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의 나흘

[단편소설]

 

 

보름의 나흘

 

 

임수현

 

 

 

    솥을 새로 장만해야 한다. 이참에 무쇠칼도 바꿔야겠다. 서른 살은 좋이 잡쉈겠지, 선주(船主)가 강원도 놀러갔다 옛날 대장간에서 사왔다는 칼은 내가 도모장* 맡기 전부터 바닷물에 삭아 덜렁거리는 자루를 철사로 얼키설키 감아 썼더랬다. 내색은 안 했지만 생선 대가리를 내리치다 칼날이 빠져 식겁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요즘도 모루에 메질해서 만드는 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뭐든 찾아들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건 꼭 있게 마련이다. 숟갈 젓갈도 넉넉하게 스무 벌은 사야겠다. 국그릇도 끼니때 앉을 겨를조차 없을 때 밥 한술 술술 말아 먹기 편하게 왜 냉면그릇 같은 걸로 열댓 개 마련해야겠다. 옴폭 팬 국그릇 자리에 대접이 붙은 식판을 발명하면 좋겠다고 말했던 게 주탁이 놈이었나. 그럼 식판은 어떻게 쌓을 거냐, 정수리에 모자 꿰맨 거랑 뭐가 다르냐, 그렇게 귀찮은데 시시때때로 서는 거시긴 안 귀찮냐…… 그런 농지거리로 밥시간이 제법 흐뭇했던 게 엊그제였나, 바람 컸던 동짓달이었나. 아무리 헤아려도 모르겠다. 점점 고장 나는 기억력마냥 부엌세간도 나이의 고비를 시늉하는지 하나가 말썽이면 덩달아 고물이 됐다. 시샘인지 맥을 놓는 건지 종잡을 수 없는 노릇이지만, 세간살이도 나 같아서 더 꼴 보기 싫었다.
    지난번엔 첫 끼부터 가스레인지가 말썽을 부렸다. 소금기랑 바닷바람을 매일 머금고 지내니 불을 켤 때마다 라이터를 쌕쌕거리는 점화 심지에 갖다 대야 했는데, 한 백 번은 불을 켰는데도 헛돌았다. 혼자 동동걸음하고 있는데, 주탁이 놈이 어떻게 알았는지 사슬로 묶은 가스통을 흔들어 보고 불을 켜주고는 날더러 겁보라고, 쓸모라곤 국 끓여 먹을래도 없는 늙은이라고 퉁바리를 놨다. 오이 하나 건네주면서 태연한 척했지만, 언짢았다.
    그래, 맘먹은 김에 솥이며 그릇이며 싸그리 새것으로 갈아엎어야겠다. 다 내 돈으로 치를 거다. 이날 입때껏 선주가 나한테 해준 양 치면 하나도 아깝지 않다. 도모장 일도 언제 놓을지 모르는데, 다음 사람한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면 뿌듯하기까지 하다. 또 누가 공연스레 일 벌였다고 타박하면 시푸른 수평선에 한눈팔면 그만이지. 뱃일이란 게 일평생 험하고 고됐어도, 지긋지긋하고 징글징글했어도 하늘만은 내 헤매는 눈길을 외면하지 않은 얼굴이었다는 게, 바다만은 삿된 속맘을 퍼부어도 한없이 들어준 이웃이었다는 게, 늙고 흐린 눈이 되고 나니 더 또렷해졌다.

  *  뱃사람들이 ‘주방을 맡은 선원’을 통상적으로 일컫는 말.

 

*

 

