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점심

[단편소설]

 

 

가벼운 점심

 

 

장은진

 

 

 

    아버지가 돌아왔다. 가출한 지 10년 만이었다.
    그해 봄, 아버지는 어머니 앞으로 장문의 편지를 남겨 놓고 떠났다. 어머니는 그 편지에 대해 우리 형제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 읽고 바로 짝짝 찢어 변기에 버려서 기억에 남은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다만 한 달 후, 집안의 금기어가 되다시피 한 '아버지'란 말이 밥을 먹던 동생 입에서 무심코 튀어나왔을 때 어머니는 수저를 내려놓으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더러운 인간! 포기하겠다는 거야. 전부 다."
    우리는 그것이 편지의 요점이란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더라도 요점이란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니.
    그러나 어머니가 굳이 그런 식으로 알려주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떠났다는 것 자체가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어쩌면 어머니는 '포기'가 아니라 '버렸다'는 단어를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포기는 왠지 자기 것만 놓고 가는 것 같은데 '버리겠다'는 건 어머니와 우리 형제까지도 포함되는 것 같으니까. 그때까지도 어머니는 '버리겠다'를 '포기하겠다'로 표현함으로써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 했던 게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가 '버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포기'했다는 걸 나는 아버지가 가출하던 날 알았다. 아버지는 떠나면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아끼던 책 한 권, 학자의 상징이라며 조부로부터 물려받았던 오래된 만년필조차 챙기지 않고 맨몸으로 집을 나갔다. 다 놓고 간 아버지한테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이었는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아버지를 공항에 데려다주러 가는 길이다. 10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는 조부의 장례식을 마치고 다시 뉴욕으로 떠난다. 그동안 친가와도 연락을 끊고 살았던 아버지는 조부가 위독하다는 삼촌의 연락을 받고 나흘 전 급하게 한국으로 들어왔다. 평소 존경하던 조부의 임종마저 지키지 못했다면 아버지는 불효자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선지 내가 느끼는 10년이란 시간의 무게에 비해 아버지의 마음은 조금 가벼워 보였다.
    "좋은 날 받아서 가셨다. 그치?"
    아버지가 도로 오른편으로 반짝거리며 흘러가는 강을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끝이 떨리면서 갈라지는 것이 또 우는 것 같았다. 가벼움이 지닌 한계였다. 장남인 아버지는 미안함 때문에 장례식 내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목 놓아 울기만 했다. 조부를 위해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으리라.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으면서 마냥 우는 것. 눈물에는 한계가 없어서 먹은 게 없는데도 아버지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고, 잠을 자지 않는데도 아버지 입에서는 지치지 않고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눈물'샘'과 소리'샘'은 몸이 아니라 마음의 기관에 해당되는 것 같았다. 샘처럼 물을 쏟아내고 있어서인지 식구 누구도 아버지한테 10년의 세월에 대해 질책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안부를 궁금해 하거나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네는 가족도 없었다. 단지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소리만 들려왔다. 호상이라 아무도 눈물이 나지 않는 장례식에서 아버지는 3일 동안 대신 울어 달라며 고용된 사람처럼 보였다. 열심히 울어서인지 아버지는 장례식 동안 철저하게 혼자였다.
    "상 치를 사람들 생각해서 봄에 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는데……."
    강이 끝나자 아버지가 전방을 응시하며 숨을 골랐다.
    "계절이 효자다."
    "봄은 떠나기에도 돌아오기에도 좋은 계절 같아요."
    조부를 닮아 아버지도 봄을 무척 좋아했다.
    "아버지도 좋아했죠, 봄을."
    "좋아해서 좋아하지 않았어."
    침울한 목소리에 실린 좋아해서 좋아하지 않았다는 말에 묘하게 이끌리던 참에 자동차는 벚꽃이 환하게 핀 가로수 길로 접어들었다. 그 광경에, 깊은 슬픔에 잠겨 있던 아버지 얼굴이 갑자기 벚꽃처럼 밝아졌다. 아버지 스스로도 조금 놀란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애써 감추려 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가까이서 벚꽃을 보고 싶다며 갓길에 잠시 차를 세워 달라고 부탁했다.
    차에서 내린 아버지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벚나무 가지 하나를 낮게 잡아당긴 뒤 눈을 감고 향을 맡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쉬는 아버지의 입가에,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아주 옅은 미소가 번졌다. 상중만 아니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세상이 다 알도록 소리 내어 웃었을 것만 같았다. 모든 게 낯설었다. 아버지가 내 앞에 있다는 것도, 슬픔에 잠긴 표정으로 내내 우는 얼굴만 보여주던 아버지가 저렇게 웃고 있는 것도, 꽃을 보려고 일부러 차를 멈춰 달라더니 향을 맡고 서 있는 모습도. 10년 전 내가 알던 아버지는 분명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숨겨 왔던 것일까, 아니면 오랜 타국 생활로 자연스럽게 변한 것일까. 혹, 그날 집을 떠나면서 지금껏 가지고 살던 모습마저 옷처럼 훌훌 벗어 놓고 갔던 것일까. 아버지는 진짜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맨몸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그해 봄 우리를 떠났던 것일까.
