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등

[단편소설]

 

 

소등

 

 

박규민

 

 

 

    언젠가 해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자신이 지을 줄 아는 표정이 열 개라면, 그중 가족에게 보여줄 수 있는 건 서너 개뿐일 거라고. 어쩌면 인간관계란 다 마찬가지인지 몰랐다. 친구끼리는 부담스러우면 안 되고, 연애 상대에게는 추잡한 면을 감춰야 하며, 가족이랑 잘 지내려면 섭섭한 마음을 적당히 삼켜버려야 한다. 알고 지내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피곤한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열쇠 꾸러미를 쥔 것처럼 상대에게 맞는 표정을 매번 찾아야 하니까. 그래서 해수는 늦은 오후에 귀가했을 때 그 침묵이 싫지 않았다. 소란스러운 학교와 다르게 집은 언제나 고요했다. 아빠는 몇 달씩 집을 비웠고 누나도 일 시작한 뒤로 얼굴 보기 어려워졌으나, 무표정하게 혼자 보내는 밤은 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와도 눈 맞추지 않을 때조차 표정을 짓기 마련이었다. 집에 불청객이 찾아온 날, 해수는 그걸 몰랐던 탓에 섣불리 감정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좀 엉뚱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친구에게 보여줄 표정과 애인에게 보여줄 표정, 가족에게 보여줄 표정이 따로 있다면,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표정은 어디로 가는 걸까? 무방비한 채로 짓는 것이기에 자신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표정. 그건 결국 감정이 되어서 마음에 쌓여 있다가 언젠가 터져 나오는지도 모른다. 해수와 해미는 불청객과 함께 있는 동안 서로 많은 표정을 보여줬지만, 그중 대부분은 가족에게 보이면 안 되는 거였음을 곧 알게 될 터였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부끄러운 충동을 숨겨야 하는 법이니까.

 

*

 

