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성(제1화)

[2019 청년예술가 생애 첫 지원/중편소설]

 

 

금속성(제1화)

 

 

민병훈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조수와 상의했다. 조수는 홍보를 하자고 말했다. 조수는 언제부턴가 자신을 조수라고 부르라 했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일을 배우지도, 돕지도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대해서만 분명한 기준으로 행동한다. 혹시 이름이 조수냐고 물어보려다가 관뒀다. 나는 조수의 눈치를 많이 본다. 대부분 그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조수는 웃음이 없고 장난이나 농담도 통하지 않는다.

 

    홍보는 간단하게, 폐지 뒤에 위치와 번호를 적어서, 여기저기 붙이면 된다고 했다. 조수가 적고 내가 붙였다. 많은 곳에 붙였다. 전봇대, 게시판, 벽, 자동차, 자동차에 붙이다가 몇 번이나 경고음을 들었다. 대학 캠퍼스에선 왜 출입을 막았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조수는 연락이 오면 출근한다고 작업장을 떠났다.

 

    일주일이 지났다.

 

    열흘째, 연락이 오는 대신 사람이 찾아왔다. 조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업장 옆 컨테이너에서 벨소리가 들렸다. 왜 거기서 나오느냐고 묻자 설명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방문자를 사무실에 안내했다. 그는 침실에서 뭐가 자꾸 자라는데 도통 정체를 모르겠고 무서우니 철거를 해달라고 말했다. 철거요? 크기를 물어보자 어제도 다르고 그제도 다르고 오늘도 달라서 내일도 모를 거라고 말했다. 터무니없는 대답이란 게 있다면 방금 들은 대답에 가까울 것 같았다. 경비를 말해 주고 주소를 받았다. 조수는 그가 떠날 동안 앉은 자리에서 계속 그를 노려봤다. 개시를 망칠 수 없어 발을 툭툭 찼는데 반대로 내 발을 밟는 바람에 소리를 지를 뻔했다. 방문자가 자리를 떠나자 조수는 내게 귓속말을 했다.
    골치 아픈 일이 될 겁니다.

 

    작업장을 연 땅은 먼 친척이 내게 남겨 준 것으로 면적이 300평에 달한다. 친척은 이 땅에 자질구레한 것들을 많이 쌓아 뒀고 도저히 정리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어릴 때 와본 기억으론 녹슨 쇠에서 풍겨오는 비릿한 냄새와 기름때 전 옷, 지평선에서 한동안 사라지지 않은 노을의 풍경 정도다. 왜 내게 이곳을 남겼을까.

 

    잠과 술이 깨지 않는다. 조수는 차에서 면도를 하라고 말했다. 몇 번이나 베일 뻔했다. 출발한 지 세 시간이 지났지만 도착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조수는 아는 길이라고 말했다. 면도크림을 제대로 닦지 못하고 졸다 깨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한적한 국도변에서 차가 멈췄다. 저 집 같은데요. 조수는 차창을 열고 먼 곳을 가리켰는데 밤에도 불구하고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이 많았다. 공사장인가. 조수는 고개를 저었다. 뭘 캐는 것 같아요. 차를 돌려 그곳으로 향했다. 밤벌레들이 창틈 새로 날아들었다.

 

    잠과 술과 악몽. 출장을 다녀온 지 이틀이 지났다. 내리 잠만 잔 것 같다. 그날 본 것에 대해서, 조수와 나는 돌아오는 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수는 운전을 하고, 나는 뒷좌석에 앉아 온몸에 묻은 검은 윤활유를 닦아냈다. 계속 닦아냈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피가 묻은 것처럼 질색을 했다고, 나중에 조수가 말해 줬다. 목이 마르다. 조수를 부르지만 대답이 없다. 나는 조수를 부를 때 조수야, 라고 말한다. 조수야. 침대에서 내려오며 중얼거리듯 말한다. 문을 열자 더운 바람이 훅 끼쳐 온다. 해는 중천을 지나, 곁눈질로 보일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작업장 곳곳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모든 게 흐려지고 있다. 좌우로 넘실대고 있다. 다시 잠이 온다. 문을 닫고 침대에 눕는다. 뭔가에 취했던 건 걸까.

 

    조수가 개를 한 마리 데려왔다. 오른쪽 눈 주위만 검고 다른 곳은 하얀데 어쩐지 뛰는 모습이 어색했다. 뒷다리에 의족이 장착되어 있었다. 원래는 바퀴가 있었어요. 조수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레처럼? 조수는 내게 무례하다고 말했다. 그건 개와 인간 모두에게 무례한 말이에요. 눈앞의 개와 인간에게 사과했다. 의족을 보자 꽤 오랫동안 관리를 받지 못한 것 같았다. 조수는 개를 데리고 작업장으로 향했다.

 

    개의 이름은 팔콘으로 정했다.
    개도 조수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다.

 

    팔콘이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밖에서 짖는 줄 알았더니 집 안까지 들어와 나를 보고 짖는 것이다. 품에 안으려고 팔을 뻗었지만 그럴수록 더 큰 소리로 짖는다. 초인종이 울린다. 잠옷 위에 코트를 걸쳐 입고 작업장 입구로 향한다. 집은 낡은 폐선을 개조해서 만들었는데 작업장과는 거리가 조금 있는 편이다. 등 뒤에서 초인종이 계속 울린다. 팔콘은 더 이상 짖지 않고 내 뒤를 따라온다. 덜그럭, 덜그럭. 철조망 너머로 그림자가 보인다. 나는 멀찍이 서서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뜬다.
    혼자인가 보오?
    말투가 이상하다. 그림자는 철조망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온다. 은색으로 된 점프슈트를 입고 있다. 뒤에서 따라온 팔콘이 짖어 주면 좋겠는데, 조용하다.
    아닌가 보오?
    그림자 뒤에 그림자가 하나 더 나타난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철조망을 넘을 것처럼 바짝 다가와 서 있다. 전류가 흐른다고 거짓말을 하고 싶다. 용무를 묻자 어딘가에 같이 가자고 말한다. 피곤하고, 언쟁을 일으킬 힘도 없고, 어쩐지 거절할 의지도 생기지 않아 그럼 집에 다녀와도 되냐고 묻는다. 그들은 같이 가겠다고 답한다. 문을 열고, 그들이 들어온다. 이럴 때 팔콘이 덥석 그들 중 한 명을 물고 늘어지고 내가 다른 사람을 제압하는 상상을 했지만, 팔콘은 킁킁 냄새를 맡고 있다. 그들의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기술박물관 근무 파트너였던 마르코는 못 말리는 기차광이었는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차를 직접 타보는 것이 그의 꿈이었고,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고, 외국어도 구사할 줄 알아야 했고, 무엇보다 혼자 가기엔 외롭다고 내게 동행을 제의했다. 곰곰이 생각해 봐도 갈 이유가 없어 단칼에 거절하자 그럼 자신의 오랜 꿈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다른 말을 기대하는 것 같았지만 좋은 결정이라고 등을 두드려 줬다. 마르코는 선반과 밀링이 있는 구역, 나는 과거에 개발된 컴퓨터와 기상 시스템이 전시된 구역에서 일했는데, 틈만 나면 내가 있는 곳으로 넘어와 말을 걸었다. 사람들은 박물관에 과거만 있다고 착각하는데, 기술에 과거는 없어, 기차만 해도 그래, 증기기관차가 지금 철로를 달리면, 어떤 기분일 것 같아? 추월하는 거야. 내 말 이해되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아냐, 아냐, 이해 못 했지? 관리자에게 몇 번이나 주의를 받았는데도 마르코는 제 구역 드나들듯이 내게로 왔다. 우리는 관람객들 앞에 나타나지 않고 가끔 유리 너머로만 어떤 사람들이 왔는지 구경했다. 전시된 기계품은 오작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어떤 것들은 단 한 번도 고장 난 적이 없다고도 들었다. 대부분 지루하고 심심하고 일이 없는 업무였고 인원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나는 마르코보다,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래, 박물관이 문을 닫는 날까지 남아서 일을 했다. 관리자는 내가 말이 없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고 나중에 말해 줬다. 봐, 다 조용하잖아. 관람객들이 빠져나간 로비에서 관리자는 주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은색 점프슈트를 입은 사람들의 안내에 따라 빌딩으로 들어간다. 회전문 한 칸에 굳이 함께 타서 어깨가 아프다. 연행을 하는 것처럼 양쪽에 서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뛸 수 있을 것 같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일제히 돌아본다. 나를 앉혀 놓고 질문을 많이 하는데 내가 말할 수 없는 것들이다. 모른다고 말하면 왜 모르는지에 대해서 묻는다. 질문 하나가 다른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을 돌고 돌아 처음 물었던 질문으로 돌아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질문을 한 사람도, 질문을 받은 사람도, 옆에서 질문을 만드는 사람도, 대답을 적는 사람도 지쳐 가고, 급기야 질문이 대답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종이와 펜을 준다. 그려 보라고 한다. 그릴 수가 없다. 시야에 전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다랗고 크고 복잡했어요. 그들은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집에 가고 싶다. 팔콘에게 사료를 주고 함께 드러누워 TV에서 상영되는 유행 지난 영화를 보고 싶다. 부분을 그린다. 누군가 다가와 내 손을 따라가며 자세히 바라본다.
    이건 볼트잖아요.
    당신 키만 했어요.
    아무래도 나를 거짓말쟁이 취급하는 것 같다. 질린 얼굴이다.
    그들은 나를 작업장 입구에 다시 데려다주며, 곧 다시 오겠다고 말한다. 조수가 그들에게 인사한다.

