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영업하시나요

[단편소설]

 

 

크리스마스에 영업하시나요

 

 

이덕원

 

 

 

    “사흘은 좀 사일 같지 않니?”
    엄마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시위하는 사람처럼 엄마를 향해 들고 있던 휴무 안내문을 내 쪽으로 뒤집어 보았다. 하지만 ‘내부 수리로 인해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사흘간 휴무입니다’라는 문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사흘은 삼일이지 사일이 아니니까. 고개를 들어 엄마를 다시 바라보았다. 엄마는 동의를 구하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삼일이든 사일이든 뭔 상관이야. 이제 우리 가게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들었다.
    “얘, 그럼 못써. 그래도 우리가 하던 가겐데 잘 되면 좋지.”
    “그런 사람이 물건을 이렇게 죄 뺐어?”
    나는 턱짓으로 홀을 가리켰다. 카운터 의자에 앉아 히터를 쬐던 엄마가 몸을 곧추세우고 휑한 실내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처연한 눈빛이 마지막 길을 떠나는 운구차처럼 등받이 의자 위 벽과 창가 테이블 뒤 가림벽, 출입문 옆 바닥, 카운터 위 허공에 고르게 머물렀다. 저기 없으나 있었던 것들을 기억할 사람은 오직 엄마와 나 둘뿐이었다. 문득 엄마와 너무 안 좋은 기억만 나눠 갖는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서글퍼졌다.

 

