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로 가는 철도

[단편소설]

 

 

은하로 가는 철도

 

 

배상민

 

 

 

    친구가 죽던 날 아내가 가출했다. 죽음과 삶, 가는 방향은 달랐지만, 둘 다 가고자 했던 곳은 같았다. 바로 천국. 같은 날 일어난 일이지만, 친구의 죽음을 먼저 알았다. 아내가 가출했다는 사실은 친구의 장례식을 갔다 온 다음날에나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친구와 나는 입사 동기였다. 동갑이었고, 이웃 부서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더 깊이 친해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하나는 〈은하철도999〉라는 옛날 애니메이션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이 애니메이션은 은하를 가로지르는 철도가 놓여 있는 미래 세계에, 괴한들에게 엄마를 잃은 소년 철이가 미스터리한 여성 메텔을 만나 은하철도를 타고 모험을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모든 인간들이 기계의 몸으로 행복하게 영생한다는 행성이다. 사실 설정만 보면 그저 그런 SF 애니메이션이지만, 친구와 나는 이 애니메이션이 어른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인생의 비유가 가득 담긴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일본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의 걸작 중 하나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둘은 술을 마시다가, 화젯거리가 동났는데 집에 가기도 싫을 때면 〈은하철도999〉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죽였다. 그 시간은 언제나 진지하고도 즐거웠다.
    친구와 내가 친하게 지낸 또 다른 이유는, 우리 둘은 회사 내에서 라이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나 나나 대리까지는 엇비슷하게 승진했지만, 과장부터 승진 속도가 현격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겨우 팀장을 달았을 때, 친구는 이미 이사 직함을 달고 있었다. 그럭저럭 입사한 지 17년쯤 되고 보니 회사에 남아 있는 동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저마다의 이유로 회사를 떠나거나 남았겠지만, 내가 무능해서 회사를 지킨 경우라면, 친구는 유능해서 회사가 놓아 주지 않은 경우였다.
    친구와 나는 2년 전쯤부터 자주 어울렸다. 둘이 술을 마시면 아내도 타박하지 않았다. 직장 상사와의 술자리를 뭐라고 하겠는가. 친구는 법인카드 재량권 내에서 술을 사주었고, 그런 술은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았다. 다만 법인카드 사용 명목이 부하직원과의 면담 내지는 비즈니스 미팅이었기 때문에 나는 주로 그의 이야기를 고분고분 들어주는 편이었다. 그래도 〈은하철도999〉 이야기라 지겹지는 않았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사실 철이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던 거야."
    "그럼?"
    "나 같은 회사원."
    "장난하냐? 철이, 백수야. 은하철도 탈 때 다니던 회사에 사표 같은 거 안 냈잖아."
    하지만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엇엔가 홀린 듯 자기 말만 늘어놓았다.
    "철이나 나나 둘 다 똑같이 도달한 곳은 기계인간들의 세상이거든."
    "힘드냐?"
    "응. 임원이 되면 천국에 오를 줄 알았는데 나이든 비정규직이 됐네. 실적 압박은 더하고. 기계가 안 되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 난 네가 부럽다."
    "이 새끼, 그게 팀장한테 할 소리냐?"
    "그럼 사장한테는 할 소리냐?"
    나는 친구의 잔에 술을 채웠고, 그는 기계처럼 팔을 꺾어 술을 마셨다. 신입사원 시절 개인기랍시고 했던 것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웃기지 않았다. 나의 무반응에 친구가 무안해할까 봐 나는 스스로 잔을 채워 술을 마시고는, 회사원으로서 거의 갈 데까지 간 친구에게 한 번쯤 묻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혹시 꿈이 있냐고. 사실 사장이나 회장이 되는 것 같은 시시한 답변을 내놓으면, 그게 꿈이냐고 너는 낭만도 없냐고 되쏘아 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보다 뒤처진 데서 오는 나의 자격지심을 조금이라도 포장해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최소한 나는 기계인간은 아니라고 떠벌리면서. 그런데 친구는 그다운 답변을 했다.
    "메텔 같은 사람 만나고 싶어."
    "메텔? 철이를 기계행성으로 데려간 여자?"
    "응."
    "혹시 불륜 같은 거 꿈꾸는 거야?"
    "미친 새끼. 메텔은 여자 아냐. 철이한테는 엄마나 다름없어. 메텔은 철이한테 갈 길을 알려주고, 철이는 따르면 그만이지. 우리 엄마도 그랬거든. 어느 학원을 갈지, 무슨 대학, 무슨 과를 갈지 일일이 알려줬단 말이야. 어릴 때는 간섭하는 엄마가 지겨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생각'이라는 짐을 내게서 덜어 준 거야. 그 짐을 본인이 대신 짊어졌지."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나도 메텔을 만나 보고 싶었다. 그녀는 안내해 주고, 나는 따르면 된다. 답도 없는 앞날을 예측하느라 고민할 필요도 없고,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오는 삶에 불안할 필요도 없다.
    그런 대화를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는 죽었다. 과로사였다. 그는 불행히도 기계인간이 아니라 수명에 한계가 있는 기계적인 인간이었던 것이다. 발인하던 날, 나는 장례식장에 붙어 있는 친구의 이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김철'. 철이는 메텔을 만나 은하철도를 탔을까? 그렇다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서울 하늘은 별도 없어서 길 찾기가 만만치 않을 텐데…….