    늙긴 했으나 마른 체형이었던 아버지는 보기 좋게 살이 올랐고, 당시 남자들은 잘하지 않던 단발형 헤어스타일은 스포츠형으로 바뀌었다. 머리숱은 좀 줄었지만 건강한 윤기가 흘렀고, 날카로웠던 인상은 깎아 놓은 듯 중후해져 있었다. 무엇보다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아버지는 늘 품이 크고 펑퍼짐한 양복만 입고 다녔었는데 몸에 잘 맞는 캐주얼 차림을 한 건 처음 봤다. 분명 낯선데, 이상한 건 옛날의 아버지보다 지금의 아버지가 훨씬 가깝고 편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 낯선 친근감 때문일까. 나는 차 문에 기댄 채 아버지를 지켜보다 벚나무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벚꽃 향에 잠긴 바람이 은은한 감촉으로 다가왔다. 벚나무 아래 서자 어찌나 가지마다 벚꽃이 알차게 피었는지 몇 개 꺾어 신부 손에 쥐어주면 그대로 부케가 될 것 같았다.
    "예전에는 이런 봄꽃들이 밉고 싫었어."
    아버지가 작고 부드러운 꽃잎 한 장을 손끝으로 지그시 매만지며 말했다.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는 꽃들이."
    "왜요?"
    "나만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것 같았거든."
    "아버지도 나가면 됐잖아요."
    "우울증이 도졌어. 봄만 되면."
    아버지의 말끝에 힘이 없었다.
    "식욕도 떨어지고."
    "그래서 좋아해서 좋아하지 않게 된 거예요?"
    "봄이 되면, 특히 벚꽃이 필 시기가 되면 비가 오게 해달라고 빌었어."
    나는 진중한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다 망가지라고. 애써 핀 꽃도, 화창한 날씨도, 약속도. 어쩌면 미래까지도. 꽃이 질 때까지는 방에서 꼼짝도 하기 싫었으니까. 할 수만 있다면 볕이 없는 지하 동굴 같은 데서 며칠 지내고 싶을 정도였어."
    나는 동굴처럼 유난히 어두웠던 아버지의 서재를 떠올렸다.
    "그럴 수 없어서 매일 속으로 되뇌었어. 모두 간절하게 불행해지길. 딱 나만큼만 불행해지길. 더도 덜도 말고 나만큼만……."
    아버지를 불행하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 돌이켜 보면 아버지의 봄은 늘 그랬던 것 같았다. 신경이 곤두선 상태의 아버지는 가족한테 엄하고 까칠한 사람이었다. 사소한 일에도 화를 잘 냈고, 얼굴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가 많았으며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살았다.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처럼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구는 데다 자주 소화불량과 불면증에 시달려서 낯빛은 창백했다. 그러한 감정 상태는 봄이 되면 더욱 도드라져서 봄이 왔다는 걸 꽃이 피는 것보다 신경질을 내고 느닷없이 고함치는 아버지 때문에 먼저 알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어머니랑 연애할 때도 그랬어요?"
    아버지가 붙들고 있던 벚나무 가지를 손에서 놓고 저 멀리 산등성으로 시선을 둔 채 눈을 깜빡거렸다. 이어 속으로 내쉬는 아버지의 가벼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네 엄마와는 여름에 만나 그해 겨울에 바로 결혼했으니까."
    "제가 생겨서였죠."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버지 대학교 은사의 중매로 만났다. 가난 때문에 학자의 꿈을 접어야 했던 조부는 아버지가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 주길 바라서 없는 살림에 다른 자식들보다 공부를 많이 시켰다. 아버지는 조부의 아낌없는 뒷바라지와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비교적 이른 나이에 대학 강단에 섰고, 장가갈 나이가 됐을 때 욕심이 생긴 조부는 교수 며느리를 보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는 뜻을 아버지에게 내비쳤다. 아버지보다 키가 크고 두 살 연상이란 게 마음에 조금 걸렸지만 조부는 어머니의 명민함과 자신감 넘치는 현대적인 모습에 매우 흡족해했다.
    "결혼하고 이듬해도 네 엄마는 임신중독증 때문에 봄을 즐길 여유가 없었어. 네가 태어나자 삶은 전쟁으로 돌입했고."
    그러고 보니 어머니의 봄은 어땠는지 기억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보면 알겠지만 결혼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어."
    내가 알던 것과 달리 아버지의 본질은 낭만을 추구하고 싶은 사람이었을까. 그때 갑자기, 바람이 세게 불더니 향과 함께 꽃잎들이 하얗게 흩날렸다. 봄에 내리는 차갑지 않은 눈. 봄눈이 아버지의 희끗한 머리와 늙어버린 어깨를 여러 번 스치고 지나갔다.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약간 흥분된 표정으로 꽃잎을 받아내려고 순발력 있게 양쪽 손바닥을 펼쳤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매니큐어 바른 아가씨의 작은 손톱을 닮은 꽃잎 한 장이 손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버지가 그걸 쳐다보며 지그시 웃었다. 아까보다는 분명해서 자세히 살피지 않아도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알 것 같은,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주름이 선명하게 잡히는 웃음이었다. 아버지는 주먹을 가만히 쥐더니 그만 가자, 라고 말하며 차에 올라탔다.
    안전벨트를 매고 시동을 거는데, 아버지가 손에 쥐고 있던 꽃잎을 배낭에서 꺼낸 수첩 갈피에 세심하게 끼워 넣으며 말했다.
    "떨어지는 꽃잎이나 낙엽을 받으면 그 계절에 사랑이 찾아온단다."
    아버지는 이제야 장례식의 슬픔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자동차는 공항을 향해 다시 출발했고, 벚꽃길이 끝나는 곳까지 아버지와 나는 말없이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각자의 봄을 가졌다.