 

    다시 이틀을 잠만 잤다고, 갈아입을 옷을 가져다주며 조수가 말했다.

 

    작업장에서는 주로 폐품을 해체하거나, 조립해서 넘겨주거나, 다른 기계물품과 교환하는데, 그동안 처리하지 못한 것들이 중구난방으로 높게 쌓였고, 멀리서 보면 쓰레기 매립지에 가까운 광경이다. 가끔 모래바람이 불면 전부 무너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그런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계속 쌓여 가는 중이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개 큰 트럭이나 승합차에 뭔가를 싣고, 내리고, 떠난다. 혹은 필요한 것을 말하고 받아 간다.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날이면 조수와 함께 작업장을 구역별로 정리했다. 어디에 뭐가 있고, 용도는 무엇이며, 형태는 어떤지. 조수는 한 번도 나의 먼 친척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없는데 나는 그 점이 의아하면서도 마음에 들었다. 조수가 관심을 두는 건 나도, 나의 먼 친척도 아닌, 전체를 파악할 수 없을 것만큼 쌓여 있는 작업장의 기계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대로 하는 일이 따로 있었다.

 

    오래전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 의식만 남은 채로 의사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의사는 내가 죽어가는 중이라고,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말했는데, 침대에 모인 가족들은 그 말을 듣고 각자의 방식으로 반응했고 ― 기절을 한다거나, 의사의 멱살을 잡는다거나, 나를 안거나, 창밖을 바라보거나, 병실을 뛰쳐나가거나,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한다거나, 보험회사 직원을 찾는다거나 ― 나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는데 도무지 입이 움직이지 않아 답답한 심정이었다. 신기한 것은 눈을 감고 있어도 모두의 모습이 보인다는 점과, 가족들의 또렷한 목소리, 침대 옆에 놓인 모니터의 일정한 그래프, 가까이 놓인 꽃의 향기, 즉 모든 감각이 생생하다는 것이었다. 의사가 예상한 시간이 지나자 모두 의아해했고 하루가 지난 뒤 나는 깨어났다. 나를 두고 어떤 대화들을 나눴는지에 대해서는 전부 들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다만 깨어나기 직전까지, 나를 거쳐 갔던 죽음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마치 내가 죽었던 것처럼 생생하게 느꼈던 죽음들을.

 

    유년 시절 키우던 개는 다른 개에게 물려 죽었다. 뒷덜미가 물린 채 허공에 흔들렸고, 아버지는 망치를 가져와 개의 머리를 때렸다. 나는 골목에서 그 광경을 지켜봤고 울거나 방을 동동 구르지 않았다. 아버지를 원망했다. 하필 우리 개를 저 개가 사는 집으로 데려온 아버지가 미웠다. 개의 주인이었던 아버지의 친구는 미안하다며 곧 나올 새끼를 한 마리 준다고 말했다. 나는 그 새끼를 죽일 거라고 말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는 적잖이 놀란 눈치였고, 나는 죽은 개와 삽을 챙겨 뒷산으로 갔다. 계속 땅을 팠다. 그 뒤로도 집에서 죽은 동물들은 모두 비슷한 곳에 묻었다. 언젠가 비가 많이 내려, 뒷산이 말 그대로 흘려 내렸다고 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었을 때, 사체들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보진 못했다. 그래도 계속 같은 곳에 묻었다. 닭과 쥐, 거북이를 묻었다. 토끼, 햄스터, 앵무새를 묻었다. 다시 살린 순 없을까. 꿈을 꿀 때마다 난생처음 듣는 동물의 울음을 계속 궁금해 하며 눈을 떴다.

 

    팔콘은 자주 뛰어다닌다. 식성도 좋다. 언젠가 뛰다가 허리에 건 의족이 떨어진 적이 있는데, 알면서도 뛰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앞발로 기다시피 내게 뛰어와서, 제대로 된 의족을 만들어주자 생각했다. 조수는 팔콘이 아플 거라고 말했다.
    잠깐만 따끔하지 않을까?
    그건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죠.
    나는 팔콘에게 한 번만 참으면 편할 거라 말하고 싶었지만 팔콘은 혀를 내민 채 숨만 쉴 뿐 당최 자기 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팔콘이 더 잘 달리면 좋겠다. 작업장을 벗어나 사막처럼 펼쳐진 이 평원에서 원하는 만큼 달리다가 돌아오면 좋겠다. 그러니까, 신체 내부에 장치나 기관을 달아서, 원래 자신의 다리였던 것처럼, 달리면 좋겠다. 나는 조수에게 동의를 구하고 싶었지만 나중에는 내 말을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 또 오겠지?
    조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은 아직 조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우리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은연중에 동의한 것 같다. 조수는 조용할 것이다. 어쩌면 이미 잊었을 수도 있다. 가능한 말인가. 가능한 광경이었나. 발밑에서 잠든 팔콘이 몸을 심하게 뒤척인다.

 

    그 녀석만 몰랐던 걸까. 그 녀석 앞에서 운전하던 녀석도 몰랐던 걸까. 속도를 감당 못 한 오토바이는 커브길에서 가로수를 들이받았고 운전자는 즉사했으며 뒤에 탄 동승자는 한 달을 더 살았다. 그러니까 나는 한 번의 사고로 두 번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둘 다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자란 또래였는데, 사고가 나기 두 달 전 도시로 놀러오겠다는 걸 간단하게 거절했다. 오지 말라고 했다. 내가 가겠다고. 오토바이를 타고 올까 봐 그랬던 것 같다. 거절하지 말걸, 후회하진 않았다. 오토바이는 원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찌그러져서 어딘가로 보냈다고 했다. 동승했던 녀석의 병문안을 갔을 때, 그의 머리가 함몰되어 있는 것을 멀거니 봤다. 우리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오는 길은 안 힘들었는지, 병원 식사는 입에 맞는지, 자고 가는지, 퇴원은 언제인지. 집으로 가는 길에 왼손으로 내 머리를 몇 번이나 만져 봤다. 단단했다. 눌러도 도저히 안 들어갈 것처럼. 폭염으로 연일 최고 기온이 기록을 갱신하던 여름의 날들이었다.

