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외 1편

[신작시]

 

 

폭염

 

 

최지은

 

 

 

    약속은 잊은 채 거실에 누워 있는 일요일 오후
    거북이 한 마리 발목을 스치고 검은 머리칼 사이로 숨어든다

 

    가끔씩 새우가 튀어 오르기도 하는
    여름날의 투명한 꽃병

 

    반만 열린 창밖에서 하얀 올빼미 떼 하염없이 날아들 때
    내 머릿속 가득 짖어대는

 

    내가 잃어버린 개들

 

 

 

 

 

 

 

 

 

 

 

 

 

 

 

칠월, 어느 아침

 

 

 

 

    어머니는 곁에 누워 나를 재웁니다
    아이를 달래듯 뜨거운 이마를 한 번씩 짚어 주며

 

    너를 가졌을 때 이야기야

 

    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겨울 숲의 자두
    직박구리가 찌르고 달아난 자리로 단내가 풍기고
    살짝 침이 고이기도 하는 이야기

 

    어머니의 이야기는 열을 내려 줍니다

 

    이내 나는 자두 꿈을 꾸며 더 깊은 잠에 빠지고

 

    어머니의 벌어진 앞니 사이로
    직박구리. 흰 눈. 붉은 자두.
    나의 여름이 시작되는 곳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엌에선
    통조림 뚜껑을 따는 소리가 들려오고
    늦은 저녁을 하고 있는 어머니의 뒷모습

 

    문득
    내가 세 살이 되던 해 어머니는 다른 사랑을 찾아 집을 떠났는데
    저녁을 하고 있는 어머니는 누굴까 생각하는 사이
    또 한 번, 통조림 뚜껑이 열리는 소리

 

    붉고 통통한 강낭콩이 우르르 쏟아집니다

 

    하얀 식탁보. 투명한 유리 화병. 흔들리는 스카비오사
    흔들리는 여름

 

    고요가 생겨납니다

 

    나는
    등 돌린 어머니의 몇 걸음 뒤에 서
    신이 나도록 떠들어 보기도 하지만

 

    어머니께 무슨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있는 것인지
    나는

 

    나만은 영영 알지 못합니다

 

    눈을 뜨자 내 곁엔 검은 개가 배를 드러낸 채 깊은 잠에 빠져 있고

 

    오늘은
    나의 생일

 

    시큼하고 달콤한 향기가 섞이어 풍겨옵니다

 

    이 여름이 한 번 더 지나가도록

 

    짧은 꿈의 손님은 모른 척 숨겨 두기로 합니다

 

    어두운 아침입니다

 

 

 

 

 

 

 

 

 

 

 

 

 

 

 

 

 

최지 작가소개 / 최지은

2017 창비 신인시인상으로 등단.

 

   《문장웹진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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