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국화 옆에서 외 1편

[신작시]

 

 

흰, 국화 옆에서

 

 

안현미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환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 일 아닌 일에도 심장이 뛰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벚꽃이 다녀가더니

 

    목련이 오고 목련 뒤에는 라일락이

 

    라일락 다음엔 작약과 아카시아가

 

    아카시아에 이어 장미가 다녀갔다

 

    그제는 마흔 살, 시인이 되고 싶다던 후배가

 

    장미를 따라갔다

 

    빌어먹을 흰, 국화 옆에서

 

    가만히 들여다본다

 

    장미, 아카시아, 작약, 라일락, 목련, 벚꽃……

 

    이어달리기를 하듯 왔다 간

 

    환한 꽃들처럼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다녀간다

 

 

 

 

 

 

 

 

 

 

 

 

 

 

 

뛰어다니는 비

 

 

 

 

    수협 조끼를 입은 남자가 박카스를 돌리자

 

    대게철이 시작됐다 주황색은 어디서 왔을까

 

    달을 찍고 싶었으나 귤을 찍는다

 

    인생이 대개 그와 같다.

 

    호불호를 떠나야 한다

 

    여자도 남자도 극복해야 한다

 

    낯설고 두려운 세계로 초대된 우리들

 

    내 불행은 내가 알아서 할 것

 

    대게는 대게로

 

    고양이는 고양이로

 

    나는 나로 죽을 것이다

 

    할머니라고 아홉 번이나 불렸고

 

    삼만 살처럼 피곤해도

 

    소만(小滿)에는 립스틱을 사자

 

    동문하고 서답하자

 

    내 물음과 내 울음은 내가 알아서 할 것

 

    주황색은 어디서 왔을까

 

 

 

 

 

 

 

 

 

 

 

 

 

 

 

 

안현미 작가소개 / 안현미

2001년 《문학동네》로 등단. 시집 『곰곰』, 『이별의 재구성』,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깊은 일』이 있다.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했다.

 

   《문장웹진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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