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외 1편

[신작시]

 

 

저수지

 

 

박지일

 

 

 

    라디오가 정지됐으므로 그는 저수지로 갔다 주위는 캄캄했고 수심은 일정했다 걸음마다 물푸레나무가 솟아났다 건너편에는 공장이 있고 흰 빵 가득 바구니가 든 케이지가 있고 케이지를 둘러싸고 흰 빵의 사용법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 살얼음을 밀어낼 때마다 뿌리들이 발목을 휘감고 물고기들이 뒤집힌 접시처럼 떠다녔다 인삼과 도라지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죠, 디제이의 목소리는 건너편에서 들려온다 모든 것은 건너편에 있다 컨베이어 벨트는 밤새 돌아갈 것이다

 

    몰려드는 먹구름; 4배속 되감기
    동시에 32배속 빨리 감기 같은

 

    비행기는 구름을 흩어 놓기 위해 만들어졌다
    내가 짜온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뒤처져 버린 오리 튜브였고 어쩌면 소리 없이 열고 닫히는 캐스터네츠였다 살얼음을 건져 올려 봐 미래의 구름은 점점 희미해질 것이고 비행기의 경로는 다양해질 것이다
    그러나
    물 밖 뻗어 나온 뿌리와 물속 흔들리는 가지를 구분할 수 없는 마음도 빠빠라빠빠빠 빠삐코 광고 음악이 흘러나오는 라디오도

 

    모든 것은 건너편에 있다

 

    그는 보름달물해파리였다; 살얼음이 만들어낸 오르골 소리에 맞춰 돌아가는 물의 모빌
    심해 오징어의 촉수는 사냥용이 아니라 수영용이래요 그는 라디오에게 배운 문장과 함께 저수지를 맴돌고 있다 살얼음을 질질 거느리고 그는 저수지의 저수지를 만들고 있다

 

    사향노루는 그가 저수지로 떠나오기 전부터 빌딩과 빌딩 사이를 첨벙첨벙 뛰어다니고 있었다
    저수지를 뚫고 솟아오르는 비행기
    온 도시가 그를 중계하고 있다 나는 그에 관해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다
    살얼음 낀 목소리;
    모든 것은 건너편에 있다

 

 

 

 

 

 

 

 

 

 

 

 

 

 

 

렌티큘러

 

 

 

 

    내게로만 쏟아지는 강의실 조명들 악마를 모른 척했다고 내가 칭찬을 들어야 하나요
    질문이 있었으나 강의는 계속될 것이다

 

    차렷 자세를 가르치는 목소리와 손안에서 부풀어 오르는 병아리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구운 벽돌처럼 포근하고 악어의 송곳니처럼 차갑다
    나는 고작 악마의 얼굴을 덮을 수 있는 담요였다
    등을 허락한 짐승들에게; 나의 오랜 친구들이여 나는 등대였다 네게 줄 손이 없어서 오늘도 공중만을 바라본다

 

    망원경을 통해 본 울타리 너머는 아름다웠죠 가축과 함께 벌판에 주저앉은 사람이 양의 털을 빗고 있었고 그들의 어깨 너머로 부드럽게 가라앉는 석양 그러나
    강사는 허공을 발끝으로 툭툭 치며 숨을 고른다
    그것은 망원경의 일
    의자는 일 미터 간격으로 띄워져 있다 나 뒷걸음질 같은 건 몰라 다만 품안으로 달려드는 캥거루를 어찌할 수 없었을 뿐 뒷걸음질 같은 건… 내 오른쪽에 앉아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사람에게서 으깨진 풀냄새가 난다

 

    조명이 옮겨 가며 수강생들의 얼굴이 차례대로 환해진다 그것을 단지 눈빛의 체위 변형이라 읽는 사람이 있었고 아름다운 눈 맞춤이네요 노트에 받아 적는 사람이 있었고

 

    그런데요 악마를 모른 척했다고 내가 칭찬을 들어야 하나요 강사는 나의 질문을 되풀이하고 창밖 향해 펼쳐진 블라인드 너머에서는 상한 버섯 냄새가 난다

 

    바람에 덜컹이는 창문 우리는 강의를 듣는다 각자의 담요로 얼굴을 꽁꽁 싸매고 바람소리가 비명처럼 점점 세게 들려온다 조명은 사방으로 돌고 있을 것이다 와르르 바닥 위로 엎질러진 비둘기들은 자신이 왜 등장한 것인지 모르는 얼굴인데
    우리는 날개를 펼쳤던가
    이리저리 휘날리던 팔들이 하나씩 쓰러지고 겨드랑이에서 풍겨오는 으깨진 풀냄새와 우리를 빗는 손이 있어
    강의는 계속될 것이다

 

 

 

 

 

 

 

 

 

 

 

 

 

 

 

 

 

박지일 작가소개 / 박지일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문장웹진 202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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