    장지에서 나오는 버스에 앉아 창밖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지독하게 외로웠고 작용 반작용의 법칙처럼 아내가 떠올랐다. 친하기로 따지면 아내만한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자식도 없는 우리는 세상에 둘만 남은 것처럼 기대며 살았던 적도 있었다. 아내와 나는 캠퍼스 커플이었는데, 그때부터 잘 맞았다. 아내는 성공하는 것이 꿈이었고, 나는 아내와 결혼하는 것이 꿈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가 여자친구이던 시절, 내 꿈이 뭔지 캐묻기에 대충 둘러댄 말이었다. 그러나 뜻밖에 아내는 내 꿈에 만족했다. 당시 아내는 결혼을 꼭 해야 한다면 남편 될 사람이 경쟁 상대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모든 게 어중간한 나는 과 수석을 도맡아하고 있던 아내에게 딱 맞는 남편감이었다. 나의 꿈을 들은 아내는 내게 청혼을 했고 우리는 결혼했다.
    아내는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기업 계열의 광고회사에 취직했고, 광고계의 별이라는 국장까지 순조롭게 달고 나서, 집으로 왔다. 처음, 아내는 자신이 왜 임원으로 올라서지 못하고 퇴직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찾아 헤맸다. 물론 아내의 성격을 아는 직장 상사라면 누구도 그 이유를 정확히 말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여자라서 탈락했다는 얘길 들었다면, 아내는 성전환 수술이라도 하고 나타날 사람이었다. 그러다 다음 단계로 접어들자, 아내는 한동안 분노했다. 헌신했던 회사의 배반에 대해 토로하면서 성공을 위해 살아온 삶이 부정당한 것을 견딜 수 없어 했다. 아내는 세 번째 단계에 이르러 나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비록 국장에서 멈췄지만, 나는 이사로, 사장으로 승진하길 바랐다. 최선을 다해 내조해 주겠다고도 했다. 아내는 자신의 욕망을 나에게 투사한 것이었지만, 문제는 내가 이사나 사장으로 승진할 그릇이 못 된다는 데 있었다. 아내도 그걸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아내가 사다 준 자기계발서를 가슴에 얹고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을 봤다.
    고립된 산에서 살아가는 자연인의 삶. 경쟁도 불안도 없는 자급자족의 유토피아. 나는 아내에게 임야를 좀 알아보자는 말을 슬그머니 꺼냈다. 아내는 대답 대신 자기계발서로 내 머리를 갈겼다. 정신 좀 차리라는 거였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쪽은 아내였다. 패배했다는 생각에 휩싸여 자기 자신을 잃고 있었다. 나는 산에 가면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고, 아내는 산에 가는 날이 이혼하는 날이라고 맞받았다. 그 후로 아내와의 관계는 눈에 띄게 소원해졌다.
    그 무엇에도 답을 구하지 못했던 아내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종교에 귀의해서 안식을 찾았다. 그리고 나는 안식을 찾은 아내 때문에 비로소 안식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성경 공부를 하고 오거나 기도회에 참석하고 온 아내의 얼굴은 목욕탕이라도 갔다 온 듯 말갛기만 했다. 그럼 나는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가겠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을 놓았다.
    아내가 내게 전도라도 하게 되면 귀찮아질까 봐 나는 아내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아내는 자신의 신앙생활에 푹 빠진 나머지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보니 우리의 관계는 집에 있는 보일러와 냉장고 같은 사이가 되었다. 서로 거들떠도 볼 일이 없는 사이.
    친구의 장지에서 돌아올 때만 해도 나는 아내와 새롭게 시작해 보려는 기대로 가득했다. 서로 눈을 마주 보며 대화를 하고, 비록 아내가 전도를 한다 해도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잡고, 분위기만 괜찮으면 잔잔하게 섹스도 하고 싶었다. 확률이 그리 높지는 않겠지만, 이제라도 아이가 생긴다면, 나는 기꺼이 자연인의 삶 따위는 포기하고 자기계발서의 화신과도 같은 열혈 중년이 되리라 다짐까지 했다.   
    그런데 아내가 사라졌다. 처음에는 교회에 간 건가 보다 생각했다. 주말이었고, 아직은 오후였다. 하지만 밤에도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겁이 났다. 나는 처가를 비롯해서 아내의 행방을 알 만한 사람들에게 모두 연락을 돌려 봤다. 그러나 누구도 아내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밤 12시쯤, 경찰서로 달려가려고 점퍼를 걸치고 있는데, 낯선 이에게서 메시지 하나가 왔다. '안녕하세요. 소현이 남편분이시죠? 소현이가 전해 달라는 말이 있어서 문자 드렸어요.' 나는 핸드폰을 들고 다시 소파에 주저앉았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네, 소현이 남편입니다. 누구신가요?' 그러자 재깍 다음 메시지가 왔다. '저는 소현이와 성경 공부를 같이했던 친구예요. 소현이가 자기는 잘 있다고 얘기해 달래요.' 이상했다. 이런 말을 왜 직접 하지 않고, 친구를 통해 전한단 말인가. 혹시 납치라도 하고 난 다음 친구를 가장해서 내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게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드는 순간, 의심이 폭발했다. '소현이한테 무슨 일 있나요? 왜 그런 말을 제게 직접 하지 않고 친구분을 통해서 하는 거죠?' 나도 모르게 말투가 뾰족해졌다. '내일 만나요. 소현이와 주고받은 문자 모두 보여 드릴게요. 그럼 믿으시겠죠?' 고민이 됐다. 이 사람의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더 늦기 전에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것인지. 그래도 일단은 믿어 보기로 했다. 돈을 갖다 달라는 납치범은 들어 봤어도 직접 만나자는 납치범은 들어 본 적이 없으므로.
    아내가 다니는 교회 근처 카페에서 아내의 친구라는 이와 만났다. 나는 그녀가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검정색 투피스에 역시 검정색 모자를 쓰고 있어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 뭐랄까 기차 여행을 하는 러시아 귀족 여인 같은 분위기였다. 살면서 러시아 귀족을 본 적도 기차여행을 한 적도 없지만,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아내 친구는 나를 한 번에 알아봤는지 내게 다가오면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았다.
