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스

[단편소설]

 

 

테라스

 

 

이소정

 

 

 

    아버지는 형의 추리닝을 입고 발톱을 깎고 있었다. 지나치게 신문을 넓게 펼쳐 두었다. 명절에 전을 굽기 위해 깔아 둔 신문 같았고 그렇게 보니 집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명절 아침처럼 말갛게 쓸쓸했다.
    “왜 늘 그 옷이에요?”
    “편해서 그런다. 집인데 뭐 어떠니?”
    딱, 딱 발톱 깎는 소리가 일정했다. 거실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고 그 때문인지 발뒤축의 각질이 더욱 하얗게 일어난 것처럼 보였다. 포슬하게 잘 삶아낸 감자를 떠올리자 갈라질 것처럼 아버지의 발뒤꿈치가 꿈틀했다. 아버지는 발톱을 깎는 게 아니라 숫제 발톱을 만드는 것 같았다. 아버지 옆에는 손톱깎이와 문구용 조각칼이 놓여 있었고 그것들을 번갈아가며 사용했다.
    조용한 집을 사정없이 흔들 듯 아버지의 구형 폴더폰이 울렸다. 아버지는 한동안 전화기를 노려볼 뿐 받지 않았다.
    “전화요.”
    아버지는 나를 빤히 한 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나이가 들면 안 두꺼워지는 게 없다. 발톱 좀 봐라. 이렇게 애를 먹인다.”
    아버지는 신문지 밖으로 튀어 나간 발톱을 찾아 손가락에 침을 발라 붙였다. 전화벨이 끈질기게 울렸지만 끝내 받지 않았다.
    “네 엄마 봐라. 얼굴이 얼마나 두꺼워졌니?”
    나는 주방 쪽을 쳐다봤다. 그 말을 어머니가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대신 주방에서 평일인데 네가 웬일이냐? 는 소리가 들렸다. 말끝에 무심함을 가장한 조심스러움이 거스러미처럼 일었다. 나를 호출한 사람은 어머니였다. 거의 한 달 만의 통화에서 어머니는 형의 여자가 온다고 했다. 우리 식구는 형이 죽고 나서는 한 번도 그 여자를 본 적이 없다. 다 같이 모여서 그 여자를 기다리자. 왜요?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는 봐야 할 거 아니냐, 어머니는 서둘러 전화를 끊어버렸다.

 

    오래된 주택의 거실과 분리된 주방은 햇빛이 가장 안 드는 북쪽에 있었다. 어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요즘 누가 이렇게 주방을 뒤쪽에 빼니? 여자는 숨어서 밥이나 하라는 못돼 처먹은 생각인 거지, 어머니는 자주 투덜거렸다. 어머니에게 그것은 오래된 구조의 문제처럼 보였다. 어머니는 예비 며느리를 앉혀 놓고 넌 포베이로 가라, 주방이 떡하니 가운데 있는 집을 구해야 해, 라고 말했다. 하지만 며느리에게 주방을 얘기하는 어머니의 구조는 여전히 낡고 고루한 틀처럼 보였다.
    “두꺼워진 얼굴이 더는 갈 데가 없을 때 주름이 진다. 파도처럼 밀려 나가야 하는데 그걸 몰라.”
    아버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어머니를 비난했다.
    “발톱 무좀이에요. 나이 때문이 아니라고요, 아버지.”
    “그게 그거야. 그런 것들이 찾아올 만큼 늙은 게지.”
    오래된 알루미늄 새시가 뿌옇게 흐려 있었다. 군데군데 녹물이 타고 흘렀지만, 그것마저도 바래 특별히 상한 인상을 보태 주지는 않았다.
    “언제 온대요?”
    “……모른다.”
    아버지는 이제 발톱을 깎는 게 아니라 연필을 깎는 것 같았다. 열 자루의 뭉툭한 연필이 아버지의 손에서 자꾸 미끄러졌다. 아버지의 엄지발가락에 빨갛게 핏물이 뱄다.
    “피 좀 뽑아 와.”
    “네?”
    “파! 파, 좀, 뽑아 오렴.”
    주방에서 들린 목소리는 너무나 선명하고 컸다. 피 같았다. 순간 아버지의 등이 움찔했다고 느꼈지만 그건 그의 등을 타넘어 오는 햇빛 아지랑이일지도 몰랐다. 나는 슬리퍼를 대충 꿰신었다. 신고 보니 아버지 슬리퍼였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서로를 침범하는 게 가족 같았다. 아버지의 발톱 무좀이 내 발에 옮겨올까 봐, 이번에는 아버지 쪽에서 다시 나를 침범할까 봐 걱정이 됐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들처럼 내 발톱을 두꺼운 나무껍질처럼 만들어버릴지도 몰랐다. 나는 슬리퍼도 걱정도 벗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마당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자 삐걱 소리가 났다. 문에 걸린 나무 십자가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구멍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못 때문이었다. 언젠가 떨어져 누군가의 머리나 발등을 찍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누구 하나 손대는 사람 없이 문을 열 때마다 자기 몫의 불안을 확인할 뿐이었다. 형의 여자는 딱 한 번 우리 집에 온 적이 있었다. 지나는 길이라는 것이 사실인 듯 자신을 정미숙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형과 같은 서비스 센터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사실 그건 본사 점퍼였고 형의 목표는 본사 정규직이었다. 작업복에도 차별이 있다고 언젠가 형은 해맑게 말했다. 남색 칼라가 달린 상의가 그녀에게는 좀 커 보였고, 그래서 애초에 형의 것을 빌려 입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형은 그 여자만 쳐다봤다. 바보처럼 실실거리며 형수라고 부르라고 했고 정미숙은 눈을 흘겼지만 싫지 않은 눈치였다.
    현관문을 열면 단을 높인 테라스가 있고 정면과 측면으로 내려가는 짧은 계단이 있다. 그날 우리는 테라스에 돗자리를 깔고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었다. 숯불에 구운 고기 맛은 늘 좋았다. 하지만 눅눅한 테라스 아래 숯을 넣어 놓는 바람에 늘 연기가 말도 못 하게 피어올랐다. 고기가 아니라 연기를 먹다 배가 부른 식이었다. 형은 살짝 탄 부위를 좋아했는데, 어머니는 탄 음식을 먹으면 암에 걸린다며 고기의 가장자리를 가위로 잘라내곤 했다. 까맣게 잘린 부위들이 쌓이면 정작 어머니는 그걸 입에 털어 넣고 오래 씹어 먹었다.
    “그걸 왜 먹어요!”
    그날 내가 화를 냈는데 어머니가 암에 걸릴까 봐 불안해서였다.
    “기미가, 기미가 좋잖니?”
    그 얘기를 듣고 정미숙도 한 점 까맣게 탄 돼지고기를 집어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 가족들은 모두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나쁜 것도 나누는 것이 가족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우리는 그날 소주와 맥주, 연기를 양껏 나누어 마시고 헤어졌다.