 

    말랑말랑하다.
    그것보다는 물렁물렁한 것 같은데.
    물컹한가.
    말캉한 것 같기도 해요.
    나와 조수가 시답잖은 소리를 나누는 동안 방문자는 약간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른 시간에 방문한 탓에 우리는 잠이 덜 깨 있었고, 눈앞의 상황 역시 꿈인 건가 싶을 정도로 의아했는데, 방문자가 감정을 원한다며 가져온 물건은 창고에서 오래 보관해 왔던 것으로, 녹슨 부분은 볼 수 없었다. 그보다 전면부에 해당하는 곳이, 외관은 철제인데 만지면 힘을 주는 만큼 들어갔다. 젤리보다는 두껍고 실리콘보다는 가벼운 느낌이었다. 방문자가 말하길, 원래는 이렇지 않았다, 사실 창고에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기분이 나빠서 가져왔다, 왜 기분이 나쁜지 모르겠다, 등등이었고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는 지가 가장 궁금하다고 말을 붙였다.
    비싸고 자시고 할 게 없어요.
    왜?
    이걸 어디에 사용해요.
    나는 어떤 연구적 가치랄지 전시의 가능성을 얘기했지만 조수는 어떤 물건이든 용도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지만 얄밉게 느껴져 비싼 값을 부르고 싶었다. 방문자는 실망한 표정으로 그럼 우리더러 처리를 할 수 있느냐 물었다. 처리 비용을 받지 않는 대신 다른 데에 가서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그제야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고 했는데, 왜 자꾸 기분에 대해서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오랜 시간 분해했다. 알아낸 건 세 가지.

 

    1. 엔진과 비슷한 구조와 구성.
    2. 물렁한 부분은 분해 불가.
    3. 촉매제 혹은 장비를 사용한 흔적.

 

    그날 이후 이상하리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누군가는 구경만 하다 갔고, 누군가는 어떤 조언을 구했으며, 누군가는 가벼운 것을 들고 오거나, 누군가는 큰 트럭에 잔뜩 뭔가를 싣고 오거나, 혼자 오거나, 여럿이 오거나, 갔다가 다시 오거나, 다신 오지 않거나 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은색 점프슈트를 입은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어디선가 이곳을 지켜보고 있다고 확신했다.

 

    마르코는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트럭에 치였다.

 

    우리에게 가능한 상상은 사실 얼마 없어. 상상으로 조합된 기억 혹은 꿈에서 본 장면일 거야. 여기 송전탑에 사람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하겠어. 물에 잠긴 채로, 영원히 녹슬지 않는 송전탑의 구조를 지켜보면서, 이건 꿈이라고 안도하면서, 의자는 자꾸 물속으로 기울어지고, 더 빠질 공간도 없는데. 입술에 물이 찰랑거린다. 눈을 뜨자 창문 사이로 물이 흐르는 중이고, 방은 계속 잠기면서 어떤 소리도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안에서 잠그고, 다시 눈을 뜨자, 욕조에 팔다리를 걸친 채 잠든 내가 있다.

 

    둘 중 하나다. 표지판을 잘못 봤거나 지도가 이상하거나.
    조수는 차를 세운 뒤 창밖을 바라봤다. 구름을 뚫을 것처럼 높게 솟은 크레인들이 평야 곳곳에서 자재를 옮기고 있었다. 건물들은 반쯤 지어졌거나 제법 모양새를 갖추는 중이었고 짐을 잔뜩 실은 트럭들이 대열을 이뤄 도로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너머로 노을이 번지기 시작했다. 순간 매캐한 먼지바람이 불어왔다. 코를 막고 생각했다.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다시 차에 올라타 코를 풀었다. 까만 액체가 휴지에 잔뜩 묻어났다. 지도를 펼치고 표시한 곳을 바라봤다. 조수는 운전석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 온 것 같았다. 산맥은커녕 낮은 능선도 보이지 않았다. 잘못 온 게 분명해. 조수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달리며 드는 생각은 한 가지뿐이었는데, 왜 송전탑 꼭대기에 사람이 살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머릿속이 꽉 차 뒤에서 경적을 울려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얀 지프가 어느덧 우리 차와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창문을 열고 나를 향해 열렬히 손짓했는데,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바라봤다. 갓길에 세우라는 신호 같았다.
    차를 세웠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지프 역시 차를 세운 뒤 문을 열었다. 앞에 둘, 뒤에서 한 명이 내렸다. 운전석에서 내린 이가 허겁지겁 달려와 말했다.
    뒤에서 보니까 바퀴가 흔들리던데.
    우리는 멀거니 그들을 바라봤다. 상하의가 합쳐진 곤색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등에는 대문자 T가 적혀 있었고 저무는 태양에 비쳐 간간이 반짝거렸다. 조수는 뒷바퀴로 다가가 발로 쿵쿵 찼다. 타이어 공기가 점점 밖으로 빠지고 있었다. 나는 몸을 구부려 이곳저곳 살펴봤다. 중지만 한 길이의 나사가 타이어에 박혀 있었다. 트렁크를 열었다. 예비로 준비해 둔 타이어가 보이질 않았다.
    급하면 타시죠.
    뒷좌석에서 내린 사람이 손으로 자신들의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주위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차는 저희가 견인하겠습니다.
    말을 뱉기가 무섭게 서둘러 장비를 꺼냈다. 그들을 도와 케이블을 연결하고 차에서 가방을 챙겼다.
    어디로 가십니까?
    운전자가 물었다. 이들 중 가장 연장자인 듯했다. 나는 운전석 바로 뒤에 앉았는데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자꾸 머리를 천장에 박아 정신이 없었다. 옆에 앉은 사람이 얼른 대답하라는 듯이 툭툭 허벅지를 쳤다. 대답 대신, 이 근처에 혹시 송전탑이 있냐고 물었다. 운전자가 백미러를 흘깃 쳐다봤다. 지프는 차를 매달고 어느덧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었다.
    직선도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길도 있었군요.
    조수가 말했다. 다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은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았고, 잊을 만하면 가로등 불빛이 차창을 스쳤다. 의뢰인에게 받은 서류를 꺼내기 위해 가방을 뒤졌다. 서류 겉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알맹이가 무늬처럼 바짝 말라 있었다. 글자가 보일 만하면 어두워지고, 다시 보일 만하면 차가 흔들거려 도무지 맥락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멀미가 오는 것 같아 머리를 흔들었다. 그때 운전자가 다시 말했다.
    내일 가시죠. 차도 손 봐야 하는데.
    이들을 따라가도 될까, 조수를 슬쩍 바라봤지만 잠든 것 같았다. 나는 짧게 우리 일에 대해서 말했다. 출장차 이곳에 왔고 초행이며 도움을 주셔서 감사하다, 정도로 말을 마쳤다. 그들은 먼 도시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기계를 살핍니다. 덩치가 큰 것들로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서 불빛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릴 적 친구는 함께 농구를 하다가 삐뚤어진 골대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전봇대에 올랐는데, 뭔가를 잘못 건드리는 탓에 감전을 당했다. 응급차에 올라타는 그를 보면서 다시는 못 보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얼마 뒤 학교로 돌아왔고, 그때의 일을 무용담처럼 말하는 바람에 동급생들 모두 기회가 된다면 감전을 당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빨간 반점처럼 몸 여기저기 혈관이 터진 흔적이 보였지만, 그는 그것들을 자랑했고, 그럴 때마다 선생님한테 혼이 났다. 나는 그가 말이 많아진 것이 감전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꿈을 꾸면 손바닥에서 전기가 뿜어져 나가는 장면이 반복됐다. 기술박물관에서 함께 일했던, 전기와 전구를 전시하는 구역에서 일하던 동료에게 그때의 일을 말하면, 그는 차근차근 인간의 몸과 전류랄지 자기장에 대해 설명해 줬다. 대체로 아는 얘기들이었지만, 자신의 대학 시절 전공 분야였다는 자부심인지 추억인지 회한인지 모를 눈빛으로 긴 시간 말했다.
    전기는 원래 있는 게 아니에요. 없다고 상상해 봐요.
    하고 싶지 않아요.
    그는 박물관이 문을 닫는 날, 자신의 구역에 있던 전시품 몇 개를 훔치려다 나와 마주쳤다. 나는 손전등을 던지는 자세만 취하곤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를 내려 주고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갔다. 타이어가 있는 상점의 주소를 알려줬다. 차에서 밤을 샐까 하다가 숙소를 찾아 나섰다. 졸면서 걷는 건지 조수는 자꾸 비틀거렸고 뒤에서 보면 술에 취한 사람 같았다.
    동네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하다못해 밤벌레가 우는 소리랄지 차가 도로를 지나는 소리, 불 꺼진 주택가에서 흘러나올 법한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나는 그 점이 무척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조수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여관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보여 골목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 로비 중앙에 놓인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았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직원이 카운터에서 고개를 슬쩍 내밀었고 방 두 개와 조식을 신청했다. 우리는 서둘러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음식이 담긴 쟁반을 들고 조수의 방문을 두드렸다. 잠이 덜 깬 조수가 문을 열었고 함께 로비로 내려가 포크를 들었다. 음식을 목으로 넘기면서, 어떤 불안감이 몸 이곳저곳에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지만, 배가 고팠고, 뭘 좀 먹어야겠고, 배를 채우는 일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정말 허겁지겁 접시를 비우는데, 그때 누군가 여관에 들이닥쳤다. 들이닥쳤다는 말 그대로, 마치 그 자리에 갑자기 생겨난 사람처럼, 서 있었고, 포크를 든 채로 그를 바라봤고, 움직이지 마, 그는 말했다. 내가 실수를 한 건가, 내 태도에서 어떤 불쾌감을 느낀 건가, 조수를 바라보자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여기서, 잤나.
    그는 강조하듯이 툭툭 끊으며 말했다. 포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어서 다른 남자 둘이 로비로 들어왔고, 잠깐 객실을 둘러봐도 되겠냐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그들은 계단으로 향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문 여는 소리와 함께, 이런, 이게 무슨 냄새야, 가서 올라오시라고 해, 누군가 소리치자, 로비에 있던 남자 역시 이층으로 향했다. 입에 있던 음식물을 재빨리 삼키고 따라 올라갔다. 그들은 나와 조수의 방이 아닌 건너편 방 앞에서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깨 너머로 안을 들여다봤다.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기름이 바닥에 배겠어.
    경위님, 아무도 없습니다.
    다른 방들을 뒤지고 온 남자가 말했다. 경위라고 불린 자는 곧 방으로 들어섰다. 끈적한 기름이 발을 옮길 때마다 길게 늘어졌다. 기름 바닥이 끊기는 곳부터, 시뻘건 액체가 다시 고여 있었는데, 그 구획된 경계가, 자로 잰 것처럼 정확해 보였고, 물과 기름인 건가, 아니지, 저건 누가 봐도 피야, 그런 생각을 했지만, 피와 기름도 섞이지 않는 건지, 정확하지 않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조수에게 물어보려 옆을 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정확하게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동물로 보이는 사체와 어떤 부품들이 보였는데, 해부라고 해야 할지, 분해라고 해야 할지, 그런 광경으로 사방에 흩뿌려져 있었다.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아 경위의 말에 대답했다. 의심받을 만한 상황이었지만, 정말 아무것도 몰랐고, 뭘 알아야 하는지도,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도 몰랐으며, 나와 조수는 아침 식사를 먹은 일 말고는 달리 한 행동이 없다고 말해도, 경위는 계속 의심의 눈초리로 우리를 바라봤다. 남자 둘은 경위 뒤에 서서 수상해, 똑바로 말해라, 앞을 봐, 이런 말들을 중얼거렸고 경위는 흡족한 표정이었다. 먼 곳에서 왔다는 사실과, 초행이라는 점이 아무래도 의심을 더 만드는 것 같았다. 왠지 우리 때문에 이 일이 벌어진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조수는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았다. 테이블에 땀방울이 툭툭 떨어져 동그란 무늬를 만들었다.
    무슨 소리, 못 들었나.
    경위는 이제 없는 말이라도 지어서 말해 보라는 말투였고, 우리는 피곤에 절어 그대로 잠에 들었다고 설명했다. 경위는 잠깐 동안 말이 없다가 일단 사무실로 돌아가지, 말을 뱉곤 여관을 빠져나갔다.
    하룻밤 새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한동안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은, 일련의 일들이 지나는 동안 카운터 직원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인데, 조수에게 말하자 즉각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벨을 누르고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나오질 않았다.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간 조수는 잠시 후 가죽주머니를 가지고 나왔다. 테이블에 꺼내 놓은 것들은 셔츠 몇 벌과 약간의 지폐, 여자의 초상화, 색이 누렇게 바랜 지도였고, 지도에 적힌 길과 지명이 눈에 익었다. 의뢰인이 말해 준 곳이었다.