    "소현이 남편분이시죠?"
    "네. 박정문입니다."
    "성함도 알아요. 소현이에게서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아내 친구는 맞은편에 앉으면서 말했다.
    "저,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그냥 메텔이라고 불러 주세요."
    "네?"
    "성경 공부할 때 쓰던 아이디예요. 제가 〈은하철도999〉를 좋아하거든요."
    그때서야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메텔 코스프레 비슷한 걸 한 거였다. 마흔 중반에 이러고 돌아다니는 여자와 친구라니. 대체 아내는 또 어떤 복장을 하고 성경 공부를 했던 걸까. 어쩌면 광고회사 임원 코스프레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은하철도999〉를 좋아하는 메텔을 만나다니. 문득 내가 철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메텔은 내 눈앞에서 자신의 핸드폰 잠금을 푼 다음, 메신저 앱 창을 열어 그동안 아내와 나눴던 대화를 보여주었다. 정말 아내는, 메텔이 어제 말했던 것처럼, 자신이 잘 지낸다는 말을 꼭 내게 전해 달라고 했고, 이어 세속의 삶에서 떨어져 있을 생각이니 당분간 연락하기 어려울 거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었다. 그 메시지를 읽는 순간 누군가 손으로 움켜쥔 것처럼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기분을 가라앉힌 다음, 메텔에게 세속을 떠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물었다.
    "신앙 안에서 살겠다는 뜻이죠."
    "그럼 집에는 안 돌아오겠다는 뜻입니까?"
    "글쎄요. 적어도 한동안은 하늘 공동체 안에 있게 되겠죠."
    "하늘 공동체라니요?"
    "공동생활하면서 성경 공부도 하고 전도도 하는 곳이에요."
    "거기가 어딥니까?"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는 없어요."
    "그럼 소현이는 어떻게 만날 수 있죠?"
    "하늘 공동체에 가면 만날 수 있어요."
    "아까는 알려줄 수 없다면서요?"
    "하늘 공동체로 가려면 세속의 길로는 갈 수 없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가는 길은 알려줄 수 있어요."
    메텔은 지나치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깨달았다. 아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가 평범한 곳이 아니었음을. 나도 모르게 신경이 곤두섰다. 나는 팔짱을 끼고 몸을 뒤로 젖혔다. 하지만 메텔은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가방에서 종이 한 묶음을 꺼냈다.
    "세속의 눈으로 보면 우린 이단이라고들 하지만, 우리 이단 아니에요."
    당연하지. 이단이 스스로를 이단이라고 하는 데는 없다.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해답을 알려주는 곳이랍니다."
    "무슨 해답요?"
    "삶을 살다 보면 문득문득 다가오는 질문들."
    메텔은 종이 묶음을 내게 건네주었다. 받아 보니, 성격 유형을 알아보는 검사라는데,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묻는 질문이 잔뜩 있었다. 이를테면, 나는 어떤 일의 미비한 점을 잘 찾아내는 편이라거나, 나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편이라는 질문 같은 것들. 아내가 세속을 떠났다는데, 성격 유형 검사라니. 나는 종이 묶음을 들고 메텔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재미로 한번 해보세요."
    "제가 지금 재미로 뭔가를 할 상황이 아닌데요?"
    "소현이 만나셔야죠."
    "성격 유형 검사하면 만날 수 있나요?"
    "글쎄요. 그건 장담하기 어려워요. 소현이를 만나기 위해서는 긴 여정을 함께해야 한답니다. 이건 겨우 첫 단계에 불과해요."
    이단치고는 깐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은하철도 티켓을 끊는 철이의 심정으로 성격 유형 검사를 시작했다. 뜻밖에 설문은 재미있었고, 심지어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그려 보라는 질문에는 평소 꿈꿔 왔던 집을 그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까지 했다. 검사를 시작한 지 30분쯤 후에야 나는 검사지를 건넬 수 있었다. 메텔은 결과가 나오는 대로 연락을 주겠다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고, 계산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나보다 먼저 카페를 나섰다.    〈은하철도999〉에서는 메텔이 철이를 공짜로 기차에 태워 줬는데, 현실의 메텔은 그 정도로 여유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커피 값은 내가 냈다. 그래도 심리검사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싼 편이었다.
    사흘 후에 메텔에게서 연락이 왔다. 연락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단이라면 모름지기 살가울 거라고 짐작했다. 솔직히 연락을 기다리기도 했다. 내 성격 유형이 궁금했고, 아내 소식을 알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텅 빈 집에서 버티는 시간이 외로웠다. 메텔이 만나자고 한 곳은, 처음 만났던 카페 근처 상가 건물 3층에 있는 사무실이었는데, 입구에는 마음치유상담소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다. 그간 하늘 공동체라는 곳에 대한 조사를 단단히 해둔 터라 이런 데서 전도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물론 나는 여기서 하는 얘기는 아무것도 새겨듣지 않을 작정이었다.
    마음치유상담소로 들어가자 내부는 다시 번호가 붙어 있는 작은 상담실로 나뉘어져 있었다.
    "꼭 노래방 같네요."
    "아직 노래방으로 등록돼 있어요."
    메텔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럼 불법 아닌가요?"
    "우리는 세속의 법을 따르지 않아요. 3번방으로 가죠."
