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티하드의 문

[단편소설]

 

 

이즈티하드(Ijtihad)1)의 문

 

 

김 솔

 

 

 

    1. 아스르(Asr, 오후)

 

    수요일 오후 자흐미르 히카는 경찰서장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히카는 이번 사건의 전말을 상부에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며칠째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금요일 정오에 모스크에 들러 주마Juma를 마치고 나면 복잡한 생각들이 저절로 정리되길 기대할 따름이다. 그래도 서장의 호출을 받은 이상 간략하게나마 조사 결과를 보고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서장의 조바심을 히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경찰 내부뿐만 아니라 정가와 외교가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번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서장의 거취가 결정될 수도 있었다. 그토록 중요한 사건을 서장이 히카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던 건 자신이 마피아와 연관되어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두 명의 신문기자들이 소문의 전파 경로를 거슬러 올라 진실에 접근했다가 수상한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하자, 그들의 불운에 용기를 얻은 서장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줄 수사관으로서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일선 경찰서에 배치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은 히카를 지목했던 것이다. 처음에 히카는 자신의 혈관 속에 절반쯤 흐르고 있는 세르비아인의 피 때문에 차별대우를 받은 것 같아 불쾌했다. 하지만 곧 자신의 능력과 애국심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남보다 일찍 찾아온 것에 대해 알라에게 감사했다. 대개는 막대한 뇌물과 단단한 침묵만이 그런 기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사를 진행하면서 히카는 높이와 두께를 가늠할 수 없는 벽에 부딪쳐 멈춰 서야 할 때가 많았고 그때마다 동료들로부터 공익조차도 항상 다수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조언을 들어야 했다. 권력의 상부가 이미 이 사건의 인과관계를 결정해 두었다면 정작 히카가 해야 할 일이라곤 그 결론에 부합할 증거를 모아서 보고서를 완성하고 마지막 페이지에 서명하는 것뿐일지도 몰랐다. 지방의 경찰서장 한 명을 파면시킨다고 한들 히카의 조국이 마피아로부터 해방될 것 같지도 않았다. 심지어 독립전쟁의 영웅인 현재의 총리조차 마피아 출신의 기업가들에게 각종 특혜를 주고 있으니, 마피아를 도려내다 보면 독립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위험도 다분했다. 히카는 영웅을 꿈꾸며 경찰이 된 게 아니다. 가문의 빈곤과 혼혈의 차별을 극복하고 이곳에서 공평한 시민권을 보장받으려면, 국가가 신분을 보장해 주는 공무원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어렵사리 이 직업을 얻은 이상 히카는 가족의 미래가 통째로 걸린 모험에는 결코 휘말리지 않을 작정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직접 확인한 사실만을 시간 순서대로 엮어 건조하게 보고하되 서장의 반응을 충분히 반영하여 최종 보고서를 완성하자고 생각했다.
    서장은 집무실에서 홀로 터키산 라키를 마시고 있다가 히카의 방문을 받았다. 히카는 배흘림기둥처럼 서서 서장이 술잔을 비우길 기다렸다. 하지만 서장은 히카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자신의 리듬에 따라 느긋하게 라키의 풍미를 음미했다. 그것은 서장이 히카의 보고서를 읽기도 전에 이번 사건의 결론을 이미 알고 있다는 암시이기도 했다.
    "이 사건을 조사하느라 거의 한 달째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들었네. 그래서 자네의 보고서에 대한 상부의 기대가 아주 크다네. 그것이 여러 사람의 인생뿐만 아니라 조국의 역사까지 바꿔 놓을 수도 있을 거야. 물론 자네의 승진에도 도움이 된다면야 더할 나위 없을 테고. 한잔 하겠나?"
    히카는 부동자세를 풀지 않은 채 고개를 두어 번 내저었다. 그런 행동이 서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선 여유나 낭만을 찾아볼 수 없어 유감이야. 내가 자네처럼 젊었을 땐 업무시간 중에 후배에게 라키를 권하는 선배가 많았지. 그들 덕분에 나는 이 고독한 직업을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나는 그들이 정년을 채우고 명예롭게 퇴직할 수 있도록 헌신했다네.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사회가 안전해질수록 우리의 권리는 더욱 위협받게 되어 있지. 그러니 통제 가능한 수준의 범죄가 끊임없이 발생해야만 모든 경찰은 안락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어. 그런데도 한잔 하지 않겠다고?"