 

    팔콘은 잘 있을까.
    사료가 떨어지기 전에 돌아가야 하는데.
    어디로 떠난 건 아니겠지.
    새 걸로 교체해 줄걸.
    더 단단한 것으로.
    그럼 달아날까.

 

    멀리서 바라본 송전탑은, 지지대에 해당하는 부분이 물웅덩이에 완전히 잠겨 있었고, 버드나무 가지처럼 늘어진 전선들이 간간이 바람에 흔들렸다. 간혹 뭔가를 잔뜩 실은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나와 조수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한동안 근처에서 구경했다. 아무래도 이번엔 돈을 받기 어려울 것 같았다. 송전탑 꼭대기에 올라갈 방법도, 그곳에 있을 누군가를 내려오게 할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의욕이 생기질 않았다. 여관에서 반나절 경위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고, 조금은 도망가는 심정으로 떠났다. 개구리가 뛰어올랐다. 하단에 들러붙어 올랐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얼마나 높은 건지 꼭대기 주위로 모여든 구름 탓에 가늠이 되질 않았다. 뇌우가 발생한 듯이 구름 군데군데가 반짝였다.
    저 위에서 뭘 한답니까?
    조수는 여전히 차창에 팔을 기댄 채로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날벌레들이 차창에 부딪혔다가 다시 날아갔다. 나로서도 알 길이 없는 질문이었다. 누가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해 달라는 의뢰였고, 거짓말로 둘러대도 상관없겠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그때 별안간 물웅덩이에서 빛이 솟구쳤고 눈이 부셨다. 태양을 오래 바라본 것처럼 시야가 하얘졌으며 눈물까지 흘러 무슨 일인가 싶었다. 눈을 마구 비비는데 조수가 저길 보라고 말했다. 물웅덩이 이곳저곳에서 배를 뒤집은 물고기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곧이어 개구리들도 사지를 사방으로 편 채 떠올랐고 수면 전체가 가득 메워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비가 내렸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빼곡한 빗줄기가.

 

    송전탑에 다녀온 얼마 뒤 생전 처음 겪는 증상이 몸을 괴롭혔다. 잇몸에 동상이 걸린 것이다. 의사는 의사 생활 십육 년 만에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아픈 부위가 혹처럼 부어 있었다. 부은 부위를 혀로 더듬거리는 동안 의사는 말을 이었다. 처음 보는 증상이라 어떤 주의를 줘야 할지 모르겠다며 삼일 뒤에 다시 경과를 보자고 말했다. 작업장으로 돌아가 조수에게 말하자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근처에서 민방위훈련이라도 하는 건지 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차가 없는 도로에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일이 왠지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주위를 슬쩍 둘러보다가 건너편을 향해 뛰었고 그러자 가로수 뒤에서, 마치 내가 무단횡단을 하길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제복을 입은 경찰관 두 명이 달려 나왔다. 신분증을 요구했고 어디서 나오는 길이냐고 물었다. 치과 간판을 가리켰다. 손에 들린 처방전을 내밀자 둘은 등을 보이고 돌아서서 속닥거렸다. 약국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봤다. 경찰관 중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치과에는 왜 가셨습니까. 사실대로 얘기하자 뒤에 있던 다른 경찰관이 다가왔다. 잇몸에 동상이 걸리는 게 말이나 됩니까. 나는 잠깐 당황했는데, 잇몸에 동상이 걸렸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건지, 동상 때문에 치과를 갔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건지 헷갈려서였다. 문득 조수가 박장대소했던 일이 떠올랐다. 다른 말을 기다리는 것 같았으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은 다시 자기들끼리 얘기를 주고받았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찰관들은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빠르게 사라졌다. 나는 도로 한가운데 서서 그들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봤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곤 다시 약국 쪽으로 걸어갔다.
    약국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언젠가 맡아 본 것 같기도 했는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분명 뭔가를 태운 냄새 같았다. 쓰레기를 태운 냄새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그것보다는 물고기를 태운 냄새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물고기를 태우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그는 길 한가운데 쪼그려 앉아 물고기를 태우고 있었다. 나는 그의 곁에 바짝 다가가 검게 변해 가는 물고기를 구경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물고기를 태우는 그와, 벌건 눈알이 밖으로 축 삐져나온 물고기를 번갈아 바라봤다. 늘어진 눈알 끝에 흙이 묻어 있었다. 냄새는 옷에서 한동안 빠지지 않았다.