    메텔은 앞장섰다. 나는 여차하면 여기를 불법 시설물로 신고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3번방에는 자신을 상담사라고 지칭하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나이는 50대 정도였고, 단정한 양복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 꽤나 지적으로 보였다. 얼핏 대학 교수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메텔의 소개로 남자에게 인사를 하고, 그 맞은편에 앉았다. 메텔은 나를 감시라도 하겠다는 듯 나와 남자가 앉은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상담은 뜻밖에 매우 흥미로웠다. 나는 '충실한 사람 유형'인데, 이런 성격은 지역 사회나 가족을 보호하려는 경향이 강한 편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고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내를 찾아 보호하겠다고 이단 교회의 불법 사무실에서 성격 유형 상담 받는 걸 마다하지 않고 있으며, 그녀가 영영 내 곁을 떠날까 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것도 새겨듣지 않으려고 했는데, 굳이 또 새겨듣지 않을 이유도 없는 말이었다.
    상담사는 최근 들어 내가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성격 유형 검사 결과 때문에 마음이 조금 열린 탓인지, 아니면 그동안의 외로움 탓인지 나는 나도 모르게 그동안 내가 가져왔던 불안들을 상담사에게 털어놓았다. 아내의 가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실직, 아직 갚지 못한 아파트 대출, 아이와 아내가 없을 때 닥칠 고독사, 이런 종류의 죽음과 관련하여 최근 들어 부쩍 높아진 혈압, 역시 부쩍 늘어난 뱃살, 인스턴트와 조미료로 가득 찬 식단, 운동 안 하고 채소 안 먹으면 곧 죽을 거라고 경고하는 의료 채널, 각종 질병과 사고를 대비하지 않고 살아가는 무심한 나를 질책하는 보험 광고 등등. 상담사는 얼추 1시간 동안 나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약간 감동했다. 살면서 내 말을 이렇게 경청해 준 사람이 있었던가. 부모님이나 아내나 내가 가장 사랑스러울 때는 조용히 잠자고 있을 때라고 했다. 부하직원들과 회식할 때면, 아무리 입을 닫고 조용히 있어도, 같이 2차 가자고 말해 주는 이 하나 없었다. 상담사에게 나의 불안을 쏟아내는 동안, 새삼 내가 고독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바로 그 타이밍에 상담사는 내 손을 살그머니 잡아 주었다.
    "불안은 사실 선생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게 아닙니다. 세상의 삿된 속삭임이 불안하게 하는 거예요."
    왜 그랬을까. 나는 그 말 한 마디에 울컥했다. 돌이켜보면, 내 성격 유형 검사와 전혀 맞지 않는 소리였는데, 그 순간에 나는 내가 성격 유형 상담을 받고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직 불안에 떨고 있는 자그마한 자아를 가진 내가 3번 노래방 테이블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불안이 내 탓이 아니라니. 나를 잡아 준 상담사의 손길이 따뜻했다.
    자주 상담사와 만났다. 나도 안다. 그렇게 이단에 빠져든다는 것을. 하지만 돈을 내지 않고도 내 말을 1시간씩이나 들어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그 넓은 이해심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 게다가 상담사는 삿된 속삭임의 근원을 하나씩 알려주기까지 했다. 첫 번째는 은행이었다. 은행은 내게 끊임없이 빚을 강요한다. 학자금을 빌리기 위해, 집을 사기 위해, 차를 사기 위해 인생의 고비마다 대출의 덫을 깔아 놓고 기다린다. 영원히 갚지 못할 것 같은 빚은 나를 불안하게 한다. 두 번째는 병원이었다. 병원은 건강이라는 미명하에 혈압, 허리둘레, 몸무게, 간 지수, 당 수치 등등 내 몸의 모든 것을 간섭하고, 조금이라도 정상에서 벗어나면 금방 죽을 것처럼 떠들어댄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만큼 불안한 건 없다. 덧붙여 각종 의료보험은 여기에 기생해서 나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세 번째는 인터넷과 텔레비전이었다. 이런 종류의 매체들은 안 쓰면 나만 뒤처질 것 같은 스마트폰, 안 살면 나만 가난할 것 같은 아파트, 안 입으면 나만 촌스러울 것 같은 옷, 안 사면 나만 내리기 부끄러울 것 같은 차 따위를 끊임없이 제시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선망이 아니라 표준이 되고, 이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삶은 뒤처진 삶이 될 거라는 생각에 불안해진다. 그래서 상담사는 힘주어 말했다.
    "지금 당장 은행, 병원, 인터넷과 텔레비전을 끊으세요. 세상의 삿된 속삭임이 줄어드는 만큼 불안도 줄어듭니다. 그리고 이 불안함에서 구원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세요. 그럼 궁극적으로 실직과 죽음에 대한 불안도 사라질 겁니다."
    "저를 불안에서 건져 줄 구원은 어디에 있나요?"
    상담사는 말없이 '계시록 해설 센터'라는 곳의 전단지를 내밀었다. 받아 보니 '실직과 죽음의 불안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말씀이 있는 곳'이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씌어 있었다.
    메텔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계시록 해설 센터는 정면에 커다란 화이트보드가 있었고, 책상과 걸상이 촘촘하게 놓여 있는 곳이었다. 대학 강의실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강사가 성경에 나오는 각종 예언과 계시들을 해석하면 수강생들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것처럼 받아 적기 바빴다. 물론 나도 받아 적었다. 대체로 나는 어디에 가든 튀는 편은 아니다.
