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놀이터

[단편소설*]

 

 

밤의 놀이터

 

 

정무늬

 

 

 

  * 2020.01.03 SBS ‘궁금한 이야기Y' <따뜻한 물을 구걸하는 아기엄마, 남의 집에서 샤워하는 그녀의 정체는?>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아이들은 밤에만 놀이터를 찾았다. 인적이 끊기기를 기다렸다가 잠시 들르는 식이었다. 단지 내 놀이터에서도 마음껏 뛰어놀지 못했다. 아무래도 마스크 탓 같았다. 헐거운 라텍스 장갑을 낀 아이가 엉거주춤 그넷줄을 잡았을 때, 탄희는 세계의 일부가 돌이키지 못할 만큼 무너졌다는 확신에 사로잡혔다. 변덕스럽고 즉흥적인 감정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23층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잠시 걸었을 뿐인데 아랫배가 결렸다. 오늘 밤 박준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위로가 됐다. 박준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건물을 돌며 전문 임대업자 노릇을 했다. 탄희는 흰 빨래와 색깔 빨래를 구분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공과금을 처리했다. 이 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포닥 선배 밑에서 익혔던 시료 분석법은 모조리 잊었다. 몸을 추스르고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연구실로 되돌아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막막해질 때마다 탄희는 또 아기를 가지게 될 거라고 되뇌었다. 일이 이렇게 될 줄도 모르고.
    초인종이 울렸다. 이 시간에도 택배가 오나? 택배 기사들은 초인종을 누르지 않는데. 그럼 누구지? 주춤주춤 월패드 앞으로 다가갔다. 해상도 낮은 화면에 아기 얼굴이 나타났을 때 손으로 입을 가렸다. 한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아기였다.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뜨거운 물을 빌릴 수 있을까요?”
    탄희는 차가운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소문의 여자가 실재할 줄은 몰랐다. 그녀가 이 집에 찾아올 줄은 더더욱 몰랐다.
    “아기가 배고파해서요. 분유 탈 물 좀 빌려주세요.”

 

