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상들 외 1편

[신작시]

 

 

증상들

 

 

이설야

 

 

 

    공중은 한숨을 걸어 놓기 좋은 장소
    한숨이 떠다닌다
    한 숨이, 한 숨에게 전염된다

 

    거리는 정지된 화면, 거대한 공터
    엘리베이터는 지상 어딘가에서 멈췄고
    검은 연기를 내뿜던 굴뚝들은 오던 봄을 돌려보냈다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린 날짜들
    세상이 뒤집혔다

 

    공포의 숙주는 생활이라는 불안
    불안이 절벽 위에서 지는 해를 소독한다

 

    슬픔을 거래한 자들
    아픈 몸들을 인질 삼아
    없는 평화를 복제했지
    배가 터지도록 무한증식했지
    물고기들의 머리를 둘로 만든
    지구의 너무 많은 신들
    들끓는 지구를 휘휘 저어서
    곤죽이 되도록 휘휘 저어서
    새로운 지구를 만들었지
    서로 등만 바라보는 마스크족을 탄생시켰지

 

    무인상점 앞에 선 한숨이
    한 숨, 또 한 숨을 건너가고 있다

 

    넘칠 만큼 넘친
    지구는 지금 자가격리 중이다

 

 

 

 

 

 

 

 

 

 

 

 

 

 

 

이민자들

 

 

 

 

    한국이민사박물관에는 한쪽 소매가 잘린 간호복이 전시 중이지
    사탕수수밭을 지나 에네킨 농장까지
    낫과 주삿바늘까지
    강제로 이주된, 끝없는 노동이 전시 중이지

 

    모든 음식을 맛나게 해준다던
    사탕수수로 만든 미원의 원조는 아지노모토
    생활은 언제나 미개지의 바람이었지

 

    사과를 모르는 벚꽃의 입들
    어디서나, 여전히 법 위에 있는 망치들은 허공을 두드리지
    우리의 머리통을 두드리지

 

    억센 만주국의 땅, 콩은 아무데서나 쑥쑥 자랐지만,
    몇 알의 콩조차 가질 수 없어서
    조선인은 외투의 한쪽 팔을 찢어서 팔았지

 

    이민자들은
    철로 위에 한쪽 발로 선 바람
    항적을 쫓는 나비 그림자
    흩어지는 비행운

 

    그러니까
    독일로 간 간호사들은 제3국에서 온 숫자에 불과했지
    단지 주삿바늘이었어
    그녀들 강제추방당할 때
    간호복 한쪽 팔을 찢어서 끝까지 저항했지

 

    '용기만이 운명을 사로잡는군요'

 

    그녀들 용기를 내서 운명을 바꿨지
    찢은 한쪽 팔로 뚫린 심장의 구멍을 막았지
    겨우 눈을 뜨고 살았지
    그녀들과 함께 별들도 천천히 이주했지
    가위와 주삿바늘과 링거 병을 들고서

 

 

 

 

 

 

 

 

 

 

 

 

 

 

 

 

 

이설야 작가소개 / 이설야

2011년 내일을여는작가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가 있음.

 

   《문장웹진 202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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