    이번엔 보름 때보다 서둘러 남항으로 돌아왔다. 먼 바다에서 올라오는 태풍과 대조기가 겹친 탓에 피정한 배들로 부두는 북새통이었다. 비바람이 좀 잦아들었으니까, 늦어도 나흘 안에 선단은 고등어를 찾아 떠날 것이다. 곡우부터 소만까지 금어기가 끝나고 처음 출항한 건데 조황도 별로였고, 놀치는 파도가 떠밀어 일찍 귀항하는 바람에 선주 맘이 급할 것이다. 핸드폰을 엇다 뒀나. 카카오톡 단체방에 선주가 출항 날짜를 박아 놨을 텐데,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다.
    거기선 어떤 이야기가 오가고 있을까. 선주가 공지사항을 올리면 확인했다는 숫자가 모두 사라져도 네, 대답조차 인색하지만 아주 가끔 선원들이 먼저 메시지를 올리기도 한다. 시로도*가 관뒀다, 달아났다 그런 얘기가 대부분이지만, 뭍에서 쉬는 나흘 동안 뭘 하고 지내는지 짐작되는 사진이 달랑 올라올 때도 있다. 돼지국밥과 소주, 길바닥에 나뒹구는 은행잎, 항구에 나부끼는 눈……. 어디든 자랑하고 싶은데 마땅히 떠오르는 데 없고, 아무에게나 확인받고 싶어 흘린 ‘혼자’를 훔쳐보는 게 나는 좋았다. 나도 뭔가 올리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모자’ 식판을 구하면 한번 올려 볼까. 누가 기억이나 할까. 대답이나 할까. 그러고 보니 오늘이 며칠인가. 날이 흐려 달은 보이지 않는다. 보름달이 손톱만큼 사위고, 높이 부푼 바다가 시나브로 잦아들면 그림자 섬[影島]에 숨었던 선원들이 바다로 모여든다. 이토록 잠잠한 걸 보면 벌써 배에 올라 어구를 손질하고 있는 게 아닐까, 늙은 내가 없는 줄도 모르고 이미 부두를 떠나버린 게 아닐까.
    넋 놓고 있다가 갑자기 마음만 서둔다. 처음 있는 일이다. 밥 세 번, 참 두 번. 열 사람 끼니를 스무닷새 동안 챙겨야 해 뭍에 오르면 장보기만 해도 빠듯하다. 등선이랑 운반선**에서 내 밥이 맛있다고 끼어 먹는 선원들도 많아 찬거리는 늘 넉넉하게 준비한다. 출항할 때까지 새벽시장을 서너 번 훑기 예사인데, 나는 그게 하나도 안 귀찮았다. 바다에선 툭하면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다 싶지만 장을 보고, 푸성귀를 다듬고, 밑반찬을 장만하는 동안에는 나는 오직 나로서 충만했다.
    그래, 묵은 김치를 구해야겠다. 선원들은 유독 묵은 김치 넣은 고등어조림을 좋아한다. 은주식당이 있었으면 김치 걱정은 안 할 텐데. 광양이 고향인 은주식당은 해마다 김장을 백 포기씩 했다. 젓갈도 생새우며 생멸치며 황석어며 제철일 때 구입해 담갔고, 낙지 섞은 김치를 맛보기로 따로 담갔다. 유월 이맘때 끝물인 묵은 김치 하나면 바다에서 반찬 걱정을 한결 덜 수 있었다. 비를 만나면 김치 풀어 콩나물국을 끓이고, 전을 부쳐 새참으로 주면 젓가락도 마다하고 손으로 찢어 아귀아귀 먹었다. 파와 김치를 듬뿍 넣은 라면만 끓여 줘도 흐흐, 속풀이 하는 소리를 내며 국물을 바닥까지 싹싹 비웠다. 군내가 난다고 신 김치를 싫어하는 선주도 내가 끓인 김칫국은 좋아했다.
    나는 은주식당한테 김치를 얻을 때면 아침 일찍 들러 가게를 청소해 줬다. 은주식당은 뭐든 더펄더펄 저지르긴 잘하는데 치울 줄을 몰랐다. 음식만 손끝이 야물었다. 이맘때 산란기가 끝나 씨알이 별로여서 상품이 안 되는 고등어를 갖고 가면 은주식당은 굽고, 지지고, 조리고 고등어 하나로 열두 가지 음식을 해내 바쳤다. 나는 술이 덜 깬 은주식당한테 뭔 놈의 밥 파는 집구석이 뱃놈들 여인숙보다 쑥쑥하노, 타박하면서 다라이에 세제를 가득 풀어 더러운 바닥과 벽을 닦았다. 하늘색 타일을 붙인 부엌은 한 달만 지나도 찌든 얼룩이 가득하고, 줄눈이 새까맸다. 하지만 멋대가리 없는 새시 문에 시트지를 발라 안이 안 보이는 목욕탕 같은 식당은, 숱한 뱃놈들이 지분거렸던 은주식당은 이제 없다.
    나는 ‘오네’를 지날 때마다 푼수데기여서 속없이 잘 웃던 은주식당이 궁금했다. 오네. 처음 봤을 때 커다란 녹색 ‘오’와 ‘네’를 보고 은주네 같은 오 씨네 가게라 짐작한 ‘오후네시’. 야반도주한 은주식당이 돌아왔나 반가워 왈칵 문을 열었을 때, 겨울과 봄처럼 분명 한자리인데 다른 모습에 잠깐 얼어붙었던 오네. 선주 딸 유정이 또래로 보이는 남자 사장이 윗니를 드러내며 인사하는 바람에 저절로 앉게 된 카페 오네에는 은주식당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개펄에 사금파리를 흩뿌려 놓은 듯한 테라초 바닥, 부엌을 구분 짓는 하늘색 타일 기둥, 검정 봉지를 꿍쳐 놨지만 이젠 찻잔이 반듯반듯 진열된 자개 찬장은 내가 뽀득뽀득 닦으면서 꿈꿨던 그런 모습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낡고 못생긴 것도 감쪽같이 숨길 줄 아는구나, 도리어 예쁘게 꾸밀 줄 아는구나. 나는 창가 의자에 앉아 깔때기를 얹은 유리그릇에 물을 쪼르르 따르는 손을, 봉긋하게 부푼 갈색 거품 새로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힐끗거렸다. 내가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게 눈치가 봐졌다.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햇빛이 어룽진 꺼칠한 살갗과 검버섯이 부끄러웠다. 너무 환하고, 깨끗한 거기엔 이제 두꺼운 반찬 냄새 대신 커피향이 가득하다.
    올겨울에는 내가 직접 김장을 담가야겠다. 젊고 깔끔한 오네 사장은 김치는 못 담그겠지. 안사람이랑 소꿉장난처럼 김장을 했던 게 얼추 삼십 년 전이었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같이 살았던 그 사람은 음식을 못 했다. 손맛이 젬병인 게 아니라 워낙 없이 살아서 보고 듣고 맛본 게 가난했다. 내가 보합금***을 받아 좀 근사한 걸 먹을 때면 나 이런 것 첨 봐요, 어머 이런 게 다 있네, 수선 떠는 통에 언짢고 종내 부끄러웠다. 처음엔 그게 한없이 착해 보였는데, 자꾸 그러니까 너무 못생겨 보이고, 또 그이는 원래부터 없는 사람이니 함부로 해도 되겠다 싶었다. 그래도 착한 사람이었으니 같이 잘해 보려 애쓴 세월이었다.
    그날도 보름 즈음이었겠지. 뭍에 오르자마자 부두에서 가까운 셋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용달에서 배추를 싸게 파는 걸 봤다. 나는 안사람이랑 다라이를 이고 끼고 비탈을 내려갔다. 나는 안사람을 제쳐 두고 돗자리만 한 마당 수돗가에 쪼그리고 배추 겉잎을 벗겨내고, 반으로 가르고, 왕소금을 흩였다. 푹신푹신한 배추에 칼을 꽂아 쓱쓱 가르고, 숨이 죽은 진잎을 찬물에 헹굴 때 시린 손의 감각이 그렇게 흐뭇할 수 없었다. 붉은 양념을 치대고, 하얀 잎에 굴과 속을 싸서 안사람 입에 넣어 주는 기분도 좋았다. 나는 누군가를 거둬 먹이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처음 김치를 담갔던 손맛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여태 방금 쥔 악수처럼 고스란하다.
    이웃에 사는 김과 친해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이사한 김이 망치를 빌리러 왔는데, 김치를 몇 포기 챙겨 주고, 그릇을 돌려받고 그러면서 우리는 밥도 함께 먹게 됐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김은 얼굴이 해사하고, 몸도 길쯤했다. 험한 일에 그슬리고, 찌든 기색이 없었다. 너무 맑아서 그랬을까. 김은 술만 먹으면 개가 됐다. 안사람은 처음부터 김을 싫어했다. 눈이 무섭고, 너무 하얀 피부가 징그럽다고 볼멘소리 했다. 나는 그래도 김이 좋았다. 자꾸 볼 핑계를 만들고, 취하도록 부추겼다. 단칸방에 불러 밥도 술도 많이 먹였다. 나는 술을 싫어했지만 덩달아 마셨다. 나는 안사람이 마당을 서성일 때 눈이 게게 풀린 김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위팔을 쓰다듬고,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방문을 노려봤다. 한날 돌아와 보니 안사람도, 김도 사라졌다. 나는 찾는 시늉만 했다. 누구를 찾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슬픈 시늉만 했다. 안사람과 김 중 누가 사라진 게 먹먹한 건지 나한테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이내 그들을 잊었다. 더 이상 찾지 않았다. 김을 이길 자신이 없었고, 안사람한테 정직할 용기가 없었다.
    그 사람한테 참 못 했다.
    돌아보니 이유는 단 하나.
    그이가 여자라서 그랬다.

  *  뱃사람들이 선원 중 처음 배를 탄 ‘초짜’를 통상적으로 일컫는 말.
  **  고등어 선단은 일반적으로 본선 1척, 물고기를 모으는 등선 2척, 잡은 물고기를 부두로 옮기는 운반선 3척으로 구성된다. 이 6척을 ‘한 통’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본선은 한 번 출항하면 고등어 떼를 찾아 연근해를 떠돌며 20일 이상 바다에서 머문다.
  ***  어획한 돈에서 선주와 선원이 돈을 나누는 것, ‘짓가림’이라고 한다.