 

    약국 안은 처방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고, 냄새를 맡자 잇몸이 더 아리기 시작했다. 손을 들어 올려 마사지를 하듯 뺨을 문질렀다. 뺨까지 부어오른 듯했다. 다들 처방전을 순번표처럼 손에 들고 차례를 기다렸다. 나는 좀 앉고 싶었는데, 구석에 놓인 대기의자에 앉으려고만 하면 다른 사람이 먼저 재빠르게 앉았다. 의자 쪽으로 가다 말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줄이 짧아졌고 내 차례가 됐다. 약봉지를 건네주는 테이블에 서서 약사를 기다렸다. 약사는 주머니에 손을 꽂고 다가왔다. 처방전을 내밀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곤 얼굴을 찡그렸다. 처방전을 휙 내려놓더니 내일은 내가 병원에 있어야겠군, 하며 혼잣말을 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자, 약사는 종종 의사와 자리를 바꾼다고 했다. 이번 주까지는 자기가 약국을 지켜야 하는데 어쩐 일인지 손님이 너무 많아 억울하다고 말을 이었다.
    혹시 어떤 약을 먹으라고 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별 약 아닙니다. 그냥 진통제 몇 알이랑 감기약 정도예요.
    말을 마친 약사는 곧장 조제실로 들어갔다. 동상에 걸렸는데 어째서 감기약을 줄까 생각하다가, 그것보다는 테이블 끝 쪽에 뭉개진 뭔가를 바라보는 것에 집중했다. 그것은 테이블 자체의 얼룩 같기도, 눌린 껌 같기도 했는데 자세히 바라보니 진득한 가래였다. 가래는 뭔가에 쓸린 것처럼 넓게 퍼져 있었다. 약사가 조제실에서 나와 약봉지를 건넸다. 식사 전에 먹고 자기 전에는 먹지 말라고 했다. 흰 소매 끝에 묻은 가래가 보였다. 계산을 하고 약국을 나서자 도로에는 다시 자동차들이 다니고 있었다. 퉤, 하고 침을 뱉었더니 누런 고름이 섞여 나왔다.

 

    작업장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조수에게 묻자 전기검침원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뭐라는데.
    아무 문제없대요.
    약봉지를 꺼내 들었다.
    나 동상에 걸렸대.
    소파에 앉으며 조수에게 말했다. 조수는 밥을 먹어야 약을 먹지 않겠냐며 갑자기 밥을 짓기 시작했다. 밥 짓는 소리가 들리자 졸음이 밀려왔다. 조수를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발 한쪽을 침대 아래로 내린 이상한 자세로 잠에 들었다.
    조수가 세게 흔드는 탓에 잠에서 깼다. 왜 불러도 답이 없느냐고, 꼭 이렇게 와서 깨워야만 일어나느냐고 핀잔을 줬다. 방을 나서려는데 조수가 빤히 바라봤다.
    왜 그래.
    왼쪽 볼이 많이 부어올랐어요.
    거울을 보자 정말 볼이 부어 있었다. 입에 뭔가를 물고 있는 것처럼 볼록했다. 조수는 곧 얼음주머니를 가져왔고 나는 손사래를 쳤다.
    금방 가라앉겠지.
    약봉지를 뜯어 입에 넣으려는데 전화가 울렸다. 의뢰인이었다. 의뢰인은 다짜고짜 화를 냈다. 내가 오늘 가기로 했다는데 어딜 간다고 했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어디요, 하고 다시 묻자 의뢰인은 잠깐 동안 말이 없었다.
    오늘 박물관으로 오기로 했잖아요.
    제가 왜 간다고 했죠?
    의뢰인은 이제 화를 내며 말을 하기 시작했고, 조수는 통화 중인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가 알려준 주소는 해안가와 가까운 도시였는데, 차를 타고 반나절 남짓은 가야 도착하는 곳이었다. 사실은 내가 몸이 좋지 않다고, 잇몸에 동상이 걸렸다고 말하자, 의뢰인은 돈은 돈대로 받아 놓고 차일피일 날짜만 미루는 거냐며 당장 오라고 말했다. 그러곤 전화를 끊었다. 나는 동상 때문에 잔뜩 부은 잇몸을 조심하며 음식을 씹었다. 별다른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왜 일을 받았는지 집을 나서며 생각해 봤지만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보다 고민되는 것은 박물관까지 가는 방법이었다. 주차해 놓은 자동차가 보이지 않았다. 조수가 의심스러웠는데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듣기보다 얼른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는 것이 빠를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어갔고 걷는 동안 잇몸이 아파 왔다. 약봉지가 잘 있는지 윗옷 안주머니를 더듬었다. 볼록한 느낌이 전해졌고 잇몸이 그나마 덜 아픈 것 같았다.
    버스정류장에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번호를 확인하곤 줄 끝으로 가려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 하고 건드렸다. 뒤로 돌아보자 한 아이가 서 있었다. 아이는 내게 알은체를 했다. 미안한데 누구지, 하고 묻자 나를 전에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아는 아이는 아니었는데 며칠 전 치과에서 봤어요, 하고 아이는 말을 했다. 반갑게 인사하는 차에 나 역시 반갑게 인사를 받았고, 그 뒤론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내게 뭔가를 물어보려는 눈치였는데 우물쭈물 몸을 비틀 뿐 가까이 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가 타려는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버스에 올라탈 때까지 아이는 그 자리에 서서 마치 나를 배웅하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 안은 승객들로 가득했고 운전석 바로 뒤에만 자리가 하나 남아 있었다. 자리에 앉자 버스기사의 뒷모습이 보였는데, 좌석 양옆으로 살이 삐져나와 있었다. 버스의 움직임에 따라 기사의 몸이 출렁거렸다. 시가지를 벗어나자 차창 밖의 건물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공터나 평원이 나타났다. 버스기사는 주파수가 제대로 맞지 않아 자꾸 끊기는 방송을 계속해서 틀어 놓았다. 노랫소리 같기도, 뭔가를 얘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같기도 했다. 형태를 분간하기 어려운 소리들 사이에서 어떤 실마리를 찾아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며 방송에 집중하다 나도 모르는 새 잠이 들었다.
    정류장을 지나친 건 아닐까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창밖 풍경은 잠에 들기 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고, 승객들은 반쯤 줄어 있었다. 이상한 것이 있다면 운전석에 앉아 있는 버스기사였는데, 좌석 양옆으로 삐져나온 살들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고개를 빼꼼 내밀고 운전석을 보자 깡마른 체구의 남자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어깨가 운전석의 너비보다 좁은 탓에 뒤에서 보면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내가 내릴 곳을 지나친 것 아닌지 조심스레 묻자 이제 곧 내리시면 됩니다, 라고 버스기사는 말했다. 눈이 잠깐 마주쳤는데 나를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뺨에 손을 대보자 전보다 더 부어 있는 듯했다. 곧 버스가 멈췄고 뺨을 손으로 가린 채 차에서 내렸다.

