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평한 세계

[단편소설]

 

 

평평한 세계

 

 

이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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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밥을 다 먹어 갈 때쯤이었다. 그릇 밑바닥에서 얼룩 하나를 발견했다. 꼭 멍처럼 보이는 푸르고 진한 얼룩이었는데 수저질을 멈추고 가만히 지켜보자니 귀퉁이가 조금씩 이지러지며 밥알 밑으로 숨어드는 것이었다. 어떡할까. 나는 맞은편에서 밥을 먹고 있는 새어머니와 밥그릇을 번갈아 흘겨보다 그냥 쿡적쿡적, 나머지 밥을 모두 먹어버렸다. 먹는다고 죽을 것 같지는 않았고 밥맛도 특별히 달라진 것 없이 어제와 똑같은 맛, 재료를 대충 썰어 대충 볶아낸 그런 맛이었으니까. 그런데 밥을 다 먹고 나서 그릇을 보니 얼룩은 없었다. 도망갔나, 그릇을 치우며 슬쩍 그릇 밑바닥이며 밥상을 확인했는데 거기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먹어버린 걸지도 몰라. 생각하며 얼룩이 사라진 밥그릇을 씻었다. 그릇에 얼룩이 붙다니 설거지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일까, 혹시 세제를 아끼려고 물을 타서 쓴 게 잘못이었나. 평소보다 더 많은 거품을 낸 스펀지로 평소보다 더 힘주어 문질러 닦은 그릇을 엎어 두고 방에 들어왔다.
    일요일이라 학교를 안 가는 오늘은 딱히 할 일도 없고 만날 친구도 없어서 한들한들, 침대에 누워 창문 밖 전봇대의 전깃줄을 세어 보고 유튜브로 남의 집 고양이도 구경하며 혼자서 놀았다. 그렇게 꼬부리고 누워 실컷 빈둥대다가 갑자기 할일이 생각났다. 오늘 아침에 대야에 교복 블라우스를 담가 두었다. 내일 입고 가려면 마저 빨아서 널어 두어야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팔이 침대를 짚고 누르는 느낌이며 발이 바닥을 디디는 감각이 어딘가 좀 이상했다. 내 몸이 닿는 모든 부분에 몰캉몰캉하고 폭신폭신한 얇은 막 같은 것이 씌워진 느낌이랄까. 나는 어리둥절해서 일어선 채로 잠시 서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반투명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얼룩을 먹어서 이렇게 됐나.
    침대에 도로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평소와 별다를 것 없는 날이었고 딱히 반투명해질 만한 짓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것이 있다면 점심밥과 함께 얼룩을 하나 먹었을지 모른다는 것뿐인데 그게 혹시 먹은 사람을 반투명하게 만드는 얼룩이었나. 그럼 혹시 같은 밥을 먹은 새어머니도 반투명해졌을까, 알아보기 위해서는 일단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몸이 이렇게 되고 나니 이전처럼 힘을 쓰는 것이 어려웠다. 문손잡이를 제대로 쥐는 데만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힘을 주어 잡고 돌리니 미끈, 미끈하며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통에 양손을 다 써서 안간힘을 들여야 했다. 겨우 열린 문틈에 손가락을 비집어 넣어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을 벌리고 나자 녹초가 되고 말았다. 걸어 나갈 기운도 없어 문지방에 주저앉은 채 거실을 내다보았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새어머니의 뒤통수가 보였다. 늘 그렇듯이 비딱한 자세로 웅크려 앉은 모양이 반투명해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소리를 내어 새어머니를 불러 보았다.
    “저기요.”
    그러나 새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앉은 채로 잠들었나.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새어머니는 잠든 게 아니라 그저 심상한 얼굴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왜 사람 말을 무시하지, 화가 나서 다시 불렀다.
    “저기요.”
    그런데 코앞에서 부르는데도 새어머니의 표정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고 나조차도 내 목소리가 좀 이상해서, 꼭 깊고 깊은 동굴 속이나 우주 끝에서 말하는 것만 같이 웅웅 울리고 어딘가 쓸쓸한 느낌마저 들어 움찔한 참에 알게 되었다. 아니 이거 혹시.
    마침 화장실 문이 열려 있기에 들어가서 거울을 보았다. 원래 같았으면 조그맣고 깡마른, 이마에 여드름이 좀 난 중학생 여자 아이가 서 있어야 할 거울 속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세면대를 붙잡고 한참 멍하니 서서 거울 안을 들여다보았다. 원래 내가 알고 있던 우리 집 화장실의 풍경, 물때 낀 샴푸 린스 병과 아마도 전에 살던 사람이 붙여 놓았을 미끄럼방지 인어공주 스티커와 깨진 타일들까지 모두 그대로였지만 그 안에 나는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게 되었구나. 아예 사라졌구나.
    그렇구나, 생각했다.
    좀 놀랐을 뿐 슬프지는 않았다. 왜 슬프지 않으냐면 나는 원래부터 좀 존재감이 없는 편이었고 세상에 내가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어떤 기분인지 무얼 먹고 싶고 주로 누구와 노는지 등을 궁금해 하는 사람은 없었으므로 지금의 나는 어떻게 보면 평소와 별다를 것 없는 상태인 셈이니까. 아니 오히려 잘 됐다, 이렇게 된다면 해보고 싶은 일이 하나 있었다. 나는 좀 웃으며 거실로 다시 나왔고 새어머니 앞에 쪼그려 앉았다. 쪼그려 앉아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네가 싫어.”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한 말이었는데 갑자기 새어머니가 팔을 움직였다. 놀라 움찔했지만 새어머니는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로 리모콘을 집어 들어 텔레비전 채널을 돌렸다. 이번에는 내가 머쓱해지고 말았다, 오랫동안 해보고 싶었던 말이었건만.
    “정말 싫어.”
    덧붙였지만 이미 김이 샌 느낌이라 그만두었다.

