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의 강요 외 1편

[신작시]

 

 

깊이의 강요

 

 

권오영

 

 

 

    그 속으로
    말려들어 가면
    빼낼 수 없을 거야

 

    모가 나면 부서질 일이 많을 거라는 말이
    고리가 되어 고리를 주렁주렁 목에 걸었네
    어디든 굴러 다녔네 얼굴의 모서리에서 자란
    귀퉁이를 갉느라 입술이 찢어지는 일이 많았네

 

    둥글어져야 해
    죽은 지 오래된 엄마는 법을 가르치고

 

    최선을 다한 입구는 둥글어져
    깊이를 모를 바닥까지 미끄러졌네
    이제 밖은 잊기로 했고 잔발을 저으며
    제멋대로 내부를 흘러 다녔네

 

    천 개의 달이 뜨면 천 개의 운명으로 번지는
    그 안에서 꿈틀거렸지

 

    해는 피투성이 입술울 자주 비추곤 했는데
    60년대 화보처럼 채워지는 어둠은 성벽 같았어

 

    내부에도 외곽은 있어서 정원을 가꾸려고 해
    순전히 내부의 방식으로 꽃밭을 키워낼 거야
    내부의 뿌리가 썩지 않도록
    깊이를 재는 눈금을 표시해야겠어

 

    안을 들여다봐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그 애가 젖고 있어
    그런다고 운명이 빠져나오지 않아

 

    이제 법을 배웠으면 안으로 삼켜
    엄마가 겁을 주려는 거야
    속 깊은 사람은 둥글지

 

    우물은 혼자 깊어지는 법이야

 

 

 

 

 

 

 

 

 

 

 

 

 

 

 

기상도

 

 

 

 

    거리가 하나의 극장이 되었어요 대형화면 속에서 상영 중인 지구를 봐요 골프공만 한 우박이 쏟아집니다 유리는 깨지고 도로는 금이 갑니다 모래폭풍이 지붕들을 휩쓸고 사라집니다 식을 줄 모르는 산불로 세상이 뜨거워집니다 주머니에 캥거루를 담고 캥거루가 뛰다 넘어집니다 코알라는 코알라를 안고 가지 위에서 화석이 되어 갑니다 질 나쁜 공기가 몰려와요 마스크를 사야겠어요 절기의 대한에 겨울비가 옵니다 이런 날엔 허풍스러워져요 길들이 젖고 수도권 미세먼지 주의보는 발령 중입니다 눈앞에서 우회전하던 검은 승용차가 정육점으로 돌진합니다 유리를 견디던 뼈들이 부서지고 목덜미들이 거리를 덮었습니다 살점들로 한 장소가 붉어집니다 교복 입은 여학생이 귀가 큰 휜 털 토끼 모자 팔을 잡아당겨요 쫑긋 귀를 세운 토끼는 무슨 이야기든 다 들어줄 모양입니다 큰 귀는 지구의 모든 소리를 다 담고도 남겠어요 먼지의 농도가 짙어 앞이 보이질 않는 날이 많아졌어요 이틀 정도 머문다는 스모그 예보로 어두워집니다 이어폰 꽂은 아이가 마네킹처럼 보여요 세상에 없는 사람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보여요 서로가 마스크를 하고 유령처럼 비껴갑니다 바람 불자 우산들이 뛰어갑니다 우산 속에 누가 있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세찬 빗줄기 쏟아지는 일월입니다

 

 

 

 

 

 

 

 

 

 

 

 

 

 

 

 

 

권오영 작가소개 / 권오영

《시와 반시》로 등단. 시집 『너무 빠른 질문』. 나혜석 문학상 수상.

 

   《문장웹진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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