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두

[청년작가 단편소설]

 

 

언두

 

 

성해나

 

 

 

    도호와 어떻게 만났냐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좀 난처해졌다. 틴더에서 만났어. 솔직히 터놓기 어려워 아는 선배 소개로, 동아리 연합회 활동하다가, 하는 식으로 적당히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다른 질문에도 그랬다. 걘 어느 대학 다니냐는 질문엔 고대에 다니며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다고, 어디 사냐는 질문엔 창신동에서 부모와 산다고 답했다.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지만 맞는 것도 아닌 정보들.
    그런 식으로 도호에 대해 숨기는 게 많았던 것 같다.

 

*

 

    도호와는 틴더로 만났다. 그 시기엔 애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 마음에 들지 않을 땐 화면을 가볍게 밀어 거절할 수 있는 관계, 그런 게 편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으레 발생하는 변수가 싫었고, 지지부진 관계를 맺어 나가는 것이 지겨웠다. 그때는 그랬다. 마음이 동할 때면 틴더를 켜고, 매칭 된 이들을 눈으로 훑으며 프로필에 NO ONS*가 적히지 않은 남자, 반경 거리가 비교적 가까운 남자를 찾았다. 도호도 그중 하나였다. 나이는 동갑, 얼굴도 썩 봐줄 만하고, 무엇보다 LG 트윈스의 유니폼을 입고 찍은 프로필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그때는 나도 LG 트윈스를 응원했으니까) 잠시 고민하다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야구 좋아하세요?]
    너무 후진 플러팅이었지만, 그것을 기점으로 도호와 조금씩 가까워졌다. 처음에는 야구에 대한 이야기만 나눴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누구인지, LG 트윈스가 우승을 한 해에 몇 살이었는지, 잠실야구장 금고 속에 있는 롤렉스는 언제쯤 주인을 찾을지. 번호를 교환하고 핸드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메시지를 주고받은 끝에 도호가 먼저 데이트를 신청했다.
    다음날 밤 혜화에 있는 펍에서 보기로 약속까지 잡아 놓고 나는 그 만남을 약간은 염려했다. 외로워 만난 남자들은 하나같이 좋지 못한 인상만을 남겼다. 성병의 유무를 집요하게 묻는 남자, 다짜고짜 나체 사진을 보내는 남자, 약속장소에 끝까지 나타나지 않는 남자.
    유쾌하지 못했던 지난 만남들을 돌이키다 그냥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이상한 사람은 아니겠지. 그래도 LG 트윈스 팬인데.

  *  ONS – One Night Stand

 

    오프라인의 도호는 평범했다. 키가 좀 크다는 걸 빼면 눈에 띄는 점이 없었는데, 말을 섞다 보니 확실히 다른 점이 보였다. 그는 내가 만나 본 이들 중 가장 풍부하고 이채로운 표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프랑스인처럼 큰 제스처를 사용하는 것도, 천천히 말을 잇는 것도 그의 특징 중 하나였다. 내 말을 들을 때도 그는 고개를 주억이거나 안면근육이나 입술을 미세하게 움직이며 적극적으로 공감을 표했다. 왜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나.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에 특화된 사람들. 도호가 딱 그랬다. 적절한 리액션을 섞어 가며 내 말에 긍정하고, 동감했다. 뿐만 아니라 할 말과 해선 안 될 말의 경계를 유연히 넘나들 줄도 알아 그 덕분에 어색했던 분위기가 금세 누그러졌다. 도수가 낮은 칵테일 한 잔씩만 마시고 곧장 밖으로 나갈 예정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맥주로 판을 새로 깔고 서로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까지 주고받게 되었다. 시작은 LG 트윈스에 대한 얘기, 말을 튼 후부터는 취미나 즐겨 보는 넷플릭스 드라마 얘기. 맥주에 소주까지 섞이자 조금은 딥한 얘기까지도 튀어나오게 되었다. 나는 십 년째 두 집 살림을 하는 아빠에 대해, 그런 아빠를 묵인하고 때때로 용인까지 하는 엄마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 집 살림도 성실한 놈들이나 할 수 있는 거래. 그래도 일 년 중 반은 그 여자네가 아니라 우리 집에 붙어 있으니까 괜찮다더라. 진짜…… 꽃들의 집**만큼 막장이지?
    십 년 지기 친구에게도 못 한 얘길 도호에겐 무심히 털어놓았다. 도호가 편하고 내 얘기를 잘 들어주어서 말할 수 있던 건 아니었다.
    가까운 이들에게 힘겹게 – 때때로 오열까지 하며 – 내 사정을 이야기했을 때, 그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개 비슷했다. ‘힘들었지?’ 사려 깊게 위로하며 안아 주기, 함께 울어 주기. 그때마다 나는 감격했고 송구했고 크게 안도했다. 그 다음번 만남부터 그들의 태도가, 눈빛이 어떻게 달라질지 예상도 못 한 채.
    한데 모여 졸업 후 계획이나 취업에 대한 이야길 나누다 보면 분위기가 암울해지기 마련인데, 서로 눈치만 보며 할 말을 고를 때 친구 한 명이 이렇게 물어 온 적 있었다.
    근데 너 요즘은 아버지랑 사이 괜찮아?
    그 말을 신호로 ‘일자리 박람회’나 ‘대외 활동’은 안중에도 없고, 다들 내 가정사에 대해 동정하고 연민하기 바빠졌다. 그들은 말했다.
    힘들면 얘기해도 돼. 우리가 다 들어줄게. 우린 이해해.
    너의 불행을 기꺼이 견딜 수 있다는 우월감, 나만 딱하게 사는 게 아니라는 안도감. 나를 위해 기꺼이 울어 주던 이들에게서 그런 마음을 엿볼 때마다 나는 외로워졌다.
    그런 면에서 도호는 적절한 대화 상대였다. 그와 나 사이엔 다음이 없었으니까.
    도호는 과도하게 맞장구를 치거나 동조하지 않았다. 선을 넘는 질문 역시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주억이고, 심각한 얼굴로 턱을 쓰다듬으며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소주를 막 세 병째 비웠을 때, 도호는 화답하듯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어.
    살짝 꼬부라진 발음으로 그는 할머니 손에서 자라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부모가 일하던 방직공장에 화재가 났고, 아버지는 즉사했지만 어머니는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겨우 빠져나왔다고. 열다섯 차례에 걸쳐 피부 이식수술을 받던 어머니가 병동에서 자살하자 어쩔 수 없이 친척들이 모두 모이게 되었는데, 유산 한 푼 물려받지 못한 자신을 맡겠다고 선뜻 나서는 친척이 없어 결국 당시 재혼을 염두에 둔 할머니가 그것을 포기하고 자신을 맡게 되었다고.
    숨을 죽인 채 도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과 비슷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함부로 동정하지 않으려, 난 다 이해해, 괜찮아, 따위의 무책임한 말을 뱉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던 것만 같다. 구질구질한 말을 얹는 대신 맥주에 소주에 콜라까지 말아 도호에게 건넸다.
    야, 우리 LG 우승을 위해 건배하자.
    뜬금없는 외침에 도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그를 따라 웃었다. 그래, 쿨한 게 좋잖아.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생각하며 고진감래주를 원샷했다.