 

*

 

    태풍이 잦아든 어항(漁港)을 아무리 뒤져도 유정호를 못 찾겠다. 선영호, 소진호, 성운호, 하나호…… 먼발치에서 뱃머리에 씐 선호(船號)만 읽어도 그 집 사모 성정이며, 고사나 풍어제 지낼 때 봤던 딸내미 생김새까지 단박에 떠오를 만큼* 부두는 훤한데, 공판장과 어시장까지 샅샅이 뒤졌는데도 술 취해 어슬렁거리는 선원 하나 찾을 수 없다. 계선주에 건 닻줄에 코를 꿰고 너울에 버둥거리는 배들 가운데 유정호만 온데간데없다. 서둘던 마음이 아뜩하다 못해 싸늘해진다.
    선주가 120톤짜리 선박을 사서 대형선망을 꾸릴 때부터 유정호를 봐왔으니까 이십 년이 다 돼간다. 그이가 내겐 재당숙인 부친한테 물려받은 운반선 시절까지 보태면 그 곱절이 넘는다. 그땐 서른도 안 먹어 뱃일에 온전히 맘을 두지 않아, 먼 친척인 부자가 일손이 모자란다고 혀를 내두를 때만 못 이기는 척 배를 탔다. 별다른 기술 없이 전국을 떠돌다 결국 남항으로 돌아와 보면 한 살 터울인 선주는 저만큼 자라나 있었다. 내가 혼자 시들어 가는 동안 선주는 아이도 둘을 뒀다. 큰딸 유정이는 복덩이였다. 열 살도 안 먹은 아이가 “내 이름은 돛단배”란 글짓기로 큰 상을 받았을 만큼 영민했던 유정이는 서울대에 들어갔고, 신문사에 취직했다. 세 살 어린 아들 유민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배구를 했는데, 선주의 고민거리라면 아이 키가 너무 작은 거였다. 선주는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에게 키가 일 센티미터 자랄 때마다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유민이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아버지보다 한 뼘은 더 자랐고, 아이가 프로배구단에 지명됐을 때 선주는 이를 새로 했다. 새가 뜬 앞니가 형편없던 선주는 남매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신 있게 웃었다.
    선주는 나이 들수록 좋은 사람이 됐다. 젊을 땐 덩치만큼 욱하는 기질이 다분해 낙찰가가 성에 안 차면 궤짝을 걷어차기 예사였지만 이젠 짓가림이 가장 깔끔했고, 기분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선원들에게 턱 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정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를 기억한다. 그 점잖은 선주가 취해선 노래까지 불렀다. 젊은 날 뛰는 가슴 안고 수평선 까지 달려 나가는**. 선주는 여전히 최백호를 좋아하지만 이젠 스스로를 축하하는 장소가 달라졌다는 걸, 십팔번도 바뀌었다는 걸 나는…… 로안은 안다. 유정호에서 가장 늙은 선원과 가장 어린 선원. 바다를 떠도는 동안 가장 오래 깨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배를 돌보는 대척점의 둘.
    등선이 바다 깊이 집어등을 드리우고 고등어 떼를 모으는 반나절 동안 선원들은 조타실 아래 위치한 선실에서 잠을 잤다. 나는 혼자 깨어 있는 그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끼니를 준비해 놓고, 이동을 멈춘 갑판으로 나가면 후미에 한가득 쌓인 그물이며 양망기 따위가 왠지 지난 세월을 사리고 있는 가묘(假墓)처럼 보였다. 나는 흐트러진 삭구를 정리하고, 부력재에 걸터앉아 마늘을 까면서 바다를 쳐다봤다. 저녁뜸이면 더할 나위 없었다. 수평선에 놀이 잠기고, 해면이 묵처럼 얌전해지면 바다가 새삼스레 벅찼다. 일평생 뱃일을 했지만 한순간도 바다가 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들 뱃일이 꿈이었을까. 그리 될 수밖에 없어 그리 살아진 거지. 세상 직업이란 게 다 그렇지 싶었다. 누가 평생 바퀴를 몰고, 기계를 조립하고, 가축을 기르는 게 꿈이었을까. 인간의 배를 가르고, 죄를 나무라고, 나라를 바꾸겠다고 고함치는 일도 별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그저 많고 적건 돈에 홀려 헛심 쓰는 허깨비 노름 같았다. 뭍에서 수많은 직업을 전전할 땐 한 직장에서 하루하루만 생각하며 묵묵히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했는데, 지나 보니 그 또한 인생이라고 오인한 것이었다. 그 모든 직업이란 건 꿈이 아니라, 인생이 아니라, 강물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듯 그냥 내버려둔 시간 같았다. 마냥 틀어 놓은 텔레비전 같은 것, 냉장고 같은 것. 그래도 망망대해에서 누군가의 밥을 거둬 먹이는 일로 나앉고 보니 내 마지막 일이 바다여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돈도 소용없고, 꿈도 소용없고, 다만 육신이 스러질 때까지 육체를 놀리면서 노동하는 몸이면 다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늙고 시든 뒤에야 끼니를 해내 바치는 일이 좋아졌대서 그것이 꿈이었다고 둘러댈 순 없었다.
    홀로 충만했던 그맘때, 더러 로안이 내 시간을 훼방하곤 했다. 로안은 나를 짐짓 없는 사람 취급했다. 처음부터 짧은 기한을 정해 놓고 배를 타는 요즘 애들이 그렇기는 했다. 툭하면 뱃일을 때려치우겠다고 으름장 놓곤 결국 부두로 기어들기 반복하면서 배가 가장 만만한 집이 된 늙다리들하곤 달랐다. 요즘 애들은 코를 드렁드렁 골고, 고린내가 가득한 선실을 피해 조타실로 오르내리는 사다리 옆에 붙은 쪽침대에서 스스럼없이 눈을 붙였다. 책을 읽는 아이도 있었다. 이름이 하성이었나, 아성이었나. 나한테 라면을 끓여 달라면서 석 달 동안 돈을 모아 동남아부터 유럽까지 여행할 거라고 명랑하게 말하던 그 아이는 내가 오네에서 한 모금 맛본 게 전부인 그 나라들을 정말 누볐을까.
    로안은 그 아이가 처음 도착했을 나라로부터 떠나온 아이였다.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말라깽이인 데다 눈이 땡그란 로안은 일꾼이 아니라 조난당한 난민 같았다. 로안은 모든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뱃일도 처음, 회도 처음, 김치랑 라면은 먹어 봤지만 생선을 넣고 끓인 라면도 처음. 무엇보다 이 나라가 처음, 아마 혼나는 것도 처음, 욕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뱃멀미에 시달려 태반은 누워 지낸 로안이 첫 보름 때 슬그머니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아이들을 수태 봤다. 뱃일 분위기가 예전만큼 극악하지 않고, 선주가 욕 싸움이라면 질색해 유정호는 시로도라도 함부로 취급하지 않지만, 스무닷새 만에 뭍으로 돌아오면 말도 않고 사라지는 선원이 부지기수였다. 뭍에 오르자마자 네온사인이 이끄는 대로 헤매고선 월급도 모자라 빚까지 당겨쓰곤 빈털터리가 돼 종적을 감추는 장령이건, 여럿이 어울리지 않고 혼자 컴퓨터만 끼고 놀다가 빨랫감만 남겨 놓고 사라지는 아이들이건 사라진 선원들은 왠지 처음부터 온 적 없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로안은 나흘 동안 컨테이너 숙소 근처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곳을 청소하고, 이불빨래를 하고, 보름이 몇 번이나 반복됐는데도 늘 명랑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제 유정호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젊은 선원은 로안 그 아이 하나였다. 로안은 바다에 적응한 뒤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고 몸을 놀렸다. 스스로를 확인받고 싶어 조바심치는 것처럼, 칭찬받고 싶어 안달 난 것처럼 넘치는 성실로 유정호에 아첨했다. 나는 애쓰는 그 마음이 언짢았다.
    애쓰지 마라.
