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군집 생태학

〔청소년을 위한 SF소설〕

 

 

가시 군집 생태학

 

 

이서영

 

 

 

    연수는 눈 바로 위쪽에서 맴을 도는 파리 한 마리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한참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맴을 돌던 파리는 빠른 속도로 연수의 양손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연수는 냉큼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들어 파리를 내리쳤지만, 파리가 조금 더 빨랐다. 파리가 쉬잉 소리를 내며 다시 자리를 뜨기 무섭게 벨라 씨가 짜증 섞인 목소리를 높였다.
    "안전하다고 어떻게 장담을 하냐고요. 모스에서 그렇게 많이 죽은 걸 보고서도 그런 소리를 해요?"
    "모스에서야 원주민들이 먼저 공격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공격을 한 사람들만 죽었어요?"
    "그때는 더구니들도 워낙 많이 죽었고……."
    벨라 씨는 서류철을 세게 덮었다.
    "박연수 씨랑은 도저히 대화를 못 하겠네요. 더구니들한테 벌써 옮아온 거 아니에요?"
    '옮아온다'는 어휘가 들리자 의회의 공기가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조용해진 순간, 다시 파리가 연수의 앞에 멈췄다. 연수는 조용한 공기를 가르며 손에 든 서류를 내리쳤다. 이번에는 제대로 맞은 느낌이었다. 탁, 소리가 나자 쪼그라든 공기가 한 번 더 일렁거렸다.
    벨라 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수는 고개를 들어 벨라 씨를 보지 않았다. 덜그럭거리는 의자소리만 들으며 조심스럽게 내리친 서류를 들어 올렸다. 파리의 회색 내장이 튀어나와 서류의 하얀 면에 묻어 있었다. 벨라 씨가 나가며 문을 쾅 닫는 소리도 들렸다. 분위기는 더욱 어수선해졌다.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목소리들. 의장이 의사봉을 여러 번 두드렸지만 썩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연수는 자신의 주변에서 움찔거리며 조금씩 몸을 사리는 분위기를 느꼈다.
    연수는 서류를 내려놓고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어 올렸다. 할 수 있는 한 높이, 정수리 꼭대기까지. 연수가 머리카락을 빗어 올리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모두 조용해졌다. 머리 꼭대기에서 하나로 모인 머리카락을 크게 묶자, 연수의 이마가 훤하게 드러났다. 둥글게 튀어나와서 반질반질하게 빛난다. 연수의 이마는 여드름 하나 나지 않은 채 말끔했다. 연수는 머리를 다 묶고 나서 손을 조용히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계속 진행하시죠."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안잘리 씨였다. 말 속도가 느리고 말투도 진중한 사람이었다. 사안을 접하는 태도도 비슷했다. 언제나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로 문제들에 대해 언급했다. 그래서 뉴스에선 영 인기가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많은 분들께서 아시겠지만, 저는 추방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공생, 네, 공생이 중요하다고 여러 언론에서 말을 해왔지요. 방금 나가버리신 벨라 씨가 저에 대해 쓴 칼럼이 한참 돌지 않았습니까. 많이들 읽어 보셨지요?"
    추방을 주장하지 않는 몇몇 사람들이 슬그머니 웃었다. 기억이 났다. "안잘리, 공생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지배의 정치학"이라는 제목이었다.
    "벨라 씨는 최소한의 위협이 있다면 전부 회피하자고 주장하시죠. 그런 방식으로는 결코 넓은 우주의 다양한 종족들과 함께 살 수 없습니다. 이 자리에도 위성에서 이주해 오신 분들이 있고, 우리는 모두 길을 떠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더구니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는 주장을 오래도록 해왔습니다."
    "위성인들이 이주해 오는 거랑 지금 이 상황이 같다고 생각하세요?"
    가라앉은 목소리로 쏘아붙인 건 슈란 씨였다. 벨라 씨를 따라 나가지 않았었구나. 그냥 양동작전일 수도 있다. 안잘리 씨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닙니다, 슈란 씨. 저는 물론 슈란 씨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아요. 슈란 씨는 더구니들이 위성인이었다고 해도 위협이 된다면서 반대하셨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슈란 씨 자신이 위성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때로 돌아가셨다면 아마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슈란 씨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렸다. 개의치 않고 안잘리 씨는 말을 이어 나갔다. 느리고 수더분한 말투지만 저런 점에서는 굽힘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제 주장이 벨라 씨와 다르다는 점을 이렇게 말하는 건,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주장을 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상황이 좀 다릅니다."
    속삭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지만, 아무도 안잘리 씨를 제지하지 않았다.
    "더구니는 새대구를 완전히 장악했어요. 새대구를 더구니가 쥐고 흔들고 있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저도 여러 각도로 확인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명확합니다. 지금 새대구는 더구니의 식민지예요. 새대구 주민들은 더구니의 인질이고요."
    "인질이라뇨."