  **  넷플릭스 드라마

 

    소백산맥에 게토하리까지 제조해 원샷하고 속에 있는 것을 전부 게워낸 뒤에야 우리는 펍을 나올 수 있었다. 새벽 3시였다. 열대야 때문인지, 거리의 인파 때문인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는데도 온몸이 끈적하게 젖어들었다. 이제 다음 단계는 ‘여기 어때’나 ‘호텔스 닷컴’에 들어가 체크인을 하는 것이었는데, 도호는 그것을 가볍게 패스하고, 대뜸 물었다.
    우리 집 갈래?
    집이라니. 당황한 나를 향해 그는 안심하라는 듯 웃어 보였다.
    여기서 가까워, 저기 낙산공원 너머 창신동.
    얘는 호텔이나 모텔이 아니라 집을 선호하는 편인가. 내가 만난 남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공간에 원나잇 상대를 들이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그건 다음을 기약하는 가장 확실한 방식이었으니까. 도호가 말했다.
    어때, 괜찮아?
    오른쪽으로 스와이프(LIKE)할지, 왼쪽으로 스와이프(NOPE)할지. 이제 선택은 내 몫이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술을 많이 마신 탓일까. 지나치게 눈치를 보거나 기분을 맞추려 애쓰지 않고, 말할 때마다 사람 눈을 지그시 응시하는 도호에게 묘하게 신용이 갔다.
    도호는 앞장서 걸었다. 구부정한 도호의 어깨를 바라보며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도호를 따라 도착한 곳은 창신동의 한 상가 건물이었다. 도호네 집은 상가 꼭대기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이라 계단을 오르는데 금세 숨이 찼다. 큰 키 때문에 휘적휘적 걷는 도호를 따라 4층까지 올라가며 얘는 이 집에 여자를 몇 명이나 데려왔을까 추측해 보았다. 다섯 명? 열 명?
    다른 층과 달리 4층 입구는 양철로 된 중문으로 막혀 있었다. 도호는 백팩에서 열쇠를 꺼내 익숙하게 중문을 열었다. 중문을 열자 문이 하나 더 나왔다. 불법도박장에 들어가는 것 같다고 농담을 하자 도호는 조용히 웃었다.
    중문은 할머니 때문에 설치한 거야.
    할머니?
    당황하는 나를 향해 도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할머니가 농인이라. 혼자 나가시거나 모르는 사람이 들락날락하는 건 위험하거든.
    도호는 태연히 대답했다. 그 태연함 때문에 조금 멍해졌다.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도호가 재빠르게 도어 록을 눌렀다. 현관문을 열자 문 위에 달린 초인등이 붉은 빛으로 깜박였다.
    들어가자.
    도호가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도호의 할머니는 TV를 켜둔 채 소파에 앉아 졸고 있었다. 볼륨이 최대치에 맞춰져 있는데도 그녀는 좀처럼 깨지 않았다.
    할머니랑 인사할래?
    도호가 능청스럽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TV 소리가 그렇게 큰데도 할머니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할머니가 자는 모습을 거듭 살피며 조용히 속닥였다.
    너네 할머니…… 못 듣는다고 하지 않았어?
    아, 저거. 신경 쓰지 마. 소리는 못 들어도 진동은 느껴서 가끔 저렇게 틀어 놓고 주무셔.
    도호는 발소리를 죽이며 부엌 맞은편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꺼림칙한 마음을 숨긴 채 도호를 따라 들어가려던 찰나, 뒤통수에 시선이 꽂히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할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다시 잠든 척을 했다.
    ……깨신 것 같아.
    응?
    너네 할머니 방금 나랑 눈 마주쳤어.
    도호가 코앞에 갈 때까지도 할머니는 계속 자는 척을 하다, 흔들어 깨우자 부스스 눈을 떴다. 연기라는 게 티가 날 정도로 폼이 뻣뻣하고 부자연스러웠다. 그녀의 애처로운 배려가 지속될수록 나는 더욱 부끄러워졌다. 여기까지 오는 게 아니었는데. 불온한 짓을 하려다 들킨 것처럼 온몸에서 열이 났다. 도호가 수어로 무어라 빠르게 설명하자 할머니도 빠르게 손을 움직여 수어로 답했다. 호기심 어린 큰 눈으로 그녀는 나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뿌옇게 혼탁한 눈동자가 재빠르게 굴러갔다. 도호가 그런 할머니를 만류했다.
    반가워서 이러시는 거야 반가워서…….
    도호와 할머니는 수어로 소통했다. 뜻 모를 손동작과 눈짓이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동안 나는 공연히 주위를 두리번대며 어색하게 서 있었다. 그 집은 감각이 둔한 나도 금세 알아챌 정도로 조명의 조도가 높았다. 쨍한 조명 아래서 도호와 할머니는 익숙하게 수어를 주고받았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는데, 도호가 말로 옮겨 주지 않으니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손짓이 한참 오간 뒤에야 도호가 물었다.
    커피 마시고 갈래?
    거절할 틈도 없이 도호는 물을 끓이고, 할머니는 드리퍼에 분쇄한 원두를 담아 내 몫의 커피까지 빠르게 내렸다. 고소하고 진한 원두향이 은은히 퍼졌다. 드립커피 한 잔씩을 놓고 식탁에 앉고 나서야 도호는 할머니의 손짓을 말로 옮겨 주었다. 집은 어디냐, 몇 살이냐,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 같은 질문이 전달되었다. 할머니가 내 이름을 물었을 때, 도호는 손을 둥글게 말았다가 모로 세우고, 다시 모양을 바꾸며 ‘ㅇ+ㅠ+ㅅ+ㅜ’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유수. 받침도 없는 내 이름을 전달하는 데에 그렇게 많은 품이 든다는 게 좀 놀라웠다.
    할머니는 말이 많았고, 짓궂은 면도 있었다. 도호와는 어떤 사이냐는 질문에 ‘글쎄요 아직은…….’ 하고 머뭇머뭇 답하자 그녀는 낄낄 웃으며 무슨 동작인가 선보였는데, 도호가 끝내 통역하지 않고 얼굴만 붉히는 것으로 보아 육담 비슷한 걸 한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한참을 웃다 볼에 검지를 가져다대고 손가락을 바깥으로 빙글 돌렸다. 도호도 같은 동작을 하며 웃었다.
    네가 예쁘대.
    나는 오른손을 세로로 세운 뒤, 왼 손등을 두 번 내리쳤다. 언젠가 드라마에서 얼핏 본 적 있는, 감사하다는 뜻의 수어였다. 뜻이 통한 건지 할머니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내가 그녀와 손으로 주고받은 말은 그게 전부였다. 할머니가 빠르게 손을 움직일 때마다 도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웃음을 터트렸다. 내게는 손동작에 불과한 행동들이 그들에겐 유머가 되고 이야기가 되고 있었다.
    무슨 얘기 하는 거야?
    나는 수시로 도호에게 물었다. 그럴 때마다 도호는 했던 얘기를 친절히 되풀이해 주었다. 할머니가 복지관에서 온누리 상품권을 받아왔다는 이야기나, 도호의 사촌누나가 얼마 전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그는 귀찮은 기색 없이 반복했다. 한 박자 늦게 웃고, 한 박자 늦게 맞장구치며 그들의 흐름을 맞추려 노력했지만, 그것도 얼마 안 지나 버거워졌다.
    커피가 바닥을 드러낼 즈음부터 도호와 할머니는 나를 ㅇ+ㅠ+ㅅ+ㅜ로 부르지 않고, 왼손 소지 끝을 오른손으로 두 번 쳐 내리는 동작으로 지칭했다. 도호의 말로는 그게 예쁜+소녀란 뜻이라고 했다. 농인들은 지화(指話)로 일일이 사람을 칭하는 게 어려워 특징적인 면을 부각해 수어 이름을 만드는데, 내 수어 이름은 예쁜+소녀라고 했다.
    도호와 할머니는 가끔씩 소지 끝을 두 번 쳐 내리며 웃거나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내 얘기야?
    도호에게 물으면 아냐, 다른 얘기 중이야, 하고 말았다. 도호와 할머니가 주고받는 손동작은 내겐 전부 비슷해 보였다. 도호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들이 대화를 나누다 얼굴을 찡그리거나 표정을 굳히면 지금 나누고 있는 게 내 얘긴 아닐까, 나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닐까, 못내 신경 쓰였다. 눈이 아플 정도로 밝은 조명, 볼륨이 너무 큰 TV, 유수가 아니라 예쁜+소녀로 나를 칭하는 이들. 소리는 사라지고, 소란한 침묵이 길어질 때마다 기분이 점점 묘해졌다. 도호는 한참이 지나서야 내 쪽을 돌아보았다. 할머니가 해준 떡볶이를 먹고 가라는 그에게 다음에, 다음에 와서 먹을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나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렸는데도 도호와 할머니는 기어이 1층까지 내려와 나를 배웅했다.
    할머니가 또 놀러 오래.
    도호는 말했다. 그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두어 번 손을 흔들었다. 내가 골목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역으로 가고 있는데 도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미안해 경황이 없어서 너한테 신경을 못 쓴 것 같다 조심히 들어가 또 연락하자]
    답을 줄까 하다 말았다.
    어차피 다시 볼 사이도 아닌데.
    생각하면서도 도호의 번호를 지우지 못했다. 고민하다 연락처에 저장된 이름을 <알 수 없음>으로 바꾼 뒤, 사당행 첫차를 탔다.