 

    새어머니는 그 이후로도 몇 시간 동안 꼼짝 않고 텔레비전을 보았다. 원래 새어머니는 집에선 텔레비전 보는 것 말고는 별다르게 하는 일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하지, 그 자세 그대로 붙박인 듯이 몇 시간을.
    나는 나대로 이 반투명한 상태에 대해 여러 가지를 부지런히 시험해 보았다. 아직 반투명해진 지 몇 시간밖에 되지 않긴 했지만 배가 고프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몸을 세게 부딪혀도 그저 물컹, 물컹할 뿐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벽이나 물건을 통과해 지나가거나 할 수는 없는 데다 힘이 개미만큼 줄어든 것도 여전하여, 시험 삼아 이불 귀퉁이를 들어 올리려고 해보았는데 이불이 쌀자루처럼 무겁고 힘들었다. 전단지, 머리끈, 더 가벼운 물건으로 바꾸어 가며 몇 번이나 시도하다 지쳐 그만두고 말았다.
    그러고 나니 크게 할일이 없어 그냥 온 집 안을 돌아다녔다. 스스로 문을 여는 것은 불가능했으므로 문이 열린 곳, 내 방과 거실과 화장실을 몇 번이나 번갈아가며 들락거렸다. 화장실 바닥에 놓인 세숫대야에는 내가 어제 담가 놓은 블라우스가 아직 그대로 있었다. 그걸 보자 그제야 학교 생각이 났다. 내일부터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괜찮았다. 어차피 별로 재미있는 일은 없는 곳이었으니까.
    그러는 동안 해가 저물었다. 새어머니는 채널을 몇 번 돌리다 텔레비전을 껐다. 내 방 쪽을 향해 소리쳤다.
    “고미야.”
    대답이 없자 한 번 더 불렀다.
    “고미야.”
    그러더니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내 방으로 걸어가는 새어머니의 뒷모습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내가 없어진 것을 알면 새어머니는 놀랄까, 화를 낼까. 새어머니는 내가 빠져나오느라 빼꼼 열어 둔 문틈 사이로 어두운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잠시 서 있더니 손을 집어넣어 방의 불을 켰다. 아무도 없는 방 안이 환하게 밝아졌다.
    “짜잔, 나는 여기 없습니다.” 나는 신이 나서 외쳤다. 물론 들리지 않았겠지만.
    그러나 새어머니는 한참 동안 서서 텅 비어 있는 방 안을 바라보다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불을 다시 껐다. 그러고는 거실의 불을 끄고 주방의 쪽창문도 닫았다. 기가 막혀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태연하게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아버렸다. 안에서 부스럭부스럭, 이불에 살 부비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새어머니의 방문을 발로 걷어찼다. 바람이 문을 흔드는 것만큼의 충격도 주지 못했지만 어쨌든 힘껏 찼다. 욕도 실컷 했다. 내가 없어지니 너는 좋겠다, 아주 쌤통이겠다, 소리치자 분하고 원통해 눈물이 왈칵 났다. 꾸덕한 젤리 같은 눈물방울이 바닥에 뚝 떨어져 푸르스름하게 빛이 났다. 화가 나는 것과는 별개로 그건 또 놀라워서 이런 몸으로도 눈물은 나는구나, 엎드린 채로 코를 훌쩍이며 그런 것을 신기해하고 있자니 두 번째로 머쓱해져 문을 발로 차는 짓 따윈 그만두게 되었다.

 

