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단편소설]

 

 

추락

 

 

김수영

 

 

 

    검은 물체가 유리벽을 스치며 떨어졌다. 줄이 흔들렸다. 줄에 매달린 내 몸도 따라 출렁거렸다. 줄을 잡은 손을 움켜쥐다가 비누 거품이 묻어 있는 스펀지 봉대를 놓칠 뻔했다. 식겁한 나는 안전판에 매달아 놓은 청소도구부터 훑었다. 스퀴지, 고무장갑, 옆구리 통은 제자리에 있었고, 안전줄과 여분의 안전판도 멀쩡했다. 마스크를 턱밑으로 내리고 숨을 골랐다. 머리와 부리, 날개 자국이 선명한 유리벽을 들여다보았다. 가볍게 흔들리는 털을 잡아떼었다. 새였나. 꿍얼대며 스펀지 봉대를 옆구리 통에 넣었다. 스퀴지를 집었다.
    유리벽에 스퀴지를 밀착시키고 구정물을 밀어 내렸다. 요즘 검은 양복에 흰 운동화가 유행이냐. 내 왼쪽에서 줄을 타는 마 사장이 물었다. 79층 높이의 케이 빌딩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는 남자를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못 들은 척했다. 섣불리 대답했다간 나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갈지 몰랐다. 스퀴지의 날선 면을 마른 수건으로 닦는데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팔꿈치로 조끼 주머니를 눌렀다.
    새대가리야? 작업 중 휴대전화 사용 금지. 마 사장이 버럭 화를 냈다. 귀도 밝으시네. 별것도 아닌데 화를 내는 게 아무래도 수상쩍었다. 불똥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진동이 빨리 끊기기를 바랐다. 보나마나 안부처럼 독촉 문자를 보내는 마고일 것이다. 확인도 하기 전에 이미 기분은 언짢았다. 꼬박꼬박 이자를 내는데도 그는 계속 쪼아댔다. 원금을 갚지 못하면 각오하라는 엄포까지 놓았다.
    나는 유리벽에 비친 하늘을 보았다. 비행운이 하늘을 쪼개며 지나갔고, 내 눈은 비행운을 따라갔다. 비행운을 경계로 하늘의 이쪽과 저쪽이 묘하게 달라 보였다. 비행기는 보이지도 않았으나 조종석에 앉은 희진을 보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흩어지는 비행운을 향해 안전 비행, 을 외쳤다.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비행운이 사라지자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벽엔 경계면이 번지고 어긋난 크고 작은 빌딩이 겹겹이 솟아 있었다. 도시 밖에서 도시를 조망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쁘지 않았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니까. 겹쳐지고 얼비치는 빌딩 사이로 노란 안전모가 떠다녔다. 줄에 몸을 의지한 채 케이 빌딩의 외벽에 매달린 내 모습이었다. 우주정거장에서 우주선 밖으로 유영을 나선 우주비행사라 해도 믿을 만했다.

 

    철수하라는 마 사장의 외침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노란 안전모 위로 빗방울이 톡 떨어졌다. 이 정도의 비에 작업을 중단하다니 의외였다. 잘못 들은 줄 알고 주춤거렸다. 빗방울이 유리벽을 때렸다. 비누 거품과 뒤섞여 땟물처럼 흘러내렸다. 유리벽에 들어가 있던 고층 빌딩들을 뭉그러뜨리고 무너뜨렸다. 노란 안전모도 깨뜨렸다. 그러나 이슬비 정도였고, 비 예보도 없었다. 적당한 비는 작업능률을 올려 준다는 사실을 마 사장이 모를 리 없었다. 빗물은 햇볕에 찌들고 바람에 눌린 때를 불려 준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반나절만 일해도 일당을 줘야 한다는 것 또한 잘 알 터였다. 나는 뚱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작업을 중단하는 게 맞느냐고 입으로 물었다.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은 뚱 아저씨는 더 해도 된다며 마 사장을 말렸다. 이럴 때 나도 한마디 거들어야 하나. 고심했으나 나는 입을 다물었다.
    철수하란다고 덥석 먼저 올라갈 순 없었다. 나는 줄에 매달린 채 뚱 아저씨를 주시했다. 그는 고무장갑부터 벗어 엉덩이 밑에 찔러 넣었다. 샤클을 조절하고, 나를 보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줄을 다룰 땐 손맛을 느끼는 게 우선이야. 힘들이지도 않고 줄을 말아 쥐었다. 민첩하고 정확한 손동작이었다. 그는 줄을 살살 당겨 가며 평지를 걷듯 줄을 타고 올라갔다. 외벽 청소 전문가다웠다.
    이젠 내 차례였다. 나는 눈썹 사이로 흘러내리는 빗물을 쓸어냈다. 바지춤에 손의 물기를 닦았다. 흡, 숨을 내뱉고 줄을 말아 잡았다. 아귀에 힘을 모으고 줄을 당겼다. 손맛은커녕 미끄덩거림만 심해졌다. 손바닥이 찢어질 듯 아팠고 손목이 시큰거렸다. 위를 보았다. 빤히 보이는데도 옥상은 닿을 수 없는 곳처럼 느껴졌다. 버벅거리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나는 태연한 척했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장화 발로 유리벽을 밟고는 숨을 토해 냈다.
    전방주시. 눈을 부릅뜨고 앞을 보라고. 어깨에 힘 빼고. 줄을 믿어. 옥상 난간에 기대선 뚱 아저씨가 소리쳤다. 그러니까 다섯 번이나 떨어지지. 뚱 아저씨는 툭하면 주행시험에서 떨어진 나를 놀려먹었다. 차도 없으면서 운전면허증은 뭐 하러 따느냐고 물었다. 사실이니 반박할 수도 없고 나는 얼굴만 벌게졌다. 차를 몰고 싶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올랐으나 삼켰다. 뚱 아저씨의 코치에 나는 더 당황했다. 평정심을 잃었고, 줄에 매달려 버둥거렸다. 머릿속으로는 올라가는데 몸은 요동을 치며 뚝뚝 떨어졌다.