    "지금 새대구 주민들과 대화가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친인척들조차도 연락이 끊기고 있어요. 처음 더구니가 왔을 때 새대구 주민들이 어땠는지 기억하시죠. 더구니를 쫓아내자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걸 일단 받도록 주도했던 게…… 저와 연수 씨였죠."
    연수는 불안하게 안잘리 씨를 바라보았다. 어제 연수는 안잘리 씨와 공조하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도무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것 때문이었나.
    "관찰된 바에 의하면 새대구의 주민들은 이미 이마가……. 더구니를 집에 들여서 음식을 바치고 공간을 제공하고 심지어는, 성관계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크게 숨을 들이켜는 소리들. 연수는 엄마를 떠올렸다. 이틀 전부터 엄마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틀 정도야 별것 아니라고 쉽게 생각하고 말았다. 연수 자신도 그리 성실하게 가족과 연락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엄마도 마찬가지다. 만약 엄마에게 문제가 있다면 연동해 놓은 모든 기계들이 알렸을 터다.
    "범죄 신고가 들어온 적이 있나요?"
    안잘리 씨가 적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게 된 슈란 씨가 목소리를 조금 높여서 말했다.
    "아직까지는 없는 거겠죠. 새대구 주민들을 세뇌시키는 그 자체로 범죄 아닙니까. 심신을 빼앗긴 사람들이 어떻게 신고를 해요."
    "심신을 빼앗다니요.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어요?"
    "심신을 빼앗기지 않고서야, 갑자기 끼어 들어온 사람들한테 집 내주고 밥 내주고 몸 대준다는 게 가능이나 한 소리냐고요. 연수 씨라면 그럴 수 있어요?"
    "새대구에 들어온 더구니들 중엔 열 살도 안 된 애들도 있어요."
    "걔넨 머리에 가시 없어요? 성인 되어야 생기는 건가 보죠?"
    연수가 엄마에게 맡아 달라고 떠맡긴 더구니의 이름은 용우였다. 엄마도 아빠도 잃고 혼자 먼 우주 공간 속에서 네 살 때부터 행성들 사이를 떠내려온 여덟 살. 용우는 부모도 기억하지 못했다. 여덟 살의 덜덜 떨리는 다리는 오히려 무중력의 공간보다 중력이 있는 공간이 어색해 보였다. 하지만 적응력이 좋았다. 중력이 약한 이곳에서 용우는 넘어지지도 않았고, 다른 행성에서 온 어린아이들이 그렇듯 신기해하면서 여기저기를 뛰어다니지도 않았다. 제대로 서고 걷는 데 성공한 다음부터는 그저 조용히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머리 전체를 왕관처럼 둥글게 둘러싼 뾰족한 가시들만 빼면, 엄마한테 혼나서 풀이 죽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더구니들이 사람의 마음을 조종한다는 이야기는 더구니들을 비난하려는 사람들이 퍼뜨린 악소문이었다. 더구니를 접촉했던 플라이어들이다. 플라이어 쪽에선 절대로 사실이 아니라고 잡아떼지만, 더구니가 사람을 조종하는 조작 영상이 처음 등장한 곳이 플라이어의 행성이라고 이미 밝혀졌다. 소문은 사람들의 공포 속에 깊게 자리 잡는다. 더구니들에겐 자신이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말할 언어가 없었다. 더구니들은 어디서 왔는지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소식을 듣고 연수가 찾아갔을 때, 새대구 기지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은 더구니들은 조종은커녕 자기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있었다. 더구니들의 몸에서 힘 있게 움직이는 건 오직 머리에 돋아난 가시들뿐이었다. 가시를 숨겨 보려고 천으로 머리를 감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가시들이 꼬물거리는 움직임은 보였다. 머리 위에서 꿈틀거리는 가시들을 보면서 연수는 조금 섬뜩했고, 섬뜩해 한 마음이 금세 부끄러웠다.
    엄마는 귀엽고 싹싹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용우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연수의 어릴 적 기억에도 엄마는 저렇게 환하게 웃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름을 묻고, 기특하게 대답을 잘한다며 또 웃었다. 용우는 새대구의 이글거리는 한낮 속에서 엄마 뒤에 약간 숨은 듯 섰다.
    연수와 헤어지자마자 엄마는 옷을 사러 갔다. 새 옷을 입고 어색하게 웃는 용우의 영상을 전달받았다. 다들 나이가 들면 애들이 예쁘다더니, 엄마도 그런 걸까. 손주를 안고 어르는 사람들이 부러웠으려나. 어색하게 웃는 얼굴 위로 바짝 솟아오른 가시는 힘차게 꿈틀거렸다. 엄마는 어쩌면 생각보다 더 편견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더구니들은 몇 달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요. 생산 활동이라는 건 전혀 없이 기생충처럼 살고 있다고요."
    더구니들도 일하기를 원한다는 말은 수도 없이 해왔다. 입장을 반대로 바꾼 채 팔짱을 끼고 있는 안잘리 씨도 해온 말이었다. 연수는 안잘리 씨 쪽을 보았다. 이제 안잘리 씨는 더구니들도 일하고 싶다고 말해 주지 않는다. 연수는 이제 그만 자신도 입을 다물고 나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와글와글한 소리들. 파리가 묻은 서류도 그냥 놓아두고, 문을 열고 나가서, 집으로 가고 싶었다.
    "더구니들은 취업을 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오래 했습니다."
    늘 하던 말을 했다. 공회전의 문을 열어버렸지만 하는 수 없었다. 고용 얘기만 하면 예민해지는 사업가 레베카 씨가 얼른 입을 열었다.
    "더구니를 고용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더구니를 두려워하는데, 더구니를 고용했다가 피해를 입는다면 그걸 누가 보상합니까."
    슈란 씨가 냉큼 말을 받았다.
    "신원을 보장이라도 할 수 있으면 또 모르죠. 그런데 더구니의 신원을 어떻게 보장하지요? 더구니는 어디에서도 존재의 증빙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뭘 하다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고요."
    "오류가 있으면 언제든 그런 기록은 말소될 수 있어요."
    "그건 아니죠. 더구니는 아주 특수한 살인자들이니까요."
