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는 그 자리에

[단편소설]

 

 

은행나무는 그 자리에

 

 

안준원

 

 

 

    푸마가 옷장 안으로 들어갔다. 겨울옷을 정리하고 봄옷을 꺼내려 한동안 옷장 문을 열어 두었는데 그사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야옹거리는 소리가 들려 안을 살피니 리빙박스 밖으로 삐져나온 회색 꼬리가 보였다. 대체 여기는 어떻게 들어간 거지. 꼬리를 잡아당기자 푸마가 엉거주춤 끌려 나왔다.
    푸마가 끌려 나올 때 색이 바랜 후드 재킷 하나가 같이 딸려 나왔다. 우연히도 푸마(PUMA) 옷이었다. 옷을 펼치니 가슴팍에 큼지막하게 박힌 브랜드 로고가 보였다. 로고를 감싼 원의 둘레를 따라 'Go forward'라는 말과 '1984'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걸 보았을 때야 경진이 선물한 옷이라는 걸 깨달았다. 1984는 내가 태어난 해였다. 하지만 경진에게 선물 받을 때는 그런 생각은 하지 못하고 '조지 오웰?' 하고 물었었다. 그때 경진은 눈을 흘기며 '넌 네 생년도 모르느냐'라고 타박했다. 한창 복고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Go forward'와 '1984'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복고 열풍에 편승한 디자인이라는 것만은 한눈에 드러났다. 경진은 그 로고가 70~80년대에 사용된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때가 이 회사 황금기였던 건가?"
    "아마도?"
    "복고가 유행인 건 얘네나 우리나 똑같나 보네."
    내가 말했을 때 경진은 '그쪽도 사는 게 힘든 거지.'라고 대꾸했었다.
    재킷은 아마 대학로에서 당인동으로 이사할 때 겨울옷들 사이로 밀려들어갔을 테다. 대학 동기 둘을 불러서 어영부영 짐을 싸고 1t 트럭에 아득바득 싣던 기억이 난다. 재킷이 겨울옷들 틈에서 잠을 자는 사이 십 년이 흘렀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핸드폰을 2~3년마다 한 번씩 최신 기종으로 교체했다는 사실과 그러는 동안 직장도 서너 번 바뀌었다는 사실 말고는 내 주변에서 무엇이 대체 얼마나 바뀌었는지 명확히 체감되는 것도 없다. 다시 복고 열풍이 부는 것도, 이제는 복고가 아니라 레트로란 말을 즐겨 쓴다는 것도 영 먼 나라 이야기인 것만 같고.
    그쪽도 사는 게 힘든 거지.
    당시엔 흘려듣고 만 경진의 그 말이 자꾸 떠오르는 건 왜일까. 정말 사람들은 사는 게 힘들어서 과거로 빠져드는 걸까. 과거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사는 나는 그럼 지금 전혀 힘들지 않은 거야? 과거에 안주하는 것과 과거를 반추하는 데에는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선생님. 푸마는 혀로 제 털을 고를 뿐 아무 대답이 없다. 누가 그랬었지. 고양이는 현재만 산다고. 존경합니다, 선생님.
    어느새 발라당 드러누운 푸마 곁에 앉아서 재킷에 묻은 털을 골라내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화면에 뜬 이름을 한참 쳐다봤는데도 누구인지 선뜻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익숙했다.
    "형, 오랜만이에요."
    보훈은 스스럼없이 내 안부를 물었고 자기 할 얘기를 했다.
    "오실 거죠? 꼭 오세요. 형 이름으로 두 장 해놓을게요."
    통화를 마치며, 나는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갈 이유가 없었다. 갈 이유가 없다는 근거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초라해졌고 결국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데 이르렀다. 그래, 가서 술이나 사주자. 그렇게 생각하며 스케줄러에 일정을 입력했다.
    일요일 오후 3시. 아르코 소극장.
    스케줄러를 닫고 나서 보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두 장 말고 한 장.
    보훈은 'ㅋㅋㅋ'라고 한 뒤 한가운데 자리로 한 장 마련해 두겠다고 했다. 이때 아니면 언제 센터가 돼보시겠냐며. 몇 년 만의 연락인데도 스스럼없이 구는 태도가 밉지 않았다. 적당한 이모티콘을 골라 보낸 뒤 보훈의 프로필을 눌러 보았다. 포스터가 보였다. 한가운데 비상구 표시가 큼지막했고 그 아래에 'EXIT' 대신 '출구 없음'이란 연극 제목이 쓰여 있었다. 가만 보니 녹색 인간은 문 밖으로 나가려는 게 아니라 들어오는 중이었다. 양발에는 흰색 캔버스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수료'가 아닌 '졸업'을 하려면 토익이나 토플 따위의 어학 시험을 치러 학교가 정한 기준선을 넘어야 했다. 대학을 졸업하는 데 어학 시험 성적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우습게 여겨졌다가 나중에는 화가 났다. 내가 왜? 나는 외국에 나가 살 것도 아니고 그런 성적이 필요한 곳에 취직할 생각도 없는데 대체 왜?
    그러니 '오퍼'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그게 대체 무엇인지 제대로 묻지도 않고 승낙한 건 아무래도 토익 때문이었다. 토익 시험을 치르고 나왔을 때 고등학교 동창이 전화를 걸어와서 자기 학교 선배가 이번에 극단을 하나 만들어서 공연을 올리는 데 오퍼를 찾고 있다고 했다.
    "극장이 너희 학교랑 가까워. 그리고 너, 학교에서 연극도 해봤잖아?"
    친구는 연극을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투로 말했고, 그 말을 듣자 비록 학내 소모임이지만 연극을 해봤다는 사실이 자랑으로 여겨졌다. 그래, 나는 연극을 해봤지. 배우로 몇 차례 무대에 올랐고 어설프지만 대본도 써봤지. 곧장 토익 따위를 보고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의식이 싹텄고, 내가 다른 이들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라는 생각이, 토익의 세계가 저쪽에 있다면 나는 거기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서 있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졌다. 나는 무대 위에 선 사람이었다. 조명이 떨어지는 무대 위에. 망설임 없이 휴학계를 내고 친구가 준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반갑다. 잘해 보자."