    강의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성경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는 강사의 말을 스펀지처럼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지금이 세 번째 메시아의 시대이며, 그 메시아는 하늘 공동체를 이끄는 회장이라는 것, 회장의 말씀을 믿고 그가 작성하고 있는 14만 4천 명의 명단에 들게 되면 살아서 천국에 간다는 것, 천국에 가면 나를 괴롭히는 불안에서 벗어나 행복한 영생을 하게 된다는 것 등의 교리도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설득당하고 싶었다.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복잡하지만, 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은 단순했다. 회장이 작성하고 있다는 명단에만 들면 된다. 그리고 그 명단에 들기 위해서는 회장의 말만 따르고, 열심히 전도하고, 헌금을 내면 된다. 전도하는 것은 매뉴얼이 정해져 있었고, 헌금은 액수가 정해져 있었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교리를 굳게 믿기만 한다면, 나의 불안은 단 하나만 남게 된다. 회장의 명단에 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열심히만 한다면, 14만 4천 등 안에 못 들어갈 것도 없어 보였다. 적어도 로또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는 한참 높지 않은가. 정해 준 대로만 살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 단순한 세계가 나는 꽤 마음에 들었다. 뭐랄까, 엄마가 정해 준 대로만 살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나는 메텔을 돌아보았다. 메텔은 여자가 아니라고 하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단순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통과해야 할 관문들이 만만치 않았다. 우선 교리 시험을 봐야 했다. 신도가 되면 열심히 전도해야 하는데, 전도를 하려면 교리에 통달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형식적인 시험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합격률이 그리 높지 않았다. 나와 함께 강의를 들었던 40명 중 10등 안에 들어야 했다. 천국에 가기 위한 첫 번째 경쟁이었다. 학창 시절 이후 오랜 동안 잊고 살았던 시험에 대한 불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메텔에게 만약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메텔은 나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왜 벌써 떨어질 걱정을 하세요. 당연히 붙어야죠."
    "그래도……."
    "겨우 이 정도도 못 이겨내면서 천국에 갈 수 있겠어요? 이 시험이 전부가 아니에요. 신도가 되면 회장님이 매해 정해 주시는 숫자만큼 전도를 해야 하고, 그 수를 채워야만 비로소 14만 4천 명의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시험을 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고요. 천국의 문은 그리 쉽게 열리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말이에요. 이 모든 경쟁에서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만 해요."
    메텔의 말이 맞다. 그렇게 좋은 천국이라면 쉽게 들어가서는 안 된다. 다만 천국 자격시험이 또 있을 줄은 몰랐다. 하늘 공동체라는 곳은 이단치고는 꽤 엄격하고 공정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열심히 공부했다. 수능시험 이후로 이렇게 공부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회사 일도, 집안일도 내팽개치다시피 하고 교리를 외우는 데만 몰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리 공부를 해도 구원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았다. 교리가 황당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머리는 교리를 믿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센터에 있는 동안 교리에 대한 단단한 믿음을 가지고 수료하는 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나는 고민 끝에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메텔에게 고백해 보기도 했다. 메텔은 아내를 만나려면 하늘 공동체의 신도가 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자 시험에 대한 불안에 더해 아내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추가되었다.&    입교 시험을 치른 후 불합격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던 즈음, 친구의 49재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하늘 공동체의 회장은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모든 종교는 사탄이자 마귀라고 했지만, 믿음이 없어서 그런지 절이라는 사탄과 마귀의 소굴에 들어가는 것이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친구의 49재가 열리는 절은 서울 근교의 산 중턱에 있었는데, 사탄과 마귀의 소굴치고는 너무나 적막하고 평화로웠다. 심지어 산새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풍경소리가 어우러진 이곳이 혹시 천국이 아닐까 싶었다. 이런 마음을 메텔이 알게 된다면, 나는 몇 시간이고 등짝을 맞으면서 사탄과 마귀를 몰아내는 기도를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스님이 법문을 외는 동안 친구의 영정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급작스럽게 죽었기 때문에 영정 사진을 찍을 틈이 없었다. 저 사진은 친구가 임원으로 승진하는 게 확정되었을 때, 내가 핸드폰으로 찍어 준 것이었다. 그래서 사진 속 친구는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때 친구는 천국에 오른 기분이라고 말했었다. 문득 나는 왜 내게 구원의 믿음이 생기지 않는지를 깨달았다. 친구는 천국에 올랐지만 구원받지 못했다. 첫 번째 단계의 천국은 더 높은 단계의 천국으로 가기 위해 더 치열하게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러주었을 뿐이다. 열심히 일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단순한 교리는 회사에도 있었고, 나는 친구를 통해 그 천국의 배반을 목격했던 것이다. 뭔가를 열심히 해야만 갈 수 있는 천국은 희망 고문의 다른 말일 수도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든 아내를 만나서 이 말을 꼭 전해 줘야겠다고.
