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책

[단편소설]

 

 

백년의 책

 

 

김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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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가끔 기억이 난다. 쥐들이 살던 지하실. 바닥을 뛰어다니고 벽을 기어오르는, 밤마다 그토록 부지런해지던 쥐들, 갉아대는 소리들, 속삭이는 소리들, 의논하는 소리들······. 그리고 스며드는 비를 바라보던 까만 눈동자들······. 자,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갈까. 엄마와 아버지와 내가 그 지하실의 방으로 들어가던 날, 쥐들은 어쩌면 결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어디로 가기보다는 차라리 이 인간들을 내쫓아버리기로.

 

    그해에 나는 열다섯 살이었다. 두 번째 열다섯 살이 되는 해였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한국에서 떠날 때는 열여섯 살이었는데 미국에 도착하자 다시 열다섯 살이 되었다. 한 가지 좋은 점은 있네, 젊어졌어. 엄마가 웃으며 하던 말은 내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나는 그때 한 살이라도 더 빨리 나이가 들고 싶은 때였으니까. 그럴 때였으니까. 열다섯 살도 아니고 열여섯 살일 수도 없었던 그해 봄,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그해의 봄, 내 기억에 남은 것은 햇살뿐이다. 지하의 방이 아니라 지상의 햇살.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지막지한 햇살이 쏟아졌다.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햇살이었다. 한국에서 살던 집은 열여덟 평의 작은 아파트였다. 색이 벗겨진 그네와 녹슨 시소가 있던 작은 아파트 단지의 작은 아파트. 그래도 남향이었다. 엄마가 늘 말했던 대로 '그래도 남향'. 그런데 아파트 앞쪽으로 3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고, 햇살은 그 아파트를 피해서야 간신히 우리 집 남향 창문까지 올 수 있었다. 간신히 오는 동안 지치고 힘이 빠져 더는 뜨겁지도 찬란하지도 않았다. 미국, 캘리포니아, 엘에이. 그곳은 달랐다.
    잠시 동안이라는 전제 하에 신세를 지게 된 엄마의 먼 친척집, 그 집에는 잔디밭이 있었고, 놀랍게도 수영장이 있었고, 햇살이 있었고, 그 햇살을 쫓아가다 보면 바다가 있었고, 또 뜨거운 모래사장이 있었고, 거대한 하늘차가 둥글둥글 돌아가고 있었다. 햇살은 지하까지 들어왔다. 지하지만 지하실은 아니라고 엄마의 먼 친척이 굳이 말했던 그곳, 그 방 안까지. 지하까지 들어온 햇살이 얼마나 길고 얼마나 기운이 세던지 쥐들의 똥이 정오가 되기 전에 바짝바짝 말랐다. 비는 한쪽 벽으로만 샜는데, 언제나 붉은색이었다.
    또, 그 집에는 엄마의 먼 친척의 아들이 있었다. 그 애도 열다섯 살인지 열여섯 살인지 그랬는데, 한국말을 못 했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고 했지만 그게 더 나을 것은 없었다. 아니, 더 나빴다. 나와도 말을 안 했기 때문이다. 그 애가 떠들던 영어, 그 애와 그 애의 친구들이 뱉어내던 영어욕설, 영어웃음, 영어짜증과 영어분노······. 나중에는 그 애가 먹고 있으면 밥도 영어밥, 물도 영어물 같았다. 지하에 누워 있으면 그 애의 영어발자국 소리가 쿵쿵 울렸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그 시절에 엄마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었다. 지상에서 살 집을 구하러 다니고,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고, 한인교회에 나가 교인 등록을 하고, 엄마의 먼 친척과 교회 사람들이 바닷가나 공원에서 여는 바비큐파티에 나가 미국의 경치에 놀라고, 햇살에 익고, 맥주에 취하는 동안, 한껏 들떠 오른 엄마는, 적어도 그러려고 노력했던 엄마는.
    이상하게도 그 시절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떠오르지가 않는다. 아버지는 엄마의 먼 친척의 남편이 주인인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24시간 하는 식당이었다. 그렇다고 24시간 일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마 그랬다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24시간 일을 하려고 이민을 오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식당의 한국 이름이 꽃다지였다. 그 지역에서 처음으로 24시간 영업을 시작한 한식당이라고 했는데 영어로 쓴 식당 이름이 코딱지로 읽혀 정신없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무척이나 통쾌한 기분이었는데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아버지의 사장이 나를 정대보의 집에 데려갔다.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했지만 나는 아버지의 사장인 그 사람을 한 번도 그렇게 불러 본 적이 없다. 엄마가 언니라고 부르고, 나더러는 이모라고 부르라고 했던 그 집 여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집에서 머물던 얼마 동안 엄마는 그 집의 하녀처럼 살았다. 그 집의 집안일을 하고, 그 집 아들의 빨래를 해서만은 아니었다. 사실 그 집 여자는 엄마가 그런 일들을 하는 걸 싫어했는데,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돌아다니는 엄마를 쫓아다녀 가면서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게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지하실까지 쫓아 내려올 때도 있었다. 지하실 계단 중간까지. 그러면서 말했다. 여기는 떨어져 죽을 데가 없어. 다 너무 평평해. 죽으러 다운타운까지 갈 수는 없잖아. 다운타운까지 가려면 꼭 교회 앞을 지나가야 해. 그러면 미안해지잖아. 잘못하는 것 같잖아. 세탁기 옆에서, 냉장고 앞에서, 싱크대 뒤에서, 지하실 계단 중간참에서 그렇게 주절주절 읊어대던 말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집 여자는 그때 우울증 비슷한 걸 앓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엄마는 여전히 입버릇처럼 말하기는 했지만 가끔가다가는 혼잣말로 '미친년' 하기도 했다.