    "책임질 수 없는 말은 자제하세요."
    "연수 씨야말로 벌어진 피해를 호도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비참하게 죽어간 모스 사람들에 대한 모욕입니다."
    "더구니가 사람들을 조종한다는 소문은 증명되지 않았어요."
    안잘리 씨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래요, 연수 씨 말씀대로 어쩌면 다 뜬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연수 씨는 중요한 걸 놓치고 있어요. 소문이 왜 생겼는지. 소문이 생길 만큼 사람들이 무서워합니다. 왜일까요?"
    "연수 씨, 모스의 죽음들을 삭제하지 마세요."
    "모스는 밝혀지지 않은 사건입니다. 제대로 된 조사조차 이루어진 적이 없어요. 그리고……."
    "더구니들도 많이 죽었다는 얘길 또 하실 생각인가요? 적당히 하세요. 머리 묶고 이마 멀쩡하다고 퍼포먼스 하면 답니까? 생각을 하고 말씀하세요. 새대구와 다른 지역 사이의 이동이 눈에 띄게 줄었어요. 새대구가 고립되고 있는 중이라고요."
    "새대구에 어떤 피해가 발생했나요. 조사라도 하셨나요? 소문이야 두려워서 생겼죠. 왜 두려운 거죠? 여러분이 공포를 조장하고 있잖아요."
    그때 파리 한 마리가 다시 왱 소리를 내며 연수의 귓전을 지나갔다. 연수는 짜증스럽게 손을 내저었고, 그 때문에 연수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몸을 휙 움츠렸다.
    "파리가 자꾸 어디서 들어오는 거야……."
    연수가 손등을 괜히 무릎에 문지르는데 문이 열렸다. 뛰쳐나갔던 벨라 씨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문 앞에 서 있었다. 어떻게 뛰어왔는지 신발 한쪽이 사라지고 없었다. 숨을 한참 몰아쉬느라 제대로 말을 못 잇던 벨라 씨가 헐떡이며 단어를 내뱉었다.
    "새대구…… 새대구에서 전투가 벌어졌어요."
    드론 카메라가 들어가 있었다. 각자 자리에 앉아서 렌즈를 켰다. 화면이 들어올 때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연수는 슈란 씨의 얼굴을 슬쩍 훔쳐보았다. 슈란 씨의 얼굴은 전에 없이 상기되어 있었다. 눈에는 분명 분노와 함께 부정할 수 없는 흥분이 어른거렸다. 아드레날린이라는 것이 눈에 보였다면 슈란 씨의 전신에서 빛날 것이다. 연수는 자신의 두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가만히 내려놓은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연수는 얼른 왼손으로 오른손을 붙들었다. 엄마. 여기선 엄마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직 아무도 모른다.
    엄마의 안부에 대해 걱정하는 것과 별개로, 연수의 머릿속에서는 전투 시나리오 세 개 정도가 빠르게 완성되었다. 엄마는 곧잘 이런 연수를 보며 '애가 너무 차갑다'고 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와 함께 사는 삶은 조금도 안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엄마는 모를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연수는 굳이 엄마에게 반박하지 않았다. 엄마의 방 안에서 와장창 물건이 깨지는 소리가 들릴 때, 엄마의 방문을 여는 게 좋을지 고민하던 일곱 살 때부터 이 습관은 일관되게 연수의 삶을 지켜 왔다.
    첫 번째 가능성은 새대구의 원주민들이 더구니들을 습격했고, 더구니들이 반격한 경우였다. 원주민의 공격은 혐오자들에 의해 계획적으로 이루어졌을 확률이 높다. 더구니들이 이길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이런 경우 엄마는 용우를 감싸려다가 다른 나쁜 일만 겪지 않았다면, 안전할 것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더구니들이 즉흥적으로 봉기를 일으킬 경우의 수다. 우연적 요소가 얼마나 작동했는지에 따라 전황은 크게 달라진다. 다만 용우는 아직 나이가 어리고 전면적으로 싸움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엄마와 용우는 사안에서 완전히 떨어진 채 안전할지도 모른다.
    세 번째 가능성은 더구니들이 새대구를 기지로 삼기 위해 계획적으로 봉기를 일으킨 경우다. 가능성이 적었다. 모스의 전적이 있기 때문에 한 번 더 축출되었다가는 어디에도 발을 디딜 수 없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용우와 엄마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당에서 적극적으로 보호하기를 요청받은 더구니들은 모두 15세 이하의 무연고자였다. 단 일곱 명. 더구니들은 아무리 굶주리고 있을 때에도 연고 없는 아이들을 버리지 않았다. 종교적인 이유일 것이라고들 추정했다. 그들이 떠돌면서도 꾸준히 공동체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게 그 종교 때문이라고 했다. 더구니들은 모두 독실한 신도들이었다. 우주선에서 내리자마자 그들은 가시가 꼬물거리는 이마를 바닥에 대고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행성과 행성 사이를 넘나드는 시대에 신이라니. 연수는 조금 우습게 생각했었다. 일곱 명의 꼬질꼬질한 아이들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종교라는 존재가 이 아이들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지켜줬다면 그건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너무 유동적이었다. 비교적 안정적이고 더구니들이 악마화 되지 않을 첫 번째 시나리오가 가장 유리했다. 진압도 빠를 것이고, 저항이 전면적이지 않았다면 동정론도 높아질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사람들이 어느 쪽이건 많이 죽었다면?
    삽시간에 시야가 어두워졌다. 눈앞으로 새대구의 풍경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늘도 쨍쨍한 햇볕, 그 아래 후덥지근한 시가지였다. 연수는 얼른 몇 개의 감각을 껐다. 굳이 더위까지 느껴 가며 전투 상황을 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소리만으로도 더위가 느껴졌다. 이글거리는 도로, 화상을 입을 것 같은 표면들, 더운 날씨 특유의 나른함과 고요함. 바람이 잠깐 불자, 우거진 온갖 이파리들이 흔들리면서 복잡한 소리를 냈다. 연수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이미 바람까지도 더울 것을 알고 있었다. 뾰족한 새소리 말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조금 상황을 지켜보는 게 지겨워질 때쯤, 천둥처럼 총탄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렸다.
