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외 1편

[신작시]

 

 

호미

 

 

안도현

 

 

 

    호미 한 자루를 사면서 농업에 대한 지식을 장악했다고 착각한 적이 있었다

 

    안쪽으로 휘어져 바깥쪽으로 뻗지는 못하고 안쪽으로만 날을 세우고

 

    서너 평을 나는 농사라고 하였는데
    호미는 땅에 콕콕 점을 찍으며 살았다고 말했다

 

    불이 호미를 구부렸다는 걸 나는 당최 알지 못하였다
    나는 호미 손잡이를 잡고 세상을 깊이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너른 대지의 허벅지를 물어뜯거나 물길의 방향을 틀어 돌려세우는 일에 종사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호미도 나도 가끔 외로웠다는 뜻도 된다
    다만 한철 상추밭이 푸르렀다는 것, 부추꽃이 오종종하였다는 것은 오래 기억해 둘 일이다

 

    호미는 불에 달구어질 때부터 자신을 녹이거나 오그려 겸손하게 내면을 다스렸을 것이다
    날 끝으로 더 이상 뻗어 나가지 않으려고 간신히 참으면서

 

    서리 내린 파밭에서 대파가 고개를 꺾는 입동 무렵

 

    이 구부정한 도구로 못된 풀들의 정강이를 후려치고 아이들을 키운 여자들이 있다
    헛간 시렁에 얹힌 호미처럼 허리 구부리고 밥을 먹는

 

 

 

 

 

 

 

 

 

 

 

 

 

 

 

식물도감

 

 

 

 

    *
    둥굴레 겨드랑이에
    둥굴레꽃 피었다

 

    겨드랑이에 털 나면
    너도 꽃이 된 줄 알아라

 

    *
    수크령 묶어 놓고
    네 발목 걸리기를
    기다린 적 있었지
    나 열 몇 살 때

 

    *
    지리산 노고단 가서
    물매화 보지 못했다면
    하산하지 마시게

 

    *
    꽝꽝나무
    그 작은 이파리마다
    찰랑찰랑 자지러지는
    붉은 달 뜬다

 

    *
    갯메꽃처럼 바닷가에 살자
    바닷물에 발은 담그지 말고
    바닷물이 모래알 만지는 소리나 들으며 살자

 

    *
    참새 떼가 찔레 덤불로 스며든다

 

    *
    2층 치과 창가에
    능소화 입 냄새

 

    *
    후박나무 잎사귀 반짝거린다
    곧 바다에 닿는다

 

    *
    까마중 익었다
    여름방학 끝나 간다

 

    *
    참새 한 마리 발톱으로 흔들리는 강아지풀 줄기를 잡아 누르고
    또 한 마리가 부리로 강아지풀 끝자락을 거머잡으니까
    참새 떼가 우르르 날아왔다

 

    강아지풀 씨앗들 부리나케 참새의 입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
    바랭이풀은 몸에서 씨앗들 다 떼어낼 때까지 버텼다
    서리 내리자 과감하게
    무릎 꿇었다

 

    *
    먹쿠슬낭 열매
    자랑자랑

 

    *
    나무의 정부에서는
    금강소나무가 대통령이다

 

 

 

 

 

 

 

 

 

 

 

 

 

 

 

 

 

안도현 작가소개 / 안도현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다.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바닷가 우체국』,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북항』 등의 시집을 냈다. 소월시문학상·윤동주문학상·백석문학상·임화문학예술상 등을 받았다.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 『냠냠』, 『기러기는 차갑다』와 같은 동시집과 여러 권의 동화,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백석평전』 등을 출간했다. 스테디셀러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는 지금까지 15개국의 언어로 해외에 번역되었다.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장웹진 2020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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