    몸이 이렇게 되면 잠을 잘 수가 없는 모양인지, 평소처럼 자려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말똥말똥 눈만 굴러갈 뿐 잠이 오지 않았다. 텔레비전도 휴대폰도 책도 볼 수 없으니 그냥 그대로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주로 좋고 즐거운 것들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내일부터 가지 않아도 될 학교와 치르지 않아도 될 기말고사와 하지 않아도 될 청소 빨래 설거지를. 지금까지 새어머니는 제 눈을 핑계로 나를 부려먹었지만 이제 자기 스스로 밥을 해먹고 옷을 빨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이제 아무 것으로도 살아갈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나의 새어머니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 거기에는 끔찍한 이야기가 있다. 새어머니가 어렸을 때 일이다. 온 가족이 차를 타고 나들이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삼중 추돌사고가 났다. 그때 초등학생이었던 새어머니는 휴게소에서 산 알감자를 긴 나무꼬치로 찍어먹고 있었는데 사고의 충격으로 그 꼬치가 왼쪽 눈을 깊이 찌르며 안구 속에서 부러졌다. 그대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부러진 나무꼬치와 흐물흐물 곤죽이 된 안구를 함께 적출하는 수밖에 없었다나. 그러나 새어머니가 그날 잃은 것은 왼쪽 눈알뿐만이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어린 남동생까지, 더욱 중요한 것들을 몽땅 상실했으므로 왼쪽 눈알 따위 없어진 건 별로 주목할 만한 사건도 아니었을 것이긴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감자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 감자를 씹으면 안구를 이루고 있는 얇은 가죽 주머니가 뾰족한 꼬치에 푹 찔리며 탁 터지는 그 느낌이 입안에서 생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날카로운 물체, 예를 들면 뜨개용 대바늘이나 주삿바늘, 가끔 컨디션이 나쁠 때는 샤프펜슬 따위를 보고도 온몸이 딱딱하게 굳으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 얘기를 들은 건 초등학생 때이지만 몇 년이 지나 중학교 이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로 뾰족한 것이 싫어, 도대체 어린아이에게 왜 이런 끔찍한 얘길 했을까 생각해 보아도 알 수가 없다.
    내게 이 이야기를 해준 것은 물론 나의 아버지다.
    나는 이 이야기만큼이나 그날의 풍경 역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 아버지가 왼쪽 눈에 안대를 쓴 여자와 함께 거실에 앉아 있었다. 원체 낯을 가리는 꼬맹이였던 나는 현관에서부터 그대로 얼어붙었는데 아버지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고미 이리 오너라, 했다. 쭈뼛쭈뼛 다가가자 여자가 가려지지 않은 쪽 눈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작고 약삭빨라 보였다, 여자도 여자의 오른쪽 눈도. 내 짧은 인생에서 첫눈에 싫은 사람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는데 아버지는 태연하게도 말했다. 오늘부터 이 여자가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될 것이라고. 나는 아버지가 한 말의 모든 부분이 이해되지 않아 여자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는데 아버지는 그걸 안대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아들었는지 저 이야기, 그러니까 나무꼬치와 감자 이야기를 해준 것이었다. 심지어 아버지는 그 말끝에 아주 재치 있는 농담을 해낸 사람처럼 껄껄 웃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듣는 새어머니는 어떤 표정이었나, 함께 웃었는지 아니면 애한테 별소리를 다 한다며 타박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좋은 얼굴은 아니었을 것이다. 새어머니는 내 앞에서 좋은 얼굴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둘은 결혼식은커녕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지만 제법 오래 부부로 함께 살았다. 그러나 평화롭지만은 않았던 것이 아버지는 술을 자주 마셨고 취하면 사람을 때리는 사람이었으므로, 저런 사람은 죽어 없어지는 편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해 왔는데 과연 저주가 통했는지 몇 년 뒤 간경화로 죽었다. 집에는 나와 한쪽 눈이 없는 새어머니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나도 반투명해져 있는지 없는지 모를 존재가 되었으므로 새어머니만이 남은 것이다. 억울하고 통탄할 따름이었다. 마지막에 혼자 남는 건 나이고 싶었는데. 무엇을 돌보거나 신경 쓰는 일 없이 훨훨 혼자 살고 싶었는데.
    나는 이제 어떻게 될까.
    바로 누웠다가 모로 누웠다가 하며 나는 뒤척뒤척, 나의 반투명한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별다르게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았고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이 몸으로는 어디에다 대고 호소할 수도 없어 재미없다, 지루하다, 반투명해지기 전에도 후에도 재미없고 지루하구나, 하며 계속 뒤척이다 날이 밝아 반투명한 첫날은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새어머니는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서투른 솜씨로 라면을 끓여 아침을 먹었고, 얼굴을 잘 씻은 뒤 어디론가 나갔다가 밤늦게야 들어왔다. 새어머니가 나갈 때 현관문이 열리는 틈을 타 밖으로 나가 보려고 했지만 문이 여닫히는 타이밍을 잘 잡을 수 없어 며칠째 실패했다. 자칫했다간 현관문 사이에 그대로 낀 채 새어머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몰랐으므로 겁이 나기도 했다. 나갈 때 항상 텔레비전을 끄고 가는 바람에 놀 거리도 없어 며칠간은 아주 심심했다.