 

    철수 완료했습니다. 마 사장의 보고를 들으며 나는 줄을 끌어 올렸다. 옥상 모서리까지 줄을 끌고 가서 훌라후프 모양으로 돌돌 말았다. 비닐 천막으로 덮고, 20킬로들이 물통을 올려 귀퉁이를 단단히 눌렀다. 나머지 청소도구까지 정리하고 나니 온몸이 녹작지근했다. 조끼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불을 붙였다. 뒤돌아서서 한 모금 깊게 빨았다.
    잘리고 싶어? 언제 올라왔는지 하 팀장이 눈을 부라렸다. 금연빌딩인 줄 모르느냐고 덧붙였다. 내뿜으려던 담배 연기를 꿀꺽 삼키며 나는 손톱으로 담뱃불을 껐다. 옥상도 빌딩의 일부인 건 맞으니까. 기침이 터져 나왔고 목구멍이 쓰라렸다. 승진 심사에서 떨어졌던 하 팀장은 가점을 받으려고 금연캠프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억지로 담배를 끊고부터 까칠해졌다더니 소문이 맞았다. 나는 꽁초를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옥상 문 안쪽으로 들어섰다. 비바람이 뭉텅뭉텅 들이쳤고 물비린내가 몸을 핥고 지나갔다.
    하 팀장이 빗속으로 뛰어나갔다. 서너 발짝 내딛기도 전에 우비에 달린 모자가 훌러덩 벗겨졌다. 줄을 쌓아 놓은 곳까진 가지도 못하고 되돌아왔다. 고개를 흔들고 제자리 뛰기를 하며 물을 털어냈다. 내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줄은 잘 덮어 놨느냐고 물었다.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빤히 지켜봐 놓고. 줄이 없으면 일을 못 한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비비 꼬인 줄이 나보다 귀한 몸인 것도. 나는 쫄딱 젖어도 줄은 두툼한 비닐 천막으로 씌워 놓는 이유였다. 오버라고 꿍얼거리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등 뒤로 바짝 붙어선 뚱 아저씨가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너도 오늘 검은 양복 봤어? 두루마리 휴지를 계속 바닥으로 굴린다던데. 귀에 대고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뉴스 속보라도 전하는 것처럼 진지하고 심각했다. 긴 꼬리를 나풀거리며 굴러가는 두루마리 휴지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굴러가다 사람들 발에 차이는 것도. 비에 젖어 흐물흐물 녹아버리는 것도. 그게 왜요. 반문하던 나는 하 팀장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나온이 사무실로 보내세요.
    까닭을 모르는 나는 어리둥절했다. 나는(생략) 마 사장을 쳐다보았으나, 뒤돌아선 모습만 보았다. 비에 젖어 몸에 쫙 달라붙은 작업복은 마 사장의 등과 굽은 어깨, 다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년 동안 줄을 탄 몸은 균형이 깨져 있었다. 나도 저렇게 구겨지려나. 중얼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뚱 아저씨에게 눈을 돌렸다. 그 역시 딴전을 부렸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일부러 나를 피하는 느낌이 들었다. 돌연 눈이 시었다. 답답하거나 억울할 때마다 눈이 먼저 반응하는 건 여전했다. 찜질방에서 땀을 빼면서부터 생긴 버릇이었다.
    연 이틀째 폭설이 쏟아지던 지난 12월, 나는 보험 가입을 거절하다 잘렸다. 배달만 잘하면 된달 때는 언제고. 나는 오토바이 값과 맞먹는 보험료가 없었다. 홧김에 당근 마켓 배달원에게 오토바이를 팔아치웠다.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헛헛하고 쓰라렸다. 찜질방에서 며칠을 죽쳤다. 남녀노소, 지위고하 가리지 않고 똑같은 땀복을 입는 찜질방이 마음에 들었다.
    사막만큼이나 건조하고 뜨거운 소금방에 혼자 누워 있을 때였다. 뚱 아저씨가 들어오더니 아들, 하며 식혜를 건넸다. 방글라데시에서 왔다는 그와는 찜질방에서 몇 번 마주친 게 전부였다. 아무나 아들이래. 나는 아들이라는 말이 거슬렸다. 한국에 일하러 온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두 달 전에 추락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엄마는 동네 할머니에게 갓난아이인 나를 맡기고는 찾지 않았다. 세탁소에 세탁물을 맡기고 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나는 ‘나온’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할머니의 손자가 되었다. 할머니까지 죽자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식혜 한 캔 얻어 마시고 사기를 당할지도 몰랐다. 웃으며 다가와 친한 척하다가 급소를 치고 팔을 비트는 사람이 넘치는 세상이었다.
    씻고 가라. 이도 좀 닦고. 마스크는 있냐?
    나는 노골적으로 지적하는 마 사장을 흘끗 쳐다보았다. 하 팀장이 부르는 이유를 묻고 싶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눅눅해진 청바지를 입고 배낭을 챙겼다. 옥상 아래층의 화장실로 갔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내 입에서 나는 냄새를 맡았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냄새가 있는 건 당연하지 않나? 입을 헹구면서 내게 물었다. 두루마리 휴지를 둘둘 풀어 입가의 물기를 닦았다. 뚱 아저씨가 소변기 앞에 서서 엉겨 붙은 곱슬머리도 단정히 빗으라고 말했다. 별걸 다 트집 잡는다고 하려다 참았다. 겉모습이 중요하다는 말이구나 싶었다. 마스크를 쓰고 내려가는 화물 엘리베이터에 탔다.

