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 폭포에서 온 영수증

[단편소설]

 

 

잭슨 폭포에서 온 영수증

 

 

박세회

 

 

 

    시월의 교정엔 맑은 햇살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흘렀다. 확실하진 않지만, 출근할 때 보니 딱 그런 날씨일 것 같았다. 이런 날씨에 산책을 하면 피부가 참 기분 좋게 마를 텐데. 이런 날씨에 학교 뒤 숲을 거닌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러나 그런 건 다 현재 사실에 반대되는 일을 상상해 보는 가정법 과거의 공염불일 뿐이다. 내가 만약 날씬했다면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겠지. 내 지도교수가 우리 엄마 친구였다면 학위를 따기가 좀 더 쉬웠겠지. 프로젝트를 맡지 않았다면 학교 뒤 숲을 거닐 수 있었겠지. 연구실 석사생들은 프로젝트를 위해 인터뷰한 아이들의 녹취를 옮겨 적느라 정신이 없었다. 키보드를 내려치는 소리가 연구실을 가득 채웠다. 나와 누리는 석사생들과 학부 아르바이트생들이 보내온 녹취록을 가다듬고 세부 항목에 따라 답변을 분류하는 일을 했다. 회의용 탁자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있던 누리가 고개를 들었다.
    “언니는 이제 보고서 초안 쓰기 시작해야 하는 거 아녜요?”
    “써야지. 근데 인터뷰 녹취 하나는 내가 풀어야 할 것 같아.”
    “제시카요? 걔 진짜 이상했어요. 그쵸?”
    나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다른 인터뷰이의 녹취록을 살펴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상했지, 이상했어. 근데 꼭 아주 이상하지만은 않았단 말이지.
    “너 제시카 인터뷰 얘기는 지박 씨한테 절대 하지 마.”
    ‘지박 씨’는 지도교수 박 교수의 줄임말이다. 그는 실원들에게 말할 때면 자칭을 ‘지도교수’로 통일하는 버릇이 있었다. ‘지도교수로서’, ‘지도교수가 말하면’, ‘지도교수에게는’ 따위의 말이 하도 듣기 지겨워서 우리는 그에게 ‘지도교수 박 교수’라는 풀네임을 붙여 주고 이를 줄여 ‘지박 씨’라 부르곤 했다. ‘씨’를 붙여 살짝 높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지박 씨가 가끔 꼴값을 떨고 자주 진상이긴 하지만, 선을 지킬 줄은 아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향한 우리의 증오는 어느 정도라고 해야 할까. 지박 씨의 흉을 익명으로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고 싶은 마음은 들지만, 경찰차나 앰뷸런스가 출동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면 싶은 정도? 종합적으로 보면 혐오보다는 싫증을 유발하는 타입? 지박 씨가 형식적으로나마 실원들의 호칭 끝에 항상 ‘씨’ 자를 붙인다는 점 역시 별명의 격을 높이는 데 크게 한몫 했다. 전화벨이 울리자 석사생 하나가 나를 불렀다.
    “수연 선생님, 지박 씨 호출이요.”
    나는 이번에는 꼭 제대로 말하리라 다짐하며 교수실로 향했다.

 