 

    지난해 어머니가 갑상샘암에 걸리고 나의 묵은 불안은 이상한 안심으로 굳혀졌다. 어머니가 뭔가를 나눠 진 것 같았다. 어머니도 이제 형에게 덜 미안하게 됐다고 그 비슷한 말을 했다. 어머니가 목울대의 종양을 잘라내고 호르몬제를 포함한 두툼한 약봉지를 들고 퇴원하던 날, 그것 보세요, 어머니, 탄 음식을 먹으면 암에 걸린다고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탄 자리를 떼 낸, 멀쩡한 살들만 날름날름 받아먹었던 죄책감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었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검은 상복을 입은 한 무리 사내들을 봤다. 언뜻 보기에도 비슷하게 생긴 남자들이 둥글게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무슨 얘기 끝인지 남자들은 하얀 연기를 뿌리며 사레가 들린 것처럼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너무 밝고 경쾌해서 나는 그들이 나누었을 이야기가 궁금했다. 만약 고인에 대한 이야기라면 어떤 죽음은 농담 같았다.   
    “다복한 집안인가 보다.”
    다복이라니, 그건 좀 이상했다. 죽음의 세포를 막 떼 내고 나온 어머니가 다행이라고 말하지 않고 다복이라고 말하는 것이 장례식장을 품은 병원만큼이나 익숙하지만 낯설었다. 이제 암은 어머니의 몸속에 장례식장을 품은 병원만큼이나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이 될 것 같았고 그것은 끔찍해서 견디는 일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언젠가는 웃을 수도 있는 일 같기도 했다.
    어머니는 이제 테라스에서 고기를 굽지도 탄 음식을 먹지도 않았다. 대신 평생 아침저녁으로 호르몬제를 복용해야만 했다. 형의 죽음은 암이 아니라 과로사였다. 하청에서 본사로 계단식 연락을 하는 동안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했다. 진짜 모두가 다 농담 같았다.

