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것 외 1편

[신작시]

 

 

서로의 것

 

 

이원석

 

 

 

    우리는

 

    맞잡은 손을 바이트로 조이고
    구리관들이 촘촘히 자란 B1숲을 걷는다
    텅빈 관은 저음으로 운다 1구역에서 44구역까지
    푸른 녹이 자욱하다 이 길을 산책하고 싶다고
    넌 몇 번이나 그러고 싶다고 말했지

 

    우리가 서로를 떼어 놓고 싶을 땐
    자기 손목을 자르기로 하자 그러자
    난 쇠톱으로 천천히 자를 거야 과정을 모두 감각할 수 있게
    넌 도끼로 단번에 결별한다고 했지 하지만 그전에
    몇 번 더 조이면 우리 손목이 견디지 못하고 끊어지지 않을까
    그래도 불안하니까 한 번만 더 조이자 돌아갈 수 없게
    래칫 렌치1)를 돌리자 조인 손이 새파래진다
    이별이 오기 전에 갑작스레 찾아오는 결별의 표정은

 

    금속적이다
    견고한 시대에 조립한 장기는 유격이 없다
    내부에서 내부로 가는 파이프와 내부에서 외부로 가는 파이프
    외부에서 내부로 오는 파이프와 신주 체크밸브2)
    역류에 의한 내상을 막기 위해
    수압에 의해 한쪽으로만 개폐되는 방식으로 사랑했다

 

    금속상자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금속상자 속 상자
    돌고 있는 환풍기 쇠날개 사이로
    박절된 빛이 철제 선반을 반복해서 두드린다
    선반 위엔 교착된 손과 공구들이 맞물린 채로 녹슬어 있다
    우리가 팔을 떼어낸 건 확신이 있었던 자만
    정비가 있는 날이면 넌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흉부에서 떼어낸 회로를
    끝없이 분해하고 구간별로 나열하고
    다시 역순으로 조립하고 부품을 바꿔 끼고
    정형 행동3)을 하고 분해하며 기다렸다
    매번 똑같이 조립되지 않았다 조금씩 달라졌다

 

    숲에서 눈을 바꿔 가졌다
    네가 보는 것을 보고 싶어 이미 본 것도
    흉측할 텐데
    그래도

 

    렌즈의 가장자리를 따라
    볼트와 너트와 볼트와 너트가
    떨어진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부속이
    떨어져 나왔는지 알 수 없다

 

    수은은 신
    금속의 기적은 온도
    참을 수 없을 때 흐른다
    무너지듯 바닥에 첫발을 디딘다
    시작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구르는 거야 누구도 멈추지 못하겠지
    응 그러자

 

    눈을 감아도 26000m를 자라는 파이프
    은빛 나사가 촘촘히 박힌 하늘
    볼트와 너트가 떨어지는 마지막 밤
    쇳물 위로 흔들리는 철판
    몸 위로 쏟아지는 은빛

 

    서로의 것

 

  1)  미늘 톱니바퀴가 달린 렌치. 바퀴쐐기에 의해 한쪽 방향으로만 회전을 하는 기어가 적용됨.
  2)  유체의 흐름을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게 하여 액체의 역류를 방지하는 방향 제어 밸브를 말한다.
  3)  격리 사육하는 동물이나 우리에 갇힌 동물들이 일정한 행동을 반복하는 증상.

 

 

 

 

 

 

 

 

 

 

 

 

 

 

당신의 것이 아닌

 

 

 

 

    “가장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우리는 알 수 있을까?”

 

    바닥에 떨어진 구슬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참지 못하고 아이들이 뛰쳐나간다
    문 앞에 선 아이는 허둥대며 쪽지를 나눠준다
    오십 걸음 밖에서만 읽을 수 있는 쪽지엔
    뒤돌아보지 말라고도
    돌아오라고도 쓰여 있다
    모두 그들 자신이 쓴 글씨다
    펼쳐 볼 수 없는 책은 가늠할 수밖에
    펼쳐지지 않은 쪽지는 버려질 수밖에
    흩어져 돌아오지 않는 아이는
    멀리까지 가 있을 거다
    염려보다 빠르게 자라는 아이는
    문 밖에서도 문 안에서도 잘 자란다
    길에는 버려진 쪽지가 틈틈이 자란다
    돌아올 아이는 진작에 돌아왔다
    더럽힌 옷은 빨면 그뿐이니까
    세탁기 속 바지주머니에서 꺼낸 쪽지는
    여러 번 접혀 있다
    어렵게 쪽지를 펼쳐 든 아이는
    번진 글씨를 읽으려고 애를 쓴다
    지난 마음은 알아볼 수가 없다
    방에 누우면 문은 전보다 단단히 잠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려야 신을 신을 수 있을 거다
    눈을 감고 쪽지의 글씨를 가늠해 본다
    「 지금 」
    이라고 적혀 있다
    모자로 얼굴을 가린 아이들이 뛰어나간다
    「 눈을 감고 」
    라고 적혀 있다
    아이들이 넘어진다

 

 

 

 

 

 

 

 

 

 

 

 

 

 

 

 

 

이원석 작가소개 / 이원석

202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를 쓰고 주짓수를 가르칩니다.

 

   《문장웹진 202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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