    제시카는 우리가 맡은 프로젝트에서 인터뷰이로 만난 학생이었다. 그때 우리 연구실은 꽤 큰 프로젝트 하나를 맡은 터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삶에 인류가 적응하기 시작한 그해 봄, 교육계에선 귀국 유학생이 큰 이슈였다. 2020년 초부터 가을 사이에 귀국해 2021년 국내 대학 입학을 노리는 소위 ‘리터니’들이 눈에 띄게 늘어서였다. 재외 특례 입학생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과 정원 확대는 기존 입시생들에게 불공정한 처사라며 반대하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붙었다. 상대적 박탈감을 내세운 여론이 이겼다. 돈 없어서 해외에 못 나간 아이들이 왜 불이익을 감내해야 하느냐는 여론. 결국 2021년도 재외국민 특례 입학생의 비율은 예년과 같은 2%를 유지했다. 피해자만 남았다. 언론이 재외 특례 제도에 대해 떠들기 시작하자 귀국 유학생 전체가 싸잡혀 혐오 놀이의 먹잇감이 되었다. 이듬해 대학 개강 철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대학가에 귀국 유학생 혐오가 번지고 있다’,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귀국 유학생, 대학은 수수방관’ 등의 기사가 났다. 교육부에선 6월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 귀국 유학생의 대학 생활 안녕감에 관한 실태 및 사례 조사’라는 용역을 발주했다.
    하필 이십 몇 년 전 지박 씨가 박사학위를 받을 때 쓴 논문 주제가 ‘제3문화 아이들(Third Culture Kids)’이었다. 제3문화 아이들이란 청소년기에 2개 국가 이상의 문화를 경험한 아이들을 말했다. 한국에 돌아온 귀국 유학생 역시 여기에 속한다. 게다가 지박 씨의 박사 논문 제목은 ‘제3문화 아이들의 언어효능감이 귀국 후 고등교육 적응에 미치는 영향’이었고 부제는 ‘IMF 외환 위기로 귀국한 학생을 중심으로’였다. 교육부가 발주한 조사에 딱 들어맞는 연구자였던 셈이었다. 경쟁자도 없었다. 좁디좁은 바닥이라 다른 교수들 역시 우리 지도교수가 이 용역의 적임자라는 걸 알았다. 단독 입찰로 프로젝트를 따냈고, 얼마 후 조달청 사이트에 공고가 떴다. 공고기관 ‘교육부’, 업무 구분 ‘용역’, 입찰공고번호 ‘20210722486-00’, 입찰금액 ‘38,000,000원’. 연구 기간 3개월짜리 단기 연구에 3800만 원이면 공대에서는 작은 규모일지 몰라도 사회과학 계열에서는 꽤 덩치가 큰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의 진두지휘는 박사 연구생 중 유일하게 연구실에 상주하다시피 하는 내 차지였다. 왜 내 차지였을까. 연구실에 모습을 비추지 않는 다른 박사 연구생도 있는데, 왜 내 차지였을까. 지박 씨가 “프로젝트 하나 더 할래?”라며 마치 선심 쓰듯 물었을 때 나는 왜 거절하지 못했을까. 이미 그때 나는 누리와 함께 석사생 두 명을 데리고 ‘진로 미결정 시기 연장이 취업 의욕 감소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고용노동부 발주 프로젝트 하나를 돌리고 있었다. 귀국 유학생 프로젝트까지 맡으면 내 졸업 논문에 쓸 시간은 사라질 게 뻔했다. 하긴, 이런 생각도 지금에야 하는 것이다. 그때는 졸업 논문을 걱정할 여유조차 없었다. 귀국 유학생을 모집할 궁리로 머리가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귀국 유학생은 어디에나 있었지만, 막상 연구 대상으로 찾으려면 돌고 돌아 먼 길을 가야 했다. 예전 같으면, 각 대학 특례생 모임에 나가서 설문 한 번 해달라고 부탁하면 쉬울 일이었다. 그사이 세상은 훨씬 어려워졌다. 하필 내가 대학원에 들어올 때쯤 인간에 관한 모든 연구는 기관생명윤리위원회의 승인을 거치도록 바뀌었다. 사람 세포를 떼어내거나 체액을 채취하는 것뿐만 아니라 단순한 사회과학 설문 하나에도 윤리가 필요했다. 위원회는 연구의 각 단계에서 연구 참여자들의 동의·참여·철회를 보장하였는가, 연구대상자로 선정된 과정과 이유를 밝혔는가, 연구대상자는 어떻게 선정하였는가 따위를 아주 꼼꼼히 따졌다. 결국 기관생명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모집 공고문을 서울 시내 다섯 개 대학 신입생 대상 교양과목 대형 강의실에 붙이고 누군가 설문에 참여해 주기를 기다리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공고문에 문화상품권 3장을 미끼로 던져 두었지만 몇 명이나 참여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공고문에는 조금이라도 편하게 설문 페이지에 접속할 수 있도록 QR코드도 표시해 두었다. 설문지를 붙이던 날, 이런 사정을 전혀 알 필요가 없으신 지박 씨가 QR코드를 프린트해 가는 우릴 보고 물었다.
    “수연 씨, 설문에 QR코드가 왜 필요한가?”
    “아, 이거요?”
    나는 그의 핸드폰을 빼앗아 사진 앱으로 들어갔다. QR코드를 찍자 그의 갤럭시에서 삼성 인터넷 브라우저가 열리며 내가 작성한 구글 서베이 폼이 떴다. 지박 씨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밀레니얼들은 다르구먼.”
    저기요. 저는 밀레니얼 아니고 엄연한 Z세대 첫물이고요! 라는 말이 입술 바로 안쪽까지 치고 나왔다. 나는 별말 없이 지박 씨의 눈 바로 아래 광대 근처를 슬쩍 훑어보며 “아이고 늦었네”라고 외치고는 단발머리가 뺨을 때릴 정도로 세차게 고개를 숙인 후, 연구실을 박차고 나왔다.
    제시카는 설문에 가장 먼저 응했고, 정확히 우리가 찾는 인터뷰이였다. 그녀는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6년간 중등교육 과정을 거쳤으며,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사태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2021년 봄, 대학에 입학했다. 가장 먼저 만나 보고 싶었으나, 날짜를 조정하다 보니 인터뷰 순서로는 여섯 번째가 잡혔다. 제시카와 약속한 날, 나는 누리와 석사 보조원 둘을 데리고 진짜루 탕수육 세트에 짬뽕 하나를 추가해 연구실 회의 탁자에서 점심을 해치웠다. 양치를 마치고 자리에 돌아와 칫솔을 자외선 살균기에 넣자마자 노크 소리가 났다. 핸드폰 시계를 확인해 보니 12시 57분. 약속 시간보다 3분이 일렀다.
    “예, 들어오세요.”
    손열음과 김새벽을 섞어 놓은 듯한 인상의 여자 아이가 호기심이 가득 찬 고양이 같은 눈을 하고는 문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녀는 각자의 모니터에 눈을 고정하고 있는 다른 실원들을 지나쳐 곧바로 내게 다가왔다. 자신과 눈을 마주친 유일한 사람이 나여서일 것이다. 옅은 단차로 스트라이프 문양을 짜 넣은 자카드 패브릭 소재의 원피스에는 벨트가 달려 이십대 초반의 특권인 군살 없는 허리 라인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발목 위로 살짝 올라온 갈색 첼시 부츠는 대체 어디 걸까? 그녀는 마치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한쪽 입 꼬리에만 웃음기를 머금더니 올라간 입 꼬리의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며 “안녕하세요”라고 내게 인사했다. 우린 연구실 한복판에 있는 회의 탁자 양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가 앉은 자리 바로 왼편에 누리가 먹은 짬뽕 그릇 모양으로 원형의 주황색 국물 자국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팔에 고추기름 섞인 국물이 묻을까 싶어 냉큼 물티슈를 가져다 탁자 위를 훔쳤다.