    여자에 대해 처음 알려준 것은 정연이었다. 그날도 정연은 교회에 다시 나오라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줄 준비가 되셨는데 도망가면 어쩌느냐고 했다.
    “자꾸 이러면 나도 더 못 챙겨 줘.”
    정연은 새로 이사 온 옆집 여자에게 종교는 있냐, 어느 대학 나왔느냐, 남편은 뭘 하냐는 질문을 무례한 줄도 모르고 하는 사람이었다. 탄희가 자신보다 3살 어리고, 같은 대학을 졸업했다는 걸 알게 된 후로 아량 넘치는 선배처럼 굴기 시작했다.
    노골적으로 귀찮게 했다면 멀리했겠지만 정연은 노련했다. 교회에 가보자고 조르다가, 아파트 관리 앱을 깔고 입주민 대표 탄핵 투표에 참여하라고 조언하는 식이었다. 정연은 어느 병원이 항생제를 덜 쓰는지, 어느 미용실이 싸구려 파마 약을 쓰는지 알고 있었다. 일별 난방비를 확인하는 법과 헛짖음이 심한 말티즈가 사는 세대도 가르쳐줬다.
    박준은 정연을 ‘하나쯤 있으면 유용한 친구’라고 표현했다. 홈짐에서 벤치프레스를 하는 박준에게 물었다. 그 여자가 왜 내 친구야? 친구하면 안 돼? 빨리 적응하고 싶다며. 탄희는 친구는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적당히 거리만 두면 돼. 사회생활이 다 그렇잖아? 박준의 잘 다듬어진 대흉근 사이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직장에 다녀 본 적 없으면서 박준은 사회생활에 능통한 척했다. 탄희는 아파트에 사는 것은 처음이었으므로 말을 아꼈다. 솔직해지자면 아침에 볕이 들고, 화장실이 두 개나 있는 집에 사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것을 정연과 그녀의 친근한 이웃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매끄럽지는 않더라도 그리 어색하지 않게 이 아파트에 녹아들고 싶었다. 정연을 밀어내지 못했던 건 그녀가 노련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탄희 씨 같은 사람은 특히 조심해야 해.”
    정연이 목소리를 낮췄다. 나 같은 사람이 뭐냐고 묻기도 애매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 한번 잘못 돌면 끝인 동네야. 폐업한 세탁소 앞에서 정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임신 준비하는 사람이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들어야지. 그런 여자를 가까이하면 되겠어?”
    정연은 60대인 엄마보다 더 늙은 여자처럼 말하는 버릇이 있는데 종교와는 무관한 믿음 때문으로 보였다.
    “진짜 아기를 데리고 다닌대요?”
    “맘카페에서 아주 난리야.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가 봐.”
    “뭘 당했는데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정연이 곤란하다는 투로 미간을 찌푸렸다.
    “탄희 씨는 남편이 옆에 있으니까 무서운 게 없는 거야. 우리 애 아빠는 언제 입국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공항이 폐쇄됐다면서요.”
    “시스템이 그런 걸 뭐 어쩌겠어. 어쨌든 조심해. 남편한테도 꼭 전하고.”
    정연은 폐쇄된 공항보다 뜨거운 물을 달라는 여자를 더 두려워하는 듯했다. 여자가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손해를 끼치리라 믿는 기색이었다. 탄희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끔 정연과 대화하다 보면 손에 묵직하고 날카로운 무언가를 든 사람이 잰걸음으로 쫓아오는 것 같았다.
    “자기 남편이야 알아서 잘하겠지. 돈 잘 벌고, 운동 잘하고, 담배도 안 피우고. 세상에 그런 남자가 어디 있어?”
    “술은 좀 많이 해요.”
    “못 마시는 것보다 훨씬 나아.”
    동의하지 않았지만, 잠자코 있었다. 그것이 정연과 사귀는 방법이었다.
    “와이프 생일에 귀걸이도 선물할 줄 알고. 백화점 직원한테 시착시켜 봤다며? 부럽다, 정말.”
    정연이 탄희의 맨 귓불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정연은 또 무얼 알고 있을까. 엄마가 보내준 붕어즙을 몰래 버린다는 것? 박준의 술버릇 때문에 매달 싸운다는 것? 정연이 말을 덧붙일 때마다 목구멍이 조여 왔다.
    “시험관 한번 더해 봐. 교회도 다니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지. 안 그래?”
    아무리 정연이라도 남자에 대해서는 알 리 없었다. 남자가 집으로 찾아온 건 딱 한 번뿐이고, 그마저도 잠깐이었으니까. 탄희는 잠시 숨을 멈추고 옆집으로 사라지는 정연에게 인사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집 보러 왔어요. 뜨거운 물만 빌릴 수 없을까요?”
    여자가 아기를 추켜 안으며 말했다. 탄희가 아기 얼굴을 잘 볼 수 있도록 의도하는 것 같아서 섬찟했다. 안 된다고 말하려는데 아기가 렌즈 너머의 탄희를 빤히 바라봤다.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는 아기. 체념과 피로만이 새까맣게 고여 있는 아기의 눈동자를 보며 탄희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주 잠깐이면 괜찮지 않을까? 아주 어린 아기인데. 아랫배 위에 손을 올린 탄희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자가 고개를 숙였다. 광대뼈 아래가 움푹 패 보일 정도로 말랐고, 움직임이 느렸다. 늦은 밤 뜨거운 물을 구걸하는 사람답지 않게 권태로운 표정이었다. 여자는 탄희가 권하기도 전에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새로 산 티 테이블보다 자연스럽게 이 집과 조화를 만들어내는 여자와 아기답지 않게 사려 깊은 눈을 가진 아기에게 하마터면 매료될 뻔했다.
    여자는 탄희가 가져다준 뜨거운 물로 분유를 탔다. 오래 굶주렸는지 아기는 힘차게 젖병을 빨았다. 아기의 점프슈트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유명 브랜드 제품이었지만 찬바람을 막기엔 너무 얇았다. 탄희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침묵하는 것이 넓은 의미의 범죄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음에도 그랬다. 치아가 돋아나지 않은 아기의 연분홍색 잇몸은 비늘 없이 태어난 도마뱀 새끼처럼 무방비해 보였다.

 

