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과 사물 외 1편

[신작시]

 

 

사물과
사물

 

 

한재범

 

 

 

    한옥마을을 지나 한국에서 가장 한국적이라는 도시를 지나 점차 사람이 적은 곳으로 간다 텅 빈 고속도로를 타고 엇박자의 배기음을 들으며 내 옆의 그가 연신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고 불편한 조수석 과한 히터 도로 양옆으로 숲이 펼쳐졌고 숲 속에는 무언가 있다 퍽퍽 눈이 쌓이고

 

    그 겨울은 기록될 만한 추위였다
    죽고 싶을 만큼

 

    살 수 있을 만큼만 살기로 다짐했다 대도시로 간 건 실수였지 그곳엔 이미 사람들 사이에 숨으려는 이들이 많았다

 

    항상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자 그가 말한다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죠 그는 내 나이에 공장을 다녔다고 했다 너무 많은 걸 일찍 봐버렸다고

 

    공장단지의 조용한 사고사
    기계는 무섭게 움직이고
    그뿐이다

 

    멈춘 기계를 상상해 봐 그건 이미 세기말의 풍경 한밤의 야산 무언가 툭 튀어나올 것 같지 죽은 것이든 산 것이든 헤드라이트를 켰다 밟지 않기 위해서

 

    더는 길이 보이지 않아
    멈춰야겠어

 

    차에서 내려 뒤를 돌아본다 새하얀 도로 가운데 그어진 검은 선 우리의 흔적이다 그는 자랑스러워하고 나는 추위에 떨리는 몸을 가만 둘 수 없다

 

    숲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가슴을 두드리며 그가 말한다

 

    쌓인 눈도 버려진 양철도 녹슨 가드레일도 야생동물 출현 주의도 저 멀리 공장단지의 불이 꺼지는 것도 주인 없는 무덤도 전신주도 우리가 내린 차가 흔들리는 것도 나무들도 모두

 

    이젠 알 것 같다
    숲의 정해진 규격을
    어디까지를 숲이라고
    할 수 있을지를
    그저 아는
    사람이 되어 간다

 

    그가 여전히 가슴 두드린다 기계적으로 쿵쿵 의무적으로 펌프질과 심장 엔진과 안전벨트 살아 있기 위해 역사적인 추위 속에서 나는 듣는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손의 역할

 

 

 

 

    카페에 앉아 있는데 웬 아줌마가 떡을 줬어

 

    애인의 말은 늘 뜬금없이 시작되고

 

    오늘이 부활절이래 남이 부활한 날을 왜 우리보고 기뻐하라는 거지 나도 부활하고 싶다

 

    애인은 장난치고

 

    옆 테이블에서 〈네 저 그 환자 보호자 되는데요 산소호흡기 떼주세요 네〉 남의 통화소리가 들리고

 

    지금 내가 쥔 떡은 네가 준 떡

 

    포장지를 뜯어 냄새를 맡았다 상한 밥 냄새 내가 너무 오래 쥔 걸까 아님 네가 너무 오래 쥔 걸까 그 아줌마일까

 

    떡이나 밥이나 상하면 그런 냄새가 나 너도 알지 혼자 남은 집 냄새 너도 알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냄새가 무슨 냄새인지

 

    잘 떠오르지 않아서 문득 내 몸 냄새를 맡게 되고

 

    이미 굳어버린 떡은 부활하거나 하지 않는다 내 손에 쥔 떡은 그저 내 손에 쥔 떡이다

 

    떡의 부활 같은 걸 바라는 사람은 없겠지 누군가의 손안에서 떡은 신의 몸을 형상화한 어떤 것도 될 수 있다던데

 

    나는 혼자 카페에 남았다 신도 카페에 앉고는 생각했을 거다 아이스티를 시켜 놓고 이젠 더 이상 손쓸 수 없다고

 

    손쓸 일이 없어 떡만 쥐고 있다 떡이 부활하길 바라듯이 아무거나 믿고 싶어서 믿는 사람처럼

 

    애인은 집에 가서 손을 씻고 오늘 쓴 글을 확인하고 오늘 받은 떡을 기억하거나 하지 않는다

 

    잠이 들기 전까지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남은 음식 되살리는 법〉 같은 영상 링크를 내게 보내온다

 

    이것은 사랑이구나 조회 수 십만의 영상이 그렇게 말한다

 

 

 

 

 

 

 

 

 

 

 

 

 

 

 

 

 

한재범 작가소개 / 한재범

2019년 창비 신인문학상 시 부문 등단.

 

   《문장웹진 202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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