 심정으로 도경을 바라봤다.
    “우리가 얘 좀 씻겨 줄까?”
    도경이 말했다. 유준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의 개를 씻기는 건 의도야 어쨌든 무례한 행동 같았다. 게다가 유준은 한 번도 개를 씻기는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개를 기른 적이 없으니 당연했다. 그리고 그가 아는 한 도경 역시 그랬다.
    “내가 할게. 당신은 보조만 좀 맞춰 줘.”
    유준이 망설이는 사이 도경은 욕실로 들어가 세면대에 물을 받고 샴푸를 가져와 물에 풀었다. 그러고는 다시 거실로 나와 개를 능숙하게 들어 올려 욕실로 들어갔다. 개의 몸에 묻은 진흙이 도경의 원피스를 더럽혔지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유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곧 젖은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붙인 다음 욕실로 따라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선 펜션 사장에게 둘러댈 말을 재빠르게 정리했다. 펜션으로 돌아와 보니 당신이 없었다고, 개가 문 앞까지 따라오더니 문을 연 순간 족제비처럼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고 말할 작정이었다. 도경이 개 옆으로 쪼그리고 앉은 뒤 샤워기를 틀어 개의 몸을 물에 적시기 시작했다. 개는 유순하게 도경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유준이 도울 것도 없어 보였다.
    “당신 개 기른 적 있었어?”
    “응, 내가 말 안 했지? 어릴 때 아빠가 강아지를 어디서 얻어왔었거든.”
    유준으로서는 들어 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도경이 다시 벌떡 일어나서 세면대에 받아 놓은 물을 손으로 휘저었다. 세면대 위로 거품이 부글부글 피어올랐다.
    “그건 뭐 하는 거야?”
    “강아지용 샴푸가 없을 땐 그냥 사람 쓰는 샴푸를 물에 중화시켜서 쓰면 돼. 원래는 삼십 분 정도 중화를 해야 하는데.”
    유준은 변기에 앉은 채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시 후 도경이 샴푸가 풀린 물을 떠서 개의 등에 대고 문질렀다. 유준도 도경을 거들었다. 개의 피부는 놀라울 정도로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유준은 결혼 직전 백화점에서 눈여겨보았던 아기 욕조를 생각했다. 도경은 그것이 유명한 브랜드의 제품이며 지금 큰 폭으로 할인에 들어간 거라고 말했었다. 두 사람은 꽤 오래 고민하다가 결국 욕조를 사지 않았다. 다행한 일이었다. 만약 샀다면 유준은 아기 신발과 함께 그것을 내다버려야 했을 것이었다. 도경이 개의 머리를 문질러 거품을 냈다. 개의 귀로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하는 손길이 섬세했다.
    “개를 언제 기른 거야? 난 몰랐네.”
    “어릴 때부터 대학 들어갈 때까지니까 십 년 정도 키웠지.”
    도경은 그렇게 대답하곤 샤워기로 개의 몸에 물을 뿌렸다. 다시 물을 맞는 것이 싫었는지 개가 재빠르게 몸을 털었다. 비누거품이 사방으로 튀어 옷이며 욕실 내부가 엉망이 됐지만 도경은 웃기만 했다. 유준도 따라 웃었다. 만약 그들이 아이를 낳았다면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을 어떤 감정이 두 사람의 머리 위를 스쳐갔다. 샴푸 거품이 유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도경이 다시 말했다.
    “강아지 이름이 보리였어. 보리가 죽고 나서 다시는 개를 안 기르려고 했어. 그러면 보리가 너무 속상해할 것 같았거든. 개를 안 키워 본 사람은 잘 이해가 안 갈 거야.”
    유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도경의 말처럼 자신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도경이 능숙한 손길로 개의 다리를 하나씩 들어 올려 거품기를 헹궈냈다. 개는 불안한 눈빛으로 유준과 도경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거품기가 모두 물줄기에 쓸려 내려가자 도경은 일어서서 수건으로 개의 몸을 닦아 줬다. 도경의 손이 떨어지자마자 개는 재빠르게 욕실을 빠져나갔다. 목욕의 순서를 알고 있는 녀석이라고 유준은 생각했다. 그리고 일어서서 세면대에서 손을 씻자 손바닥에 붙어 있던 개털 몇 가닥이 배수구로 빨려 들어갔다.
    “지금도 개를 기르기 싫은 거야?”
    유준은 물었다. 도경은 수건으로 손을 닦던 동작을 멈추고 거울을 통해 유준을 잠시 바라봤다.
    “글쎄.”