    극단 대표 겸 연출은 호탕했고 거침없었다. 나를 보자마자 손을 잡고 흔들었고 그것으로 나는 오퍼레이터, 그들 세계 말로는 '오퍼'가 되었다.
    "잘 봐. 오퍼가 잘해야 배우들도 사니까."
    그는 내게 그 한 마디만 던져 놓고서 연습에 몰두했다. 소극장 객석 한구석에 앉아 아직 무대에 오르기 전의 공연을,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낱낱이 지켜보는 일은 적잖이 설렜다. 그들은 '프로'였고, 프로 배우들의 날것 같은 움직임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특권과도 같았다.
    연습을 단 한 번 본 것만으로도 나는 곧바로 그들 세계에 소속됐다. 삼 분간 독백하는 배우의 맞은편에 선 배우가 자기 얼굴을 훔치며 '야 이 새끼야, 침 좀 그만 튀겨.'라고 말했을 때 모든 이들이 웃었는데, 나도 자연스레 따라 웃는 동안 내가 '살아 있는 세계'로 들어왔다는 강렬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침이 튀기는 세계, 대사를 '친다'라고 말하는 세계, 연습이 끝나면 흘린 땀을 보충하듯 술을 마시는 세계로.
    "보니까 어땠어?"
    연출은 술자리에 앉자마자 내게 물었고 나는 연습을 보며 느꼈던 점들을 시시콜콜 신이 나서 말했다. 이 부분은 정말 좋았고 이 부분은 잘 이해가 안 갔다. 이 부분의 서사가 좀 보완됐으면 좋겠다……. 내가 말하는 동안 사람들은 반쯤 놀란 표정이 되었고 그러다 점점 웃는 낯으로 바뀌었다. 말을 끝마쳤을 때 가장 나이 많은 배우가 말했다.
    "얘 누가 뽑은 거야?"
    불만이라는 투였고 나는 순간 주제도 모르고 나섰다는 생각에 바싹 긴장했다.
    "잘 뽑았네."
    이어진 그의 말에 다들 웃었다. 웃은 뒤에는 술 마시는 게 당연하다는 듯 모두 잔을 비웠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만취하긴 처음이었다. 만취해도 된다는 생각이,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도 처음이었다. 그건 나를 내어주어도 좋다는 마음이었다.
    경진을 만난 건 그다음 날이었다. 연습은 네 시 시작이었지만 나는 일찌감치 극장으로 갔다. 대표가 극단을 차리고 단원을 뽑은 뒤 명륜동 한구석의 건물 지하 1층을 임대해 다 같이 만들었다는 극장은 총 95석이었다. 1번부터 46번 좌석까지는 뒤에 사람 이름이 가나다순으로 적혀 있었다. 막판에 객석 만들 돈이 모자라자 대표는 좌석 하나당 2만 5천 원씩 기부 받고 대신 좌석 뒤에 기부자의 이름표를 달아 주었는데 46명이 참여한 것이었다. 대다수는 대표나 배우의 지인이었다. 건물 1층으로 올라와 현관을 나서면 곧장 커다란 은행나무가 보였다. 수명이 몇 백 년은 족히 될 법한 나무는 늘 시든 잎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어서 죽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잎은 많아서 여름에는 너른 그늘을 만들어주었고 배우들은 그 아래서 담배 피우는 걸 좋아했다.
    반갑게 인사해 줄 사람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극장 문을 열었으나 아무도 없었다. 당황해서 다시 나가려 할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소리가 들려온 쪽을 쳐다보니 누군가 객석 열과 열 사이에 누운 채 고개를 치켜든 게 보였다.
    "아, 저, 오퍼인데요."
    내 대답에 상대는 눈살을 찌푸리며 '음향? 조명?' 하고 물었다.
    "그건 아직 잘 모르겠는데요."
    "아, 음향이겠구나."
    덮고 있던 모포를 젖히며 완전히 몸을 일으킨 상대는 자신을 조연출이라고 소개했다. 손목에 찼던 머리끈을 빼서 뒷머리를 질끈 묶는 동작이 간결했고 '프로'처럼 보였다. 경진이었다. 통성명을 마치자마자 경진은 물었다.
    "식사했어요?"
    점심을 말하는 것이라면 일찌감치 먹었고 저녁을 말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먹지 않았을 때였다. 대답을 망설이고 있을 때 경진이 앞서 나가며 말했다.
    "가죠. 달아놓고 먹는 데가 있어요."
    극장 근처 백반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배우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반겨 주었다. 왔어? 어제 많이 마셨지? 잠은 잘 잤어? 피똥 싼 건 아니고?
    신을 벗고 올라가 누른 장판이 깔린 평상에 앉았다. 앉자마자 경진이 물었다.
    "술 잘 마시나 봐요?"
    '잘은 아니고…….'라고 대답하고 있을 때 경진이 '이모, 여기 백반 두 개요.'라고 외쳤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자 배우가 음식을 채 삼키지도 않은 채 말했다. 침을 잘 튀기던 배우였다.
    "대사 겹치게 치지 말랬지."
    "네네, 대배우님."
    경진이 지겹다는 듯이 대꾸하며 내 앞에 수저를 놓았다. 순전히 '백반'만 파는 가게에 오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무엇이 나올지 알 수가 없어 옆을 힐끗 보니 거의 다 비워진 찬 그릇들 사이에 큰 접시가 놓인 게 보였다. 위에 아무것도 없고 접시도 깨끗해서 대체 뭐가 놓였던 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접시를 쳐다보고 있는 걸 눈치 챈 남자 배우가 물었다.
    "후라이 좋아해?"
    "네?"
    "좋아하면 두 개 달라고 해."
    그렇게 말한 그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서 주방 쪽을 향해 외쳤다.
    "이모, 여기도 후라이 두 개씩."
    달걀프라이가 배우들의 주된 단백질 보충원이며 연출이 백반집에 특별히 부탁해서 달걀프라이를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해놓았다는 건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배우들이 늘 서너 시쯤 '달아놓고' 먹는 식당에 와서 점심 겸 저녁을 먹고 나서 극장으로 간다는 것도, 그 공짜 밥을 주느냐 마느냐가 출연료를 주느냐 마느냐보다 중요하단 사실도. 달걀프라이 때문에 연출과 백반집 사장이 싸운 건 훨씬 나중 일이다.