    "너무 감상적이야."
    그날 밤, 해미는 해수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인지 각자 생각을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해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에 놓인 물잔을 들어 몇 모금 들이켰다. 누나와 대화하다 보면 스키장을 역으로 기어 올라가는 기분이 들곤 했다. 기를 쓰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다가도 삐끗하면 원점으로 미끄러지는 것이다. 애초에 안 하는 게 낫다는 점에서도 비슷했는데, 그럼에도 늘 먼저 말을 붙이는 자신도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감성적인 거지. 감상이랑 감성은 달라."
    "그거나 그거나."
    해미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숨 쉬었다. 두 사람은 밤중에 거실로 나와 마주 앉아 있었다. 원형 테이블에는 담뱃갑과 더불어 물이 담긴 유리잔이 두 개 놓여 있었고, 언제 올려놓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해수의 책 한 권도 장식품처럼 자리를 차지했다. 거실에는 창문이 없었으나 빗소리는 어딘가의 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모든 것이 정상 궤도에서 벗어난 듯했다. 한겨울에 비가 내리는 건 그렇다 쳐도, 두 사람이 자정이 넘은 때에 거실에서 이야기 나누는 건 낯설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들은 각자 방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을 터였다. 어쩌다 말할 일이 생겨도 메신저로 한두 마디 보내는 게 고작이었다. 뭐 해, 배 안 고프냐, 냉장고에 먹을 거 있냐……. 특히 요 며칠은 누나가 밤중에 밖에 나가 있기 일쑤였는데, 아빠가 출장 떠나 있는 동안에는 늘 펼쳐지는 일상이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누나가 어떻게 생각하든 해수는 자기 판단이 옳다고 믿었다. 굳이 설득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어쨌든 이 모든 건 아빠가 시작한 일인데, 아빠에 관해서는 방을 같이 쓰는 자신이 더 잘 알 테니까. 그들이 사는 집은 좁은 평수에 투룸을 구현하고자 방 외의 모든 공간을 비좁게 만든 꼴이었다. 현관문 열고 들어오면 정면에 방문이 두 개 보였고, 오른쪽에는 싱크대와 가스레인지와 냉장고와 선반이 마치 어깨를 잔뜩 구기고 몸을 맞댄 것 같은 꼴로 자리해 있었다. 화장실이 취사 공간과 너무 딱 붙어 있는 것도 문제였지만, 화장실 문이 한 번도 닦지 않은 듯 꾀죄죄한 거야말로 집 분위기를 어둡게 하는 데 큰 몫을 했다. 두 개밖에 없는 주제에 방은 또 좁은 게 있고 넓은 게 있는데, 좁은 방을 해미가 혼자 쓰고 넓은 방을 아빠와 해수가 쓰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온갖 귀찮은 일의 시작이었다.
    아빠는 건물에 전기 배선하는 일을 했고, 자기 일에 대단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걸 아들이 모르기라도 할까 걱정되었는지 한쪽 벽에 건물 사진들을 붙여 놓고 밤마다 전기에 관해 설명하기까지 했다. 전기가 어떻게 전봇대나 지하에서 사람 사는 집으로 들어오는지, 그래서 어떤 원리로 집을 짓고 난방을 하고 전등에 불을 켤 수 있는 것인지……. 희한하게 아빠는 늘 이불을 펴고 누우려는 찰나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해수는 남의 집에 불이 들어오건 말건 우리 방 불부터 껐으면 싶었지만, 아빠의 말에는 함부로 끊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거기에는 십대 소년이 동경하기 쉬운 이른바 진짜 인생이 담긴 것 같았으니까. 노련한 숙련공만의 노하우, 그걸 자신이 인정하는 신참에게만 알려주는 현장의 법칙, 재개발 건물의 디테일을 미리 알아내고자 공사장에 숨어드는 투기꾼들. 들을 때는 지겨운 이야기였지만, 막상 아빠가 공사 지역 숙소에 몇 달간 머무는 동안이면 해수는 벽에 붙은 사진들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반면에 해미는 아빠가 집을 비우면 퇴근하고 꼬박꼬박 술 마시고 들어왔다. 술집 중에도 카페처럼 쿠폰에 도장 찍어 주는 곳이 있는 건가? 해수가 그렇게 물으면 해미는 픽 웃으며 담배 물고 제 방으로 들어가는 식이었다. 그러니 해수가 독서실에 있다가 10시쯤 집에 들어왔을 때, 해미가 거실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걸 보고 그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즉각 알 수 있었다. 거실이라야 싱크대와 세탁기, 냉장고가 들어가면 테이블 하나 놓기에도 비좁았으니, 거기에 전등 하나 켜고 앉은 누나의 모습은 은근히 압도적이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누나가 고3이 되는 동생에게 할 말은 공부 잘 되느냐는 격려일 테지만, 그런 건 해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안 맞고 다니는 법을 가르쳐준다면 모를까. 혹은 본인 체험을 바탕으로 청소년 흡연의 유해성을 경고하는 것도 할 만한 이야기 같았다. 그처럼 엉뚱한 상상을 하며 속으로 키득대고 있었으므로, 해미가 불쑥 꺼낸 말은 그에게 더욱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해미는 지금 해수의 방에 낯선 할머니가 잠들어 있으며, 그들이 당분간 데리고 있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빠가 불과 한 시간쯤 전에 그 할머니를 직접 데리고 와서 맡겨 두었다고도 덧붙였다. 