    삼 년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시 외곽의 국도변에서 혼자 작은 한식집을 운영했다. 그래서 나도 학창 시절에는 방학이면 가게에 나가 홀 서빙과 계산을 거들곤 했었다. “엄지 접어, 엄지!” 하는 엄마의 잔소리를 들어가면서. 서빙할 때 그릇 안쪽을 쥐면 손님들이 보기에 안 좋다는 것이었다. 옆에서 본 엄마의 음식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소 허파 기름에 고춧가루와 간 마늘, 다진 파를 넣고 볶아 다대기를 내는 육개장은 감칠맛이 돌았고, 프라이팬 가장자리에 간장을 두르고 센 불에 살짝 태우는 제육덮밥은 불 맛이 그만이었다. 여름에는 국산 콩을 불리고 삶고 까고 갈아서 만드는 콩국수도 아주 별미였다. 인근 농공단지에 구내식당이 들어오고 가게 뒤편에 큰길이 난 뒤로 장사가 예전만 못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런 음식 맛을 잊지 못하고 부러 찾아오는 단골들이 적지 않았다. 내가 이직한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오지만 않았더라면 엄마로서는 굳이 가게를 정리하고 시내까지 나올 필요가 없었던 셈이다. 요즘 나를 가장 괴롭히는 건 다름 아닌 그런 사실이었다.
    그해 여름 내내 엄마와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가게 자리를 보러 다녔다. 아직 차를 사기 전이라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가지 않을 때는 별수 없이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발품이 무색하게 마땅한 자리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는데 어쩌다 한 사람의 마음에 들더라도 다른 한 사람의 마음에는 차지 않기 일쑤였다. 위치가 어떠니 구조가 어떠니 이유야 늘 많았지만 사실 결정적인 이유는 여기구나 싶은 곳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미적거리는 사이 시간이 흘러 어느덧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초조해진 우리는 자신이 마음에 들어 했던 자리를 놓친 걸 아쉬워하며 은근히 서로의 까탈을 탓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결혼 준비를 하다 왜 많이 싸웠다고 했는지 그제야 좀 알 것 같았다. 엄마는 어땠는지 몰라도 나는 매일 아침 어지간하면 이제 엄마의 의견에 따라 주어야지 하고 다짐하곤 했다.
    그날도 나는 그런 마음으로 별 기대 없이 엄마와 함께 부동산 중개인을 따라나섰다. 한 아파트 상가 옆 이면도로로 들어선 차가 아파트 후문 옆에서 재차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자 고즈넉한 골목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오래된 단독주택 예닐곱 채와 정면 외벽만 리모델링한 이층 건물 여남은 채가 양옆으로 옹기종기 늘어서 있는 골목이었다. 정면으로는 대로 건너편에 자리 잡은 가전제품 매장이 바라보였는데 그렇다면 그 앞에는 방금 전 지나온 도서관 앞 사거리가 있을 터였다. 아무래도 아파트 후문과 사거리 한 대로를 T 자 형태로 이어 주는 뒷골목인 듯싶었다. 골목 초입에 두 곳이나 있는 미용실 앞을 빠르게 지나친 차는 부동산 중개소와 건축사무소, 송어 횟집, 골동품점, 문구 공장 앞을 계속해서 그대로 통과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지나가는 골목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차가 우뚝 멈춰 선 건 그때였는데 골목 끝에서 두 번째 건물 일층인 칡냉면집과 마지막 건물로 대로에 인접한 모퉁이 일층인 커튼집 사이에 막 다다라서였다. 차에서 내린 부동산 중개인은 그중 칡냉면집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나는 가게 앞에 잠시 멈춰 선 채 이층 창문 옆에 세로로 큼지막하게 달린 칡냉면집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멀리서 보고 하늘색인 줄 알았던 간판은 파란색이 바랜 것이었다. 앞에서 부동산 중개인이 그런 나를 돌아보고는 주인이 바뀐 지 얼마 안 된 건물인데 예전 건물주인 노부부가 일층에서 장사하며 이층에 살았던 터라 일이층 모두 비어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엄마는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주방 시설을 둘러보았고, 나는 내 구역이라고 할 수 있는 홀에 남아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글자 그대로 노포가 있던 자리이다 보니 인테리어 비용이 적잖이 들어갈 듯했다. 일단 좌식 식탁 여덟 개가 놓인 한쪽 마루부터 뜯어내야 할 것 같았다. 좌식 구조면 서빙 하는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식당에도 작은 방이 하나 딸려 있었는데 그리로 서빙 할 때마다 슬리퍼를 벗고 방으로 올라가 허리를 숙였다 세운 뒤 다시 방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는 과정이 추가되곤 했다. 그런데 전부 좌식 식탁이니 이대로 장사를 했다가는 내 허리와 무릎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었다. 다행히 요즘에는 시에서 입식으로 바꾸는 음식점들에 보조를 해준다는 말이 있었다.
    어느새 나는 머릿속으로 바닥을 뜯어낸 홀에 입식 식탁을 배치해 보고 있었다. 계약하는 쪽으로 마음이 이미 기울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번화하지도 외지지도 않은 이 골목이 왠지 우리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한 블록 거리에 요 앞 아파트와 동일한 브랜드의 아파트가 추가로 건설된다는 소식도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엄마의 생각이었다. 나는 여덟 번째 식탁까지 홀에 놓아 본 뒤 배식구 쪽으로 걸어가서 엄마의 표정을 확인했다. 주방을 두리번거리는 엄마의 얼굴은 모처럼 밝아 보였다. 처음으로 우리 둘 다 여기구나 싶은 곳을 찾은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날 저녁식사에 반주를 곁들이다 그러게 내가 뭐랬느냐고, 기다리다 보면 곧 좋은 자리가 나타날 거라지 않았느냐고 말했던 사람이 나였는지, 아니면 엄마였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여름내 가슴 속에 쌓여 있었던 응어리가 풀어지면서 사뭇 온화했던 식탁의 분위기와, 기대감에 한껏 들떴던 엄마의 표정만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가게 이름은 의외로 쉽게 정해졌다. 가게 근처 골목이 ‘송림길’이라고 했는데 도로명주소치고는 썩 괜찮은 이름이었다. 엄마가 먼저 ‘송림’ 뒤에 ‘식당’을 붙이면 어떻겠느냐고 아이디어를 냈고 나는 흔쾌히 그걸 받아들였다. 골목 이름의 유래를 알게 된 건 정작 간판을 내걸고 며칠 지나서였다. 가게 앞에서 한 어르신이 간판을 한참이나 올려다보고 계시기에 내가 밖으로 나가서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드린 날이었다. 어르신은 가게 이름을 아주 잘 지었다고 하시고는 지금처럼 건물들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이 일대에 소나무가 빽빽했었다고, 그래서 송림길인 거라고 하셨다. 어르신의 말씀에 나는 골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러자 소나무라고는 골목 반대편에 한 그루뿐인 이 골목에서 괜히 솔 내음이 나는 것 같았다.

 

*

 