 

 

    정해진 타이밍에 약속된 음악을 틀고 끄는 일은 내가 이제껏 배워 온 그 어떤 일보다 단순하고 쉬웠다. 환이 형이 – 침을 잘 튀기는 형 – 나 같은 '고학력자'가 노동력을 낭비하고 있다고 농담할 만큼.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껏 해온 그 어떤 일보다 잘 해내고 싶었다. 내게 학력(學力)이란 게 있다면 그것을 다 바쳐서라도. 극장이 학교 근처라는 것도 운명처럼 느껴졌다.
    연출은 배우와 관객이 음악을 음악으로 분리해서 느끼지 않고 극이라는 총체의 유기물로 느끼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이상적인 음향 오퍼레이션이라고. 나는 그 점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때로 오퍼 일을 하고 있을 때면 마치 내가 무대에 선 것처럼 느낄 만큼.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배우였다. 내가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배우의 연기가 살아나느냐 죽느냐가 결정되는 팬텀. 당시 내 목표는 연극계 최고의 오퍼가 되는 것이었다. 대학로 모든 극단이 와달라고 아우성치는 음향 오퍼계의 신!
    내가 그렇게까지 생각한 건 함께하는 이들이 좋았고 그들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차원에서였고 사실은 경진 때문이었다. 내가 오퍼계의 신을 꿈꾸는 새싹이었다면 경진은 이미 조연출계의 신이었다. 연출이나 배우들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그런 경진에게 잘 보이고 싶었고, 그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일을 잘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요. 전에 오퍼 해봤죠?"
    경진이 그렇게 물은 날 나는 정색하며 '맹세코 이번이 처음'이라고 대답했다.
    "정말?"
    경진이 놀랍다며 되물었을 때 내 심장은 가로로 길게 늘어져서 입 꼬리를 올린 채 웃고 있었다. 가슴 한가운데 피가 몰려서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뭐라 대꾸해야 자연스러울지 –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해야 할지 부끄럽다는 듯이 말해야 할지 아니면 아무 말 없이 서구식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당시 유행하던 '쿨'함을 뽐내야 할지 – 망설이고 있을 때 연출이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소리쳐 물었다.
    "경진아. 장소 알아봤어?"
    경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세 군데를 열거했다. 여기는 가깝고 가격이 싸다는 게 장점이지만 방이 하나뿐이라는 게 단점이다. 여기는 좀 멀고 조금 비싸지만 새로 지어져서 쾌적하고 방도 세 개나 된다. 여기는 적당한 거리에 가격도 적당하고 방은 하나지만 화장실이 세 개다.
    단순히 엠티 장소를 알아본 거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 경진이 말하니 어딘가 달라 보였다. 특히 '너라면 어디 가겠어?'라는 연출의 물음에 '저라면 바다 보이는 데 가죠.'라고 대답했을 때, 무대 위에서 몸을 풀던 배우들이 모두 반색하며 '바다?'라고 외치는 것을 보며 나는 경진이 이미 장소를 정해 두었고 이런 상황이 펼쳐지리라는 것도 이미 다 예상했음을 직감하고는 속으로 감탄했다.
    "거기가 어딘데?"
    연출이 묻자 경진은 '화장실 세 개인데요.'라고 대답했다. 모든 이들이 열광했다. 바다가 보이는데 화장실도 세 개라고? 기찬아, 너 화장실 문 잠그고 자도 상관없겠다. 그냥 가자마자 화장실 하나 내줘. 밤바다에 소주를 먹어 말아? 말아 먹어! 바닷물도 마시자! 당장 가자!
    바다가 보이긴 했으나 바다까지 가려면 한참을 걸어 나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배우들은 '야, 이경진 너 우리 속였어?'라고 책망하듯 말했으나 그렇다고 즐거운 기색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경진이 대꾸했다.
    "이따 밤에 맨정신인 사람만 가는 거예요."
    다들 자기는 갈 거라고 장담했지만 입실하자마자 술을 마시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무도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섯 시가 채 되기 전에 뻗는 사람들이 나왔다. 기찬은 한번 구축한 자기 캐릭터를 포기할 수 없다는 듯 진짜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잠들었고, 문도 잘 잠갔다. 문제는 그가 들어간 곳이 가장 큰 화장실이라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세상에 종말이 찾아온 듯 얼른 작은 화장실로 옮기자며 열쇠를 찾아 아우성치던 이들이 금세 포기하고 '그래도 두 개 남았네.'라고 말하며 자축하듯 건배하는 걸 보며 나는 저들이 연기하는 건지 단순히 취해서 저러는 건지 구별할 수 없었고 그 점이 좋았다. 연기면 어떻고 취한 거면 어때. 삶이 연기고 연기가 곧 삶이라잖아. 휙, 사라지고 마는 연기 같은 거.
    마지막 말은 우리가 보름 뒤에 올릴 공연에 나오는 대사였다. 조선 시대 내시와 후궁들이 한 왕을 놓고 모략과 사랑싸움을 벌이던 중 비차(飛車)를 보게 되는데 그 순간 마리화나에 취한 중전이 뱉는 말. 중전 역을 맡은 수미 누나는 그 대사를 좋아했고 대본에는 나오지 않는 그다음 말을 술자리에서 하길 즐겼다.
    흩어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
    연출은 엠티가 진행되는 내내 배우들을 한 명씩 붙잡고 앉아 그가 맡은 인물과 연기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연출을 거쳐 간 배우들은 여지없이 쓰러져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경진이 중얼거렸다. 원 바이 원.
    원 바이 원에 경진은 포함되지 않았다. 나는 그때까지 경진이 취한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술을 적게 마시는 것도 아닌데 늘 맨정신을 유지했고 끝까지 살아남아 배우들을 택시 태워 보냈다. 어쩌면 그게 조연출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인지도 몰랐다. 술자리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것. 연출은 연습 뒤의 술자리에서 배우들과 그날의 연습을 두고서 대화하다가 '디렉션'을 주기 일쑤였는데 경진은 그것을 다 메모했다가 다음날 배우들에게 상기해 주었다. 연출이 술집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다가 '어? 이 음악 괜찮은데?'라며 이러이러한 장면에서 써보자고 말하면 그것 역시 메모했다가 내게 일러주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나한테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경진이 있는 술자리에는 나도 늘 있었고, 경진이 가기 전에는 나도 가지 않았으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경진이 하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분담해서 하게 되었다. 술 취해서 제 발로 잘 걷지도 못하는 남자 배우를 택시 태워 보내는 일이라든가 연습에 늦게 와서 미처 식사하지 못한 배우를 위해 참치김밥과 요구르트를 사오는 일이라든가. 처음에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던 경진도 나중에는 고맙다고 말하며 그런 일들을 내게 맡겼고, 나중에는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고마운 일을 굳이 고맙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되었다.