할머니? 친가 쪽? 해수는 머릿속으로 아득한 가계도를 그리며 미간을 찌푸렸지만, 해미는 그 할머니가 그들과 핏줄로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소처럼 낮은, 하지만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해미는 아빠가 문 두들기던 순간에 대해 설명했다. 정확히는 두들긴 게 아니라 발로 쿵쿵 찬 것으로 해미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경계심이 일었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해수는 소리만 듣고 발차기와 주먹질을 구분할 줄 아는 게 웃길 뿐이었으나, 그다음에 해미가 들려준 이야기는 해수의 얼굴에서 웃음을 싹 말려버렸다. 현관문을 열어 보니 아빠가 기절한 할머니를 안은 채 서 있더라는 거였다.
    아빠의 모습은 여러모로 낯설었다고 했다. 조그만 할머니를 쌀 포대처럼 품에 안은 건 둘째치더라도 아빠 얼굴이 그토록 하얗게 질린 건 처음 보는 거였다. 한겨울인데도 머리칼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서 건드리면 와르르 쏟아질 것 같았고, 그 와중에도 눈동자만은 맑게 빛나는 게 오히려 기묘했다. 해미는 일단 현관에서 자리를 비켜 주었다. 아빠는 안으로 들어와 할머니를 해수의 방에 눕힌 뒤 ― 이 대목에서 해수는 굳게 닫힌 방문을 한 번 쳐다보았다 ― 해미와 거실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그때 해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서대로 온갖 질문을 아빠에게 퍼부었다. 일은 어쩌고 이 시간에 여기 와 있냐, 저 할머니는 누구냐, 무슨 사고를 친 거냐, 민간인을 감전시키기라도 한 거냐, 병원에는 데리고 간 거냐……. 해미는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극단적인 상황을 상상하게 되었지만, 기대와 달리 아빠는 한 번도 웃음을 터뜨리거나 손을 내젓지 않았고 그저 시선만 내리깐 채 앉아 있었다.
    거기까지 말하고 해미는 벌떡 일어나 해수의 방 쪽으로, 그러니까 본인 말대로라면 할머니가 잠들어 있을 곳 앞으로 가서 문에 귀를 갖다 대었다. 해수는 입을 헤벌리고 앉아 누나의 표정을 바라보기만 했다. 눈까지 가늘게 뜨고 방 안의 소리에 집중하는 꼴을 보니 헛웃음이 날 듯했다. 누나가 겁먹은 걸 보는 게 너무 낯설어서 그럴까? 아빠가 기절한 할머니를 안고 등장했다면 그건 심각한 일이긴 하다만, 도대체 현실 같지가 않았다. 두 사람이 조금만 더 우애 좋은 남매였다면 해수는 이게 다 누나의 장난이라고 확신했을 것 같았다. 해미가 자리로 돌아와 아빠의 말을 요약해 줬을 때도 해수는 멍하니 듣기만 했다. 두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거듭 웅얼거린 걸 제외하면 아빠는 딱 세 마디만 남긴 뒤 돌아갔다고 했다. 저 할머니는 공사판을 배회하던 치매 노인이고, 기절한 게 아니라 차 타고 오던 중에 잠든 것이며, 위험한 일에 휘말린 것 같으니 누구의 눈에도 띄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봤어?"
    "뭐를."
    "할머니. 일어나서 얘기하고 뭐 그러는 거 봤냐고."
    해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딴소리를 했다.
    "경찰한테는 절대 신고하지 말래. 자기가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래."
    "……."
    "……씨발 진짜."
    해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좁은 거실을 서성거렸다. 집의 평수에 따라 스트레스 푸는 방법도 다르겠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보니까 그토록 한가한 상상이나 할 때는 아니었다. 그래도 해수는 아주 심각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할머니를 아직 보지 않아서일지도 몰랐다. 아빠가 할머니를 안고 들어올 때의 그 표정을 보지 못해서일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해수는 아빠가 죄짓고 숨길 사람은 아니라고 믿었다. 그렇다고 또 나서서 남 도와줄 위인은 아닌데……. 그 순간 해수의 눈앞에 아빠가 묘사했던 어느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해미가 담배 피우려는 것인지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해수는 그 등에 대고 할머니가 어디 다치진 않았느냐고 물었다. 해미는 냉랭한 낯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해수는 거실에 혼자 남았다. 냉장고 소음이 혼자 있을 때만 잘 들리는 것처럼, 지금 그들 앞에 얼마나 곤란한 일이 놓여 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물론, 해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알긴 뭘 알아? 방으로 들어가 라이터를 찾으며 해미는 그렇게 생각했다. 동생과 얼굴 마주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지만, 한 번쯤 삐끗했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과는 거리 두는 게 상책이었다. 그런 이들은 자기 생활에 충실할 뿐 주변 사람에게 별 악의가 없기 때문에, 나쁜 마음을 먹으면 먹을수록 이쪽만 비참해지는 법이었다. 5년 전,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할 때도 해미는 동생의 순진무구한 얼굴에 화가 치밀었다. 해미가 곧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으니 학군 좋은 동네로 옮기는 거다, 라는 아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듯했으니까. 거짓말이었다. 중요한 건 해수였을 것이다. 중학생이 되기도 전부터 공부에 소질이 보인 녀석이었고, 그런 아이의 주위에는 그 소질을 알아본 게 자신뿐이라 믿는 어른이 득실거리기 마련이었다. 아들 칭찬을 하도 듣다 보니 아빠는 우량주에 투자한 개미의 심정이 되었겠지. 그리하여 그들은 신발장과 거실과 주방이 하나로 통합된, 아빠가 주장하기로는 아늑한 전세방에서 서울 살이를 시작한 거였다.