 

    테라스에는 가운데 살이 하나 빠진 빨래건조대가 위태롭게 놓여 있었다. 작은방 창문 앞에 심어진 파 한 뿌리를 뽑아냈다. 생각보다 헐하게 박혀 있어 과한 힘을 준 내가 괜히 민망해졌다. 늘 대비를 하는 버릇은 어디서부터 생긴 걸까? 그 점은 아버지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는 늘 노후를 걱정하고 대비했지만 한 번도 순리에 맞게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노후든 대비든 늘 한 방에 해결하고 싶어 했다. 얼른 해치우고 따뜻한 방에 누워 귤을 까먹고 싶어 했다. 귤을 까먹고 싶어 한다는 것은 순전히 내 추측이다.
    형과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새 사업을 구상하러 나갔던 아버지가 제주도에서 귤을 박스째 사 들고 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건 또 너무 황당한 일이라, 나는 그렇게 믿고 있는지도 몰랐다. 귤을 사기 위해 제주도에 갔다 온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더욱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 귤들이 모두 새파랬다는 것이다. 익지도 않은 귤을 사올 만큼 아버지는 멍청한 걸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우리 생각보다 좀 더 멍청했다. 아버지의 새 사업이란 귤밭이 아니라 귤, 천 평이나 되는 귤밭의 귤들만 모조리 매입하는 것이었고, 그 귤들은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서 처치곤란으로 노랗게 익어서 종국에는 어떻게 돼버렸다. 우리 식구는 천 평짜리 귤밭의 귤을 모두 샀지만 받은 것이라고는 맨 처음 아버지가 매입서와 함께 들고 온 초록 껍질의 귤 한 박스뿐이었다.
    나무 상자 안에 담긴 초록색 귤을 내려다보며 어머니는 이건 귤이 아니야, 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끔찍하게 시기만 한 귤을 오기처럼 다 까먹으며 어머니는 끝까지 이건 귤이 아니야, 라고 말했고 그건 어쩌면 전체적으로 덜 익은 아버지 인생에 대한 비난이었고, 그 귤을 까먹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부정이었다. 나는 초록색 귤이 어떻게 노랗게 익어 가는지에 대해 종국에는 어떻게 돼버렸는지에 대해 가끔 생각했는데 그건 낡은 주택을 담보로 연금을 받으며 겨우 살아가는 아버지의 노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늘 다다르곤 했다.
    “귤은 원래 파란 것을 딴다. 후숙은 약품처리로 하는데 그래야 무르지 않고 바다를 건넌다고 하더라.”
    아버지는 음모처럼 또는 변명처럼 그 얘기를 자주 했고 그래서인지 형은 새파란 나이에 일을 시작했다. 가끔은 포기도 실력인 것 같아. 진학 대신 하청의 하청 서비스 센터에 취직한 형의 전화는 하루 종일 울렸다. 형은 주로 텔레비전 설치와 AS업무를 했다. 사람들은 갑자기 화면이 안 나와요, 소리만 나와요, 라고 완전히 세상과 단절된 사람처럼 센터에 전화를 해댄다고 했다. 센터에서 정직원인 기사를 콜하고 그들의 업무량이 넘치면 다시 형에게 연락을 하고 형은 다시 고객과 통화를 하고 방문했다. 대부분이 백라이트 문제라고 했다. 형이 가고 나면 그들은 다시 텔레비전을 켜고 세상과 연결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형에게는 고칠 백라이트조차 없다는 거였다.

 