    아홉 시가 되었을 때 살아남은 건 연출과 경진, 그리고 나뿐이었다. 연출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경진을 쳐다보며 말을 꺼내려 할 때 내가 끼어들었다.
    "연출님. 무경이랑 국이랑 싸우는 장면에서도 음악이 하나 필요하지 않을까요? 둘이 서로 사랑한단 걸 처음으로 깨닫는 장면인데 음악이 없으니 뭔가 허전해서……."
    연출은 '그래, 좋아. 있어야지, 음악.'이라고 말하고는 나를 자기 옆에 앉혔다. 그러더니 대뜸 물었다.
    "내 단 하나의 소원 알아?"
    "네? 소원이요?"
    "블루드래곤 몰라?"
    푸른 용을 타고 나는 게 소원이라는 건가. 그런데 갑자기 소원은 왜. 어떻게 대꾸해야 좋을지 망설이던 찰나 연출이 내 유머 감각을 시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레드 드래곤이 좋아요. 타면 엉덩이가 따뜻할 거 같아서요.'라고 말하기로 결심하고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려 할 때였다. 연출이 갑자기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단 하나의 소원. 저녁녘 고요 속 바닷가로 돌아가고파. 숲 가까이서 조용히 잠들고 싶어…….
    "내 베개 밑에서 슬퍼할 자는 아무도 없고 마른 잎 위를 스쳐가는 가을바람 소리뿐."
    노래를 끝마친 연출은 앉은 채로 잠들었다. 한없이 열정적이며 누구보다 사람과 삶을 사랑하는 그가 그토록 고독해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꼭 고독하려고 태어난 사람 같았다.
    "저기, 연출님."
    내가 어찌해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하고 있자 경진이 그의 옆에 방석 두 개를 붙여 깔더니 그 위에 그를 눕혔다.
    한숨을 크게 내쉰 경진은 아무 말도 없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밖으로 나갔다. 평소였다면 당연히 따라 나갔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사람들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다가 불을 다 껐다. 창으로 어스름한 달빛이 스며들자 술상 위에 놓인 온갖 것의 형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빈 술잔, 가득 찬 술잔, 말라붙은 쟁반국수, 양초처럼 굳은 고기 기름, 젓가락 사이에 낀 라이터, 소주병에 꽂힌 숟가락……. 자제했으나 그렇다고 술을 적게 마신 건 아니었다. 갑자기 취기가 올라오며 사물들이 아득히 멀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때 경진의 선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은 왜 껐어?"
    경진은 현관에 서 있었다. 열린 문틈으로 서늘한 바람이 들어왔다.
    "가자."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내가 술을 자제하며 끝까지 살아남은 이유. 바로 경진과 단둘이 밤바다를 보는 일.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외투를 챙겨 입고 있을 때 기찬이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발간 눈으로 우리 둘을 쳐다보던 그는 갑자기 화를 냈다.
    "뭐야? 왜 나 안 깨웠어?"
    그는 우리가 저만 남겨 놓고 밤바다를 보고 돌아온 줄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검지를 입에 갖다 대며 '쉿' 하고 신호를 주었을 때야 주변을 둘러보고 상황을 깨달았다. '아' 하며 깨달음의 소리를 낸 기찬은 눈치 없게 우리를 따라나서려 했고, 외투를 가지러 가다가 바닥에 누워 있던 배우에게 걸려 넘어졌다. 그 소리에 시체들이 하나둘 깨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비닐봉지에 술과 안주를 싸든 시체 군단이 외쳤다. 가자, 바다로!
    요란법석에도 연출과 환이 형은 끝내 깨지 않았다. 하지만 바다에 거의 다 왔을 때쯤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환이 형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은 당신의 숨소리처럼 가만히 다가와 나를 감싸고."
    "저 형 또 저러네."
    기찬이 혀를 차더니 다음 구절을 불렀다.
    "별빛은 어둠을 뚫고 내려와 무거운 내 마음 투명하게 해."
    그러고 나서 합창이 시작됐다.
    땅 위의 모든 것 깊이 잠들고. 아하! 그 어둠 그 별빛! 그댈 향한 내 그리움 달래어 주네. 꿈속에서 느꼈던 그대 손길처럼.
    옆을 보니 경진도 따라 부르고 있었다. 오직 나만 그 노래가 무엇인지 몰랐다. 그런데도 아는 척 따라 흥얼거렸다. 마지막 구절은 이미 정해진 대본이 있는 듯 환이 형 차지였다. 갑자기 모두 노래하길 멈추었고 환이 형이 노래를 마무리했다.
    "당신은 그렇게도 멀리서 밤마다 내게 어둠을 내려 주네. 밤마다 내게 별빛을 보내주네."
    어느새 우리는 횡으로 길게 늘어서서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래와는 달리 별빛은 없었다. 어둠과 파도소리뿐이었다. 시간은 더디다가도 빠르게 흘렀다.
    가져온 술이 동났을 때쯤 동이 터왔다. 정신을 차려 보니 대체 누가 가져왔는지 커다란 우산 하나가 펼쳐진 채 모래사장에 꽂혀 있었고, 햇살을 피하듯 배우들이 그 아래 얼굴만 들이민 채 부챗살처럼 펼쳐져 잠들어 있었다. 경진은 그 옆에 앉아 세운 무릎을 껴안고 해가 떠오르는 쪽을 바라보았다. 옆으로 다가가 말했다.
    "누나. 나 담배 좀 줄래?"
    경진이 웬일이냐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더니 바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담뱃갑을 꺼냈다. 안에 딱 한 개비가 남아 있었다. 경진은 한참 동안 마지막 남은 한 개비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담뱃갑째 내밀었다. 나는 받지 않았다. 경진은 그러지 말라며 얼른 피우라고 했다. 몇 번의 실랑이가 오갔다. 나는 고백했다. 사실 한 번도 피워 본 적 없다고. 내 말을 들은 경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실소했다.
    그 한 개비를 우리는 나눠 피웠다. 경진은 친절하게 담배를 폐까지 빠는 법을 알려주었다. 입담배 피우는 놈이 '돛대'의 가치를 훼손하게 둘 순 없다며.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나는 기침을 하지 않았고, 경진은 기대했던 장면이 펼쳐지지 않자 아쉽다는 투로 정말 처음 피우냐고 물었다. 내가 맹세코 이번이 처음이라고 답했고, 우리 둘은 이 비슷했던 예전 일을 동시에 떠올리고선 함께 웃었다.
    "부럽네. 처음 하는 일도 다 잘하다니."
    나는 경진의 그 말에는 따로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괜히 '좋다'라고 말하며 양손으로 모래를 집고선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경진이 자기 오른손을 내 왼손 위에 겹쳤다. 심장이 폭발할 듯 뛰었으나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뒤집은 나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를 따라 경진의 손이 밀려드는 걸 느꼈다. 깍지 낀 우리 두 손은 바싹 말라 있었다.
    우리는 엄지로 서로의 건조한 손등을 쓰다듬었다. 그러는 동안 둘 다 아무 말이 없었다. 경진은 모래알을 내 손등에 대고 검지로 동그랗게 굴리는 장난을 쳤다. 내가 이대로 모래가 되어 흩어져도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뒤에서 연출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 배신자 새끼들! 나만 두고!"