 

*

 

    도호와 다시 만난 건, 여름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9월 초 연고전에서였다. 그해의 야구 경기는 목동운동장에서 열렸다. 고대는 고대로 탈락! 외치는 동기 몇 명과 운동장 주변을 왁자하게 누볐다. 펄럭이는 플래카드와 어디선가 난데없이 터지는 함성, 응원봉을 들고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는 무리들……. 축제의 열기와 신경전의 외양을 띤 주접에 기분 좋게 취해 가고 있을 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유수 맞지?
    도호였다. 붉은 티셔츠를 입고 있는 도호.
    그날 이후 도호에겐 따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데이팅 어플로 이뤄진 만남이란 대개 그런 법이었다. 간밤엔 불멸의 연인이라도 된 것처럼 열렬히 사랑하다가도, 한낮이 되면 홀연히 연락이 끊기는. 간혹 도호가 생각나긴 했지만, 그런 마음도, 그 밤의 사건들도 모두 덮어 둔 채 다시 이런저런 남자들과 만나고 있는 중이었다. 우연한 재회 따윈 예상조차 못 한 채.
    뭐야, 유수 이거 완전 스파이네. 고대 남자랑……. 동기들의 장난 섞인 야유 속에서 도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도호는 잘 지내는 것 같았다. 프랑스인처럼 손을 많이 쓰는 것도, 천천히 말을 잇는 것도 여전했고.
    겨우 한나절 알아온 사이였지만, 그와의 대화는 껄끄럽거나 서먹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네 안부를 궁금해 하더라고 도호는 조용히 속삭였다. 그 밤이 걸리기도, 틴더를 하는 게 알려질까 조마조마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도호의 흰 뺨에 페이스페인팅 된 고대 마크가 꽤나 앙증맞기도 했고.
    너 고대 다니는구나. 그땐 못 들었던 것 같은데.
    내 말에 도호는 웃으며 답했다.
    응, 나 여기 평생교육원 다녀.
    귀를 의심하며 도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태연했다. 우리 할머니는 농인이라고 말하던 그 밤처럼. 나도 모르게 동기들 눈치를 살폈다. 티는 안 냈지만, 다들 도호의 말을 들은 것 같았다. 주위가 어수선한 가운데 어쩐지 우리가 모여 있는 곳 공기만 착 가라앉아 있었다. 이런저런 말들을 주워섬긴 뒤, 나중에 또 보자며 급하게 말을 맺었다. 도호는 친구들과 좋은 시간 보내라고 말하며 경기장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도호가 자리를 뜨자마자 동기 중 하나가 속닥였다.
    친구야?
    어쩌다 알게 된 사이라고 얼버무리자 그들은 더욱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수군댔다.
    근데 평생교육원도 이런 데 오나?
    야, 조용히 해. 누군가 손사래를 쳤고, 누군가는 원주캠, 세종캠 애들도 오는데 뭘, 하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 애들이 도호를 비아냥대고 쪼갤 때마다 입 꼬리가 굳었다. 감정을 누르며 표정관리를 할 때 누군가 말했다.
    유수야 미안. 얘네가 원래 좀 필터링 없이 말하잖아.
    조용히 하라며 손사래를 치던 동기였다. 미안해, 내가 대신 사과할게. 그 애는 정말이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았다. 눈썹을 여덟팔(八)자로 구긴 채 다른 애들에게도 사과하라고 부추겼다. 나는 그게 좀 석연치 않았다. 왜 나한테 미안한 걸까. 왜 도호가 아니라 내가 사과를 받아야 하는 걸까. 왜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미안해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 애들에게 대놓고 화를 내거나 정색하지는 못했다. 그저 괜찮다고 말하며 상황을 무마했다.
    경기는 아슬아슬했다. 1회 말 선취점은 연대가 가져갔지만, 4회 초 안타 이후 볼넷과 연속 안타로 고대 쪽으로 다시 승기가 넘어갔다. 경기를 관전하는 내내 도호 생각이 났다. 동기들은 아까 일을 다 잊은 것 같았다. 내게 무슨 일 있냐고, 좀 웃으라며 태연히 응원가를 불렀다. 적시타로 주자에 나가 있던 선수들이 홈에 들어오며 연대가 승점을 얻자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파도를 타는 무리 속에 가만히 앉아 나는 조용히 입술을 씹었다.
    9회 초 타자의 안타와 우익수 플라이 아웃으로 고대가 다시 4:4 동점을 만들었을 때, 연락처를 뒤져 <알 수 없음>을 찾아냈다.
    [너 어디 있어?]
    도호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신이 왔다.
    [ㅋㅋ 세종캠 좌석]
    [여기 공기 좀 답답한데, 같이 나갈래?]
    도호의 답을 기다리며 경기를 관전했다. 연대 쪽 타자가 땅볼을 쳐냈으나 2루수가 공을 놓치며 상황이 단번에 역전되었다. 각 대학의 응원이 열기를 띠고, 함성이 거세질 때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럴까?]
    9회 말 고대 2루 주자가 추가점을 노리며 3루를 지나 홈을 향해 뛰어가는 게 보였다. 태그아웃 될지 그대로 홈까지 도달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도호와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

 

    그 후부터 도호와 꾸준히 만났다. 어떤 관계인지 단정 짓지는 않았지만, 만나면 다른 연인들처럼 영화를 보거나 같은 구단의 유니폼을 입고 프로야구 경기를 보러 가기도 했으므로 우리가 하는 것을 연애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도호와는 말이 잘 통했다. 공감대나 유머 코드가 비슷해 종일 실없는 잡담만 하며 노는 것도 즐거웠고, 말다툼 후에도 금세 화해해 만나는 내내 큰 뒤탈이 없었다. 닮은 점도 많았다. 추위에 약해 한여름에도 누비이불을 덮고 자는 습관이나, 갑각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길거리에서 구세군이나 기부 단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 프로야구를 즐겨 보는 것, 허리에 점이 있다는 것.
    밥을 먹다 동시에 같은 반찬을 집거나, 대화를 나누다 말이 겹칠 때 나는 도호를 향해 장난스레 말하곤 했다.
    지난 생엔 네가 나고 내가 너였나 봐.
    도호는 빙긋 웃으며 화답했다.
    그럼 다음 생엔 내가 다시 너로 태어나서 날 사랑하겠네.
    도호와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도호와의 연애는 그간의 연애와는 패턴 자체가 달랐다. 이를테면 외박을 못 했던 것부터가 그랬다. 한강이나 서울숲에서 데이트를 즐긴 적은 있어도 그보다 더 멀리로 여행을 가본 적은 없었다. 교외로 여행을 떠나도 당일치기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잠은 모텔이나 호텔이 아니라 꼭 도호네에서만 자야 했고.
    도호는 초교 이후로 한 번도 외박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도 수련회, 오리엔테이션은 물론 수학여행조차 가본 적 없다고 했다.
    왜?
    놀라 되묻는 내 코를 도호는 가볍게 쥐었다 놓았다.
    너도 내가 돼봐.

 