    무언가를 미워할 때면 항상 그런 식이었지만, 해미는 서울로 오는 게 그렇게까지 싫진 않았다는 걸 학기가 시작되자 알게 되었다. 새 친구들 사귀기는 걱정했던 만큼 어렵지 않았다. 해수가 재능을 찬탄하는 어른에 둘러싸이듯 해미는 서로 비슷한 부류임을 알아보는 골초들에 둘러싸였으니까. 귀가 시간은 나날이 늦어졌다. 서울은 불빛을 무기로 한 싸움이 밤마다 벌어지는 곳이었고, 친구들과 건물 사이를 누비다 보면 아빠의 거짓말이 명백해지는 것이 통쾌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말썽을 피우고 돌아와도 아빠는 별 꾸중도 하지 않았으므로. 그러나 지금 아빠가 할머니를 안고 돌아오게 되자, 해미는 그 시절에 아빠가 할 말이 별로 없었을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도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해미는 그렇게 뱉어 놓고 평소처럼 버르장머리 운운이 돌아오길 기다렸으나, 아빠는 경험 부족한 비행청소년처럼 초조히 앉아 있기만 했다. 입을 연 것은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다.
    할머니가 처음 나타난 게 언제인진 모르겠지만, 모두의 골칫거리가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고 아빠는 말했다. 해미는 이 이야기를 해수에게 비밀로 부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빠가 일하는 현장이 여러모로 골치 아픈 곳임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오래된 상가단지였는데 상인들을 내보낸 뒤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는다고 했다. 할머니가 찾아다녔다는 찻집도 그 상가 어딘가에 있었을 터였다. 거기 가면 같이 어울리는 할머니들이 있거든. 친구들이……. 할머니는 그 말을 되풀이하며 공사장 주위를 배회했는데, 겉모습만은 말짱했다. 고풍스러운 감색 코트를 입고 백발은 뒤로 묶은 채였다. 어느 흑백 사진관에서 걸어 나온 것 같달까. 처음 보는 사람은 할머니가 찾는 찻집이 정말 어디 있는 줄 알고 주위를 두리번거릴 정도였다. 한번은 경찰이 할머니를 데려가기도 했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이튿날에 조금 늦게 찾아올 뿐이었고, 언제까지 그럴 것 같았다. 밤에 숙소 근처를 걷던 중 정장 입은 남자들이 할머니를 차에 태우려는 걸 봤을 때, 그게 비현실적인 상황으로 느껴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게 왜 주제넘은 짓들을 하는 건지……. 방에 연결된 베란다에서 세 개비를 연달아 피운 뒤, 해미는 혼자 웅얼거리며 실내로 들어왔다. 베란다 문을 닫은 뒤에야 집 안에 소란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얇은 벽 너머로 해수가 누군가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거실로 나가 봤지만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해수의 방문이 닫혀 있었고, 그 너머의 목소리는 딱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뭉개져 들렸다. 상황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이 담배를 피우는 동안 해수는 방으로 들어가 할머니에게 말을 건 것 같았다. 하지만, 뭐 하러? 치매 노인이 잠에서 깨면 골치 아프단 것쯤은 누구나 알 텐데. 해미는 테이블 앞에 앉아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벌어질까 봐 아빠의 이야기 중 대부분을 걸러냈는데, 차라리 말해 주는 편이 나았던 걸까. 어쩌면 해수는 할머니가 정말 존재하긴 하는지 궁금했는지도 몰랐다. 선한 마음에 어디 다치진 않았는지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그렇지만, 만일 그런 거였다면 더더욱 오기가 치미는 것이다. 사실 아빠가 일터로 돌아가자마자 해미는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결론을 내렸다. 경찰에 신고하면 되는 것이다. 치매 노인을 데리고 있으니 와서 해결해 주십시오. 어렵지 않았다. 사실 아빠도 그게 답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거라고 해미는 생각했다. 당황한 나머지 잠시 판단력이 흐려졌을 것이다. 아빠는 몸을 떨며 말했다. 남자들이 할머니를 차에 태우려던 순간에 대해서. 차 문 밖으로 삐져나온 앙상한 팔다리, 그걸 마치 자꾸 벌어지는 종이상자 뚜껑인 양 구겨 넣던 손아귀에 대해서. 백발에 늘 꽂혀 있던 큼지막한 머리핀이 떨어지자 저도 모르게 달려가 주워들었던 일,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자신이 할머니의 보호자라고 말해버린 순간에 대해서……. 할머니는 몸이 떨려서 걷지 못했고, 아빠는 할머니를 안고 자신의 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들의 시선이 목덜미로 느껴졌을 것이다. 