 

    종합관리실 앞에서 나는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똑. 똑. 문을 두드리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옆으로 밀었다. 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벽 같은 등이 나타났다. 이중벽인가? 내 말을 들었는지 등이 휙 돌았고, 충혈 된 눈이 나를 쏘아보았다. 기세에 밀린 나는 엉겁결에 한 발짝 물러섰다. 얕은 신음을 내뱉으며 눈을 찡그렸다. 한 주먹도 안 돼 보이는 새끼 고양이가 남자의 손에서 대롱거렸다.
    댁이 던진 겁니까?
    네? 아니요. 전 아닙니다.
    손사래를 치는 내게 남자는 깁스한 발을 가리켰다. 보시다시피. 눈을 부라렸고, 거친 숨을 내쉬는지 마스크가 들썩거렸다. 기분이 더럽다고 투덜댔다. 화를 내며 말했으나 그는 얼굴도 몸도 둥글둥글했다. 새끼 고양이를 바닥에 내려놓는 손놀림도 조심스러웠다. 움츠러들었던 나는 조금 안도했다. 그러나 속단은 금물이었다. 겉모습만 보는 단순 셈법 탓에 뒤통수를 맞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두 손을 모으고 서서 나는 최대한 예의를 갖췄다. 혹시 아까 떨어진 게…… 그럴 리가. 머릿속엔 온갖 추측이 난무했고, 불길함이 서슴없이 끼어들었다. 생각은 예기치 못한 나쁜 상황까지 이어졌다. 섣부른 말 한마디에 범인으로 몰릴지도 몰랐다. 나는 하 팀장 책상 위를 기웃거렸다. 불러 놓고 어디 간 거야. 그냥 가버릴까. 고민했다. 입술을 깨물며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칫솔을 들고 오던 하 팀장이 걸음을 멈췄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오므렸다. 남자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이게 뭡니까?
    빌딩에서 누군가가 던진 거죠.
    하 팀장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던지다뇨? 남자가 들이미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액정을 밀어 가며 사진을 하나하나 유심히 보았다.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옆자리의 의자를 끌고 왔다. 남자에게 내주며 정중하게 앉으라고 권했다. 셀카를 찍는 중이었거든요. 발등에 돌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기억하기도 싫은데 그래도 신고는 시민의 의무라서요. 남자는 깁스한 발을 들썩거렸다. 머리를 맞았으면 어쩔 뻔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죠. 하 팀장의 입가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놀랐겠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남자의 연락처를 묻고, 메모지에 적었다. 명함을 내밀며 바로 연락드리겠다고 굽실거렸다. 다른 곳은 불편하지 않으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다시 받자고 말했다. 억지웃음을 흘리며 남자를 배웅하고 들어왔다. 지옥에라도 다녀온 사람 같았다.
    나온. 따라와. 하 팀장은 서랍을 열었다. 거칠게 뒤적이더니 노트를 집어 들었다. 마스크를 쓰고는 앞장서서 사무실에서 나갔다. 영문도 모른 채 나는 그를 따라갔다. 사무실 앞의 긴 복도는 유독 어두컴컴했다. 동굴 같은 복도를 지나며 그는 누군가와 소리 죽여 통화했다. 복도 끝의 휴게실로 들어가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 사장이 급한 걸음으로 들어왔다. 숨이 차는지 헉헉거렸다. 마 사장에게 내 자리를 내주고 나는 옆에 앉았다.
    마 사장이라면 믿겠어요?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는 새도 지겨운데. 고양이 뒤치다꺼리까지 할 판이라니까. 환장할 일이지. 인스탄지 뭔지에 올리겠대요. 잡히기만 하면 손모가지를 비틀어버릴 겁니다. 내가.
    하 팀장은 양손으로 목을 비트는 시늉을 했다. 안경을 벗고 눈을 문질렀다.
    사실 낙하 사건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었다. 79층 높이의 케이 빌딩에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다양한 것들을 떨어뜨리고 다녔다. 종이컵, 물티슈 정도는 애교였다. 출입증, 안경, 고성능 이어폰 따위는 찾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고 했다. 액정이 박살 난 휴대전화와 아이패드, 심지어 노트북까지 떨어뜨린다고 들었다. 무엇이라도, 사람도 떨어뜨릴 수 있었다. 그러니 떨어지는 것을 가지고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었다.
