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영화 외 1편

[신작시]

 

 

심야영화

 

 

강백수

 

 

 

    밤은 거대한 구멍
    잠은 위대한 축복

 

    축복이 비껴난 자리에서 우리는 구멍을 맞이하여
    메울 것인지 외면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잘 걸어지지 않던 밤
    빌라 밑 좁은 틈에서 들려오는
    발정 난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고 깨달았지
    나는 내가 메우고 있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시늉뿐
    구멍을 애처로이 메우고 있던 건
    내가 하고 있던 그 메우는 시늉이었지

 

    161/169
    나 말고도 저주받은 여덟이 그 부질없음을 깨닫고
    영등포 CGV 6관에 모여
    어벤져스여도 상관없고 기생충이어도 상관없는 영화를 본다
    이제 우리는 러닝타임만큼 구멍을 외면할 수 있지만
    그래도 네 시간이나 남는 밤

 

    타임스퀘어 맞은편 거리 가득
    저주받은 이들이 구멍을 메우-는 시늉을 한다
    술을 마시고 우정과 사랑을 맹세하-는 시늉을 하다가
    애꿎은 거리에 토를 하고 집에 가는 길에 어느 고양이의
    핏내 나는 울음소리를 듣고는 문득 허망한 마음이 들겠지

 

    그 옆 거리에는 또 한가득
    메움을 포기하고 매음 하는 사람들
    그 너머 높다란 아파트 불 꺼진 방 안에는
    잠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들

 

    아직도 밤은 네 시간이나 남아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잠들 수 있을는지

 

 

 

 

 

 

 

 

 

 

 

 

 

 

 

무서운 꿈

 

 

 

 

    애원하다
    소리치자
    끌어냈다
    흐느꼈다

 

    젊은 은행원이 띵동 소리로 미소를 수습하고
    삼백구십번 고객님을 부르자
    전대를 맨 아줌마 한 명을 뺀 나머지들의 시선은
    일제히 다시 테레비를 향했다
    혼자 사는 서른 몇 살 연예인은 벤츠를 타고
    정신병원을 찾아가 공황장애를 호소하고 있었다

 

    삼백구십이번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주택청약 좀 해지하려구요
    곧 있으면 이 년 채우시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요 처음도 아닌걸요

 

    사십이만 원에 삼만 원을 보태 집주인에게 보냈다
    끌려 나온 노인이 보도블록에 앉아 등이 굽은 담배를 태운다

 

    소리를 치니까 끌려 나오죠
    가만히 애원하다 흐느꼈어야죠
    내게도 자네 같은 시절이 있었어
    아유, 그런 소리는 마셔요
    나도 나름 한다고 했다구

 

    노인은 담배를 필터까지 태워먹고
    신호도 안 보고 찻길을 막 건넌다
    빵빵거리건 욕을 하건 그냥 막 건넌다

 

    노친네! 뒈지고 싶어?
    아니오, 저는 아직 오래 살고 싶어요

 

 

 

 

 

 

 

 

 

 

 

 

 

 

 

 

 

강백 작가소개 / 강백수

1987년 출생. 2008년 《시와 세계》 등단.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 수료.

 

   《문장웹진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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