    그런데 그렇게 며칠이 지난 토요일이었다. 새어머니가 점심을 먹고 텔레비전 앞에 앉기에 나도 멀찍이 앉아 오랜만에 텔레비전에 몰두해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움찔 놀란 새어머니를 따라 나도 움찔 놀랐다. 내가 반투명해지기 전에도 집에 누군가 찾아오는 건 드문 일이었으니까. 새어머니는 몸을 꼬부려 현관문에 난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어머니, 저 고미 담임입니다.”
    “누구시라구요?”
    “고미 학교 선생님이에요.”
    그제야 나는 그 목소리를 알아보았다. 담임선생님이었다. 새어머니는 잠시 망설이다가 문을 열어 주었다. 과연 현관문 밖에 담임선생님이 서 있었다. 학교에서만 보다가 이런 곳에서 보니 이상한 느낌으로, 꼭 선생이 아니라 중년의 잡상인 같은 인상이었다. 새어머니에게도 그렇게 보였는지 안으로 청할 생각도 않고 현관에 붙박여 선 채 담임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아무리 전화를 드려도 안 받으시길래. 고미 휴대폰도 꺼져 있구요.”
    바깥이 더웠는지 담임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새어머니는 들어오라고 권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관을 단단히 틀어막은 모양새로 버티고 서서 그저 담임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서 있을 뿐이었다. 담임 역시 당황해서 새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저분한 일회용 안대로 가린 왼쪽 눈과 약삭빠르게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오른쪽 눈을.
    “그 애는 자기 외갓집엘 갔어요.”
    잠시 동안의 대치 끝에 새어머니가 말했다.
    “학교에다 이야기했다고 하던데, 못 들으셨어요?”
    담임은 고개를 갸웃하고 입을 약간 벌렸다. 방금 들은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고미가요? 외갓집에 갔어요?”
    “네. 외갓집에.”
    “외갓집에 무슨 일이 있어요? 그래도 학교를 무단으로 결석하면 안 되는데요.”
    “외갓집에…… 외갓집에 상을 당해서.”
    “상이요? 그런데 왜 같이 안 가셨어요?”
    “저는 걔 친엄마가 아니라서요.”
    이번에는 담임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새어머니는 뭔가 의기양양한 얼굴을 했다. 이게 무슨 유치한 랠리일까, 둘 사이에 서서 탁구 경기를 보듯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며 둘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나는 피식 웃었다.
    “고미가 양어머니와 살고 있는 줄은 몰랐네요. 밝고 쾌활한 아이라서.”
    담임이 얼버무렸다. 그런데 그때 새어머니가 미간을 확 찡그렸고, 순식간에 새어머니의 얼굴은 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걔가 밝고 쾌활한 아이라구요?”
    “네? 네, 특별히 친한 친구는 없는 것 같아도 아이가 참 명랑하고 엉뚱해서 귀엽…….”
    “걔가 명랑하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네요.”
    새어머니가 쏘아붙였다. 나와 담임은 둘 다 깜짝 놀라 새어머니의 입만 쳐다보았다.
    “학교에서는 어쩌고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걔가 집에서는 어떤지 아세요? 얼마나 냉랭하고 싸가지가 없는지, 나를 본체만체하고 말도 걸지 않아요.”
    담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담임의 머리 위로 땡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블라우스 가슴팍에 동그랗게 땀이 번진 자국이 보였다. 문득 몸이 반투명해진 이후로 한 번도 햇빛 아래에 서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저 빛 아래에 선다면 어떻게 될까. 녹아내릴까. 사르르 녹아내려서 아예 없어질까. 그럴 수만 있다면.
    “걔는 처음부터 그랬어요. 천연덕스런 얼굴로 나를 무시하고. 내가 눈이 이래서 무서워 그렇다, 아직 애가 어려서 그렇다 생각하고 참으려고 했는데 그게 벌써 몇 년인지. 계집애가 어찌나 요망하고 못돼 처먹었으면. 딴에는 잘해 주려고 해도 쌩 무시하고 난 니년이 싫다, 증오스럽다 하는 얼굴로 응? 애아버지 죽고 나서 혼자 몸으로 뼈 빠지게 돈 벌어서 용돈 주고 밥 먹여 주면 뭐해요? 어른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아주 그 싸가지 없는 기집애 요 며칠 안 봐서 속이 다 시원해.”
    새어머니는 토하듯이 말을 쏟아 놓고는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담임이 기가 질린 표정으로 반 발짝 물러섰다.
    “어, 고미 어머니…… 고미 진짜 외갓집 간 건 맞죠?”
    그때 나는 슬쩍, 담임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 현관문을 빠져나왔다.
    햇빛 아래로 나와 내려다본 내 몸은 꼭 물 밑에서 올려다보는 수면처럼 빛 무리가 어룽거려 아름다웠고 녹아내리거나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 예뻐, 나는 내 손을 허공에 들어 올려 비추어 보며 중얼거렸다. 담임을 지나쳐 타박타박 복도를 걸어갔다. 등 뒤에서 새어머니가 내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걔만 부모가 없는 줄 알아요? 나도 없어요. 나도 고아라구요.”