    총을 쏜 자는 경찰복을 입은 새대구인이었다.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는 이 역시, 새대구인이었다. 총소리를 인식한 카메라는 발생한 상황을 다각도에서 보여주었다. 총에 맞은 이는 배에서 피를 흘리며, 도로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연수는 빠르게 쓰러진 이의 행색을 살폈다. 손에 아무런 무기도 들고 있지 않았고, 어떤 이동수단도 타고 있지 않았다. 함께 저항하는 이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보아도 저항하지 않는 비무장 시민에게 경찰이 총격을 가한 그림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영상은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었다. 영상이 제대로 녹화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확인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작은 동작이 잡혔다. 연수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놀랍게도 바닥에 쓰러진 새대구인은 아직까지 숨이 붙어 있었다. 그는 계속 무어라 중얼거리며 앞으로 기어나가고 있었고, 오히려 총을 쏘았던 경찰이 하얗게 질린 채 뒷걸음질 쳤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직 살아 있는데, 어서 응급조치 할 인력을 보내야 하는데. 새대구에 의료진은 파견되었는지 물으려고 연수가 렌즈를 끄려고 하자마자, 벨라 씨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머리, 머리를 보세요!"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의 머리카락이 땀으로 젖어 이마가 드러나 있었다. 노골적으로 움푹 패어버린 이마와 옆머리. 마치 서유기에 나오는 긴고아가 투명한 모양으로 머리를 죄고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의 머리는 빙 둘러서 선이라도 그어 놓은 것처럼 움푹 패어 있었다. 연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어안이 벙벙해서 입만 벌리고 있었다.
    잘못되었다. 연수가 알고 있는 모든 건전한 상식으로는 더구니에 대한 모든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다. 더구니의 머리에 돋아난 가시에 초자연적 힘이 있다는 이야기도, 더구니에게 '홀린' 이들의 머리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움푹 팬 자국이 생긴다는 이야기도 사실일 수가 없었다. 그런 생명체가 있을 리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었다. 초능력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벨라 씨의 말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저 사람의 머리가 저 모양으로 파인 걸 보고서도 더 이야기할 게 있나요? 조종당해서 경찰들과 싸우고 있는 가엾은 사람들이에요. 얼른 군대를 파견해서 저 사람들을 구해야 합니다."
    "지금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은 경찰입니다. 저 사람은 공격할 만한 어떤 무기도 들고 있지 않아요. 심지어 가까이 가지조차 못 했는데 총에 맞았잖아요."
    "연수 씨, 지금 저랑 같은 상황 보고 있는 거 맞으시죠? 지금 저 머리, 머리 안 보이세요?"
    연수는 마음을 다잡고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쏘아붙이기로 마음먹었다.
    "머리가 파인 게 왜요?"
    말을 내뱉는 순간, 이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좌중의 분위기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연수의 반박에 질렸다는 표정들을 지었다.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는 수 없이 연수는 뱉은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머리 모양이 바뀌었으면 그 자체로 위험한 사람이 되나요? 무슨 행동을 했는지 봐야 할 거 아니에요. 머리야 바뀌었지만 사람을 공격했는지는 아직 모르지 않습니까."
    "제정신이세요? 계속 경찰에게 다가서는, 저게 공격하려는 게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이에요."
    그는 움푹 팬 머리를 하고 배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허우적대며 경찰에게 다가서기를 멈추지 않았다. 카메라가 좀 더 가까이 그의 얼굴을 잡았다. 그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우리는…… 집을……."
    경찰은 더 이상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대며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말하려던 새대구인은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배뿐만 아니라 가슴, 뺨, 팔, 어깨 할 것 없이 총탄이 들어박혔다. 구멍이 난 자리마다 피가 흘러내렸다. 총에 맞은 이는 입을 벌린 채 그대로 도로에 쓰러졌다. 피가 점점 넓게 번져 갔다. 그리고 아직도 덜덜 떨고 있는 경찰 쪽으로도 흘러내렸다. 흐르는 피를 멍하니 보고 있던 경찰은 신발 끝에 피가 닿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넘어지고 말았다.
    엉덩방아를 찧은 경찰은 그제야 정신이 든 듯이 자신이 난사해서 죽인 누군가의 시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연수는 땅과 경찰의 손 사이에서 계속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는 총을 보고 있었다. 총을 차마 놓지 못한 경찰의 손은 덜덜 떨렸고, 시신은 미동도 없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는 방도도 사라졌다.
