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에게 미소를

[단편소설]

 

 

비둘기에게 미소를

 

 

이경

 

 

 

    류 계장이 내게 비둘기를 맡긴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병원 가장 아래층에서 일했기 때문이 아닐까. 간호사들은 지하에 잘 내려오지 않으니까. 하지만 지하 1층 사무실에 나 혼자만 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류는 나를 잘 몰랐다. 나도 류를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처음 류를 본 건 구내식당에서였다. 식판을 들고 자리를 찾던 그가 실수로 내 발을 살짝 건드렸다. ‘어이쿠, 미안합니다.’ 사과하기에 고개를 들었는데, 유난히 돌출된 흉곽이 눈에 들어왔다. 의자를 당겨 길을 내줬더니 테이블을 빙 돌아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곁을 주기까지 얼마간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존댓말을 쓰고 싶을 때까지 쓴다. 그러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가까워지기도 하는데, 상대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구석을 발견했을 때나, 반대로 내가 들켰을 경우다. 대화는 대개 쓸쓸한 분위기에서 시작된다. ‘차 한 잔 할래?’, ‘좀 쉬지 그래?’ 같은 반말을 위로처럼 건넨다. 위로를 주고받는 관계는 흐지부지 끝나곤 했다. 힘든 시기는 언젠가 지나기 마련이고, 그때가 되면 서로가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류와는 그런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는 돌려 말하지 않고 곧장 내게 요구했다. 도와달라고. 거절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거리낌 없는 태도가 오히려 경계심을 무너뜨렸다. 잔뜩 위축됐던 때라 예상치 않은 방향에서 구조튜브가 날아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주 3일 병원 아르바이트 자리를 잡은 건 운이 좋았다. 대학 졸업 후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을 따려던 참이었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으려면 자격증이라도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도서관 사서나 유치원 교사 자격증 정도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동네만 해도 도서관보다 유치원이 많았다.
    학점제은행 온라인 수업은 학비 부담이 적은 편이었다. 그래도 필요한 학점을 모두 따려면 한 학기 대학 등록금 정도는 있어야 했다. 가구 제조업체에 다니던 아버지는 석 달 전부터 실업급여를 받고 있었다.
    병원은 낡고 오래된 7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었다. 강남 노른자 땅에 있는 재활 전문 병원이었다. 평일에도 로비는 환자들로 붐볐다.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내 신분은 협력업체 소속 파견직이었다.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아침 10시에 출근해 오후 3시에 퇴근했다. 시간당 1만 5천 원을 벌었다. 한 달로 치면 평균 임금에 훨씬 못 미쳤지만 최저 시급보다는 높았다. 돈을 어느 정도 포기하면 시간을 넉넉히 벌 수 있었다.
    할 일도 거의 없었다. 접수대 끝에 책상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장내 세균 검사 신청서에 사인만 받아 두면 됐다. 환자들은 간호사에게 미리 설명을 듣고 왔다. 많아야 하루 다섯 명 정도였다. 천 명 한정 무료 서비스였는데, 이미 세 명의 전임자를 거친 일이라 석 달이면 목표 인원을 채우고도 남을 것 같았다.
    첫날엔 분위기를 익히느라 긴장했지만 다음날부터는 여유가 있었다. 업무를 보고할 상사도, 눈치 볼 동료도 없었다. 환자들은 신청서에 순순히 사인했다. 근무시간 대부분을 회사에서 지급받은 노트북으로 강의 내용을 체크하고 과제를 해결하는 데 썼다. 틈틈이 전공서적을 읽고 인터넷 검색도 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로비를 바쁘게 지나는 사람들을 멍하니 지켜봤다.
    병원 직원들은 직군에 따라 유니폼이 달랐다. 하늘색 가운과 흰 바지를 입은 직원들은 접수대 간호사들이었다. 위아래 흰색 유니폼은 병실을 돌며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 간병인들은 연두색 카디건을 입었다.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길고 흰 가운은 각종 검사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짧은 가운은 의사들이 입었다. 나는 길고 흰 가운을 입었다.