 

 

    극단의 첫 작품은 그럭저럭 잘 되었다. 관객석이 매번 반쯤은 찼고 주말 공연 몇 차례는 매진되기도 했다. 별 수익을 내진 못했지만 극단 이름을 알리는 좋은 기회였다고 자평한 연출은 반년 새 두 차례 더 공연을 올렸다. 그러는 동안 관객은 점점 더 줄어들었고 내 오퍼레이션 실력은 거꾸로 점점 늘어 갔다. 연출이 '떡' 하고 말하면 '딱' 하고 알아들을 만큼. 하지만 연출이 말했던 이상적인 오퍼레이션에서는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엠티 이후 경진과 나는 단원들 몰래 연애했다. 하지만 채 한 달이 못 가 들통 났다. 경진은 조연출이면서 조명 오퍼도 겸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공연 때마다 좁은 오퍼실에 단둘이 있었는데, 공연이 끝나고 관객이 다 나갔을 때 몰래 입을 맞추다 환이 형한테 걸렸다. 분장도 안 지운 채 수건 서너 개를 한꺼번에 목에 두른 환이 형은 내게 '내일 수건 빨래 좀 부탁한다'고 말하려고 오퍼실로 왔다가 현장을 목격했다. 당황하지 않은 척 '집에 세탁기가 고장 나서'라고 말한 형은 돌아서며 한 손을 들어 올려 보였다. 우리는 그걸 비밀을 지켜주겠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멋있는 형이야.
    경진은 그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고 술자리에는 나만 갔다. 경진 대신 극장 뒷정리를 다 하고 나서 술집에 들어섰을 때 기찬이 큰 소리로 외쳤다. 형, 축하해요! 와, 대단해. 경진 누나랑. 와. 와.
    단원들 사이 연애를 엄격히 금하던 연출은 뒤늦게 – 반년이 지나서야 – 알고 나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너희는 배우가 아니니까. 그렇게 그가 우리 사이를 인정하자 배우들은 뒤늦은 축하 파티를 열어 주었다. 그날 파티의 하이라이트는 환이 형이 당시 최고 인기곡이던 아이유의 '좋은 날'을 부른 순간이었다.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을 '나는요 누나가 좋은걸'로 바꿔 부르는 그의 모습에선 평소 김현식을 좋아하고 누가 노래 부르길 요청하면 '어둠 그 별빛'이나 '도시의 밤'만 부르던 면모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노래에 모든 이들이 비명을 질렀고 하늘에 오징어 다리와 땅콩이 날아다녔다. 하지만 더 놀라운 장면은 그다음에 펼쳐졌다. 경진이 조용히 해보라고 외치더니 답가를 부른 것이었다. 경진은 '본능적으로'를 불렀다. 나를 바라보며.
    본능적으로 느껴졌어. 넌 나의 사람이 된다는 걸. 처음 널 바라봤던 순간 찰나의 전율을 잊지 못해…….
    그러고 나서 반년 뒤 경진은 입봉했다. 우리 극단이 아닌 다른 극단 작품으로. 경진이 따낸 예술지원 사업은 신진 연출가를 그와 가장 잘 어울리는 창작 집단과 알아서 연결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선정자가 원하는 집단이 있을 시 그 집단을 최우선으로 연결해 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경진이 사업에 선정된 사실을 밝히며 원래 맡기로 한 다음 작품의 조연출을 못 하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 연출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축하한다고 말했다. 배우들도 축하한다며 손뼉 쳐 주었다. 하지만 그들답지 않게 즐거운 기색은 없었다.
    경진이 못 하게 된 조연출 자리는 내가 맡게 되었다. 경진이 그랬듯 조명 오퍼 자리도 함께. 공석이 된 음향 오퍼를 봐줄 사람이 필요했고 연출은 내게 할 만한 사람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당시 갓 복학한 보훈을 떠올렸다. 며칠 전 내게 '형, 토익 안 보고 졸업하는 방법은 없어요?'라고 묻던 모습 때문이었다. 내 예상대로 보훈은 덜컥 하겠다고 했고 그로부터 반년간 우리 둘은 좁은 오퍼실에서 동고동락했다. 극단에 들어온 지 채 한 달이 되기 전에 보훈은 내게 말했다.
    "형, 저 졸업하면 뭐 할지 정했어요. 연극 할래요. 고마워요. 다 형 덕분이에요."
    나는 보훈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졸업하려면 토익부터 봐."
    그때만 해도 보훈이 설마 졸업하고 나서 진짜 연극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유명한 노랫말처럼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볼 수 있는 권한이 오퍼에겐 있었다. 그때 마주하는 정적과 어둠이 낭만과 쓸쓸함을 거쳐 권태로 느껴지는 날이 서서히 다가옴을 느낄 때였다. 그 시기가 보훈에게는 조금 더 늦게 찾아올 뿐, 결국엔 그도 은행원이나 증권사 직원이 되고 말 거라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 내내 꿈과 이상을 부르짖던 선배들이 졸업하자마자 자신에게는 더는 남은 꿈과 이상이 없으니 다른 이의 것이라도 팔아먹겠다는 듯 수(數)의 세계로 들어서던 것처럼.
    그사이 경진의 공연이 올라갔다. 우리는 공연 첫날 다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이 끝난 뒤 경진은 반갑게 우리와 인사했다. 하지만 술자리는 자기 공연 팀과 함께했다. 나중에 우리 쪽으로 넘어오겠다고 말했으나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오지 않았다. 배우들은 내게 경진한테 전화해 보란 말을 하지 않았다. 경진의 공연 얘기도 하지 않았다. 시켜 놓은 안주가 다 떨어졌을 때쯤 환이 형이 2차를 가자고 말했으나 아무도 따라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 순간 어느 날엔가 경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공연이 없던 월요일이었다. 자취방 바닥에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경진이 말했다.
    "지쳤어. 더 늦기 전에."
    뒤에 끊긴 말을 나는 묻지 않았다. 대신 손을 잡아 주었다.
    그맘때쯤 내 마음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즐겁기만 하던 단원들과의 술자리가 점점 재미없어졌고 공연이 끝나고 나면 다른 약속이 있다며 새어 나가는 일이 잦았다. 조연출이 어딜, 이라며 환이 형이 잡는데도 중요한 일이라며 빠져나와서는 경진의 집으로 갔다. 거기서 경진이 책상에 펼쳐 두고 나간 책을 읽었다. 경진은 자신은 하고 싶은 얘기가 없다고 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없어서 다른 사람이 하고 싶어 하는 얘기를 들어주거나 혹은 대신 말해 주는 게 좋다고. 그래서 연출이 된 거라고 말할 때 경진은 즐거우면서도 체념한 듯 보였다. 경진이 물었다.
    "너는 어때?"
    나는 답했다.
    "난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
    하지만 실제 그랬던 건 아니다. 그저 경진이 체념함으로써 어딘가 텅 비었을 곳을 내가 대신 채워 줘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대답하고 나자 내 이야기를 경진이 무대에 올리는 날이 너무도 쉽고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졌고, 그 순간 진심이 돼버렸다. 내 대답을 들은 경진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써봐. 잘하잖아, 뭐든.
    환이 형의 손길을 미처 뿌리치지 못하고 술자리에 합류한 어느 날이었다. 배우들이 하는 이야기를 멍하니 듣고만 있다가 그들 삶이 무대 위 삶처럼 반복만 될 뿐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연극하기 어렵다고 푸념만 하면서 자기 실력을 계발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다고, 달아놓고 먹는 밥이 하루의 유일한 끼니인 주제에 언젠가 유명해질 거라는 믿음은 절대 버리지 못한다고. 나도 그들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자 벗어나고 싶었다. 반복과 답습을, 제자리걸음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사람들을…… 견딜 수가 없었다.
    연출이 일이 있어서 술자리에 빠지는 날이면 술값 계산을 두고서 서로 눈치만 보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 앉아 있던 어느 날엔가 농담하듯 물었다.
    "돈 없다 없다 하면서 술값은 대체 어디서 나요?"
    순간 정적이 흘렀고 환이 형이 내 목에 팔을 두르며 장난치듯 말했다.
    "우리가 술이라도 안 마시면 어떻게 사냐?"