    멀찍이서 새소리가 들리는 것만 제외한다면 렌즈 속에서 흘러가는 순간들은 마치 정지화면인 것처럼 보였다. 의회에서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득히 새소리에 섞여서 가늘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까지 팔의 경련이 채 멎지 않은 경찰은 허둥지둥 총신을 다시 움켜쥐었다. 쓰러진 사람 뒤쪽에서 머뭇거리며 다가오는 건 사십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였다. 여자는 울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를 감싼 가시들이 뾰족하게 솟아오르자, 경찰은 당황하며 여자를 향해서도 총을 겨누었다.
    "아, 안 돼."
    얼떨결에 입 밖으로 말을 뱉은 건 슈란이었다. 경찰은 손을 덜덜 떨면서도 총을 놓지 않았지만, 더구니는 경찰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가볍고 빠르게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경찰을 향해서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날카로운 가시들이 경찰을 향해 몸을 내뻗자, 더구니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경찰의 손이 더구니의 고갯짓과 같은 속도로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총은 바닥에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경찰이 총을 내려놓자, 더구니는 다시 시신을 향해 걸어갔다.
    더구니가 시신에 손가락을 댔을 때,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연수는 순간적으로 정말로 더구니에게 초능력이 있는 건 아닐까, 있으면 안 되는 것일까 생각을 했다. 그러나 더구니는 쓰러진 새대구인을 일으켜 세우는 대신에 그의 몸 옆에 얼굴을 묻고 통곡을 시작했다. 더구니의 이마에서 뻗어져 나온 가시들이 그의 몸을 쓰다듬었다. 더구니는 무어라 계속해서 말을 하며 죽은 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죽은 이의 움푹 팬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는 가시 아래의 얼굴은 어딘지 성스럽게 느껴지는 구석마저 있었다. 더구니의 울음은 힘이 있었다. 지켜보기만 했던 이들에게도 울음은 금방 옮아갔다. 더구니와 죽은 이가 무슨 사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갈비뼈 아래가 묵직하게 아파 왔다.
    총을 쏜 경찰도 그 통곡을 지켜보다가 결국에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더 이상 그의 머리에는 맞지 않게 된 경찰모가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모자를 양손으로 꼭 쥐는 걸 보고 있자니, 이미 경찰의 머리는 살짝 누른 빵 반죽처럼 오목한 모양이었다.
    새대구의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거리로 나와서 손을 맞잡았다. 처음엔 한두 명이었는데, 분 단위로 사람들이 늘어났다. 쨍하게 내려쬐는 뙤약볕 아래 너나 할 것 없이 유니폼처럼 쏙 들어간 머리 모양을 하고 섰다. 새대구에 머물고 있는 더구니들은 분명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머리 모양이 바뀐 새대구 주민들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전투 발생이 보고된 지 1시간 만에 새대구 주민들의 반 이상이 더구니에게 세뇌되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먼저 공격한 건 어느 쪽이에요?"
    "당연히 더구니 쪽이겠죠. 갑자기 경찰이 먼저 공격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아까 영상 못 보셨어요? 더구니 측인 새대구 사람은 아무런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우리가 본 것만 그럴 수도 있죠. 어떻게 알아요."
    연수는 아까 보았던 영상을 다시 불러왔다. 렌즈엔 아무것도 재생되지 않았다. 당황한 연수는 몇 번을 더 영상을 찾다가, 통신을 열었다.
    [1시간 전에 녹화된 새대구 영상 확인]
    확인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녹화되지 않았다. 의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겁에 질렸다. 벨라 씨는 이제 거의 종교를 믿는 사람처럼 보였다.
    "더구니가 초능력으로 지운 거예요. 자기들이 먼저 공격한 걸 감추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벨라 씨. 차라리 더구니의 첩자가 우리 통신망 내부에 있다고 하는 게 더 현실적이겠어요."
    "그래요, 그런 거 같아요."
    연수는 눈살을 찌푸리고 입을 다물었다. 벨라 씨의 마음속에서 이미 더구니는 전지전능한 존재였다. 지금 벨라 씨와 논쟁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두려워하는 마음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조차 없다. 겁을 먹은 마음은 편파적으로 움직인다. 안잘리 씨처럼 비교적 더구니에게 너그러웠던 사람들이 갑자기 돌아선 것도 공포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의회는 더욱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세뇌된 주민들을 구해야 하지만 더구니와 접촉해서는 안 된다. 아예 새대구를 봉쇄하면 주민들의 안위를 책임질 수 없고, 주민들을 빼내오기 위해선 더구니와 접촉하지 않을 방도가 없다. 원칙적인 빤한 말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금방 지웠다. 실제로 주민들이 세뇌되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는 말은 해보았자 씨알도 먹히지 않을 터였다. 머리에 투명한 테라도 두른 것 같은 저 기괴한 머리 모양이 이미 모든 걸 다 설명하고 있었다. 어떻게 두개골이 저렇게 눌릴 수가 있지? 푹 들어간 머리를 보면서 연수는 천천히 생각을 짚어 나갔다. 자신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었다.