    처음에 나는 두루마리 휴지산도 낙하물로 만든 줄 알았다. 초현대식 빌딩 앞에 있는 하얀색 두루마리 휴지산이 신성한 설산처럼 보여서였다. 문명과 자연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인가. 지나는 사람들이 한 번씩은 눈길을 주었다. 휴지산 옆엔 남자가 서 있었다. 휴지가 되어버린 소모품 계약을 이행하라는 팻말을 들고. 남자는 언제나 검은 양복을 입고 흰 운동화를 신었다. 휴지산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 휴지의 개수가 궁금했다. 가끔은 휴지 속에 빈 박카스 병을 꽂아 놓기도 했다. 식당에서 집어온 사탕을 놓고 두루마리 휴지를 집어온 적도 있었다. 힘들겠어요. 슬쩍슬쩍 움직여요. 누구도 안 보거든요. 관심 없다니까요. 남자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알려줬다.
    CCTV 돌리면 나오겠죠. 뭘 걱정하세요. 말은 태연하게 했지만, 마 사장은 떨리는 손끝을 감추려고 탁자를 톡톡 쳤다. 하 팀장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입을 가리고 무언가를 속삭이듯 말했고,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나는 두 사람의 심각한 표정을 살피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모르는 소리. 작정하고 꼬투리 잡으면 방법이 없어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게 있나. 말을 하면서도 하 팀장은 손가락으로 머리통을 마구 긁어댔다. 일인 시위자는 반년 넘게 난리 치고 있지. 나온 문제도……. 말을 하려다 나를 흘긋 쳐다보았다.
    손거스러미를 뜯고 있던 나는 손을 털었다. 정신이 번쩍 날 만큼 아팠고, 피가 났다. 잘못 뜯은 모양이었다. 아픈 손을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었다. 도대체 나는 왜 부른 거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기다렸다. 나온은 내 말대로 합시다. 잘못하면 우리도 다치거든. 서류를 만들거나, 아예 없던 일로 하는 게 맞아요. 들통나지 않게 조심하고. 하 팀장은 마음대로 결론을 냈다. 들고 온 노트에서 종이를 꺼내 마 사장 앞으로 밀었다.
    씁시다.   
    뭘 써요? 팀장님도 참. 프로끼리 왜 이러세요.
    프로니까 써야지.           
    우린 줄 하나에 목숨을 거는 전문가예요. 나온인 또 다른 문제고요.
    마 사장의 얼굴빛이 콘크리트 색깔로 변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고 따졌다.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게 고공 작업이에요. 제 몸 추스르기도 힘든데 고양이를 데리고 올라가다니. 절대 아니에요. 그럴 이유도, 여유도 없어요. 흥분했는지 그는 말까지 더듬었다. 알지. 나도 다 알아요. 그런데 지금 상식을 따질 때가 아니라니까. 하 팀장은 TV 뉴스에 나오고 싶냐, 다음 일은 안 할 거냐고 은근슬쩍 회유했다. 순식간에 훅 간다고도 했다. 마 사장은 찌푸린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두 손으로 머리통을 감싸 쥐었다.
    나온. 마 사장이 다정하게 불렀다. 쓰자. 간단히. 나는 무슨 말이냐고 묻는 듯 그를 보았다. 절대 아니라면서 뭘 쓰라는 건지 의아해하며 백지를 받았다. 흰 종이가 뭐라고 손이 떨렸다. 얼굴이 달아올랐고 입이 말랐다. CCTV 확인이 먼저 아니냐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마 사장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 불러 주는 대로 받아쓰면 된다고,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고양이를 떨어뜨린 건 실수였다, 필요한 책임은 지겠다고 불러 줬다. 가슴 속에선 불이 솟구쳤으나 내 손은 마 사장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손이 떨렸고 글씨도 따라 삐뚤거렸다. 볼펜 똥이 흘러나와 글자를 더럽혔지만 내버려두었다. 마 사장의 주둥이를 볼펜 똥으로 찍고 싶었다. 이름 쓰고, 사인하라는 말을 듣고는 볼펜을 탁 내려놓았다. 배낭을 들고 휴게실에서 뛰쳐나왔다. 화물 엘리베이터를 탔다.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새 빗줄기는 굵어졌고 바람까지 불었다. 나는 비를 맞으며 줄을 걷어찼다. 오른발을 들고 빙빙 돌았다. 엄지발톱이 소리도 지르지 못할 만큼 아팠다. 달릴 때 뛰어내릴 자신 있어? 무서우면 포기하고. 병기는 살금살금 약을 올렸다. 그때도 비가 추적추적 내렸고 길이 미끄러웠다. 나는 죽기 살기로 자전거 뒤에 올라탔다. 중심을 잡으려는 순간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고 정신을 잃었다. 그러게 뭐 하러 뛰어내려. 병기가 아니었으면 죽을 뻔했잖아. 나중에라도 만나면 고맙다고 해라. 쿨럭거리면서도 할머니는 담배를 깊게 빨았다. 나는 그게 아니라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넘겨짚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기운이 없었다.