    직원들에겐 특유의 미소가 있었다. 희미하고 온유한, 환자를 대하는 미소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밤낮없이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그들의 직업이었다. 어쩔 수 없는 환멸의 순간에도 미소 지어야 했다. 환멸을 피막처럼 감싼 그 미소는 손톱 밑 거스러미만 닿아도 찢길 것만 같았다. 주삿바늘이 혈관을 뚫고 들어오는 순간, 환자는 그 미소를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직원들은 병원에 채용될 때 특별히 훈련받는지도 몰랐다. 내겐 그것을 익힐 기회가 없었다.
    접수대의 간호사들도 가끔 내게 미소 지었다. 나는 고개 숙여 외면했다. 환자들에게만 그 미소를 보인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환자가 근심과 불안을 안고 접수대에 앉으면 그녀들은 모니터를 보며 신상정보를 확인했다. 검사 날짜를 정하고, 하루 전 미리 복용해야 하는 약물과 일주일 전부터 복용이 금지된 약물에 관한 설명을 되풀이했다. 주위는 산만하고 설명은 빠르고 복잡했다. 통증에 지친 환자들은 주의사항을 놓치기 쉬웠다. ‘오기 전날? 전날 이 약을 먹어요?’ 되묻거나 ‘아가씨, 왜 이리 불친절해요?’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간호사들은 주의사항이 적힌 설명서를 볼펜으로 가리켰다. ‘환자분, 여기 보시면 다 나와 있어요. 외우려 하지 마세요.’ 그녀들은 미소를 지운 뒤에도 환멸을 드러내지 않았다. 훈련된 태도가 분명했다.
    환자가 뜸한 시간이면 간호사 교육생 중 하나가 접수대 앞으로 호출되곤 했다. ‘내가 계속 지켜볼 거야’, ‘환자를 무조건 너한테 보낼 거야’, ‘너 혼자 책임져야 돼’. 공중으로 분사된 미세한 침 분자들이 내 자리까지 날아와 머리 위로 축축하게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못 들은 척 미소 지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난 간호사들과 친분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했다. 주변을 지우고 혼자 있는 것처럼 굴었다. 그녀들도 내가 안중에 없는 것 같았다. 석 달 뒤 병원 로비에서 내 존재가 또렷이 부각되기 전까지는.
    목표 모집 인원을 채우고 무료 서비스 기간이 끝났지만 회사에선 아무런 통보가 없었다. 매니저에게 문의했더니 곧 다른 이벤트를 병원에 제안할 거라 했다. 회사 입장에선 병원 로비에 책상 하나를 두는 것만으로도 홍보 효과가 있었다. 병원과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도 무시할 수 없었다. 매니저는 내게 지금처럼 자리를 지키면 된다고 했다. 대신, 신청서에 사인하러 온 환자들에겐 검사 결과를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말로 포기를 유도하라고 했다.
    문제는 간호사들이었다. 그녀들은 낭비를 못 견뎌했다. 병원 로비는 진료 접수대와 검사 안내, 수납 창구, 환자 대기실 등이 구획을 알뜰히 나눠 사용하고 있었다. 이벤트 기간도 끝난 협력업체 직원이 일주일에 세 번 출근해 거의 아무 일도 안 하고 반나절이나 자리를 차지하는 건 공간과 시간, 인력의 낭비라 여기는 듯했다.
    그녀들은 낭비를 줄이기 위해 우선 내 책상 크기를 절반으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진료를 마친 환자들은 내 앞을 지나 접수대로 가 다음 방문 날짜를 예약한 뒤, 다시 돌아와 세균 검사 신청서에 사인하고 복도로 나가야 했다. 한 마디로, 내 책상은 복잡한 길 가운데 걸림돌처럼 박혀 있었다.
    매니저와 통화한 다음날 수간호사라는 사람이 왔다. 책상을 작은 것으로 바꿔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의견을 묻는 게 아니라 양해를 구하는 거였다. 마땅히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책상 위에는 유선 전화기도 없이 노트북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일주일쯤 지나 등 뒤로 피아노가 들어왔다. 환자 대기실에 있던 피아노를 옮길 공간이 필요했고, 하필 내 뒷자리가 적당하다는 결론을 낸 것 같았다. 난 책상과 피아노 사이에 끼인 꼴이 됐다. 의자에 앉으려면 다리부터 의자와 책상 사이에 집어넣어야 했다. 화장실에 가려면 의자를 빙글 돌려 발 디딜 공간을 만들어 한 발씩 빼내야 했다. 지난번처럼 양해를 구하지도 않았다. 책상을 바꾸자고 했을 때 거절했어야 했다.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번에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병원 직원들은 내가 하는 일 없이 돈을 받아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만둘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매니저가 병원에 새로 제안한다는 이벤트는 시작될 기미가 없었다. 