    정대보. 그를 이름 대신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아버지의 먼 친척은 그를 사장님이라고 불렀고, 그를 찾아왔던 누군가는 피터라고 불렀는데 아마 그게 그의 영어 이름인 듯했고, 이름 없이 성으로만 정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또 누군가는 '야' 라고도 했다. 그 어떤 호칭보다도 '야'가 제일 놀라웠는데, 그때 이미 정대보의 나이가 백 살은 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백 살까지 어떻게 살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지금도 간혹 그를 처음 만나던 날의 놀라움을 떠올리곤 한다. 당시에는 놀라움이라고만 여겼지만, 어쩌면 그때 이미 나는 그의 나이에서 뭔가 장엄함 같은 것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은 뚜렷하다. 그때인지 나중인지는 모르겠으나, 저 정도라면 이기겠구나 했었다. 무엇에? 모르겠지만, 아무튼 뭔가가 저 노인에게 덤빈다면 그 무언가들 중 단 한 가지에만은 분명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미국에 와서 한 달을 겨우 넘겼을 때였고, 곧 미국애들의 새 학기가 시작될 거라고 했다. 그 말은 아직 미국애도 아닌 나 역시 미국 학교에 들어가야 할 때라는 소리였다. 나는 그때 누구와도 싸우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 온종일 무엇엔가 치도곤이 되도록 얻어맞는 기분이었는데, 내게 덤비는 그 무엇들 중 분명히 확실한 것은 그 빌어먹을 햇살, 빌어먹고 또 빌어먹을 햇살······. 실은 좆나 좆같은 햇살······. 영어욕을 할 줄 몰라 기껏 좆같은 햇살······. 너무 맑고 뜨거워서 핑 도는 눈물조차 감추지 못하게 하는 햇살한테 만날 지는 기분이었다는 것이다.
    정대보는 코딱지의 전 주인이었다. 그에게서 식당을 인수할 때만 하더라도 그야말로 '코딱지만 하던 것'을 그 후 엄마의 먼 친척이 24시간 영업을 하는 큰 한식당으로 키웠다. 그렇더라도 장사의 모든 것을 정대보에게서 배웠다고 아버지의 사장은 말했다. 이민 생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는 게, 남의 나라에서 사는 게 얼마나 치사하고 더러운 건지도 다 정대보에게서 배웠다. 한국에서 잘나갔어? 얼마나 잘나갔어? 여기서는 다 소용없어. 여섯개들이 맥주병을 따며 그가 하던 말들. 그는 자기 아내와 비슷한 말도 했다. 여기서는 다 똑같애. 평평하다고. 아니다. 평등하다고 했을 것이다. 평평이 아니라 평등. 나중에 그 식당에 가볼 일이 있었는데, 그 식당이 입주해 있는 건물이 어찌나 납작한지 깜짝 놀랐었다. 위로는 한 층도 올리지 않고 옆으로만 퍼진 건물이었다. 그 건물에는 한인교회도 있었다. 평등한 데다가, 아니 평평한 데다가 교회까지 있어서 아무도 떨어져 죽을 수 없는 건물이었다.
    일을 하느라 정대보에게 나를 데려다줄 시간이 없었던 아버지 대신 사장이라 시간이 많은 엄마의 먼 친척의 남편이 나를 그 집까지 데려갔다. 꽃가루 알러지가 있다는 그는 운전하는 내내 코를 훌쩍거리고 재채기를 했다. 차에서 내릴 때는 얼굴이 누군가에게 실컷 뺨이라도 맞은 것처럼 붉었다. 그러니까 그 나라는 꽃가루에도 뺨을 맞는 나라였다. 물론 그때 했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지독하게 긴장을 하고 있었고, 게다가 지독하게 화가 나 있어서 무슨 생각이랄 게 들지도 않았었다. 용돈도 벌고 영어도 배울 수 있는 일자리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 나라는 아직 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은 자식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할 수도 있는 나라인 것이다. 해볼래? 엄마가 물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게 엄마의 말을 좇겠다는 의미만은 아니었다. 나는 독립을 꿈꿨다. 대한독립만세 하듯이 장엄하게 꿈꿨다. 독립을 하면 제일 먼저 총을 사야지. 영어로 총을 사고, 영어로 퍽큐 하고, 영어로 총을 갈겨야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면 꿈속에서 나는 폼 나는 건맨이 되어 있는 대신 다시 한국의 내 집에 있었다. 열여덟 평의 작은 아파트. 그러나 식구들이 모두 이민을 가버려 텅 빈 아파트. 그 작은 거실의 한복판에서 나는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울곤 했다. 열여섯 살, 혹은 열다섯 살이 꾸기에는 부끄러운 꿈이었다.
    백 살 노인, 어쩌면 백 살이 넘었을지도 모르는 파파할아버지 정대보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사지는 멀쩡하고 건강도 매우 좋아서 똥오줌 수발하는 일은 아니고 그저 산책이나 같이 하고 말동무만 해주면 될 거라고 했다. 꽃가루 알러지를 앓고 있는 뚱뚱한 남자의 차 안에서 길거리를 온통 뒤덮다시피 한 보라색 꽃잎 가로수를 내다보며 나는 저택을 상상했다. 미국에 와서 한 달도 되기 전에 엄마의 먼 친척의 집은 저택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내가 그때 상상했던 건 진짜 저택, 영화에서 보던 미국의 저택들······. 아니, 영국이었나? 아니, 프랑스였나? 아무튼. 나는 저택에 사는 노인의 소년 집사가 되고, 그에게 똥꼬를 따이고, 어느 날 그의 상속자가 되고, 어느 날 그를 죽이고, 어느 날 그 저택의 주인이 되는······.
    차는 다운타운의 허름한 동네로 진입하더니 허름하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아파트 앞에 멈춰 섰다.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손으로 철제 그물 같은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게 되어 있었다. 그 엘리베이터가 고장이었다. 뚱뚱한 남자는 2층에서부터 헉헉거리기 시작하더니 4층에 이르렀을 때는 증기기관차처럼 숨을 내뿜었다. 자주 손수건을 꺼내 얼굴과 목의 땀을 닦았는데 손수건이란 걸 정말로 가지고 다니는 사람을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마도 수건을 가지고 다녀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사장이란 사람들은 수건 같은 건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사장은 문 앞의 깔개 아래에서 열쇠를 찾아 직접 문을 열었다.
