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선동 외 1편

 

[신작시]

 

 

적선동

 

 

김선재

 

 

어제를 밀어내며 나는 걷고 있다 낯선 곳에서 낯선 곳으로, 잎들이 점멸하는 정오에서 숨을 멈추는 자정까지, 어깨가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얼굴이 지워지는 것도 모르고

 

이 길은 언젠가 네가 아닌 너와 걸었던 길 골목에서 불어온 바람이 타래처럼 몸을 감던 길 무성해지면 소문이 된다는 것도 모르고 그늘을 골라 나무를 그리며 내가 아닌 나와 네가 아닌 네가 서 있던 곳

 

내가 아닌 나는 바라던 사람
네가 아닌 너는 모르는 사람

 

이 교차로를 지나면 이 길의 끝, 끝과 끝이 만나는 곳에 서 있다 끝과 끝을 이으면 내일이 될까 나란히 선 사람들 뒤에 서면 나란히 선 사람이 될까

 

어제를 밀어내며 나는 녹고 있다 안에서 바깥으로, 잎들이 까만 계절에서 바라는 쪽으로 바래가는 계절로, 마치 오래 전에 결정決定된 결정結晶처럼 단단하게, 미열도 없이

 

잡았다 놓은 사물들은 바람이 되고
놓았다 잡은 몸은 내일 쪽으로

 

놀이터의 시소가 혼자 흔들린다 흔들지 않아도 흔들리는 것이 그것의 균형이라면 흔드는 대로 흔들리는 것이 나의 하루, 길어진 손톱을 들여다보며 서 있다

 

멀리, 더 멀리

 

누군가 놓아두고 간 모자처럼 우두커니, 뒤집힌 채로

 

   

 

 

 

 

 

 

 

 

 

 

 

 

한낮에 한낮이

 

 

옥수수 잎이 타는 계절

 

지평선은 빛난다 멀어서, 다가가면 더 멀어서, 몸은 흐려지고 나날은 길어, 길고 가는 숨이 나보다 먼저 나를 발견할 때

 

후후, 숨을 내뱉으면
호호, 김이 퍼져가고

 

얼어붙은 유리창에서 퍼져가던 손가락의 온도, 뜨거운 눈이 내렸고 볼 빨간 아이들은 줄지어 숲 쪽으로 걸었다 말을 나누듯 불 속의 얼음을 서로의 입에 넣어주며 타는 숲 속으로 걸어갔다 뒤를 모르는 아이들의 이마는 서늘하고 가슴은 뜨거워

 

돌아보면
어느덧 귀를 막는 여름

 

창문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숲이 떠오른다 고양이는 고양이를 물고 웅덩이를 건너가고 무릎이 생긴 바람은 돌고, 도는 바람이 시려

 

떠다니는 것들, 떠나가는 것들, 주먹을 쥐고 문 앞을 서성이는 것들

 

뜨거운 숨을 내뱉으면
뜨거운 허공이 목을 죈다

 

창문은 정지하고 안은 쏟아진다 쏟아지는 안을 닫을 길이 없다 그 곳에 닿을 길이 없다 다만 나는, 흘린 물처럼 서서히 말라가다가 우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울고 내가 듣는다

 

누군가 빠져 나갔다

 

한낮에 한낮이 울던 날

 

 

 

 

 

 

 

시인 김선재

작가소개 / 김선재

2007년 현대문학 시 부문 신인추천 등단, 시집 <얼룩의 탄생>

 

   《문장웹진 201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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