몇 주 더 버틴다 해도 회사가 언제까지 단지 책상을 지키기 위해 인건비를 지불할지 알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 자리는 또 구할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근무시간에 강의를 듣진 못할 것이다. 조기 졸업을 목표로 시간표를 짠 것도 소용없게 됐다. 돈 벌며 공부하는 자리를 내놓자니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조만간 없어질 자리였다. 그렇다면 몇 주 더 못 버틸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저것 재기엔 계산이 너무 빤했다. 일당 7만 5천 원은 무시할 수 있는 상숫값이 아니었다.
    간호사들은 나와 생각이 달랐다. 몇 주는 고사하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수간호사가 책상을 로비에서 치워 달라고 했다.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다 간호사가 요청하면 로비로 올라와 환자에게 사인받는 게 어떠냐고 했다. 로비를 떠나는 건 자리가 좁아지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나는 수간호사에게 회사와 먼저 상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에둘러 거절 의사를 밝힌 거였다.
    “회사에 이미 통보했어요. 책상만 옮겨 주세요.”
    나만 모르는 사이 상황은 이미 정리돼 있었다.
    사무실은 지하 1층에 있었다. 출퇴근도 정문이 아니라 건물 외부에서 지하로 바로 내려가는 계단을 통했다. 계단 입구엔 백발의 경비원이 지키고 있었다. 사람이 드나들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했는데, 새치 백발 때문인지 어딘가 과장된 행동처럼 느껴졌다. 의자 하나만 간신히 들어가는 경비실엔 검은 끈으로 얼기설기 엮어 간신히 고개만 쳐든 선풍기가 하루 종일 돌아갔다. 더위 때문이 아니라 환기가 목적인 것 같았다.
    지하층은 주차장과 기계실, 사무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사무 공간엔 작은 사무실 둘이 나란했다. 왼쪽이 내가 있을 곳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정면으로 빈자리가 보였다. 구석엔 복사기와 의료용구가 담긴 상자, 테이프나 형광펜 같은 비품이 쌓였다. 병원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아 패스워드가 걸리지 않은 인근 약국의 와이파이를 허락 없이 썼다. 화장실에 가려면 엘리베이터나 비상계단을 타고 로비로 올라가야 했다. 지상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는 움직일 때마다 철컹철컹 소리가 났다.
    사무실엔 나 말고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영업사원 박이었다. 병원이 부대사업으로 판매하는 의료용구를 인근 병원에 납품하는 일을 했다. 박은 오전 9시에 출근해 위층으로 올라가 잠깐 회의에 참석한 뒤 외근을 나갔다. 퇴근시간이나 돼야 돌아오는 것 같았다. 옆 사무실에는 시설물 관리와 홍보, 재무 담당 직원들이 근무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교류는 없었다. 어쩌다 마주치면 그들은 예의 그 미소로 눈인사만 했다.
    오전 회의가 길어진 날엔 박은 외근 나가기 전 나와 함께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쌀밥과 오이무침, 콩나물, 두부부침 같은 소박한 식단이었다. 간호사들과 간병인, 주차관리인, 청소부들로 구내식당은 늘 자리가 부족했다. 다이어트 중인 박은 현미즉석밥을 매점 전자레인지에 데워 반찬만 받아먹었다. 거의 매번 반찬투정을 했지만 난 공짜로 먹는 밥이라 별 기대가 없었다. 협력업체 직원 한 사람에게 번거롭게 따로 식권을 받느니 없는 셈 치는 것 같았다.
    “류 계장, 오랜만이야.”
    뒤늦게 식판을 들고 온 박이 맞은편 남자에게 인사했다. 병원 시설물 관리자라고 류를 내게 소개했다.
    “고양이 소리 안 나요?”
    류는 콩나물국을 한 숟가락 뜨다 말고 옆자리 앉은 박에게 물었다.
    “요새는 안 들리던데?”
    박은 천장에서 고양이 소리가 한동안 나더니 요즘은 통 안 난다고 했다. 내가 사무실에 내려오기 전 고양이를 키웠는지도 모른다. 나는 두부부침을 젓가락으로 잘라 입에 넣었다.
    “우리 사무실 쪽으로 넘어왔나 봐요.”
    류가 얼굴을 이쪽으로 바짝 들이밀며 목소리를 낮췄다.
    “어…… 그래서 소리가 안 났구나.”
    전날 숙취가 남았는지 박은 콩나물국을 그릇째 들이켰다. 난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시늉만 했다. 고양이 안부가 특별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밖으로 통하는 고양이 통로가 천장 어디에 있나 봐요. 그쪽 사무실과 이쪽 사무실 천장을 제 구역 삼아 돌아다니는 것 같아요.”