    노인은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사람인지도 몰랐다. 희미한 빛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고 있어서 뭔가가 거기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첫인상은, 그랬다, 마치 인형 같았다. 사람을 똘똘 뭉쳐서 작게 만들면 가닿을 수 있는 한계, 그러나 여전히 말랑말랑한 뭔가가 남아 있는. 그러니까 통통하고 작고 쪼글쪼글한 노인. 사장이 노인에게 인사를 했다. 처음에는 영어로 하는 인사말인 줄 알았으나 듣다 보니 아주 심한 사투리의 한국말이었다. 근본을 알 수 없게 심하게 뒤섞인 사투리였는데, 어쩌면 강원도 쪽이거나 북쪽 사투리인지도 몰랐다. 그 이상한 사투리에 일본말까지 섞여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건 더 나중 일이었다.
    이상한 사투리의 한국말이든 더 이상하게 들리는 일본말이든 정대보에게서 말이라 할 만한 걸 들은 건 그때가 유일했다. 그는 내게 영어를 가르쳐야 할 사람이었지만, 그러면서 돈을 받는 게 아니라 돈을 내야 할 사람이었지만, 그가 내게 가르친 영어라고는 레프트 라이트 업 다운이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그 외에는 끝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뿐이었다. 정대보의 영어가 그 정도로 유창해서가 아니라 완전히 그 반대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배운 게 있다면 '그 따위' 영어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돈도 벌 수 있다는 것, 산다는 걸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언어의 자리란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는 것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또 그런 의미에서 그는 내게 가르쳐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열여섯 살, 아니 열다섯 살이 그때 당장 필요했던 생존 영어를 그가 알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그가 늙은이의 언어조차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레프트 라이트 업 다운, 그건 중립어였다. 말하자면 평평한 언어.
    정대보를 산책시켜 주는 게 그날부터의 내 일이었다. 휠체어를 4층 아래로 내려다 놓고, 다시 걸어 올라가 그를 부축해 로비까지 내려온 후, 휠체어를 밀고 레프트 라이트 업 다운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일. 그리고 다시 휠체어를 들어 4층까지 올려다 놓고, 다시 내려와 그를 부축해 그를 제자리에 갖다 놓는 일. 휠체어를 미는 일은 쉽지 않았다. 돌바닥인 길이 울퉁불퉁해서 휠체어가 자주 흔들렸고, 그때마다 정대보는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이 멈춰 서서 그에게 인사를 하곤 했다. 한국의 우리 집 작은 아파트로 들어가던 골목처럼 좁은 골목이 많은 동네였다. 빵 냄새가 풍겼고 커피 냄새도 풍겼지만, 더 자주 쓰레기 냄새와 이상한 무언가가 타는 냄새가 풍겼다. 그게 대마초 냄새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골목 귀퉁이에서 눈이 반짝이는 소년들이 한쪽 주머니에 손을 꽂고 대마초를 피우면서 내게 윙크를 했다. 내가 그런 풍경에 정신이 팔리면 정대보가 소리를 질렀다. 레프트! 눈이 안 보이기는커녕 골목에 솟아오른 돌바닥의 위치까지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또 소리를 질렀다. 라이트!
    정대보가 사고를 쳤다고 아버지의 사장이 말했다. 노인이 어쩌다가 집 안의 벽에 부딪쳤는데, 하필이면 거기에 책장이 있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책에 깔려죽지는 않았지만, 그 무너진 책들 때문에 노인이 집 안에서도 제대로 돌아다니지를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애새끼들은 안 와봐. 절대로 안 와보지. 아침 식탁에서 빵 대신 밥을 먹으며, 수프 대신 우리 엄마가 끓인 김칫국을 먹으며 사장이 말했다.
    첫날 정대보의 집에 갔을 때, 그 집에 책이 많은 걸 보고 깜짝 놀랐었다. 책장에도 있고 바닥에도 있었는데 전부 다 몹시 헌책들이었다. 그 집에 가자마자 휠체어를 가지고 나와야 했고, 다시 휠체어와 정대보를 들여놓은 뒤에는 곧 그 집을 떠나곤 했기 때문에 그 책들을 자세히 살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날부터 내가 할 일이 그 무너진 책들을 다시 쌓아올리는 거라는 거였다. 사장이 말할 때는 묻지 못하고 나중에 엄마에게 그 책들이 한국 책이냐고 물어봤다. 책을 책꽂이에 꽂는 일은 어렵지 않겠지만, 그렇더라도 영어책과 한국 책은 다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뭐 이것저것 있다네. 대답하는 엄마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눈치였는데 정대보의 거실에 무너져 있는 책을 눈으로 훑어보자마자 그것들이 거의 전부 영어책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좆됐네. 열여섯 살의 언어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삼켰다.
    그 할아버지가 고생을 많이 했대. 엄마가 정대보에 대해서 했던 말이었다. 정대보의 집에 처음으로 갔다 온 날이었다. 지하실에 드러누워 만화책을 보고 있는 내 발치에서 엄마가 말했다. 돈도 엄청 벌었대. 근데 한 푼도 안 쓴대. (그럴 거면 이민은 왜 온 건데?) 자식들도 안 물려주고 다 자기가 꽁꽁 묶어 놓고 있다네. (그게 아메리칸 스타일이야?) 그래도 계산은 정확하대. (무슨 계산이?) 좋은 사람들도 많이 알고. (좋은 백 살 노인들?) 엄마가 내 발등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엄마의 버릇 중 하나였다. 한국에서부터 엄마는 나를 달랠 필요가 있을 때마다 머리나 손등을 쓰다듬는 대신 발등을 쓰다듬었다. 침대에 누워 있을 때뿐만 아니라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을 때도 그랬다. 내 발을 끌어당겨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고는 양말을 벗기고, 아이고 이 때봐라, 그러고는 발등을 쓰다듬는 거였다. 그러나 내가 열 살을 지난 후부터는 하지 않던 행동이었는데 이 무슨 퇴행이란 말인가. (그렇다. 나는 퇴행이라는 말을 알고 있었다. 이미 열다섯 살과 열여섯 살 사이에!) 엄마가 말했다. 근데 그 미친년이. 그러고는 웃었다. 발등을 쓰다듬는 손이 빨라졌다. 오늘은 지붕 위에 올라가려고 그런 거 있지. 나는 웃지 않았다. 엄마가 나를 웃게 만들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답은 해줬다. 거기서 뛰어내리면 발목도 안 부러져.
