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데이 오브 준 외 1편

[신작시]

 

 

라스트 데이 오브 준

 

 

선혜경

 

 

 

노을을 따라 앉은
네가 있던 곳에서 내가 자라나고 있었다
내가 기어코 살아나고
살아 있어서 우스꽝스러워

 

    누군가 노을을 유화로 그리고 있거든
    짓물러진 사과를 주렴

 

    우리는 때때로
    불확실한 날씨를 질투하기도 하니까

 

    부엌에 서서
    누군가의 저주를 들을 때마다 유리컵에 찬물을 넘치도록 따라 붓는다
    타인에 대한 다정하고 적나라한 버릇

 

    아홉 시에 옆집 아이가 공을 들고 너의 선잠을 깨우고 있었어 준, 너는 사랑스럽게 웃으며 내 이름을 불렀지 그때 나는 가시가 없어서 위험한 건 장미가 아니라 공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고 세 시에 너와 나는 같은 구두를 신고 강가를 갔지 말해 주고 싶은 게 많았는데 그냥 표정만 건네 준 것 같았고 비가 오던 여섯 시에 우리는 차를 타고 돌아가다 미끄러져 절벽으로 떨어졌어 순간 네게 들이닥치던 불빛이

 

    선명해,
    유일하게 선명했다 그리고

 

    네가 죽었다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아홉 시에 옆집 아이가 공을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나는 손을 치켜들고 공을 뺏었는데

 

    준비가 다 되었다는 말,
    이미 되돌리길 포기했다는 의미

 

    공은 모난 구석이 없어서
    신뢰를 얻는 법이 쉬우니까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배신이 가능하고

 

    부디 한 번에 한 가지만 망했으면 좋겠는데

 

    뒤집어지고
    뒤집혀지고

 

    너와 나의 역할을 바꿔 가면서

 

    맹렬히 지켜보던 당신들은
    내가 어느 결말에 도달해 간다고 생각할까

 

    안녕, 당신도 나를 불쌍하게 여기니

 

    *

 

    두통도 없이 자고 일어나면 아침이 그 자리에 있었고

 

    비극이 없는데
    밥을 먹고 애를 써도 될까

 

    이름이 외자라서 부족한 날들은
    미신에 맡기기로 했다

 

    아홉 시에 폭우가 쏟아졌다 주변이 계속에서 떨어져 나갔다 대문 앞에 옆집 아이가 총을 들고 서 있었다 문을 열고 아이를 맞이해 주었다

 

    연민도 없이

 

    곳곳에 던져진
    내 슬픔을 관람해 줘서 고마워

 

 

 

 

 

 

 

 

 

 

 

 

 

 

 

2020/06/30 (화) 9회 22:35-24:10 (심야)

 

 

 

 

    낭만이 지금을 살찌게 만들 거예요
    아무도 죽지 않고 실종되지도 않는 영화의 러닝타임 속에서

 

    나랑 내기 한 번 해줘요

 

    백야가 간밤의 천국이라 단언했던 예술가를 기억해요? 당신은
    낮잠이 필요합니다

 

    죽음이 상영되지 않아서 막장이 아니라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분노를 느껴야 할까

 

    안 그러기로 약속했는데 나는 또 그런 것들을 상상해요 그 밤에 구급차 사이렌이 복도를 타고 울렸고 피가 멈추지 못한 채 토해 내는 불빛 때문에 나는 입을 열지 못했어요 내가 뭉쳐 놓은 형상들이 무작위로 엎어질 것 같아서 외면하고 싶었는데
    엘리베이터는 너무 좁아서 구급침대도 싣지 못했고, 사소한, 그런 것들,

 

    시체도 서서 데리고 내려오는 걸까 그렇다면

 

    본래 인간은 거꾸로 매달려 태어나는 게 아닐까 했습니다 운명에 순응해 보려고 당신은 몸집만 한 악몽을 삼키고

 

    울었니?
    그런 일은 우리에게 익숙하다고
    온몸으로
    계속해줄 수 있어?

 

    당신은 세상에 어울리는 일이라 하겠지만

 

    축축한 기분이 들어요

 

    죽음에도 자본이 필요했는데
    그 사실을 잊어버려서 미안해요

 

    눈동자가 일몰이 시작되는 순간을 포착할 수 없듯이

 

    우리는 전염되고 있어요, 미래의 장례식엔 빈 액자만 걸어져 있을 테고

 

    낮잠은 미리 자두는 게 좋겠습니다

 

    만약 내가 익사하게 된다면
    발부터 천천히 적셔 주세요

 

    엔딩을 망각할 수 있게

 

    이 게임은 오늘의 시체와 무관한 사람이 이기는 거예요

 

    이제 불 좀 켜주실래요?

 

 

 

 

 

 

 

 

 

 

 

 

 

 

 

 

 

선혜경 작가소개 / 선혜경

1996년 출생. 2020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문장웹진 202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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