    "저는 무슬림이어서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나 역시 무슬림이고, 이 라키를 만든 터키인들도 모두 무슬림이지. 그런데 나나 터키인들은 라키가 술이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네. 이건 선지자가 땀과 눈물로 걸러낸 말씀이지. 알라의 선한 의지가 깃들지 않은 사물과 현상이란 결코 존재할 수 없으니까."
    그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히카는 자신이 패배자의 신분으로 이 방을 나가게 되리라고 확신했다. 그러고는 코란에 적대적인 보고서를 완성하여 서명한 뒤 상부에 송부할 것이며, 금요일 주마에서 자신의 죄악을 오랫동안 회개할 것이다.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십 분 뒤에는 이곳을 나가야 하니까 가능하면 짧게 보고해 주게. 아니면 오늘은 그저 얼굴 보고 안부 물은 것으로만 만족하고, 조만간 편한 자리를 다시 만드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서장은 술병과 술잔을 캐비닛에 넣어 두고 집무실을 나설 채비를 했다. 만약 그렇게 헤어진다면, 히카는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번뇌의 고통을 고백할 기회를 영원히 잃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급해졌다.
    "이 사건은 마피아 조직이 마약과 인신매매 사업까지 마수를 뻗치면서 일어난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나 이탈리아로 밀입국하려는 여자들의 몸속에 마약을 숨겨서 국경까지 실어 나른다는 소문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저희 의료진의 도움으로 피의자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만, 정신적 충격 때문에 그녀들은 하나같이 치매와 비슷한 증세를 보이고 있어서 배후를 추적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어떤 여자는 베개를 자신의 아들로 여기고 주기적으로 수유를 시도한다고 들었습니다."
    서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걸쳐 입으면서 말했다.
    "아니 이렇게 불쌍할 수가! 어찌 베개와 갓난아이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건가?"
    "베개 속을 채운 올리브 씨앗들이 서로 부딪히면 갓난아이의 옹알이와 비슷한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치장의 베개를 목침으로 모두 바꾸었습니다."
    "알았네. 그러니까 자네가 내린 결론을 요약하자면, 이번 사건의 배후를 밝혀내는 데 시간과 인력이 좀 더 필요하다는 것이로군. 하지만 이런 결론은 결코 상부가 기대했던 게 아니네. 그리고 유능한 경찰은 결코 시간과 인력이 부족하다는 변명을 하지 않는다는 걸 반드시 명심하게. 하지만 난 자네의 능력과 헌신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니, 자네가 이 사건을 명예롭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시간을 좀 벌어 주겠네. 그렇게 되면 자네도 언젠가는 나처럼 업무시간에 후배에게 라키 한잔 건넬 수 있을 만큼의 여유를 갖게 되겠지."
    서장이 이미 출입문을 통과했는데도 히카는 꼼짝하지 않았다. 경찰은 집무실 열쇠를 흔들어 보이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려보냈다.
    "내 조언이 좀 더 필요하다면 지금 말해 주지. 이 사건의 최종 보고서를 완성하기에 앞서 조르제 마르티노비치2) 사건부터 공부하게나. 그러고 나면 자네의 보고서에 어떤 결론을 담아야 하는지 깨닫게 될 걸세. 알바니아 민족처럼 도덕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완벽하게 무장된 사람들이라면 결코 제 항문 속에 맥주병을 쑤셔 넣은 짓 따윈 상상조차 할 수 없지. 더군다나 알바니아의 명예로운 경찰이 어떻게 세르비아 마피아에게 매수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린 자들이 자네의 보고서 때문에 더 이상 알바니아에서 살 수 없게 되길 바라네."
    히카는 비로소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발을 떼려다가 크게 휘청거렸다. 그 광경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던 동료 경찰 한 명이 급히 달려와 히카를 부축해 주었다. 서장이 집무실에서 라키를 즐겨 마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동료가 자신 역시 취했다고 오해할 것 같아 히카는 걱정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마피아가 지배하는 세상에선 친구와 적이 구별되지 않고 진실은 적을 색출해 내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며 지혜로운 자는 침묵을 무기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던, 아버지의 가르침을 문득 떠올렸다.