    밖에서 끼이익 하고 물먹은 오토바이 소리가 났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니 검은색 계열의 오토바이 한 대가 우리 차 앞에 멈춰 서 있었다. 언뜻 보기에 배달 대행 오토바이 같았는데 낮 동안 눈을 고스란히 맞고 다닌 모양이었다.
    “장운가 본데?”
    옆에서 엄마가 무릎을 짚고 일어나며 말했다. 나는 오토바이를 다시 쳐다보았다. 운전자가 몸을 한쪽으로 기울이며 오토바이에서 내리고 있었다. 헬멧을 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중키에 직각으로 딱 벌어진 어깨가 장우 형처럼 보이기는 했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운전자가 우리 가게 출입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나는 휴무 안내문을 카운터에 올려놓고 출입문 쪽으로 다가갔다. 차가운 겨울바람과 함께 그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헬멧을 벗어젖혔다. 정말 장우 형이었다. 형은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엄마에게 고개를 꾸벅인 뒤 대로에서 보니 가게에 불이 켜져 있기에 들렀다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어디서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소리를 듣고 찾아와 준 것 같았다. 엄마가 카운터를 돌아 나오며 안쓰럽다는 얼굴로 “춥지?” 하고 물었다. 형이 장갑을 벗어 겨드랑이에 끼며 기온이 많이 떨어졌다고, 내일 아침에는 완전 빙판길이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천천히 다니라고, 되도록 골목으로는 다니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정수기 앞에 선 형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커피믹스와 종이컵을 하나씩 뽑아 들었다.
    “어머, 장우 머리 예쁘게 잘 잘랐네.”
    엄마의 목소리 톤이 갑자기 높아졌다.
    그러고 보니 장우 형의 머리 모양이 바뀌어 있었다. 포마드를 바른 듯한 윗머리가 헬멧에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가지런히 뒤로 넘어가 있었다. 뭔가 깔끔해 보인다 했더니 머리 때문이었던 것이다. 엄마는 인물이 아주 확 산다고, 진작 그렇게 자르지 그랬느냐고 칭찬을 이어 가며 무심결에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한때 남자치고는 다소 긴 머리를 치렁거리며 엄마를 노심초사하게 했던 사람이 바로 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가게를 그만둔 뒤로는 머리를 점점 짧게 잘라 버릇하더니 이번에는 아예 옆을 시원하게 밀어버린 것이었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형은 뾰족하게 만 커피믹스 봉지로 종이컵 안을 저으며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었다.
    오랜만에 장우 형 얼굴을 보니 문득 규승이 생각이 났다. 안 그래도 얼마 전 규승이의 안부가 궁금해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훑어 내려간 적이 있었다. 일본에 있다는 규승이의 프로필에는 스타벅스 간판을 내건 일본 전통가옥 사진과 뜻 모를 일본 한자 두 글자만이 덩그러니 올려 있을 뿐이었다. 나는 형에게 규승이랑은 연락을 하느냐고 물었다. 형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종이컵을 든 채 옆으로 돌아섰다.
    “회사 일이 바쁜 거 같더라고. 답장이 하도 늦어서 난 도쿄가 여기랑 시차 있는 줄 알았잖아.”
    장우 형이 그렇게 대답하고는 쾌활하게 웃었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배달 장사를 시작한 건 작년 봄부터였다. 개업 초의 거품이 걷히고 실상이 드러나자 홀만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당초 나는 배달 대행에 맡길 생각이었다. 요즘에는 다들 그렇게 했으니까. 하지만 엄마가 그것만은 한사코 반대했다. 우리 음식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봉지만 덜렁 들고 가 손님에게 내미는 게 싫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토바이 두 대를 장만한 뒤 생활정보지에 구인광고를 냈고 며칠 지나 장우 형과 규승이를 만나게 되었다. 같은 피자집에서 일했다는 두 사람은 한눈에도 무척 가까운 사이인 듯 보였는데 야간에 이인 일조로 함께 대리운전도 한다고 하니 실제로 잠잘 때를 빼고는 늘 붙어 있는 셈이었다.
    휴무 전날 저녁 엄마와 나는 장우 형과 규승이를 환영하기 위해 회식 자리를 마련했다. 회식이라고 해보았자 치킨과 족발을 시키고 홀 냉장고에서 소주 몇 병을 꺼낸 게 전부인 단출한 자리였다. 나는 두 사람에게 첫 잔을 따라 주며 형 동생으로 지내자고 제안했다. 나보다 두세 살 많고 적을 뿐인 두 사람에게서 ‘작은 사장님’이라는 이상한 호칭을 듣기가 영 거북하던 차였다. 두 사람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엄마가 그렇게들 하라고 거들었고, 그제야 형은 그러면 큰 사장님께도 어머니라고 부르겠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나야 좋지.” 하더니 호칭만 그렇게 부르지 말고 혹시라도 일하다 서운한 게 있으면 꿍하고 있지 말고 톡 까놓고 얘기해 달라고 말했다. 형은 “네, 어머니!” 하더니 잔을 들고 건배를 제의했다.
    술이 몇 잔 들어가자 장우 형은 자신과 규승이의 속사정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듣자니 형은 고철 사업을 하다 망하면서 신용불량자가 된 처지라고 했고 규승이는 공항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다 가족들을 보살피기 위해 귀향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래서 두 사람 다 퇴근 후에는 계속 대리운전을 해야 할 것 같다고. 그 대신 가게 일에 지장을 주지 않게 새벽까지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두 사람의 얘기가 끝나고 자연스레 내 차례가 돌아왔다. 나는 나대로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 배경과 그 과정에서 엄마에게 느낀 고마움을 솔직히 고백했다. 나로서는 처음 하는 말이었다. 옆에서 내 말을 듣던 엄마가 냅킨으로 눈가를 훔쳤고, 그래서 분위기가 잠시 가라앉았다.
    그때 앞에서 형이 팔꿈치로 규승이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형은 규승이에게 대뜸 일본말을 해보라고 했다. 뜬금없는 요청에 규승이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나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형과 규승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자 형은 “내가 말 안 했었나?” 하더니 규승이가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다고 했다. 심지어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기 전에는 일본에서 유학 생활까지 했다고.
    “그래서 그랬구나.”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첫날 점심을 먹을 때부터 좀 이상하다 싶었던 게 있었기 때문이다. 제육덮밥을 쓱쓱 비벼 먹는 우리와 달리 규승이는 흰 밥과 그 옆에 얹어진 제육볶음의 경계를 끝까지 허물지 않고 먹었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 엄마가 전날 팔지 못한 밑반찬을 소진하기 위해 비빔밥을 먹자고 달걀프라이까지 부쳐서 내주었을 때는 아예 밥과 나물, 달걀프라이를 따로따로 집어 먹었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본 엄마가 밥을 비비다 말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규승이에게 입맛이 없느냐고 묻기도 했다. 옆에서 입 안 가득 비빔밥을 넣고 씹던 장우 형이 규승이 대신 대답했다. 얘는 원래 밥을 비비거나 마는 법이 없다고. 그때는 그냥 특이하네 하고 넘어갔었는데 규승이의 이력을 듣고 보니 일본 사람들이 그러지 않나 싶었다.
    장우 형의 계속된 채근에 규승이가 발개진 얼굴로 알 수 없는 일본말을 내뱉었다. 일본말을 쓸 때의 규승이는 한국말을 할 때와 딴판으로 꽤 터프한 느낌이었다. 어느 일본 영화에서인가 본 야쿠자가 연상될 정도였다. 규승이가 말을 마치고 다시 수줍어하자 엄마는 “우와!” 하며 손뼉까지 짝짝 쳐주었다. 나는 규승이에게 방금 한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자…… 제 좌우명이요.”
    규승이가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장우 형이 기다렸다는 듯 규승이에게 소주잔을 가져다 대며 “그럼 마셔.”라고 말했다.