    너는 배고프다고 빽빽 울어대지, 젖에서 피고름만 나오지. 젖동냥도 감지덕지였다구. 엄마는 자랑삼아 그런 이야기를 즐겨 했다. 젖동냥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탄희는 혀 밑이 쓰고 아렸다. 전래동화에나 나오는 낡고 구질구질한 단어와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게 싫었다. 젖동냥으로 자란 여자가 옆집에 산다는 소문을 들으면 정연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가련하게 여길 수도 있고, 대놓고 따돌릴지도 모르겠다. 둘 다 탄희가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탄희는 정연과 비슷한 또래 여자들과 어울려 조리원이나 문화센터 정보를 공유하고 싶었다. 젖동냥 같은 단어와 무관한 여자들. 곰팡이 지우는 법이나 급식비 지원 대상에 대해 들어 본 적 없는 여자들처럼 말이다.
    따로 공모한 적은 없지만, 엄마와 탄희는 박준 앞에서 입조심했다. 하지만 엄마가 자신을 외동딸 취급할 때마다 속이 메슥거렸다. 몇 번 구역질도 했다. 임신이지? 그치? 엄마의 얼굴이 밝아질 때마다 탄희는 그날 밤 놀이터를 떠올렸다.
    밤안개가 촘촘히 내려앉은 놀이터에서 재희는 교복으로 가릴 수 없을 만큼 부푼 배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네 좌석이 푹 젖어 있었는데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네를 탈 마음은 없었는지 재희는 발끝으로 딱딱하게 굳은 모래를 헤집었다. 언니 있잖아, 말문을 열어 놓고 한참 동안 모래만 파헤쳤다. 애 아빠가 누구냐고 엄마가 물었을 때, 재희는 아기처럼 엉엉 울었다. 당장 지우라고 했을 때도 울기만 했다. 엄마가 여기저기 아쉬운 소리를 해서 병원비를 마련해 왔을 땐 울다가 까무러쳤다. 재희를 둘러싼 소문이 시도 때도 없이 담을 넘었다. 작작해! 네 언니 혼삿길까지 막지 말고! 엄마가 쏘아붙였다. 재희는 다음날 사라졌다.
    경찰과 학교는 재희의 가출을 쉽게 받아들였다. 엄마도 얼핏 그런 것처럼 보였다. 딸 단속도 제대로 못 한다며 손가락질하던 이웃들이 엄마를 동정했다. 엄마는 누군가 곁에 있을 때만 재희를 떠올리며 눈물을 찍어냈다. 소문은 사라졌다. 적어도 탄희 귀엔 들리지 않았다. 대신 밤마다 놀이터를 산책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냥 습관일 뿐이었는데 아기 울음소리를 내는 발정 난 고양이를 만나면 모호한 분노와 죄책감의 경계에서 걸음을 돌려야 했다.
    언니 있잖아. 부탁할 게 있는데. 재희의 마지막 목소리가 한결같은 강도로 기억을 두드렸다. 탄희는 인적 끊긴 놀이터를 서성거리며 그때 해야 했지만 하지 못했던 말을 곱씹었다. 그보다 내뱉지 말았어야 했던 단어를 하나씩 더듬었다. 그러다 보면 주변은 존재했거나 존재하지 않았던 말로 가득 찼고, 그 말이 바람을 타고 퍼지면서 세상은 조금 전보다 더 삭막하고 가끔은 참을 수 없이 위태로운 곳으로 변질되곤 했다.

 

    여자는 분유를 탈 때도, 아기에게 분유를 먹일 때도 손을 씻지 않았다. 그것만은 두고 볼 수 없었다.
    “손을 씻으셔야 하지 않을까요?”
    “괜찮아요.”
    “아기는요?”
    “아기도요. 얼마나 건강하다고요.”
    얼마든지 확인시켜 주겠다는 듯 여자가 빈 젖병을 흔들었다. 정말 이 시간에 집을 보러 왔다고? 부동산 중개인도 없이? 성의 없는 거짓말에 화가 났지만, 최대한 부드럽게 물었다.
    “집은 잘 보셨나요?”
    “대충은요. 요즘 시세가 어때요?”
    탄희가 대략적인 액수를 말해줬다.
    “뭐, 입지가 좋으니까.”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한 걸까. 여자의 목소리가 뾰로통해졌다. 탄희는 금세 피곤해졌다. 여자는 일어날 기색이 없었다. 쫓아낼 수도 없었다. 문을 열어 준 만큼의 책임감이 아직 남아 있었다. 사정이 있겠지. 좀 더 쉬게 해주자. 그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탄희에게도 누군가의 친절이 간절히 필요하던 때가 있었다. 여자처럼 뻔뻔했던 적은 없었지만.
    “먹을 것 좀 주시겠어요?”
    여자가 요청했다. 맡겨 둔 것을 찾는 사람처럼 당당한 태도였다.
    “종일 목사님이 준 크림빵 하나 먹었거든요.”
    “네?”
    “우유도 있으면 주세요.”
    탄희의 대답엔 관심 없다는 듯 여자가 아기의 등을 두드렸다. 작은 트림 소리를 들으며 옷자락을 쥐었다. 여자는 예의나 염치처럼 별 볼 일 없는 것을 지우고 생존 본능만 남긴 사람 같았다. 어떤 논리도 통하지 않는 부류. 고마워할 줄도 미안해할 줄도 모르고, 자신을 돌이켜보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을 볼 때마다 탄희는 엄마를 떠올리며 진저리쳤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탄희가 최대한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 멍한 표정을 짓던 여자가 시선을 창밖으로 픽 돌렸다.
    “요 앞에 교회 아시죠? 거기 목사님, 젊고 목소리도 좋잖아요.”
    정연의 손에 이끌려간 그 교회였다. 남자를 만난 것도 그곳이었다.
    “그 교회 다니세요?”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다 안다는 듯 냉장고만 흘낏거렸다. 탄희는 제 실수를 원망했다. 하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았더라도 여자가 기어코 스며들었을 거란 예감이 날카로운 이명처럼 울렸다.