    “인터뷰 하러 오라고 해서 왔는데 여기 맞나요?”
    “예, 여기 맞아요. 제시카 챙 씨 맞으시죠?”
    제시카는 잠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는 본격적으로 질문을 던지기 전에 차근차근 우리 연구의 목적을 설명했다. 귀국 유학생들이 대학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목적이라고. 그 결과는 귀국 유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 제안의 근거가 될 거라고 설명했다. 제시카의 볼은 아직 젖살이 통통하게 올라 어린아이 같았지만, 두 눈은 쌍꺼풀이 없고 속눈썹이 길어 속이 깊어 보이기도 했다. 차근차근 설문의 내용을 되짚으며 좀 더 자세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해외 유학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학교에 친구는 많았나요? 해외에서 유학할 때 외국인으로서 차별을 받은 경험은 없나요? 처음 유학을 하러 갔을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기억은 뭔가요? 유학 시절 미국에서 받은 교육이 한국에서 받았던 교육과 다르다고 느낀 점이 있나요? 미국에서 살 때 자신의 국가 정체성을 어느 나라로 생각했나요? 귀국을 결심한 동기는 뭔가요? 귀국하기 전에 한국에서 학업을 이어 가기 위한 준비를 했나요? 기간은요? 그 기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나요? 귀국 후 한국 대학의 교육이 미국의 중등교육과 다르다고 느낀 점이 있나요? 대학 생활 중 가장 불편한 점은 뭔가요? 귀국 후에 대학 생활을 하면서 학우들의 배타적인 시선을 느낀 적이 있나요? 가장 큰 벽을 느낀 때는 언제인가요?
    제시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국에 있는 부모 집을 떠났다고 대답했다. 영어 때문이었고, 1990년도 초에 미국으로 이민 간 이모네 집에 얹혀살며 중고등학교 6년을 보냈다. 유학 초기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집에서는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 사촌들과 어울리느라 힘들었고, 학교에서는 투명인간처럼 숨어 지내느라 갑갑했다.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누군가 자신에게 영어로 말을 거는 게 두려웠다. “모두가 내게 화를 내는 것만 같았어요.” 그 애는 첫 학기에는 한동안 학교도 가지 않고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TV만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며칠 TV만 보고 나니 학교에서 아이들이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 호의적인지 적대적인지는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땐 미국에 처음 갔을 때보다 적응이 아주 많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그녀가 단어 하나를 말할 때마다 입 꼬리와 광대 아래 근육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며 각자의 견해를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가끔 영어밖에 생각 안 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영어로 말하면, 근데 사람들은 저가 프리텐셔스하다고 생각해요.” 귀국 유학생 특유의 언어 습관이 가끔 튀어나왔고, 드물게 영어를 섞어 쓰기도 했지만, 적어도 지오디의 박준형이나 래퍼 제시보다는 훨씬 능숙하게 말했다. “일부러 영어를 섞어 쓰는 애들도 있어요. 발음도 이상하게 하고요. 일부러 한국말이 어눌한 척하는 교포 출신 연예인들이 꽤 있을걸요?” 제시카는 내 눈을 보며 얘기하다가도 뭔가 적절한 표현이나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면 잠시 오른쪽 머리 위에 뜬 가상의 물음표를 응시하는 듯한 포즈를 짓곤 했다. 제시카가 전에 인터뷰를 하던 보통의 귀국 유학생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질문을 던지기 전까지는.
    “귀국 후에 대학 생활을 하면서 학우나 동년배들의 배타적인 시선을 느낀 적이 있나요?”
    질문을 들은 제시카의 표정이 서서히 변했다. 두 눈을 내 미간에 고정한 채 안 그래도 포동포동한 두 볼을 부풀리더니, 마치 웹툰 작가가 그린 문어 주둥이처럼 입을 오므렸다. 볼이 점점 더 빵빵해져서 조금만 더 부풀렸다가는 ‘뿌우’ 하는 소리가 날 것만 같을 때쯤 제시카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사람이 다 차이가 있어요.”
    “그럼요. 제시카 씨의 경험만 말해 주시면 돼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귀국 유학생이 빅틈인 것처럼 얘기하잖아요. 근데, 제 주변만 봐도 다 그런 건 절대 아니거든요. 네벌. 저만 해도 중학교 때 건너가서 한국어도 다 할 줄 알고 한국 친구도 많아요. 사람들이 자꾸 우리를 피해자로 만들려는 것 같아요.”
    “피해자로 만들다니요. 저희는 그저 알아보려는 것뿐인걸요.”
    “저는 한국에 다시 온 유학생들 너무 싫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익명게시판에 떠도는 글 몇 개만 보고 귀국 유학생을 정말로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해도 되나요?”
    제시카는 목소리의 톤을 높이지도, 감정을 격하게 섞어 말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방 안을 잔뜩 긴장시키기에 충분한 적의가 드러났다. 언젠가부터 누리와 석사 아이들의 키보드 소리가 사라졌다.
    “그런데, 저희가 돌린 설문을 보면 90퍼센트에 가까운 귀국 유학생들이 그런 경험이 있다고 답했어요. 한 학생은 수업 때 같은 조였던 사람이 ‘우리는 수능 공부 죽어라 했는데, 특례는 그냥 지들끼리 시험 보고 들어왔다며?’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도 있대요.”
    나는 누리가 귀에 꽂고 있던 에어팟 프로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껐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고학력 미어캣 세 마리가 나의 인터뷰에 귀를 바짝 기울이고 있었다. 제시카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럼, 제시카 씨는 개인적인 경험은 없다는 거죠?”
    “그런 적은 있어요. 예를 들면 친구들끼리 막 술자리에서 수능 등급 얘기를 하다가 ‘아, 제시카는 재외 특례지’ 하면서 ‘넌 모르겠다’라고 말한다든지 하는 경우요.”
    “배타적이라고 느꼈어요?”
    “아뇨. 저는 그게 배타적이라고 생각 안 해요. 사실이잖아요. 저는 재외 특례고, 걔들은 수시나 정시고.”
    “제가 보기엔 친구들의 행동은 충분히 배타적인데요?”
    “왜요? 제가 배타적으로 안 느꼈다고 말하는데도요?”
    “친구들이 제시카는 자신들과 다르다는 걸 일부러 강조했잖아요.”