 

    저물어 가는 태양이 낮보다 더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의뢰인은 박물관이 있는 동네만 알려줬을 뿐 정확한 약도는 알려주지 않았다.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발이 가는 대로 걸었고, 사람이 없는 거리는 마치 나를 쫓아내기라도 할 것처럼 뜨겁게 질척거렸다. 잇몸이 계속 아파 안주머니에서 약을 꺼내 물도 없이 삼켰다. 명치 근처가 답답했다. 손으로 가슴께를 툭툭 치며 걷다 보니, 저 멀리서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아이가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길을 묻자 손가락으로 자기 뒤의 개천을 가리켰는데, 건너편에 있다는 건지 그쪽 방향으로 가라는 건지 애매했다. 어찌 됐든 개천을 따라서 가라는 의미 같았다. 그러곤 왔던 길을 다시 뛰어갔다. 한동안 허공에 손을 그대로 둔 채 멀어지는 아이를 바라봤다. 그때 마치 신호라도 받은 것처럼 거리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로에도 차들이 쏟아졌다. 속이 울렁거렸다. 몸을 숙이고 토를 했다. 누런 액체와 함께 소화되지 않은 약들이 쏟아졌다.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가로수 그늘 아래로 가 소매로 입을 훔쳤다. 이마 역시 소매로 닦아 가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낡은 철문이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았다. 문이 열려 있었다. 걸을 때마다 잇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박물관으로 들어서자 화약 약품 냄새가 훅 끼쳐 왔다. 내가 언제 맡아 본 적이 있었던가, 그런 제조 과정을 가까이서 본 적은 있었던가. 정면에는 거대한 필라멘트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 옆에는 바퀴가 하나인 수레가 옆으로 엎어져 있었다. 사료 포대에 담긴 톱밥들이 보였고 자루가 부러진 플라스틱 삽도 보였다.
    안에 누구 계십니까.
    냄새가 다시 심해졌다. 폭죽을 쏠 때의 기억이 떠올랐는데 그보다는 좀 더 짙고 무거운 냄새 같았다. 숨을 제대로 쉬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코를 막고 입을 막는 사이 필라멘트 뒤에서 누군가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반듯한 양복과 긴 넥타이로 착장한 노인이 내 앞에 다가왔다.
    누구요.
    의뢰인을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어떤 의뢰인을 말하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게 아니라 전화를 받고 왔다고, 의뢰인이라는 사람이 나더러 이곳으로 불렀다고 설명했다. 노인은 자신을 이곳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말을 뱉곤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부은 내 볼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나 싶었는데 그러진 않았다. 대신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입술 위로 작은 점들이 보였고 숨을 쉴 때마다 지독한 술 냄새가 전해졌다. 키가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 컸는데 셔츠 아래로 보이는 손목에는 일정한 패턴으로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노인은 전화를 한 사람이 아마도 사장인 것 같다고, 출장 중이라 이곳에 없다고 했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사실은 출장이 아니라 며칠째 보이질 않는다고, 전에도 자주 이랬는데 이제 돌아올 때가 됐으니 기다릴 거면 기다리라고 말했다. 나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자 노인은 답답했는지, 건물 뒤로 가면 컨테이너가 하나 있는데 그곳이 사장의 사무실이라고 말했다. 노인은 뭔가를 더 얘기하고 싶지만 참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일단 사무실에 가 있겠다고 말했다.

 

    팔콘이 하늘을 날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가끔은 개로 태어난 걸 후회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가 안 하는 게 아니라 팔콘이 하지 않을 것이다.
    가끔은 꿈을 꾸는지도 모르지. 하늘을 나는 꿈을.
    높은 상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다리를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몸짓으로.
    팔콘은 이제 앞다리까지 움직이기 힘든 것 같다.
    자꾸 풀썩풀썩 주저앉는다.
    조수는 슬픈 표정을 짓지 말라고 말했다.
    팔콘이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그 말을 하고 조수는 울었다.

 

    노인이 말한 컨테이너는 양계장과 꽤 떨어져 있었다. 항구에서나 볼 법한 큰 컨테이너였는데 임의로 창문과 문을 만든 티가 역력했다. 용접이 제대로 되지 않아 창문 주변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다. 한 손으로 문을 잡아당겼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여닫이로 된 문을 열자 불이 꺼진 실내가 보였다. 컨테이너 크기가 큰 탓에 실내는 마치 기다란 굴처럼 보였다. 깊숙한 안쪽은 잘 보이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정면에 전신거울이 보였다. 다가가 얼굴을 살폈다. 볼이 많이 부은 탓에 눈까지 눌려 있었다.
    거울 옆에는 냉장고가 있었는데 혼자 사용하기에는 크기가 제법 컸고 문을 열자 허연 김이 흘러나왔다. 안개 같은 김 사이로 뭔가가 보였고 자세히 보니 닭들이었다. 털이 벗겨진 닭들이 꽁꽁 얼어 있었다. 비닐로 싼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바닥에 동그랗게 응고된 벌건 물도 보였다.
    냉장고 문을 닫자마자 조수에게 전화가 왔다. 자다 일어난 모양인지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어디 간 거예요.
    박물관이야.
    조수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컨테이너 창문 너머로 기울어져 가는 태양이 보였다.
    거긴 왜 갔어요.
    창문에 반사된 햇빛 탓에 눈이 부셨다.
    그나저나 약을 잘못 가져갔어요.
    안주머니를 뒤져 약봉지를 꺼내 바라보다 조수에게 말했다.
    이거 내 약이야.
    잇몸이 쥐가 나는 것처럼 저리기 시작했다. 약봉지를 자세히 보니 위쪽에 팔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팔콘이 먹을 약을 가져가면 어떻게 해요. 빨리 가져와요.
    어떤 말을 더 하는 것 같았으나, 전화를 끊었다. 창가에 다가가 커튼으로 창문을 가렸다. 침대 옆 탁상에 주전자가 보였고 컵에 물을 따라 약과 함께 마셨다. 물에서 짠맛이 났다. 그러곤 어둠 속에 잠시 누워 있었다.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노인이 컨테이너로 찾아왔다. 그는 내게 식사를 제안했는데, 식사보다는 박물관을 구경하고 싶다고 하자 지금은 구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의뢰인이 여기 사는 게 확실한 겁니까, 라고 묻자 그럼 지금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냐, 라고 노인은 말했다. 더 이상 얘기하기 싫다는 눈치였고, 하는 수 없이 그를 따라 컨테이너를 빠져나왔다.

 