 

    주말의 공항은 출국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모두 나라를 떠나는 사람들인데, 왠지 나는 그들이 봄을 떠나려는 사람들로 보였다. 아버지가 떠났던 날도 봄이었고, 이 공항을 통해서였다. 아버지는 그날 어떤 표정으로 장애물 같은 저 많은 게이트들을 통과했을까. 공항에 올 일이 생길 때마다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상상할 때마다 아버지의 표정은 항상 달랐지만 나라를 떠나는 것보다 여기 봄을 떠나는 사람의 표정이라면 왠지 비장하고 단단했을 것 같았다. 좋아해서 좋아하지 않았다는 봄이었으니 왠지 그랬을 것만 같았다. 주차를 시키고 시동을 끈 차 안에서 내가 넌지시 말했다.
    "아버지, 이대로 진짜 가실 거예요?"
    "미안하다."
    눈을 맞추지 않으려는 듯 아버지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그쪽 일이 워낙 바빠서."
    진짜 바빠서인 걸까. 오래전 삼촌으로부터 아버지가 뉴욕에서 사업을 한다고 듣긴 했다.
    "아버지가 제 결혼식에 꼭 참석하셨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고개를 창 쪽으로 더 외틀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다른 결혼 선물은 필요 없어요. 2주밖에 안 남았으니까 저희 신혼집에 머물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친구도 좀 만나시고……."
    "축하받아야 할 날이다. 내가 가면……."
    "아버지가 자식 결혼식에 간다는데 누가 뭐래요."
    "네 엄마 보기도 그렇고……."
    장례식장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한 번도 서로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미안해서였고, 어머니는 미워서였다.
    "자격이 없잖니, 난."
    결혼식은 장례식과는 다른 걸까. 장례식에서는 아버지에게 우는 역할이라도 주었지만 결혼식에서 목 놓아 울라고 하기도 그렇고, 가족을 버리고 떠난 사람이 10년 만에 아들의 결혼식장에 나타나 환하게 웃고 있으면 하객들 눈에 뜬금없고 염치없어 보일까.
    "널 잘 키워낸 네 엄마가 축하받아야 할 자리다."
    "아버지."
    "윤주는 예쁘고 착한 아이더라. 너랑 잘 어울려."
    그러면서 아버지는 뒤에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다행이다, 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배낭을 굽은 어깨에 메며 탑승 시간까지 아직 3시간이나 남았으니 가볍게 점심이나 하자며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아버지의 고집. 그거 하나만은 10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내가 붙잡을까 봐 빠른 걸음으로 터미널을 향해 걸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아버지 뒤를 터벅터벅 따라갔다.

 