    어째서인지 나는 그 애를 이기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너는 배척당했다. 너는 그들이 배타적이라고 느끼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 아이들은 너를 배척했다, 라고 제시카를 설득하려 했다.
    “그럼 있었다고 치고, 제가 배타적이라고 느끼지는 않았다고 꼭 써주세요.”
    흥분한 기색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차분한 태도는 사라졌다. 아주 작게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손등으로 콧방울을 재빨리 훔치더니 나를 보고 말했다.
    “그런데요, 만약에 유학생이 배척당한다는 결과가 나오면, 저한텐 무슨 도움이 되나요?”
    나는 이번 연구의 서론을 미리 써보는 심정으로 답했다.
    “연구라는 것이 꼭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돕거나 바로 뭔가를 실행하기 위해 하는 건 아녜요. 처음에 얘기했다시피 연구가 끝나면 보고서에 정책 제안을 넣기는 해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귀국 유학생들을 한국 사회에 안전하게 편입시킬지 등에 대한 제안이죠. 지금 단계에서는 아직 조사 중이니까요. 아직 진찰 단계인 셈이죠. 앞으로 진찰 결과를 모아서 진단을 내리고, 그 진단에 맞게 처방을 해야죠.”
    제시카의 눈빛은 떨리면서도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러니까, 결국 제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네요.”
    나는 어쩌면 제시카가 우리가 보낸 이메일에 가장 빨리 답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뒤에 남은 질문에는 냉기를 품은 단답이 이어졌다. 제시카가 문화상품권 3장을 받아들고 연구실에서 나가자 누리가 고개를 돌리며 내게 말했다.
    “언니 현타왔죠?”
    대답을 하지 않자 누리가 덧붙였다.
    “이상한 애네. 뭐라는 거야 정말. 아니 인터뷰를 하기 싫으면 하지 말든지.”
    역시 다 듣고 있었구나. 나는 누리에게 애매모호한 손짓만을 남기고 아무 말 없이 책상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글씨를 보니 누리가 받아 적어 놓은 산학협력단의 비용 처리 관련 메모였다. ‘7월 25일 회의비 영수증에 올린 회의 참석자 중 사회학과 김관석 교수는 당일 학회 참석으로 서울에 없었음’. 있지도 않은 회의를 꾸미고 가상의 회의 참석자 명단을 작성해 내다 보니 간혹 이런 일이 생겼다. 하긴 이런 걸 산학에서 걸러 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근데, 다른 지도교수들은 이런 자잘한 일은 석사에게 시킨다던데, 왜 우리 교수만 계속 나에게 시킬까?
    제시카가 아니더라도 이미 내 인생에는 수많은 현타가 쌓여 있었다. 얼마 전에는 알트펠트관 옆에 있는 교수 식당에서 한방을 맞았다. 학부 동기로 문헌정보과 박사 과정에 있는 수진이와 밥을 먹던 중 그녀가 한 달에 연구비로 160만 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았다. 수진은 “아침 9시에 출근하고 밤 9시 10시가 되어야 퇴근하고, 추석도 설도 없이 사는데 한 달에 160만 원이 웬 말이냐”라고 말했다. 수진이 말한 금액이 지나치게 합리적이고 과연 있을 법해서 문제였다. 수진이 ‘250만 원이 웬 말이냐’라고 했다면 나는 그녀가 자랑을 한다거나 뻥을 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100만 원이라고 했다면 내 처지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160만 원이라는 그럴듯하면서도 부러워하기에 충분한, 그러나 부러워한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뭣한 그 돈이 미묘한 지점을 때렸다. 나는 프로젝트를 하나 돌릴 때면 연구비로 한 달에 70만 원을 받았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두 개 한다고 해서 내가 받는 돈이 140만 원이 되지는 않았다. 문과라 그런지 계산이 이상했다. 프로젝트 두 개를 돌리면 90만 원을 받았다. 160만 원이라니. 그런 돈은 대학원에서는 단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문득 160만 원이면 최저 시급보다도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면 거의 직장인 아닌가? 대박. 그 돈이면 부모님께 철지난 용돈을 구걸하는 짓도 그만둘 수 있을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연구실에 돌아와서는 누리에게 ‘방금 밥 먹다가 내 동기 월급 듣고 현타왔다’며 수진의 얘기를 늘어놨다.
    “걔는 160만 원 받는대. 난 여태껏 90만 원 넘게 받아 본 적이 없는데.”
    누리가 차갑게 말했다.
    “언니, 현타는 ‘현자 타임’의 준말이고요. 남자애들이 자위하고 성욕이 사라진 상태를 말할 때 쓰는 말이에요. 현실 타격이 아니라고요.”
    나는 이미 여기저기서 자주 썼는데 큰일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괜찮아요. 많은 사람이 그렇게들 써요. 유재석도 썼고.”
    핸드폰으로 ‘유재석 현타’를 찾아보니 그가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현타왔다”고 말하는 장면을 캡처한 이미지가 떴다.
    “사실 저도 가끔 써요.”
    아니, 자기도 쓰면서 왜 지적질이야,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누리가 물었다.
    “근데 언니 90만 원이나 받아요? 대박.”
    이 프로젝트의 가격제안서를 쓰면서도 현타를 맞았다. 지금은 박사님이 된 선배 오빠가 3년 전 인수인계 때 준 노트를 참고했다. ‘가격제안서를 쓸 때는 공고 부처 홈페이지에서 연구 용역비 산출 기준을 꼭 참고할 것’. 교육부 지침에 따르면 보조연구원의 인건비는 하루 8시간 한 달 22일 근로, 용역 참여율 50%를 기준으로 172만 2,116원이었다. 내가 받는 돈은 한 달에 70만 원인데, 국가가 용역 연구 하나에 참여할 때 보장해 주는 인건비는 172만 원이었구나. 물론 몰랐던 건 아니다. 오래전 허벅지에 들었던 멍, 이제는 희미하게 넓게 퍼졌지만 분명히 남은 그 자국을 확인하는 심정이랄까? 연구 계획서에 사례 연구 대상자의 조건을 적으면서는 이런 생각을 했다. 청소년기에 해외에서 3년 이상을 보낸 20~27세의 남자 10명 여자 10명을 모으는 데만도 한두 주가 흐르겠구나. 한 사람 당 2시간씩 인터뷰를 하는 데만도 40시간이 들어가겠구나. 각 인터뷰를 풀어 적는 데는 또 그 3배의 시간이 걸리겠구나. 개방형 답변에서 공통으로 나온 답변을 묶어내고 분류하고 통계를 내는 데는 또 그 배의 시간이 들겠지? 이 모든 노동은 온전히 누리와 나 그리고 우리 석사 친구들의 몫이겠구나.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 실 노예들의 워라밸은 결국 교육부의 과제비 3800만 원에 멱살이 잡힌 채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인적 없는 길목의 하수구에 처박혀 변사체로 발견될 게 뻔했다. 아니, 근데, 씨발, 진짜, 아니, 근데, 진짜, 씨발. 트위터에 떠도는 한국인의 주문을 한참 외우고 나서야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다. 20만 원이라도 더 받는 게 어디냐, 나중에 어디 연구원에라도 들어가면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쓸 수 있잖아, 라는 말로 나를 설득했다.