 

    – 2001호 택배 가져가신 분 내일까지 돌려주세요. 가져오지 않으면 CCTV 공개하겠습니다.
    탄희는 엘리베이터 문에 붙은 글자를 천천히 읽었다. 보안이 철저한 아파트에서 어떻게 택배가 사라지는지 의아했다. 남의 집 택배를 실수로 가져가는 일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모서리에 달린 CCTV를 보다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화면을 공개해 봤자 마스크를 쓴 비슷비슷한 사람들뿐일 텐데. 쓸모없고 괜히 정중하기만 한 협박이라고 생각하면서 단지를 빠져나갔다.
    산부인과는 보기 드물게 한적했다. 요즘은 어딜 가나 사람이 없었다. 손 소독제를 펌핑한 후 손바닥을 비볐다. 접수목록에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었다. 앞서 진료를 받은 여자들은 탄희보다 몇 살씩 어려서 두서없이 위축됐다. 오늘은 융모막 융모 검사와 정밀 초음파 검사를 받는 날이었다. 검사실 직원이 아기 심장 뛰는 모습을 보여주고, 머리부터 엉덩이까지의 길이를 알려줬다. 잘 자라고 있다고, 대부분 안도할 테지만 탄희에겐 조바심이 될 뿐인 말을 했다. 탄희가 머뭇거리자 직원은 모든 게 순조롭다고 위로했다. 그 말조차 깜짝 놀랄 만큼 사무적이어서 탄희는 서둘러 산부인과를 빠져나왔다.
    5년을 기다려 온 아기인데. 엄마도, 시부모님도, 박준도 기다리고 있는데. 나 하나만 입 다물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 아닐까? 탄희는 엉뚱하게 대담해졌다가 시시하다 못해 참담할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언젠가 소문이 날 테고, 모두가 알게 되겠지.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야. 결론에 도달한 척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우왕좌왕했다. 소파수술을 검색하다가 철분제를 챙겨 먹는 식이었다. 감정이나 식욕 따위가 끊임없이 오락가락했다. 머리채를 잡혀 어디론가 쫓겨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천으로 둘둘 싸인 뭉툭하고 뜨거운 짐이 발아래로 떨어지는 꿈도 꿨다. 병원에 다녀온 날엔 잠자리가 더 사나웠다.
    “오후에 집에 있을 거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정연이 얼굴을 내밀었다. 귀를 쫑긋 세우고 탄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 모양이었다.
    “택배 좀 받아 줄래? 신세 질게.”
    정연은 탄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마치 그 여자처럼. 탄희의 미간에 실금이 갔다. 물론 정연은 보지 못했다.
    “있잖아, 그 여자. 그 여자가 들른 집마다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아?”
    정연이 화제를 돌렸다. 무미건조한 척하지만, 열의가 느껴지는 말투였다.
    “병이라도 퍼뜨렸대요?”
    “그러면 다행이게.”
    정연의 말에 따르면 그 여자가 들른 집마다 흉사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교통사고가 나고, 매매 계약이 취소되고, 아기가 미끄럼틀에서 떨어지는 등. 그저 흔한 불행을 가지고 정연이 호들갑을 떨었다.
    “택배를 누가 훔쳤겠어? 이 빤한 아파트에서.”
    정연은 확신에 차 있었다. 탄희는 여자의 입이 닿았던 우유 컵과 그 밑에 말라붙었던 둥그런 우유 자국을 떠올렸다.
    “교회에서는 별말 없나요?”
    “있어야 해?”
    팔짱을 낀 정연이 되물었다. 여자는 정말 탄희를 교회에서 본 적 있을까. 남자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까.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한번 소문나면 끝이라는 정연의 말이 잊히지 않았다. 사람 입을 다물게 하는 백신은 없지. 없고말고. 탄희는 괜한 사명감에 휩싸여 정연의 택배를 기다렸다. 9시가 넘도록 택배는 오지 않았다. 정연이 착각했거나, 택배 기사에게 사정이 생긴 모양이었다. 탄희는 정연과 공유하는 복도를 오랫동안 서성였다. 산책하지 않으면 묶어 키우는 개처럼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았다.