    도호가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할머니는 창신동 봉제기술자로 유명했다고 한다. 듣지 못하니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되어 있었는데, 다행히 지인 중 봉제업을 하는 이가 있었고, ‘이건 눈만 좋고 잠만 덜 자면 누구나 할 수 있다’기에 냉큼 그 밑으로 들어가 일을 배웠다. 할머니는 일머리도 있고 손도 야물어 어떤 기술이든 금세 터득했다. 시다로 시작해 미싱 보조로, 7년 후 기술자가 된 후에는 제법 돈도 모아 집도 사고, 동네에 작은 양장점까지 열었다. 동대문으로 가는 의류 8할은 그녀의 손을 거쳤다고 할 정도로 일감이 많이 들어왔는데, 예순다섯이 지나니 남들보다 월등히 좋던 시력도 점점 나빠지고 재봉틀에 밑실 감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원래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셨는데 그 후로는 밖에 잘 안 나가시더라고. 집에 혼자 있는 것도 무서워하고.
    할머니는 백내장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수술 후에도 수정체의 혼탁은 여전했다. 일감이 줄고, 검정 실과 남색 실을 구분해 내기 어려울 만큼 시력이 저하되었을 때 가게를 접게 되었다고 도호는 담담히 전했다.
    할머니가 유리창이나 베란다 문에 하도 이마를 찧는 탓에 도호네 곳곳엔 ‘조심!’이 적힌 노란색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집 안에서 할머니의 반경은 그리 넓지 않았다. 그녀는 잠만 큰방에서 자고,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에 있는 2인용 소파에 앉아 보냈다. 앉아 있는 형태 그대로 푹 꺼진 소파. 도수가 높은 돋보기를 쓰고 그곳에 앉아 그녀는 수어 지원 방송을 보고, 커피를 마시고, 가끔씩은 먼 데를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삶. 그것에 대해 나는 잘 가늠할 수 없었다. 나로서는 상상조차 버거운 삶이었다.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데, 그런 사정을 남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이해시키기란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도호나 그의 가정에 대해 설명할 땐, 늘 절반만 얘기했다. 도호는 외동이며 고대 컴퓨터학과에 다닌다고, 부모는 양장점을 운영하다 접었으며 점잖고 푸근한 사람들이라고. 타인의 동정과 시혜적인 시선을 나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나 역시도 도호나 할머니에게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할머니는 집에서도 늘 단정한 차림을 고수했고, 실내복 대신 외출복을 입고 지냈다. 밑단에 장미문양 레이스를 덧댄 원피스, 네크라인을 따라 동백 자수를 놓은 리넨 카디건, 뒷주머니에 미니마우스 와펜을 부착한 청바지…… 그 옷들은 다 할머니가 직접 재봉하고 리폼한 것이었는데, 하나같이 근사하고 맵시가 났다.
    한창때 솜씨를 발휘해 내 옷을 만들어준 적도 있었다. 남색의 두꺼운 모사(毛絲)로 촘촘히 엮은 터틀넥이었다. 터틀넥은 감촉이 부드러웠으나, 네크라인이 좁아 숨을 쉴 때마다 목이 자꾸 죄었다.
    넌 피부가 희어서 검은색도 참 잘 어울릴 것 같대.
    내 눈에 그 옷은 검은색보다는 남색에 가까웠는데, 도호와 할머니는 그걸 자꾸 검은색이라고 했다. 내색 않고 오른손을 세로로 세운 뒤, 왼 손등을 두 번 내리치며 할머니에게 감사하다 전했다. 겨울이 지날 때까지 도호네에 갈 때마다 항상 그 옷을 입었다. 지금도 터틀넥을 입으면 목이 신경 쓰여 자주 목 부분을 쓸거나 만지곤 하는데 그때의 습관 때문이라 짐작하곤 한다. 그때 나는, 그것쯤은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고 여겼던 것 같다.

 

    할머니는 글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자음과 모음을 구분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을 겹쳐 단어 만들어내는 것을 어려워했다. 도호는 할머니가 농인 부모 밑에서 자라 태어날 때부터 수어가 모어였고, 오랫동안 그것으로만 소통해 글 배우기를 두려워하고 꺼리는 것 같다고 했다. 할머니는 구화(口話)도 배운 적 없었고, 유일하게 쓸 줄 안 글자는 ‘이삼례’와 ‘류도호’뿐이었다. 해서 은행 업무를 보거나 밀린 월세를 걷으러 가는 날엔 꼭 도호를 대동하고 나서야 했다.
    도호가 사는 4층짜리 상가 건물은 할머니 소유로, 일층에는 <개성집>이라는 기사식당이, 이층과 삼층엔 각각 PC방과 교회가 입점해 있었는데, 거기서 다달이 나오는 월세가 도호의 등록금이 되고 밥이 되고 할머니의 병원비와 약이 되고, 일부는 도호 친척들의 생활비가 되었다.
    도호의 친척들. 어린 도호를 맡지 못하겠다고 내팽개친 그 사람들의 생계까지 할머니는 두루 살피고 있었다. 도호 역시 그 사람들과 꾸준히 만나고 안부를 묻고 때때로 할머니 심부름으로 반찬이며 돈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도호나 할머니에게 그런 속내를 내비친 적은 없었다. 그건 도호네의 생활이었고 사정이었으니까.
    다른 일들에 있어서도 그랬다.
    하루는 할머니와 도호가 아래층에 다녀올 일이 있다고 하기에 나도 따라간다고 했다.
    넌 그냥 집에 있어, 우리 금방 갔다 올 거야.
    나 혼자 뭐 해. 같이 갈래.
    도호는 푹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네가 간다고 한 거야. 내가 가자고 한 거 아니고.
    도호와 할머니는 건물 삼층에 있는 교회로 향했다. 교회는 몹시 협소했다. 단상이 있었고, 그 앞으로 일체형 책상이 죽 놓여 있었다. 교도 몇이 그 책상에 앉아 기도를 하고 있었다. 십자가가 없었더라면 누구라도 교회로 생각지 못할 공간이었다.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자매님, 형제님.
    목사는 몸집이 크고 땀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할머니와 도호에게 차례로 악수를 청한 뒤, 내 손을 잡았다. 손이 축축하고 뜨거웠다.
    그곳에는 교회라면 응당 있을 법한 기도실이나 성가대 연습실, 목회실조차 없었다. 스무 평 남짓한 예배당 하나가 전부였다. 목사는 예배당 밖으로 나가 이야기하길 권했지만, 할머니가 그것을 가로막았다. 할머니는 성난 얼굴로 목사를 향해 수어를 쏟아냈다.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도호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그것을 통역했다.
    목사님…… 월세 말예요. 저희도 이젠 사정 봐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
    기도를 하던 교도들이 우리 쪽을 힐끗거렸다.
    다른 세입자들 눈치도 보이고…… 할머니 말로는 여기만 월세 밀린 지 석 달째라고 하네요…….
    할머니가 도호의 등을 내려치며 무어라 손짓했다. 길고 긴, 무언의 손짓들이 그들 사이에서 번잡하게 오갔다. 할머니는 완고하고 고집스럽게 한 가지 동작만을 반복했다. 오른 손등을 모로 세운 왼 손바닥에 스쳐 내리는 동작이었다. 한숨과 분노, 체념 끝에 도호는 목사를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오늘까지 안 주면 여기 뺀대요.
    목사는 땀을 훔치며 다음 달까지만 어떻게 안 되겠냐고 거듭 물었다. 도호는 그 말은 통역하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못 들은 체했다.
    도호와 목사의 대화가 길어질수록 나는 부끄러워졌다. 죄를 지은 것 같았다. 엄밀히 말하면 내 죄는 아니었지만, 그들과 같은 편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함께 악한으로 묶이는 것 같았다. 나도 도호도 목사도 그곳에 있는 모두가 낯부끄러워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와중에 오직 할머니만 태연했다. 그녀는 우물쭈물하는 도호를 부추기고 들쑤셨다. 도호는 이런 상황을 몇 번이나 겪어 왔을까. 상황이 악화될수록 도호의 표정은 점점 굳어 갔다. 얼빠진 얼굴로 그는 목사에게서 받은 말을 할머니에게로, 할머니에게서 받은 말을 목사에게로 계속해 옮겼다.
    할머니는 도호와 내게 비싼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다 너희 덕분이라고, 고맙다고 했다. 아무 말 없이 건물을 나와 동대문으로 향했다. 식욕이 없었다. 속에서 쓴 신물만 자꾸 올라왔다. 도호에게 물었다.
    이런 일 자주 있어?
    도호는 작게 숨을 고른 뒤 말했다.
    그러게 따라오지 말라고 했잖아…….
    도호는 할머니가 오래 전부터 억울한 일을 자주 당해 좀스럽고 억척스러운 면이 생겼다고 했다. 절친한 친구에게 은행 업무를 부탁했다가 예금해 둔 돈을 모조리 잃은 적도 있고, 부동산 사기를 당한 적도 있었다고. 하다못해 사위와 큰딸에게도 배신을 당하고, 하도 그런 일에 치이다 보니 이젠 도호 아니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아까 그 목사 같은 사람들, 처음엔 한 달만 기다려 달라고 해. 그러다 한 달이 두 달 되고 일 년 되고. 나중엔 아예 도망가 버려. 그럼 우리는 손 놓고 기다리는 수밖엔 없는 거야…… 내 말 이해하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자꾸 다른 생각이 들었다. 교도들이 보는 앞에서 헌금함에 손을 넣어 돈을 꺼내던 목사가, 돈을 받아 나가려는 할머니와 도호를 빤히 쳐다보던 교도들이 계속 떠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누구를 향하는지 모를 말이 입안에서 내내 떠돌았다.
    앞서 가던 할머니가 먼발치에서 도호를 향해 무어라 손짓했다. 도호도 수어로 무어라 말했다. 두 사람은 동떨어진 곳에서도 곧잘 수어를 주고받았다.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고요하게 수다를 떠는 두 사람을 행인들이 슬쩍 보며 지나쳤다.
    소고기 먹재.
    도호가 말했다. 할머니와 도호의 길고 긴 대화는 내게 늘 한 토막 내지 두 토막만 전해지곤 했다. 평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그날따라 왜인지 그게 석연치 않았다. 도호가 말했다.
    우리 조금만 빨리 걷자.
    그는 앞서 걷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꼭 맞잡았다. 뒤처져 있는 나를 향해 도호는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약간의 폭을 떼어 둔 채 나는 그들 뒤를 천천히 쫓았다.