    너나 나나 우리가 아첨해야 할 건 돈도, 완력도 아닌 다만 시푸른 바다. 한 발짝만 잘못 디뎌도 목숨을 집어삼키는, 울타리도 없고, 감시꾼도 없는데 세상에서 가장 넓고 깊은 덫, 물의 감옥일 뿐이란다.
    그래, 남항에 묶인 선박 9할은 고등어 선단이라서 여전히 배들이 엮인 두름처럼 들어찬 걸 보면 아직 보름의 나흘은 지나지 않은 게 분명하다. 한 선단, 여섯 배는 처음에는 함께 출발한다. 본선인 유정호만 달이 기울고 차오르는 스무닷새 동안 연근해를 떠돌면서 고등어 떼를 좇는다. 깊은 바다에 부스러진 별빛처럼 고등어 떼가 모여들면 선원들도 부스스 잠에서 깨어난다. 유정호는 등선에 고삐줄과 죔줄을 넘겨주고 거대한 원을 그리면서 바다에 그물을 드리운다. 고등어가 그득해지면 섬을 한 국자 뜰 태세로 양망기가 그물을 걷어 올리고, 선원들은 선창(船倉) 아가리로 쏟아지는 고등어 떼에 삽으로 얼음을 퍼 담는다. 팔딱거리는 고등어 떼 위로 수많은 갈매기가 하늘을 투망처럼 메운다. 달이 다시 부풀면 유정호는 한낮보다 환한 불빛에 시달리는 밤을 뒤로 한 채 한사코 보름달을 외면하면서 뭍으로 돌아온다.
    나는 시들해진 마음을 달래고 버릇처럼 은주식당, 아니 오네가 있는 골목을 찾는다. 늘 고등어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웃고 떠들고 싸우는 소리로 떠들썩하던 골목도 때 아닌 그믐을 시늉한다. 어둠이 차오른 바다 같다. 오네는 골목에서 가장 늦게 문을 연다. 새벽시장을 휘뚜루마뚜루 훑고 나면 마침맞게 젊은 사장이 출입문에 붙은 칠판에 ‘오늘의 커피’를 분필로 쓰고 있다. 그가 내게 상냥하게 인사하면 나는 못 이기는 척 창가 의자에 앉는다. 브라질이니 케냐니 라오스니 한 아이가 꿈꿨던 열대에서 영근 씨앗, 주인이 추천하는 가본 적도, 갈 수도 없는 나라에서 자란 열매를 볶아 내린 뜨거운 커피 한 잔은 내가 보름의 나흘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들키고 싶지 않은 유일하게 내가 나한테 주는 선물이었다.
    오네에서 유정이를 우연히 본 적 있다. 때마침 카페 이름과 얼추 비슷한 시간이었는데, 걔가 나를 먼저 알아보고 삼촌, 하고 스스럼없이 창가 의자 옆에 나란히 앉았다. 유정이와 나는 이런저런 안부를 묻곤 한동안 말을 삼킨 채 유리창만 쳐다봤다.
    제발…… 날 길들여 줘.***
    내가 멀뚱히 쳐다보자 유정이는 제 눈앞에 붙어 있는 갈색 냅킨에 씐 글씨를 마저 낭독했다.
    네가 만일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유정이가 읽은 글 아래에는 노을의 덤불 같은 머리칼과 머플러를 휘날리는 아이와 여우 그림이 곁들여져 있었다. 늘 앉아 있던 자리였건만, 나는 어디에 한눈팔았던 것일까. 나는 유정이가 방금 읽은 글귀를 속으로 되뇌었다. 오네의 뜻을 알 것 같았고, 낮도 저녁도 아닌 그 시간은, 더욱이 누군가를 기다리며 행복해지는 시간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예쁜 말이구나.
    그러게요.
    행복…… 이란 말 참 오랜만이구나.
    유정이는 속눈썹을 느리게 깜빡거리면서 커피를 천천히 삼켰다.
    삼촌.
    유정이는 가만히 내 손등에 제 손을 포갰다. 나는 왠지 유정이의 호칭에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걔가 일곱 살이나 먹었나. 유정이는 ‘제 이름 배’에 놀러 와선 나를 이모라고 불렀다. 선주 아내는 아이를 다그치며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삼촌…… 난 삼촌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범일역인가, 그 근처 가면 삼촌 같은 친구들이랑 즐겁게 만날 수 있는 거리가 있대요.
    나는 유정이의 말을 단박 알아들었다. 부끄러웠고…… 고마웠다. 나라고 알고도 모른 체하는 눈빛들이 왜 안 보였겠나. 그렇게 냄새를 풍기며 살았을 텐데 몰랐다는 게 더 이상한 거지. 용케 숨었구나 마음 놓은 곳이 뒤꼍 고추밭에서 김매는 줄도 모르고 웅크린 장독대 뒤나 마찬가지였겠지. 나는 창문으로 내리쬐는 오후의 빛을 가려 주는 유정이의 손길이 미안했다. 똑똑한 건 참 용기 있고, 잘 배려하고, 가만히 헤아릴 줄 아는 거구나. 나는 유정이에게 차마 그리 말해 줘서 고맙다는 말은 건넬 수가 없었다. 다만 얼른 보름의 나흘이 지나 따개비가 달라붙은 갯돌처럼 볼품없는 내 살갗을 어둔 바다 저편에 숨기고 싶었다. 냅킨 사이로 보이는 좁다란 거리 끄트머리에 바다가 물병처럼 차올라 있었다.
    범일동에서 그 거리를 일별한 적 있다. 남자들만 있는 거리. 항구와 닮았지만 밤거리에 들끓는 남자들은 뱃사람들과 전혀 달랐다. 내가 골목을 기웃거릴 때 말라깽이 아이가 말을 건넸다. 술 좀 사줘요. 나는 아이를 따라 지하에 위치한 가라오케로 들어갔다. 그곳에도 나와 닮지 않은 남자들만 가득했다. 남자들은 앞다퉈 무대로 올라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아이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병맥주를 홀짝거렸다. 아이가 내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나는 흠칫했지만 허리를 곧추세우고 딴청을 피웠다. 아이는 담배를 한 대 달라고 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만 원만 줘 봐요. 나는 아이에게 지폐를 건넸다. 나는 바깥으로 나간 아이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담배 두 갑을 쥐고 돌아와 끊임없이 연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주위를 힐끗거렸다.
    두어 번 그 거리로 다시 가봤지만 아이와 조우하지 못했다. 나는 혼자 가라오케 구석에 앉아 술을 마시고 흐무러졌다. 남자들을 게슴츠레 쳐다봤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당연했다. 익숙했다. 나는 어릴 때도 아름답지 않았다. 작고 멍청하고 못생긴 아이였다. 하마터면 사랑했던 순간은 많았지만, 내 사랑은 질병 같아 들키는 순간 나를 거세해 버렸다.
    해주도 그랬다. 중학교를 관둔 해였으니까 열다섯 가을이었나 보다. 전학생인 해주가 선생을 따라 교탁 앞에 서서 첫인사를 했을 때 교실은 술렁거렸다. 그 아이는 첫눈에 봐도 남달랐다. 하얬고, 맑았다. 우리가 살던 동네의 햇빛과 물과 흙과 무관한 빛깔이었다. 해주는 내게 처음 말을 건 아이였다. 하굣길에 걔가 나를 쫓아와 도서관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던 그 순간부터, 나는 해주를 숭배했다. 나는 해주에게 많은 길을 가르쳐주었다. 우체국, 충혼탑, 무덤, 숲, 강……. 새로운 장소가 밑천을 드러냈을 때 나는 해주에게 하구로 전어를 주우러 가자고 말했다. 길은 멀고 햇볕은 따가워, 해주는 양동이를 뒤집어썼다. 나는 장님이 된 해주에게 작대기를 내밀었다. 나는 뒷걸음치며 그 아이의 팔목을, 무릎을, 얄따란 발목을 훔쳐봤다. 딱 한 번만 저 맨살을 만져 봤으면. 해주가 거머쥔 나뭇가지는 뿌리도 없으면서 꽃을 피우고, 잎을 틔웠다. 나를 둘러싼 온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콜타르처럼 검을 것만 같은 땀이 밴 내 손바닥에만 독버섯이 자랐다. 네가 영원히 장님이 됐으면 좋겠어. 살갗을 어루만지는 손이 나인 줄 모르게. 동성인 줄 모르게. 나는 그만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해주는 양동이를 벗어던지고 눈을 떴다.
    가끔 뱃일을 하러 와 전학생처럼 구는 아이를 보면 해주가 생각났다. 그 아이는 어찌 살까. 열다섯 이후 고향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 바다는 수많은 강을 삼키고, 강은 내와 천을 거느려 맘만 먹으면 그 하구까지 가닿을 수 있을 테지만 이제 내겐 배가 집이고, 바다가 마을이었다. 내 전부였다. 무엇보다 소금기가 가득한 바다를 벗어나는 순간 숨죽이던 사랑이 독버섯처럼 돋아날까 봐 성가시고, 두려웠다.