    나는 파의 뿌리 부분을 계단에 두 번 쳐서 흙을 털어냈다. 흙은 파슬하게 떨어졌다. 마당은 넓지도 좁지도 않았다. 30년 전 지어졌다고 하면 좁은 편인지도 몰랐다. 집 주위로 똑같은 집이 50채나 있었다. 처음에는 사택으로 조성된 주택단지였다. 집이 회사보다 수명이 길었다. 회사가 망하고 직장동료들이 하나 둘 떠나고 새 주인을 맞는 과정에서 똑같은 집들은 대부분 헐리거나 리모델링됐다. 아버지도 그동안 여러 직장과 사업을 전전했다. 유일하게 그 당시 20호로 불리던 아버지 명의의 집만 그대로 남았다.
    20호.
    그건 동네에서 우리 가족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50가구 중 스무 번째 집 둘째 아들이 이십 호로 불렸다면 형은, 형은 어떻게 불렸을까? 형도 이십 호 큰아들이었다. 어머니도 이십 호 여자, 아버지도 이십 호 남자였다. 20-1 같은 건 없었다. 모두 다 20호였다. 형과 나는 19호와 50호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중 19호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중학교 때 이 동네를 떠났고, 50호는 언제 어떻게 멀어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선명한 것은 모두 다 바지가 내려갈 정도로 구슬을 호주머니에 가득 넣고 다녔던 것. 그게 그 당시 우리의 우주 비슷한 거였다는 것만 생각난다. 20호의 형제들과 19호, 50호의 아이들은 늘 구슬치기를 했다. 나는 구슬을 가득 모아 놓고 깨는 걸 좋아했는데 늘 끝에는 구슬을 모두 잃었다. 그래도 좋았다. 그때는 흩어지는 구슬들이 우리에게는 은하계 비슷한 거였다.
    마지막으로 신혼집을 보러 간 날 아버지가 그 집 보일러실 바닥을 맨손으로 쳤다.
    “세상에 그렇게 크고 단단한 벌레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데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그것뿐인 줄 아니?”
    어머니는 파를 듬뿍 넣은 미역국을 식탁에 올렸다. 나는 대답 대신 미역국에 누가 파를 넣어요? 라고 되물었다. 아버지를 쳐다봤지만 그는 파국인지 미역국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을 묵묵히 떠 넣고 있었다. 어떤 파국에도 아버지는 묵묵히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 같았다. 파도 항암식품이야, 많이 먹어 나쁠 건 없지 뭐니! 어머니가 말했다. 파가요? 그래 파가! 나는 파 웃음이 났다.
    “걔가 왜 온대니? 걔가.”
    밥을 먹다 말고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통화를 한 건 어머니잖아요?”
    “내가? ……뭘 물어볼 새도 없이 전화를 끊지 뭐니? 혹시 뭘 알고 그러는 건 아니니?”
    “아니요, 아닐 거예요.”
    분명 아니요, 라고 말했는데도 어머니는 다음 단계의 질문을 시작했다.
    “그 일…….”
    “시끄럽다!”
    아버지가 말을 막자 어머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숟가락을 다시 들었다. 그렇다고 질문을 멈추지도 않았다.
    “너는 왜 결혼은 안 하니? 네가 왜 그런다니? 너보다 못한 것들도 하는 결혼을 네가 왜 안 하고 있다니?”
    “나보다 못한 것들이요? 그게 어떤 것들인데요?”
    예비 장인은 집을 얻어 주겠다고 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력으로 일어서기가 힘들기 때문에 부모가 보조를 해줘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호탕하게 말했다. 어머니는 그보다 못한 우리의 처지를 재빨리 인식하고 슬리퍼에 눌려 죽은 벌레보다 더 납작하게 엎드려야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집은 우리가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처음에는 입주를 앞둔 새 아파트를, 다음에는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그다음에는 크고 단단한 벌레들이 사방으로 퍼지는 좁고 오래된 주공 아파트들을 보러 다녔다. 이제 더는 볼 때가 없을 때 나는 파혼을 했다.   
    “새삼스럽게 뭘 그러니?”
    어머니의 문제는 구조가 아닌 계급의 문제였다. 실은 그게 그거였다. 서비스 정신이 뭔 줄 아니?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늘 받기만 한다. 서비스를 해야 하는 사람은 늘 그걸 줘야 해. 그 시소는 바뀌지 않아. 형이 그 말을 할 때 몹시 피곤해 보였다.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동안 어머니는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이건 삶이 아니야, 라고 여러 번 말했다고 한다. 간호사들은 입원실 문을 삐죽이 열고 팔만 뻗어 방사선량을 체크하고는 돌아갔다. 치료가 끝나고도 어머니는 집으로 곧장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피폭’이라고 말했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형의 죽음으로 우리는 이미 한 차례 피폭된 상태였다. 그 일에는 반감기도 없는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가족들이, 혹시 피폭 당할지도 몰라서 나름의 반감기를 정한 어머니는 퇴원을 해도 퇴원하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는 ‘여행’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또다시 허름한 모텔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돌아왔다. 텔레비전을 봤다고 했다. 저건 삶이 아니야, 일일 드라마를 보며 일주일을 버텼다고 했다. 눈을 감으면 어떤 광선 속으로 빨려들 것 같았다고 차라리 텔레비전 전파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기로 작정했다고 말했다. 그때 드라마를 보며 많이 울었다고 했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너무 기구하더라, 내가 주인공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이니? 어머니는 너무나 당연하게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이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 어머니 인생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한참을 생각해 봤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주인공의 삶은 얼마나 피곤한가를 생각하며 그즈음 우리 가족은 주인공의 자리를 서로에게 미루기에 바빴다.
    형이 죽고 나서 하청구조 문제에 대한 짧은 뉴스가 방영됐다. 뉴스에서도 정작 형이 주인공은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달랐다. 형은 죽고 없는데 우리 가족들 사이에서 형은 여전히 주인공이었다. 어쩌면 죽어서도 형은 피곤할 것 같았다.