    뚱 아저씨가 비 맞지 말고 들어오라고 소리쳤다. 나도 여러 번 썼어. 그 말에 속이 더 뒤집혔다. 나도 했으니 너도 하라는 건 아니죠. 모가지가 여러 개 있는 것도 아닌데. 덩달아 내 목소리까지 커졌다. 쟤네들도 구리거든. 고용계약서. 그거 안 썼지?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뚱 아저씨는 나만 믿으라고 말했다. 별일 없을 거라며 내 등을 토닥였다.
    나온. 그래도 마 사장은 건드리지 마.
    왜요?
    답답하기는. 정말 몰라?           
    뚱 아저씨는 조곤조곤 말을 이어 갔다. 꼬리부터 자르는 게 이 바닥 생리야. 자르지 않는 건 같이 가자고 손을 내미는 거지. 못 이기는 척 잡아. 그는 빗물이 모여 배수구로 흘러가는 것을 가리켰다. 무겁고 축축한 침묵이 흘렀다. 뚱 아저씨는 찜질방이나 가자며 내 팔을 잡아끌고 화물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난 계단으로 내려갈게요. 비상구 표지 속의 뛰어가는 사람을 보며 나는 팔을 뺐다.
    딱. 딱. 딱. 규칙적인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벽을 보고 서 있었다. 10층과 9층 사이에 있는 비상구 표시 앞이었다. 흰 운동화를 본 나는 내 운동화로 시선을 돌렸다. 대림동 시장에서 산 내 운동화와 같은 상표였다. 지포라이터를 딸각거리던 검은 양복이 뒤를 돌아봤다. 나를 보고는 바로 눈을 내리깔았다.
    여긴 어쩐 일로. 검은 양복이 먼저 입을 뗐다. 그냥 운동 삼아요. 심드렁한 대꾸에도 고개를 끄덕여 줬다. 사탕은 고마웠어요.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까딱이고는 계속 내려갔다. 딱. 딱. 딱. 절규 같은 라이터 소리가 계단을 타고 굴러 떨어졌다. 터벅터벅 내려가던 나는 이상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양복이 창문을 연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후줄근한 검은 양복 안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꺼내더니 창문 밖으로 던졌다. 꼬리를 흔들며 떨어지는 두루마리 휴지가 보이는 것 같았다.
    한강에 투신이라도 해야 할 판으로 시작하는 마고의 독촉 문자가 날아들었다. 나는 어금니를 물었다. 마고가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리는 것은 나 역시 원치 않았다. 빚은 퍼내도 다시 차는 샘물처럼 갚아도 갚아도 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늘어났다. 뚱 아저씨에게 소개비를 찔러 주느라 이백삼십만 원을 빌린 게 전부였는데 갚을 돈은 오백만 원까지 늘어났다. 마고의 이상한 계산법에 따르면 그랬다. 나는 불길해, 무섭다고, 까지 읽다가 문자를 지웠다. 어깨에 멘 배낭을 추켜올렸다. 일당을 받으면 얼마라도 갚아야겠네. 계단을 내려가며 생각했다.
    계단 난간에 기대서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어둠에 잠겨 있는 바닥은 멀게만 느껴졌다. 낮엔 허공에 매달려 유리벽을 닦고, 밤엔 땅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일상이 한 달 이상 계속되었다. 그러고 보니 비가 고마웠다. 땀이라도 뺄 겸 찜질방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유튜브에서 노래를 검색했다.
    휴대전화가 떨었다. 액정엔 경비행기 사진이 떴다. 희진? 내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예비 파일럿인 그녀를 나는 인터넷 카페인 ‘날사모’에서 알았다. 날사모는 날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신의 직장을 때려치우고 그녀는 조종 훈련을 삼 년째 받고 있다고 했다. 의욕만 넘쳐서 일 년 차 때 이륙하다 비상 착륙했잖아요. 6개월 훈련 정지를 먹었죠. 포기란 없어요. 하늘을 날 건데 그 정도 대가는 치러라, 뭐 그렇게 여겼죠. 실수나 약점까지 선선하게 털어놓는 그녀의 솔직함에 나는 빠져들었다.
    빨간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다녔다. 자동차 운전면허도 따지 못했지만, 하늘을 나는 꿈을 꿨다. 희진의 팬이, 열성 댓글러가 되었고, 그녀의 연습 비행 일정이 뜰 때마다 초대받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다. 다음에 초대할게요. 거절을 밥 먹듯이 당했으나 괘념치 않았다. 이번에도 거절 문자였다. 아쉬운 마음에 나는 공중에서 하늘을 배경 삼아 찍은 셀카 사진을 보냈다.
    케이 빌딩의 후문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우산을 사야 하나 망설였다. 먼지 냄새가 섞인 비바람이 유독 나에게만 몰려왔다. 비를 피해 뒷걸음질 치던 나는 누군가의 발을 밟았다. 엉거주춤 발을 들고 뒤를 돌아보았다. 눈썹을 팽팽하게 모은 마 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원수도 아닌데 왜 자꾸 만나는 거지. 짜증을 감추고 나는 그의 번들거리는 이마에 대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다고 말하고는 도망치듯 빗속으로 뛰어나갔다.