아빠는 경찰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래 봐야 할머니는 또 공사장으로 나타나 같은 일을 겪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 사람들이 도대체 뭐 하는 작자들인지는 아빠도 아는 바가 없었다. 자신이 흥분해서 따지는데도 매끈한 낯빛으로 아무 대꾸도 않더라고 했다. 알고 보면 별것 아닌 일 아닐까? 해미는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냈다. 다닐 만한 직장을 잡은 지 이제 겨우 반년이었다. 친구들 중에는 졸업하고도 버릇 못 고친 애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철거 현장에서 이른바 용역을 뛰기도 했다. 적당히만 다치게 하려고 하나 둘 셋, 수를 세며 목을 조른다는 소리를 무용담처럼 떠들던 게 귀에 쟁쟁했다. 그때 기억이 너무 강렬한 탓에 이 상황조차 극단적인 쪽으로만 상상하는 건 아닐까. 그 남자들은 사실 할머니의 집을 찾아 주려다가 웬 이상한 아저씨에게 한 소리 들은, 착한 사람들일지도 몰랐다. 해미는 그렇기를 거의 바라는 심정이었으므로, 마침내 동생이 거실로 나왔을 때 그 표정이 썩 밝은 것이 반갑기까지 했다.
    해수는 해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냉장고를 열고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방문은 다시 닫혀 있었고, 할머니는 나오지 않았다. 묻고 싶은 게 많았으나 해미는 해수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치매 어르신이라고?"
    해미는 그 말에 입술을 달싹였다. 아빠가 그러던데, 같은 말은 어쩐지 하고 싶지 않았다. 해수는 냉장고를 닫고 일어나 이번에는 싱크대 위 선반을 열어 보았다. 언제 어디서 난 건지도 모를 찻잔과 유리잔 따위를 하나하나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달그락거리는 그 소리 사이로 해미는 누군가가 이불 개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뭘 찾는 건데. 말을 해."
    "치매 아닌 거 같던데. 엄청 멀쩡하시던데."
    이번에도 해미는 별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이것도 입 밖으로 내고 싶지는 않은 말이었으니까. 해묵은 짜증이 몰려왔다. 동생은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상대방이 빤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게 몰아가는 사람. 고등학생 때부터 웬만하면 동생과 말을 섞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 입만 바라보는 상황이 되었으니 성질이 뻗치는 게 당연했다. 해수는 가스레인지에 주전자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할머니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아는 것 같았다고. 소리가 나지 않게끔 방에 들어갔지만, 할머니가 바짝 긴장하며 숨 들이쉬는 소리는 경보음인 양 선명히 들렸다. 그는 스스로 예상한 것보다 훨씬 크게 놀랐다. 낯선 사람이 잠들어 있다고는 들었지만 정말로 있을 줄이야. 해수는 자기가 침입자인 양 불도 못 켜고 횡설수설했다. 여기까지 차로 태워 준 분이 우리 아빠인데, 그냥 머물게 해드리는 거니 괜한 걱정은 안 하셔도 되고, 그런데 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이야기를 거기까지 들었을 때, 해미는 방 안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홱 돌렸다. 할머니 목소리라기에는 전혀 떨림이 없었다. 혹 옆집 소리는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무언가를 오해 없이 전달하고자 천천히 불러 주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해미는 이제 자기 맞은편에 앉아 있는 해수에게 의구심이 담긴 눈길을 던졌다. 그는 잠시 머뭇거린 뒤 이렇게 말했다.
    "친구분한테 전화하시는 거야."
    "친구?"
    "친구분들이 데리러 오실 거래. 우리 주소도 몇 번 듣고 외우시던데."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해미는 해수의 눈을 오래 마주 볼 수 없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시선을 테이블에 떨어뜨렸다. 집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일본풍 찻잔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세 잔. 가스레인지에 올려 둔 주전자가 침묵을 메우려는 듯 들썩거렸고, 해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전자 속으로 녹차 이파리를 떨어뜨렸다. 해미는 해수의 뒷모습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 건 없어."