 

    “산에 가자.”
    발톱을 다 깎고 파가 들어간 미역국 한 그릇을 다 먹은 아버지가 말했다. 늘 그렇듯 아버지는 상황을 피하기만 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사이 형의 여자가 올지도 몰랐다. 그런 내게 어머니가 눈짓을 했다. 전화를 하겠다고 했기에 나는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평일이었고, 그 여자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등산로 입구에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속은 다 썩었지만 갈라진 껍질은 악착같이 붙어 있었다. 적송 껍질은 벗겨 주는 게 나무에 좋단다, 고 말하며 아버지는 누군가의 혓바닥을 잡아 빼듯 껍질을 벗겼다.
    “어! 이것 봐라.”
    소나무 껍질 아래에는 지네같이 생긴 다지류의 곤충이 다글다글 모여 있었다.
    “소나무 벌레네요.”
    “그런 것도 있냐?”
    “몰라요. 있겠죠.”
    아버지는 그것들이 자신의 혀뿌리에서 나오기라도 한 양 퉤! 퉤! 하고 침을 뱉었다. 어디든 숨어드는 것들이 있다, 잘도 숨었다고 생각했겠지, 라고 말하며 아버지는 그것들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스르르 떨어져 내렸고 아버지는 그 일이 몹시 즐거운 것 같았다. 형의 죽음에 대해 앞으로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하고 돌아온 날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그랬잖아요?”
    “뭘 말이냐?”
    다시 폰이 울렸다. 아버지가 나를 쳐다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번호를 확인하고 이번에는 아예 끊어버렸다. 나를 앞질러 성큼성큼 걸어갔다.   
    “약수다. 먹어라.”
    산 중턱에 운동기구 몇 개가 놓인 약수터가 있었다. 엄지손가락만 한 플라스틱 호스 두 개에서 물이 졸졸 새나오고 있었다.   
    “싫어요.”
    아버지는 억지로 물을 먹이려고 바가지를 내 입에 갖다 댔다. 아버지는 예전에도 그랬다. 본인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모두 아들들에게 시켰다. 웅덩이 바닥에는 누런 솔잎이 가득 가라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내민 파란색 바가지는 짐승이 할퀸 것처럼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 있었다. 누군가의 입술이 닿았던 바가지가 꺼려졌다.
    “효도하는 셈치고 한 바가지 먹어라.”
    무슨 자격으로 아버지가 그것을 요구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말없이 물을 마셨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돌아가는 길에 나뭇잎들에 묻힌 오래된 안내판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버려진 안내판이었다. 이 물은 식수 부적합 판정을 받아 음수가 불가능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이 배 속을 돌아다녔다. 절의 개들이 짖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자 오후 2시였다. 어머니는 그동안 화분에 물을 준 모양이었다. 다육이 화분의 바닥이 모두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아버지는 목욕탕에서 발을 씻고 오래 닦았다. 어머니는 나에게 과일을 먹을 건지 물었다.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생각보다 과일이 많아 놀랐다. 어떤 대비를 모두 마친 어머니는 그럼에도 불안해 보였다. 우리는 이제 뭘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서로의 시선을 피했다. 모두가 하나만 보는 일은 숨통이 막혔다. 어머니가 저녁에 올 모양이다, 라고 말하고 일어섰다. 구청 헬스장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아버지가 쳐다보자 마치 불침번을 서듯 번갈아, 번갈아 해요, 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곤란한 표정을 잠시 짓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갈래?”   
    나는 당황했다. 내가요? 너도 이제 몸 관리 좀 해야지, 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내 몸을 훑어보고는 너는 거울도 안 보니? 형의 죽음 때문에 그랬는지 나잇살 때문에 그랬는지 체중이 16킬로가 불었다.
    “해도 안 돼요.”
    “하기는 해봤니?”
    나는 그 말이 너는 살아 있잖니? 그런데 왜 그렇게 사니? 라는 비난 같았다. 한동안 단지 그걸로 나는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았다. 바통터치 하듯 형 대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집도 사고 그렇고 그런 시시한 주인공의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았다.

 