    나는 노인의 뒤를 는적는적 따라갔다. 컨테이너 옆에 개집이 하나 있었는데 까만 개가 우리를 보더니 꼬리를 흔들며 뛰어왔다. 노인에게 가지 않고 나에게 다가와 몸을 비볐다. 나한테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라고 혼잣말을 했다. 내가 앉아서 반기자 개는 내 볼을 핥았다. 나는 밀어 넣듯이 개를 개집으로 데려갔다. 안을 보자 뭔가가 꿈틀대고 있었다. 쥐가 모로 누워 숨을 쉬고 있었는데 죽어가는 빛이 역력했다. 개의 주둥이에서 끈적한 침이 흙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쥐는 경련을 한 번 일으킨 후에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개가 날 보며 끼잉끼잉 하는 소리를 냈다.
    노인이 묵는 숙소로 가기 위해 박물관을 빠져나왔다. 앞서 가던 그가 갑자기 장화를 벗더니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걸으면 지압이 돼. 노인은 앞을 보며 말했다. 나도 신발을 벗어 볼까 잠시 고민했는데, 그때 뭔가를 밟았는지 노인은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발차기를 하는 것처럼 다리를 번갈아 들었다. 통이 넓은 바지를 입은 탓에 종아리 안쪽이 보일 듯 말 듯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노인은 발부터 씻어야겠다며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문 앞에 서서 집을 구경했다. 어쩐지 낯이 익었다. 집 주위에 다른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봤을까 곰곰이 생각하는데, 그새 씻었는지 노인이 내 앞에 서 있었다. 뭐 해, 안 들어오고. 노인은 화가 난 사람처럼 말했다. 신발을 벗으며 노인의 발등을 보니 물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식사를 준비하는 사이 거실에 앉아 TV를 봤다. 해파리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소리를 줄인 탓에 무슨 얘길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해파리에게 쏘인 부위만 화면 가득 보여줬다. 팽팽하게 부은 부위가 펑 하고 터질 것 같았다. 혹시 거울 있습니까. 주방을 향해 소리쳤으나 노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동상이 걸린 잇몸도 해파리에 쏘인 부위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입술을 뒤집어 손가락으로 더듬어 봤으나 가늠이 되지 않았다. 축축해진 손가락을 바지에 닦았다. 노인이 이쪽으로 오라며 나를 불렀다. 식탁 위에 있는 음식들을 보자 식욕이 일기 시작했다. 노인은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이유를 묻자 음식에 머리카락이 들어갈 것 같아, 라고 말했다. 그깟 머리카락이 뭐가 대수냐고, 행여 머리카락을 먹어 봤자 알지도 못할 거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나는 입을 다물었다. 노인은 팔을 떨며 앉으라고 권했다. 식탁 위 그릇들이 흔들렸다. 수저를 들기 전 안주머니에서 약봉지를 꺼냈다. 노인의 시선을 느끼며 약을 먹었다. 그러곤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음식을 먹는데 나도 팔이 떨렸다. 진정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음식을 먹었다.
    사장한테 전화를 받았다고.
    네.
    얼굴은 왜 그래?
    나는 대답 없이 먹는 일에 집중했다. 동상에 걸린 잇몸에선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입안에 음식물을 가득 채운 채 노인을 힐끗 바라봤다.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밥 먹을 때에는 밥이나 먹어, 라고 노인은 말했다. 나는 다시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다. 그릇이 바닥을 보일수록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식탁 중앙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닭 요리가 보였다. 한 번도 젓가락을 대지 않자 노인이 닭을 내 쪽으로 밀었다. 털을 벗긴 후 바로 삶았는지 머리와 발이 그대로였다. 다시 노인 쪽으로 밀었다. 휴지로 입을 닦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어오른 뺨이 부르르 떨렸다. 손으로 문지르자 노인이 도와주겠다며 다가왔다. 우리는 거실 소파에 마주 앉았다. TV에선 아직도 해파리가 바다 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해파리는 자신의 촉수를 꽂을 대상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노인이 얼음주머니를 가져와 내 볼에 댔다.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모자챙 아래 그늘진 노인의 눈이 보였다. 우리는 한동안 눈을 돌리지 않은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주인은 느닷없이 모자를 벗곤 나더러 이제 나가라고 얘기했다. 나는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이 슬슬 어두워지고 있었다.

 

    걷는 동안 볼이 화끈거렸다. 박물관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어둠이 낮게 깔려 있었다. 가는 길에 축사가 보였고, 축사 문틈에서 나온 희미한 빛이 실금처럼 흙바닥에 그어져 있었다. 축사에 다가갔다. 귀를 대봤으나 안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을 옆으로 밀었다. 파란 비닐이 문과 함께 흔들렸다. 문을 열자 눈이 부신 탓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눈을 비비고 안으로 들어갔다. 전에 맡아 봤던 매캐한 냄새가 났다.
    축사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아니, 텅 비어 있다기보다 그 어떤 동물도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군데군데 깃털 뭉치들이 있었고, 톱밥에 엉킨 똥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축사 끝까지 길게 뻗은 알루미늄 모이통에는 사료가 아직 그대로였다.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갔다. 가스등처럼 천장에 매달린 조명들이 걸을수록 그림자를 여럿 만들었다. 그때 닭이 우는 소리가 축사 밖에서 들려왔다.
    작업장을 남기고 떠난 먼 친척은 시골에 내려갈 때마다 닭으로 요리를 만들어줬다. 닭을 직접 잡아 털을 벗기고 내장을 빼내 요리를 했다. 한번은 나에게도 이제 닭을 잡을 줄 알아야 한다며 닭장으로 끌고 간 적이 있었다. 닭 요리를 안 먹으면 되잖아요, 하고 말해도 친척은 막무가내였고 내 손에는 망치가 쥐어졌다. 닭장 안에서 친척은 종종 넘어졌다. 날쌘 놈을 잡아야 한다고 했는데 쉽게 잡히지 않았다. 한 마리를 잡아 날개를 붙들어 내 앞에 들이댔다. 그걸로 목 뒤를 쳐라, 그럼 기절한다. 친척은 말했다. 눈을 질끈 감고 망치를 내리쳤다. 닭이 후드득 날아가고, 친척은 손가락을 붙잡은 채 주저앉았다. 엄지손톱이 깨져 피가 줄줄 흘렀다. 나는 닭을 쫓아가 구석으로 몰았다. 발로 누른 채 망치를 휘둘렀다. 친척은 뒤에서 끙끙 하는 소리를 냈다. 엄지손가락이 뭔가에 쏘인 것처럼 퉁퉁 부어올랐다.
    닭이 없는 축사에서,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리자, 닭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똥 무더기에 꽂혀 있는 삽을 뽑았다. 축사 밖으로 나가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가늠했다. 컨테이너 쪽이었다. 닭들이 번갈아가며 울어댔다. 삽을 질질 끌며 걸음을 옮겼다. 축사를 지나자 어둠에 둘러싸인 컨테이너의 윤곽이 보였다. 개집에는 개가 보이지 않았다. 닭들은 컨테이너 끝에 있는 듯했다. 삽을 들고 소리를 최대한 낮추며 걸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오른손으로 컨테이너 벽을 더듬었다. 앞으로 걸을수록 컨테이너는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 순간 오른손이 허공을 짚었고, 거짓말처럼 주위가 조용해졌다.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컨테이너로 들어가 불을 켜보려 했으나 스위치가 보이지 않았다.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빛이 들어왔다. 이불과 베개를 찾을 수 없어 그 자리에 바로 누웠다. 날이 선 한기가 등을 통해 전해지자 잇몸의 통증이 다시 살아났다. 머리까지 통증이 전해졌다. 잠이 오지 않았다. 통증 사이로 다른 상상들이 끼어들었다. 뱀의 뾰족한 송곳니와 코끼리의 하얀 상아, 두꺼운 호랑의 어금니 같은 것들이었는데, 뒤죽박죽 동물들이 뭉치자 통증이 가라앉는 것 같기도 했다. 닭의 울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다시는 들어 보지 못할 긴 울음소리였다.

 

    다음날 아침, 눈만 뜬 채로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꽤 오랜 시간을 깊게 잠들었던 것 같았는데, 눈을 뜨자 곰팡이로 얼룩진 천장이 보였고, 이렇게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것이, 꼭 이렇게 됐어야만 하는 어떤 순서의 끝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쩌다 여기에 누워 있을까 생각하다가, 생각해 보니 그것은 의뢰인 때문이라고, 의뢰인을 찾아왔지만 의뢰인이 없는 의뢰인의 집에 왔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왼쪽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제보다 더 부은 모양이었다. 포기하는 심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포기라고 하니 나 자신이 왠지 비겁하게 느껴졌다.

 

    박물관 실내에서 노인을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안내판을 훑어봤다. 층마다 다른 분야로 나뉘어져 있었고, 글이 아닌 그림으로 층을 설명하고 있었다. 계단 옆 안마의자에 앉아 전원을 눌렀다. 한 세기 전에 만들어진 기구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영 시원찮았다. 5분도 되지 않아 아프지 않았던 곳까지 아픈 느낌이라 의자에서 일어났다.

 

    박물관 층별 안내도 : 항공, 광물, 선박, 철도, 선반, 절단, 천문, 밀링, 전기, 세포 분할, 공예, 물리, 저울, 유리.