    가볍게 먹자더니 아버지는 패스트푸드점을 가리키며 햄버거에 콜라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나의 아버지는 소화불량이 심해서 밀가루 음식이나 패스트푸드를 먹지 않았다. 고기도 소화를 잘 못 시켜서 주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했다. 전업주부가 아닌 어머니는 까다로운 아버지 식성 때문에 육식과 채식 두 개의 밥상을 차리느라 부엌에서 고생을 좀 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자기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걸 못마땅해 하는 사람이었고, 어느 날부터 아버지는 신경질 부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기 싫어서 밖에 식당을 몇 군데 정해 두고 아예 밥을 먹고 들어왔다. 식사 문제가 해결되자 어머니와 아버지는 싸울 일조차 생기지 않았다. 한집에 살면서 식사를 같이하지 않으면 식구는 멀어지게 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가출해서 '좋은 건 하나 있네!'라고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외치며 소갈비를 3일 내내 뜯은 적이 있었다.
    "햄버거 같은 건 안 좋아하셨잖아요."
    "먹어 보니 꽤 먹을 만하더라.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쁠 때가 많은데 간편하고 어디 거든 맛도 좋아서 자주 먹는 편이야."
    "소화는 잘 되고요?"
    "이젠 가리는 거 없이 다 잘 먹어."
    암막 커튼에 가려진 아버지의 지난 10년의 삶, 그리고 그 삶을 있게 한 것들.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 커튼 틈새로 빛이 들어가 그 삶에 윤곽이 돋아나고 그림자가 생기고 있었다.
    로스팅비프버거 세트가 담긴 쟁반을 들고 자리로 가서 앉았다. 아버지는 누군가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다 휴대폰을 얼른 껐다. 아버지 말대로 패스트푸드가 좋은 건 주문하면 빨리 나오고, 어딜 가나 맛이 똑같아서 가게를 고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서울의 KFC나 광주의 KFC나 가게 인테리어, 메뉴, 서비스, 가격, 품질이 똑같아서 그것을 먹을 때는 여기가 서울인지 광주인지 모르는 순간이 있었다. 뉴욕의 KFC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혹시 아버지는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게 적응되지 않고 불편해서 굳이 햄버거 가게를 찾은 것일까. 아들과의 마지막 식사라 근사한 점심을 대접하고 싶었는데. 내 서운한 마음을 알아챈 아버지가 콜라에 꽂혀 있는 스트로를 빨다 말고 물었다.
    "너 햄버거 좋아하지 않았니?"
    좋아했다. 매달 출시되는 맥도날드 해피밀 장난감을 모으면서 맛있는 햄버거를 착한 가격으로까지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 다닐 때 학비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나는 햄버거를 집어 들며 말했다.
    "좋아하던 것도 일이 되니까 나중에는 쳐다보기도 싫더라고요."
    아버지는 내가 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다녔는지 의아해 하는 것 같았다.
    "일산 사는 어머니 친구분 효숙 아줌마 알죠?"
    나는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문 뒤 이어서 말했다.
    "효숙 아줌마 천연화장품 사업에 어머니가 투자를 했는데, 잘 안 돼서 잠깐 생활이 어려웠어요."
    아버지의 표정이 갑자기 콜라색처럼 어두워졌다.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 지난 일이에요. 오랜만에 먹으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맛있는데요."
    나는 아버지가 불편해할까 봐 일부러 입을 크게 벌려 햄버거를 먹었다. 그러고는 언제 말을 꺼내는 게 좋을까 기회를 엿보던 나는 지금이 좋겠다 싶어서 휴대폰을 열어 아버지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내가 사진을 처음 봤을 때처럼, 아버지도 무슨 사진인지 얼른 알아채지 못하다, 신비로운 표정으로 깜짝 놀랐다.
    "몇 개월이냐?"
    "3개월이요."
    나는 손가락으로 가운데 부분을 짚으며 말했다.
    "요 강낭콩처럼 생긴 게 아기래요. 신기하죠?"
    아직 뚜렷한 형태를 갖추지 않은 아기는, 커다란 점의 형태로 흑회색 부채꼴 안에 떠 있었다. 아기는 작은 잠수함 혹은 우주 캡슐 안에 담긴 것처럼 보였다. 아기를 감싸고 있는 어두운 바탕은 거칠게 폭풍우 치는 바다 같기도 하고, 신비한 우주의 어딘가를 찍은 사진 같기도 했다. 어쩌면 저 작은 '한 점'에게 그곳은 망망한 바다이기도 우주이기도 할 것이다. 흑회색의 거친 질감 때문인지 처음 윤주가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아기가 몹시 외로워 보인다고 느꼈다. 아무도 없고, 아무도 다가갈 수 없는 어두운 곳에 갇혀 혼자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지내는 '한 점' 사람의 외로움. 사람은 시작부터가 외롭구나. 절대 고독과 암흑 속에서 살아가는구나. 그러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윤주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래야 만날 수 있어, 라고 말해 주었다. 윤주의 말대로 녀석이 그걸 견디며 자라는 중이란 생각이 들었을 때는 눈물이 웃음으로 바뀌었다. 녀석은 거친 바다와 우주를 제 영역으로 만들어 가며 나와의 거리를 조금씩 좁히고 있는 것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고, 그렇게 생겨났던 것이다. 그날의 나처럼, 사진을 들여다보던 아버지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나는 아버지에게 냅킨을 건넸다.
    "네가 벌써 장가를 가고 애 아빠가 되는 나이가 됐다니. 언제 그렇게 컸니……."
    아버지가 숨을 참았다 내쉬며 냅킨으로 눈가를 닦았다.
    "요 녀석 태어나는 것도 못 보겠구나."
    "못 보긴요."
    나는 아버지의 손등에 내 손을 얹었다. 거칠어서 조금 놀랐다.
    "사진, 아니 동영상 매일 보내드릴게요."
    "그래."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 주세요."
    "누굴 닮았을까?"
    "아버지 손주니까 아버지 닮았을 거예요."
    "난, 날 안 닮았으면 좋겠는데."
    "……."
    "속도를 안 지킨 건 날 닮았다."
    "아버지 아들이니까요."
    "윤주는 어떻게 만났니?"
    "협력업체 경쟁 입찰 PT가 있었어요."
    갑자기 신나는 기분이 들었고, 아버지도 그걸 눈치 챈 것 같았다.
    "총 다섯 군데서 경쟁이 붙었는데 윤주가 단연 돋보였어요. 아나운서 못지않은 말솜씨로 PT를 끌고 가는 윤주한테 입사 동기들이 전부 반해버렸어요."
    "윤주네 회사가 선정됐겠구나."
    "물론이죠. 그러고는 진짜 경쟁이 시작됐죠. 무려 세 달을 졸졸 쫓아다녔다니까요. 돌부처 같다며 동기들은 하나둘 나가떨어졌는데 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요. 콧대가 어찌나 높은지 데이트 신청 한 번 하는데 정말 애먹었어요."
    "넌 끝까지 가정을 지킬 거다."
    "……."
    "날 안 닮아 다행이야."
    아버지는 또 그 '다행'이란 말을 썼다.

 