    늦은 오후의 헬스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드라마를 보며 러닝머신을 하는 중년의 여자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남자가 덤벨 운동을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나이든 남자의 탄탄한 몸과 얼굴이 어긋나 보였다. 마치 잡지에서 잘라낸 젊은 몸에 자신의 얼굴을 붙여 둔 것 같았다.
    나는 적당히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자전거를 탔다. 어머니는 내 옆에 앉아 저 할머니 또 오셨네, 라며 혀를 찼다. 중년의 여자들도 대놓고 못마땅한 듯 쳐다봤다. 할머니는 거의 정지에 가까울 정도로 느린 동작으로 끌고 온 유모차를 입구에 세웠다. 구청 헬스장 이용 신청을 하는 날 맨 앞줄에 서 있는 노인이라고 했다. 65세 이상은 50% 할인을 적용받아 석 달에 만 오천 원을 낸다고 어머니는 궁금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
    “유모차를 밀고 매일 헬스장에 오는 거야. 걷지도 못하는 노인네가 악착같이 굴고 잔소리는 또 얼마나 심한지. 자기가 세를 냈나?”
    헬스장 탈의실과 화장실의 불을 끄고 다닌다고 했다. 샤워 꼭지를 틀어 놓고 씻으면 물 좀 아끼라고 악다구니라 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며 나는 줄곧 어머니는 자신이 그 할머니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할까, 라는 의심이 들었다. 이십 분 자전거를 탄 어머니는 샤워를 하고 집에 가자고 했다. 정미숙이 올 것 같다고 말이다. 나는 샤워는 하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어차피 돈을 내고 온 것도 아니었기에 샤워까지는 좀 그렇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럼 너는 좀 더 해, 라고 말하고는 사물함에서 목욕 바구니를 챙겼다. 바구니가 너무 커서 어머니가 헬스장이 아닌 목욕탕에 온 사람 같았다.
    기다린 어머니가 아니고 샤워실에서 젊은 여자가 나온다. 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며 머리를 턴다. 그때 뒤에서 어머니가 뛰쳐나온다.
    “야! 너, 이게 뭐야?”
    어머니가 긴 머리카락 한 올을 들고 다시 소리친다.
    “공공장소 몰라?”
    여자는 당황한 듯 어머니를 쳐다본다. 중년 여자 둘이 호기심에 샤워실 입구로 온다. 그럴수록 어머니는 신중한 수사관처럼 증거품을 모으려고 한다. 여자는 어머니가 바닥에서 들어 올리는 그 구불거리는 물성이 낯선지 한동안 쳐다보기만 한다.
    “어디서 질질 흘리고 다녀? 너 다른 것도 이렇게 흘리고 다니니?”
    어머니가 말하자 젊은 여자가 갑자기 피식 웃는다.
    “샤워기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줄줄 오줌 싸놓고 나보고 지랄이야. 진짜! 안 하려고 했는데 사무실에 말해야겠네.”
    어머니는 순간 당황한다.
    “그렇게 하기만 해봐!”
    “왜요? 여기 공공장소라면서요?”   
    어머니는 갑자기 샤워실 문을 열고 들어가 버린다. 그 뒤에 대고 젊은 여자가 질질 흘리고 다니지 좀 마요, 라고 소리친다. 더러워요!
    한참 후 샤워실을 나온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정수기로 가서 물 한잔을 달게 마시고는 가자고 말한다. 나는 천천히 어머니와 공원을 가로질렀다. 집으로 가는 길에 어머니는 나이가 들면 괄약근부터 풀린다고 했다. 그 속에서 온갖 오물들이 쏟아져 나온다고 말이다. 길이 자꾸 길어지고 구부러지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든지 조절이 안 되는 나이잖니?”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때까지 숨기셨어야죠. 그게 예의죠.”
    어머니가 울었다. 나는 모른 척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화장실 수챗구멍에 걸린 머리카락을 걷어낸다. 의도치 않게 뜯겨 나가고 빠져나가는 것들을 본다. 각질과 땀과 눈물 같은, 형의 열심 같은 것들. 검은 뭉치가 손바닥만 한 욕실 창을 막아 저녁이 오는 것 같다.
    “정미숙이가, 정미숙이가 늦네.”
    어머니가 한 번도 울지 않은 사람처럼 말한다. 어머니는 주방에 들어가 김치전을 굽는다. 기름 냄새가 고소하게 집을 돌아다닌다. 한동안 우리는 물속에서 누가 오래 숨을 참는지 내기를 하는 사람들 같았다. 누군가 물 밖으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머리를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시계의 초침소리만 째깍거렸다. 정각이 되면 새집 모양 시계의 작은 창문이 열리면서 새가 튀어나왔다. 두 시면 두 번 쏘꾹! 쏘꾹! 소리를 냈다. 오래전 형과 함께 작은 창을 테이프로 막는 장난을 쳤다. 문이 잠긴 새는 머리로 톡톡 문을 두드렸지만 열리지 않았다. 이후로 종종 우리는 새를 가둬 놓고 킥킥거렸다. 세 시의 새가 울지 않으면 마치 그 시간이 사라진 것 같았다. 주말에 형을 더 자게 하려고 나는 자주 새집을 막았다. 형은 그렇게 훌쩍 지나간 시간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곤 했다. 형이 죽고 나는 문을 완전히 밀봉해 버렸고 누구도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한동안 나는 형이, 형의 시간들이 그 속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조용히 숨죽이고 때가 되면 문을 열고 형이 나타날 것 같았다. 정미숙과 함께 나타나 형수라고 부르라고 할 것 같았다.       
    딩-동.
    오래 고인 숨을 토해 내듯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아버지가 나를 날카롭게 쳐다본다. 우리는 형의 부음을 들었을 때처럼 한동안 가만히 있는다. 초인종은 딱 한 번 울렸다. 참을성 없는 아버지가 제풀에 벌떡 일어선다. 어둑한 거실에 불을 켜자 아버지 얼굴에도 반짝 두려움이 켜진다. 불행은 누군가에게 깜깜한 과거가 누군가에게는 대낮처럼 환할 때를 말하는 건지도 몰랐다.
    “누가 있어요?”
    “대문 밖에 누가, 누가 서 있는 것 같은데…….”
    아버지는 말끝을 흐렸다. 16호 주택 앞에 설치된 가로등은 너무 멀어 닿지 않았다. 불빛이 교묘하게 비껴가는 집이었다. 아버지는 내 뒤를 바짝 따라왔다. 천천히 현관문을 열고 우리는 테라스에 섰다. 세로로 긴 마당을 지나 성긴 쇠살이 박힌 대문은 한눈에도 허술해 보였다.
    “누구시오?”
    아버지 목소리가 떨렸다.
    “누구냐니까!”
    좀 더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대문 밖의 검은 형체가 약한 구조 신호처럼 흔들렸다. 대문의 개폐기는 고장 난 지 오래였다. 대문을 사이에 두고 이제 막 어둠과 분리된 그림자와 우리는 한동안 대치했다. 누군간 던져 놓고 간, 내용물을 알 수 없는 자루 같았다. 어둠이 엉킨 그림자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성긴 살 사이로 손을 밀어 넣어 반대쪽 잠금쇠를 잡고 대문을 열기 시작했다.
    형이었다.