 

    장우 형과 규승이는 종일 장난삼아 티격태격하곤 했다. 단골 레퍼토리는 누가 더 배달을 빨리빨리 다니느냐는 것이었다. 배달을 마치고 먼저 가게에 돌아와 있던 사람이 자신보다 늦게 도착한 사람에게 왜 이제 오느냐고, 배달을 뒤로 다니느냐고 면박을 주는 식이었다.
    “아, 뭐야. 빠꾸 형 아직도 안 왔어요?”
    주방으로 들어온 규승이가 그렇게 물으면 언제부터인지 엄마도 “그러게, 뒤로 다니나 보다.” 하고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배달을 시작한 뒤로 매출은 꾸준히 올랐고, 장우 형과 규승이도 제 몫을 다해 주었으니까. 실제로 평일 사이에 하루 낀 공휴일처럼 유독 바쁜 날에도 형은 툴툴대기는커녕 오히려 빨리 돈 벌어서 이 건물을 사버리자고 호기롭게 말했고, 그러면 규승이는 한술 더 떠서 “이 건물이 얼마라고요?” 하고 물으며 현실 가능성을 가늠하려고 들었다. 그때마다 손을 휘휘 내저었지만 나도 내심 꿈을 꿔보곤 했다. 간판 색이 바래지고 골목 풍경이 달라질 때까지 여기서 오래오래 가게를 꾸려 가는 꿈을.
    물론 모이는 건 아직 돈이 아닌 보람뿐이었다. 그래도 장사를 마치고 늦은 저녁을 챙겨 먹으며 그런 축적을 확인할 때가 엄마와 내게는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낮 동안 손님들에게서 들은 말이나 배달 앱과 포털에 올라온 리뷰를 엄마에게 고스란히 전해 주었고, 그러면 엄마는 감격한 나머지 밥을 먹다 말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중 엄마를 가장 기쁘게 한 건 의외로 골동품점 자리에 새로 생긴 베이커리 카페에 대한 한 블로그의 리뷰였다. 그 리뷰에서 카페의 위치를 설명하며 “송림식당 골목에 있어요”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송림식당 골목’. 그렇게 불러 보니 왠지 이 골목에 지분이라도 생긴 것 같기는 했다.
    장우 형과 규승이가 서로 한마디도 나누지 않던 시기에는 반대로 엄마도 나도 고역이 따로 없었다. 하루는 아침에 출근해서 보니 두 사람 사이에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었다. 어제 많이 탔느냐는 내 물음에도 대답들이 어째 심드렁했다. 전날 퇴근할 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 사이가 괜찮았었는데 아무래도 밤사이 대리운전을 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두 사람이 밥을 먹을 때 멀찍이 떨어져 앉고 주방에서 조용하자 엄마도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는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들 저러는지 아는 거 없어? 옆에 있는 나까지 숨 막혀 죽겠네, 원.”
    장우 형과 규승이가 모두 배달 갔을 때 엄마가 배식구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그냥 둘이 알아서 풀게 내버려두라고 했다. 하지만 저러다 말겠지 싶었던 두 사람은 저러다 큰일 나지 싶을 정도로 냉전을 이어 갔다. 각자 퇴근하는 걸 보면 대리운전도 함께하지 않는 듯했다. 매일 저녁 엄마는 시간이 오래 지나면 관계가 영영 어색해질지도 모른다며 두 사람을 걱정했다.
    결국 일주일쯤 지나 참다못한 엄마가 퇴근하려던 장우 형과 규승이를 홀 한쪽으로 불렀다. 두 사람이 등받이 의자에 데면데면 앉자마자 엄마는 앞에 놓인 테이블을 옆으로 밀더니 의자를 끌고 앞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두 사람이 부담스러운 듯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는데 그때 엄마가 두 사람의 손을 덥석 잡고 포갰다.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며 엄마의 손을 뿌리쳤지만 엄마도 물러서지 않고 두 사람의 손을 다시 붙잡았다.
    “뭔 일인지 모르겠지만, 날 봐서라도 서로 풀어. 너희 둘이 말도 안 하고 조용하니까 하루가 더 길게만 느껴지잖니…….”
    엄마는 울먹거리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 선 채 세 사람을 지켜보던 나도 당황스러웠는데 당사자인 장우 형과 규승이는 오죽했을까. 두 사람은 난처한 얼굴로 “어머니, 별일 아니에요.” 하더니 어색하게 손을 마주 잡았다.

 