    류가 공연히 내 눈치를 슬금슬금 봤다. 지하 사무실 천장과 1층 바닥 사이 좁은 공간이 있고, 그 틈으로 길고양이가 드나든다는 거였다. 일부러 이쪽에서 고양이를 몰아낸 게 아니냐, 은근히 추궁하는 것 같아 약간 신경 쓰였다. 박은 류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외려 날 놀리듯 말했다.
    “길고양이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사무실에 귀뚜라미도 튀어나오고, 다리 징그럽게 많이 달린 벌레 있잖아요, 이름이 뭐더라? 그, 그리마? 그런 건 흔해요. 쥐도 나온 적 있잖아요. 얼마 전엔 뱀도 나왔고.”
    “에이, 뱀이 어디서 나와요? 산에서?”
    지하니까 쥐는 그렇다 쳐도 뱀은 좀 너무하다 싶었다. 나는 적당히 겁먹은 척했다. 병원 바로 앞 도로는 고층빌딩이 줄지어 있는 사거리지만, 뒤편으로는 나지막한 산이 있었다. 산으로 이어진 산책로엔 산비둘기가 동네 주민인 양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주변엔 원룸 주택가가 빽빽했는데, 아무도 살지 않는 2층 집도 있었다. 집을 헐고 새 건물을 올리려다 무슨 이유에선지 방치된 것 같았다. 문이란 문은 남김없이 뜯겨 있고 마당엔 길게 찢긴 3인용 가죽소파가 나와 있었다. 잘 뻗은 소나무가 그 위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엥? 거짓말 아니에요. 애완용 작은 뱀 있잖아요. 새빨갛고 검은 줄무늬 있는 거. 가정집에서 키우던 게 탈출한 거 같던데.”
    급히 외근 나가려다 계단 입구에 실뱀이 있는 걸 못 보고 대가리를 밟았다고 했다. 뱀은 즉사했지만 너무 놀라 약까지 사먹었다고 했다.
    “정말요? 그런 거 환자들 눈에 띄면 좀 곤란한 거 아닌가요?”
    로비에서 한 층 내려왔을 뿐인데 같은 건물인가 싶었다. 오이무침에서 비릿한 향이 올라왔다.
    “근데 비둘기는 어떻게 됐어?”
    콩나물국을 말끔히 비운 박이 즉석밥엔 손도 안 대고 숟가락을 내려놨다. 비둘기는 또 무슨 소린가 싶어 류를 바라봤다.
    ”어지간히 나은 거 같아서 며칠 전 날려 보내려고 밖에 내놨는데 날개를 못 펴더라고요.”
    산에서 다친 비둘기를 데려와 돌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 달 넘었다고 했다.
    “그럼 아직 사무실에 있어? 류 계장, 복 받을 거야. 누가 알아? 정성껏 치료해 날려 보내면 금은보화가 든 박씨 물어다 줄지.”
    류가 빙긋 웃더니 날 봤다.
    “참새와 비둘기 얘기 혹시 아십니까?”
    “이솝 우화 같은 건가요?”
    “그건 아니고, 몽골 우화예요. 초원에 살던 참새와 비둘기가 사이좋게 도시로 여행을 떠났답니다. 날개를 쉬려고 어느 창가에 앉았는데, 안에서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랍니다.”
    “그래서요?”
    “여인이 어찌나 슬피 울던지 비둘기는 차마 그 창가를 떠날 수 없었대요. 참새는 도시 구경을 하러 날아갔죠. 비둘기가 초원으로 돌아왔을 때는 한 달이 지나서였습니다. 참새도 그 무렵 돌아왔답니다. 오랜만에 만나 앞다퉈 보고 들은 얘기를 쏟아냈는데, 글쎄 서로 한 마디도 못 알아듣게 됐다지 뭡니까. 그사이 비둘기는 여인의 울음소리를 배워 구구구 울었고, 참새는 도시 사람들을 흉내 내 재잘거렸기 때문이래요.”
    난 듣는 둥 마는 둥 식판을 비워냈다. 뜬금없는 비둘기 우화에 교훈을 곱씹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은혜를 갚는 중이란 겁니까? 류 계장이 비둘기에게?”
    박이 실없는 소리를 보탰다.
    “아프면, 당연히 누군가 돌봐야죠.”
    류가 예의 그 미소를 짓는 찰나, 박이 류의 옆구리를 가볍게 쳤다. 가까운 곳에 수간호사가 식판을 들고 앉을 자리를 찾고 있었다. 간호사에겐 비둘기의 존재가 비밀인 것 같았다. 동물병원도 아닌데 비둘기라니. 간호사들은 공중보건의 낭비라 여길지 몰랐다.
    류와 두 번째 마주친 것은 그 주 금요일이었다. 점심 식사 후 잠깐 뒷산 산책로를 걷고 있을 때였다. 내내 한 자리를 지키고 있자니 다리도 저리고 소화도 안 됐다.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든 근처 회사 직원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수풀에서 인기척이 나 돌아봤더니 거기 류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류가 먼저 아는 체했다.
    “아 예…… 뭐 하고 계세요?”
    류의 손에 줄이 들려 있었다. 개 목줄은 아니었고 노끈이었다. 줄 끝엔 다리가 단단히 묶인 비둘기가 있었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특유의 고갯짓을 해가며 풀숲을 헤치고 다녔다.
    “자연광을 못 봐서 얘도 답답할 것 같아서요.”