    해수는 한 손에 뚜껑을 든 채 주전자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해미의 말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해미가 더 말을 이어 가길 기다리는지도 몰랐다. 언제나 남을 배려하는 인간이니까. 해미는 유약하고 순진한 사람을 볼 때마다 고개 드는 충동을 이번에도 억누르지 못할 것 같았다. 할머니의 친구 같은 건 이 세상에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누구도 저 할머니를 데리러 오지 않을 것이며, 지금쯤이면 아빠도 집에 데려왔던 걸 후회하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문득 모든 일이 분명해졌다. 부자들이 살아갈 고층 아파트, 그곳을 끝없이 배회하는 할머니를 어딘가 데려가려고 했던 남자들은 결코 착한 사람들일 리가 없었다. 가스레인지의 밸브를 잠그고 돌아오는 해수에게 해미는 입안을 간질거리는 말들을 쏟아내려 했다. 해수의 이상할 만큼 빛나는 표정이 무너지는 걸 보고 싶었다. 방문이 열리고 낯선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정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문틈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 뒤로 한참은 서로를 쳐다보지 못했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그 순간 해수가 아빠의 사진들을 떠올린 건 우연이 아니었다. 벽에 붙은 현장 사진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밤중에 찍은 건물이었는데, 눈을 가늘게 뜨면 우주의 풍경처럼 보일 정도로 수많은 전등이 그곳에서 빛을 내고 있었으니까. 아빠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은 덕분에 해수는 어둠에 관해 많은 걸 알게 된 것 같았다. 한번은 아빠가 공사를 마친 뒤 심정이 어땠는지 말해 준 적이 있었다. 지금보다 젊었을 적, 처음으로 아파트 작업에 들어간 시기였다. 동료들과 나란히 팔짱을 끼고 아주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한 명이 무언가에 발 걸려 넘어지면 모두가 균형을 잃기 일쑤라, 결국 다 함께 걸음을 멈추고 어두운 바닥을 더듬어서 돌부리를 뽑아내야 하는 식이었다. 다들 자기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완벽한 결과물을 낳으리라는 생각은 거의 믿음에 가까웠다.
    그렇게 몇 달의 일을 마무리하면 거대한 건물의 모든 전등에 불이 들어오는 날이 찾아온다. 집에 할머니가 있다는 걸 확인했을 때, 그러니까 어두운 방에 들어가 연필로 스케치한 듯 윤곽만 보이는 할머니에게 말을 붙였을 때, 해수는 자신이 아빠의 말을 귓등으로 들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해수는 아빠의 직업적 자부심이 얼마간 꾸며진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자부심 가지려고 노력하는 게 빤히 보인다고 할까. 보통 사회적으로 알아주지 않는 건 둘째치더라도, 그 공사에서 생기는 수익 중 아빠에게 떨어지는 게 현저히 적은 마당에 무슨 보람을 느낀다는 말인지. 그런데도 아빠의 이야기는 비할 데 없이 감상적이었다. 아파트가 밤중에 불을 밝혔을 때, 비록 골격뿐인 형상이었음에도 훗날 그곳에 살아갈 수많은 이들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고 했다.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면 이야기가 시작되듯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주인공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 모여들 것 같았다고.
    물론 아빠란 사람이 진지한 소리를 시작하면 자식 입장에서는 얼른 대화를 끝낼 궁리만 하기 마련이었다. 그때 해수도 대답을 적당히 얼버무리고 이불 속에 몸을 누였던 걸로 기억했다. 그러니 그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지 못한 셈이었다. 무대에 조명이 들어온 순간, 주인공이 아닌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할머니와 어둠 속에서 대화를 나누며 해수는 차마 전등을 켜지 못했으나, 할머니가 일어나려고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오자 저도 모르게 책상 스탠드를 켜게 되었다. 할머니와 눈이 마주친 것이 그때였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 순간 해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불을 켜기 전에는 이런저런 말을 떠들었는데도 막상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나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치매 할머니라는 말에 막연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상상했던 걸까? 할머니는 겁먹은 눈으로 해수를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타인이 쉽게 읽을 수 없는 복잡한 생각이 숨어 있는 듯했다.
    오랜 침묵 끝에 할머니가 입을 열었을 때, 해수는 몇 초간 숨을 참고 있던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전화를 좀 쓸 수 있느냐고 할머니는 물었다. 내 전화가 안 돼요. 예전에는 잘만 됐는데……. 해수는 몸수색이라도 당하는 사람마냥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급히 꺼냈다. 할머니의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었다. 해수는 살짝 웃으며 핸드폰을 들어 보이고는 가까이 다가가 할머니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고는 책상 앞 의자를 끌어다 앉아 할머니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뭐랄까, 자신을 말끔하게 꾸밀 줄 아는 사람이 며칠 동안 빗과 로션을 압수당한 꼴 같았는데, 그저 자고 일어나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핸드폰을 다루는 손도 느려터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사용할 줄은 아는 게 분명했다. 할머니는 고개를 들어 이 집 주소를 물었고,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보며 머뭇거리듯 다이얼을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이어지다가 곧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주 먼 곳에서 흘러나왔다.