 

*

 

    그 당시 나의 부모는 파국 직전이었다.
    아빠가 넉 달간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핸드폰 번호도 바꾼 채 잠수를 탔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십 년간 아빠는 우리 집과 그 여자의 집을 격주로 왔다 갔다 하며 – 엄마 말을 빌리자면 – 성실히 지내 왔다. 명절이나 제사가 낀 달에는 우리 집에 몇 주 더 머물다 가기도 했다. 그건 우리 가정의 은밀한 룰이었고, 친가와 외가 쪽 식구들은 그것에 대해 대부분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모른 척했다. 대외적으로 나의 부모는 ‘능력 좋고’ ‘서로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는 인텔리’ 부부로 통했다. 가족이 모이거나, 부부동반 모임이 있을 때마다 엄마는 아빠를 동행시키며 그 수식을 공고히 했다.
    나는 아빠의 부재를 그러려니 했다. 가족이란 낡은 타이틀 하나 부여잡고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도, 단란하고 이상적인 가족을 연기하려 애쓰는 것에도 회의를 느낄 무렵이었다.
    차라리 잘 된 거 아냐? 그냥 우리 둘이 살자. 엄마도 마음고생 많이 했잖아.
    그동안의 일들을 열거하며 열변을 토하는 나를 향해 엄마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됐다 됐어. 쓸데없는 데에 마음 쓰지 말고 네 일이나 잘해.
    모녀만이 나눌 수 있는 소상한 연대, 다정하고 친밀한 위로에서 엄마와 나는 늘 한 발 떨어져 있었다. 모녀간 문제로 마음이 들끓은 적도, 눈물 날 만큼 엄마가 애처로웠던 적도 없었다. 엄마는 나에게조차 자기 속내를 숨겼고, 빈틈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아빠가 사라진 후에도 엄마는 평온하게 일상을 유지했다. 회사에 나가고, 주말에는 친구들과 롯데백화점에 가거나 밀린 집안일을 했다. 아빠 안부를 묻는 이들에겐 긴 말 없이 ‘잘 지낸다’고 전했고.
    물론 그 ‘잘 지낸다’의 내막엔 SNS를 뒤져 아빠의 흔적을 찾아내고, 밤마다 전화를 걸고, 종국엔 흥신소까지 찾아가는 절박함이 있었지만, 그건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고 엄마 혼자 감내했다.
    나는 그런 엄마가 그저 답답하고 미련해 보였다.
    아빠의 행방이 묘연해진 상황에서 어김없이 설이 다가오자 엄마는 ‘유수가 맹장수술을 받았다’는 허언까지 지어내며 친가에도, 외가에도 찾아가지 않았다. 졸지에 맹장염 환자가 되어버린 내게 엄마는 전을 부치자고 했다. 태평하게 무슨 전이냐고 빈정대는 나를 무시한 채 엄마는 기어이 손질한 동태며 산적거리, 애호박, 표고버섯, 달걀물, 밀가루를 거실에 잔뜩 벌여 놓았다.
    그래도 명절인데 분위기는 내야지.
    그 말에 울컥 화가 치밀었다.
    사람이 왜 그렇게 미련하냐. 이참에 엄마도 다른 남자 만나. 아님 헤어지든가. 비굴해지지 말고 그냥 좀 비겁해져 봐.
    침묵이 흘렀다. 엄마는 달걀물 묻은 비닐장갑을 벗어 놓고 말없이 베란다로 가더니, 유칼립투스 화분 뒤에서 말보로갑을 꺼냈다. 엄마가 흡연자라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얼떨떨해진 내게 엄마가 말했다.
    넌 아무나 비겁해질 수 있는 줄 아니.
    그녀는 궐련에 불을 붙인 뒤, 한 모금 깊이 빨아들였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거야. 난 그게 안 되는 사람이고.

 

    한 학기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나는 도호네에 눌러 살다시피 했다.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밥을 축내는 나를 할머니는 객식구라고 홀대하거나 핀잔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이 늘어 밥맛도 장맛도 더 좋다며 그해 새로 담근 순무김치나 아는 이에게서 얻어온 참돔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그 집 식탁 한편엔 양념통과 수저통, 전기포트와 함께 알루미늄 액자가 세워져 있었다. 액자 안엔 젖살이 빠지지 않아 앳되어 보이는 도호와, 여우목도리를 멘, 지금보다 더 젊고 생기 있는 할머니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도호의 중학교 졸업사진이었고, 두 사람이 함께 찍은 몇 장 안 되는 사진이었다. 식탁이 들썩이거나 누군가 팔꿈치로 벽을 치면 액자가 엎어졌다. 가끔 식탁이 움직여 틈이 벌어지면 액자가 땅으로 떨어질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도호가 재빨리 팔을 뻗어 그것을 잡아냈다. 벽걸이용 고리가 버젓이 붙어 있는데도 도호와 할머니는 그것을 벽에 걸지 않고 식탁에 세워 두었다. 왜 걸지 않고 세워 두냐고 묻자 도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저렇게 두다 보니까 이젠 저게 더 익숙해졌어.
    한동안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때마다 그게 거슬렸는데, 시간이 지나자 나 역시도 익숙해져 어쩌다 액자가 엎어져도 별 생각 없이 다시 집어 세웠다. 그런 것에는 금세 익숙해졌다. 조도가 지나치게 높은 조명도, 현관 벨을 누르거나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초인종이 울리는 대신 초인등이 들어오는 것도, TV 볼륨을 크게 맞추는 할머니의 습관에도 나는 점차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물론 좀처럼 적응 안 되는 게 있기는 했다.
    수어의 속뜻과 순서, 손의 움직임과 표정의 미세한 다름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지갑’과 ‘건축’의 차이. 구어로는 확연히 뜻이 다른데도 수어로는 어쩐지 두 단어가 비슷해 보였고 구분해 낼 수 없었다.
    지갑은 손깍지가 딱 두 번 움직이고 건축은 깍지가 파르르 떨리듯 움직이잖아.
    도호가 수형(手形)의 차이를 거듭 설명해 주어도 그게 잘 인지되지 않았다.
    도호는 늘 할머니와 나 사이 통역자 역할을 했다. 그는 그것을 불편해하거나 성가셔하지 않았다. 다만 어떤 말들은 자기 선에서 생략하고 간추리고 오역했다. 구겨진 지폐를 내는 할머니를 향해 ‘돈 좀 펴서 주지’ 중얼대던 편의점 직원의 불평은 애써 통역하지 않았고, 내가 요리한 고추잡채를 먹은 뒤 손을 움직여 ‘맛있다’고 말하는 할머니의 단순한 손짓엔 더 많은 부연(敷演)과 찬사를 보탰다.
    한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셋이서 동대문시장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길거리 음식을 사먹다 맞은편 무인텔에서 중년 남녀가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남녀는 주변을 두리번대며 멀찍이 떨어져 걷다 인적이 드문 골목에 들어서야 팔짱을 꼈는데, 그 어색한 폼 때문에 별수 없이 시선이 갔다. 할머니는 그들을 힐끗 본 뒤, 도호를 향해 무어라 손짓했다. 대화 말미에 그녀는 소지 끝을 두 번 쳐 내렸는데, 그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방금 무슨 얘기 한 거야?
    묻자 도호는 저 부부 금술 참 좋다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분명 그런 뜻이 아닌 것 같은데 도호는 그렇게만 요약하고 해석했다. 그게 아닌 것 같다고, 혹시 내 얘기한 것 아니냐고 따져 묻자 도호는 아니라고, 오해하지 말라고 손을 내저었다.
    유수야, 그러지 마. 우리가 왜 네 얘길 하겠어.
    그럼 무슨 말 한 건데? 왜 나한텐 말 안 해줘?
    누구한테 떠들 만큼 유쾌한 얘기도 아니니까.
    도호가 숨기는 것들의 내막을 나는 늘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도호 말이 맞겠지, 내가 오해하는 거겠지, 생각하고 마는 게 차라리 속편할 때도 있었다.
    함께 모여 이야길 나누다가도 도호가 자리를 뜨면 할머니와 나 사이엔 정적만 감돌았다. 도호 없이는 할머니와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부러 손동작을 크게 하고 제스처까지 섞으며 말을 걸어도, 나는 그 말을 해석하지 못하거나 다르게 풀이했다. 할머니와 어색하게 미소를 주고받거나 공연히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도호가 오길 기다렸다. 그렇게 미소를 유지한 채 고요히 시간을 죽이다 도호가 오면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수어와 구어와 제스처가 섞인 대화를 이어 갔다.
    어려움은 있었지만, 나는 꾸준히 적응해 나갔다. 눈치껏 행간을 읽고 분위기를 파악하며 그들에게 하나하나 맞춰 나갔다.
    섹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문 밖에 할머니가 있는데 공공연히 도호와 몸을 섞는다는 게 영 찜찜하고 미덥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니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익숙해졌다. 섹스가 끝나면 싱글침대에 팔을 겹치고 누워 도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도호의 방엔 그가 초등학생 때부터 쓰던 물건이 즐비했다. 덴버 공룡 판박이가 붙어 있는 옷장, 여기저기 낙서를 한 학생용 책상, 부피가 큰 구형 데스크톱. 그것들을 손으로 짚으며 도호의 학창 시절과 내 학창 시절을 견주고, 공통분모를 찾으며 웃곤 했다. 도호의 배에 팔을 얹은 채,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버디버디에서 만난 고등학생 오빠와 사귄 경험, 커터칼로 몸에 상처를 내 그 오빠의 이니셜을 새겼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때는 무서운 줄도 모르고 서슴없이 그런 짓을 벌였다고,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칼자국을 따라 피가 맺히고 딱지가 지는 것을 사랑이라 여겼다고 웃으며 말했다. 도호는 내 몸 곳곳을 살피며 그때의 상흔을 찾았다.
    아프진 않았어?
    아픈 줄도 몰랐어 그때는.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나는 그 오빠한테 싫증나 버렸고, 또다시 버디버디를 누비며 차고 넘치는 외로움을 쏟아낼 사람을 찾았다.
    완전 ‘중2병’스럽지 않냐?
    주절대며 도호에게 되물었다.
    넌 그때 어땠어? 너도 다른 남자애들처럼 야한 만화 돌려보고 문친 사귀고 그랬지?
    도호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중얼댔다.
    난 도망치려고 했어.
    도호는 다음 말은 잇지 않고 조용히 말을 아꼈다. 보어는 없었으나, 그 말만큼은 어렴풋이 해석이 됐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왜…… 그러지 않았어?
    도호는 장난스럽게 표정을 고치며 내 코를 가볍게 쥐었다 놓았다.
    너도 내가 돼봐.
    그 후부터 식탁에 세워진 액자를 볼 때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도망치려고 했다는 도호의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식탁이 들썩일 때마다 액자는 자주 엎어졌고, 그때마다 도호나 할머니가 그것을 무심히 집어 세웠다.