 

    비는 그쳤으나 대기는 뿌옜다. 밤늦게까지 비를 맞으며 싸돌아다닌 게 화근이었나. 몸이 으슬으슬 춥고 열이 떴다. 나는 밤새 깊은 바다 속을 헤맸다. 어두운 바다 속에서 모르는 곳을 흘러 다녔다. 생소한 곳에 머물기도 했다. 몇 시간 동안 몇 겁의 삶을 지나쳐 온 듯했고, 지금도 여전히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느낌이었다. 머리가 철사 줄로 조인 것처럼 지끈거렸다. 그러나 어제의 나와는 조금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나는 콘크리트 벽에 단단히 고정된 도넛 모양의 앵커 앞에 섰다. 줄을 앵커에 결박하기 시작했다. 손에 익은 작업인데도 버벅거렸다.
    목숨 줄이야.
    뚱 아저씨의 예리한 눈에 발각되었다. 나도 알아요. 웅얼대며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줄을 잡고 난간에 바싹 엎드려 밑을 내려다보았다. 현기증이 일어 눈을 감았다. 위에서 보기 때문이야. 도시는 위협적이지도 배타적이지도 냉혹하지도 않아.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문제지. 나를 다독이고는 눈을 떴다. 다시 밑을 보았다. 작고, 알록달록한 점들이 가까워졌다간 멀어졌고, 와르르 몰려들었다간 산산이 흩어졌다. 때로는 제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개미 군단이 이동하는 것 같았으나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그 속 어딘가로 내려앉아도 나 하나쯤은 괜찮을 것 같았다.
    이어폰 볼륨을 높였다. “너는 내 꿈의 출처. 걱정하지 마.” 나는 비티에스의 「디엔에이」를 반복해서 흥얼거렸다. 줄을 가슴 앞으로 당겼다. 몸을 허공에 띄웠다. 발밑에서 움직이는 수많은 점을 보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안전판과 내 몸이 중심을 잡았다. 뚱 아저씨가 이어폰을 휙 잡아당기는 바람에 몸이 휘청했다.
    남의 말도 들어야지.
    나는 줄을 그으며 떨어지는 이어폰을 내려다보았다. 입이 탔다. 일주일 전, 내 생일날 나에게 주는 선물로 산 새 이어폰이었다. 비싼 건데. 이어폰을 좇던 나의 시선이 허공에서 멈췄다. 허공엔 위아래 구분이 없었다. 위와 아래는 어쩌면 내가 만든 허상인지도 몰랐다. 이어폰은 떨어진 게 아닌지도 몰랐다. 그럼 뭐지?
    오늘 로또 사러 갈까. 뚱 아저씨가 목소리 톤을 올려 물었다. 로또를 믿느니 나를 믿으세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바로 거절했다. 1등 당첨자가 나왔다는 복권 판매소 순례는 그만 하고 싶었다. 당첨 확률이 대충 800만 분의 1이라면서요. 물리 교사였다는 것도 뻥이죠. 만날 꽝만 나오는데 뭐 하러 사요? 찜질방엘 한 번 더 가는 게 낫지. 나는 대놓고 반박했다. 모르는 소리. 그는 비밀이라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부적이거든. 그의 진지함에 나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나는 달랐다. 로또 따윈 믿지도, 사지도 않았다. 로또 당첨은 나를 버린 부모를 다시 만날 확률과 비슷했다.
    항공 장애등의 강한 빛이 눈을 찔렀다. 케이 빌딩 옥상에선 헬기 이착륙이 가능했고, 멀지 않은 공항에선 수시로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 그래도 그렇지.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빛을 쏘아대다니. 나는 답답해서 잘 안 쓰는 작업용 고글을 찾다가 창문이 열린 것을 발견했다. 버티컬 블라인드 사이로 슬쩍슬쩍 내부가 보였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슬금슬금 안을 훔쳐봤다. 내부는 의외로 휑하니 비어 있었고, 차가운 초록색의 넝쿨 식물이 주홍색 벽을 타고 올라갔다. 뭐 하는 데야? 궁금증을 억누를 수 없어 대놓고 들여다보았다.
    벽에 기댄 나무 사다리, 사다리를 밟고 선 작업화가 보였다. 페인트로 얼룩진 바지가 보이더니 천장과 맞닿은 넝쿨손을 지우며 흰 페인트가 쓱 지나갔다. 그 옆에선 다른 작업자가 벽에 각기 다른 길이와 굵기의 각목을 무작위로 댔다. 타타타닥. 타타타닥. 전동 못을 치는 소리가 타악기를 치는 것처럼 울려 퍼졌다. 나는 사무실 리모델링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바닥에 쌓인 각목 더미로 페인트 통이 떨어졌다. 페인트가 쏟아져 바닥에 허연 지도가 그려졌다. 각목을 치던 작업자가 지도 끄트머리를 밟았다. 사다리 위에 있던 작업자도 지도 위로 내려섰다. 둘은 발을 하나씩 떼고 서로를 쳐다봤다. 표정 없이 노려보더니 미친 듯이 웃어댔다. 나는 유리 창문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괜찮으냐고 묻고 말았다. 어디 있었는지 카메라맨이 나타났다. 비키세요. 마스크를 내리며 소리쳤다. 