    자신이 본 걸 해수가 누나에게 다 설명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예상보다 빨리 통화를 마친 뒤 거실로 나왔고, 알고 보니 치매가 아닌 것 같다는 소리를 사람을 앞에 두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모든 상황을 말해 줬더라도 누나의 태도가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처음 인사 나눌 때는 의외로 눈웃음까지 짓기에 역시 사회생활이 무섭구나, 감탄까지 했는데, 그게 다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임을 해수는 금세 알아차렸다. 누나는 맥주를 빠르게 마셔 취기가 좀 오른 기색이었다. 할머니의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고 증명이라도 하고자 작정한 것 같았다. 거실로 나온 뒤로는 어쩐지 방에서보다 더 초조한 표정인 할머니에게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한 것이었다. 친구들이 어디 사는지 물었고 그들이 각각 어떤 사람인지도 집요하게 질문했다. 여기로 데리러 올 거라는 사람이 운전을 할 줄 아는 거냐고 놀라워했고, 어르신이 대단하시다며 또 이런저런 질문을 퍼부었다. 마지막으로 친구분을 본 게 언제인지, 자녀분들이 걱정하지 않는지, 아무리 떨어져 산다 해도 이런 상황이라면 가족들에게 먼저 알려야 하는 거 아닌지…….
    "그만 좀 해."
    해수는 찻잔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내심 놀랐다. 그는 질책을 담아 속삭이듯, 도서관에서 떠드는 문제아에게 주의를 주듯 누나의 말을 끊었으니까. 그건 마치 이곳에 그들의 말을 들으면 안 되는 누군가가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해수는 공연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뭇결을 흉내 낸 벽지는 군데군데 찢어져 테이프가 붙었고, 낡아빠진 주전자에서는 여전히 김이 피어올랐다. 모든 게 그대로인 듯했다. 달라진 건 누나의 눈빛뿐이라고 해수는 생각했다. 누나는 여태껏 본 적 없을 정도로 매섭게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해수는 입을 벌린 채 누나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기다렸다. 그 와중에도 할머니는 초조하게 두 손을 모아 비틀며 현관문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만 하기는 무슨."
    "……."
    "범죄인 걸 알고는 있지? 치매 걸린 노인네를 마음대로 데려와서 신고도 안 하는 거."
    누나의 입에서 치매라는 말이 나오자, 해수는 고개를 돌려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할머니 역시 고개를 돌려 해수의 시선을 맞받았는데, 지금 오가는 말을 할머니가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표정만으론 알 수 없었다. 누나는 혼잣말을 시작했다. 곧 모든 걸 털어놓게 될 거라고 웅얼거렸고, 이런 식으로 손해 받는 짓은 여기까지일 거라고 구시렁대기도 했다. 해수는 여태 들은 목소리들이 머릿속에서 뒤엉키는 기분이었다. 할머니가 누나에게 조금 더 똑똑한 모습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았다. 그 역시 할머니가 완전히 멀쩡하다고 믿은 건 아니었다. 조금만 말을 섞어 봐도 이상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할머니는 꼭 머릿속에 카세트테이프가 들어 있는 것처럼, 이쪽에서 무슨 말을 건네건 미리 준비된 말을 순서대로 늘어놓는 듯했다. 하지만 할머니와 통화하던 그 목소리를 똑똑히 들은 이상, 할머니의 말을 다 헛소리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누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해수는 고개를 들어 누나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 했지만, 머릿속을 부유할 뿐인 생각을 입 밖으로 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가 꺼내려던 것은 이런 질문이었다. 어떤 이들이 우리의 눈에 이상해 보인다면, 그들에게도 우리가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그들에게는 우리야말로 이해할 수 없는 무리가 아닐까? 테이블에 올려놓았던 해수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해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모두의 눈이 핸드폰 화면으로 집중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에게 전화를 받으라고 권하지 않았다. 누나는 다리를 떨다가 방에 들어갔고 할머니는 해수의 얼굴을 물끄러미 볼 뿐이었다. 해수는 할머니의 친구에게서 온 전화임을 알았으나, 할머니에게 핸드폰을 건네지는 않았다. 자신이 통화가 끊어지길 기다리고 있음을 자각했을 때 그는 전화를 받았고, 긴장했던 것이 무안할 만큼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그의 귓바퀴로 흘러들었다.