 

    문살 사이로 손을 넣어 반대편 빗장 고리를 잡고 열면 문은 쉽게 열렸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우리 식구밖에 없었다. 어둠 속에 형이 서 있었고, 천천히 문이 열리고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테라스를 내려갔다. 동시에 그림자가 불쑥 마당으로 들어왔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예요!”
    형의 외투를 입고 어머니가 서 있었다. 낡은 외투가 차마 버리지 못한 기대처럼 서 있었다. 어머니는 놀란 우리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미친 게지!”
    아버지가 사납게 돌아섰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계단을 오르다 약하게 발이 꺾였다. 그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소리 내 웃기 시작했다. 킥킥 소녀처럼 웃고 있는 어머니에게서, 자신의 인생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로 돌아간 듯 얼굴 가득 홍조를 띤 어머니에게서, 어머니가 입고 있는 형의 점퍼에서, 그 모든 것을 지우듯 눅눅한 기름 냄새가 났다.
    “……놀래켜 주려고 그랬다.”   
    “뭘요? 도대체 뭘요? 누구를요!”
    나는 악의에 차서 소리쳤다.
    “나는 어머니 인생에 놀랄 게 남았다는 게 더 놀라워요. 벌써 치매예요!”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다. 대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고 어머니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점퍼를 여몄다.
    “우리가…… 우리가 아직 산 사람인지 확인해 보려고 그랬다.”
    그렇게 말하고 어머니는 풀이 죽어 조금 전에 나왔을 법한 주방 뒷문으로 걸어갔다. 고양이 한 마리가 담을 공유하고 있는 19호 마당으로 풀쩍 뛰어내렸다.

 

    어머니는 손으로 김치전을 죽 찢어 아버지에게 내민다. 아버지는 마지 못하는 듯 그것을 받아먹는다.
    “기억나요? 형이 병원이라고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했던 말?”
    어머니의 얼굴에 묘하게 금이 간다.
    “나는 모른다. 그 애가 뭘 흘리고 다녔는지.”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아버지의 폰을 집어 들었다.
    “너네만 잘 먹고 잘살면 좋냐!”
    고모의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사고 후 형의 합의금 액수를 알게 된 고모는 하루걸러 전화를 했다. 고모뿐만이 아니었다.   
    “아들 두고 시체장사 했잖아? 그 돈 좀 나눠 쓰면 죗값 갚는 거라고 했어? 안 했어?”
    아버지는 번호를 바꾸지도 폰을 없애지도 않았다. 벌을 받는 것처럼 매일 저녁 가슴을 졸이며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끊고 나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텔레비전을 봤다.
    “나는 그 돈 하나도 안 썼다. 나를 위해서는 단 한 푼도.”