    같은 해 여름 우리 가게가 배달 앱에서 한식 부문 우수 업소로 덜컥 선정되었다. 유례없는 폭염이 한창이던 팔월 초의 일이었다. 여느 업소들과 달리 리뷰 이벤트니 쿠폰 지급이니 일절 하지 않고 이뤄낸 쾌거라 엄마는 내가 주문 관리를 잘한 덕분이라고, 나는 엄마가 여름 메뉴를 맛있게 만들어준 덕분이라고 서로를 추어올렸다. 문제는 당장 배달 주문이 배 가까이 느는 바람에 우리도 우리지만 장우 형과 규승이가 서너 사람 몫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두 사람의 부담을 덜어 주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상의 끝에 오토바이 한 대를 더 장만하고 생활정보지에 다시 구인광고를 냈다.
    가게에 새로 들어온 직원은 나와 동갑내기로 옆 도시가 고향이라는 한동철이었다. 한동철은 다소 수다스럽기는 해도 일 하나만큼은 나무랄 데 없이 잘했다. 특히 영업 마인드를 갖고 있어서 상가나 사무실에서 들어온 배달은 자신이 도맡아 가려고 했다. 하지만 장우 형과 규승이는 그런 한동철과 코드가 잘 맞지 않는 듯했다. 세 사람의 화합을 위해 회식 자리를 마련해 보기도 했으나 소용없었다. 장우 형은 옆에 있으면 시끄러워서 머리가 다 지끈거릴 정도라고 한동철을 연신 흉보았고 규승이는 자기보다 형인 한동철을 투명 인간으로 취급했다. 가뜩이나 일이 고된데 틈틈이 두 사람까지 달래 주어야 하니 엄마와 나도 중간에서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두 사람의 불만이 어느 정도는 한동철에 대한 견제 내지 질투로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설상가상으로 다음 달이 되자 장우 형과 규승이에게는 더 이상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우리 가게가 배달 앱의 우수 업소에서 제외되며 배달 주문이 대번 주춤해진 탓이었다. 길고 긴 여름이 끝나고 폭염 특수가 사라진 영향도 있었다. 직원들 앞에서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엄마도 나도 속으로는 가슴이 타들어갔다. 한동철이 자신의 진가를 드러낸 건 바로 그 무렵이었다. 한동철은 점심을 먹기가 무섭게 배달 바구니에 전단지를 가득 담아 들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요즘 같은 시대에 저런 게 먹히겠나 싶었다. 그저 의욕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말리기도 뭣 해 내버려두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 뜻밖에도 한동철이 전단지를 돌린 상가와 사무실에서 하나둘 주문이 들어왔다. 배달 장사를 시작하면서 장우 형과 규승이의 손에 떡을 들려 보냈을 때는 꿈쩍도 안 했던 곳들이었다. 두 사람은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리어 일하는 게 시원찮았다. 매일같이 늦잠을 자다 지각을 했는데 암만 봐도 새벽까지 무리하게 대리운전을 하는 것 같았다. 나로서는 삼십 분씩 일찍 출근해서 배달 준비를 하는 한동철의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 처음으로 싫은 소리를 했다. 우리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 지킬 건 지키자고. 뭐가 주인지를 분명히 해달라고. 두 사람은 아무런 대꾸가 없었지만 다행히 이튿날부터 지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내 말이 서운했는지 엄마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았다. 두 사람이 서로 다퉜을 때와 분위기가 아주 흡사했는데 그 대상만 우리로 바뀐 듯했다.
    급기야 추석 연휴 직후 장우 형과 규승이가 퇴근하려다 말고 엄마와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한동철을 먼저 퇴근하게 한 뒤 오랜만에 넷이서만 홀에 둘러앉았다. 형은 한동철을 자르지 않으면 자신과 규승이가 가게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나는 형 옆에 앉은 규승이를 쳐다보았다. 규승이는 뾰로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대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씩 서로 맞춰 가면서 일하면 되는 게 아닌가. 그게 싫다고 이렇게 한꺼번에 그만두겠다고 하면 우리는 어떡하라고. 그때 옆에서 엄마가 그러면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며 엄마를 돌아보았다. 엄마는 입을 앙다문 채 허벅지 위의 앞치마를 움켜쥐고 있었다.
    “네?”
    “그만두고 싶으면 그냥 그만두라고.”
    엄마가 단호한 어조로 재차 말했다. 장우 형과 규승이는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엄마와 나만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가 당연히 한동철을 그만두게 하고 자신들을 붙잡을 줄 안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두 사람이 더 괘씸하게 느껴졌다. 나는 자신의 거취를 형에게 일임한 규승이처럼 침묵을 지킴으로써 엄마의 뜻에 따랐다. 이윽고 생각을 정리했는지 형이 그러면 사람 구할 때까지만 일하겠다고 하더니 규승이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와 나도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가게를 나가자마자 주방으로 다시 들어간 엄마는 그 뒤 한참이나 홀로 나오지 않았다.
    장우 형과 규승이가 가게를 그만둔 건 불과 이틀 뒤였다. 한동철이 고향에서 불러온 자신의 친구들로 두 사람의 자리를 생각보다 빨리 메워버렸기 때문이었다.

 

*

 