 

*

 

    도호는 나보다 일 년 먼저 졸업했다. 전공을 살려 IT기업에 원서를 넣었는데, 면접까지 가지 못하고 번번이 서류전형에서 낙방했다. 면접을 위해 아울렛에서 구입한 정장은 반년 동안 도호의 옷장에서 묵어 갔다. 도호는 틈만 나면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채용 공고와 전형 결과를 확인했다. 데이트를 할 때, 길을 걷거나 밥을 먹다가도 초조하게 입술을 뜯으며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할머니와 셋이 있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저녁엔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도호의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그즈음 도호가 원서를 넣은 회사는 초봉도 높고 직원 복지도 썩 괜찮은 곳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긴 전문대졸도 뽑는대.
    그 말에 나는 이번엔 꼭 붙을 거라고, 너 정도면 학점도 좋고 실력도 있다고 설레발을 쳐댔다.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도호의 얼굴이 점점 굳어 갔다. 씨발. 도호는 중얼댔다. 뜨악해져 할머니를 힐끔댔다. 할머니는 평안한 얼굴로 달걀조림을 집어먹고 있었다. 할머니 눈치를 보며 도호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그는 조용히 중얼댔다.
    마지막 질문 때문에……
    마지막 질문?
    도호는 면접관이 마지막 질문으로 부모에게 영향 받은 점에 대해 물었다고 했다. 도호는 창신동 봉제기술자로 52년을 일한 할머니에 대해 설명했다. 그녀의 장애와 자신의 사정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그러자 면접관들이 일순 숙연해졌다고 했다. 면접관 중 누구는 그런 가정에서도 참 잘 컸다고, 대견하다며 도호를 과도하게 치켜세웠다고.
    도호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그것 때문은 아닐 거라고, 그냥 그 회사 인사팀이 혜안이 없는 거라고, 더 나은 조건의 회사들이 많지 않으냐고 주워섬겼다. 도호는 말했다.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해?
    뭐?
    정말 그 사람들이 혜안이 없어서 나 떨어뜨렸다고 생각하냐고.
    아무 말도 못 하는 내게 도호는 덧붙였다.
    됐다, 네가 어떻게 알겠어. 네가 날 어떻게 이해하겠어.
    그 말에 욱해 도호를 향해 열을 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도대체 무슨 얘길 듣고 싶은 거냐고 소리쳤다. 할머니가 밥을 먹다 말고 도호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도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할머니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 말이 헛나왔다.
    그는 부러 입술을 많이 움직이지 않고 말했다. 미소를 유지한 채 그는 식사를 이어 갔다. 당장 ‘나만큼 널 이해해 주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도호의 말을 정정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다시 밥을 먹었다. 웃지 않는 나와 억지로 미소 짓는 도호를 할머니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번갈아 보았다.

 

    도호는 한 계절이 더 지난 뒤 판교에 있는 게임 회사에 서버 프로그래머로 취직했다. 안드로이드용 모바일 게임을 제작하는 중소기업이었다. 어렵게 입사한 회사라 그런지 그는 낮은 임금과 무리한 조건에도 악착같이 적응하고 버텨냈다.
    그가 입사할 당시 기획 중이던 아이템은 로 판타지(Low Fantasy)를 세계관으로 둔 MMORPG***였다. 경쟁사에서 그와 비슷한 게임을 개발 중이란 소문이 돌고 있었고, 그보다 한 달 앞선 11월 초까지 알파 테스트를 완료하기 위해 온 직원이 연일 야근을 하며 전력을 다했다. 법정근로시간 때문에 잔업을 할 때는 사무실 불을 모조리 끄고 블라인드까지 내린다고, 자기 회사 다니던 직원 중엔 과로사한 사람도 있다고 도호는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곤 했다.
    너 판교 오징어 배라고 들어 봤어? 딱 우리 회사가 그래.
    그 말이 나는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도호는 아침 7시에 출근해 자정에 퇴근했다. 주말까지 쉬지 않고 특근을 할 때도 있었다.
    씻을 시간도 없어. 출시 앞두고 사람을 아주 갈아.
    도호의 목소리엔 힘이 하나도 실려 있지 않았다. 매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지속하던 전화 통화를 그즈음엔 십 분도 채 하지 못했다. 만나서도 그랬다. 도호는 잔뜩 풀린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침까지 흘리며 꾸벅꾸벅 졸았다. 주말에 잠시 짬을 내 잠실로 야구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화장실을 간다던 도호가 삼십 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 애를 태우며 부재중 전화를 연달아 건 적도 있었다. 그가 볼일을 보다 야구장 화장실에서 잠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턴, 데이트도 거의 않고 이따금 만나도 간단히 맥주 몇 잔 마시고 헤어지곤 했다.
    그런 낮과 밤이 반복되고, 우리 관계도 점차 미온해지며 연인도 친구도 아닌 사이로 전락해 갈 때, 도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늦은 밤이었다. 도호는 다급한 목소리로 지금 자기 집에 좀 가줄 수 있냐고 물었다. 한 시간 전부터 세입자들에게 전화가 온다고 했다. 낮부터 천장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고, 자기네들도 주인 할머니 사정 아니까 둥글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물이 새 온 세간이 젖고 주인 할머니가 문을 두드려도 열지도 않고 전화도 받지 않으니 분통이 터져서 못 참겠다. 그런 전화가 온다고. 수화기 너머 도호의 초조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고 그는 거의 울 듯한 목소리로 웅얼댔다.
    배관수리업체엔 연락했는데, 내가 지금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라…… 유수야 부탁 좀 할게.
    내가 도착했을 때도 세입자들은 중문 앞에 모여 문을 세게 두드리고 주인 나와 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3층 교회 목사도 함께였다. 나는 도호 대신 그들에게 사과를 하고 배관수리에 관해 상의하고, 열쇠공을 기다려 문을 땄다.
    중문을 따고 현관문까지 열어 겨우 집으로 들어가 보니, 할머니가 TV를 틀어 놓은 채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 밖에서 그 소란이 벌어졌는데 태평하게 잠이라니. 당황스럽고 얼떨떨해 화도 나지 않았다. 그런 연유조차 모른 채 할머니는 잠에서 깨어나 나를 반갑게 맞아들였다. 어서 오라고,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냐고 말한 것 같았는데, 그것도 나의 추측일 뿐 정말 그렇게 말했는지는 미지수였다.
    후에도 그런 일이 몇 번 더 벌어지자 도호는 아예 중문 열쇠를 하나 복사해 내게 건넸다. 자기에게 급한 일이 생기거나, 부득이하게 철야를 할 때만 와서 할머니를 봐주면 좋겠다고 그는 청했다.
    어려운 일은 아닐 거야.
    도호는 아직 신입이라 눈치 봐야 할 게 많다고, 부탁할 만한 사람이 마땅히 나밖엔 없다고 했다.
    페이는 줄게.
    내 계좌로 돈을 보내려는 도호를 크게 만류했다. 그것까지 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까지 받는다면 일이 더 복잡해질 것 같았다. 어차피 한두 번 하고 말 일인데. 뒤틀린 속마음을 숨긴 채 도호에게 말했다.
    됐어. 남 일도 아닌데, 그러지 마.