 

    우리는 정미숙을 기다렸다. 정미숙이 이 집에서 우리를 꺼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붙여 둔 테이프를 떼어내고 우리를 밀고하고 자백을 받아낼 것 같았다. 어머니는 형의 보상금으로 집을 얻어 주겠다고 했고 나는 모른 척했다. 집을 보러 다니는 동안 우리는 깨달았다. 그 돈은 생각보다 작았고 어머니는 비로소 큰아들의 죽음의 크기에 대해 마음 놓고 슬퍼할 수 있었다.
    “정미숙이 오늘은 안 올 모양이다.”
    “우리가 죽기 전에는 오겠지. 한번은.”
    드라마 할 시간이다, 라고 말하고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켰다. 제 명을 다해 사는 것들, 차고 넘치게 질긴 것들이 징그럽다고 드라마의 내용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어머니는 주방으로 들어가 아이의 머리통만 한 복숭아를 가져다 깎았다. 무른 복숭아 과즙이 손등에 줄줄 흘렀고 어머니는 연신 자신의 손등을 빨아먹었다. 눈이 자꾸 짓물러서 큰일이다. 처진 눈꺼풀 때문에 눈 주위가 자주 벌겋게 헐었다. 암보다도 어머니를 더 괴롭히고 있었다. 그런 사소한 아픔에 시달렸다. 무릎과 이가 시렸고, 손톱과 발톱이 두꺼워졌다. 당뇨약과 혈압약을 번갈아 먹으며 사소한 고통에 시달리느라 지난 고통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늙어서 받는 벌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루 종일 자신이 주인공인 통증에 시달리며 자신만 생각하는 일일 드라마가 늙음인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눈꺼풀이 따갑고 아파서 드라마도 제대로 못 보겠다야!”
    아프다는 그 말에 아무도 대꾸를 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지 않았다. 가족이란 결코 그럴 수 없는 존재 같았다. 대신 밤이 늦도록 이대로 함께 텔레비전을 볼 것이다. 아무것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보내고 텔레비전을 켜면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이 너무 흔해서 일일 드라마로 주구장창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면서도,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매번 그런 일들에 아이구, 저런 같은 추임새를 반복하며 텔레비전을 볼 것이다. 그러다 어머니는 김치 싸대기를 때리는 늙은 여자와 한쪽 뺨을 감싸는 젊은 여자를 노려보며 누가 더 아프겠냐? 물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짚으로 묶은 배추단이 생각나고 그 누렇게 들뜬 잎들 뒤 테라스 창고 안에 아버지가 숨겨 놨던 형의 보상금이 생각날 것이다. 은행은 믿을 게 못 된다.
    형의 일이 있고 난 뒤 한동안 우리는 얼굴을 보지 않았다. 서로의 얼굴을 보고 밥을 먹는 게 힘들었다. 가족이라면 함께해야 할 모든 일들이 끔찍했다. 평일의 가족과 휴일의 가족이 함께해야 하는 시간들을, 그래야만 했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공범자들은 서로를 가장 못 견뎌했다. 뭔가를 공유하는 집단의 무거운 공기 같은 것이 늘 집을 떠다녔다. 그것을 공기처럼 마시고 양념처럼 먹고 이불처럼 덮고 잤다. 형은 이제 이 집에 없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가족이 아닌 게 아닌 것처럼 오늘이 평일이라고 해서 일일 드라마가 주말 드라마보다 더 막장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아니었다.

 

    언젠가 형은 웃으며 말했다. 골든타임이 언제인 줄 알아? 뭐? 드라마 시청률 같은 걸 말하는 거야? 아니, 고객이 가장 만족하는 골든타임. 그게 언젠데? 바로 지금. 지금 당장.
    진실은 형이 죽던 날이 내 생일이었고 밥을 사주겠다는 형의 약속을 아무 이유 없이 내가 안 지켰다는 거였다. 추운 겨울밤, 형은 꽁꽁 언 정미숙이와 함께 미리 알아 둔 대게집 앞에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계속해서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배고픈 정미숙이는 혼자 집으로 가버렸다. 홀로 남은 형은 저녁 시간을 훌쩍 넘겨, 아마도 쫄쫄 굶은 채로, 한참을 어둠 속에 서 있다 콜을 받고 다시 일을 하러 갔다. 골든타임이라는 게 있다면 그때였을 거라고 나는 줄곧 생각했다.
    나는 끝내 내가 이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못할 것을 안다. 그러면 늦은 밤, 아주 늦은 밤, 잠자리에 누워서야 아버지는 발을 감싸 쥐며 아주 천천히, 어쩌면 나를 대신해, 내가, 내가 더 아프다고 늦은 대꾸를 할 것이다. 우리는 제각각 아프다는 말에 내가 더 아프다는 언제나 주인공의 자세로 평일의 고해를 마무리할 것이다.
    그리고 내일이면 다시 정미숙이를 기다릴 것이다.

 

 

 

 

 

 

 

 

 

 

 

 

 

 

 

이소정

작가소개 / 이소정

202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문장웹진 2020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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