    그러게 말이야. 그렇지?
    뭐가 그래?
    그렇다고.
    첫날 이후부터는 정대보의 집까지 혼자서 갔다. 엄마의 먼 친척의 집에서부터 삼십 분을 걸어가 버스를 타고, 다운타운까지 가서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한 번 갈아탄 뒤, 또 4층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긴 여정이었다. 엄마의 먼 친척의 집에서부터 정대보의 집까지 세상은 온통 자카란다 천지였다.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꽃이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햇살과 함께 보라, 보라 했다. 보라보라하는 보라색 꽃. 그 꽃을 보다가 정대보의 집에 이르면 그 집의 어둠이 더 어둑어둑했고 더 축축하게 여겨졌다. 그 어둠 속에서 노인은 언제나 첫날과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여전히 인형 같았다. 누가 옮겨 놓지 않으면 평생 거기에 있어야 할. 밥은 먹었을까? 똥오줌은 눴을까? 거의 눈이 멀었다는 노인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눈이 먼 것과 거의 먼 것의 차이도 알 수가 없었지만 책을 무너뜨린 이후부터는 확실해진 게 하나 있는 셈이었다. 읽지는 못해도 부딪칠 수는 있다는 것. 볼 수는 없어도 무너뜨릴 수는 있다는 것. 정리 어떻게 해요? 전날 밤 내내 영어로 연습해 두었던 말 대신 한국말이 튀어나왔고, 정대보는 휠체어를 타고 있을 때처럼 레프트 했다. 그러니 왼쪽부터. 책을 정리하는 것은 산책을 시키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었지만 먼지 때문인지 콧물이 흘렀고 금방 머리가 아파 왔다. 가끔은 재채기도 했는데 인형 같은 노인이 그때마다 움찔했다. 예기치 않은 소리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산책을 할 때도 그랬었다. 그가 레프트 라이트 하며 가라고 하는 곳은 대개 소리가 나지 않는 곳이었고, 그래서 더 골목 깊숙한 곳, 더 더러운 곳, 더 쓰레기 냄새와 대마초 냄새가 많이 나는 곳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도 난데없는 소리는 나기 마련이었다. 누군가 쓰레기를 던졌고, 누군가는 욕을 했고, 누군가는 총을 쐈다. 진짜 총소리였는지, 철제 쓰레기통이 덮이기라도 하는 소리였는지는 모른다. 그냥 총소리라고 여겼다.
    책을 정리하는 건 조용한 일이었다. 기껏해야 책 몇 권 쓰러트리고, 기껏해야 책 몇 권 떨어트리는 게 소음의 전부인 일이었으니까. 나는 레프트 라이트로 책을 꽂고, 다시 라이트 레프트로 꽂았다. 정대보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어쩌면 그동안의 산책이 몹시 싫었던 걸지도 몰랐다. 책꽂이의 한 칸이 끝나기가 무섭게 얼른 레프트 라이트 하고 다시 라이트 레프트 지시했는데 책 정리를 끝낸 내가 그를 다시 휠체어에 태우기라도 할까 봐 겁을 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대보는 가끔 '리드'하기도 했다.
    읽으라고요?
    무응답.
    나는 읽지 않았고 정대보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정대보가 다시 말했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영어책을 소리 내어 읽어 줄 생각은 없었다. 그런 쪽팔리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곳이 정대보의 집이 아니라 학교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절대로, 죽어도 입을 열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랬음에도 그런 책들에는 좀 더 눈이 가지 않을 수 없었는데, 굳이 '리드'하라고 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마치 포장지에 쌓인 것 같은 푸른색의 알록달록한 표지의 책이었다. 안을 보니 거의 부서질 듯한 내지가 나왔다. 타원형 도장이 찍혀 있었는데, 도서관 마크였다. 그러니까 그 책은 도서관에서 훔쳤거나 도서관에서 빌린 뒤 돌려주지 않은 책이라는 뜻이었다. 정대보가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젊은 시절, 정대보의 유일한 취미가 거라지 세일을 돌아다니며 책을 사 모으는 일이었다고 했다. 정대보에게서 영어를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엄마의 오해는 그 말로부터 비롯되었던 것인데,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정대보는 눈이 멀었거나 안 멀었거나 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글자와는. 그는 책을 보는 사람이었지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의 어느 날, (그건 도대체 얼마나 오래전의 일인 걸까, 70년 전? 80년 전? 어쩌면 90년 전?) 그는 일을 하던 식당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거라지 세일을 하는 집을 만나게 되었다. 어둑어둑한 저녁이었는데 안 팔린 물건을 그때까지 집 앞에 놓아두고 있었다. 안 팔렸을 뿐만 아니라 누가 집어가지도 않을 물건들로 보였다. 그래도 불빛이 있어서 그 물건들을 살펴볼 수는 있었다. 다 망가진 건조기, 올이 다 풀린 겨울 스웨터와 모직 스커트, 이가 빠진 접시들이 있었다. 올이 풀리기는 했지만 스웨터는 맘에 들었다. 모직 스커트를 덤으로 얻어 가면 깔개로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스웨터와 스커트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동안 집 안에서 주인이 나왔다. 책을 발견한 건 그때였다. 열 권 스무 권씩 끈으로 묶은 책 무더기가 한쪽에 쌓여 있었는데 그중의 한 묶음 맨 위에 있는 책이 눈길을 끌었다. 끈에 묶여 잔뜩 짓눌려 있는 그 책의 표지에 태극 문양이 보였다. 중국의 태극 문양이 아니라 분명히 태극기처럼 보였다.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후로도 오랫동안 알 수가 없을 일이었으나, 마음이 흔들렸다. 