    빠르게 나오는 음식처럼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들도 빨리 먹고 자리를 일어나서 아버지와 얘기를 한참 나누다 옆자리를 보면 다른 손님이 앉아 있었다. 아버지와 내가 가장 오래 앉아 있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눈치를 주는 종업원은 없었다. 자리는 다른 데서 빨리 날 것이기에. 빨리 먹고 나가게 하려고 패스트푸드점은 의자를 불편하고 딱딱한 걸로 들여놓는다. 음식을 내주고 계산하기도 바쁜 종업원은 손님의 자리를 챙겨 줄 여력이 없다. 손님들은 알아서 자리를 찾거나 없으면 아쉬워하지 않고 돌아선다. 아니 종업원은 모른다. 저 손님이 몇 시간째 앉아 있는지 모를뿐더러 관심도 없다. 그저 모두 다 방금 계산을 마치고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새 손님일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랬었다. 그게 패스트푸드의 효율성이었다. 빠름과 셀프서비스. 음식은 단순화하고, 절차는 간소화시켜서 손님에게 음식을 가져가고 치우게 하는 것. 빠름은 종업원에게도 요구되어서 그들은 시급에 비해 많이 움직여야 하고, 셀프서비스로 인해 종업원과의 친밀감은 생길 틈이 없다. 어떤 종업원도 손님에게 맛이 어땠느냐, 잘 드셨냐고 묻지 않는다.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말을 건네지 않는 건 손님도 마찬가지다.
    손님들이 빠르게 들고나기 때문에 가게 안은 시끄럽고 어수선한 편이었다. 진지하고 심각한 얘기를 나누기 위한 약속 장소로는 바람직하지 않았고, 가볍고 즐거운 말을 주고받기엔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아버지는 햄버거에 감자튀김까지 다 먹고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나는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거운 얘기를 조용하고 분위기 좋은 데서 꺼내는 것보다 이런 어수선한 곳에서 하는 게 서로한테는 편할 수 있겠다 싶었다. 아버지가 커피 두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고, 나는 한 모금 들이켠 뒤 가볍게 물었다.
    "왜 떠났어요?"
    너무 가벼워서 마치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묻는 것 같았다. 그래도 가벼우면 대답도 어려움 없이 쉽고 가볍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아버지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종이컵을 내려다보며 잠시 빠르게 눈을 깜빡거리다 옆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10년이란 시간 앞에 더는 망설일 게 없다는 듯 보여준 사진 한 장. 새해를 몇 분 앞둔, 뉴욕의 타임스퀘어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속에는 밝은 표정의 아버지와 다정하게 팔짱을 낀 금발의 푸른 눈의 사람이, 있었다. 외로운 '한 점'에서 시작됐을 한 사람. 나는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사랑, 이었다.
    "그녀는 영국계 미국인이야."
    아버지는 침착하게 말했다.
    "나보다 아홉 살이 어리고."
    사진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그녀라는 사람은 아버지로부터 모든 걸 포기하게, 아니 버리게 한 사람이었다. 평생을 이루고 쌓아 온 것과 맞바꿔도 좋을 만큼 아버지한테 소중한 사람이란 뜻이기도 했다. 내가 이전에 알던 아버지의 수많은 모습을 지워버리게 한 사람. 나쁘게 말하면 우리 가족한테 아버지란 자리를 빼앗아간 사람. 나는 거기서 무서운 힘을 느꼈다. 어쩌면 위대함일까.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사람이 원망스럽거나 밉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든다는 것이었다. 10년이나 지나버려서일까. 아버지가 떠났을 때 한편으론 안심되었던 게, 아버지가 지옥을 벗어났으므로 적어도 다시는 죽으려 하지 않겠구나, 라고 생각했던 당시가 떠올라서일까.
    "놀란 걸 보니, 엄마가 아무 얘기도 안 한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한테는 사랑이겠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바람나서 가족과 직장을 버린 아버지이자 남편이자 아들이었다.
    "네 엄마 성격에 창피하고 화났을 거야."
    아버지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자존심도 상하고 용납이 안 돼서 말을 안 했을 거야."
    "그렇다고 지금까지 얘기를 안 한 건 왜일까요?"
    "시간이 가길 기다린 게 아닐까."
    "왜요?"
    "너희들이 나이를 먹기를."
    "……."
    "너희 엄마 다혈질인 데다 급한 성격이지만 현명한 사람이야. 나이를 먹으면 경험하지 않아도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있으니까. 어떤 일에 충격을 덜 받기도 하고 누군가가 죽더라도 잘 견디기도 하잖니. 나이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거나 무디게 하는 것들이 있어."
    그건 어머니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 같았다. 당시 어머니는 이미 나이를 많이 먹은 상태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서일까.
    "엄마는 잘 지냈지?"
    "전보다 더 열정적으로 지냈어요."
    "그랬을 거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엄마라면."
    "어쩌면, 열정적으로 지내려 했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어머니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잊으려고 일을 많이 했다. 일중독 덕에 학술발표를 꾸준히 했고, 연구 논문 또한 가장 많이 가진 학자가 되었다. 헛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자투리 시간에는 틈틈이 번역까지 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을 때는 세탁기에서 빨랫감을 꺼내 손빨래를 하거나 찬장 깊숙이 넣어 둔 그릇을 끄집어내 먼지를 닦았다. 어머니가 괴로움을 견디는 방법은 시간의 틈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아버지보다 오래 살려고 끊었던 담배를 한 대씩 피울 때는 도저히 다른 어떤 것으로도 그 틈을 메울 수 없는 순간이 왔다는 뜻이었다.
    "날 키운 건 9할이 더러운 그 인간이다."
    어느 날 어머니는 담배를 삐딱하게 입에 물고 창가에 서서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걸 증오심으로 이해했다. 심장 깊숙이 증오를 품은 어머니는 아버지 보란 듯 학자로 성공하고자 피나는 노력을 했다. 아버지가 끝까지 가보지 못한 길. 그게 어머니 딴에는 아버지에게 복수하는 것이었고, 복수는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그럼에도 어머니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 증오만은 아니었다. 나는 남은 1할을 애증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모든 걸 포기했으나 어머니는 아버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나는 아버지 서재를 통해 알았다. 유명한 사람의 생가를 평소 생활하던 대로 보존해 두듯 어머니는 아버지 서재를 그렇게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물건을 하나도 버리지 않았고 정리해서 어두컴컴한 창고에 처박아 두지도 않았다. 아버지만 돌아와 책상에 앉으면 바뀌거나 달라지는 거 없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예전의 삶이 그대로 이어지게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게다가 어머니는 한 번씩 서재를 청소했다. 물론 몰래하는 청소였지만 서재에 자주 드나들던 나는 어머니의 1할에 대해 알고 있었다.
    내 말을 들은 아버지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언제 아셨어요?"
    아버지가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요."
    "널 낳고 나서."
    "근데 왜 동훈이를 낳으셨어요?"
    "네가 외로울까 봐."
    이번에는 내가 고개를 숙였다.
    "그때까지 참았지."
    아버지는 '그때까지'라고 했지만 동훈이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참았으니 아버지로서는 최선을 다해 참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나의 외로움까지 생각해 동훈이를 낳고, 거기다 20년을 더 참아 준 덕에 나의 10대는 조금도 외롭지 않았다. 동훈이와 나는 이성과 성욕에 대한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공유하며 자랐기에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있었다. 공부에 지쳤을 때는 함께 게임과 농구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공중목욕탕에 가면 우애 좋게 서로의 등을 밀어 주었고, 패싸움에서 맞고 들어오던 날 동훈이는 내 허리에 찜질팩을 얹어 주며 반드시 복수해 주겠다고 주먹을 쥐었다. 아버지의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에서 사춘기를 보냈다면 분명 동훈이도 나도 성격 한쪽이 삐뚤어졌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존재의 무게를 의식하는 것만으로 우리 형제는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고, 서로를 도와 가며 유혹을 아슬하게 뿌리칠 수도 있었으니까. 우리의 10대 시절을 아버지 없이 자라게 하지 않는 건, 아버지가 아버지의 젊음을 소진시키고 감정을 억눌러 가며 지키고자 했던 마지막 소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두 사람의 사진을 본 순간 좋아해서 좋아하지 않게 됐다는 그 봄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게 생의 전부라면 아버지의 봄에는 도저히 꽃이 필 수 없었겠다는 것을.

