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집 외 1편

[신작시]

 

 

투명한 집

 

 

정재율

 

 

 

    얼음 속에는 단단한 벽이 있어
    나는 그 너머로 집 한 채를 볼 수 있었다

 

    집에 들어가고 싶다
    자꾸 무너지는데도

 

    비를 맞으며
    서 있는 아이처럼

 

    인기척이 느껴지면
    사라지는 벌레처럼

 

    주머니엔 사탕 봉지가 가득하다

 

    끝이 닳아버린 운동화와
    홈이 맞지 않는 문턱들

 

    그 아이의 사정은 모두가 알았다

 

    커튼을 쳐도
    들어오는 빛처럼

 

    아이가 아픈 이유는
    집에 큰 어른이 없기 때문이라고

 

    얼음을 탈탈 털어먹으며
    이야기하는 이웃들

 

    아이는 나뭇잎을 주워
    주머니 속에 구겨 넣는다

 

    외투 밖으로 삐져나온 소매를
    안으로 넣으면서
    슬픔이 뭔지도 모르고
    그새 자라 있다

 

    창문이 깨지는 순간은
    거미가 줄을 치는 모습과 비슷하고

 

    아이가 바깥으로 밀려난다

 

    영혼이
    그곳에 있는데

 

    귓속에서는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유리알 파편처럼

 

    집이라는 건 다 부서지는데도
    자꾸만 모으고 싶어진다

 

 

 

 

 

 

 

 

 

 

 

 

 

 

 

라스 우바스(Las uvas)1)

 

 

 

 

    빛이 오고 있었다. 이곳에는 포도밖에 없는데. 새로 산 은접시에서 빛이 났다. 포도 열두 알이 올려져 있다. 포도를 까주던 손이 있었다. 파랗게. 혹은 검게 물든 손끝을 바라보며 우는 사람이 있었다. 죄를 짓지 않아도 죄를 지은 사람처럼 우는 등이 있었다. 눈이 쏟아져 내렸다. 우는 모습을 지우듯. 포도를 받아먹던 어린 손들이 있었다. 자라서 등을 어루만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던 어린 날들이 있었다. 그땐 나의 영혼이 포도알처럼 보이기도 했었는데 발가벗겨진 기분은 이런 것일까? 기도하던 어린 영혼 또한 있었다. 어제와 오늘은 다르지 않지만 작년과 올해는 아침부터 달라서 기도가 더 오래되었다. 가지 말라고 말하면 남겨진 것들과 버려진 것들이 동시에 보였다. 예를 들면 포도 껍질 같은 것. 포도 위에 감겨진 흰 종이 같은 것. 오지 말라고 말하면 오는 것들이 있었다. 자정의 소리에 맞춰 빛이 오고 있었다. 이곳에는 포도를 까주던 손과 우는 사람이 없는데. 나는 열두 알의 포도를 씹고 또 씹고 단물이 다 빠질 때까지 씹은 다음 손끝을 바라보았다. 십자가의 불빛이 참 아름답다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1)  새해가 되면 포도 열두 알을 먹는 스페인의 풍습

 

 

 

 

 

 

 

 

 

 

 

 

 

 

 

 

 

정재율 작가소개 / 정재율

2019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문장웹진 2020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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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배

ㅠㅠ핵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