    밤이 깊었다. 놀이터는 폐쇄되었다. 출입금지 비닐테이프가 붙은 입구에서 걸음을 돌렸다. 나뭇가지 끝에 노란 꽃이 피었는데 아직도 겨울 같았다. 봄도 도망쳤을지 몰라. 아무래도 여긴 좀 위험하니까.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잠시면 되는데.”
    여자가 또 찾아올 줄은 몰랐다. 무방비했던 탓에 탄희는 배 이상 놀랐다. 박준이 집에서 저녁을 먹겠다고 한 날이었다. 탄희는 월패드에 비친 아기의 눈동자와 갓 구운 갈치구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너무 고마워서 그냥 갈 수가 있어야죠.”
    보답을 위해 다시 왔다는 말일까. 정연이 이 광경을 보면 어쩌지? 여자를 들였다는 것보다 정연의 충고를 무시했다는 걸 들킬까 봐 조바심이 났다. 여자는 정연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 이리저리 떠돌아다녔으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주워들었겠는가. 여자를 쫓아내려는데 문밖에서 박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분유 탈 물을 빌릴 수 있을까요?”
    “그러세요.”
    박준이 간단히 대답했다. 현관문이 열리고 박준과 아기를 안은 여자가 들어왔다. 책망이 담긴 탄희의 시선을 박준은 모른 척했다.
    “이런 때일수록 돕고 살아야지.”
    박준은 부유하게 태어나서 한 번도 궁핍해 본 적 없는 사람 특유의 너그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자주 너그러워지는 편이 아니어서 그럭저럭 참을 만했지만 박준이 불쑥 친절을 베풀 때마다 속이 울렁거렸다. 장모를 내킬 때만 엄마라고 부르는 것도, 용돈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돈을 찔러주는 것도 너그러움의 한 종류 같아서 더욱 그랬다.
    여자는 박준이 권하기 전까지 소파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먼젓번과는 영 딴판이라서 당했다는 기분을 지우기 어려웠다. 이번에도 아기는 칭얼거리지 않았다. 아기의 깊고 유순한 눈과 마주칠 때마다 탄희는 형용할 수 없는 꺼림칙함을 삼켜야 했다.
    “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하시죠?”
    “고마워서 어쩌죠. 다음엔 제가 대접할게요.”
    고민하는 시늉도 하지 않고 여자가 대답했다. 순간적으로 눈을 크게 떴지만, 박준의 표정은 이내 느긋해졌다.
    식탁에 앉은 여자가 주변 아파트 시세를 화제에 올렸다. 진짜 이사할 사람처럼 상세히 꿰고 있었다. 설마 박준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걸까? 알고 일부러 접근한 거야? 불쾌한 진동을 느끼며 여자의 생김새를 관찰했다. 좁은 이마와 앞으로 불거진 큰 눈, 광대뼈에서 턱으로 이어지는 윤곽이 이국적이었다. 어느 나라라고 콕 찍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몽골계 특유의 분위기가 여자에겐 없었다.
    가정폭력 피해자라는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전과자라는 말도 있고. 혼혈이란 말도 있고. ‘전부 믿는 건 아니지만’으로 시작된 정연의 이야기는 거침없었다. 만약 탄희의 비밀이 새나가면 어떻게 될까. 기묘하게 반짝이던 정연의 눈동자를 떠올리며 입 안쪽 살을 깨물었다.
    “부동산 카페에선 똘똘한 한 채라는 말이 유행이지만, 지금의 똘똘이가 미래의 똘똘이가 될지는 장담 못 하죠. 모든 게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질 겁니다.”
    정부의 모든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던 박준이 소주를 꺼내왔다. 여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여자와 한 식탁에 마주 앉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점점 팍팍해지는 건 사실이에요. 사장님처럼 호의를 베푸시는 분도 드물고요.”
    여자가 적당히 장단을 맞췄다.
    “밥 한 끼 먹는 건데요, 뭐.”