 

 

    경진과 헤어진 건 경진의 두 번째 공연이 올라가고 나서였다. 그사이 우리 극단은 작품을 두 개 더 올렸고 둘 다 망했다. 임대료를 내지 못해 보증금이 까였고, 보증금이 다 까이고 나서 어찌어찌 서너 달을 더 버티다가 결국 쫓겨나기에 이르렀다.
    단원이 함께 만들었던 작은 극장. 그 극장에서 올린 마지막 작품의 마지막 공연 날, 일요일 공연임에도 관객이 딱 둘만 왔다. 그 전 주까지만 해도 10~20명은 되던 관객 수가 점점 줄어든 끝에 벌어진 일이었다. 연출과 배우들은 공연 시작을 십 분 앞두고서 공연을 할지 말지 논의했다. 단 두 명을 앉혀 둔 채 공연하는 건 배우는 물론이거니와 관객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관객은 불쌍한 배우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휩싸이고, 배우들은 단 두 명의 관객일지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히는 상황. 서로를 향한 지나친 배려와 애정이 서로를 망치는 상황. 그런데도 연출은 공연을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연극이라면서.
    관객 둘은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고 공연 보는 내내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극장 안이 건조한 탓에 기침할 법도 했지만 그러지 않았고, 심지어 부스럭대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공연을 보는 게 아니라 서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기 시합을 치르는 듯했다. 아마 그것이 자신들이 공연을 완전히 집중해서 보고 있음을 알리는 최선의 표현이라고 생각했을 테다. 배우들의 목소리는 관객의 그 최선 너머를 향해 아무런 반향도 없이 흩어졌다.
    공연이 끝나자 모든 게 끝나 있었다. 연극의 3요소는 엠티, 시파티, 쫑파티의 '3티'라고 자신 있게 외치던 이들이 3티 중 가장 중요하다는 쫑파티를 하지 않으려고 했을 만큼 철저하게,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공연 중 어디 갔다 왔는지 술이 한껏 취해서 극장으로 들어선 연출은 수고했다는 말도 없이 외쳤다.
    "암만해도 쫑파티는 해야지."
    돈이 없어 백반집에서 진행된 쫑파티에서 달걀프라이를 많이 달라고 했다가 사장과 싸운 연출은 씩씩대며 밖으로 나갔다. 얼마 안 가 달걀 한 판을 사와 사장에게 건네고선 미안하다고 사과한 연출은 자기 자리로 돌아와 앉자마자 극장을 처음 만들 당시 이야기를 꺼냈다. 극장을 만들기 전에 용하다는 점쟁이를 불러서 극장을 만들지 말지를 물었었다고. 점쟁이는 임대받을 건물의 기운이 너무 세고 어두우니 만들지 말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이미 만들기로 마음을 굳혔던 연출은 어떻게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고, 한참 뒤 한숨을 내쉰 점쟁이가 말했다. 저기 저 은행나무에 막걸리 두 말을 붓고 고사를 지내라고.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연출은 울었다.
    쫑파티가 끝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극장 앞에 들렀다. 나도 모르는 새 발걸음이 그리로 향했다. 가로등 불빛을 받은 은행나무가 환히 빛나고 있었다. 노랗게 물든 잎들은 처음 보았을 때보다 무성했고 훨씬 더 싱싱했다. 막걸리 두 말을 부었더니 그 뒤로 은행나무가 점점 살아났다는 연출의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한참을 서서 은행나무만 바라보았다. 은행나무가 점점 살아나는 동안 우리는 점점 시들어 갔던 게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경진에게 전화했다. 다음 주에 시작하는 공연 연습에 열중이던 경진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방금 쫑파티가 끝났다고 말했다. 잠시 아무 말 없던 경진은 고생했다고 말해 주었다.
    다음날 다 함께 극장을 철거했다. 이 날은 경진도 참석했다. 연습 막바지일 텐데 뭐 하러 왔느냐는 배우들의 말에 경진은 웃으며 대꾸했다.
    "안 왔으면 평생 안 봤을 거면서."
    기부자의 이름표가 달린 좌석과 음향기기, 프로젝터와 몇몇 소품들을 뺀 나머지 것들은 전부 고물상으로 실려 갔다. 좌석은 연출이 자기 고향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동네 마을회관이나 구판장 앞에 두면 유용할 거라면서. 뒤에 낯선 이들의 이름표가 붙은 좌석에 앉아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리는 노인들의 모습이 절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들 눈앞에 펼쳐질 연극은 과연 무엇일지. 결국 그들이 살아온 인생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되감기만 가능한 플레이어. 그들을 위해 오퍼가 해줄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그저 조명을 켜주기만 하면 그뿐, 알아서 잘 흘러가다가 끝나야 할 때 끝나겠지.
    앞으로 가야 한다.
    가장 골치 아픈 좌석을 해결하고 나자 남은 것들은 누구 집에 보관할지 의논하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자꾸만 생각했다.
    앞으로 가야 한다, 나는.
    서로 떠맡기를 미루고 있을 때 보훈이 나섰다. 자기 자취방에 두겠다고. 이제 다 끝났다는 듯 목장갑을 벗어서 툭툭 털어낸 연출이 말했다.
    "다음 거 해야지."
    새로운 대본 작업 중이라는 연출은 대본이 완성되는 대로 연습실을 빌려서 딱 한 달만 연습하자고 했다. 설 연휴가 끝나면 바로 무대에 올리자며. 극장 대관도 어느 정도 말을 맞춰 놨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의 말에 유일하게 보훈만 기뻐했다. 나머지는 침묵했다. 침묵이 길어질 때쯤 환이 형이 물었다.
    "그동안 뭐 하고 있을까요?"
    연출이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몸 안 녹슬게 관리 좀 하고, 가끔 얼굴들도 좀 보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 경진이 자기 공연 시파티에 참석하고 있을 때였다. 경진의 집으로 간 나는 책장을 살펴보다가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를 빼냈다. 김숨, 김애란, 김연수, 김영하를 즐겨 읽는 경진에게 한국에 김 씨 말고 다른 괜찮은 소설가는 없냐고 물었을 때 황정은을 추천해 준 게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빼낸 책 표지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갑자기 ㄱ과 ㅎ 사이가 까마득히 멀게 느껴졌다. 왜 하필 황정은이야. ㄱ과 ㅎ 사이에 다른 작가는 없어? 이 씨도 있고 박 씨도 있고 조 씨도 있을 텐데 대체 왜 ㅎ이야. 경진이 황정은을 추천한 데 딴 이유가 있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빠져 있다가 빼낸 책을 도로 꽂았다. 대신 김연수의 『7번 국도』를 빼냈다. 제목 아래 'Revisited'라고 쓰여 있었다. 13년 만에 특별판으로 재발간 됐다며 경진이 유독 좋아하던 책. 작가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마음으로 제목과 인물들만 그대로 놔둔 채 나머지는 새로 쓴 작품이라고 말하며 책등을 쓰다듬던 경진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책을 가방에 넣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책 한 권을 빌려 간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경진은 그 문자 메시지에는 끝내 답장하지 않았다. 대신 그로부터 일주일 뒤 만나자고 연락해 왔다. 경진의 팀이 요새 달아놓고 먹는다는 국숫집에서 국수 한 그릇씩 먹은 우리는 마로니에 공원 벤치에 앉아 비둘기를 바라보았다. 비둘기는 멍청하다는 말도 무색할 만큼 멍청한 꼴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고개를 까닥이다가 후다닥 달려가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다시 고개를 들고 까닥이다가 후다닥 달려가고. 그러는 동안 내내 한 나무 밑에만 머물렀다. 경진이 자기 발치로 온 비둘기를 쫓아내며 물었다. 앞으로 뭐 할 거냐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말투로 취직이나 해야겠다고 대답했다. 경진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경진을 향한 내 마지막 말은 이것이었다.
    "누나 공연 좋더라."
    경진은 낯간지럽다는 듯 웃었다. 나를 향한 경진의 마지막 말은 이것이었다.
    "다음 공연 때 초대할게."
    나는 끝내 빌려 간 책을 돌려주지 못했다.

 

 