  *  선박 이름은 선주의 딸이나 아내 이름을 붙이거나, 가족 중 여성의 이름을 짓는 게 관례이다.
  **  최백호가 작사․작곡하고 노래한 「영일만 친구」 가운데.
  ***  『어린 왕자』(생텍쥐페리 지음, 김호 옮김, 풍림출판사, 1990)에서.
  ****  『어린 왕자』(생텍쥐페리 지음, 김호 옮김, 풍림출판사, 1990)에서.

 

*

 

    남항은 아무리 길을 헤매도 결국 바다로 이어진다. 집보다 친숙한 유정호도, 혼자 오전을 만끽하는 오네도 찾지 못했지만 바다만큼은 절대 길을 잃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한눈팔아도 깜깜한 바다는 눈감고도 나를 금세 찾아낸다. 비바람에 바닷물이 넘친 건지, 빗물이 고인 건지 부두로 가는 골목 군데군데 웅덩이가 패어 있다. 길모퉁이로 피해 가자 여기저기 잡동사니가 나뒹굴고 있다. 그릇 같기도 하고, 겉잎 같기도 하고…… 어둠침침한 바닥에 노랗게 빛나는 저것은…… 참외다.
    참외는 선주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다. 나는 시장을 볼 때 제철 과일도 꼭 챙긴다. 입가심으로 딸기와 자두, 앵두를 내고, 선원들이 잠에서 깨면 사과를 섞은 오디주스나 요구르트를 넣은 토마토주스를 갈아 줄 때도 있다. 선원들은 한가하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건 내가 차린 모양 따위 살피지 않고 허겁지겁 먹어치운다. 나 또한 칭찬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나한테 예쁘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참외는 바닥에 그려진 이정표처럼 결국 바다를 가리킨다. 선주는 참외를 좋아하지만 씨를 안 먹는다. 나는 참외를 깎고 난 뒤 노란 껍질과 훑어낸 씨를 바다에 버린다. 그 씨는 먹이가 되었을까, 어느 뭍으로 흘러가 씨앗이 되었을까.
    로안은 참외를 먹어 봤을까. 어디서 들었더라, 참외는 우리나라에서만 먹는다고 했는데. 그 아이라면 내가 버릇처럼 도려내는 콧물 같은 태좌까지 처음이에요, 하면서 알차게 먹을 것이다. 로안은 뭐든 잘 먹으려고 애썼다. 모두 처음이라며 선원들에게 보란 듯이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나와 단둘이었다면 달랐을까. 께름칙하다고, 누구 놀리는 거냐고 욕을 내뱉었을까.
    나는 로안이 유일하게 무시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로안은 선원들이 없는 자리에선 내게 영감, 하고 반말로 지껄였고, 심부름 오건 부탁하러 오건 서툰 한국어로 짜증을 냈다. 주탁이 놈한테 들켜 뒤통수를 맞으면 나를 몰래 흘겨봤다. 나는 성이 나지 않았다. 피붙이를 때리고 욕하는 게 직업이었던 아버지는 간경화로 쓰러진 뒤 자리보전해선 자식들이 구박하고 저주하면 입 다물고 돌아누워 귀머거리 시늉을 했다. 나는 로안이 까불 때마다 내게 자식이라도 있어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거나 악다구니를 퍼붓는다면 그건 얼마나 더 쓸쓸했겠나, 입맛은 써도 엉뚱한 위안이 됐다.
    로안이 단둘이 있는데도 잠깐 다정한 적이 있다. 보슬비가 내리는 오후였나. 전을 부쳐야겠다 생각 들어 부추를 다듬고 시든 줄기를 버리러 갑판으로 나가자 우의도 입지 않고 이물에 서 있는 로안이 보였다. 아무것도 애쓰지 않는, 어떤 눈길도 의식하지 않는 무방비한 뒷모습은 처음이었다. 나는 모른 체하려다 먹고 싶은 게 있느냐, 물을 심산으로 다가갔다. 씨발, 그 하나 또렷한 한국어를 내뱉고 선실로 내려갈지 모른다고 각오했는데, 로안은 나를 힐끗 쳐다보곤 잿빛으로 너울거리는 바다만 쳐다봤다.
    영감, 꿈 있어?
    나는 분절된 그 질문을 알아들었지만 어떤 의미인지 퍼뜩 헤아릴 수 없었다.
    하긴. 영감이.
    로안은 점자 같은 빗방울이 씐 바다에서 대답을 읽었는지 이내 갑판으로 내려가 어구를 덮은 가빠를 들췄다. 등 뒤에 서 있는 가장 늙은 인간을 무시하고 홀로 애쓰며 가만히 젖어 가는 가장 어린 인간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납색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끝에서 끝으로 만나 닮을 수밖에 없는, 이제 늙어버린 내 젊음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메마른 육신에 얼비친 내일.
    로안, 네 육신도 나처럼 그렇게 스러져 갈 것이다. 나도 한때 젊었고, 그냥 내버려둬도 피부는 빛났다. 얄따란 몸은 근육이 느껴졌다. 바다는 몸을 더욱 빨리 부식시킨다. 아무리 몸을 놀려도 관리 받지 못하는 육신은, 여유롭게 운동하고 조련되지 않는 몸뚱어리는 파도와 사투하는 동안 곯거나 삭고 말 것이다. 앙다문 치아는 나빠지고, 배가 볼록하고, 사지는 삭정이처럼 메말라 누가 봐도 가난한 몸이 될 것이다.
    꿈?