 

    교수실에 들어서자 지박 씨가 아무 말도 없이 하얀 봉투를 건넸다.
    “어제 줬어야 하는데 지금 생각이 났네.”
    “교수님, 저…….”
    “어어, 읽고 있어요. 읽고 있어.”
    지박 씨가 또 손등을 까딱거렸다. 나는 논문의 논자도 꺼내지 않았는데 손등을 까딱거렸다. 연구실로 돌아와 봉투를 열었다. 봉투 안에는 지금 막 카드단말기에서 구워낸 듯 빳빳한 영수증이 들어 있었다. 대체 왜 영수증을 하얀 봉투에 넣어서 주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단 한 번도 물어본 적은 없다. 어쩌면 내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어서 묻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영수증을 서류함에 던져 놓고 제시카의 인터뷰 녹취 파일을 열었다.
    “인터뷰하러 오라고 해서 왔는데 여기 맞나요?”
    “예, 여기 맞아요. 제시카 챙 씨 맞으시죠?”
    한 달 반 만에 다시 듣는 목소리였다. 아이폰 앱으로 녹음한 제시카의 목소리는 내 기억 속의 그것과 미묘하게 달랐다. 한컴 오피스를 켜고 제시카가 하는 말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14살 때 미국에 있는 이모네 집으로 갔어요.”
    만났을 때는 의식하지 못했던 작은 기침소리가 들렸다. 그건 자신도 모르게 나와서 하는 기침이 아니라 그저 한 번 거칠게 숨을 내뿜어 보는 소리였다. 녹취에는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많은 얘기가 들어 있었다. 제시카가 14살에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있는 이모네 집으로 유학을 갔다는 것까지는 기억이 났지만, 그 이모가 살던 레이크 뷰라는 동네가 시카고 최고의 부촌이라는 말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레이크 뷰의 동쪽에는 미시간 호변을 따라 러닝 코스가 완벽하게 조성되어 있었다는 말도. 제시카네 이모 집에 화장실이 다섯 개 있고 사설 보안업체가 24시간 경비를 서는 타운하우스라는 얘기도 낯설었다. “처음에는 엄청나게 작아졌어요. 집이 어마어마하게 커보였거든요. 그때부터 남의 눈치를 좀 보게 된 것 같아요.” 제시카 챙이 장 씨라는 것 역시 처음 듣는 얘기였다. “영어 이름은 이모가 지었어요. 처음에는 클레어로 할까 에밀리로 할까 이모랑 이모부랑 얘기했어요. 근데 결국 이모가 그런 건 다 너무 예쁜 백인 여자애나 쓰는 이름이라며 제시카로 했어요. 그래서 저가 제시카가 됐어요.” 시카고의 한인사회에서 당시에 제시카라는 이름이 유행했고 제시카의 친구만 해도 제시카 킴, 제시카 팍, 제시카 리가 있다는 얘기도 낯설었다. 재생과 멈춤을 반복하며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듣고 받아 적었다. 낯설지 않은 말이 나왔다.
    “그런데요, 만약에 유학생이 배척당한다는 결과가 나오면, 저한텐 무슨 도움이 되나요?”
    이 말을 할 때의 목소리에 처음 기침을 하던 아이의 긴장감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그 부분을 돌려서 듣고 또 들었다. 그녀가 뱉은 언어의 의미가 사라지고 그녀의 목소리가 품은 다른 뜻이 보였다. 너는 나를 위하지 않는다. 너는 나의 말을 듣고 있지 않다. 너의 연구는 의미가 없다. 너는 내게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재생 버튼을 다시 눌렀다.
    “그러니까, 결국 제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네요.”
    나는 아프지 않다. 너는 나를 진단할 권리가 없다. 나는 환자가 아니고, 너는 의사가 아니다. 안면에 갑작스러운 열기가 느껴졌다. 이어폰을 귀에서 빼고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히 눈이 마주치는 사람은 없었다. 당장 제시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항변이라도 하고 싶었다.
    당신은 자신의 연구에 대한 비판에 개방적이고, 자신의 지식에 대하여 끊임없이 회의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은 자신의 주장을 반박하는 설득력 있는 증거를 발견하면, 자신의 오류를 수정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까? 별 생각 없이 읽었던 연구 윤리강령의 조문들이 무게를 가진 질문이 되어 나를 내리눌렀다. 방금 지박 씨에게서 받아온 영수증을 다시 꺼냈다. 10월 8일 여수실비집, 하모 샤부샤부 4, 우럭 젓국 1, 기타 항목 12, 총액 22만 7,000원. 무슨 실비집이 그렇게 비싼지. 이 집에만 다녀왔다 하면 이삼십만 원짜리 영수증을 던져 주는 통에 어지간히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나는 서랍을 열고 지난 중간 정산 이후 쌓인 이번 프로젝트의 영수증을 모두 꺼냈다. 9월 21일 소격동 큰기와집 31만 원. 9월 27일 자하문 CU 3만 2,000원. 9월 30일 교보문고 17만 8,000원. 9월 30일 여수실비집 24만 6,000원. 데스크 서랍 가장 아래 칸에 쌓아 둔 설문지에서 제시카의 번호를 찾았다. 연구실 밖으로 나가 통화하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가 다시 앉았다. 요새 친구들은 다짜고짜 전화를 거는 걸 불편해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나는 내가 가진 옷 중 가장 예쁜 옷을 골랐다. 옷장엔 사두고 입지 않아 낡아 가는 옷들이 가득했다. 목이 심하게 파인 드레스, 등이 훤히 보이는 블라우스는 대체 왜 산 걸까? 구걸해 받은 용돈으로 분노를 삭이기 위해 질러버린 시발쇼핑의 무덤이 거기 있었다. 이것은 감정의 생존비용이라며 나를 위로하고 옷을 골랐다. 데님 팬츠에 포켓이 없는 박스스타일의 화이트 셔츠를 입고, 얼마 전 6개월 할부로 산 마가렛호웰 트렌치코트를 걸치니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스니커즈를 꺼냈다가 너무 어려 보일까 싶어 클래시컬한 플랫슈즈로 갈아 신었다. 우리는 경복궁역에서 만났다. 멀리서 예의 고양이 같은 표정을 하고 두리번거리는 제시카가 보였다. 그 애는 발목까지 오는 데님 팬츠에 스웨터 한 장을 달랑 걸치고 있었는데 마른 어깨의 실루엣이 살며시 드러나 무척 예뻤다.
    “선생님, 코트가 너무 예뻐요.”
    오랜만에 들어 보는 칭찬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린 한 달 반 전의 긴장감 따윈 기억에 남지도 않은 것마냥 재잘거렸다. 남들이 우리 둘이 걷는 모습을 본다고 상상하자 기분이 더 좋아졌다. 두 명의 여자가 멋진 옷을 차려입고 힙한 동네를 두리번거리는 평화로운 일상으로 보일 터였다. 일부러 길을 건너 효자로 경복궁 옆 돌담길 쪽으로 궁벽을 따라 올라갔다. 평일 저녁의 한산한 거리 뒤로 우뚝 솟은 북악산 봉우리가 보였고, 인왕산 쪽에서 물들기 시작한 석양이 우리 수다의 멜로디를 품은 반주처럼 깔렸다.
    “제시카 그거 알아요? 이 동네를 궁 서쪽이라 서촌이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양반들이 살았대요. 조선 시대의 귀족 동네인 셈이죠. 궁 안에는 왕이 살고 궁 가장 가까운 곳에 귀족이 살고.”
    “푸훗.”
    별 뜻 없이 던진 말에 제시카가 웃기 시작했다. 왜 웃는지 묻자 제시카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저도 귀족이에요.”
    “예? 귀족이요?”
    내가 놀라며 대답했다.
    “혹시 대니얼리스트라고 아세요?”
    대니얼리스트는 슈퍼 아이돌 대니 박의 팬클럽 이름이었다. 얼마 전 대니 박의 생일에 대니얼리스트들이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2억짜리 광고를 건 게 크게 화제가 됐었다.