 

*

 

    "그래도 진짜였어."
    해미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은 평소 습관대로 아랫입술을 깨문 채 테이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족과 똑같은 대화를 반복할 때면 늘 그랬듯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할머니가 집에서 나간 뒤로 급격히 피곤이 몰려왔다. 시간은 자정이 넘었고 모든 일이 해결되었는데, 왜 방으로 들어가지 않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간 듯했다. 해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봤지만 아빠에게서는 아직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이 일을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말해 주면 아빠는 어떤 얼굴을 할까. 전화를 대신 받아 주는 일이 생각보다 괜찮더라고 말할 때도 해미는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아마 깜짝 놀라겠지. 그런 것은 유순한 사람이 할 일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상냥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일은 착한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타인에게 괜한 기대만 품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전화 통화의 특징이라면 서로 얼굴을 안 보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상대방의 표정을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일 텐데, 재밌는 점은 한창 대화 나누는 중엔 그 어떤 얼굴도 상상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말에 집중하느라 그런 걸까? 타인의 표정은 언제나 통화 도중 침묵할 때만 눈앞에 떠올랐다. 끝없는 전화와 전화 사이의 짧은 순간마다, 해미는 애정보다 증오를 더 많이 받아 본 이들의 볼품없는 얼굴을 떠올렸다. 그들이 가득한 세상에서는 얼마든지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기묘한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와 해수를 내버려두고 방에 돌아왔던 순간에도, 해미는 평범한 사람이 할 만한 일을 자신이 하고 있다고 믿었다. 누구든 자신과 상관없는 일 때문에 곤란해지기는 싫은 법이니까. 그래도 곧바로 경찰에 연락할 생각은 아니었다. 방문을 닫은 뒤, 마치 누군가가 침입하려는 걸 막으려는 양 문에 등을 기대고 섰다. 그리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가 이 상황을 해결해 주길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았다. 다만 신고해도 우리에게는 별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여기까지 데려온 것만으로도 처벌받는 건 아닐까? 혹시 아빠가 자신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한 게 있는 건 아닐까? 새하얗게 질린 그 얼굴이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 아빠가 조금이라도 잘못한 게 있다면,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던 말이 사실 그 자신을 위한 거였다면…….
    통화 연결음은 무한히 이어졌고, 끝끝내 아빠에게서는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해미는 전화를 끊고 방바닥에 앉았다. 어두운 방 안에서 닫힌 문을 올려다보았다. 여기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두 사람이 나누고 있었다. 아니, 세 사람인가. 네 사람 같기도 했다. 들은 적 없는 목소리들이 뒤엉켜 들려왔다. 닫힌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거실의 불빛을 해미는 보고 있었다. 동생이 핸드폰으로 스피커폰을 켠 모양이었다. 머나먼 시대에서 건너오는 듯 낯설고도 낭랑한 음성이라고 그때 해미는 생각했다.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었다.
    "누나."
    "응."
    "진짜로 모여 있다고 했어. 할머니 같은 사람들이."
    해수가 시선을 들어올렸다. 해미는 테이블 너머 동생의 표정에 내심 놀랐다. 그러고 보니 동생이 화내는 꼴은 전에 본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잠시 눈길을 맞대다가 다른 곳을 보았다. 같은 걸 깨달은 모양이라고 해미는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선택을 했지만, 우리 중 누구도 동정심 때문에 행동하진 않았다는 사실을. 천장에 매달린 전등이 숨이 다할 듯 깜박거렸다. 차라리 모든 게 어두워졌으면 했다. 사랑받는 어린아이가 잠자리에 들 때처럼 누군가가 불을 꺼주었으면 했다. 경찰이 문을 두드렸던 순간에도 해미는 방 안에 앉아 있었다. 해수가 그들을 안으로 들이자, 거실에 울리던 낯선 목소리들은 풀벌레 울음처럼 사라졌다. 경찰은 몇 마디 거짓말만 듣고도 두 사람에게 더는 질문을 퍼붓지 않았다. 답이 돌아오지 않을 걸 알았는지도 몰랐다. 그들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두 사람은 한참이나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시간은 차츰차츰 더 어두운 순간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 이 소설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9년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선정 작가의 작품입니다.

 

 

 

 

 

 

 

 

 

 

 

 

 

 

 

 

 

박규민

작가소개 / 박규민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

 

   《문장웹진 202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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