 

    아버지와 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패스트푸드점의 소란이 침묵 속으로 끼어들어서 그 공백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소란은 이내 잠잠해졌고, 공백이 약간이라도 어색하게 느껴질까 봐 물었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났어요?"
    아버지는 교수로 지내면서 가장 힘들고 바쁘고 외로웠던 시절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아버지의 대학과 미국의 한 미술대학이 '환경과 미술'이란 주제로 공동 프로젝트를 기획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아트페스티벌 성격의 그 프로젝트에서 한미총괄 책임자였다. 양측 대학에서도 야심차게 지원한 사업이라 당시 취재 열기도 뜨거웠던 걸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한국어를 잘하는 유능한 일간지 기자였어. 그 프로젝트를 취재하러 왔을 때, 일주일을 머무는 동안 인터뷰 때문에 매일 만났어."
    아버지는 신나 보였고, 나는 그걸 눈치 챘다.
    "인터뷰 내내 심장이 두근거렸어. 그녀도 그렇다는 걸 단번에 알았지. 내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거든. 가끔 입술을 파르르 떨기도 했는데, 그게 미치도록 사랑스러웠어."
    어머니 얘기를 들을 때만 해도 굳어 있던 아버지 표정이 그녀와의 첫 만남을 얘기하자 설레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도저히 감추기 어려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얼굴이었다.
    "웃을 때 빨간 입술 사이로 보이는 치아는 희고 깨끗했는데, 그것도 너무 좋았어."
    나는 어머니의 치아를 떠올렸다. 담배 때문에 누렇게 변색된 치아 때문일까. 단지 치아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그걸 알았다면 어머니는 아버지를 붙잡기 위해 치아에 페인트칠이라도 하고 싶었을까.
    "그분은 미혼이었어요?"
    "아니."
    "자식은요?"
    "결혼한 지 1년 정도 됐을 때라 다행히 없었어."
    수학여행이라도 가는지 배낭을 멘 여고생들이 단체로 우르르 몰려들어서 패스트푸드점은 그들의 수다로 다시 소란스러웠다. 옆 사람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라 아버지와 나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식은 커피를 조금씩 나눠 마셨다. 아버지도 생각에 잠겼고, 나는 그 시간 동안 현재의 모습을 기반으로 아버지의 10년의 삶을 상상했다. 왠지 아버지 입으로 직접 듣는 것보다 상상을 하는 게 덜 거북하게 느껴졌다. 바람나서 해외로 도피한 그렇고 그런 여인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영상과 멋진 대사로 입혀 예술영화로 둔갑시켜 버린 것처럼. 상상을 하다 보니 아버지의 삶 중 어느 한때나마 영화 같은 장면이 있었으면 싶었다. 그렇게 영화처럼 떠났으면 이후의 삶도 악착같이 영화 같아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질척질척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상상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이 가능한 것이라 굳이 들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고, 듣고 싶지도 않았다.
    여행에 한껏 들뜬 여고생들이 손에 햄버거와 콜라를 들고 한꺼번에 패스트푸드점을 나가자 점포 안은 금방 조용해졌다. 아버지가 냅킨으로 테이블에 떨어진 햄버거 소스와 물기를 닦으며 다시 말을 이어 갔다.
    "그녀도 나 때문에 많은 걸 잃었어."
    아버지의 표정이 착잡해졌다.
    "기자를 관두게 됐고, 가족과도 멀어졌어."
    "그래서 사업을 하게 된 거예요?"
    "사업?"
    "삼촌이 사업을 한댔어요."
    "그놈도 창피해서 말을 그렇게 전했나 보다."
    "사업이 아니면요?"
    "그냥 자그마한 세탁업을 해."
    아버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우리를 떠났다는 사실보다 세탁 일을 한다는 게 내 말문을 막히게 했다. 교수였던 아버지를 더 근사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해서일까. 아버지가 할 줄 아는 건 공부뿐이라고 단정해서일까. 아버지는 양말 한 번 손수 빨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드디어 들어버리고 만 아버지의 질척질척한 현실이었다.
    "당장 일자리가 필요해서 찾다 보니 어쩔 수 없었어. 처음에는 불안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아버지가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근데 막상 해보니까 재밌더라. 적성에도 맞고. 일도 많아서 항상 바빠."
    나는 아버지의 손을 유심히 쳐다봤다. 그러고는 아버지의 옛날 손이 어땠는지를 떠올려 보려고 애썼다. 학자였을 때 아버지의 손은 말랑했지만 왠지 삭막하고 창백하고 무디게 느껴지는 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세탁을 한다는 현재 아버지 손은 거칠어도 섬세함에서 나오는 부정하기 힘들 만큼의 생기가 감도는 것처럼 보였다.
    "교수 관둔 건 후회되지 않으세요?"
    "응."
    섭섭할 정도로 아버지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러고는 이어서 말했다.
    "그건 네 할아버지가 원하는 삶이었어. 예전부터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연구하는 생활이 답답했어. 이 일을 해보니까 육체노동이 나랑 맞는다는 걸 알게 됐고."
    아버지는 두 손으로 감싼 종이컵을 이리저리 돌리다 슬리브를 컵에서 빼서 납작하게 눌렀다.