    장우 형을 배웅하고 돌아오니 엄마가 카운터 앞에 서서 뭔가를 쓰고 있었다. 손톱이 하얘질 정도로 볼펜을 손에 꽉 쥔 채였다. 나는 카운터로 다가가며 뭘 하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만족한 얼굴로 A4 용지 한 장을 들어 내밀었다. 내가 카운터에 올려놓았던 휴무 안내문이었다. 사흘이라는 글자 아래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기어이 ‘(삼일)’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스카치테이프를 떼어내 휴무 안내문의 네 귀퉁이에 붙였다. 스카치테이프마다 지문 자국이 덕지덕지 묻었다. 나는 휴무 안내문을 들고 가 차가운 출입문 통유리 안쪽에 조심조심 붙였다.
    “그래도 가게 하는 동안 좋았어, 나는.”
    뒤에서 엄마가 자못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대로 서서 출입문 유리에 비친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후련하다는 얼굴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사오 년 전 대상포진에 걸려서 입원했다 퇴원할 때랑 아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앓다 나은 사람 특유의 낙천성이랄까, 갑자기 이상한 활기가 도는 얼굴.
    “좋긴 무슨. 들입다 고생만 했지.”
    “에이, 그러지 말고 우리 좋았던 일만 기억하자. 응? 너도 그동안 엄마한테 서운했던 거 있으면 다 털어버리고.”
    서운한 게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었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엄마도 마찬가지일 테고.
    가게를 하는 동안 엄마와 나는 알게 모르게 자주 다퉜고 그때마다 서로의 가슴에 적잖은 상처를 냈다. 우리는 한 마디로 말해 맞는 게 없었다. 예전에는 어떻게 한집에 살았나 의아할 정도였다. 그사이 따로 살아오면서 각자의 담을 공고하게 쌓아버린 걸까. 아니면 원래 그랬는데 종일 붙어 있게 되면서 미처 몰랐던 서로의 단점을 발견하고 만 걸까. 둘 중 어느 쪽이든 서로에 관해 생각보다 잘 알지 못했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더 사이가 좋았던 셈이었다.
    엄마와 나는 서로를 다시 알아 가야 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건 상대방을 이해하는 시간이 아닌 체념하는 시간이었으니까. 그래도 그런 시간 덕분에 우리는 다투는 횟수도 강도도 눈에 띄게 줄일 수 있었다. 화목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런대로 지낼 만했다. 다만 이미 입고 입힌 상처만은 어쩔 도리가 없었는데 그런 상처는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있다 작은 충격에도 쉬이 덧나곤 했다. 이를테면 내게는 올 초 엄마가 나와 말다툼 끝에 던진 말이 그랬다.
    “너 그래 갖고 회사 생활은 어떻게 했니?”
    엄마도 아차 싶었는지 그 뒤로는 아무리 화가 나도 그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너도 참 너다” 같은 동어 반복의 말로 자신의 감정을 간신히 억누르곤 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입에서 삼켜진 다른 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
    “없어, 그런 거. 나 은근 쿨해.”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답했다. 엄마가 쿡쿡 웃더니 그러면 다행이라고 했다. 거짓말을 하면 얼굴에 꼭 표가 나는 촌스러운 타입이라 뒤로 돌아서며 바지 뒷주머니에서 휴대폰을 얼른 꺼내 들었다. 휴무 안내와 관련해 아직 마무리하지 않은 일이 한 가지 남아 있었다. 나는 메일함에 들어가서 발신자가 ‘구글’인 메일을 찾아 열었다. 며칠 전 알림으로만 보고 말았던 업체 정보 서비스의 자동 발신 메일이었다. 그 메일은 이렇게 묻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송림식당은(는) 영업하시나요?’

 

    지지난 휴무일 오후 엄마와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노동청에서 나온 뒤로 내내 아무 말이 없던 엄마가 불쑥 가게를 팔자고 했다. 나는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고 엄마를 돌아보았다. 엄마는 고개를 돌린 채 조수석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창 너머에서 가벼운 것들이 스산한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변경해 길옆에 차를 세웠다. 뒤에서 따라오던 차들이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엄마, 우리가 이긴다니까. 아까 봤잖아, 그 근로감독관이라는 사람도 이렇게 꼼꼼하게 챙겨 준 식당은 처음 봤다고 말하는 거.”
    내가 조수석 쪽으로 비스듬히 돌아앉은 채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창밖만 바라볼 뿐 가타부타 대답이 없었다. 순간 이번에는 진짜구나 싶었다.