그 책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는데 주인이 지독한 인간이었다. 그 책을 보려면 끈을 풀어야 하고, 끈을 풀면 다시 묶어야 하는데, 그러고 나서도 그 책이 안 팔린다면 자기는 뭣 때문에 그런 짓을 해야 하느냐는 거였다. 그러니까 그 책을 보려면 그 묶음을 다 사야 한다는 뜻이었다. 비싼 값은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스웨터와 맞바꿔야 할 돈이기는 했다. 정대보는 그날 끈으로 묶인 스무 권의 책을 샀고, 스웨터 없이 그 겨울을 보냈다. 그해 겨울만은 아니었다. 거라지 세일에서 쓸 푼돈들을, 나중에는 그보다 조금 더 큰돈을 전부 다 헌책을 사고, 또 그 헌책을 사러 다니는 차비나 시간값으로 쓰는 동안 그는 남의 헌옷이나 이가 빠진 찻주전자나 세컨핸드 건조기를 살 수 있는 돈을 아껴야 했다. 그러니까 그의 책들, 백 살 노인의 거실에 쌓여 있는 책들은 그의 옷과 그의 생활과 바꾼 것들인 셈이었다. 말하자면 그의 추위와 그의 헐벗음과 말려 입을 수 없어 늘 축축한 옷들과. 어쩌면 춥고 헐벗은 나머지 어느 날은 뼛속까지 스며들었을 고독과.
    정대보가 처음으로 내게 '리드'했던 책의 표지에는 태극무늬 같은 건 없었다. 대신 한 장을 넘기자 목차에 코리아라는 글자가 보였다. 책은 낡았고 글자는 작고 거실은 어두웠으므로 나는 한 단어씩 손가락으로 짚으며 그 제목을 읽어야 했다. 카톨릭··· 처치 ··· 뉴··· 글, 글, 글로리··· 책의 내용까지 읽지는 않았다. 그러기 전에 그 책이 출판된 연도가 나를 압도해 버렸기 때문이다. 1849년 책이었다. 1949년도 아니라 1849년. 맙소사. 그럼 백 년도 더 된 책이라는 소리였다. 금방 이백 년은 될 책이란 소리였다. 그럼 이건 보물 아닌가? 책이 백 년이 더 되면 골동품 같은 거 아닌가? 깜짝 놀란 기분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는데 눈먼 백 살 노인이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라보는지 안 바라보는지, 지켜보는 건지 어쩐 건지, 어쨌든. 김이 샜다. 백 년 된 책이 보물이려면 저 노인도 보물이겠지. 저 노인이 더 보물이겠지.
    정대보의 집에서 보냈던 한철······. 밖에는 보랏빛 자카란다가 피어 있으나 집 안에서는 계절 같은 건 알 수 없었던, 지나가다가 그냥 지나가 버리는 것 같던 그곳에서의 한철이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선명하다. 그것은 어쩌면 냄새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대보가 거라지 세일에서 사 모았다는 책들에서는 온갖 냄새가 풍겼고 온갖 먼지가 날렸다. 책갈피 사이에서는 오래된 신문 쪼가리가 나오기도 했고, 영수증 같은 게 나오기도 했고, 누군가에게 쓴 쪽지 같은 것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책들에는 저자의 사인인지, 아니면 선물하는 사람의 사인인지 알 수 없는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핸드라이팅이라 분간이 되지 않는 글씨였지만, 그래도 디어dear라는 글자는 읽을 수 있었다. 디어 엘리자벳, 디어 마크, 디어 마더, 디어 마이 선······. 그리고 또 어쩌면 어둠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대보의 집에 한결같이 고여 있던 어둠. 정대보가 집의 커튼을 걷지 않는 것은 그의 시력 때문이 아니었다. 시력이 좋았을 때도, 아니 그때는 더 집 안에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정성들여 가렸다고 들었다. 책들이 햇살에 손상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환기는 늘 밤에 했다. 빛을 가려 주고, 바람을 쐬어 주고, 먼지를 털어 주었다. 기껏해야 거라지 세일에서 산 그깟 헌책들을 자식들보다 더 귀하게 챙겼다. 영어책이었지만 자식들처럼 영어를 씨부리지 않는 책들. 한 권씩 사오지를 못해 대부분 묶음으로 사야 했던 책들은 한국과 관련된 몇 권을 제외하고는 대개 싸구려 페이퍼백들이었다. 정대보의 집에서 일을 하면 영어도 배우고 용돈도 벌 수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는데, 더는 산책도 하지 않는 정대보의 집에서 그의 책들을 정리하는 동안 달리 할 일이 없던 나는 그 페이퍼백 책들을 읽으면서 온갖 막장드라마의 섹스어필하는, 아니, 섹스하는 영어들을 배웠다. 백 살 노인 정대보도 오래전에는 이런 것들을 읽었을까. 여자 남자 침대에서 뒹구는, 침대에서 뒹굴기도 전에 엘리베이터나 복도에서 한 번 먼저 하는, 둘이서도 하고 셋이서도 하는, 앞으로도 하고 뒤로도 하는 이런 책들을 읽었을까?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설마 버릴 것과 간직할 것을 고르는 중에 굳이 이런 책들을 남겨 놓지는 않았겠지. 정대보는 아마도 책 내용은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대보가 간직한 책은 그러니까 오직 책이었을 뿐이다. 글이 아니라 책. 이야기가 아니라 책. 깨끗한 책. 찢어진 데가 없는 책. 찢어진 데가 있어도 근사한 장정의 책. 오래된 책. 액면가가 비싼 책. 표지가 멋있는 책.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책도 있었다. 첫날 스웨터를 살 돈으로 대신 사 가지고 왔던 책 묶음 중 어느 책 한 권의 책갈피에서 20달러짜리 지폐가 나왔다. 정대보는 그 책을 평생 간직했다. 그 책의 제목은 '페티코트를 입은 여자'였다. 그 책은 물론 한국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책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가장 소중한 책들이 꽂히는 칸에 그 책을 함께 꽂아 두었다. 레프트, 레프트, 제일 레프트에.
    정대보의 책들 중에는 잡지도 있었다. 그중에는 표지가 뜯겨 몇 년도 발행인지도 알 수 없는 잡지도 있었는데, 살펴보니 내셔널지오그래픽이었다. 그런 게 티브이 프로그램이 아니라 잡지로도 있는 줄은 몰랐었기 때문에 흥미가 생겨 펼쳐 보니 사진들이 잔뜩 있었다. 백 년 전의 사진들. 백 년도 더 전의 한국 사진들. 백 년도 더 전이면 한국인가, 조선인가. 아무튼. 거기에 나랑 비슷한 사람들, 아니, 정대보와 비슷한 사람들, 미련하고 한심해 보이는 사람들, (왜 웃는 거야, 왜 웃는 건데, 미국 사람이 사진 찍는다고 왜 웃어? 왜 웃어 줘?) 젖가슴을 드러낸 여자들, (그러니까 젖은 왜 보여주느냐고) 남대문, 동대문, 서대문······. 대동강, 압록강, 두만강······. 사진을 보다 말고 가끔씩 정대보를 돌아보곤 했다. 인형 같은 노인. 인형이란 말이 얼마나 이상하게 쓰일 수 있는지를 알게 해버린 늙은이. 그가 나를 시켜 쌓아올리고 있는 책들처럼 이야기는 빠지고, 책갈피와 책표지로만 남아버린 것 같은 늙은이.

