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 외 1편

[신작시]

 

 

전생

 

 

원보람

 

 

 

    전생에 덩치가 크고 순한 개였던
    사람이 내 눈가를 닦아 준다

 

    목줄을 풀어 주었던 일이
    현세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그가 뜨거워진 내 얼굴을 더듬는 동안
    나는 잠깐 전생으로 돌아간다

 

    그 개를 생각하면
    몸이 떨린다

 

    모르는 개의 목줄을 풀어 준 이유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전생에 있었던 일 때문에
    슬픔이 내 입을 자른다

 

    슬픔이 조금씩 나를 먹을 때
    우리는 초점 없는 눈을 마주친다

 

    나는 두 손을 만지작거리며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그 사이 두 번의 겨울이 지나가고
    계피의 효능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생강과 생각의 차이는 모르지만
    그것이 슬픔이 나를 먹는 이유는 아니다

 

    한밤중에 빗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면
    개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입이 없어서 말은 못 하고
    슬픔이 나를 다 먹을 때까지

 

 

 

 

 

 

 

 

 

 

 

 

 

 

 

지역 사회

 

 

 

 

    애인이 말없이 떠나고
    여자의 뱃속에는 이방인이 찾아왔다

 

    여자는 외국어를 몰라서 밤새도록 울었다 아비 없이 배가 불러오면 총 한 자루를 쥐어 주는 마을에서 짧은 치마를 입은 소녀들이 바이오리듬에 따라 향기를 바꾸고 있다 골목 담장에는 낙서로 위장한 글씨들이 가득하다 불행이 타인에게 옮겨 가길 바라는 주술이다 장미의 감각으로, 가시를 세우는 쓸쓸한 감각으로, 화단의 식물들이 푸른 잎맥 속에 햇빛을 장전했다 마을에는 이상한 규칙이 있다 이곳에 사는 남자들은 매일 밤 러시안 룰렛을 해야 한다 개구멍으로 드나들던 사내들은 이름이 없어서 안전핀을 걸고 방아쇠를 당겼다 마을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공동의 표적을 정했다 여자는 어제 죽은 사람이자 오늘 처음 보는 사람, 마을의 역할은 새로운 이방인에게 총 한 자루를 쥐어 주는 일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두 사람이 마을을 떠났다

 

 

 

 

 

 

 

 

 

 

 

 

 

 

 

 

 

원보람 작가소개 / 원보람

201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문장웹진 2020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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