    “근데 가게를 팔면 우리가 지는 거잖아. 누구 좋으라고.”
    나는 계속해서 엄마를 설득했다. 그제야 엄마가 천천히 나를 돌아보았는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 있었다.
    “쟤들 때문이 아니야. 그냥…….”
    엄마가 미안하다는 듯 희미하게 웃었다. 굵은 눈물이 엄마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냥 내가 그만 하고 싶어서 그래.”
    엄마가 손등 위로 소매를 끌어당겨서 양쪽 눈두덩에 번갈아 가져다 댔다.
    올해 들어 엄마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옆에서 그런 푸념을 들으면서 일하는 것도 정말 못할 짓이었는데,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마다 누군가 자꾸 내 어깨를 잡고 주저앉히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근거 없는 소리를 하는 건 아니었다. 우리 딴에는 열심히 돈을 번 것 같은데 월말 결제를 해주고 헤아려 보면 우리 몫의 인건비도 손에 쥘 수 없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우리가 장사꾼 특유의 우는소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빌딩이라도 한 채 갖고 있었으면 큰일이었겠다 싶은 건물주 부부도, 진상 손님 못지않게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직원들도 툭하면 우리에게 엉뚱한 기대를 품곤 했다.
    결국 올봄 엄마와 나는 가게를 팔기로 하고 식자재상에 내놓았다. 엄마와 달리 나는 가게를 완전히 포기한 게 아니었는데 어차피 사겠다는 작자가 없으리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반년가량은 내 예상대로 흘러가 주었다. 빛 좋은 개살구든 뭐든 우리는 어영부영 가게를 끌고 나갔고 그러다 여름에는 새 에어컨을 사 홀에 들여놓기도 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가게를 계속하는 쪽으로 엄마와 암묵적인 합의를 이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한 달여 전 가게를 인수하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도 당연히 엄마가 안 팔기로 했다고 말할 줄 알았다. 설마 엄마가 목욕탕 친구의 지인이라는 모녀를 정기 휴무일에 맞춰 가게로 부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홀 곳곳에 있던 인테리어 소품들이 처음으로 치워진 것도 그날 아침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쓰라린 배신감을 느끼며 이케아에서 사온 라탄 스탠드 조명과 가죽 스트랩 벽거울 따위를 차 트렁크에 옮겨 실었다. 하지만 정오 무렵 그 모녀가 가게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막상 마음이 심란한지 천천히 둘러보시라고 한 뒤 밖으로 나가버렸다. 졸지에 모녀 옆에 혼자 남게 된 나는 엄마 대신 이런저런 질문에 답해 주어야 했다.
    “쉬는 날인데도 전화가 계속 오네요?”
    나보다 댓 살은 어려 보이는 딸이 카운터에서 꾸준히 울리고 있는 빨간 전화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한 무리의 손님들이 출입문 앞에서 휴무 안내문을 발견하고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린 직후였다. 나는 손님 층이 워낙 다양해서 그렇다고, 배달 앱 말고 전화로 주문하는 손님도 많다고 했다. 모녀가 서로 마주 본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기구나 싶은 곳을 찾았다는 얼굴들이었다.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근데 왜 팔아요?”라는 묻지도 않은 질문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날 저녁 엄마와 나는 집에서 밥을 먹으며 오랜만에 소주 한 병을 나누어 마셨다. 엄마는 평소보다 빠르게 잔을 비우고 있었다. 소주가 삼분의 일 정도밖에 안 남았을 때 나는 참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가게를 꼭 팔아야만 하겠느냐고. 엄마가 잔을 쭉 들이켜고 내려놓더니 들기름에 구운 두부를 젓가락으로 찢었다.
    “안 그래도 오늘 종일 생각해 봤는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일 년만 더 버텨 볼까? 딱 화재보험 만기 때까지.”
    엄마가 젓가락으로 두부를 집어 든 채 대답했다. 나는 잘 생각했다고, 내가 더 열심히 하겠다고 하며 소주병을 들었다. 그러자 두부를 우물거리던 엄마가 빈 잔을 들고 갑자기 피식피식 웃었다.
    “뭐야? 엄마 벌써 취했어?”
    어리둥절해진 나는 소주병을 내 쪽으로 물리며 물었다.
    “낮에…….”
    엄마가 누가 엿듣기나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었다.
    “내가 가게로 계속 전화를 걸었잖아.”
    결과적으로 보면 엄마의 행동은 효과가 있었다. 엄마가 가게를 다시 팔기로 했다고 전화했을 때 모녀는 당장 계약하자고 했으니까.