 

    엄마가 지붕에서 떨어졌다. 엄마의 먼 친척 대신 엄마가. 바람에 날려 빨래가 지붕 위로 올라갔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지붕 위가 아니라 사다리에서 떨어진 건데 발목이 아니라 손목이 부러졌다. 엄마는 석고를 입힌 손을 들어 올려 얼굴을 가리고 한참 말없이 앉아 있었다. 부러질 거면 차라리 발목이 부러지지. 그러면 일은 할 수 있잖아. 석고를 입힌 팔을 내리며, 웃으면서, 엄마가 한 말이었다. 나는 엄마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이제 설거지도 못 하고 빨래도 못 하게 된 엄마는 하루 종일 '앉아서', '꼼짝없이', '미친년'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인데, 석고를 입힌 손이 생겨서 그게 흉기가 된 엄마는 그 손을 휘두르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있을까. 먼 친척에게만은 아니었다. 아버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여기가 평평해, 여기가 평평하냐고, 이 자식아! 너, 알아? 이 집 지붕이 얼마나 가파른지? 넌 그거나 아냐고, 이 자식아. 말보로를 피우던 아버지. 담뱃값이 비싸서 끊어야 했는데, 미국 말보로는 한국 말보로보다 어쩐지 맛이 더 좋은 것 같아서 도무지 담배가 끊어지지 않는 아버지······. 한국에서부터 알코올중독기가 있던 아버지가 대놓고 주사를 부린 게 엄마의 손목이 부러졌던 그 이튿날 밤의 일이었다. 언제 일을 끝내고 언제 집에 들어왔는지도 알 수 없는 아버지는 엄마의 먼 친척의 남편의, 그러니까 사장의 술을 털어 마시다가 그 술에 억병으로 취해서는 동네를 뛰어다녔다. 악을 쓰며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웃통도 벗고 바지도 벗었다. 이튿날 아침 아버지는 남의 집 수영장에서 팬티 차림으로 발견되었다. 그나마 팬티마저 벗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아버지는 식당에서는 쫓겨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그 집에서 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날 엄마가 내 발등을 또 쓸었다. 석고를 입히지 않은 왼손으로. 걱정하지 않는 손이었다. 엄마들은, 정말이지, 세다. 나조차도 그 상황이 정말이지 겁이 났는데 말이다. 도대체 여기에서 쫓겨나면, 여기서마저 쫓겨난다면, 우리는 어디로 간단 말인가. 쥐들은 행복해질까. 그런 생각도 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의 먼 친척의 집에서 나온 후에도 나는 계속 정대보의 집에 갔다. 사실 책이나 정리하면서 돈을 버는 건 꽤 괜찮은 일이었고, 게다가 나는 그곳이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무도 말 시키지 않고,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어둡고, 서늘하고, 냄새가 나는 그곳이. 그리고 인형 같은 노인이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그곳이. 나는 열심히 책을 레프트 라이트 꽂고, 다시 라이트 레프트 꽂았다. 정대보가 움찔움찔하는 걸 보려고 일부러 책을 떨어트리거나 재채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혼자 소리를 내 웃기도 했다. (뭐가 웃겨서?) 시급으로 계산되는 내 임금은 일주일에 한 번씩 정확히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오전에 몇 시간씩 집안일을 봐준다는 라틴계 여자가 정대보에게서 받아서 놓아 둔 것일 텐데, 나는 항상 그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여자가 중간에서 내 돈을 몇 달러씩 빼내간다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근거 없는 의심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갑자기 정대보와 한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러면 그 노인에게 조금 더 잘해 주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떤 때는 그가 내 할아버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게는 한 번도 없었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가 실은 미국에 있었던 거라는 상상은 나쁘지 않았다. 그에게 책을 '리드'해 주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정대보가 계산이 정확하다면 나 역시 갚는 일을 정확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읽어 주기 시작한 책, 지금도 기억이 나는 책들, 표지는 하얀색, 1904년, 출판사는 펜실베이니아 어디, 디어 어쩌구 하는 메모가 있고, 아, 여기 커피 자국 같은 얼룩이 있고요······. 우와씨이, 이거. 핏자국 아냐? 얼라리 이 책 드럽게 오래됐네······ 1801년 거네······ 무슨 전쟁 얘긴가, 이건? 이런 식으로 읽어 주던 책들. 이야기가 아니라 책을 읽어 주던 시절의 추억. 영어는 늘지 않았지만 책을 읽어 주는 실력은 점점 늘어서 내 얘기를 듣는 정대보의 얼굴이 조금씩 조금씩 흐물흐물해지던 기억······. 그리고 점점 더 작아지던 기억······. 작아지다가 작아지다가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 같던 기억······.