 

    어디로 가야 할까.
    며칠 만에 나온 바깥이건만 특별나게 가고 싶은 곳도, 오라는 곳도 없어 막막했다. 그냥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보통 이 시간엔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바깥에 있는 것 자체가 신선하고 즐겁긴 했으나 그것도 잠시, 곧 몹시 피곤해졌다. 아마도 소음 때문인 것 같았다. 차 다니는 소리, 사람 떠드는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들이 내 몸을 통과하며 제각기 웅웅거려 토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결국 얼마 못 가 어느 문 닫은 가게 앞 계단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제부터 무얼 할까.
    보통 영화에서 보면 투명인간은 은행을 털거나 스파이가 되거나 연인을 몰래 따라다니거나 하지만 나는 돈에 별 관심이 없었고 연인은커녕 친구도 없었다. 게다가 금고 벽을 통과하지도 못하는 이런 몸으로 은행을 털 수 있으려나. 나는 그럼 뭘 하면 좋을까, 뭘 하고 싶을까. 계단에 그대로 앉아 오래 고민했다.
    아무래도 멀리 어딘가로 떠나버리고 싶은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어디일까.
    어디든 갈 수 있게 된 지금도 가고 싶은 곳이 없다니 꽤나 재미없게 살아왔구나. 양고미의 13년 인생은 정말 지루했구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웅크려 앉아 통탄했다. 그래도 자기반성을 하기엔 이미 너무 늦은 감이 있었고 설령 다시 반투명하지 않은 이전의 양고미로 돌아간다고 한들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으므로 이런 부질없는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멍하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하나하나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꼬마야 태권도 가니 아주머니 대파를 사셨나요 요즘 대파가 달죠. 아저씨 등산은 즐거웠나요 어머 언니 우산 챙겨요 저녁엔 비가 온대요. 하지만 그대로 슥 지나쳐 버리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어쩐지 무시당한 기분이라 마음이 아파 이 짓거리도 끝내는 그만두게 되었다. 결국 밤이 깊어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데도 가지 않고 그저 그곳에 앉아 있었다.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뜸해졌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아마 집으로 돌아갔겠지. 그곳은 향기롭고 따뜻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쉬고 있는 곳이겠지. 그런 곳으로 당연한 듯이 향해 가는 사람들이 코가 찡할 만큼 부럽고 샘이 났다. 그런 기분으로 벌떡 일어섰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지금처럼 걸었다 앉았다 하며 어디까지라도, 반투명하게 흐느적거릴지라도 꾸준히 집요하게 갈 수 있으련만 없었다 그런 곳이.
    드문드문 사람이 지나갔고 버스정류장에는 오늘의 마지막 버스가 섰다. 맞은편 편의점의 유리벽 너머로 교대하러 온 야간 아르바이트생이 조끼를 갈아입는 것을 지켜보다 나는 결국, 다시 집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비가 오려는지 가끔 축축하게 물기 묻은 밤바람이 불어 내 몸은 바람 부는 방향으로 조금씩 울렁울렁 나부꼈고 아아 가기 싫다 가기 싫어 싫어라 싫어, 멜로디를 붙여 흥얼거리며 나는 한 발짝씩 천천히 걸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현관문은 보나마나 닫혀 있을 테니 그 앞에서 한참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보니 어둑한 복도 중간에 빼꼼, 불이 환하게 켜진 채 문이 조금 열린 집이 있었고 더 자세히 보니 그건 우리 집이었다. 게다가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안에서 웬 남자의 낯선 목소리까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깜짝 놀라 귀를 기울였다. 언뜻 들어도 화가 난 목소리였다. 누군가 집 안에서 다투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을 오그려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가자 집 안이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현관에 바로 면한 주방 바닥에는 음식이 담긴 채 바닥에 내박쳐진 듯 깨진 그릇 조각과 음식 찌꺼기가 흩뿌려져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다리가 한쪽 부러진 식탁 의자가 싱크대 앞에 뒹굴고 있었다. 발소리가 들릴 일도 없건만 왠지 나도 모르게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현관을 지나 거실로 가보았더니 이쪽은 더 심각했다. 꼭 성질 급한 도둑떼가 한바탕 휩쓸고 간 것처럼 옷장이며 서랍장이 다 열려 온갖 세간살이가 끄집어내져 부서지고 뒹구는 중이었다. 그 엉망진창 한가운데에 새어머니가 쭈그려 앉아 있었다. 집에서도 항상 차고 있던 안대는 어디다 빼놓았는지 없었고 머리는 산발이었다. 새어머니의 얼굴 아래쪽에 묻은 갈색 얼룩이 말라붙은 피라는 것을 눈치 챈 순간, 나는 새어머니가 한쪽 눈으로 표독스럽게 노려보고 있는 곳에 웬 남자가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엔 그 남자가 중학생, 아니면 고등학생이라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나보다 한 뼘 정도 더 큰 키에 체격도 왜소해서 도저히 어른처럼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남자는 몸뚱어리가 조그맣긴 했지만 확실한 성인의 얼굴을 달고 있었고 심지어 그 얼굴은 새어머니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였다. 조그맣고 동그란 눈이며 뭉툭한 코 주변으로 흉한 주름이 자글자글한 탓이었다. 평생 인상을 찌푸리고 살아온 사람들이 나이 들어 갖게 되는 그런 주름이.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소리 지를 때, 그 고함의 절반은 자기 얼굴에 도로 가서 들러붙게 된다. 그것들이 얼굴의 팬 곳곳마다 고이고 묵어서 꼭 저런 모양으로 남는 것이다.