    입교 시험은 합격했다. 수료식을 하던 날, 메텔은 눈물을 글썽이며 기뻐해 주었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앞으로도 모든 시험에서 승리하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었다. 이제 메텔의 안내는 끝났다. 나는 기계들이 영생한다는 행성에 도착했고, 메텔은 또 다른 철이를 찾아서 떠나갔다. 그런 그녀에게 뭔가를 열심히 해야만 갈 수 있는 천국은 희망고문일 뿐이라는 말은 차마 해주지 못했다. 가만 보면 메텔은 메텔 코스프레가 제법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그런 그녀가 나 때문에 은하철도를 타지 못한다는 상상은 할 수 없었다. 나는 속으로 은하계 어디쯤엔가 메텔의 천국이 존재하기를 기도했다.
    시험에 합격한 다음날, 아내가 집으로 돌아왔다. 오다가 마트에라도 들른 듯 찬거리가 한 손 가득 들려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모습에 나는 멍하니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내는 찬거리를 바닥에 내려놓고 말했다.
    "뭐 해? 이것 식탁에 갖다 줘. 무거워 죽겠어."
    말투로 봐서는 조금 전에 장을 보고 돌아온 사람 같았다. 그 무심함이 야속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아내는 내게 다가와 가만히 안아 주었다. 그 순간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던 뭔가가 사르르 녹아버렸다.
    아내가 해준 밥을 먹고, 오랜만에 한 침대에 누웠다. 나는 아내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분위기를 잡았다. 아내는 고른 숨만 내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가슴께에 살며시 손을 갖다 댔다. 그러자 아내는 매섭게 내 손을 쳐냈다.
    "왜 그래?"
    나는 볼멘소리로 물었다. 아내는 반대로 돌아누웠다.
    "천국에 들기 전까지 정결하라고 했어."
    "우리는 부부야."
    "알아. 내가 돌아온 건, 당신도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야. 지킬 건 지키고 살자."
    아내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 쓰면서 졸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자. 내일 아침부터 전도 모임 있어."
    돌아누운 아내가 서운했다. 부부관계 없는 천국이라니. 아내는 그걸 진짜 천국이라고 믿는 걸까. 나는 아내를 깨워서 따져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내가 돌아온 첫날이니까 오늘만은 싸우고 싶지 않았다.
    이튿날 나는 아내와 함께 전도 모임에 나갔다. 모임 장소는 매우 눈에 익었다. 바로 메텔과 함께 처음 성격 유형 상담을 받았던 마음치유상담소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노래방으로 등록되어 있다던 그곳. 모임에는 일곱 명 정도 참가했는데, 그중 한 명은 내게 심리 상담을 해준 남자였다. 그는 나를 보자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나도 웃으며 그 손을 잡아 흔들긴 했지만 예전처럼 신뢰감이 생기지는 않았다. 내가 입교한 이상 그는 더 이상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지 않을 테니까. 우리는 상담실 중에서 가장 큰 곳에 둘러앉았다. 아마도 노래방 시절 단체실이었을 터였다. 싸구려 소파에 앉자마자 회식으로 2차를 온 것 같은 익숙한 착좌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남자의 주도하에 간단하게 기도를 한 후 그의 기나긴 설교를 들어야 했다. 대체로 내가 성경 공부 센터에서 들었던 내용을 반복하는 것이었는데, 아내를 비롯한 다른 이들은 열정적으로 아멘을 반복했다. 믿음이 깨알만큼도 생기지 못한 나로서는 진실로 지루했다. 남자는 입 꼬리에 허연 침이 마르도록 열정적인 설교를 한 후에 탈진하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 어떻게 내 이야기를 오랜 시간 들어주었을까 싶었다. 말로만 듣던 믿음의 힘이었겠지.
    남자는 테이블 아래에서 종이 박스를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2인 1조로 구성된 한 팀당 종이 한 묶음씩을 나눠주었다. 내가 예전에 받았던 성격 유형 검사지였다. 아내는 경건한 표정으로 검사지를 받아들었다. 어느새 아내도 메텔이 되어 있었다. 물론 나는 메텔의 기계행성을 의심하는 삐딱한 철이가 됐지만.
    전도는 거절의 연속이었다. 아내는 젊은이들이 가득한 홍대 근처의 한 공원에서 쉴 새 없이 성격 유형 검사를 권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내를 외면했고, 누군가는 험악한 눈초리로 아내를 쏘아보기도 했다. 그래도 아내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성격 유형 검사지를 내밀곤 했다. 나는 아내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솔직히 부끄러웠다. 거절당하는 것도 부끄러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한 아내도 부끄러웠으며, 구원 따위 믿지 않는데도 누군가를 구원하겠답시고 서성거리고 있는 내 자신도 부끄러웠다.
    공원에 밤이 찾아오고, 더 이상 검사지 문항의 글씨가 보이지 않을 때쯤에서야 전도는 끝이 났다. 설문지를 받은 사람은 세 명쯤이었고, 그나마 자신의 연락처를 아내에게 준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열정에 비해 그리 실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어쩐지 아내가 임원이 되지 못한 이유를 찾은 것 같아서 씁쓸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과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웠다. 아내는 앞으로 식비도 아껴서 헌금에 보탤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는 게 어쩐지 서글펐다.
    "우리도 이제 건강 생각해야 할 나이야. 그래도 주말인데 딴 데 가서 좋은 거 먹자."
    "천국이 코앞이야. 이런 거 먹더라도 조금만 버텨. 거기만 가면 안 죽어."   