    연수는…… 두려웠다. 조용히 엄마 집으로 연결된 신호들을 체크해 보았다. 신호들은 조용했다. 여전히 엄마에게는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이다.
    이제 가능한 선택지는 더구니와 맞닥뜨리는 것뿐이었다. 슈란 씨가 군대를 파견하자는 제안을 했고, 곧바로 벨라 씨가 그 제안에 동의했다. 군 쪽에서는 곧바로 반대 의견을 전달해 왔다. 인간을 조종하는 더구니와 직접 맞닥뜨리고 싶어 하는 군인은 아무도 없었다. 연수는 군대를 파견하는 데에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인도주의 찾다가 사람들 다 갖다 바치게 생겼느냐고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안드로이드로 대체하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군대가 더구니를 제어할 수 있건 없건 간에 연수가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안이었다. 더구니를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들도, 군대와의 충돌로 모스의 상황이 이곳에서도 또 한 번 반복되는 걸 피하고 싶은 이들도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안이었다. 연수의 수정안은 통과 되었다. 의회는 안드로이드를 파견해서 상황을 확인하고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사살권을 포함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을 내지 않고 반대표를 던졌다. 이길 수 없다면 기록에라도 남아야 했다.
    모든 의원들이 숨죽이며 주목하는 가운데 파견된 안드로이드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게 멈추고 말았다. 국유 코드가 있었던 게 함정이었다. 멍청이들,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하냐고 분개하는 안잘리 씨의 목소리가 새대구의 소리들 너머로 들려왔다. 안드로이드 앞을 막아선 것은 경찰모를 쓸 수 없게 된 경찰들이었다. 쭉 서 있는 경찰들 가운데는 아까 총을 쏴서 사람을 죽였던 그도 있었다. 총을 제대로 들어 보기도 전에 경찰들은 인식코드를 확인한 안드로이드를 무장 해제시켰다. 의회는 안드로이드의 명령 신호가 끊기는 걸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어야 했다.
    머리에 홈을 판 사람들은 허공을 향해 저마다 무어라고 소리쳤다. 드론이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다니며 목소리를 퍼 올렸다.
    "틈을 만들어주세요, 만나게 해주세요."
    새대구 주민들 뒤로 걸어오던 더구니들이 발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더구니들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마치 더구니의 몸에 연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새대구 주민들과 더구니들은 계란 흰자와 노른자 모양으로 달라붙었다. 더구니들을 감싸고 걷는 새대구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긍지를 숨길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자랑스럽게 빛나는 얼굴을 하고, 가슴을 앞으로 내민 채 막 세상에 발을 내딛은 열다섯 살처럼 걸었다. 새대구를 나가는 건 금방이었다. 연수는 엄마의 모습을 군중 속에서 발견했다. 엄마는 길가에 앉아서 잠깐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용우는 엄마 품에 안겨서 눈을 감고 잠이 든 것 같았다. 용우의 가시가 바람이라도 부는 것처럼 흔들렸고, 엄마의 이마에는 고랑 같은 띠가 새겨져 있었다. 엄마는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나른하게 웃고 있었다.
    목적지가 의회라는 게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졌다. 사람들은 점점 불어났다. 더구니의 행렬을 만나는 이들마다 띠를 둘렀다. 건물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경고를 해야 한다는 안잘리 씨와 공포를 조장해선 공황이 온다는 레베카 씨가 팽팽하게 맞섰다. 벨라 씨는 아예 패닉 상태였다. 슈란 씨는 벨라 씨를 북돋우려고 했지만 포기한 모양이었다. 앵무새처럼 군대를 파견해야 한다는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안드로이드 누가 파견하라고 했는지는 기록되었죠?"
    누군가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화면에서 들리는 소리인지 의회에서 들리는 소리인지 알 수 없어서 연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연수처럼 노래를 듣고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그 자리에 없어 보였다. 모두가 주장과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노랫소리는 청량했다.
    더구니는 파죽지세였다. 싸움이 되질 않았다. 몇 사람의 죽음은 조금씩 있었지만, 죽음 때문에 발생하는 소요는 오래가지 않았다. 총을 겨눠야 할 이들은 길게 총을 들지 못했다. 이마가 평온하게 내려앉으면 이들은 곧 같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더구니가 두려워 숨어버렸던 이들조차 집 밖으로 나와 함께 걸었다.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출발했을 때의 열 배가 넘는 속도로 걸어오는 무리들을 보면서도 아무도 의회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했다. 회의는 완전히 멈췄다.
    그 와중에도 연수의 귓전에는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알 수 없는 노래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안잘리 씨가 분기탱천해서 연수에게로 다가왔다. 연수는 노랫소리에 맞춰 안잘리 씨의 붉은 치맛자락이 좌우로 휘날리는 걸 느리게 보았다.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민 안잘리 씨가 전에 없이 분노한 목소리로 으르렁댔다.
    "연수 씨, 말해 봐요.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요."