    늙은 내게 꿈이란 게 있긴 한 걸까. 돌아보니 나는 그리 살았다. 태어난 김에 사는 느낌. 그래 꿈, 그건 살날이 많은 너 같은 애송이나 가지는 거지. 나 같은 늙은이는 내일이란 죽음밖에 모른단다. 그래, 잠들 듯이 가는 게 소원이라면 소원이지. 그걸 꿈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리 멀지 않은 내일이 오거든 저 바다에 장사(葬事)를 지내 주려무나.
    나 또한 젖는 줄도 모르고 갑판에서 멍청하게 서 있는데 고등어를 부르듯, 갈매기를 홀리듯 무심한 허밍이 아물거리는 머릿속을 깨웠다. 로안이었다. 로안은 정말 내가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지 서툰 한국어로 노래까지 흥얼거렸다.
    해운대 지나서 꽃피는 동백섬 해운대를 지나서.
    어디서 들어 본 노래였더라. 한순간 로안에게 왈칵 화를 내던 선주의 플라스틱 같은 앞니가, 설거지를 하는 내 뒤에서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시늉을 하는 로안의 뺨을 후려치는 선주의 손이 떠올랐다.
    선주는 좀처럼 성내는 일이 없었다. 내가 공연히 그물 거두는 일을 돕겠다고 나섰다가 나자빠졌을 때 선주는 불같이 화를 내며 안 하던 욕까지 내질렀다. 내가 더 미안하고, 창피해서 내 쓸모없음을 탓하며 금방 잊고 말았는데, 남항으로 돌아온 보름밤에 선주가 삼촌, 하고 넌지시 나를 불렀다. 한 살 터울이지만 같은 학교를 다녀서 기석아, 중근아 서로 그렇게 부르다 아무 호칭 없는 사이가 됐지만 선주가 아주 드물게 자랑스러운 딸 입장에서 삼촌, 하고 부를 때면 내가 말썽이었다는 걸 저절로 알게 됐다.
    선주는 나를 데리고 택시를 타고 남포동으로 갔다. 고등어 굽는 냄새가 가득한 골목이나 너저분한 은주식당과 달리 조명이 반짝거리고, 널따란 바 앞에 외다리가 높은 의자가 놓인 술집이었다. 선주는 이름도 외기 어려운 양주를 시켰다. 바 안쪽에 서 있는 여자가 양주잔에 갈색 술을 따라 줬다. 선주는 아무 말도 않고 술을 천천히 삼켰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양주잔만 우두커니 내려다봤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여자를 지분거리지도 않았다. 선주가 나를 끝끝내 끌어안는 것도 술에 환장해 패가망신한 뱃사람들이 발에 차이는 남항에서 술을 입에도 안 대는 노인네는 내가 유일하다시피하기 때문이었다. 선주가 술빚에 시달리는 선원들을 나무라며 내 이야기를 하면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도 젊었을 땐 술에 많이 의지했다. 술은 정직한 나를 깨우고, 용기를 가르쳐줬다. 어루만지고 싶은 사람이 취할 때까지 정신을 놓지 않았고, 술잔을 쓰다듬는 빈손을 사랑으로 연명했다. 술을 마시고 시내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길이면 모든 얼굴이 사랑이 됐다. 나는 차창에 기대 졸고 있는 옆모습을 훔쳐봤다. 나는 깜빡 조는 시늉을 하며 그의 어깨와 부딪쳤다. 그가 게슴츠레 눈을 뜨면 위팔을 쓰다듬으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 씨발년이 뭐래. 나는 내가 두려워서, 내 손이 두려워서, 내 본심이 두려워서 술을 끊고 말았다.
    나는 이제 딱 하나 아쉬웠던 이가 가지런해진 선주를 힐끗거렸다. 잘생긴 얼굴이었다. 너는 멋진 술을 점잖게도 마시는구나. 태어날 때부터 이웃이었고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봤던 이 아이가 이렇게 근사한 어른이 되었구나. 나는 그와 나 사이에 도사린 건널 수 없는 어른의 시간에 주눅 들었다.
    삼촌.
    조금 취한 선주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 선주와 나는 동갑내기로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어렸고, 함께 젊었지만 똑같이 늙지 않았다. 그에게선 어른이 느껴지지만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어딘가에 늦춰져 있었다. 삼촌. 그 부름은 선주가 제 쪽으로 조금이라도 오라고 노력하라는 다그침으로 들렸다.
    선주는 가라오케 앞으로 나갔다. 여자가 자연스레 번호를 누르자 화면에 바다가 떴다. 선주는 마이크를 쥐고 노래를 불렀다.
    순정에 첫 키스 열정에 그날 밤 수줍던 너의 모습*
    나는 이제 그 노래가 미웠다. 부두에 도착해서 넌지시 그 아이를 부르는 선주의 목소리, 비린내 가득한 부두를 벗어나 달콤한 술집 바에 나란히 앉아 아이의 어깨를 두드리던 손, 비틀거리며 무대로 나가 노래를 부르는 뒷모습에 왠지 시무룩해지고, 언짢아졌다. 아무도 입으로 발음한 적 없는, 그저 갸웃했던 내 무엇에 관한 금기를 동작으로 깨뜨린 그 아이의 귀환에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제 부끄러울 나이는 지났다. 부끄럽진 않았으나 슬퍼서, 그래서 화가 났다.
    로안의 처음이자 마지막 노래를 들은 뒤부터 내 눈길을 외면하지 않은, 내 속맘을 한없이 들어주던 하늘과 바다 사이에 섬 하나가 돋아났다.

  *  최백호가 작사․작곡하고 노래한 「청사포」 가운데.