    아내의 말투는 단호했다. 나는 너무 데워서 물컹해져 버린 삼각 김밥을 씹으면서 생각했다. 결판을 내야 하는 날이 있다면 바로 오늘이라고. 그렇지 않으면 매일 기약 없는 천국을 기다리며 삼각 김밥에 컵라면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편의점을 나서면서 와인 한 병을 샀다. 아내는 미쳤냐고 펄쩍 뛰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무겁게 깔고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아내도 뭔가 낌새를 눈치 챘는지 잠잠해졌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와 아내는 식탁에 마주 앉았다. 어색함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나는 뚜껑을 따두었던 와인을 아내에게 따라 주었다. 그리고 내 잔에도 와인을 가득 채운 다음 잔을 들었다.
    "마셔. 성경 보니까 포도주는 예수님도 마시더라."
    그때서야 아내도 잔을 들어 건배를 했다. 나는 따라 놓은 와인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자 열기가 식도를 타고 얼굴로 올라왔다. 곧이어 어떤 말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그만 하자. 거기에는 구원이 없어."
    "무슨 소리야? 미쳤어?"
    아내는 표독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았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나는 그동안 느꼈던 것을 모두 털어놓았다. 친구의 천국과 비슷한 하늘 공동체의 천국에 대해서, 그리고 뭔가를 열심히 갈 수 있는 천국이란 희망고문의 다른 말에 불과하다는 나의 생각에 대해서. 〈은하철도999〉 이야기를 할 때만큼이나 진지하게 열변을 토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내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잘랐다. 역시나 이 세상에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은 없다. 아내는 팔짱을 끼고 비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당신은 내가 회사를 관두고 왜 방황했는지 모르지?"
    아내는 와인을 쭉 들이켰다. 나는 아내의 와인 잔을 채워 주었다.
    "알아. 승진 못 한 이유를 찾았던 거잖아."
    "그것 봐. 아무것도 모르네. 아니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지. 내가 방황했던 건 불안해서야. 회사를 나온 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거든.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게 불안했어."
    "그럼 지금은 불안하지 않아?"
    "안 불안해."
    "거짓말하지 마. 불안하지 않은데 왜 그렇게 열심히 전도하는데? 14만 4천 명 안에 못 드는 거 불안해서 그런 거잖아."
    아내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의 마음이 조금 흔들렸나 보다 생각했다.
    "시험 보고, 실적 올리고, 승진 명단에 들고 하는 거, 회사 다닐 때 많이 했잖아. 지겹지도 않아?"
    "아니. 솔직히 그때는 지겹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아. 오히려 익숙해서 좋아. 내가 평생 살아온 방식으로 천국에 가니까. 그리고 실적하고 시험은 공평한 거니까."
    "실적과 시험으로 가는 천국은 없다니까. 가봐야 또 다른 실적과 시험이 있을 뿐이라고."
    "천국은 있어! 없는 건 당신 믿음이지."
    아내의 얼굴은 결의에 차 있었다. 한두 잔의 와인으로 풀어질 표정이 아니었다.
    "메텔은 대체 일을 어떻게 한 거야? 정보를 다 줬는데도 전도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어쩐지 아내의 말투는 일을 못 하는 직원을 타박하는 국장 같았다.
    "혹시 당신이 메텔 보낸 거야?"
    "당연하지. 그럼 당신이 〈은하철도999〉 덕후인 걸 누가 알려줬겠어?"
    나는 멍해졌다. 이로써 구원에 대한 믿음은 물론 아내에 대한 믿음도 휘발돼 버린 것 같았다. 아내는 와인을 들이켠 후에 안방으로 들어간 다음 문을 잠갔다. 나는 문을 두드리며, 제발 열어 보라고, 이야기 좀 더 해보자고 애원했지만 끝끝내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내는 새벽에 다시 집을 나갔다. 내가 남은 와인을 모두 마셔버리고 곯아떨어져 있을 때였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이혼 서류가 날아왔다. 이혼 사유는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배우자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유리한 이혼 소송이었다. 먼저 집을 나간 건 아내였으니까. 덕분에 이혼은 쉽게 성립되었다. 나만 조금 양보하면 그만이었다.
    이혼 후, 유예되었던 모든 불안이 한꺼번에 현실화 되었다. 우선 직장에서 퇴직 권고를 받았다. 팀장이 되었을 때, 여기까지가 끝일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 데다 최근에는 교리 시험에 통과하겠답시고 회사 일을 등한히 했으니, 나 스스로 그 막연했던 생각을 앞당겨 현실화해 버린 셈이었다. 다음으로 재산 분할이 진행됐다. 아파트를 팔아서 대출 빚을 갚고, 남은 돈을 아내와 나눴다. 병원에서는 고혈압 진단을 받았고, 평생 먹어야 한다는 혈압 약을 먹기 시작했다. 약국에서 한 달 치 혈압 약을 받고서야 비로소 내가 중년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본의 아니게 나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했다. 우선 아파트를 팔고 남은 돈으로 서울 외곽의 낡고 좁은 소형 아파트를 샀다. 퇴직금은 적금으로 돌려놓고 새로운 일자리를 구했다. 소심한 성격 탓에 남들처럼 번듯하게 가게를 열지는 못했다. 교회만큼이나 치킨 가게가 많은 세상이었다.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다.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 택배 자리가 났다. 평생 책상 맡에 앉아 있던 나로서는 힘쓰는 일을 하며 지내는 하루하루가 미치도록 고단했다. 그렇지만 이 일을 놓을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살아야만 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럭저럭 견딜 만해졌다. 힘들게 일을 하다 보니 몸에 근육이 생겼고, 덩달아 혈압도 조금 내려갔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돌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터넷과 텔레비전도 멀리하게 되었다. 때문에 세상의 삿된 속삭임이 조금은 덜 들리게 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비교할 만한 삶이 줄어들고 보니 미래에 대해 계획을 세워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성경에 나오는 주기도문대로 오늘 일용할 양식을 먹으며 시험에 빠지는 일 없이 일상을 보내면 그만이었다.