  1)  추론과 개인적 판단에 근거하여 율법에 대한 해석을 내리는 것. '이즈티하드의 문'이 닫혔다고 주장하는 보수 그룹과, 여전히 열려 있다고 주장하는 개혁 그룹이 이슬람 세계에 늘 존재한다.
  2)  1985년 5월 1일 세르비아계 농부인 조르제 마르티노비치가 항문에 맥주병이 박힌 채 병원으로 실려 왔다. 그는 알바니아 청년 두 명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으나 알바니아계 자치정부는 그의 음란한 성적 취향 때문에 발생한 사건으로 종결지었다. 하지만 그를 재검진한 의사들이 공개 성명을 내고 반박하면서 ― 두 명 이상의 조력자가 없이는 그런 사건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 세르비아계 언론과 알바니아계 정치인들이 대립하기 시작했고, 결국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붕괴되었다. 하지만 세르비아나 알바니아 어느 민족도 코소보에서의 홀로코스트를 피하지 못했다.

 

 

    2. 이샤(Isha, 밤)

 

    베네라 무스타파는 자신의 옷섶을 내려다보았다. 흰 실과 검은 실을 구별할 수 없는 어둠은 계속되고 있었는데, 정작 자신이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하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게다가 산성酸性의 적막에 자신의 뼈와 근육이 녹아내려서 사지를 움직이기는커녕 숨을 쉬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의식이 잠들지 않은 이상 무슬림은 예배를 건너뛰어선 안 된다. 그러려면 우선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부터 재워야 했다.
    아이는 무스타파의 품에서 검은 밀가루 반죽처럼 늘어져 있었다. 몸뚱이를 골고루 다독거리면서 눈앞까지 들어 올려 보았지만 아이가 이내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바람에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잘 먹이거나 입히지 못한 데다가 침대 없이 재우다 보니 아이는 태어날 때보다도 훨씬 가벼워져 있었다. 무스타파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생의 필수조건들을 나눠주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가 며칠 동안 삼킨 것이라곤 자신의 오줌과 그 오줌에 젖어 부드러워진 밀짚 한 줌이 전부여서 모유가 전혀 생겨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이는 자신의 심장박동과 체온을 제 어미에게 주기적으로 전달하면서 자신의 안녕을 알려 왔다. 태어날 때의 우렁찬 울음소리로 짐작하건대 무스타파는 아들을 낳은 게 틀림없었다. 아이의 샅에서 물컹한 가문의 문장이 만져지기도 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몸 밖으로 쏟아낸 오물이 전혀 없을 만큼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무슬림의 상태에서 완벽한 대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사실 무스타파는 자신이 언제 어떻게 아이를 낳았으며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때도 의식의 안팎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어두웠고 사지 끝에서부터 감각이 천천히 채워졌을 때 비로소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놓여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하지만 선지자는 천국이 어머니의 발아래에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무스타파는 아이를 받아든 이후로 단 한 순간도 바닥에 내려놓지 않은 채 안고 지냈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대추야자 열매즙을 먹이지 못했고, 메카를 향해 아이를 쳐들고 오른쪽 귀에는 아잔Azzan을, 왼쪽 귀에는 이까마Iqama를 들려줄 수도 없었다. 그저 껴안고 함께 울어 주는 것이 어머니로서 갓난아이의 무병장수를 알라에게 요청하는 방법이었다.
    어쩌면 무스타파의 눈과 귀는 출산의 고통을 감당해 내지 못하여 파괴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서 치유와 안식을 위해 아이와 함께 세상으로부터 잠시 격리되었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솔기 하나 없이 완벽한 어둠과 적막을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팔다리를 뻗거나 허리를 곧추세우면 그녀의 모든 끝이 차가운 벽에 닿아 젖는다. 그러니 무스타파는 앉아서 아이를 달래다가 이따금 바닥에 뒹구는 수밖에.
    하지만 알라가 자신을 버리지 않는 한 무스타파를 굴복시킬 적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무자비한 포주의 추적을 피해 험준한 설산을 임신 칠 개월의 몸으로 넘으면서도 그녀는 길을 잃게 되는 순간을 결코 상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농가 입구에서 탈진해 쓰러지면서 그녀는 연신 비스밀라Bismillah3)를 중얼거렸다. 그녀가 뱃속의 아이를 살리고 뱃속의 아이는 그녀를 살렸으나 그들 모두를 살린 건 당연히 알라였다. 하지만 가난한 농부에겐 양식과 땔감이 충분하지 않았으므로, 수프 한 그릇으로 기운을 회복하자마자 그녀는 뱃속의 아이를 데리고 그곳을 떠나야 했다.
    아드리아 바다를 향해 서쪽으로 쉬지 않고 산길을 걸으면서 그녀는, 전쟁을 통해 막대한 권력과 이익을 얻게 되는 자들이 자신의 불행에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쟁이 없었더라면 유엔은 쿠케스Kukes에 난민수용소를 세우고 평화유지군을 파병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성욕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거룩한 임무에 집중할 수 없는 군인들이 여자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니지 않았을 것이며, 돈 냄새를 맡은 마피아가 난민수용소 부근에 임시 사창가를 만들거나, 민족의 명운이 걸린 전쟁 비용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정부군이나 반군이 평범한 여자들을 납치하여 포주에게 헐값에 파는 일도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무스타파는 자신이 사창가에 팔려간 즉시 자살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으며, 모든 인간에겐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내재되어 있다는 격언을 그토록 어린 나이에 이해하게 될 줄도 몰랐다. 아드리아 바다의 갯내를 잠깐 맡는가 싶더니 숲의 적의가 수 시간 동안 이어졌고, 밤과 아침의 경계에서 정신을 잃고 깨어나 보니 이곳이었다.