무안해진 나는 고개를 빼고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케이 빌딩 꼭대기에서 점심이라니. 기압도, 온도도, 높이도, 풍경도 완전히 다른 곳에서 밥을 먹을 줄이야. 나는 소풍 가는 아이처럼 들떴다. 느긋하게 먹으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난간에 기대니 도시가 눈 아래 있었다.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보았던 번지점프가 떠올랐다. 돈을 내면서까지 떨어지려는 사람들, 극한의 공포를 자초하는 사람들, 그들은 나와 달랐다. 안전망이 있으니까. 떨어져도 죽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다 먹고살자는 거야.
    마 사장의 극에 달한 허세가 귀에 쏙 들어왔다. 좋은 일이 있나 보죠? 짜장면 그릇을 마 사장에게 건네는 뚱 아저씨의 목소리도 유쾌했다. 주식이 반 토막 났어. 마 사장이 나무젓가락을 둘로 쪼개며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종잡을 수가 없는 게 주식이야. 탕수육을 우적우적 씹었다. 내일 폭등할지 누가 아느냐고 떠벌렸다. 말끝에 곧 다음 일이 나올 것 같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하 팀장의 언질이라도 받은 건가. 많이들 먹으라고 챙기는 그의 말이 풍선처럼 가벼웠다.
    나온인 사진 있나? 없으면 명함판 사진 찍어서 몇 장 가져와. 마 사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류를 만든다는 말은 흘려들었다. 일당을 받는 날이었다. 돌발변수가 생기면 곤란했다. 나는 표정을 관리하느라 애썼다. 온몸이 욱신거려도 끽소리 않고 일하는 이유였다.
    오후엔 속도 좀 냅시다.
    마 사장의 한마디에 면을 흡입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짜장면에 탕수육까지 남김없이 먹고, 뚱 아저씨는 배낭에서 파스를 꺼냈다. 무릎에 파스를 꾹꾹 눌러 붙였다. 내일은 흐리거나 비가 올 것 같다며 무릎을 주물렀다. 배낭을 베고 누워 모자로 얼굴을 가렸다. 나는 젓가락과 일회용 그릇, 휴지와 짜장이 묻은 랩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묶었다. 비닐봉지를 도구 상자에 쑤셔 넣고는 난간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압박붕대를 감은 손목을 보았다. 당분간은 손목을 쓰지 말라는 약사의 말을 떠올렸다. 죽으라는 거지. 눈꺼풀에 힘이 빠지면서 저절로 눈이 감겼다.
    계단에서 누굴 봤다고? 케이 빌딩은 아무나 못 들어오잖아. 뚱 아저씨가 묻는 말이 내 귀에는 자장가처럼 들렸다. 책임이요? 마 사장의 격앙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휴대전화 저쪽에서 말하는 소리 역시 소음처럼 귓속을 파고들었다. 니 아버지는 공사용 엘리베탄지 뭔지에서 떨어졌다더라. 코를 팽하니 푸는 할머니의 걸걸한 목소리도 들렸다. 육시랄 놈들. 나사를 뭐 한다고 미리 빼놓냔 말야. 시간이 그렇게도 아깝어? 목숨이 질기다는 옛말도 다 헛거여. 말을 하면서도 할머니는 헉헉거렸다.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나도 숨이 막혀 컥, 숨을 뱉어냈다. 윙윙대는 바람소리가 시끄러웠다. 마구잡이로 섞여 들어오는 소리가 귓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나는 손으로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렸다.   
    그건 아니죠.               
    마 사장의 외침에 나는 눈을 떴다. 뚱 아저씨를 흔들어 깨웠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우리야 어디서든 일만 하면 되니까. 줄을 내리면서 들었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뚱 아저씨는 눈을 반쯤 떴다 도로 감으며 손을 저었다. 모른다는 건지, 말하지 않겠다는 건지, 상관 말라는 건지.
    나온. 마 사장이 정답게 불렀다. 낙하물 말이야. 그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뜸을 들였다. 이 바닥이 좁아요. 소문이 금세 번지거든. 잘 해결될 거 같아. 그는 새삼 친한 척하며 나를 보았다. 배상금이 부담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원 팀이니까. 동등하게 나눠 내자고. 은근슬쩍 덧붙였다. 반은 내가 낼게. 선심이라도 쓰듯 말했다. 일당의 일정 금액은 포기하라는 통보였다. 어쩌면 앞으로 일할 날들의 일당까지 줄어들지도 몰랐다. 지난번 일당도 반밖에 못 받았는데. 보험에서 일부 나올 거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태연한 그의 말에 나는 태연치 못했다.