  ***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번거롭더라도 중문은 꼭 잠가 달라고 도호는 거듭 당부했다.
    안 잠그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할머니 혼자 외출하려다 계단에서 굴러 낙상을 당한 적도 있다고, 어딜 갈 때는 곁에 사람이 꼭 붙어야 한다고 도호는 강조했다. 나는 되도록 그의 청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도호가 야근을 하는 날이면 그의 집으로 가 할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고, 수어가 지원되는 드라마를 보고, 창문과 가스밸브, 수도를 잠그고 중문까지 꼼꼼히 점검한 뒤 발길을 돌렸다. 도호의 말처럼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한두 번 정도는.
    게임 발매일이 다가올수록 도호의 철야도 점차 잦아졌다. 일주일에 한 번이 두 번으로, 후에는 세 번으로. 그에 따라 나 또한 도호네에 자주 드나들어야 했다. 도호는 그것을 언제나 죄스러워하고 민망해했다. 그 때문인지 기프티콘을 보내주기도, 전에 없이 긴 메시지를 남기며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난 괜찮으니까, 네 몸이나 챙겨]
    그렇게 응답하면서도 속으로는 도호의 부탁을 거절할 각을 재고, 어떻게 하면 마음이 상하지 않게 의사를 전할지 고심했다.
    도호 없는 도호네는 전보다 더 낯설고 불편했다. 보리차인 줄 알고 따라 마신 것이 알고 보니 매실주거나, 무심코 쓴 수건이 발수건이거나. 안다고 생각했으나, 나는 모르는 그 집의 규칙과 질서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소통 역시 문제였다. 할머니가 이것을 말하면 나는 저것으로 알아들었다. 저것을 말하면 이것으로 알아듣고. 그런 일이 빈번했다. 내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할 때마다 할머니는 답답하다는 듯 주먹으로 가슴을 쿵쿵 내리쳤는데, 그럼 나도 모르게 꽁해졌다. 어쩌라는 거야, 중얼거린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가장 신경 쓰였던 건 그 집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도호와 있을 때는 그다지 심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그 집의 크고 작은 소리들이 어느 순간부터 생생히 들려왔다. 할머니가 코를 푸는 소리, 볼일 보는 소리, 주의 없이 문을 쾅 닫는 소리, 발뒤꿈치로 바닥을 쿵쿵 디디는 소리. 가끔은 그게 겹쳐 거대한 소음이 일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참다못해 구글링으로 ‘발소리’ ‘시끄럽다’ 같은 수어를 찾아 할머니에게 보여준 적도 있었다. 할머니는 미안하다고, 조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지 않아 다시 주의 없이 문을 쾅 닫고, 뒤꿈치로 바닥을 쿵쿵 디디고……. 발소리를 크게 내는 습관은 잘 고쳐지지 않았지만, 할머니 역시 애를 쓰고 있기는 했다. 내 눈치를 보며 TV 볼륨도 작게 낮추고, 무얼 사다 달라거나 어디로 전화를 걸어 주라거나 함께 은행에 가달라는 부탁도 어렵게 했다. 심지어 초인등이 고장 났을 때는 눈도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이 그걸 고친답시고 의자를 타고 올라가다 크게 다칠 뻔하기도 했다. ‘놓아두다’, ‘나’ ‘고치다’ 같은 수어를 동원해 놔두라고, 내가 고치겠다고 부드럽게 타일렀다. 본래 기계 다루는 데 소질이 없었으나, 한나절 동안 블로그며 카페를 뒤지고, 컨버터와 전선을 이모저모 연결해 겨우 불이 들어오게 하는 데는 성공했다. 불이 들어왔을 때 할머니는 뛸 듯 기뻐했다. 그녀는 오른손을 세로로 세운 뒤, 왼 손등을 두 번 내리쳤다. 그건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수어였지만, 그에 대한 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헷갈렸다. 다행이라고 앞으로도 걱정 말라고 전해야 할까. 아니면, 그런 말 말라고 전해야 할까. 그녀에게 고마운 사람이 되었다는 게 자못 뿌듯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부담스럽기도 했으니까.
    초인등은 며칠 잘 작동되나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아예 망가져 버렸다. 초인등이 고장 난 뒤, 할머니는 전과 달리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화들짝 놀라거나, 뒤로 물러서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나는 도호에게 메시지를 넣었다.
    [도호야, 이거 고쳐야 할 것 같아]
    그즈음 도호는 집에 들어오는 날보다 들어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연락도 잘 되지 않았다. 결국 내가 나서서 수리점을 찾아보려 해도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초인‘종’을 수리하는 곳은 숱해도 초인‘등’을 수리하는 곳은 흔치 않았다. 초인등이 고장 났다고 말하면 초인등이요? 초인종 아니고? 되묻는 곳이 다수였다.
    [답 좀 줘. 이게 고장 나서 누가 들어올 때마다 할머니가 자꾸 놀라잖아]
    대여섯 시간이 지나서야 도호에게서 짧은 답이 왔다.
    [오늘 집 가면 고쳐 놓을게]
    도호는 그 약속을 지킨 적이 없었다. 다음날 그 집에 가보면 초인등은 여전히 그 상태 그대로였고, 할머니는 집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며 화들짝 놀라거나 뒷걸음질을 쳤다.
    고장 난 대로 방기된 초인등을 볼 때마다 짜증이 치밀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도호에게 보낼 메시지를 끄적였다. 이제 너희 할머니를 못 챙길 것 같다고, 나도 바쁘다고, 왜 내 입장은 이해해 주지 않느냐고, 지친다고…… 열을 내며 메시지를 작성하다가도 종국엔 고심해 작성한 문자들을 전부 지우고, 다시 할머니와 저녁을 먹고 수어가 지원되는 방송을 보고 집 이곳저곳을 점검한 뒤 집으로 향했다.