    허벅지 부근에서 아련하게 꿈틀거리는 통증을 확인하기 위해 무스타파는 치마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가 바늘처럼 뾰족한 무엇인가에 찔리자 급히 몸을 옹송그렸다. 자신이 혹시 아이의 입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은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아이는 미동도 없이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자 비로소 그녀는 자신의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나자르 본죽Nazar Boncuk을 떠올렸다. 그것은 터키의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친오빠가 그녀의 생일선물로 보내온 것이었다. 푸른색 바탕에 눈동자 모양을 새겨 넣은 장신구가 흉안凶眼의 시기와 질투를 막아 준다 하여 터키 사람들은 그것을 몸에 지니거나 집 안 곳곳에 매달아 둔단다. 아이의 목에 걸어 주면 사시斜視까지 예방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무스타파는 사창가를 도망쳐 나올 때 급히 그것부터 챙기느라 정작 어머니의 유일한 유산인 금반지는 놔두고 왔다. 어쩌면 그것이 알라의 길눈이 되어 자신과 아이를 살렸는지도 모른다. 어둠과 함께 찾아온 재앙에 맞서다가 그것이 깨어졌다고 생각하니 친오빠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확전의 소식과 함께 터키에서 귀국하여 코소보해방군이 되었다가 세르비아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제 눈으로 직접 친오빠의 주검을 확인하기 전까진 믿지 않을 작정이었다. 악마의 최고 전략은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믿게 함으로써 절망을 알라의 속성으로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친오빠를 다시 만나게 되면 무스타파는 아이의 대부가 되어 달라고 부탁할 작정이다. 아이에겐 이미 친오빠의 이름을 붙여 주었다.
    내일이라도 아이와 함께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면 무스타파는 슈코더르Shkoder에 살고 있는 친척들을 찾아갈 것이다. 그들에게 아이의 할례도 부탁할 것이다. 아이의 배냇머리를 잘라 그 무게만큼의 재산을 기부하는 전통을 당장 따를 순 없지만, 훗날 평화가 찾아오고 재산을 모으게 된다면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모아 배불리 먹일 것이라고 다짐했다.
    무스타파는 더 늦기 전에 예배를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진심을 다해 도움을 청한다면 알라는 반드시 권능을 세상에 펼치시리라. 그래서 그녀는 히잡을 벗어 아이를 자신의 등에 묶었다. 우두Wudu에 쓸 물을 구할 수 없었으므로 무스타파는 차가운 벽에 손바닥을 대고 손바닥이 축축해질 때까지 기다린 다음 그 손으로 제 얼굴을 쓰다듬고 두 손을 비볐다. 어둠이 몰려가는 방향을 전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무스타파는 네 방향을 향해 각각 네 번씩 라크아Rak'ah를 반복했다. 바닥에 이마를 너무 세게 찧어 피가 배어날 수도 있었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일러 가로되, 만일 알라께서 너희들 위에 밤을 심판의 날까지 지속시켰다면 그분 이외에 어느 누가 너희에게 빛을 줄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듣고 있지 않느냐. 일러 가로되, 만일 알라께서 너희들 위에 심판의 그날까지 낮을 지속시켰다면 그분 이외에 어느 누가 너희에게 휴식할 수 있는 밤을 가져다주겠느냐, 너희는 보고 있지 않느냐, 자비로운 그분은 밤과 낮을 만드셨으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양식을 구하며 감사하도록 하기 위함이니라."4)
    무거운 피로와 날카로운 허기가 혀를 누르고 성대를 찔러댔지만 발성기관이 아닌 곳에서 울려오는 소리에 그녀는 자신의 영혼이 더욱 가벼워지고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코란은 어느 아야Aya에서 시작해도 늘 같은 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에, 알라를 향한 예배를 멈추지만 않는다면 그녀와 아이의 목숨은 유지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선가 친오빠 역시 코란을 암송하면서 죽음에 저항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문득 코란의 신성한 문구가 자신의 몸 안에서 모유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무스타파는 등에 매달려 있는 아이를 가슴 쪽으로 끌어당기려고 했다. 그런데 팽팽하게 묶여 있어야 할 히잡은 느슨하게 풀려 있었고 아무리 몸을 비틀어도 등 뒤의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천장에 부딪혀 정수리가 깨어지고 팔다리의 피부가 찢겨 뼈가 드러나며 비명이 침과 눈물과 함께 사방으로 튀는데도 그녀는 마치 깊은 바다에 빠진 것처럼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리면서 아이를 찾았다. 혼자서 바닥을 기어 다니거나 천장에 매달리기에 아이는 너무 어렸다. 어둠과 적막이 점점 사라지는 것으로 보아 어딘가에 틈이 있는 게 분명했고 그 속으로 아이가 빠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벽과 천장과 바닥을 샅샅이 더듬어 보아도 틈이나 아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 모든 비극을 흉안의 저주 탓으로 돌릴 수밖에. 나자르 본죽은 이미 주머니 속에서 깨어져 있으니, 무스타파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바닥에 이마를 짓찧고 손가락뼈가 모조리 부러질 때까지 바닥을 두드리면서, 악마가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알라와 코란의 존재를 깨닫고 서둘러 도망치면서 아이를 뱉어내도록 압박할 수밖에. 그러고 나서 아침이 오는 대로 깨어진 나자르 본죽의 조각들을 맞춰서 악마가 더 이상 헛된 꿈을 꾸지 못하도록 만들 작정이었다.