    지하 사무실에 창이 없으니 빛이 안 들어오는 건 당연했다. 류는 비둘기를 꽤 정성껏 돌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잖아도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사무실로 선생님을 찾아가려 했는데, 이렇게 만난 김에 말씀드려도 될까요?”
    업무상 부탁할 일은 없을 테고, 아무래도 사적인 일 같았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밥 한 번 먹었을 뿐인데 사적인 부탁은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들어 보지도 않고 거절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고양이가 그쪽 천장을 통해서 이쪽 사무실로 들어오는 것 같단 말입니다. 고양이 소리만 나면 얘가 미친 듯이 푸드덕대거든요. 아직 다 낫지도 않았는데…….”
    또 고양이 얘기였다. 류는 비둘기를 안쓰럽게 내려다보며 내 반응을 살폈다.
    “고양이가 드나드는 구멍을 막으려고 건물 뒤편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못 찾았어요. 그래서 부탁드리는 건데요…….”
    설마 고양이를 잡아 달라는 건가? 도무지 의도를 알 수 없는 말을 그는 머뭇머뭇 이어 갔다.
    “별거 아니고요, 천장에서 고양이 소리가 나면 이 녀석을 그쪽 사무실에 옮겨 놓아도 될까요? 고양이 기척만 들려도 죽어라 날뛰니 날개가 영 낫지를 않아서요.”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다. 어차피 사무실엔 거의 혼자 있다시피 하니까. 하지만 내가 이런 걸 허락해도 될까. 병원 직원도 아닌데.
    “저는 새 돌보는 법도 모르고, 키운 적도 없어서…….”
    “쉬워요. 돌보실 것도 없어요. 잠시만 맡아 주시는 거니까요. 그냥 적당한 곳에 놔두시기만 하면 돼요.”
    류는 허리까지 숙여 가며 고맙다고 했다.
    월요일에 출근하니 사무실에 케이지가 놓여 있었다. 오른쪽 날개에 붕대를 감은 비둘기가 들어 있었다. 어두운 회색 깃털을 가진, 전형적인 도시 비둘기였다. 도시 비둘기의 깃털이 어두운 색을 띠는 이유는 체내에 흡수된 납, 아연과 같은 중금속 물질을 깃털로 내보내기 때문이라고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났다. 오늘은 저쪽 사무실 천장에 고양이가 있다는 뜻인가. 고양이가 사라지면 알아서 가져가겠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류는 종일 비둘기 곁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고양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비둘기는 케이지 철망을 콕콕 쪼고, 구구구 소리를 내고, 쉴 새 없이 날개를 쳤다. 세균 검사 신청서를 받으러 로비로 올라오라는 전화는 한 통도 없었다. 접수대 간호사들이 환자들에게 더 이상 안내하지 않는지도 몰랐다.
    수요일에도 비둘기는 그대로 있었다. 월요일부터 계속 이곳에 둔 것 같았다. 잠깐 맡아 달라던 애초 부탁과는 달랐다. 친절을 강요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박도 틀림없이 비둘기를 봤을 것이다. 묻지도 않고 멋대로 비둘기를 들인 게 돼버렸다.
    류는 회의 탁자에 설계도를 펼쳐 놓고 파란 사인펜으로 여기저기 체크하고 있었다. 병원 설계도면인 것 같았다. 날 보자마자 반가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실엔 두 사람이 더 있었지만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정쩡한 목례를 하고 곧바로 류에게 다가갔다.
    “아, 비둘기요? 비둘기 때문에 그러시죠? 고양이가 바로 위에 있어서요.”
    류가 대뜸 내 손목을 잡고 한쪽으로 데려가 천장을 가리켰다. 불쾌한 체온이 느껴졌다.
    “들리세요? 여기쯤인데.”
    잘 들어 보면 가릉가릉 소리가 난다는데 내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선생님께는 안 들릴지 몰라도 비둘기는 아주 예민해요. 몸도 성치 않은 녀석이니 잘 부탁드립니다. 며칠만 더 있으면, 날아갈 수만 있게 되면, 바로 날려 보낼 겁니다. 그때까지만 돌봐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고양이가 떠나면 곧바로 비둘기를 데려오겠습니다.”
    다른 두 사람도 하던 일을 멈추고 날 빤히 쳐다봤다. 다친 비둘기가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데 괜한 트집을 잡아 불평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냄새가 나서 못 견디겠어요.”
    비둘기 분비물에서 냄새가 나는 건 사실이었다. 가뜩이나 공기도 안 좋고 환기도 되지 않는데 3일이나 됐으니 사무실 전체로 냄새가 퍼졌다.
    “이걸 뿌리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류가 내 손에 탈취제를 들려줬다.