 

*

 

    왜 이렇게 졸린 것일까. 오랫동안 누군가의 잠을 지키면서 뜬눈으로 지새운 것 같다. 눈을 감고 싶은데, 눈꺼풀이 사라진 것만 같다. 아무 곳이나 눕고 싶다. 그만 헤매고 싶다. 나 혼자 버려져 무인도가 된 것 같다. 더 이상 오갈 데 없어도 내 ‘달방’에는 가고 싶지 않다. 그 관 같은 방은 내가 마지막으로 누울 자리를 떠올리게 한다. 손맛이 나빴다면 지금 나는 징글징글한 목숨을 욱여넣은 궤짝에 담긴 채 달보다 먼 바다만 꿈꾸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만 젖고, 흐무러지고, 녹아 사라져 버리고 싶다. 비이슬이 햇빛에 마르듯, 소금이 바다에 용해하듯. 유정호를 찾을 수 있다면 아무도 없는 선실에서 죽은 듯이 잠든 채 먼 바다에 도착할 때까지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설령 아무 찬거리를 준비하지 않아도 바다에서 굶주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바다를 떠도는 동안 깊이 잠들어 본 게 언제인가. 선원들은 쪽잠도 달게 잤다. 눕고 잠드는 과정에 뒤척이는 기색이 없었다. 금세 숨소리가 파랑에 맞춰 가지런해지고, 코를 드렁드렁 골고, 이를 갈았다. 나는 좁다란 내실 구석에 몸을 부리고 잠든 로안을 훔쳐봤다. 요동치는 마음인지 배가 울렁거려 나는 이내 바깥으로 나갔다. 달이 차오르는 걸 보면 뭍으로 돌아갈 날이 며칠이나 남았는지 헤아릴 수 있었다.
    나는 젖는 줄도 모르고 노래를 들은 뒤 갑판에 나갈 때마다 섬을 찾았다. 바다를 떠도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섬은 오래 자취를 감췄다. 나는 혼자 갑판을 거닐면서 로안에게 처음이 아닐 음식을 생각했다. 외국에서 온 시로도들은 카레를 가장 좋아했다. 고기 말고 잡어를 넣어 시도한 카레도 잘 먹었다. 하지만 로안은 카레를 보며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나는 어린 입맛에 아부하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로안은 점점 선원들을 닮아 갔다. 짜증도 내지 않고 나를 아예 처음부터 배에 없는 사람 취급했다. 그렇게 닮아 가려고 애쓰는 마음이 나는 아팠다.
    애쓰지 마라.
    나는 덩달아 혼자 지내는 시간을 무르고, 피곤한 척 선실 구석에 쪼그리고 잠을 시늉했다. 나는 뜬눈으로 지새우기 일쑤였다. 온갖 잠이 파도처럼 뒤섞이고, 그곳에 파묻힌 섬을 겨우겨우 붙든 채 시달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고 지난 시간이 몰려왔다.
    그대가 날 밀어낸 기요.
    아내는 달아나기 전날 밤 나한테 안겼다. 오래 안지 못했다. 김을 안 뒤로 더 그랬다. 나는 아내를 밀어냈다. 돌아누운 아내는 울먹이며 말했다.
    당신이 날 내쳤소.
    서운하고, 알면서도 떠밀리고, 느끼면서도 뭔지 모르고 말 못 했던 그 마음은 또 얼마나 아렸을까.
    기억이란 얄궂다. 다 흘러가 버린 줄 알았는데, 어떤 시간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편지가 담긴 빈병이 돼 전혀 준비되지 않은 순간 떠밀려왔다.
    물이 따뜻해지고, 고등어는 더 차가운 바다를 향해 멀어지고, 따뜻해진 바다에서 태풍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했을 때도 나는 뜬눈으로 지새우기를 반복하면서 틈만 나면 꾸벅꾸벅 졸았다. 어느 밤, 비바람이 요동치고 갑판 천장이 들끓는 기척에 눈을 뜨자 선원들은 보이지 않고 내팽개친 이불만 나뒹굴고 있었다. 나는 부리나케 선실 위로 오르는 사다리에 한 발을 올렸다. 갑자기 배가 좌우로 흔들리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나는 선원들의 몸내가 짙게 밴 껍데기를 거머쥔 채 흔들거렸다. 갑판으로 올라간다고 해도 나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었다. 늙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젊어서부터 그랬다. 힘도 없고 사내다운 것도 없고 차라리 일찍 뒈졌다면 이 늙음을 만나지 않은 게 차라리 행운이었을까.
    비바람은 점점 거세지고 배는 흔들리면서 피정하기 시작했다. 선원들은 선실로 내려와 누운 채 흔들렸다. 나는 벽에 기댄 채 무릎을 끌어안고 누워 있는 섬들을 쳐다봤다. 모두 눈을 감고 있지만 코고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로안은 뒷일이라도 보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답답했다. 뭔가 요깃거리를 장만하고 싶었다. 나는 겨우겨우 갑판으로 올라가 조타실 쪽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갑판은 바닷물이 넘쳐 반은 바다의 영역이나 마찬가지였다. 비바람 너머 로안은 솥으로 바닷물을 퍼내고 있었다. 로안의 발목까지 잠긴 갑판에는 다듬지 않은 배추며 참외며 그릇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나는 로안에게 선실로 들어가라고 고함을 쳤다. 로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지 비바람과 맞서 싸우고만 있었다. 나는 빗물인지, 바닷물인지 모를 파도가 넘실거리는 갑판으로 걸어갔다. 로안은 비틀거리고, 넘어지는 나를 노려보며 종주먹을 들이댔다.
    영감, 꺼져.
    그래도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은 아니었다.
    애쓰지 마라, 애써서 무엇 하냐.
    나는 로안의 흠뻑 젖은 팔목을 거머쥐었다. 로안은 손을 떨쳐냈지만, 나는 이를 사리물고 위팔을, 팔뚝을 쓰다듬었다. 빗물인지 바닷물인지 미끄덩거리는 살갗은 손아귀를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 내 늙고 거친 살갗도 물을 머금고 보드라웠다. 물속에서 자라는 버드나무를 본 적 있다. 목이 마른지 물속으로 가지를 드리운 늙고 구부러진 나무는 연둣빛 잎사귀가 비늘처럼 반짝거렸다. 로안의 피부는 미역처럼 검고 부드러웠다. 바다를 머금고 종내 바다를 닮아버린 아이를 놓아버리는 순간 나는 아이와 바다를 구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로안은 뿌리치고, 나는 만류하고……. 이름 없는 바다 한가운데, 비바람에 몸부림치는 노천극장에서 무언극이 펼쳐졌다. 갈매기 하나 구경하는 관객은 없었다. 로안은 솥을 구하고 싶은 맘이 큰지, 더러운 나를 떨쳐내고 싶은 맘이 큰지 팔꿈치로 내 명치를 후려갈겼다. 나는 그만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뱃전을 넘나드는 바닷물이 저절로 눈을 감게 만들었다.
    버려진 뒤에야 알았다.
    그 아이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밀착했던, 접촉했던, 그 짧은 추행은 용기도, 구원도…… 더더욱 사랑은 아닌 죄였다.
    나는 알았다.
