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네마테크 외 1편

[신작시]

 

 

나의 시네마테크

 

 

이리영

 

 

 

    끝나지 않기를
    아니, 시작되지 않았다면

 

    나는 어제의 티켓을 쥐고 있다

 

    영사 기사는 창구멍으로
    무엇을 엿보고 있나

 

    죽은 빛이 쏟아지기 시작해

 

    검은 뺨 검은 눈물 검은 문을 지나 검은 들판
    검어지기 전에는 내 것 같지 않던 것들

 

    쓰러지는 자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일어서는 장면을 놓칠까 봐

 

    아름다운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갇혀

 

    거대한 장막의 뒤편을 다
    메우려 어지럽게

 

    춤을 추지 옷자락마다 자라나던 검은 잎사귀 검은 불길

 

    허상에 지쳐 가던
    불이 의자에 옮겨 붙었다

 

    두 발이 다 타들어가도록
    엔딩을 기다린다

 

    죽은 줄도 모르고

 

 

 

 

 

 

 

 

 

 

 

 

 

 

 

부서지는 집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어요. 내게 남은 마지막 외투를 걸치고. 흰 운동화를 신고. 벽돌에서 붉은 가루가 부스스 떨어지던 집으로. 창문마다 죽은 화분을 길러 기둥에 물이 고인. 태양이 잊은 방향으로.

 

    새들이 지붕 끝에 제 몸을 꿰고 있겠지요. 어디든 펼치지 않은 책들이 끝도 없이 쌓여 있겠지요. 다 녹아내릴 기세로. 검푸르게 녹슨 육중한 철문. 열쇠가 열쇠 구멍에 물리며 돌아가자마자 사라지는 세상이 있어요. 돌아오지 않는 세상이 있지요.

 

    끓는점에 도달할 듯 도달할 듯. 모퉁이를 돌 때마다 외투 자락은 퍼지고 마른 비늘이 후드득 떨어져요. 나는 간절히 당신을 생각하고 싶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듯. 기다림이 텅 빌 때까지.

 

    배수관을 타고 올라온 덩굴손이 마지막 난간을 휘감을 때까지. 당신은 거대한 옷장 안에 있나요. 성년식에 입을 진홍빛 원피스와 노란 구두를 선물상자에 담으며. 빛나는 예복이 대신하는 어린 죽음을. 온 집 안의 불빛이 집요하게 덜어낸 어둠. 태양을 잊고, 한결 가벼워진 그곳에 무중력의 달이 떠오르지요.

 

    당신의 달은 얼마나 고요한가요. 발을 내디딜 때마다 고막은 갈라지고. 일순 벽 선반들이 우르르 떨어져요. 나는 뒤돌아서고. 눈을 가리고 있던 손수건이 스르르 풀어져요. 나의 시야에서. 당신의 집이 점점이 부서지고 있어요. 결코 사라지지 않을,

 

 

 

 

 

 

 

 

 

 

 

 

 

 

 

 

 

이리영 작가소개 / 이리영

2018년 《시인동네》 등단.

 

   《문장웹진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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