    “사료도 좀 드릴게요. 배고프면 녀석이 더 예민해지더라고요. 사료 넣어 주실 때 깨끗한 물도 좀 갈아 주시고요.”
    난 사료 봉투를 받지 않았다. 먹이까지 책임지고 싶진 않았다.
    “비둘기를 돌보는 건 곤란하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돌보는 데 소질이 없다고 하셔서 혹시 도움이 될까 하고…… 제가 멋대로 이해한 모양이네요. 이거 죄송합니다. 그리고 정 냄새가 심하면 케이지 바닥에 깔린 신문지를 갈아 주시면 됩니다. 신문지는 여기 많이 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과는 달리 케이지 청소까지 떠맡기려는 모양이었다. 슬슬 짜증이 났다.
    “사무실을 저 혼자 쓰는 것도 아니라서요.”
    “그건 걱정 마십시오. 병원 직원이라면 다 같은 마음 아니겠습니까? 아픈 비둘기가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류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희미하고 온유한 미소. 박에겐 먼저 양해를 구한 것일까. 박이 허락했다면 내가 나서서 거절하는 것도 이상했다. 나는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파견직 사원일 뿐이었다.
“이것도 드릴게요.”
    비닐장갑 50개가 든 팩과 손 소독제였다.
    “비둘기는 도시 뒷골목까지 워낙 아무데나 뒤지고 다녀서 세균과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크답니다. 아, 바이러스 걱정은 마세요. 비둘기가 인간에게 옮기는 바이러스가 있다면 해외 토픽감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청소하거나 먹이를 줄 땐 비닐장갑을 착용하시는 게 좋겠죠. 손 소독제도 바르시고요.”
    결국 탈취제와 비둘기 사료, 신문지 뭉텅이까지 가지고 돌아왔다. 비둘기는 케이지 안에서 제 깃털을 뽑아내고 있었다. 깃털 사이에 기생충이 많다던데, 그 때문인 것 같았다. 케이지를 공기청정기 앞으로 옮겼다. 변종 바이러스로 세상이 뒤숭숭한 마당에 바이러스 감염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비닐장갑을 끼고 바닥에 깐 신문지를 새것으로 갈아 줬다. 케이지를 청소하는 동안 비둘기는 밖으로 내놨다. 지치지도 않고 푸드덕대더니 박이 쌓아 둔 상자 위로 훌쩍 올라갔다. 의료용구 재고가 들어 있는 상자였다. 오물로 얼룩진 붕대를 감고 푸드덕푸드덕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비둘기를 겨우 잡아 케이지에 넣었다. 류가 알려준 대로 사료에 물을 섞어 주자 비둘기가 구구구구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오후가 되자 바닥 긁는 소리, 드릴 같은 기계로 구멍을 뚫는 소리가 들렸다. 벽을 쿵쿵 치는 소리도 섞였다. 옆 사무실에서 들려왔다. 이쪽까지 진동이 와서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졌다. 비둘기를 데려가려고 고양이를 쫓는 걸까. 어쨌든 고양이가 달아나고도 남을 것 같았다. 놀란 고양이가 이쪽으로 넘어오면 비둘기가 먼저 난동을 피울 테고, 그때 케이지를 가져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소음은 한동안 계속되다 뚝 끊겼다. 천장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비둘기도 날개 사이에 머리를 박고 꼼짝하지 않았다. 고양이는 도망치지 않고 천장 깊숙한 곳에 아예 자리를 잡은 건지도 몰랐다.
    이틀 후 출근길 계단 입구에서 류와 마주쳤다. 한 손에 설계도를 들고 있었다. 경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류와 나에게 인사했다. 고장 난 선풍기가 웅웅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잖아도 뵙고 말씀드리려 했는데, 그제 늦은 오후부터 선생님 사무실에 공사가 들어갔습니다. 지금쯤 얼추 마무리됐을 겁니다. 지하 사무 공간 전체를 리모델링하는 거라서 한쪽을 손보면 다른 쪽도 자연히 손을 볼 수밖에 없죠. 저희 사무실은 먼저 손을 좀 봤습니다.”
    수요일의 소란이 떠올랐다.
    “보수는 끝이 없어요. 주기적으로 리모델링하지 않으면 건물도 늙는답니다. 끊임없이 보수하고 부분적으로 리모델링하는 게 제 업무라,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해야 하는 게 이 직종의 고충이라면 고충이죠. 안 그러면 제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하하.”
    뭐 때문에 잘렸는지는 몰라도, 류가 여기 오기 전 대기업에서 일했다고 박이 귀띔해 준 게 떠올랐다. 큰 조직에 비하면 이 병원은 변두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해고가 그의 경력에 적잖은 흠집을 낸 건지도 몰랐다. 류는 들고 있던 설계도가 구겨지지 않도록 오른팔에 둘둘 말았다.