 

    잠시 후 두 사람은 침대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태풍이 오기는 오려는 모양이라고 유준은 생각했다. 해수면 위로 번개가 번쩍이더니 곧이어 천둥이 내리쳤다. 발랄하게 방 안을 돌아다니던 개가 도경의 발치로 달려와 엉덩이를 붙이고 주저앉았다. 천둥을 무서워하는 모양이었다. 도경이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준은 다시 한 번 펜션 사장을 생각했다. 이 빗속에 그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사실 보리를 죽인 건 나야. 내가 잃어버렸거든. 보리 혼자서 돌아다니다가 차에 치였어.”
    유준은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도경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도경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언뜻 미소를 짓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지금도 가끔 꿈에 보리가 나와. 걔가 나이 먹고 관절이 안 좋아져서 높은 데서 뛰어내리면 안 됐거든? 근데 꿈에서는 꼭 한참 높은 계단 같은 데 올라가 있어. 내가 거기 있으라고 말해도 못 알아듣고 나한테 막 달려와. 계단을 두세 개씩 뛰어내리면서. 그러다가 한 번 안아 보지도 못하고 잠에서 깨버려.”
    유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들었다. 도경이 속마음을 털어놓고 있다는 사실이 유준을 기쁘게 했다. 유준은 팔을 뻗어 도경의 손을 잡았다. 도경이 유준의 손을 양손으로 감싸 주었다. 도경의 손은 작고 따뜻했다. 유준은 자신도 무언가를 털어놓아 이 분위기를 이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 적 학교 앞에서 샀던 병아리가 기억났다. 병아리는 집에 들여놓은 지 한나절도 안 되어 죽었다. 그 일은 유준에게 작은 생채기 하나 남기지 못했다.
    바다 위로 거대한 전구가 터지듯 방사형의 빛줄기가 뻗어 나가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유준은 또 한 가지 비밀을 생각해 냈다. 한 달 전 퇴사한 인턴사원 윤가영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나이를 듣고 깜짝 놀라며 저보다 서너 살 오빠인 줄만 알았다고 윤가영은 말했었다. 혹여나 거기에 또 다른 의미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유준은 한동안 그 짧고 단순한 문장을 곱씹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도경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도경이 다시 말했다.
    “당신은 개를 기르고 싶어?”
    “응, 개가 있으면 아무래도 분위기가 좀 바뀌지 않을까 해.”
    “무슨 분위기?”
    “당신 요즘 좀 울적해했잖아.”
    “그렇지. 근데 이제 괜찮아.”
    도경은 유준을 바라봤다.
    “누구를 또 잃어버리는 게 이제는 무서워.”
    도경이 말했다. 유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이 현서를 데려가겠다고 했을 때 그냥 그러라고 한 게 아직도 후회되거든. 가끔은 그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잘못 같아.”
    “그때는 그게 애한테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거잖아. 당신 잘못이 아니야.”
    유준은 자신의 위로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마침내 도경에게 고백할 만한 일을 찾아냈다.
    “사실 나는 당신한테 아이 있다는 얘기 듣고 놀랐었어. 이혼했다고만 알았는데 딸이 있다니까 좀 놀랍더라구. 처음 데이트 할 때까진 몰랐거든.”
    도경은 조금은 난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유준은 직감적으로 자신이 이 분위기를 깨트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후회했어?”
    “아니, 당신이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했지.”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동안 정면의 바다를 바라봤다. 멀리서 파도가 높이 솟아올랐다가 부서졌다. 도경이 다시 입을 뗐다.
    “다음 달에 현서가 한국에 온대.”
    유준은 잠시 동안 그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도경이 말을 이었다.
    “아주 오는 거야.”
    유준은 도경이 한 말의 의미를 천천히 깨달았다. 그러니까 지금 도경은 두 개의 선택지를 내놓은 셈이었다. 도경의 딸과 함께 사는 삶이 그중 하나였고 나머지 하나는 이혼일 터였다. 유준은 진흙이 묻어 엉망이 된 옷을 입은 채,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도경을 바라봤다.
    “지금 대답하라는 건 아니야.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해.”
    유준은 도경의 딸과 직접 대면한 적이 없었다. 사진이나 동영상으로만 몇 번 봤을 뿐이었다. 크고 쌍꺼풀진 눈이 도경과 비슷했지만, 얼굴형이나 코와 입의 생김새는 확연히 달랐다. 엄마보다는 아빠와 더 닮았을 거라고 유준은 짐작했다. 유준은 그 애가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는 장면을 상상해 봤다. 그는 원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지금 무엇을 원치 않는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느새 개가 도경의 발등을 베고 조그만 소리로 코를 골고 있었다. 유준은 비 내리는 바다를 가만히 바라봤다.

