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하이즈 외 1편

[신작시]

 

 

헤이하이즈 *

 

 

이기현

 

 

 

    네게 불확실한 기억을 만들어주어도 괜찮겠니? 엄마에게 알코올중독자라 했던 날이었던가, 엄마는 술병을 모아 판 돈으로 작은 상자를 선물해 주었어. 그 안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 몰라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엄마가 사라졌다는 사실보다

 

    여전히 상자 안에 무얼 담아야 할지 모르는 걸 곤란해 하던 중에 널 가졌지. 초대한 적 없는데 네가 종이인형처럼 몸을 접고 상자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걸 귀속(歸屬)이라고 해도 좋을까. 무엇을 가진다는 것과 가지게 되는 것은 어떤 중량의 차이가 있는 걸까. 네가 들어 있는 상자를 들고

 

    온종일 숲 속을 누볐던가. 녹음이 지나치게 밝아서 모든 곳이 길이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니? 널 여기에 펼쳐 놓으면 네가 요정이 되어 날아가거나 빛이 되어 숲의 일부분을 이루었을지도 몰랐을 텐데, 하지만 기억을 어떤 식으로 기억해야

 

    망각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휘발되듯 사라졌던 엄마처럼 너를 망실(亡失)할 수 있을까. 선물이 언제나 뜻밖이어서 널 갖고 싶지 않았다는 생각을 널 갖고 나서야 하게 되었을 때, 네 생일은 단 한 번도 온 적이 없는데

 

    엄마가 돌아오고 있다. 네가 보고 싶은 엄마는 조금씩 지워지며 돌아오고 있다. 기억나지 않으면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다.

  *  산아제한 기준을 어기고 낳아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호적이 없는 아이.

 

 

 

 

 

 

 

 

 

 

 

 

 

 

 

하이 볼

― 용준에게

 

 

 

 

    공을 들고 다녔어
    언제 어디서 놓아 주어도
    팔다리 없이 떠나갈 수 있도록

 

    공이 허공을 끌어안고 있는 자세라면
    공을 품에 안고 있는
    내 팔도 둘레를 가지게 되는 거겠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팔다리가 더는 쓸모없게 느껴지면
    둘레에 깃털이 자라나기 시작하고

 

    공을 끌어안고 있는 나를
    끌어안은 또 다른 팔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껴 볼 수도 있겠지

 

    그러니 언제 어디서 놓아 주어도
    우리에겐 퇴화한 팔다리로
    온전한 팔다리를 붙잡으려는
    관성만 남아 있을 뿐이어서

 

    공이 새의 기낭이 되어
    우리가 서로를 떠나가는 일 말고
    함께 허공에 떠오르는 일이

 

    하이 볼,
    일어날 수도 있을 테니까

 

    공을 들고 다녔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일어나는 일도 있었어

 

 

 

 

 

 

 

 

 

 

 

 

 

 

 

 

 

이기현 작가소개 / 이기현

2019년 현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문장웹진 202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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