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길앞잡이 외 1편

[신작시]

 

 

비단길앞잡이

 

 

윤은성

 

 

 

    여기만 지나면 마을이 나온다고 그가 말한다.
    터널 안에서.
    우리를 지나치고 있는 생각들 안에서.

 

    빛. 따갑다. 우리는 드러날 것이다. 안전 운전을 믿는 만큼
    서로의 웃옷을 나눠 입고.
    아이의 형상에 또 다른 아이의 형상을 겹치면서.

 

    그가 다리 위에 서 있다.
    내가 그의 사진을 찍어 준다.

 

    빛. 날벌레들이 달라붙는 오후.
    그의 뒤로 조깅하는 커플이 천천히 사라진다.

 

    굴뚝.
    연기.
    그을음이 인 것 같은 얼굴.
    목이 탄다.

 

    시기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이사를 한 적이 있다.
    아마도 그가 도와주었겠지. 내가 혼자서 마칠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는 광장을 배회하고 돌아오곤 했다. 나도 같이 가자고 말한 적 있었는데.
    군중에 섞여서. 옳은 것이 있었고.

 

    여기만 지나면
    한 번도 발 디뎌 본 적 없었던 마을이.

 

    이분.
    백일하.
    다시 계속되는 터널.
    우리가 우리라는 공기로 덮일 수 있었을까.

 

    해가 지게 될 것인데.
    따가운 빛일망정 사라질 시각이 올 것인데.

 

    길이 넓고 환해서 서로를 놓게 되는 오후.

 

    아주 작은 너를 봤어.
    나를 모르는 너를 봤어.
    멀리서
    이미 터널의 밖에 있는
    내가 모르는 너를 봤어.

 

    갈증이.
    갈증이.

 

 

 

 

 

 

 

 

 

 

 

 

 

 

 

양남

 

 

 

 

    그렇게 시작된 도망이었다고
    여자는 눈을 맞추지도 못하고
    누구의 앞에 서 있는 것인지 염두에 두지도 못하고
    그저 컵을 손에 쥐고
    말을 하기 시작한다

 

    겨울에 멈춰 있는 그녀의 옷장과
    앉기도 전에 재가 되는 의자에 대해

 

    손을 대면
    불에 타오르는 책상과 창틀
    남아 있지 않은 필기구들에 대해
    손을 놓친 적 있는
    어린 연인에 대해

 

    *

 

    사악한 기분들이 있다
    나무들의 음산함
    비슷한 풍경이 반복되는 고속도로
    어딘가 다 헤아리지 못한
    거짓말이 있을 것 같은 대낮

 

    나는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모른다
    그저 그녀의 풀린 머리칼과
    슬리퍼를 신은 발을
    목격했을 뿐이다

 

    차창 밖으로 외딴 집들이
    드물게 지나가고 있다

 

    본 적이 있는
    그녀가 내게 왔었지
    불어 있는 얼굴이었는데
    무언가 꼭 물을 것이 있는 얼굴이었는데

 

    *

 

    지금 나는 물이거나 그림자
    그녀를 껴안거나 그녀를 뒤따를 수 있다
    먼 곳으로 그녀를
    데려다줄 수도 있다

 

    지금 나는 깊은 겨울 숲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 얼음들의 형태
    그녀를 그대로 가만히
    재워 줄 수가
    있다

 

    또한 나는 가끔씩
    불분명이 걷히는 물결의 틈
    그녀가 잃은 신발들이
    어느 물풀 아래 있는지
    한 번은
    알려줄 수도 있다

 

    *

 

    그러므로 여기

 

    여기를 보기를
    다정한 내게서 멀어져
    보다 차갑고 안전한
    마을로 나가기를
    겨울나무를 줍고
    그것을 태우기를

 

    그녀가 피운 연기
    너머
    미끄러지는 길을 따라 아이들이 웃고
    거기서
    다시
    새로운 잠을
    자기를

 

 

 

 

 

 

 

 

 

 

 

 

 

 

 

 

윤은성 작가소개 / 윤은성

2017년 계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문장웹진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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