 

*

 

    차가 노면에서 미끄러지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장우 형 말마따나 내일 아침에는 온통 빙판길이 될 것 같았다. 나는 브레이크로 발을 옮긴 채 전방을 주시했다. 골목이 어둑하다 싶더니 옆 건물의 커튼집도, 대로 건너편의 가전제품 매장도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골목 끝에서 차를 멈추고 우회전 깜빡이를 켰다. 직진 신호가 막 떨어졌는지 대로에서 차들이 무섭게 내달리고 있었다. 대로만 해도 제설 작업이 잘 돼 골목보다 도로 사정이 나은 모양이었다.
    그때 옆에서 엄마가 뭐라고 말을 걸었는데 히터 바람 소리 때문에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히터를 약하게 낮추고 엄마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래도 우린 운이 되게 좋은 편이라고.”
    엄마가 대단한 사실이라도 발견했다는 듯 말했다. 나는 엄마에게 싱긋 웃어 보인 뒤 고개를 바로 했다. 룸미러로 우리 가게의 외관이 바라보였다. 캄캄한 골목에 불 꺼진 가게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이제 남의 가게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가게가 새삼 낯설게 보였다. 오늘로 정말 다 끝인 셈이었다. 입간판을 앞에 내놓고 골목 구석에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를 줍던 아침도, 주민센터에서 염화칼슘을 받아 와 맨홀 뚜껑과 과속방지턱 위에 흩뿌리던 아침도. 문득 내 인생의 한 챕터가 넘어가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갑자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오디오의 볼륨을 높였다. 그제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흥겨운 캐럴이 귀에 들어왔다. 멜로디도 가사도 익숙했지만 왠지 제목은 생각나지 않았다.
    “뭐 해? 안 가?”
    엄마가 콧노래를 멈추고 물었다. 나는 얼른 고개를 들어 전방을 확인했다. 어느새 대로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며 액셀을 지그시 밟았다. 옆에서 엄마의 콧노래 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덕원

작가소개 / 이덕원

202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문장웹진 2020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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