 

    펜션 사장은 승합차에 두 쌍의 연인을 태우고 펜션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비를 맞으면서 차에서 짐을 내려 펜션 안으로 날랐다. 모두 이십대 초반처럼 보였다. 유준은 베란다 밖을 내다보았다. 펜션 마당 구석에 차를 댄 펜션 사장은 잠시 후에 방문을 두드려 유준과 도경을 불렀다. 유준이 방문을 열자 빗물로 양어깨가 젖은 그가 서 있었다.
    “여섯 시에 바비큐 맞죠?”
    “비가 이렇게 오는데요?”
    “베란다가 있는데 왜.”
    펜션 사장은 별일이냐는 듯 말했다. 방 안을 돌아다니던 개가 사장을 보고는 앞으로 나와 꼬리를 흔들었다. 사장은 역시 별일 아니라는 듯 중얼거렸다.
    “얘는 왜 여기 있대요?”
    “얘가 우리를 따라 들어와서요. 잠깐 데리고 있었어요.”
    “이 자식, 이거 호강했네요.”
    펜션 사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개도 꼬리를 흔들며 사장을 뒤따라갔다. 유준은 빗속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싶은 기분이 전혀 아니었지만, 펜션 사장을 다시 불러 저녁을 취소하겠다는 말을 꺼내고 싶지도 않았다. 잠시 후 펜션 사장이 양손에 목장갑을 낀 채 큼직한 그릴을 들고 들어왔다. 도경이 냉장고를 뒤져 고기와 상추, 팩에 담긴 김치, 쌈장을 챙겨 베란다의 조그만 테이블에 올렸다. 유준은 안채로 가서 고기를 굽는 데 필요한 집게와 나무젓가락, 목장갑 등을 빌렸다. 그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그릴이 달구어져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펜션 사장은 고기를 직접 판에 올려 주며 고기 굽는 요령을 한참 설명한 다음 집게를 유준에게 넘겨주고 방을 나갔다. 유준과 도경은 그릴을 사이에 두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숯이 타며 연기가 피어올라 눈과 코가 따끔거렸지만 둘은 그런 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베란다 밖으로는 여전히 폭우가 쏟아졌다. 유준은 윤가영이 퇴사하던 날에도 꽤 많은 비가 왔었던 것을 기억했다. 윤가영의 퇴사는 다소 냉담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윤가영과 함께 일했던 다른 두 명의 인턴사원들이 정직원으로 채용되었던 탓이었다. 윤가영을 위한 송별식은 당연히 없었고, 자리를 정리하는 그녀에게 누군가 나서서 아쉽다거나 그간 고마웠다는 인사를 전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윤가영이 듣는 앞에서 새로운 사원들을 위한 환영회 날짜가 언제냐고 공공연히 떠드는 직원도 있었다. 그날, 윤가영은 유준에게 커피를 한잔 사줄 수 없겠냐고 물었다. 유준은 거절했다. 그날은 목요일이었고, 저녁에 유준은 도경과 함께 병원에 갈 예정이었다. 회사 건물 로비에 있는 카페에서 도경이 유준의 퇴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씩 유준은 그날의 제안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곤 했다. 단지 동종업계 선배로서 일에 대해 조언을 구할 작정이었는지, 자신을 남자로서 유혹한 것인지 유준은 알고 싶었다. 만약 후자였다면 그건 유준이 결혼생활 동안 유일하게 가졌던 외도의 기회였을 터였다. 도경이 익은 고기를 유준의 접시에 올려 주었다.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조용히 고기를 씹어 먹었다. 유준은 윤가영에 관한 마지막 장면, 한쪽 어깨에 핸드백을 걸고 다른 쪽 손으로 종이봉투를 들고 있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가 도경과 잠깐 카페에 앉아 있을 때 윤가영은 그런 모습으로 회사 로비를 빠져나갔다. 아쉽다기보다는 다소 지친 표정으로.
    멀리 수평선 쪽에서부터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빗줄기도 조금씩 가늘어지고 있는 듯했다. 베란다 아래에선 어느새 온몸이 더러워진 개가 마당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유준은 녀석이 한동안 자신과 도경이 앉아 있는 베란다를 올려다보다가 어딘가로 겅중겅중 뛰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어서 태풍이 다가와 주기를 기다렸다. ■

 

 

 

 

 

 

 

 

 

 

 

 

 

 

 

서장원

작가소개 / 서장원

202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문장웹진 202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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