    "왜 저한테만 물으시는 거예요? 안잘리 씨도……."
    "나야 연수 씨랑은 상황이 다르죠. 나는 같이 살 수 있다고 했지 조종 받고 싶다고 하지는 않았어요. 연수 씨는 그 사람들이 새대구에 정착하는 데 제일 큰 힘을 쓴 사람이잖아요. 연수 씨 당이랑 연수 씨가 주도적으로 받았잖아요."
    "아니…… 내가 무슨, 나도 조종당하려고 그런 건 아니었어요."
    "사람들이 경고했었잖아요!"
    "안잘리 씨도 그땐 안 믿었으면서 지금 와서, 안잘리 씨가 나한테 뭐라고 할 문제예요? 글도 쓰고 연설도 하고 뉴스도 나오고, 안잘리 씨도 다 했잖아요. 저기 우리 엄마도 있단 말이에요! 제발! 노래 좀 그만 불러!"
    안잘리 씨가 흠칫했다. 연수는 귀를 틀어막았지만 그래도 노랫소리는 멈추지를 않았다.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두려움에 뇌가 환청을 만들어내고 있는 거겠지. 환청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해도 멈출 방도가 없었다. 오히려 환청이라는 걸 의식하자 더욱 큰 소리로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제 가사까지 또렷하게 들렸다.
    "들어가기 위해선 구멍이 필요하지."
    멍하니 노래를 따라 부르던 연수는 머리를 한 번 흔들었다. 까무룩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환청과 별개로 정신은 더욱 또렷했다. 입술을 꼭 깨물고 안잘리 씨에게 말했다.
    "두려워서 환청이 들리나 봅니다. 미안해요."
    슈란 씨는 연수를 자리에 앉히고 이마의 땀을 닦아 주었다.
    "연수 씨, 일단은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부터 먼저 찾아야 해요. 정신 놓지 말아요."
    벨라 씨는 완전히 맛이 가서 중얼대고 있었다. 슈란 씨와 함께 뉴스를 확인해 보려고 했지만, 뉴스 채널은 모두 정지되었다. 다른 행성의 뉴스 채널에서는 더구니와 관련한 뉴스는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행성연합에 더구니와 관련한 영상을 송부해 보려고도 했지만, 저장되지 않은 영상은 당연히 어디에도 송부할 수 없었다. 무리는 그사이 의회 코앞까지 다가왔다. 연수의 귀 속에서 들려오던 노래는 이제 다른 소리들이 하나도 안 들릴 정도로 커졌다. 장엄한 환청과 함께 의회 문을 밀치는 더구니와 투명 긴고아의 행렬을 보는 건 여러 가지 면에서 굉장했다.
    잠긴 문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각 도시에서 따라온 경찰과 군인들이 먼저 앞장섰다. 어떤 무력충돌도 없이 의회 문은 매끄럽게 열렸다. 도저히 다 들어올 수 없을 수많은 사람들이 홈으로 된 관을 쓰고 의회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 사이를 뚫고 뾰족한 가시를 빛내며 더구니들이 들어왔다. 의원들은 서둘러 벽에 달라붙었다. 슈란 씨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안잘리 씨는 모두 다 포기한 표정으로 더구니들을 바라보았다. 벨라 씨는 벽에 머리를 박고 동상이라도 된 듯 꼼짝하지 않았다. 레베카 씨는 머뭇거리며 몸을 움츠리고 구석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작은 용우가 엄마 손을 꼭 잡고 사람들 사이를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처럼 어딘지 어색해 보이는 얼굴로, 수줍은 듯 연수 앞에 섰다. 이제 도망갈 곳도 없었다. 용우가 발돋움을 하려고 낑낑거리자 엄마가 용우를 안아 올렸다. 용우는 가볍게 자포자기한 연수의 귀를 만졌다. 노래가 드디어 멈추었다. 갑자기 찾아온 고요에 숨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안녕하세요."
    "말을 잘하게 되었구나."
    엄마가 연수의 팔을 잡았다.
    "우리는 같이 지내기로 했어."
    "그래요, 그런 것 같네요."
    연수는 손을 뻗어서 조심스럽게 엄마의 이마를 만졌다. 엄마의 이마에 옴폭 들어간 홈은 딱딱하지도 않았고 말랑하지도 않았다. 한 번도 만져 보지 못한 기이한 감각이었다. 촉각이었는데도 눈부신 것도 같았고 이마를 만지는 자신의 손가락이 명치 깊은 곳을 툭툭 때리는 것 같기도 했다. 연수가 엄마의 이마에서 손을 떼자 용우는 조금 슬픈 표정을 지었다. 용우가 슬픈 표정을 짓자 머리의 가시들이 용우의 머리를 꼭 끌어안는 것처럼 움직였다.
    더구니들의 몸이 가볍게 반짝였다. 벽에 머리를 박고 떨고 있던 벨라 씨의 어깨에 더구니 한 명이 가만히 손을 얹었다. 곰처럼 덩치가 커다란 남자였다. 벨라 씨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벨라 씨가 울먹이며 더구니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벨라 씨의 눈썹 위 점에서 3센티미터 떨어진 데로부터 가느다란 홈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동그랗게 뒤로 묶은 벨라 씨의 머리까지 자연스럽게 옴폭 파인 띠가 만들어졌다. 더구니는 벨라 씨의 귀에 무어라고 속삭였다. 벨라 씨의 눈에서 순식간에 두려움이 사라지더니만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벨라 씨가 곰처럼 커다란 더구니의 품에 안겨서 우는 동안,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은 더구니와 눈을 마주쳤다. 눈빛에 머리통이 통째로 감화라도 된 것처럼 사람들은 어떤 상처도 없이 영예로운 홈을 얻었다.
    연수의 눈에 이마에 홈을 얻고 두려움을 잃어 가는 과정은 어딜 보아도 더구니와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더구니들이 의회를 다 빠져나갈 때까지 이마에 홈을 얻지 못한 사람은 연수, 안잘리 씨, 슈란 씨뿐이었다. 더구니들은 홈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한 번씩 꼭 끌어안아 주고 의회를 떠났다. 더구니들의 품에 안겼을 때 연수는 순간적으로 모든 시간이 사라져 버린 듯한 평온함을 느꼈다. 슈란 씨는 자신을 끌어안건 말건 이를 악물고 자기 머리를 붙들었다. 더구니들이 다 나갈 때까지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안 돼. 나는 조종당하지 않을 거야."
    긴고아를 닮은 홈을 얻지 못한 이들은 모두 123명이었다. 이들이 우주선을 타고 행성을 떠난 지 2주 만에 뉴스 채널은 복구되었다. 뉴스 채널이 복구되었다는 것을 제일 처음 알려온 것은 새대구에서도 홈을 만들지 못한 열다섯 살 소녀였다.
    "뉴스가 다시 나와요!"