    책을 읽어 주다 보면 아주 드물게나마 그 책의 내용까지 읽어 주게 될 때도 있었다. 그중의 한 내용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까마득히 오래전, 그러니까 앞자리가 19가 되기도 전의 1800년대 말의 어느 시기에 평양에서 선교사의 아내로 지냈던 한 미국 여자가 (우와, 평양이라니!) 쓴 일기 중의 한 부분인데 책도 아니고 책의 일부만 남은, 혹은 일기장의 일부만 남은 종이 묶음에 있던 내용이었다. 정말이지 정대보는 별별 걸 다 가지고 있었다. 한 남자가요. 자기 와이프를 교회에 데려가야 하는데, 이 와이프가 처치 가기를 싫어했나 봐요. 올드맨이니까. 올드 타임, 올드맨, 오케이? 그런데 한국에서 릴리전 있었어요? 처치 다녔어요? 근데, 이거 진짜 웃긴다. 쏘 퍼니, 쏘 퍼킹 퍼니. 이 남자가 뭐라 그러냐면, 와이프가 교회 안 간다고 하면 때렸대. 한 대 때렸는데 안 가면 두 대 때리고, 그래도 안 가면 막 두들겨 팼대. 좆나 팼대. 그랬더니 이제 교회를 아주 잘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고 자랑을 하고 있네. 그야말로 어이가 없어서 그 구절을 읽다 말고 정대보를 쳐다봤는데, 그때 정대보가 줄줄 울고 있었다. 혹시 정대보였나? 한국에서 예수 믿으라고 마누라를 팬 게? 정대보가 아무리 늙었다고는 해도 그 시기와 맞아떨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천주교 박해 때 죽은 조선인 신자들의 사망에 관한 기록서를 읽어 줄 때였다. 표지는 갈색, 꽃줄기 무늬가 돋을새김 되어 있고, (나는 돋을새김도 알게 되었다!) 그러면 이게 꽃다지인가? 암튼, 1859년 출판, 토론토 대학도서관과 미켈른 칼리지 도서관의 인장이 찍힌 내지, 그리고 누군가의 핸드라이팅······ 그리고 목차······. 순교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순교······. 어거스틴 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막달라 김은 입교했다, 루이 박은 순결선언을 했다, 아가사 천은 아무것도 몰랐다, 데미안 남과 그의 부인은 서로의 순결을 지키며 형제자매처럼 살았다, 죽을 때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과부 아가사 Y는 마침내 비헤드behead되었다······. 메리 원도 비헤드되었다······ 바바라 한도 비헤드되었다······. 혹시 이번에도 정대보가 울까? 나는 조용히 눈만 들어 정대보를 바라보았다. 정대보는 잠들어 있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 봤자 정대보가 이르렀던 세월에는 이르지 못했고, 아마도 영원히 못 이를 것 같기도 하다. 바라지도 않는다. 그런 걸 바라다니, 그건 때때로 재앙처럼 여겨지는데, 어쩌면 나의 세월이란 오히려 역행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 와서는 그 나이, 혹은 그 세월이 주는 장엄함조차도 떠올릴 수가 없으니 말이다. 아무튼. 정대보 얘기를 더 하기에 앞서 내 어머니와 아버지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두 분은 성공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실패하지 않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아버지는 이민 생활 30년 만에 세탁소를 세 개나 경영하는 사장 및 고용주가 되었다. 말보로 담배는 여전히 피우지만 술은 끊었다. 엄마로 말하자면 엄마의 먼 친척에게로부터 옮은 병이 뒤늦게 발병되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조력자로 열심히 사셨다. 지독하게 열심히 사셨다. 병은 심해졌다가 나아졌다가 하는데 엄마의 먼 친척과는 그 증상이 완전히 달라서 말년에 이르러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살아계시고, 여전히 말을 안 한다. 나는 두 분이 백 살까지 사는 것을 생각해 보곤 한다. 그러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고, 전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정대보는 정확히 113살에 죽었다. 내가 그의 나이를 알게 된 건 그의 장례식에서였다. 그의 아들들과 그의 친척들을 보게 된 것도 그곳에서 처음이었는데 그들 역시 정대보의 나이를 정확히 알게 된 건 그곳에서 처음인 것 같았다. 그의 출생연도를 본 사람들이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 했다. 사실은 누구도 그 나이를 믿지 않았다. 이민을 오는 과정에서 생긴 실수일 뿐일 거라고 했다.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이 열렬히 그의 실제 나이를 토론하고 있는 동안, 갑자기 한구석에서 '남묘호랑개쿄, 남묘호랑개쿄' 하기 시작했다. 또 누군가가 '오!' 했다. 정대보가 한동안 그 종교의 신자였다고 누가 말했고, 언제까지 그랬냐고 누가 물었고, 백 살 때까지라고 또 누가 웃으며 실없는 말로 대답했고, 다시 또 그의 실제 나이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묘호랑개쿄, 남묘호랑개쿄는 끝없이 울려 퍼졌다. 미국, 캘리포니아, 엘에이에서. 한국 사람과 미국 사람들이, 백인과 아시안과 라틴 사람이 모인 곳에서. 그 라틴 사람은 정대보의 집안일을 봐주던 여자였다. 그 여자가 제일 많이 울었다. 그날 무슨 까닭인지 그 여자가 내 손에 2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쥐어 주었다. 그동안 내 주급에서 삥쳐 먹었던 돈일까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적다 싶었다. 혹시 정대보가 첫 번째 책에서 발견했다는, 그러니까 '페티코트를 입은 여자'의 책갈피에서 발견했다는 그 돈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렇다면 그 돈은 왜 그 라틴계 여자가 가지고 있었을까 짐작할 수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잠깐 흉측한 상상이 들었다. 라틴계 여자에게 페티코트를 입혀 놓고 그 앞에서 20달러를 흔들고 있는 정대보······. 뭐, 그런. 정말이지, 장례식에서 할 상상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또 책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 넝마들은 이제 어쩐대? 넝마라는 말이 너무나 또렷하게 한국말로 들려서 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정대보의 죽음이 슬퍼진 건 바로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혹시 책의 죽음에 대해서였을까.