    "땀 흘리고 먹는 밥이 어찌나 맛있던지, 몸을 움직이고 마시는 물은 또 얼마나 달콤하고. 이런 게 진짜 노동이구나 싶더라."
    슬리브를 만지작거리던 아버지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근데 그녀도 나랑 똑같은 걸 느꼈다는 거야."
    아버지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자신조차도. 나는 조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조부의 유일한 자부심이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남겼을 때 조부에게만은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그리고 삼촌은 조부에게 차마 진실을 얘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비밀이 지켜졌어도 가족과 교수직을 내던지고 떠난 사람이란 사실은 감춰질 수 없었다. 그 사실이 조부를 10년 동안 괴롭혔다. 호상이라 했지만 조부의 10년 삶은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와 욕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작년 봄에 유산을 정리할 때도 조부는 괘씸한 아버지 앞으로는 한 푼도 남기지 않았다. 그 덕에 유산을 조금 더 갖게 된 고모들과 삼촌은 은근히 아버지의 부재를 반기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조부의 분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급기야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차라리 치매에 걸렸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조부는 아버지에 대한 선명한 기억을 끝까지 끌어안고 살았고, 죽음을 앞두면서도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았다. 의식불명 상태로 돌아가셨기에 조부는 아버지가 돌아온 것조차 못 본 채 눈을 감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울어야만 했다.
    "떠났을 때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지는 않았어요?"
    "왜 안 했겠니. 하지만…… 생각만 하다 20년이 흘렀어. 떠나기 전에 한 번은 생각해 봤지만 더 할 필요는 없었어."
    아버지가 고통스럽게 말을 이었다.
    "끝에 다다랐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그녀를 만난 순간."
    "확신인가요?"
    "자신이 있었어. 이룬 걸 전부 내려놓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 어떤 상처나 고통도 이겨낼 수 있을 거란 자신. 애정 없는 삶을 20년이나 살아 봐서 그 고통도 잘 아니까."
    나는 윤주를 떠올렸다. 그녀가 없는 삶을 20년 동안 산다고 생각해 봤다. 삶이 끔찍해지면서 모든 의미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돈을 벌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며 사는 것의 의미가. 내가 어떤 멋진 생각과 올바른 행동을 해도 그 안에 영양분이 쌓이지 않아서 나무가 자라지 않을 것 같았다. 맛있는 걸 먹고 좋은 책을 읽는 시간들은 어디에도 흔적이 남지 않고, 가 닿지도 못한 채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말 것 같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무모하다 하겠지.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선택이었다고도 하겠지. 그래도 난 현재에 만족하고 후회하지 않아."
    어느새 아버지의 목소리는 단단해져 있었다.
    "난 내 삶을 살고 싶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야. 아무리 비난해도. 사는 것 같거든. 밥도 맛있고 물도 맛있는 삶이면 된 거 아니겠니. 잠을 잘 자면 좋은 인생 아니겠니."
    아버지가 숨을 가다듬었다.
    "다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면 돼. 그리고 행복하면 돼."
    사실 아버지는 서재에 틀어박혀 미간을 찌푸리며 책을 읽던 모습보다 확실히 편하고 안정되어 보였다. 불면증 때문에 아버지는 커피는 입에 대지도 못하고 대신 따뜻하게 데운 밍밍한 우유를 억지로 마시며 살았다. 그때의 아버지는 늘 위태롭고 불안해 보였다. 아버지가 지금처럼 유연한 사람이었다면 나는 아버지한테 좀 더 살가운 아들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스무 살이 되던 무렵으로 기억한다. 대학에 들어가고 몇 달 안 됐을 때니까 바깥 풍경은 벚꽃이 한창이었을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이 생겨서 아버지 서재에 노크도 없이 불쑥 문을 열고 들어간 적이 있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라 아버지가 서재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방은 불까지 꺼진 상태였다. 책상의 독서등을 켜고 서가 쪽으로 다가갔을 때 베란다 난간 하단에 두 발을 올린 상태로 상체를 구부리고 있는 아버지를 봤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베란다 문을 열며 아버지, 하고 부르자 아버지는 어, 바람 좀 쐬려고, 라고 말했다. 그러고 바로 이어 벚꽃도 좀 보고, 라고 읊조렸다. 밤에 16층 아파트에서 벚꽃이 보일 리 없었다. 바람이라 해도 그건 바람을 쐬려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라 바람 속으로 뛰어들려는 사람의 외로운 뒷모습이었다. 나는 아버지 옆에 한참을 서서 계속 말도 안 되는 이상한 농담을 던졌던 것 같다. 무슨 말을 하는지 나조차도 몰랐지만 심장이 뛰는 것처럼 목소리가 떨리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평소 농담을 주고받던 부자 사이가 아니었기에 아버지는 희미하게 웃으며 두 발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제 보니, 너도 농담 좀 하는 놈이었구나.