    “저 얼마 전에 귀족으로 올라갔어요. 거기도 서열이 있거든요. 대니 님은 왕이고, 운영진이 왕족이고요. 저는 그 바로 아래 귀족이에요.”
    뜬금없는 고백에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있자, 제시카가 물었다.
    “그런데 우리 어디 가요?”
    “음, 내가 제시카에게 뭔가 해줄 수 있는 곳?”
    보안여관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 대각선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자 멀리 한옥 대문 옆에 서 있는 여수실비집의 간판이 보였다.
    “하모가 뭔지 알아요?”
    “하모요? 니 그래 하모 안 된다 할 때의 하모요?”
    “푸훗, 저도 잘은 모르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무섭게 생긴 바닷장어인데 비싼가 봐요. 우리 그거 먹어요.”
    식당에 들어서서 이름을 말하자 오십 중반으로 보이는 이모님이 우리를 방으로 안내했다. 한지 창호로 칸을 막은 방에는 6인용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었고, 내가 왼편에 제시카가 오른편에 마주 보고 앉았다. 메뉴판을 살피고 있자 이모님이 기본 찬을 들고 우리 방의 문을 열었다.
    “이제 하모는 끝물이고, 새조개는 아직 안 올라왔는데.”
    나는 이모님의 솔직함에 감사하며 메뉴판을 살폈다. 하모와 새조개가 제일 비쌌다.
    “괜찮아요. 하모 주세요.”
    “너무 크면 가시가 굵어서 입에 찔리는데.”
    “괜찮아요. 주세요.”
    상이 차려지고 이모님이 먹는 방법을 설명해 주자 제시카의 눈이 다시 호기심 넘치는 고양이의 것으로 변했다. 어쩜 그렇게 피부가 고무처럼 쫀득해 보이는지 나는 그 애의 뺨을 꼬집어 보고 싶었다. 이모님이 덩치가 상당해 보이는 손질한 갯장어를 끓는 육수에 넣자 갯장어의 하얀 속살이 꽃처럼 피었다. 이모님은 깻잎 두 장을 육수에 담그더니 휘 휘 두 번 크게 젓고는 나와 제시카 앞에 있는 개인용 접시에 능숙하게 한 장씩 담아 주었다. 육수에 숨을 죽인 부추를 그 위에 얹고 하모를 꺼내 올리고 빨간 갈치속젓을 찍어 손톱만큼씩 얹었다. 우리는 그 쌈을 입에 넣고 놀란 눈이 되어 서로를 바라봤다. 제시카는 거의 울 듯한 표정이 되었다.
    “언니, 저 이렇게 맛있는 거 태어나서 처음 먹어 봐요. 대박. 이거 완전 대박이에요.”
    “저도요. 저도 이건 처음 먹어 봐요. 진짜 대박이다.”
    우리는 소주와 맥주를 한 병씩 시켰다. 나는 입안을 가득 채우는 기쁨과 함께 자기 혼자 이런 걸 먹으러 다니는 지박 씨가 잠시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술잔을 비우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제시카가 물었다.
    “언니, 왜요?”
    비어 있는 제시카의 술잔에 소맥을 따라 주고 우리는 건배를 했다. 유리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지박 씨 생각을 떨쳐낸 내 마음처럼 맑게 울렸다.
    “그날 제시카가 얘기한 걸 다시 듣다 보니 너무 미안했어요.”
    술기운이 올랐는지 제시카의 볼이 살짝 덜 익은 자두만큼 달아올라 있었다.
    “저도요. 저도 그날 그렇게 말하고 예의가 참 없었다고 생각했어요. 죄송해요.”
    “아녜요. 제시카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요. 그 말이 다 맞는데.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제시카 말이 다 맞아요.”
    “그래도요. 언니도 그냥 일을 하는 건데, 일은 잘못이 아니잖아요.”
    언니도 그냥 일을 하는 것, 이라는 말에 콧날이 잠시 시큰거렸다. 술에 취했나? 하긴 소맥을 마셔 본 지도 꽤 오래 지났으니 취기를 제대로 느끼지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거 알아요? 그 인터뷰가 원래는 제 일이 아녜요. 내 일은 원래 공부. 공부를 하는 건데요, 사실 제시카처럼 공부를 하는 게 제 일이거든요.”
    소맥으로 마시다 보니 맥주 두 병을 비우고도 소주가 남았다. 우리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맥주를 더 시켰다. 이모님에게 맥주와 소주는 기타 항목으로 찍어 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모님은 눈을 찡긋하며, 걱정 말라는 손짓을 던졌다. 역시 정부종합청사 코앞에 있는 식당의 이모님답다는 생각을 했다. 여수실비집에서 한참을 떠들고 나오며, 산학협력단에서 준 법인카드를 꺼내 들었다. 술기운 탓인지 법인카드를 휘두르는 일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 기타 항목의 금액이 3만 원인 것을 확인했다. 이 영수증을 처리하려면 4명짜리 회의록을 꾸며서 작성해야겠지만, 그게 뭐 힘든 일은 아니니까.
    “이게 지금 내가 당장 제시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랄까?”
    돌아가는 길은 이미 어둑했다. 서촌의 거리를 밝히는 가로등 불빛을 에워싸고, 오랜만에 만난 낭만이 안개처럼 서렸다. 우리는 올 때처럼 일부러 횡단보도를 건너 경복궁 돌담길 쪽으로 걸었다.
    “와, 엄청 높아. 올 때는 몰랐는데 담이 엄청 높아요. 사람 두 개는 되겠어요.”
    제시카가 술기운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거의 소리를 치듯 말했다.
    “그 담은 궁의 담이라 궁성이라고 해요.”
    인도 안쪽으로 걷던 제시카가 궁성의 돌을 손으로 쓰다듬다 문득 생각난 스무 살 인생의 지혜라도 전하는 말투로 물었다.
    “언니, 근데 그거 알아요?”
    “뭘요?”
    제시카의 한국어가 두 달 전보다 한층 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술기운을 빌려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도 몰랐다. 나도 술을 마시면 영어를 꽤 하는 편이니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거.”
    “그렇죠. 끝이 없죠.”
    제시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도 모르면서 일단 맞장구를 쳤다.
    “제가 진짜 귀족이 너무 되고 싶었거든요. 근데, 귀족이 되니까 왕족이 되고 싶어요. 근데 제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왕족은 될 수가 없어요.”
    “네?”
    “대니 박 원조 팬클럽만 왕족 자격이 있거든요. 공카, 그니까 공식 카페를 공카라고 해요. 공카로 통합되기 전에는 다음이나 네이버에 작은 팬클럽이 많이 있었어요. 근데 공카로 통합된 후에 그 작은 팬클럽에서 운영진이었던 사람들만 왕족을 했어요. 그 사람들만 왕족 자격이 있대요. 귀족도 평민이랑 다를 게 없어서 팬 미팅 추첨에 당첨되려고 앨범을 백 장씩 사요. 그런데 왕족은 팬 미팅 준비 위원회라 걱정도 안 해요. 왕족의 자격은 그럼 누가 정했느냐! 왕족이 정했어요. 이 담장도 진짜 높지만, 현대 왕족의 담장은 아예 하늘에 닿아 있어요.”
    나는 진지하게 이런 말을 하는 제시카가 귀여워 웃음이 터지려 했지만 애써 참았다.
    “하- 결국 인생은 정말 클래스 스트러글, 그 뭣이냐, 계급 싸움의 연속이구나, 요새 정말 뼈저리게 느껴요.”
    제시카는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며 인생의 허무를 달래는 표정을 짓더니 크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런 게 진짜 배척이고 배타 아닌가요?”
    나는 제시카를 경복궁역까지 데려다주고 광화문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제시카는 집이 버티고개 근처라 약수역에서 내리면 걸어서도 갈 수 있다고 말하며 개찰구를 통과했다.