    아내와 이혼한 지 3년쯤 지났을 때였다. 그사이 하늘 공동체의 교세가 많이 확장된 건지 내가 택배를 도는 지역에서도 성격 유형 검사지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나는 혹시 아내를 볼 수 있을까, 그들을 유심히 지켜보곤 했다. 하늘 공동체의 신도들은 언제나 열정적이고 부지런했다. 천국의 명단에 들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 저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문득 내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상했다. 갈 수 있는 천국이 없고 현실은 고단하기만 한데 왜 불안하지 않을까. 그건 아마도 내가 한 번 추락해 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막상 땅에 발을 디뎌 보니, 불안해했던 것만큼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나는 천국에 가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지옥에 가기 싫었던 거였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밑으로 내려가면 그게 바로 지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 내가 예상했던 지옥은 또 다른 삶의 방식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삶은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밑으로 내려간 게 아니라 살짝 옆으로 비켜선 것이었다.
    이 무슨 교리 같은 깨달음이 찾아왔을 때, 나는 다시 아내를 만나 보기로 했다. 그러나 아내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번에는 메텔과 같은 가이드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하늘 공동체 탈퇴자 모임 같은 데를 찾아다니면서 아내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반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마침내 아내가 속한 하늘 공동체의 교회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일요일에 트럭을 몰고 아내를 찾아갔다. 하늘 공동체는 예배를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곳이라 아내가 반드시 교회에 나타날 거라고 짐작했다.
    가는 동안 오랜만에 보는 아내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수도 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정작 교회 근처에 다다르자 이렇게 고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일단 부딪혀 볼 일이었다. 나는 트럭을 골목길에 주차해 놓고 교회 앞으로 갔다. 그러나 교회에 들어가는 일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교회 입구에는 10여 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지키고 서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하늘 공동체에 가족을 잃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나는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아내를 보기 위해 목을 길게 빼고 쭈뼛쭈뼛 주변을 맴도는 사이, 예배시간이 됐는지 하늘 공동체의 신도들이 시위대를 피해 급하게 교회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찾던 가족의 모습을 본 시위대들은 피켓을 들고 입구 쪽으로 몰려들었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청년들은 욕을 내뱉으며 험악한 표정으로 시위대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가족을 찾아 헤맨 사람들이었다. 청년들이 위협적인 행동을 한다고 해서 물러날 리 없었다. 순식간에 몸싸움이 일어나면서 시위대와 청년들이 뒤섞였다. 덕분에 시야가 가려버린 나는 좀 더 교회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그때였다. 옆모습이 눈에 익은 여자가 교회로 급히 달려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3년 전보다 좀 더 야윈 듯했지만 분명히 아내였다. 나는 소현아, 이름을 부르며 그녀 쪽으로 걸어갔다. 아내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이내 청년들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솔직히 저 청년들의 완력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아내를 알아봤듯이 아내도 나를 알아봤을 것이다. 오늘이 지나면 아내는 또 어디로 사라질지 모른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청년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 순간, 누군가의 주먹이 나의 귓전을 강타했다. 별들이 눈앞에 번쩍 하더니 고통이 밀려왔다. 나는 얼굴을 싸안고 주저앉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죽을 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문득, 눈앞을 떠돌던 별들 사이, 은하로 가는 철도가 놓여 있었다.

 

 

 

 

 

 

 

 

 

 

 

 

 

 

 

 

 

배상민

작가소개 / 배상민

2009년 계간 자음과모음 중단편 부문 신인상 「조공원정대」 외 2편. 2012년 장편소설 『콩고, 콩고』, 2013년 소설집 『조공원정대』, 2015년 장편소설 『페이크픽션』.

 

   《문장웹진 202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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