    리모델링이 끝난 사무실은 절반 크기로 줄어 있었다. 박은 다른 사무실로 옮긴 모양이었다. 재고가 담긴 상자들도 사라졌다. 비둘기 케이지와 책상 하나만 남았다. 자리가 좁아진 게 문제가 아니었다. 숨 쉴 공기가 줄어든 느낌이었다.
    비둘기 케이지는 책상과 나란히 놓였다. 달리 마땅한 공간도 없었다. 날개를 감은 붕대는 매듭 풀려 너덜너덜했다. 바닥에 깔린 신문지를 갈아 줄 때가 됐는지 악취가 코를 찔렀다. 비둘기를 돌볼 마음이 들지 않아 멍하니 앉아 있는데 류가 사료를 가져왔다. 일주일분이라고 했다.
    “천장도 손을 봤나요? 고양이 통로는 찾았나요?”
    통로를 막으면 고양이도, 비둘기도 사라질 것이다.
    “찾아봤죠. 어차피 여기저기 손보는 김에 천장도 뜯었습니다. 거기 생각지도 못한 게 있었어요. 저희 쪽 사무실 천장에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있지 뭡니까? 눈도 잘 못 뜨는, 아주 작은 새끼더라고요. 조금만 기다려 주면 저절로 나갈 겁니다. 고양이들은 젖을 떼면 혼자만의 여행을 떠난다잖아요.”
    이번엔 고양이 새끼들이 여행을 떠나길 응원이라도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말인데요, 아예 가림막을 설치해서 사무실 천장을 분리시켰어요. 고양이가 그쪽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말입니다. 얌전히 있어야 날개 상처가 빨리 아물 테니까요. 물론 건물 밖으로 통하는 작은 구멍은 열어 뒀죠. 그래야 고양이가 떠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저쪽은 고양이를 키울 테니 이쪽에선 비둘기를 돌봐 달라는 말이었다. 비둘기가 온 후 온라인 강의에 과제까지 적잖게 밀렸다. 코 점막에 진득하게 달라붙는 배설물 냄새와 공기 중에 산발적인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날갯짓 때문에 도무지 집중하기 어려웠다. 휴무일에 보충하려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새 학기 교육대학원에 진학하려면 늦어도 한 달 안에 필요한 학점을 전부 이수해야 했다. 내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류는 다친 비둘기와 새끼 고양이를 돌보는 일에 날 끌어들였다.
    “이 녀석 상처는 이제 거의 다 아물었을 겁니다. 넉넉잡고 다음 주면 날릴 수 있을 거 같아요. 비둘기가 여기 있는 한, 고양이는 제가 책임지고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서 비둘기만 봐주시면 됩니다.”
    류는 희미하고 온유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배운 적도 없는 내게.
    “간호사들이 사무실에 내려와 비둘기를 발견하게 되면 어떡해요. 날 고용한 회사 입장도 곤란해진다고요.”
    지하 사무실로 내려온 후 접수대에선 전화 한 통 걸어오지 않았다. 박도 없는 지금, 이 병원에서 내게 용건이 있는 사람은 류가 유일했다.
    “걱정 말아요. 간호사들은 지하로 내려온 적 없거든요.”
    류의 미소는 사라지고 없었다.
    혼자 남게 되자 비둘기 악취에 소리, 깃털 움직임 하나에까지 신경이 곤두섰다. 놈은 가슴 깃털을 한껏 부풀리더니 구르륵구르륵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앓는 것처럼 들려서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서랍에서 새 붕대를 꺼냈다. 날개를 감은 붕대는 더럽다 못해 삭아서 원래 색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비닐장갑을 끼고 케이지 앞에 쪼그려 앉았다. 밖으로 내놓으면 제압하기 힘들 것 같았다. 팔을 깊숙이 넣어 한쪽 날개를 잡았다. 다른 손으로 등을 세게 누르자 위협을 느낀 비둘기가 사납게 저항했다. 회색 깃털이 사방으로 날렸다. 솜털이 코와 입으로 들어와 숨을 쉴 수 없었다. 눈물, 콧물에 기침까지 발작적으로 쏟아졌다. 비둘기를 잡은 두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악!
    놈이 손등을 사정없이 쪼았다.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나자빠진 사이, 비둘기는 매서운 발톱으로 이마를 할퀴고 공중으로 차올랐다. 미간이 얼얼했다. 통증인지, 정신적 충격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오물로 얼룩진 붕대가 정수리 위로 펄럭였다. 말라 바스러진 배설물이 비듬처럼 공중에 날렸다. 스스로를 향한 주체할 수 없는 환멸이 온몸을 우그러뜨렸다. 이제 아무도 내게 미소 짓지 않을 것이다.
    회사에 전화해 그만두겠다고 했다. 매니저는 알겠다고 했다. 로비에서 책상도 뺐는데 사람마저 없으면 난처하다고, 후임이 올 때까지만 자리를 지켜 달라고 했다.
    홀가분했다. 이제 비둘기도, 고양이도 누군가 돌볼 것이다.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했다. 교육대학원 진학은 미뤄야 할지도 몰랐다.