 

    제시카의 소식을 다시 들은 건 해가 바뀌고 나서였다. 그사이 우리 연구실은 귀국 유학생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었고, 또 다른 프로젝트를 따냈다. 영수증은 끊이지 않았고, 나의 통장에는 매달 90만 원, 가끔 70만 원이 찍혔다. 겨울인데도 알트펠트관 앞 언덕을 오를 땐 등줄기에 땀이 맺혔다. 비 오는 날 이 언덕을 오르다가 밑창이 얇은 가죽 플립플롭이 벗겨져 무릎이 깨질 뻔한 적이 있을 정도의 경사였다. 이 언덕길을 오르내린 지 벌써 11년째. 매일 이번 학기엔 반드시 차를 사고야 말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아직 운전면허도 못 딴 게 바로 나년이다. 그런데 대체 왜 모든 학교는 산비탈에 지은 걸까? 중학교도 산비탈, 고등학교도 산비탈, 대학도 그리고 같은 대학에 있는 대학원도 당연히 산비탈. 내가 들은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학교를 지을 만큼 넓고 싼 땅을 찾다 보니 산비탈뿐이었다는 누군가의 설명이었다. 산비탈에 건물을 짓자면 토사가 흘러내리지 않게 옹벽을 세워야 하는 법이고, 옹벽을 세우면 누군가는 옹벽이 보이는 방에서 생활해야 한다. 옹벽 바로 옆 사회과학대학 건물에 있는 우리 연구실은 한 층에 한 실밖에 없는 희귀한 옹벽뷰로 유명했다. 심지어 옹벽이 실의 바깥쪽 창과 너무도 가까워서 옥외 암막 커튼이나 다름없었다.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아 장마철 습기를 1년 내내 머금고 사는 줄눈 테라조 바닥에선 특유의 비에 젖은 시멘트 냄새가 올라와 우리 실을 채우고 있었다. 그 향기 속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우리 실 대학원생들은 서로 비슷하게 불행했지만, 그 와중에도 조금 더 불행한 사람과 조금 덜 불행한 사람으로 나뉘었다. 오늘은 어쩐지 아침부터 지박 씨가 영수증을 가져가라고 부를 것 같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걸음을 재촉했다. 문 앞에서 사람의 품위를 잃지 않을 선까지 호흡을 가다듬고 호쾌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다행히 누리가 먼저 와 있었다.
    “지박 씨는?”
    누리는 내 얘기를 듣지 못한 듯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나는 에어팟 프로를 누리의 귀에서 빼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누르기 전 물티슈 한 장을 꺼내 키보드를 드르륵드르륵 하고 닦았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누리가 고개를 돌렸다.
    “아, 언니 왔어요?”
    “응, 지박 씨 전화 왔어?”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누리에게 눈짓을 주고 내가 받았다. 전화를 받기 전에 도착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연 씨, 잠깐 내 방으로 좀 오지.”
    같은 층에서 불과 방 세 개 너머에 있는 교수실 문을 노크하려는데 지박 씨가 먼저 문을 열었다. 내가 걸어오는 시간을 계산이라도 한 듯 정확하게 마주쳤다.
    “어 그래. 딱 만났네.”
    학부 수업 때 지박 씨는 정말 멋진 교수였다. 심리학의 이해 강의를 듣던 대학 2년차 때는 지박 씨가 인간 심리의 모든 걸 알고 있는 신처럼 보였다. 그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완벽한 문장을 말로 뱉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한 말을 그대로 받아 적기만 해도 한 학기에 단행본 서너 권을 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언제였더라, 학부 3학년 때쯤 한 수업에서 지박 씨는 말했다. “모든 순수과학의 기초가 이론물리학이듯 모든 사회과학의 원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기초는 심리학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어쩌면 그 한 마디에 반해 대학원 인생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멋져 보였던 사람이 이제는 옹기, 한여름 장독대 위에서 바싹 말라 유약 층이 꼴 보기 싫게 쩍쩍 갈라진 옹기처럼 보였다. 지박 씨가 내게 하얀 편지 봉투를 건넸다.
    “이거 좀 처리해 줘요.”
    나는 하서를 받아들 듯 두 손으로 하얀 봉투를 받았다.
    “저기요, 교수님 제가…….”
    지박 씨는 내 말을 자르고 뭔가 바쁜 일이 있는 것마냥 손사래를 크게 쳤다. 이 옹기 새끼가!
    “어어, 나중에요. 나중에.”
    후다닥. 지박 씨는 봉투를 건네고는 예의 그 쪽팔린 표정을 1초간 짓고, 계단을 향해 빠른 걸음을 젖혔다. 지박 씨 뒤에서 분노의 인사를 하고 연구실로 돌아왔다. 입구 정면에 나 있는 큰 창을 중심으로 네 개의 책상이 양쪽 벽을 바라보고 있는 다섯 평 남짓한 네모난 방. 이 방에서 6년을 보냈다. 창 앞에는 여섯 명이 앉을 수 있는 회의 탁자가 있지만, 그건 보통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식탁으로 쓰였다. 그나마 우리는 운 좋게 방이라도 따로 있지, 라며 또 나를 위로했다. 교수실 한쪽에 칸막이를 치고 사는 대학원생도 많으니까.
    자리에 앉아 하얀 봉투를 열었다. 2월 14일 20시 32분 포시즌스 호텔 중식당 유유안, 디너 코스 2인, 피노 누아 크림슨 하프보틀, 택스 포함 40만 7,000원. 나는 후다닥 뛰어가던 지박 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창피해하면 나는 대체 뭐가 되느냐고 묻고 싶었다. 영수증을 책상 위에 있던 서류철에 끼워 서랍에 넣었다. 40만 7,000원이면 13명인가? 아니, 14명이구나. 2년 전에 졸업해 지금은 지방대학교 교수로 있는 명국이 오빠는 영수증 처리를 참 잘했다. 내가 영수증 처리를 맡고 나자 산학 담당자가 “전에 하시던 분이 참 잘했는데”라고 말했을 정도다. ‘무슨 프로젝트든 제일 중요한 게 영수증 처리’라며 ‘메뉴 하나가 10만 원이든 20만 원이든 상관은 없고 인당 3만 원으로 인원수를 채워서 회의록만 잘 쓰면 된다’던 오빠의 말이 생각났다.
    “언니, 근데 뭐 왔던데.”
    누리가 에어팟 프로를 귀에서 빼며 말했다. 나도 에어팟 프로가 있다. 그걸 쓰면 바깥 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다. 나는 그 완벽한 차음이 주는 세계 속에서 안정보단 불안을 느꼈고, 그걸 견디지 못해 쓰지 않았다. 서류철 아래 놓인 우편물이 눈에 띄었다. 엽서 사이즈였다. 봉투 앞면을 살폈다.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어딘가의 주소와 함께 삐뚤빼뚤한 글씨의 ‘장서연’이라는 한글이 적혀 있었다. 봉투를 여니 깨알 같은 글씨가 적힌 엽서와 함께 사진 한 장이 툭 떨어졌다. 엽서 앞면에는 작은 폭포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나 빅토리아 폭포가 지닌 거대한 위용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언니. 서연이에요.”
    편지는 목소리를 알 수 없는 인사말로 시작됐다. 잠시 엽서를 내려 두고 아는 사람 중에 시카고에 사는 서연이가 있는지를 생각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서연이라고는 고등학교 동창인 최서연뿐이고, 최서연은 지난해에 결혼해 방이동에 신혼집을 꾸렸으니 시카고에서 편지를 보냈을 리가 없다. 책상 바닥에 떨어진 사진에 초점을 맞추고 나서야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제시카. 제시카 챙이구나. 영화배우 김새벽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을 섞은 듯한 외모로 처음 본 순간부터 나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제. 시. 카. 그 아이가 사진 속에서 셀카를 찍고 있었다. 인사말을 다시 읽었다. 그제야 삐뚤빼뚤한 글씨가 소리로 바뀌었다. 바람 새는 소리 없이 또렷하고, 노래하듯 맑은 목소리가 “안녕하세요, 언니”라며 다시 나를 불렀다.