    나는 그런 주름을 가진 남자를 또 한 명 아는데 그건 바로 죽은 나의 아버지, 항상 나와 엄마와 새어머니에게 악을 쓰며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강요했던 그 아버지의 얼굴도 저런 몰골이었지. 그래서인지 몰라도 아버지와 이 남자는 체격도 옷차림도 달랐지만 어딘가 모르게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남자와 새어머니가 무슨 관계일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뻔했다. 저런 구도로 도사리고 앉아 서로 바라보는 남녀 사이란 한 가지 종류밖에 없으니까. 저렇게 서로를 쏘아보는 남녀를 나는 평생 보고 자랐으니까. 저 여자 팔자도 정말 어지간히 꼬였구나, 원래부터 꼬인 건지 스스로 꼬는 건지는 몰라도 참 박복하구나 생각하는데 남자가 별안간 소파에 펄썩 주저앉았다. 그러더니 바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담배 꺼.”
    새어머니가 낮게 중얼거렸다. 새어머니는 여전히 남자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새어머니의 오른쪽 눈이 부릅떠지면 부릅떠질수록, 그 옆의 짓무른 토마토 같은 왼쪽 눈두덩이 더욱 도드라지는 것이었다.
    “담배 끄라고.”
    그러자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소파 팔걸이에 담배를 거칠게 비벼 껐다. 남자가 이를 꽉 깨물며 송곳니를 드러내, 담배 연기가 남자의 턱 주변으로 뭉클 퍼져 나가는 모양을 보고 나는 곧이어 시작될 것이 무엇인지 예감했다. 그러나 내가 미처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남자의 손아귀가 새어머니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동시에 다른 쪽 손이 뱀처럼 유연하게 뻗어 나와 새어머니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거친 손바닥이 뺨에 감겼다 떨어지는 감촉과 귀를 찢는 소리와 눈앞에 번쩍 하는 희고 붉은 빛, 이제 다시는 매끈하고 부서지지 않은 세계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절망과 발끝에서부터 묵직하게 차오르는 증오를. 체온도 호흡도 없는 몸으로 얼굴이 확 달아올라 나는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저기 남자의 발밑에 오른뺨을 부여잡고 웅크린 것이 새어머니가 아니라 나인 것만 같았다.
    새어머니는 잠시 죽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형광등 불빛에 환히 드러난 새어머니의 종아리 가운데에 시꺼먼 멍 자국이 보였다. 가만히 서서 그 멍 자국을 응시하자니 갑자기 나도 배 속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았다. 물론 새어머니가 두들겨 맞는 꼴을 보는 건 처음이 아니었고 나도 저렇게 맞아 본 적이 있었지만, 그래 그러니까 이런 장면은 어찌 보면 지겨울 만큼 낯익은 것이었지만, 어떻게 이것은 매번 같은 모양으로 이리도 새롭게 괴로울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남자가 갑자기 몸을 홱 돌렸다. 소파에 던져 둔 제 겉옷을 집어 들더니, 겉옷에 거칠게 팔을 쑤셔 넣었다. 그러고선 남자는 성큼성큼 현관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마다 발에 채는 살림살이들을 걷어차는 통에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잠시 후 남자는 열려 있던 현관문을 거세게 밀치고 나가버렸다. 그 서슬에 엎드렸던 새어머니가 움찔 놀라 고개를 들었다. 코피가 터져 온 얼굴이 피로 흥건했다.
    새어머니는 고통스러운 듯 천천히 몸을 일으켜 주저앉았다. 고개를 외로 틀어 엉망이 된 거실이며 주방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남자가 나간 현관문 바깥에 시선을 멈추고 한쪽 눈으로 오래 쳐다보았다. 비가 오려는지 바깥에서 은은한 천둥소리가 우르릉, 우르릉 들려오고 있었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나는 새어머니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아버지가 나를, 엄마를, 새어머니를 두들겨 팬 뒤 집을 박차고 나갔을 때 나도 같은 소원을 빌었으니까.
    이대로 아무도 오지 않기를.
    완전히 혼자 남을 수 있기를.
    새어머니는 그 뒤로도 한참을 더 같은 자세로 앉아 현관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남자는 다시는 이 집에 오지 않을 것이다. 새어머니에게 연락하지도 않을 것이다. 재수 옴 붙었다고, 더럽고 끔찍하다고 생각하며 새어머니의 일을 잊어버리려 노력할 것이고 실제로 금세 잊을 것이다. 그런 사람 따위 알았던 적도 없다는 듯이 살아갈 것이다. 새어머니도 그것을 깨달은 걸까, 어느 순간 새어머니의 오른쪽 눈은 현관문에서 벗어나 허공의 한 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를 보는 것인지 시선을 따라갔으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의아해하는데 새어머니가 아까와 비슷한 자세로 느릿느릿 엎드렸다. 팔과 다리를 배에 오그려 붙여 절하는 것 같은 모양이 되어서는 그 자세로 잠시 있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반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똑딱이 손난로의 버튼을 똑, 딱, 접었다 편 것처럼 새어머니의 몸 한가운데서부터 둔탁한 반투명이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새어머니의 몸뚱이 밑으로 장판에 다리미 눌은 자국이 흐릿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붙박여 선 채로 새어머니가 반투명해지는 것을 그저 지켜보았다. 시간이 느릿느릿 흐르는 것만 같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반투명해진 후에도 새어머니는 한동안 엎드려 일어나지 않았다. 몸이 저렇게 된 걸 아직 눈치 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하지만 혹시 저대로 영영 죽은 건 아닐까, 더럭 겁이 나서 들리든 들리지 않든 일단 불러나 보려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전까지 내가 저 사람을 뭐라고 불렀더라. 입술을 둥글게 모아 부르는 사람의 입 모양을 했으나 막상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집에 오래 함께 살았으니 분명 뭐라고 부르긴 불렀을 텐데 그게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한참 입을 벙긋거리다 결국 나는