    하굣길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고 해주가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해주는 하나도 늙지 않았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빗줄기가 거세다. 우리는 잎이 가장 넓은 목련나무 아래로 들어가 몸을 피한다. 비는 쉽게 그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저만치 담배건조장이 보인다. 벽이 뜯긴 흙집은 담배를 키우지 않고 온갖 허섭스레기를 보관했다. 나는 젖은 윗도리 아랫자락을 꽁꽁 쥐어짠다. 해주의 젖은 머리에서 물이 뚝뚝 뜯어진다. 나는 해주를 훔쳐본다. 해주는 젖은 윗도리와 바지를 아예 벗어던진다. 하얀 몸뚱어리가 눈부시다. 배꼽과 겨드랑이에 돋은 몇 올의 털과 팬티 사이로 고불고불한 거웃이 드러난다. 나는 온몸을 오들오들 떤다. 비에 젖어 추운 건지, 두려운 건지 모를 정도로 몸은 하염없이 떨린다. 왜 그렇게 떨어, 그렇게 말하는 해주도 이를 달가닥거린다. 나는 대답 대신 해주의 배꼽에 혀를 댄다. 한순간 해주는 나를 떠밀고 앞이 보이지 않는 빗속으로 내달린다. 나는 비가, 번개가 나를 죽이고 쓰러뜨리기를 바라면서 걸어간다. 갑자기 비가 긋고 햇살이 쏟아진다. 잘박잘박, 고무신에 든 물이 떠들지만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해주는 이제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나는 투명인간이 된다. 주먹들이 너네 둘 사랑싸움 했냐며 골린다. 해주는 저 거지 새끼랑 엮지 말라고 주먹들에게 대든다. 어쭈. 한 아이가 해주의 팔을 등 뒤로 겯고 나를 끌고 가 서로 마주 보게 세운다. 때려. 이 서울 새끼가 너보고 거지 새끼라잖아. 나는 가만히 있는다. 병신 새끼. 나는 그래도 가만히 있는다. 한 녀석이 해주의 팔을 풀어 준다. 그럼 네가 저 새끼 죽여. 해주는 잠시 망설이지만 이내 내게 달려들어 뺨을 후려갈긴다. 나는 휘청이지만 다시 곧추선다. 빗속에서 감히 널 건드린 죄. 해주는 다시 내게 주먹을 던진다. 널 사랑한 죄. 널 갖고 싶은 죄. 나는 이 벌을 달디 달게 받아들인다. 해주는 얼굴이 시뻘게져 나를 때리고 짓밟는다. 그 아이의 살이, 근육이, 빛 아래에서, 남들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닿은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해주는 그렇게 주먹들에게 흡수됐다. 해주는 나를 불러 꼬붕으로 삼았다. 그때부터 내 이름은 구멍, 남구멍이었다. 내가 평생 가진 유일한 별명이었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나를 거둘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학교를 때려치우고 누나가 사는 부산으로 오던 날, 나는 읍의 간이역 앞 벤치에서 계집아이를 꿰고 소주를 마시는 해주를 봤다. 해주는 나를 보며 생글거리며 계집아이의 젖가슴을 만졌다. 나는 부산에 도착할 때까지 기차 통로 계단에 앉아 밋밋한 내 가슴을 꼬집었다. 함부로 사는 해주가, 깨끗한 피부에 흉터를 꿰매고 앞니가 깨진, 읍의 아이들처럼 볼품없는 모습을 노력하는 해주가 너무 아까웠다.
    그 시간으로부터 나는 얼마나 흘러온 것일까. 어쩌면 그 시간에 여전히 잠겨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그 세월이 사연이 될 수는 없다. 나는 그때 일말의 의심도 없이 내 마음에 미쳤다. 손바닥과 혀끝에 새긴 죄는 맘속에서 지옥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미친 건 깨끗한 거였다. 미친 건 짐승의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짐승에게 무슨 사연이란 게 가당할까. 나는 나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벌주지도 않는다. 나는 다만 도망친다. 그 끝이 바다임은 자명하다.
    나는 눈앞에 동동 떠다니는 흘러가는 솥을 부표처럼 붙잡는다. 부엌세간은 내게 남은 유일한 오늘. 그 솥에 바다를 모두 담을 수 없어도, 누군가의 허기를 달래게 할 수 있었다. 이것과 동행한다면 끝, 그 너머에서도 누군가를 거둬 먹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릇을 껴안은 채 나는 또다시 혼자이다. 아마 나는 짐승이었대도 교미하지 못하고, 번식하지 못하고, 혼자 낙오된 채 사라졌을 것이다.
    한순간, 무성(無性)의 바다만이 내 살을 빈틈없이 핥아 주고 목구멍 깊숙이 혀를 집어넣는다. 바다는 유일하게 내 늙고 못난 몸을 거부하지 않고 한없이 부드럽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제 몸 깊숙이 나를 껴안는다. 나는 바다 속에 잠긴 만월처럼 부푼다.
    나는 보름달이 뜬 바다를 생각한다. 한 번도 뒤에 두고 온 보름달이 차오른 바다가 궁금하지 않았다. 바다를 흩트리는 배가 사라진 깨끗한 바다에 어룽지는 달빛에 홀려 떠도는 고등어 떼. 내 직업은 달. 서른 번 뜨고 지기를 반복하는 해[日]가 아니라, 보름을 기준으로 차고 기울고 종적을 감추는 하나의 달[月]. 간간이 빨간 날도 없고, 그저 푸르기만 한 달. 사십 년 넘게 내겐 없던 달이, 새삼 섬처럼 궁금하다.
    나는 비로소 보름의 나흘 동안 지금 머무는 곳이 어디인지 깨닫는다.
    아무리 헤매도 찾을 수 없는 곳. 아무도 나를 거들떠보지 않는 곳…… 나는 지금 고등어 떼처럼 반짝거리는 달빛 위를 떠도는 섬이다.
    바다이다.
    바다는 피를 흘리지 않는다.
    그 아이가 마지막까지 애쓴 덕분인지 이제 내 바다는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
    로안은 보이지 않는다.
    애써 봤자 부질없는 바다로부터 드디어 달아난 것이면 좋겠다.
    로안,
    그동안 애써 줘 고맙다.
    나는 겁보여서 일평생 바다에서 도망치지 못했고, 어린 너는 용기가 있어 먼 곳에서 바다로 왔다.
    네 부모가 아이였을 때 적(敵)이었던 나라에서 서툰 몸으로 바다와 사투하느라 얼마나 고됐을까. 네 나이 때 젊음을 실컷 낭비한 하잘 것 없는 것들이 모욕해도 굽실거려야 했던 마음은 그 얼마나 참담했을까. 그래도 열심히 웃어야 했던 그 마음의 그늘은 또 얼마나 쓸쓸했을까.
    로안, 다시는 바다로 돌아오지 마라.
    달을 쫓지 말고, 빛을 쫓아라.
    더 이상 애쓰지 마라.
    그리고 먼 훗날 이곳에서 애쓴 시간이 무색하게 네 늙음 또한 고되고, 초라한 밤이 오거든 아주 일러 너보다 훨씬 못한 끝을 연명했던 나라는 늙음이 있었음을 암(癌)처럼, 호되게 앓고 난 병처럼 그렇게라도 기억해 다오.

 

 

 

 

 

 

 

 

 

 

 

 

 

 

 

 

 

임수현 작가소개 / 임수현(林修賢)

1976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문학수첩 신인상에 「앤의 미래」가 당선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이빨을 뽑으면 결혼하겠다고 말하세요』, 『서울을 떠나지 않는 까닭』, 장편소설 『태풍소년』이 있다.

 

   《문장웹진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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