    “인심이 얼마나 야박한지 말도 못 해요. 같이 대화하고, 밥 먹고. 얼마나 좋아요?”
    “종종 식사하러 다니시나 보죠?”
    박준이 물었다. 여자는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가 교무실에 불려온 중학생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대답을 피할 줄 알았는데 여자가 박준을 빤히 바라보았다.
    “집에 있으면 아기가 자꾸 울거든요. 아기가 울면 저도 울고 싶어져요. 그냥 울어버릴 때도 있어요. 그것도 하루 이틀이죠. 아기가 조용해질 때까지 걷다 보면 배가 고파요. 저도 그런데 아기는 오죽하겠어요.”
    그 뒤로 여자는 묵묵히 밥을 먹었다. 박준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애초에 궁금해서 물은 말도 아니었다. 탄희는 아기와 함께 우는 여자를 상상했다. 울지 않는 아기를 안고 이 집 저 집 초인종을 누르는 모습도 그려 봤다. 여자를 집 안으로 들이고 먹을 걸 나눠 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정하지만 조심성 없는 사람들. 그들 덕에 여자는 질 나쁜 소문을 과자 부스러기처럼 흘리며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식사 안 하실 거면 아기 좀 봐주실래요?”
    탄희가 젓가락을 내려놓자마자 여자가 눈을 치켜떴다. 허락하지 않았는데 아기를 반쯤 건네고 있었다.
    “싫은데요.”
    “잠깐이면 돼요. 오늘 아무것도 먹지 못했거든요.”
    “아기 안고도 잘 드셨잖아요.”
    “그러지 말고 안아 보세요. 이렇게 순하잖아요.”
    “강요하는 건가요?”
    지금 여기서 당신이? 탄희가 내뱉지 않은 말을 짐작했는지 여자의 표정이 묘해졌다. 박준은 두 여자의 대화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 소주잔을 기울였다. 여자를 누가 안으로 들였는지 벌써 잊은 모양이었다.
    “사모님을 교회에서 뵌 적 있어요.”
    여자가 불쑥 말했다. 저의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교회에서 마주쳤었는데. 기억 안 나세요?”
    여자의 공격은 변칙적이었다. 탄희에게 여자를 막아낼 방법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
    “깜짝 놀랐거든요. 여기저기 들리는 말도 있고요.”
    무슨 말을 들었다는 걸까. 떠보는 것뿐이라 생각하면서도 입매가 팽팽해졌다.
    “뭔가 착각하신 것 같네요.”
    “그럴지도 모르죠.”
    “요즘 교회 안 나간다며?”
    박준이 물었다. 탄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했는지 여자가 아기를 떠넘겼다.
    “부탁할게요. 오래 안 걸려요.”
    탄희는 두 손으로 아기를 받아 들었다. 아기는 녹슨 닻처럼 무거웠다. 보들보들한 머리카락이 돋은 아기의 정수리에서 고소한 살 냄새가 올라왔다. 아기는 미역처럼 반들반들하고 죽은 조개처럼 무심한 눈으로 탄희의 비밀을 관찰하고 있었다. 탄희가 방심하길 기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언젠가 틈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뭔가 흘러나오리란 것을 아기는 알고 있었다. 불쑥 토기가 치밀었다. 거의 던지듯 박준에게 아기를 맡기고 화장실로 달렸다. 내내 고요하던 아기가 소리 높여 울기 시작했다.
    “나가요!”
    변기를 부여잡고 몇 번이나 외쳤다. 여자가 우는 아기를 안고 사라졌다. 현관문 앞에서 박준이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기를 가질 수 없는 거야.”
    말은 우리지만 너 때문이라는 뜻이었다. 그 정도는 꼬박꼬박 일러주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었다. 아기가 생겼다는 걸 알면 박준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충동적으로 산모 수첩을 가지러 갔다. 그사이 박준은 차 키를 들고 나갔다. 또 음주운전을 할 테지만 박준을 단속할 경찰관들은 없었다. 제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있어야 할 곳도 머물러야 할 곳도 없었다. 모두 갇혀 있는데 다들 조금씩 떠돌이였다.