 

    안녕하세요, 언니.
    서연이에요. 잘 지내시죠? 저는 지난 학기 말에 여기 시카고 근처 어바나 샴페인 대학에 입학 허가가 나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어요. 이제야 세계가 다시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가려나 봐요. 오기 전에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떠나느라 그럴 새가 없었어요. 지금 여기는 엄청 추워요. 온도는 서울보다 낮지 않은데, 바람이 매서워서 살이 잘려 나가는 것 같아요. 아직 코로나 19가 유행인데도, 여긴 막 사람들이 마스크도 벗고 다니고 그래요. 서울은 참 안전한 것 같았는데, 그게 조금 그리워요. 서울을 생각하면, 언니랑 걸었던 돌담길이 생각나요. 어릴 때 십 년 넘게 서울에 살았고, 소풍 때 경복궁에도 가봤는데, 그 길은 태어나서 처음 걸어 봤어요. 하모도 태어나서 처음 먹어 봤고요. 누군가에게 대니얼리스트 얘기를 한 것도 언니가 처음이에요. 제가 대니얼리스트인 걸 아는 사람은 아마도 언니뿐이에요. 엄마 아빠가 알면 제 카드를 뺏을 거예요. 사실 언니한테만 할 수 있는 자랑이 있어요. 지난주에 잭슨 폭포에 갔다가 대니 님을 만났어요. 잭슨 폭포를 구경하고 내려가는 길에 제 옆으로 웬 동양 남자애가 쓱 하고 지나쳐 올라갔는데, 너무 잘생긴 거 있죠. 그 뒤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여럿이 지나갔어요. 뭔가 기분이 이상해서 뒤를 돌아서 다시 보니 대니 님이더라고요. 잠깐 머리가 정지됐던 것 같아요. 몸이 저절로 움직였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대니 님을 따라 산을 다시 오르고 있었어요. 멀리서 보니 대니가 첫 번째 폭포의 포토 스팟에서 멈춘 게 보였어요. 빨리 따라가서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어요. 근데 웬 마스크를 쓴 한국 여자 둘이 나타나서 저를 가로막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방송 작가였나 봐요. 저한테 저기요, 지금 촬영 중인데 잠시 후에 올라가시면 안 될까요? 라고 한국어로 말했어요. 제가 한국 사람인 줄 알았나 봐요. 한국 사람에게 한국 사람이라고 하는데, 왜 갑자기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여튼 화가 조금 났어요.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뒤에서 따라오던 제 친구를 불렀어요. 같이 간 친구는 히스패닉 애였거든요. 걔한테 막 영어로 이 여자들이 대체 뭐라고 하는 거냐, 이거 동양인이라고 나만 막은 거 아니냐, 완전히 레이시즘 아니냐고 막 떠들었어요. 그랬더니 그 여자들이 ‘노 노. 노 레이시즘. 고고’ 했어요. 같이 보낸 사진을 잘 보면 뒤쪽에 대니 님이 찍혀 있어요. 아주 가까이는 가지 못했어요. 미국 사람도 가까이는 못 가게 막더라고요. 언니한테 너무 자랑하고 싶었어요.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제일 길게 얘기해 본 사람이 언니예요. 다른 사람이랑은 술 마신 적도 별로 없어요. 항상 언니를 기억해요. 제 자랑 읽어 줘서 고마워요. 이 편지가 잘 도착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제겐 충분히 좋은 소식일 거예요. 이렇게 옛날 메일을 보내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거든요. 다음에 꼭 다시 만나요.
– 2022년 2월 5일 장서연 드림

 

    나는 서연의 엽서를 읽고 또 읽고 한 다섯 번을 읽었다. 흥분한 채로 산을 내려와 엽서를 사는 서연을 떠올렸다. 일리노이 주 한적한 곳에 있는 주립공원의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는 서연, 그 서연의 옆을 지나치는 대니 박과 방송 스태프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그렸다. 자신을 막아서는 작가들에게 영어로 화를 내는 서연을 상상했다. 영어로는 뭐라고 했으려나? 서연의 삐뚤빼뚤한 손 글씨를 눈으로 따라가는 행위가 마치 주문을 외우는 일처럼 느껴졌다. 주문을 외다보니 지박 씨에게 ‘내 논문 좀 빨리 읽으라고. 이 새끼야’라고 외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되었다. 지도교수가 말이야, 지도는 안 하고 박사 연구생에게 영수증 처리나 시키고 말이야. 시계를 봤다. 지박 씨가 수업에서 돌아올 시간이 지났다. 벌떡 일어나자 누리가 다가와 내 팔을 잡았다.
    “뭐지? 이 결연함은?”
    누리가 쥐꼬리만 한 연구비와 에어팟 프로를 양 손에 움켜쥐고 겨우 지켜내던 불행의 균형은 내 졸업과 함께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내가 졸업하면, 누리의 차례니까.
    “나 지박 씨 사무실에 다녀올게. 리뷰 빨리 받고 논문 고쳐서 졸업해야지. 너는 딱 일 년만 하고 졸업해.”
    나는 누리의 손을 한 번 세게 쥐어 잡아 주고는 지박 씨 사무실로 향했다. 누리는 정말 딱 일 년만 하고 졸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와는 다르니까. 그새 사무실 문에 붙은 푯말이 ‘식사 중’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식사 중이라도 좋다고 생각했다. 귀로 밥을 먹는 건 아니니까.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박세회

작가소개 / 박세회

2019년 단편소설 「부자를 체험하는 비용」으로 《중앙일보》가 주최한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문장웹진 202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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