 

    줄이, 내 몸이 흔들렸다. 안전판이 휘청거렸다. 안전판에 달린 쇠고리들도 철커덕거렸다. 유리벽을 치고 튕겨 나온 바람이 뺨을 때렸고, 몸을 붕붕 띄웠다. 바람만 잘 타면 나도 날아오를 수 있을까. 그건 나중 일이었다. 당장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고, 청소도구 챙기기에 급급했다. 일하는 속도가 늦어졌다.
    저게 뭐야?
    뚱 아저씨의 목소리가 바람에 흩어졌다.
    나는 눈을 끔벅거렸다. 바람을 정통으로 맞은 눈이 쓰라렸다. 눈물까지 그렁그렁해 앞을 보기 힘들었다. 엉겁결에 두 다리를 꼬았고, 엉덩이에 힘이 들어갔다. 꼰 다리 옆으로 무언가가 휙 지나갔다. 순식간이었다. 또 새인가. 돌풍을 잘못 본 것인지도 몰랐다. 다리가 들렸고,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이대로 떨어질 것 같았다. 두려움에 휩싸여 나는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배에 힘을 주며 중심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몸이 경직되었고, 손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손바닥에서 불이 활활 타올랐다. 불은 손을 태우고 팔과 어깨로 번져 나갔다. 줄을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내 오른쪽에 있던 뚱 아저씨가 발을 퉁퉁 튕기며 다가왔다. 겁먹지 마.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내 줄을 잡았다. 엉덩이를 좀 더 굴려야지. 내 샤클을 조이며 빙글거렸다. 나는 그의 농담을 받을 여유가 없었다. 내 말을 믿어. 줄만 놓지 않으면 떨어지진 않아. 진짜라니까. 천천히 하라며 그는 내 안전판을 밀어 올렸다. 나는 19층까지 내려와 있었다. 옥상보다는 지상이 더 가까웠다. 내려가야겠다고 결정하자 손놀림이 빨라졌다. 바닥이 가까워져서인지 몸이 한결 가뿐했다.
    3층까지 내려온 나는 잠시 멈췄다. 줄에 이마를 대고 숨을 골랐다.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경광등 불빛이 유리벽을 붉게 물들였다. 불이라도 났나.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케이 빌딩 입구로 119 구급차가 달려왔다. 경찰차도 연달아 도착했다. 방호복을 입은 응급요원과 검은 마스크를 쓴 경찰들의 발소리, 무전기 소리, 비키라고 외치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비키세요. 비키세요. 경찰들이 모여서 구경하는 사람들을 밀어냈다. 유리벽 청소 작업 때문에 쳐놓은 노란 안전 펜스 바깥으로 접근 금지가 쓰인 줄이 쳐졌다. 줄을 따라 마스크를 쓴 경찰들이 인간 벽을 만들었다. 누군가 검은 지프 옆이라고 외쳤다.
    무슨 사고래요?
    차가 돌진했대. 급발진인가 봐.
    날벼락이네.
    아냐. 사람이 떨어졌다던데.
    모여든 사람들이 제각기 뱉어내는 말에 귀가 어지러웠다. 흰 두루마리 휴지산에 박혀 있는 검은 지프가 보였다. 내동댕이쳐진 두루마리 휴지가 긴 꼬리를 풀어헤친 채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바닥을 덮은 검은 천 주변은 검붉은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반으로 쪼개진 팻말, 찌그러진 모자를 치우는 하 팀장이 보였다. 그 옆에서 경찰이 뒤집힌 흰 운동화를 주워 봉투에 담고 있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몸이 떨렸다.
    나는 가만가만 화단 쪽 덤불 사이로 내려섰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주춤거렸다. 검은 천 밖으로 삐져나온 발가락을 보았다. 순간 심장이 들썩거렸다. 앞뒤 가리지 않고 검은 천 가까이 뛰어갔다. 검은 천 끝을 잡았다. 들어 올리려는 순간이었다. 뒤에서 누군가가 내 팔을 잡았다. 끌어당겼다. 몸이 질질 끌려갔다. 사고현장에 손대지 마세요. 나가세요. 나를 줄 밖으로 밀어냈다.

 

 

 

 

 

 

 

 

 

 

 

 

 

 

 

김수영

작가소개 / 김수영

2018년 단편소설 「애도의 방식」으로《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 2020년 단편소설 「종이집」으로《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문장웹진 2020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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