    “저어…….”
    하며 어색하게 웅얼거렸고,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새어머니가 퍼뜩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본 순간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새어머니는 나를 통과한 그 너머가 아니라 정확히 나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 역시 새어머니의 눈을, 그러니까 멀쩡히 들어 있는 오른쪽 눈뿐만이 아니라 어렸을 적 잃었다는 왼쪽 눈까지 양쪽 모두를 한꺼번에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형광등 불빛을 그대로 통과하여 뿌유스름한 새어머니의 얼굴은 반투명해지기 직전의 모습 그대로라 얻어맞은 손자국이 퉁퉁 부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이전처럼 바로 보기 힘든 느낌은 들지 않았고 오히려 좀 측은하기까지 했다. 보면 볼수록 참 팔자 기구하게도 생겼다, 이제 보니 그 배우 누구더라 만날 가난한 엄마 역할로 나오는 사람이랑 좀 닮았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곧이어 정신을 차린 새어머니가 나를 보고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소스라치게 놀라도록 내버려두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니?”
    “처음부터요.”
    “처음부터 언제?”
    “나 없어진 날부터요.”
    “내내 이 상태로?”
    “내내 이 상태로.”
    괴상한 문답을 주고받고 나자 서로 더 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잠시 입을 다물고 엉망진창인 거실을 배경으로 앉아 있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멋쩍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 장면 이 느낌이 낯선 것만은 또 아닌 듯해 언제 또 이런 일이 있었더라, 생각해 보니 있었다 정말로. 새어머니와 내가 두 개의 못생긴 정물처럼 입을 다문 채 퉁퉁 부어올라 한자리에 놓여 있었던 순간이. 아버지가 살림살이를 때려 부수고 말리는 우리들까지 한 차례씩 패대기친 뒤 집을 나가버린 날이었다. 그때도 새벽이었고 온 집 안이 깨지고 부서진 것들로 가득했고 남은 우리들의 막막함과 서러움까지 오늘과 흡사했다. 부수는 사람만 바뀌었을 뿐 부서지는 것들은 그대로구나, 그러면 그 뒤에 우리는 어떻게 했나. 잠시 황망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 일어서서 어질러진 것들을 치웠었다. 아예 부서진 것은 버리고 덜 부서진 것은 고치면서. 서로 신세한탄을 주고받을 만큼 친한 사이는 지금이나 그때나 아니었으므로 그저 입을 다물고서 묵묵히, 달그락달그락.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새어머니가 훌쩍 일어섰다. 그러더니 화장실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마 거울을 보려는 거겠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세면대를 붙들고 놀라고 있겠지. 과연 화장실로 들어간 새어머니는 한참 동안 혼자 조용했다. 그러나 잠시 후, 화장실에서 나오는 새어머니의 얼굴은 더 이상 놀란 사람의 그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은 홀가분하니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좀 씁쓸해졌다. 더 이상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을 때, 종전을 알리는 나팔소리를 들은 병사처럼 훨훨 홀가분한 표정을 나도 지었을까. 왜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얼굴을 할까. 생각하는데 사뿐사뿐 화장실을 걸어 나온 새어머니가 나를 바라보고 물었다.
    “우리 죽은 거니?”
    “아닌 것 같은데 그런 것도 같네요.”
    “무슨 대답이 그래.”
    “저도 잘 모르겠어요. 며칠 안 돼서.”
    그러자 새어머니가 통통 부은 옆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뭐야 왜 갑자기 친한 척이래, 나는 쌩하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까부터 나도 슬쩍 웃고 있었고 반투명해진 내 뒤통수를 통해 올라간 입 꼬리가 그대로 비쳐 보였으므로 표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반투명해진다는 건 거짓말에 약해진다는 거구나, 나는 새삼 생각하며 그냥 웃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생각보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잠도 안 오고, 배도 안 고파요.”
    “그런 것 같다. 아프지도 않아.”
    “근데 힘이 안 들어가요. 힘을 잘 쓸 수가 없어요.”
    “어머, 정말이네.”
    “아무리 해도 안 되죠?”
    “으응. 어휴.”
    새어머니가 현관 쪽에서 끙끙거렸다. 문에 괴어 놓은 말발굽 모양 걸쇠를 움직여 문을 닫으려다 실패한 모양이었다. 이젠 이 집의 누구도 문을 자유롭게 여닫을 수 없게 되었으니 그대로 열어 두는 게 좋을지도 모르지만, 날이 밝으면 이웃들이 우리 집 앞 복도를 지나다니며 엉망진창이 된 집 안을 환히 들여다볼 거였다. 아니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람, 어차피 들여다본대도 우리를 볼 수는 없을 텐데. 새어머니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문을 닫는 걸 쉽게 포기하고는 도로 거실로 돌아와 주저앉았다.
    “그런데 말이다.”
    새어머니가 주저앉은 채로 말했다.
    “혹시…… 그때도 거기 있었니?”
    “그때요?”
    “그, 지난주 토요일에.”
    토요일이 언제였더라, 요일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라 잠시 고민하다가 생각해 냈다. 아마도 담임선생님이 찾아온 날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럼요.”
    “……그렇구나.”
    “왜요?”
    생각 없이 되묻고 나서야 갑자기 깨달았다 왜 물었는지를. 새어머니의 입이 오물거리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무엇에 찔린 사람처럼 벌떡 일어섰다.
    “아, 제발 하지 마세요.”