    설 연휴를 보름 앞둔 어느 날 연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받자마자 연출은 첫 연습 날짜를 고지했다. 나는 난처하다는 듯 말을 얼버무리다가 다음 달이 졸업이라고 말했다. 연출은 내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직 내 대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걸 잘 안다는 듯이.
    "취직하려고요."
    "그래. 잘 생각했다. 그래도 가끔 얼굴은 비추고. 응?"
    연출은 자기 대사도 이미 준비돼 있었다는 듯 자연스레 대꾸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눈앞에 커서가 깜박이고 있었다. 3페이지까지 쓴 소설의 채 완성하지 못한 문장 다음에.
    희곡이 아니라 소설을 쓰기로 한 건 희곡은 어쩐지 혼자 하는 작업처럼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무언가를 이야기하기에는 소설이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연출에게든 배우들에게든 소설을 쓴다고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말한다면 진심으로 응원해 줄 사람들이라서 더욱 그랬다. 모든 게 낯간지러웠고, 귀찮았고,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고 싶었다. 진심이니 순수니 사람 냄새니 하는 것들로부터. 그런 게 싫은 건 아니었다. 그냥 지쳐버린 기분이었다. 아무리 좋은 것도 반복되면 결국 질리고 만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내가 반복을 잘 견디지 못하는 종류의 인간이라는 사실도. 경진이 천장을 바라보며 했던 말이 그때야 이해됐다.
    더 늦기 전에.
    나는 혼자가 되었다. 함께하는 일에는 질릴 대로 질렸다는 듯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그들과 달리 나는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다. 술 마실 시간에 글을 쓰고, 한풀이할 시간에 글을 쓰고, 매일 똑같은 짓을 미련하게 반복하는 대신 새로운 문장을 쓺으로써.
    보훈은 자신이 이번 작품 조연출을 맡게 되었는데 대체 어찌 된 일이냐며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승진을 축하한다고 말하고선 다음 음향 오퍼는 네가 찾으라고 했다. 보훈이 물었다.
    "정말 취직하시는 거예요?"
    태연하게 거짓말했다.
    "응. 벌써 몇 군데 원서 넣었어."
    "첫 월급 받으면 술이나 사주세요."
    알겠다고 대답하고서 전화를 끊었으나 그 뒤로 내가 보훈에게 술을 사준 적은 없다. 그렇다고 얼굴을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가끔 연습도 구경하러 갔고 마지막 공연은 꼭 챙겨보았으며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철수 작업도 도왔고 쫑파티에도 참석했다. 하지만 그러던 것도 점점 줄어들어서 나중에는 공연도 보러 가지 않게 되었다. 몇몇 배우들이 극단을 그만두었다는 말이 들려왔다. 그 과정에서 다툼이 있었다는 말도. 나는 예상했던 일이라는 듯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소설 쓰기에만 몰두했다.
    3년간 수십 번의 공모전에 떨어졌다. 예심에도 오른 적이 없었다. 새해 첫날 주요 일간지의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찬찬히 다 읽고 나서 인터넷 창을 닫고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쉽게 포기된다는 게 얼떨떨하면서도 어쩐지 이치에 맞는 것 같았다. 미련하게 계속 붙들고 있느니 능력 부족을 인정하고 속 시원히 포기하는 게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때 잊고 있던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더욱 잘한 선택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인적 사항과 학력까지는 별 생각 없이 적어 넣었다. 하지만 경력에 이르러 멈추었다. 야간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경력에 적을 순 없었다. 조금 더 공신력 있는 것이 없을까, 하고 생각했을 때 음향 오퍼 자리에 내 이름이 쓰였던 첫 번째 공연 포스터가 떠올랐다. 조연출 자리에 이름이 쓰였던 마지막 공연 포스터도. 대학로 구석구석에 나붙었던 포스터에 이름이 적혔다면 나름대로 공신력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자조적인 생각의 끝에서 갑자기 경찰에게 허리춤을 잡혔던 일이 기억났다. 정확히는 허리춤이 끌어올려졌을 때의 황망했던 감각이. 경찰은 전봇대에 포스터를 붙이고 있던 환이 형과 나를 현장 체포했다. 그가 허리춤을 잡고 끌어올리자 바지 밑위가 사타구니를 압박했고, 절로 까치발이 띄워졌었다. 그저 허리춤을 잡힌 것만으로도 꼼짝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안 날이었다.
    관객이 점점 줄어들자 단원들이 직접 포스터를 붙이고 다닐 때였다. 얼마 뒤 쫓겨날 극장에서 올라간 내 마지막 공연의 포스터. 포스터 붙이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인력에게 맡기면 될 일을 단원들이 하게 된 건 당장 인력에게 줄 돈도 마땅치 않던 극단 사정 때문이었다. 2인 1조로 팀을 이루어 각자 맡은 구역의 식당이나 골목의 건물 벽면, 전봇대, 용도를 알 수 없는 낮은 지상 구조물 등 눈에 띌 만한 곳이면 어디든 포스터를 붙이고 돌아다녔다. 포스터를 붙인다고 경찰에게 잡히는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모른 채.
    근처 파출소로 끌려간 환이 형과 나는 신상명세를 적었고, 사흘 뒤 서초동 법원으로 즉결 심판을 받으러 올 것을 고지 받았다. 공권력에 반항하듯 반소매, 반바지 차림에 쪼리를 신고 법원에 간 우리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판사에게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읊어야 했다. 굴욕적인 기분을 느끼지 않으려고 판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판사는 나 따위는 쳐다볼 값어치도 없다는 듯 자기 앞에 놓인 서류 더미만 내려다본 채 원래 벌금 5만 원 형인데 초범인 점을 감안해서 3만 원 형에 처한다고 선고했다. 내 다음 차례는 환이 형이었다. 법정을 나서기 전에 환이 형이 자기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말하는 걸 들었다. 형의 본명은 '이환'이 아니라 '김덕훈'이었다.
    법원 밖으로 나오자마자 환이 형이 아이스크림이나 먹자고 했다. 갑자기 웬 아이스크림, 하고 생각했을 때 먼저 나온 이들이 죄다 한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만 해도 오직 경진 앞에서만 담배를 피울 때였으니 환이 형은 내가 간헐적 흡연자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사실 형도 담배를 피우고 싶은데 나를 배려해서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한 거란 걸 깨닫자 고맙기보단 이상하게도 짜증이 일었다. 아침부터 법원에 왔다는 게, 높은 곳에 앉은 판사를 향해 죄를 고하듯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말했다는 게 좀체 납득되지 않았다. 허리춤을 잡고 끌어올리던 경찰의 실실 웃는 낯이 떠올랐을 때는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얼결에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환이 형에게 '담배 피울 줄 알아요.' 하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빵빠레나 먹자고 말했다. 환이 형이 물었다.
    "빵빠레?"
    "축하해야죠. 생애 첫 법원 방문인데."
    내 말투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형은 단번에 알아챘을 것이다. 잠시 말이 없던 형이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미안하다."
    그러고선 내가 미처 뭐라 답할 새도 없이 '나는 월드콘!' 하고 외쳤다. 뭐니 뭐니 해도 맛있는 건 가슴이 확 트이는 월드콘콘콘콘…… 하며 앞서 걷는 환이 형의 뒷모습이 잊히지 않는 건 법원 근처 가게에서는 빵빠레도, 월드콘도 팔지 않았기 때문일 테다. 그날 환이 형은 가게 주인에게 화를 내듯 물었다. 아니, 왜 빵빠레도 월드콘도 없어요? 그게 말이 돼? 둘 중 하나는 있어야지! 나는 실랑이가 더 커지기 전에 환이 형을 끌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이 시점에 이게 말이 돼? 둘 중 하나는 있어야지, 하나는……."
    그 말이 내게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면 대체 어쩌냐는 말로 들렸다. 안타깝게도 나는 조연출에 불과했고, 그랬기에 그에게 어떤 디렉션도 줄 수 없었다. 아니, 아마 어떤 훌륭한 연출이 왔어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날 우리가 빵빠레도 월드콘도 먹지 못한 건 연극이 아니라 진짜 삶이었으니까.
    경력 칸을 비워 뒀는데도 취직은 생각보다 쉽게 되었다. 직장인이 내 운명이라는 듯. 하지만 밤 열한 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 여덟 시에 퇴근하는 커피숍 야간 아르바이트 생활에 익숙해진 몸은 직장생활에 적합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회사를 옮겨 다녀야 했고 그사이 집도 서너 번 옮겼다.
    몸속에 쌓인 카페인이 비로소 다 사라졌다고 느꼈을 때쯤 새로 잡은 직장은 입사 원서에 키를 적으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나는 키를 대체 왜 물어보는 건지 의아해하면서도 내 나이에 자랑할 거라고는 이제 어쩌면 키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원래 키보다 1cm 크게 적어냈다. 며칠 뒤 합격 통보 메시지가 날아왔다.

 

 