 

    정류장에 들어서자마자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버스 안에는 기사를 제외하곤 아무도 타지 않아서 혹시 잘못 탄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전에 봤던 기사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행선지를 말하자 그쪽으로 가는 버스라고 말했다. 기사는 나를 슬쩍 보더니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운전석 뒷자리에 앉아 안주머니를 뒤졌는데 약봉지가 만져지지 않았다. 노인의 집에 놓고 온 것 같았다. 창밖으로 테니스 코트가 보였다. 잡초들이 우거져 네트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다시 병원에 와야 한다고 당부했던 담당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버스기사는 정류장에서 승객들을 태우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전보다 빠르게 동네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며 안녕히 계세요, 라고 하자 버스기사가 손을 흔들며 웃었다. 승객들이 하나둘 버스에 올라탔다.

 

    작업장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다. 팔콘이 멀리서 짖었다. 조수는 보이지 않았다. 조수가 있을 법한 곳을 생각해 보다가 컨테이너로 갔다. 손잡이를 돌려 보자 그대로 문이 열렸다. 못 보던 신발이 놓여 있었는데, 조수야, 라고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 주방 쪽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수는 음식을 준비하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몸을 돌렸는데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 뒤로 넘어갈 뻔했다. 조수의 얼굴에는 까만 피딱지가 점처럼 박혀 있었는데 개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피딱지들이 얼굴을 덮고 있었다. 얼굴이 왜 그래, 하고 묻자 조수는 점을 뺐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점이 많아서 한동안 밖에 나가지도 못한다고 했다. 조수의 얼굴에 점이 많았던가, 떠올려 보는데 이번에는 조수가 내 얼굴을 보고 놀란 것 같았다. 더 부었어? 조수는 입을 벌린 채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가스레인지에 올린 냄비에서 물이 펄펄 끓었다.

 

    방으로 들어가 잠깐 누워 있었다. 곧 전화가 울렸다. 의뢰인이었다.
    오늘 박물관에 오기로 했잖아요.
    지금 거기서 오는 길이라고, 노인을 만난 일과 박물관을 둘러본 일을 설명했지만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대답만 돌아왔다.
    노인은 뭐고, 개는 뭡니까.
    의뢰인은 이제 화를 냈다. 날더러 거짓말이나 하는 후레자식이라고 했다. 나는 후레자식의 뜻이 뭔지 잘 몰랐는데, 욕인 것은 분명했고, 일을 맡긴 사람에게 후레자식이라고 하는 의뢰인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컨테이너에서 잠도 잤어요, 라고 하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의뢰인은 당장 오지 않으면 고소를 하겠다고 윽박을 질렀다. 나는 그 말이 농담처럼 들렸다. 실제로 의뢰인이 피식피식 웃었기 때문이다.

 

    한산할 거라 생각했던 치과는 사람들로 북적여 꼭 시장에 온 기분이었다. 다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차례를 기다렸다. 간호사가 자기 이름을 호명할 때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아이처럼 겨우 일어났다. 간간이 의료 기구가 작동되는 소리가 들렸는데, 주로 뭔가를 빨아들이는 듯한, 청소기 비슷한 소리가 났다. 카운터에서 접수를 하려는데 불쑥 간호사가 왜 왔느냐고 물었다. 전에도 왔었는데, 라고 하자 진료 기록이 없다고 했다. 탱탱한 내 볼을 보더니 혹시 병원을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니냐고, 내과는 길 건너편에 있다고 말했다. 알았으니 의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날 보면 기억할 거라고 얘기하자 일단 저쪽에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라고 했다.
    차례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전에 봤던 의사가 앉아 있었다. 또 오셨네요, 그는 말하며 의자를 권했다.
    아이고, 볼이 많이 부으셨네.
    그는 신기한 광경을 보는 것처럼 감탄했다. 나를 앉혀 놓곤 이리저리 둘러보느라 바빴다. 툭툭 만져 보기도, 입을 벌려 안쪽을 관찰하기도 했다. 나는 동상에 걸렸는데 왜 잇몸이 붓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자, 그는 자기도 그 점이 궁금하다고 했다. 왼쪽이 안 보이니까 부기라도 좀 빼주세요. 그는 가운을 벗으며 알겠다고 했다. 그러곤 증상에 알맞은 처방을 내려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겉옷을 벗고 진료의자에 앉았다. 얼굴을 비추는 조명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증상이 그리 오래가진 않았지만, 아직도 원인을 모르겠다. 날이 추워지면 가끔씩 잇몸이 욱신거린다. 조수는 자꾸 찬 음식과 음료를 권한다. 데워먹으려고 주방으로 가면 흘깃흘깃 쳐다본다. 팔콘은 날이 갈수록 초췌해져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병원에 데려가도 별다른 얘기는 듣지 못했다. 마음의 준비가 어쩌니 그런 말을 하자 조수가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수소문한 끝에 어떤 전문가를 찾아냈는데, 그는 수의사도, 조련사도, 그렇게 의족 기술과 관련된 사람도 아니었고 그저 이런 일을 많이 해결해 본 사람이라고 들었다. 소파에서 잠든 팔콘을 볼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지만 손만 대면 으르렁거리는 바람에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은색 점프슈트를 입은 사람들이 다시 찾아온 적이 있다. 열댓 명이 승합차에서 내렸는데 각자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누군가는 서류를, 누군가는 기다란 전등을, 누군가는 막대기 같은 것을 들고 작업장을 수색했다. 나는 그들이 경찰이라거나 비밀요원 혹은 하다못해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매번 난감했다. 그들이 하는 대로 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 듯했다. 일주일 정도 내리 다녀갔던 것 같다. 나와 조수도 처음에는 그들을 지켜봤지만 나중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돌풍이 자주 분다. 옷을 털면 모래가 잔뜩 떨어진다. 돌풍이 불 때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밤새 조수와 술을 마신다. 창문이 깨진 적도 있다. 알루미늄 합판으로 막고 망치질을 했다. 당연히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대수롭지 않다. 작업장엔 할 일이 쌓여 있고 돈이 부족하지도 않다.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 사이로 해도 보이지 않는다. 꽤 오랜 기간 돌풍이 멈추질 않는다. 한 달까지 셈하다가 관뒀다. 그사이 아마도 뭔가가 바뀐 것 같다. 온도가 내려가고 먼지가 많아졌다. 가끔 평원에 벼락이 치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고 사위가 잠깐 밝아졌다가 어두워진다. 그럴 때면 마주 앉은 조수의 얼굴이 조금씩 환해진다.
    조수에게 예전 일을 물어볼 때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그날도 지나가는 말로 ― 할 얘기가 떨어지기도 했고, 말없이 앉아 있기가 어색해서 ― 물었는데, 술기운 때문인지, 분위기 때문인지, 자신의 지난날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런 경우는 처음이라 적잖이 놀란 표정을 짓자 그런 반응이라면 관둔다고 말해서 겨우 달랬다. 문이 흔들릴 때마다 팔콘이 뒤척이길 반복했다.

 

    조수는 수치를 기록하는 사람이다.
    여전히 그 일을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그렇게 소개했다. 조수에게는 자신의 상반신만 한 크기의 가방이 있고, 가방 안에는 수치를 확인하고 기록하는 장비들이 가득하다. 일정 수치가 벗어난 곳을 지도에 표시하고 보고한다. 버튼을 누르면 수치는 자동으로 전송되고 분마다, 시간마다, 일마다, 월마다, 기록된다.
    조수는 떠도는 사람이다.
    집에 가질 못해서 집을 처분한 적도 있다. 조수에게는 수치를 잰 장소와 수치를 잴 장소와 수치로 환산되는 숫자와 제때 입금되는 보수와 음식과 잠을 해결할 곳에 대한 고민만 있다. 수치가 기준보다 낮거나 높아도 물어보지 않는다. 꽤 오랫동안 그 일을 했다. 일은 단순했고 생활도 단순해졌다. 별일이 없다면 계속해서 그 일을 하고 싶었다. 아마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곳에만 가지 않았다면. 조수는 술을 마시면서 설명했다.

 

 

 

    * 본 작품은 2019 청년예술가 생애 첫 지원사업에 선정된 작가의 중편소설(2회 연재 예정)로, 다음 회는 12.16(월)에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김혜진

작가소개 / 민병훈

2015년 《문예중앙》을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문장웹진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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