    그날 이후 나는 책을 빌리러 간다는 핑계로 아버지 서재에 노크하지 않고 자주 불쑥불쑥 쳐들어갔고, 아버지한테 나는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아들이 되어 있었다. 실은 서가에서 집어온 책을 한 권도 읽은 적이 없는데도. 다만 나는 매일 아버지를 감시하던 그 불안의 책이 줄어들기를 바랐고, 내가 지쳐 갈 즈음 아버지는 다른 방식으로 바닥에서 두 발을 떼고 바람 속으로 가볍게 몸을 던졌다. 아마도 나는 그때부터 안심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원하는 건 자유가 아니었을까. 자신이 머물고 있는 삶이 감옥이라면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죽거나 탈옥하거나. 떠난 아버지가 한 번씩 원망스럽고, 죽이 잘 맞는 어머니와 조부가 아버지에게 험한 말을 퍼부을 때면 나는 고개 숙인 채 난간에 위태롭게 서 있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면 다 괜찮아졌다. 무슨 짓을 하든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어떤 죄를 지었든 다 용서가 된다고. 어머니와 조부도 난간 앞에 서 있던 아버지의 그 뒷모습을 봤다면 나처럼 괜찮아졌을 것이다.
    그날, 아버지 말대로 베란다에서 벚꽃을 보려고 했던 거라면 아버지는 해마다 한밤중 남몰래 먼 데서 벚꽃을 훔쳐보는 것으로 봄을 견뎌 오고 있었으리라. 나는 환한 대낮에 벚나무 아래 자유롭게 서서 향을 맡던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이젠 좋아해서 좋아졌어요?"
    "더 좋아졌어."
    아버지가 손으로 벚꽃을 받았을 때처럼 웃었다.
    "봄뿐만 아니라 한겨울에도 꽃이 피어."
    "다행이에요."
    "봄이 왔는데도 행복하지 않다면 그 사람은 진짜 불행한 사람인 거야."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즐겁게 나이를 먹어 생긴 주름 같았다.
    "열 번의 봄은 열 번 환생한 느낌을 주었어."
    질척질척한 현실 속에서도 다행히 아버지의 삶에 영화 같은 장면들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한테 그녀의 사진을 한 번만 더 보여 달라고 했다. 다시 보니 서로를 의지하고 있는 사진 속 두 사람은 닮은 것 같았다. 내 기억 속 근엄했던 아버지가 아닌 지금이 진짜 아버지였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러자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으면 앞으로 닥쳐올 더 많은 복잡하고 어려운 진실을 이해하게 되리라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현명했다. 10년 전이었다면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의 삶이든 10년의 삶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아버지가 시계를 봤다. 다시 여기의 봄을 떠날 시간이 온 것이다. 패스트푸드점에 3시간 가까이 앉아 있어 본 건 처음이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버지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을 치우고 출국 준비를 하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아버지는 셀프체크인기기 앞에서 출국 절차를 끝내고 탑승구로 가서 줄을 섰다. 뉴욕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버지 혼자 보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아버지와 포옹을 했고, 아버지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오늘 아버지와 처음 해보는 게 너무 많았다. 함께 벚꽃을 보고, 마주 앉아 소고기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포옹을 하고, 거칠어진 손을 잡은 것까지. 아버지에게 봄이 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는 봄을 가볍게 마주 볼 수 있게 되어서였다. 아버지의 그, 아니 그녀와 함께.
    길었던 줄이 점점 짧아지고, 아버지는 사람들 속에 섞여 탑승구로 사라졌다. 위태롭지 않은 뒷모습이 '한 점'처럼 작아질 때까지 지켜보다 나는 천천히 탑승구에서 돌아섰다. 공항의 높고 거대한 유리창을 통해 바깥의 계절이 보였다. 나는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아버지의 것이 된 그것을 쳐다봤다. 그날도 아버지는 오늘과 똑같은 표정으로 여기의 봄을 떠났을 것이다. 비장하거나 단단하지 않고, 그렇다고 무수한 내 상상 속 어떤 표정도 아닌 아까 그 표정으로.

 

 

 

 

 

 

 

 

 

 

 

 

 

 

 

 

 

장은진

작가소개 / 장은진

1976년 광주에서 태어나 200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와 2004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데뷔했다. 소설집 『키친 실험실』, 『빈집을 두드리다』, 『당신의 외진 곳』, 장편소설 『앨리스의 생활방식』,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날짜 없음』이 있다. 문학동네작가상·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문장웹진 202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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