    소녀는 난민으로 들어왔던 더구니와 한 집에 살았고, 자신을 뺀 모든 가족은 한날한시에 머리에 홈이 생겼다고 했다. 화장실에서 혼자 홈을 만들겠다고 커터 칼로 이마를 그은 자국이 선명하게 이마에 남아 있었다.
    123명의 선택 받지 못한 자들은 모여 앉아 뉴스를 보았다. 두고 온 고향과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뉴스는 마치 더구니 사건이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다들 더구니의 노예가 되어 있는 건 아닐까요?"
    "……더구니들은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이 와중에도 더구니 편을 들고 싶어?"
    뉴스 안에서 떠나온 행성 사람들은 일을 하고 물건을 팔고 분노하고 사람을 죽이고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있었다. 그들은 홈도 없고, 가시도 돋지 않은 매끈한 이마를 하고 행성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았다. 매끈한 이마를 빛내며 앵커는 나들이를 가는 가족들의 소식을 전했다. 새대구 근교의 어느 유원지에 선 카메라는 할머니와 놀러온 여덟 살짜리 아이를 인터뷰했다. 용우의 이마에는 가시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엄마도 동그란 머리를 하고 있었다. 용우는 아주 평범한 아이들이 그렇듯 할머니 손을 잡고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용우의 몸만큼 뛰어오르는 중력의 높이가 용우를 더 명랑하게 만들었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아요!"
    용우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우주선 안에 퍼질 때 한 명이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은 삽시간에 우주선 전체로 번졌다. 연수는 쏟아지는 통곡소리 앞에서 그때 들려온 노래를 혼자서 중얼거렸다.
    "들어가기 위해선 구멍이 필요하지."
    갈 곳 없이 헤매던 배가 작고 무거운 구멍을 만난 건 뉴스가 다 끝날 무렵이었다. 뉴스를 보느라 아무도 어디로 운항하는지를 지켜보지 않은 탓이었다. 궤도를 돌던 시스템은 앞에 있는 이상 영역에 대해 보고했지만 123명은 아무도 보고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 물질이 있는 이상 영역이라면 자연스럽게 우주선이 피해 갈 것이었고, 아직까지는 어디에 기항해야 할지도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앵커가 마무리 멘트를 하기 직전에 우주선은 질량의 구멍으로 삽시간에 빨려 들어갔다.
    출발한 빛 중에서 어떠한 빛도 도달하지 못하는, 시작된 시간 중에서 어떠한 시간도 지나치지 못하는 억겁의 순간들이 비눗방울처럼 떠 있는 이상 영역 속에서 우주선은 우주선이 아니게 되었다. 홈을 얻지 못한 123명은 존재했지만 동시에 존재할 수 없었다. 처음에 연수는 공간과 시간을 인식하지 못하여 혼란했지만, 곧 타자를 인식할 수 없어서 혼란했고, 금세 자신을 인식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무엇이 멈추고 움직이고 지나가는지 알 수 없는 영역 속에서 연수는 자신이 연수라는 것을 거의 잊었다. 한 번 뛰지도 않은 채 빠르게 걷던 용우의 눈빛도 잊었다. 엄마의 이마도 잊었다. 자신을 제외한 122명의 존재도 잊었다. 연수는 더 이상 연수가 아니었다. 한때 연수였던 의식은 자신이 무척 길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의 형태로도 공간의 형태로도 길고 또 길었다. 존재는 그런 것이었기에 그것은 기다란 선이 되어 어딘가로 겹쳐지기를 반복했다. 한없이 기다란 선과 자신을 겹쳐 가던 어느 순간, 문득 언어가 되지 않은 목소리를 들었다.
    "떠도는 이여, 너는 구멍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내가 너와 함께 있단다."
    한때 연수였던 것은 이리저리 의식을 옮겨 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함께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영역 속의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크고 무거운 목소리였다. 비눗방울 같은 순간들을 모두 뚫고 어느 영역을 빠져 나와서도 한동안 연수는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눈을 감았다가 뜬다는 감각을 수 시간 동안 연습하고 나서야 연수는 자신이 인간의 형태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은 이들은 예순한 명이었다. 안잘리 씨는 사라져 있었다. 연수 바로 옆에 눈을 몇 번씩 깜빡이며 슈란 씨가 누워 있었다. 연수는 슈란 씨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어 슈란 씨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슈란 씨의 머리에는 뾰족하게 반짝이는 가시들이 솟아 있었다.
    연수는 자신의 머리로 손을 뻗어 가시를 만졌다. 뾰족한 부분에 살짝 손가락을 대려고 하자, 가시는 얼른 몸을 웅크렸다.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블랙홀에 들어가기 전에 비해 물품들이 많이 사라져 버린 우주선 안에는 웬 파리 한 마리가 윙윙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몸이 다시 생긴다는 것은 귀찮음과 혐오스러움을 삽시간에 다시 익히게 되는 것이었다. 몸에 타고 흐르는 유전자가 시킨 그대로 연수는 파리를 잡으려고 손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머리 위에 뾰족하게 솟은 가시가 전해 주는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다.
    파리의 목소리였다.
    "안 돼, 또 죽이지 마."

 

 

 

 

 

 

 

 

 

 

 

 

 

 

 

채기성

작가소개 / 이서영

SF와 판타지를 쓴다. 기술이 노동하는 인간과 관계맺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쓴다. 혼자 쓴 책으로 『악어의 맛』, 앤솔로지로 『이웃집 슈퍼히어로』, 『다행히 졸업』, 『여성 작가 SF 단편집』이 있다.

 

   《문장웹진 2019년 12월호》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