    보훈의 공연은 기대했던 것보다 재밌었다. 인생에 출구가 없다고 느끼는 남자가 주인공이었는데 그 역을 맡은 배우는 바로 환이 형이었다. 포스터에는 분명 이름이 없었는데 대체 어찌 된 일일까 싶었다. 보훈은 환이 형이 예명을 바꾸었다고 알려주었다. '이환'에서 '김우주'로. 자기도 아직 바뀐 이름을 부르는 게 어색하다고 덧붙였다.
    어느새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환이 형. 김덕훈에서 이환이 되었다가 이제는 김우주가 된 형. 공연 막바지에 그가 쳤던 대사가 떠올랐다.
    출구가 내 뒤에 있었네.
    그렇게 말한 형은 뒤돌아서 출구를 보는 쉬운 방법을 택하는 대신 큰 원을 그리며 무대를 한 바퀴 뱅 돌았다. 그러더니 원래 섰던 자리로 갔다. 허리를 굽히고 신발 끈을 고쳐 맸다.
    보훈이 내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시파티 같이 가요."
    "내가 거길 왜 가."
    "왜요? 환이 형, 아니, 우주 형도 있고 좀 이따 경진 누나도 온다고 했는데."
    보훈은 말해 놓고서 아차 싶었는지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이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잠깐이라도 앉아 있다 가요."
    분장을 지운 환이 형, 아니, 우주 형이 극장 밖으로 나오는 게 보였다. 일부러 시선을 피했다. 형은 멀찍이서 보훈을 향해 '안 가?'라고 외치더니 성큼성큼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이게 누구야!"
    내가 '어, 형.'이라고 어색하게 인사하자 형이 내 손을 꽉 잡았다.
    "잘살았어?"
    "그냥 회사의 노예죠, 뭐. 형은 더 멋있어졌네."
    "멀었다. 마음이 우주인데 더 멋있어져야지."
    이름은 바뀌었어도 성격은 그대로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우주 형이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뭐 해? 가자."
    우주가 되어서도 어둠과 별빛을 찾는, 아니, 우주가 되었으므로 더욱더 어둠과 별빛만 찾게 된 환이 형. 그리고 입봉해서 한껏 기분이 좋은 보훈. 그 둘을 빼고는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딱히 할 말이 없어 보훈에게 함께 극단 생활했던 배우들 안부를 하나하나 물었다. 수미 누나를 뺀 나머지는 여전히 연극을 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느새 반백 살이 된 연출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고, 내가 막연히 없어졌을 거라 믿었던 극단은 오히려 단원이 늘어서 이제는 공연 때마다 캐스팅 싸움이 치열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정말로 모두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줄이야. 기대를 저버렸다고 해야 할지 기대했던 그대로라고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는 전혀 개의치 않고 함께 즐겼다. 십 년이 지났어도 그러한 분위기에 익숙하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고 얼떨떨했다. 그러다 혼자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시 돌아와 자리에 앉은 내게 우주 형이 물었다.
    "뭔 일 있어?"
    아무 일도 없다고 대답하고선 되물었다.
    "형은?"
    "나야 늘 일이 있지."
    "무슨 일?"
    "술 마시는 일."
    보훈이 끼어들었다.
    "이렇게 만날 마시면서도 멀쩡하다는 게 신기하다니까요."
    "멀쩡하지 않다."
    "에?"
    "멀쩡한 정신으로 어떻게 살겠냐."
    "뭐래."
    우주 형이 보훈과 내게 건배를 청했다. 건배사를 고민하다가 외쳤다.
    "우주의 평화를 위하여."
    일원이 아닌데도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자리에 남았다. 택시 요금 할증이 풀릴 때가 다가오자 슬슬 자리를 뜨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때까지도 경진은 오지 않았다. 나는 끝내 보훈에게 경진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대신 한껏 혀가 꼬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출구는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어쩐 일인지 보훈은 한참을 껄껄대며 웃다가 대답했다.
    "형, 취한 거 오랜만에 보네요. 좋다."
    "있단 거야 없단 거야?"
    "몰라요. 그걸 알면 연극을 왜 해."
    "고맙다."
    "뭐가요?"
    "그냥."
    "고마우면 다음에 술이나 사요."
    테이블에 엎드려서 잠들었던 우주 형이 잠에서 깨며 '술?' 하고 말했다. 내가 더 자라며 뒷머리를 누르는데도 기어코 일어난 형은 '술값은 노래로!'라고 외쳤고, 제발 그러지 말라는 사람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노래를 시작했다. 도시의 밤은 불빛들로 시작해요. 어두움은 이젠 사라졌어요. 불빛들만 허공을 날아요……. 부르지 말라고 원성이던 이들이 어느새 더 크게 따라 부르고 있었다.
    밤을 잃은 도시와 하늘 앞에서 당신도 나도 똑같이 작은 사람이에요.
    어디를 가나 사람들에게 자기 노래를 전염시키는 사람. 자기가 부르는 노래대로 사는 사람. 노래를 마친 형에게 물었다.
    "형은 깜깜한 게 그렇게 좋아?"
    우주 형은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보았다.
    "어둠이니 밤이니 우주니. 죄다 깜깜하잖아."
    우주 형은 법원 앞에서 그랬듯 내 어깨에 손을 얹고선 '음'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그럴듯한 말을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깜깜해야지. 그래야 작게 빛나도 보이니까."
    그러고는 허공에 양팔을 허우적대며 외쳤다.
    "여기요! 나 여깄어요! 나 좀 봐줘요! 여기서 열심히 깜박이고 있습니다!"
    "뭐야. 그건 또 어느 연극 대사야."
    "그냥 내 대사다."
    밤이 다 사라지고 해가 떴을 때야 술자리가 끝났다. 아니, 밤이 사라졌다고 하기보단 우리가 밤을 다 써버렸다고 하는 편이 나으려나. 그만큼 징글징글한 술자리였다. 우주 형은 마을버스를 타고 자기 마을로 떠났다. 떠나기 전에 나를 끌어안고선 말했다. '반갑다.'라고. '반가웠다'도 아니고 '반갑다'라니. 만난 지 열두 시간 만에 들은 그 말에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대신 형이 떠나자마자 재채기를 했다. 자꾸 재채기가 났다. 보훈이 내 등을 두드려 주며 물었다.
    "토할 거 같아요? 세게 두드려 줘? 응? 토할래요? 토해, 말아?"
    택시가 쉽게 잡히지 않아서 한동안 보훈과 단둘이 서 있었다. (토는 하지 않았다) 내가 괜찮다고 먼저 들어가라고 하는데도 보훈은 자기 역시 괜찮다며 끝없이 한쪽 팔을 흔들어댔다. 그러면서 내가 묻지도 않은 말을 해댔다. 경진이 다음 달에 새 공연을 올리는데 연습 때 문제가 생겨서 못 온 것 같다고. 처음으로 직접 쓰고 연출하는 거라 아마 애로사항이 많을 거라고.
    "배우들 기도 세고, 무대 디자이너 곤조도 장난 아니라 하고. 지들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마침내 택시를 잡아 세운 보훈은 차 문을 열고서 나를 재빨리 안으로 집어넣었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차창을 내리고서 말했다. 조만간 보자고. 이번엔 꼭 술 사주겠다고. 보훈이 술은 상관없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젓고는 말했다.
    "누나 공연 보고 싶으면 말해요. 초대해 줄게."
    나는 '됐어. 뭐 하러.' 하고 답하고는 부러 활기차게 말했다.
    "오늘 공연 좋더라."
    그러고는 얼른 차창을 올리고서 택시 기사에게 목적지를 외쳤다.
    오는 내내 택시 기사와 얘기했던 것 같은데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출구 얘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출근 얘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는 것만은 확실히 기억난다. 평소 택시를 타면 기사가 행여 말을 걸까 봐 눈을 감고 자는 척하고 있던 걸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기사님은 이 일을 얼마나 하셨어요? 아마 내가 그렇게 물은 게 대화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기사가 십오 년이라고 했던가 이십오 년이라고 했던가…….
    집에 도착하고 보니 정신이 말짱해져 있었다.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책장을 뒤졌다. 『7번 국도』는 없었다. 여러 차례 이사하던 중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이상하게도 웃음이 났다. 처음부터 돌려줄 필요가 없었던 것이라고, 경진이 문자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은 건 내게 그 책을 선물로 준 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그때야 들었다. 아마 경진은 내가 무슨 책을 가져갔는지 단번에 알아챘을 것이다.
    방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지금 잠들면 출근할 수 있을까. 반차를 낼까. 그냥 확 무단결근을? 결근한 김에 영영 출근하지 말까…… 하는 생각들을 하다가 아무래도 좋다고 느끼며 기지개를 켰다. 이런 기분을 느낀 게 얼마 만인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한구석에 펼쳐진 푸마 재킷 위에 잠들어 있던 푸마가 어느새 깼는지 나를 따라서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그러더니 잠시 나를 멀뚱멀뚱 쳐다봤고, 다시 누워서 잠들었다. 뭐야, 그럴 거면 기지개는 왜, 하고 중얼거렸을 때 스르륵 눈이 감겼다.
    꿈결에 푸마가 말을 걸어왔다. 되감는 것도 앞으로 가는 것도 어쩌면 다 한 버튼 위의 일인지도 모른다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정말이에요, 선생님?
    어느새 눈앞에 가로등 빛을 받은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싱싱한 잎들을 매단 채 스으- 스으으- 으으으으-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내 곁에서 뒷짐 진 자세로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는 푸마에게 물었다.
    선생님, 이 소리는 아무래도 나무가 제자리에서 조금씩 나이테를 늘려 가는 소리겠죠?
    푸마가 나무를 타고 오르며 대답했다. 아마도.

 

 

 

 

 

 

 

 

 

 

 

 

 

 

 

 

 

안준원

작가소개 / 안준원

201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어등이어' 동인.

 

   《문장웹진 202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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