    새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나는 알 것 같았다. 아니, 알고 있었다. 이미 들은 것처럼 또렷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듣고 싶지 않았다. 미안했다는 말, 용서해 달라는 말, 나도 힘들었다는 말, 뭐 그런 종류의 무의미하고 지긋지긋한 얘기를. 아무것도 돌려놓을 수 없는 주제에 꼭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말, 곱씹을수록 공허하고 텁텁하기만 한 그런 말을 만약 내게 한다면, 하고야 만다면 나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까 웃었던 일이 혀를 씹고 싶도록 후회스러웠다. 아주 잠깐 함께 웃었다고 해서 모든 게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그렇지 저들은 모든 게 그렇게 쉽고 깔끔한 족속들이었지. 휘저을 대로 휘젓고 부술 대로 부수고선 고개를 돌리면 다 잊어버리는 종류의 생물이었지. 갑자기 속에서 부글부글 작은 공기방울들이 끓어올랐다. 나는 순식간에 터지고 싶었다. 펑 터져 산산조각이 나 푸르스름 반투명한 덩어리로 흩어져, 다시는 인간의 모양으로 되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나는 비틀거리며 문 쪽으로 걸어갔다. 새어머니가 놀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떠날 거였다. 사라질 거였다. 이대로 이곳을 나가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도 떠올리지도 않을 거였다. 어떻게 해야 사라질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볼 거였다.
    열린 현관문에 가까워져, 바깥에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다는 것을 감각한 순간이었다.
    돌연 바깥에서 커다란 무언가가 파스스 날아 들어오더니 그대로 내 어깻죽지에 달라붙었다. 손바닥만 한 갈색 나방이었다. 나는 악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 굳어진 채로 우뚝 서버렸다. 새어머니가 달려왔다. 새어머니 역시 나방을 보고는 짧은 비명을 내질렀지만, 다음 순간 새어머니는 손을 한 번 탁 털어 나방을 손쉽게 쫓아냈다. 나방은 푸르르 날아올라 천장으로 옮겨 붙었다. 그러나 나방이 떨어져 나간 뒤에도 우리는 깜짝 놀라 얼어붙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그 감각을 평생 느껴 본 어떤 감각보다 선명하게 기억할 것을 직감했다. 새어머니의 손이 내 몸과 닿은 순간, 반투명한 그녀가 빠르게 일렁이며 나와 겹쳐졌다 떨어진 그때의 느낌을. 그 짧은 순간 우리는 합쳐졌다가 다시 나뉘어졌다, 마치 두 개의 물방울이 닿았다가 떨어진 것처럼. 나는 아직도 내 어깨 부근에 새어머니의 손을 이루고 있던 부분의 일부가 남아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내 어깨를 이루는 부분이 새어머니의 손에 섞여들었다는 것 역시도 알 수 있었다.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지만, 거기 붙박여 선 우리는 똑같은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이제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에게서 서로를 분리해 낼 수는 없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멀리 천둥소리가 무겁고 은은하게 다가와 우리를 공명하고 지나갔다. 비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열린 현관문 틈으로 보이는 바깥은 온통 죽죽, 누군가 칼금을 긋는 것마냥 번쩍이는 빗줄기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복도에 빠르게 빗물이 고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곧 집 안으로 빗물이 들이칠 거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우리는 눈을 한 번 마주 보고는 현관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서로 양손을 겹쳐 말발굽 모양 걸쇠를 움켜잡고 힘껏 올렸다. 몸을 부들부들 떨며 힘을 써야 하긴 했지만 가까스로 걸쇠를 바닥에서 살짝 떨어뜨릴 수 있었다. 그런데 걸쇠가 땅에서 떨어진 순간, 바람에 휩쓸린 문이 쾅 닫히는 바람에 우리는 동시에 뒤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멀쩡한 몸이었다면 필시 뇌진탕까지는 아니어도 뒤통수에 거하게 혹 하나쯤은 달았으련만 둘 다 몰캉몰캉 반투명한 덕분에 그냥 철퍼덕, 내박쳐진 모양으로 현관 천장을 바라보는 기묘한 자세가 되었다.
    그러고 나자 온 세상이 조용했다.
    나는 드러누운 채 눈만 굴려 닫힌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고작 현관문을 닫았을 뿐인데, 바깥에서 들려오던 세계의 온갖 소리들이 볼륨을 0으로 낮춘 듯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고요하고 고요했다. 아무런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새어머니가 내 낡은 운동화들 위로 아무렇게나 뻗어 둔 다리를 보다가 나는 기진맥진한 채로 폭 한숨을 내쉬었다. 이왕 누운 거 좀 더 편안한 자세로 눕자 싶어 바닥에 등을 꾹 누르고 눈을 감아 보았다.
    평평하구나.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무엇이 평평하냐면 우리가 누워 있는 이곳, 등을 붙이고 있는 이 지점을 시작으로 온 세상이랄까. 이렇게 반투명한 젤리 덩어리 같은 상태로 퍼질러져 누워 있어도 기울거나 팬 곳이 없어 주르륵 흘러가 버릴 일도 없는, 누군가 툭 밀어도 끄떡없이 존재하고자 하는 곳에 정확히 제대로 존재할 수 있는 정도로 곧고 판판한 이 세계. 그 증거로 우리는 이렇게 아무렇게나 누워 있었고 그만 일어나고 싶을 때까지, 가고 싶은 곳이 생길 때까지 누워 있을 거였다. 둥글납작하게, 고요하고 반반한 모양으로.
    나는 눈을 감은 채 등에 좀 더 힘을 주어 바닥에 눌어붙었다. 바깥에는 장대비가 계속 쏟아지는 모양이었다. 비를 휘몰고 다니는 거센 바람이 온 거리를 샅샅이 훑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문을 닫고 나자 어떤 빗방울도 집 안으로 들이치지 않았으므로, 밖에 비가 오는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이유리

작가소개 / 이유리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20년 《경향신문》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등단.

 

   《문장웹진 2020년 0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