 

    “쫓아내야 해요. 이제라도 막아야 한다고요.”
    커뮤니티 센터 앞에서 정연은 연설 중이었다. 택배를 도둑맞기는 했지만, 꼭 택배 때문만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그런 여자가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니까요? CCTV를 전부 공개해야 해요.”
    정연과 같은 교회를 다니거나, 정연의 딸과 비슷한 또래 아기를 키우는 여자들이 한두 마디씩 거들었다. 싹을 잘라야지. 일이 터지기 전에 바로잡아야 해. 나중에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야? 그동안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로 그녀들은 맹렬한 혐오에 사로잡혀 있었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조짐도 없이 귀퉁이부터 무너져 내린 일상을 버티려면 얄팍해진 보호막을 지켜야 했다. 누구를 보호하고 무엇을 경계하는지도 모른 채 다 같이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 행동해야 해요. 쿨럭. 쿨럭.”
    정연이 연거푸 기침했다. 여자들이 움찔했다. 하던 말을 끊고 정연이 변명했다.
    “그냥 감기예요.”
    의심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짚고 넘어가겠다는 투였다. 정연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그것이 다른 여자들을 불편하게 했는데 정작 정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리를 벗어나려는 탄희를 정연이 불러 세웠다.
    “자기는 그 여자 만난 적 없지?”
    고개를 까딱였다.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다는 듯 정연이 다시 한번 못 박았다.
    “절대 들이면 안 돼. 우리 모두를 위해서.”
    “그럴게요.”
    “우리 아파트에 확진자가 나왔대. 놀랄 것 없어. 보건소에서 방역을 끝냈고, 단지 내 접촉자도 없으니까.”
    정연은 끝까지 확진자가 몇 동 몇 호에 사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연이 CCTV 공개 동의서를 내밀었다. 탄희는 망설였다. CCTV를 공개하면 여자를 두 번이나 집에 들였다는 사실이 발각될지 몰랐다. 그 여자와 똑같은 취급을 받게 되면 어쩌지? 더 심한 꼴을 당할 수도 있어. 자신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시야가 좁아지고, 호흡이 흐트러졌다. 탄희를 제외한 모든 여자가 서명을 끝마쳤다. 그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탄희를 바라보았다.
    “쿨럭. 쿨럭.”
    서명하는 동안에도 정연은 기침을 계속했다. 탄희는 정연의 피부가 까칠하다는 것과 머리카락의 윤기가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산부인과에 다녀오지 않았지만 오늘 밤에도 악몽을 꿀 것 같았다.
    23층 베란다에서 폐쇄된 놀이터를 바라봤다. 가로등이 환했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거나 컵라면을 먹는 청소년들도 없었다. 놀이터는 공들여 만든 모형 상자 같았다. 놀이터에서 아기를 발견했을 때 저도 모르게 눈꺼풀을 비볐다. 겨우 걸음마를 뗀 아기가 아장아장 미끄럼틀 앞을 걷고 있었다. 이 시간에, 혼자? 베란다 밖으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보호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기는 미끄럼틀에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어디 있는 거야? 심장이 빠르게 가슴 안쪽을 두드렸다. 환각이라고 하기엔 너무 선명했다. 고개를 좌우로 털고 다시 봐도 아기는 실제로 거기 있었다. 심지어 미끄럼틀 위로 기어 올라가려 했다.
    탄희는 놀이터를 향해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침착하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됐다. 헉헉거리며 탄희는 외로웠다. 외로움이란 참 무서운 거라고, 무서워서 꼼짝도 못 하겠는데 왜 달리는 걸까, 생각하다가 다시 헉헉거렸다. 놀이터에서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책임져야 할 아기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놀이터 입구에서 출입금지 비닐테이프를 끊었다. 아랫배가 당기고 목구멍이 따가웠다. 아기는 보이지 않았다. 미끄럼틀 아래에도 위에도 없었다. 그것이 더 불안했다. 우레탄 바닥은 여기저기 삭아 있었고, 시소의 마감은 날카로웠으며, 그네 손잡이는 미끄러웠다. 아이들이 놀기에 너무 위험한 장소였다. 아기가 혼자 있을 곳은 더더욱 아니었다.
    언니 있잖아. 부탁할 게 있는데. 탄희는 재희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어차피 성가시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일 게 뻔했다. 네 동생 걸레라며? 대놓고 모욕하지는 않았지만 탄희가 지나갈 때마다 수런거림이 뒤따랐다. 설마 낳겠다는 건 아니지? 재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조차 지긋지긋했다.    그냥 없어져 버려. 이 꼴 저 꼴 보기 싫으니까. 탄희는 성숙하지 못했다. 동생보다는 치욕적인 소문에 민감할 나이였다. 재희만 없으면 약간은 떳떳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재희는 사라진 게 아니라 쫓겨난 거였다. 재희는 어디로 갔을까. 놀이터를 떠나기엔 아직 어린아이였는데. 재희가 품은 아기는 어떻게 됐을까. 그걸 궁금해할 자격이 있을까.