 

    후임은 오지 않았다. 그 자리에 딱 맞는 사람이 좀처럼 구해지지 않는다고, 매니저가 2주 뒤 연락을 해왔다. 한 달 급여치고는 너무 적은 게 문제였다. 근무시간을 늘리면 될 테지만 회사 입장에선 인건비 부담 때문에 곤란하다고 했다.
    비둘기 케이지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어제 류가 산책로에 풀어 줘 봤지만 도무지 날아가려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는 법을 잊은 것 같다고 했다.
    “새끼 고양이들은 여행을 떠났나요?”
    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모르죠. 그때 이후로 천장을 뜯어 보지 않았거든요.”
    그가 나가자마자 천장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비둘기가 케이지를 부술 것처럼 펄쩍펄쩍 뛰었다. 고양이는 아니었다. 누군가 황급히 사무실을 두드렸다. 지하 계단을 지키는 경비원이었다.
    “사람들이 내려와요.”
    밖에 나가 보니 계단을 타고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오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소독 펌프를 등에 진 사람도 있었다. 간호사들이 오는지 살폈지만 계단 위까지 보이진 않았다.
    “무슨 일인데요?”
    “몰라요. 아무튼, 사람들이 내려오는 건 비상상황이거든요.”
    경비원은 옆 사무실로 뛰어갔다.
    허둥지둥 비둘기 케이지를 챙겨 엘리베이터에 탔다. 지하 가장 깊숙한 곳의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덜컹덜컹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비둘기에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아. 고양이는 더 아래로 내려오지 않을 거야.

 

 

 

 

 

 

 

 

 

 

 

 

 

 

 

 

 

이경 작가소개 / 이경

2007년 김유정소설문학상에 단편소설 「토큰」이 당선되고, 2008년 세계의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파이프」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8년과 201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펴낸 책으로 『표범기사』, 『먼지별』, 『소원을 말해줘』 등이 있다.

 

   《문장웹진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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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리사

소원을 말해줘.. 읽었는데, 그 작가의 작품이라 반갑게 읽었습니다. 전작처럼 이 글도 무척 진지하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