 

    11월이 지나고 MMORPG가 출시된 이후에도 도호와는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텀도 없이 금세 또 다른 모바일 게임 개발에 돌입해야 했고 야근이며 철야도 계속되었다. 가끔 짬이 나 만날 때면,
    내가 얘기했나? 우리 회사에서 일했던 직원 중에 과로사한 사람이 있다고……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며 꾸벅꾸벅 졸고, 풀린 눈으로 멍하니 먼 곳을 응시했다.
    초인등은 두 달간 그 상태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평상시엔 센서가 제 기능을 못 하다가 어느 순간 뜬금없이 깜박이고 점멸해 할머니를 놀라게 했다. 내가 망가트린 것이니 원래대로 돌려놓자는 심정으로 어느 날은 집에서 공구함을 챙겨 도호네에 찾아갔다. 집에 있던 공구함은 3단식으로 커버를 열면 못이며 너트와 볼트, 멍키 스패너, 드라이버, 리무버, 렌치, 스트리퍼가 든 플라스틱함이 슬라이드 되어 펼쳐졌다. 공구 몇 개만 챙길까 하다 뭐가 필요할지 몰라 통째로 챙겨왔는데, 생각보다 무겁고 가지고 다니기 번거로웠다. 한 손에 힘이 빠지면 다른 손으로 번갈아 들며 겨우 지하철을 탔을 때, 도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우리 회사 근로기준법 위반해서 과태료 물고 지금 감독관 오고 난리다]
    연달아 메시지 한 통이 더 왔다.
    [ㅋㅋㅋ 야근도 오늘부로 끝]
    이모티콘까지 보내며 기쁨을 표하는 도호와 달리 나는 그다지 들뜨지도 설레지도 않았다. 왜일까. 전처럼 한강변에 앉아 즉석 라면을 먹고, 야구 경기를 보러 가고, 도호네에 들락거리고…… 그런 게 전혀 기대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손에 들린 묵직한 공구함이 신경 쓰여 자꾸 인상을 쓰게 되었다.
    공구함을 이고 지며 환승을 하고 계단을 올라 힘겹게 도호네까지 도달했다. 4층 중문 앞에 들어설 때까지는 몰랐는데, 현관문을 열자마자 비트를 잘게 쪼갠 뽕짝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발소리를 죽인 채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소리는 큰방에서 들려왔다. 큰방에는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데크가 있었는데, 그 집을 드나드는 동안 나는 그게 작동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듣지도 못하는 할머니 방에 그런 게 있다는 게 신기했는데, 그 카세트 데크 앞에서 거들과 슬립만 걸친 할머니가 몸을 흔들고 있었다. 멀거니 선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음악이 없었다면 아무도 그걸 춤이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박자도 스텝도 리듬도 어긴 채, 그녀는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할머니.
    방문 앞에 서서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내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감지 못 한 채, 카세트에서 둥둥, 진동이 울릴 때마다 양팔을 휘젓고 허리를 돌리고 발을 빠르게 굴렀다. 할머니가 몸을 흔들 때마다 슬립 안 복대가 여실히 비쳤다.
    할머니.
    다시 한 번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할머니는 대꾸 없이 몸을 흔들었다.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져 음이 튕기고 기괴하게 변주되는 줄도 모른 채 몸부림에 가까운 동작을 그렇게…… 그렇게 한참을 지속했다. 그 광경을 망연히 지켜보다 공구함을 들고 그 집에서 나왔다.
    골목을 돌고 대학로를 지나 역으로 향하던 중, 중문을 잠그지 않고 나왔다는 게 갑자기 떠올랐다. 도호네로 방향을 틀려다 멈춰 섰다. 거들과 슬립만 걸친 채 몸을 흔들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사랑만 고집했던 어리석은 난/ 당신이 전부였-는데’ 하는 빠른 비트의 뽕짝에 엇박으로 몸을 움직이던 할머니가.
    손에 들고 있던 공구함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못, 너트와 볼트, 멍키 스패너, 드라이버, 리무버, 렌치가 바닥으로 흩어졌다. 그걸 하나하나 그러모으며 중얼댔다. 무겁다. 너무 무거워.
    공구들을 다 주워 모은 뒤 여태껏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열려 있을 중문에 대해 떠올리다 나는 도호네가 아닌 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

 

    아빠는 일 년 만에 돌아왔다. 어디서 구른 건지, 부딪힌 건지 다리에 깁스까지 한 채로.
    아빠의 손에는 내의며 드로어즈가 담긴 쇼핑백 하나가 들려 있었다. 섬유유연제향을 물씬 풍기며 깔끔히 개어져 있는 내의와 드로어즈. 그것만으로도 그간의 행적이 충분히 유추되는데도 엄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빠에게 밥을 차려 주고, 과일을 깎아 주고,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같은 포인트에서 큭큭 웃었다. 한 식탁에서 밥을 먹고, 속없이 웃다가도 밤이 되면 한 사람은 서재로, 다른 사람은 안방으로 들어가 잤다.
    비겁할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
    엄마가 했던 말이 이따금 떠올랐고, 그럴 때면 나는 어느 편에 속하는지 가늠하게 되었다.
    틴더 이후에도 커피 미츠 베이글, 아만다, 스카이 피플…… 이런저런 데이팅 앱을 깔고, 지우고, 다시 깔며 여러 남자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이렇다 할 것도 없는 만남이었다. 핸드폰 화면을 오른쪽으로 스와이프하고, 지루한 얘기에도 흥미롭다는 듯 관심을 보이고, 모텔을 대실하고, 다음 따윈 기약하지 않은 채 쿨하게 헤어졌다. 만남의 패턴은 비슷해도 그들이 내게 궁금해 하는 건 저마다 달랐다. 학교나 나이, 키, 취미, 선호하는 자세나 성적 페티시……. 이제는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떤 남자는 내가 흥얼거리는 노래가 뭐냐고도 물었다.
    무슨 노래?
    아까부터 계속 흥얼거리던데. 사랑만 고집했던…… 어쩌고 하는 노래.
    사랑만 고집했던 어리석은 난 당신이 전부였-는데. 일부러 찾아 들은 적도 없는데, 나도 모르게 그 노래를 흥얼거릴 때가 있었다. 부르고 싶지 않아도, 사랑만 고집했던 어리석은 난…… 어느새 흥얼거리고 있었다.
    도호에게선 몇 번 연락이 오다 어느 순간 끊어졌다. 왜 연락을 받지 않느냐고 왜 이렇게 무책임하냐고 왜 자기를 떠났냐고, 도호는 묻지 않았다. 그저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하고 미안하다고.
    그래서 나는.
    [난 네가 될 수 없어]로 끝맺는 메시지를 끝내 보낼 수 없었다.

 

    아빠가 그 여자의 집을 오가지 않으며 우리 가정의 은밀한 룰도 홀연히 사라졌다. 엄마는 전과 다름없이 친지 모임이나 부부동반 모임에 아빠를 빼놓지 않고 데려갔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착실히 따라다녔다. 일련의 사건을 거친 후에도 나의 부모에겐 여전히 ‘금술 좋은 인텔리’나 ‘잘 어울리는 배필’이란 수식이 붙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다들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뱉었고 부모도 그런 이들에게 장단을 맞춰 가며 그것을 부지런히 연기했다.
    여름이 올 때까지 아빠는 깁스를 풀지 못했다. 날이 차차 더워지고, 깁스 안으로 땀이 차자 아빠는 튀김용 젓가락을 깊숙이 찔러 넣어 다리를 살살 긁어댔다. 깁스에선 시큼하고 역한 냄새가 풍겼다. 처음엔 겸상조차 꺼려질 정도로 악취가 강렬했는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점차 익숙해져 한 공간에 있거나 곁에 바짝 붙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는 다리를 긁으며 프로야구를 보는 아빠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느 팀이야?
    응? 뭐라고 했냐?
    아빠는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몇 년 만에 나누는 대화였다. 나는 다시 물었다.
    어느 팀 응원하느냐고.
    아빠는 조금 생각하더니 어떤 팀도 응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누굴 응원하면 시즌 끝날 때까지 계속 봐야 되잖냐. 경기도 기록해야 되고. 난 그냥 보는 거야. 그냥.
    아빠는 내게 응원하는 팀이 있냐고 되물었다. 잠시 머뭇하다 답했다.
    이젠 없어.
    다른 거 볼 거냐?
    아빠가 물었고, 나는 그러자고 했다. 얼마 전 타계한 코미디 배우가 주연인 영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다채롭게 표정을 바꾸며 애드리브를 선보이는 배우를 보며 아빠는 큭큭 웃었다. 그 옆에서 나도
    큭큭. 웃는다.

 

 

 

 

 

 

 

 

 

 

 

 

 

 

 

 

 

임수현 작가소개 / 성해나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즈」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 시작.

 

   《문장웹진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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