    해결되지 않는 죄책감이 고개를 들 때면 탄희는 놀이터로 갔다. 텅 빈 놀이터를 서성이며 기도와 비슷한 몇 마디를 읊조렸다. 모두 위선이고, 잘해 봤자 자기기만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달리 무슨 방법이 있을까. 탄희는 쿡쿡 찌르는 통증을 느끼며 아랫배를 감싸 안았다. 아기는 없었다. 놀이터 밖은 무덤 속처럼 어두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탄희는 고개를 숙이고 앞서 걸었던 여자들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엘리베이터 벽에 인쇄된 CCTV 화면이 붙었다. 모자도, 마스크도 쓰지 않은 여자였다. 컬러 인쇄였지만 노이즈가 심해서 이목구비를 분간하기 힘들었다. 여자에겐 아기가 없었다. 다만 무언가를 탐색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앞으로 빼고 있었다. 커뮤니티 센터에도, 입주자 회의실에도 비슷한 여자 사진이 나붙었다. 같은 화면인 줄 알았는데 CCTV 비추는 각도가 조금씩 달랐다. 사진 속 여자는 한결같이 무언가 찾는 중이었다. 인쇄된 여자의 얼굴을 볼 때마다 탄희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소문은 한층 더 무성해졌다. 빈번한 유산 끝에 남의 집 아기를 훔친 거다, 동정받는데 익숙한 거다, 남편의 주사 때문에 방황하는 거다. 여자가 교회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벌였고, 그 때문에 건실한 전도사가 떠나야만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가 거짓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몇몇 단어가 탄희의 가슴을 찔렀다. 수군대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깨를 오그렸다. 여자가 아닌 자신에 대해 떠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착각이겠지만 멈추지 못했다. CCTV 속 여자가 거울 속 제 모습처럼 낯익었다. 탄희는 여자의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다. 호리호리한 몸매와 하나로 묶은 머리가 자신과 똑같았다. 무슨 소리야. 완전히 다른 사람이잖아?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박준은 며칠째 귀가하지 않았다. 집이 집 같지 않았다. 집을 나서도 문제였다. 연구실은 이 년 전 그만뒀고, 교회에도 갈 수 없었다. 놀이터는 폐쇄되었다. 배 속의 아기는 순조롭게 자라고 있었다. 여자도 갈 곳이 없었던 걸까. 한숨 돌리고 싶은데 그럴 장소가 없어서, 온기를 찾아 그렇게 떠돌아다닌 걸까.
    탄희는 여자의 사진을 벽에서 한 장씩 떼어냈다. 몇 장은 구겨버리고 몇 장은 품에 숨겼다. 공용 현관 앞에서 여자와 마주쳤을 때 이미 수십 장의 사진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만났네요.”
    여자가 환하게 웃었다. 아기는 없었다. 마스터키를 든 부동산 중개인이 여자 옆에 서 있었다. 탄희가 떼어낸 사진을 유심히 보던 여자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로 이사하려고요.”
    여자는 탄희의 반응을 기다렸다. 조심스럽고 고상한 자세였다. 다음 주쯤 박준을 초대해 갈치구이보다 그럴싸한 음식을 대접할 것 같았다. 탄희는 여자의 매끄러운 피부와 윤기가 흐르는 머리칼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여자는 밖이 아니라 안에 있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탄희 뿐이었다. 겉도는 이에게 진실을 말해주는 이웃은 없으니까. 통증인지 환멸인지 모를 떨림이 폐를 가득 채웠다. 그때 정연이 공용 현관을 통과했다. 커다랗게 확장된 정연의 두 눈이 여자에게 닿았다가 소스라치듯 탄희 쪽으로 미끄러졌다. 봐서는 안 될 걸 봐버린 사람의 반응이었다. 여자가 탄희를 지나 정연의 두 손을 잡았다.
    “권사님 덕분에 집 결정했어요. 감사해요!”
오싹한 침묵이 세 사람을 휘감았다. 정연이 기침을 시작했다. 몸이 꺾이고 관자놀이 핏줄이 불거질 만큼 거센 기침이었다. 침방울이 튀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입자가 사방으로 번져 나가고 있었다.
    “물 좀 가져다드려요?”
    아랑곳하지 않고 여자가 정연의 등을 문질렀다.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자연스레 튀어나온 몸짓이었다. 정연은 기침을 멈추지 않았다. 여자의 손을 뿌리치지도 않았다. 탄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탄희를 흔들던 바람이 멈췄다. 긴 고민도 끝났다. 호흡을 내뱉으며 천천히 아랫배를 쓸어내렸다.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눈동자를, 그 고요하고 사려 깊은 눈을 이제야 마주한 기분이었다.■

 

 

 

 

 

 

 

 

 

 

 

 

 

 

 

정무늬

작가소개 / 정무늬

202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터널, 왈라의 노래」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문장웹진 2020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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