 

    정대보는 지진이 일어났던 날에 죽었다. 그리고 지진이 일어난 이튿날 아침에 그 라틴계 여자에게 발견되었다. 지진이 일어난 날에 죽기는 했지만 어쩌면 지진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죽음이었을지 모른다. 그냥 저절로 죽었을지도. 저절로 그의 인형 같던 몸에서 마지막으로 숨이, 말랑말랑함이 빠져나가 완전히 쪼그라져 버렸던 것일지도. 그러니까 자연사, 자연스럽게 죽는 죽음. 그는 그 정도로 나이가 들었으니까 어떻게 죽는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백세가 넘었거나 거의 백세인 노인이 지진으로 죽었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정대보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들었을 소리가 무엇인지는 분명했다. 무너지는 소리, 내가 쌓아올리고 레프트 라이트로 정돈했던 책들이 다시 무너져 내려 바닥에 평평하게 떨어지는 소리였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마지막에라도, 정대보는 혹시, 책이 아니라 이야기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지는 않았을까.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깟 이야기들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추억의 내부가 사라지고 껍질만 남았을 때, 그 가벼움을 감싼 표지는 더 아름답고 장엄할 수 있는 거니까.
    지진이 일어나던 날, 나는 버스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발바닥의 느낌이 이상했었다. 땅 밑에서 내 발바닥을 간질이던 손이 차츰 기어 올라와, 순간, 내 발목을 와락 거머쥐는 느낌이었다. 나는 주저앉았고,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어느 집의 지붕에선가 농구공이 굴러 떨어졌다. 지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여긴 미국 캘리포니아 엘에이였으니까. 그러나 짐작했던 것처럼, 혹은 기대했던 것처럼 엄청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큰 지진이 아니었고, 거기는 높은 건물이라고는 없는 주택가 동네였다. 나무들이 흔들렸고, 땅이 울었고, 뭔가가 내 발목을 거머쥐기는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한동안 정거장에 주저앉아 있었다. 버스는 오지 않았다. 한동안 앉아 있다가 퍽, 퍽, 퍽 욕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공공장소에서, 비록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지만, 입 밖으로 내뱉은 영어욕설이었다. 피터정, 정대보가 죽은 건 어쩌면 바로 그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김인숙ⓒGabriel Wu

작가소개 / 김인숙

2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신방과를 졸업했다. 1983년 《조선일보》로 등단했으며, 소설집 『함께 걷는 길』, 『칼날과 사랑』, 『유리 구두』, 『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 『그 여자의 자서전』, 『안녕, 엘레나』, 『단 하루의 영원한 밤』 등, 장편소설 『핏줄』, 『불꽃』, 『79-80 겨울에서 봄 사이』, 『긴 밤, 짧게 다가온 아침』, 『그래서 너를 안는다』, 『시드니 그 푸른 바다에 서다』, 『먼 길』, 『그늘, 깊은 곳』, 『꽃의 기억』, 『우연』, 『봉지』, 『소현』, 『미칠 수 있겠니』, 『모든 빛깔들의 밤』, 『벚꽃의 우주』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현대문학상·이상문학상·이수문학상·대산문학상·동인문학상·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문장웹진 2019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