  3)  '알라의 이름으로'라는 뜻.
  4)  코란 28:71~73

 

 

    3. 정오(Zuhr, 주흐르)

 

    여권 없이 국경을 넘으려는 서른 명의 남녀들에게 20그램의 마약이 담긴 콘돔 스무 개씩 일련번호 순서대로 삼키게 하고 엑스레이로 그것들의 위치와 숫자를 일일이 확인한 뒤, 게르트 콜리키는 그들의 소지품을 모조리 빼앗고 옷까지 갈아입혔다. 그들은 하나같이 제 손으로 생니를 서너 개 뽑아도 꿈쩍하지 않을 만큼 고통에 단련된 자들이었지만 고작 가족사진 한 장을 지켜내기 위해 권총 앞에서도 필사적으로 저항했기 때문에 그들을 제압하는 데 예상치 못한 시간과 노력이 소모되었다. 만약 그들이 귀중한 상품을 몸속에 담고 있지만 않았더라도 콜리키는 가차 없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 밀입국 준비를 겨우 마친 자들을 열 명씩 나누어, 대형마트의 로고가 붙어 있는 냉동트럭 세 대 안에 가지런히 눕히고 저급의 소고기들을 그 위에 덮었다. 냉동 장치를 가동하자 인간 화물 사이에서 신음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삼십 분 정도 떨어진 그리스 국경에 도착할 때까지 인간 화물들은 서로 몸을 밀착한 채 쉬지 않고 살갗을 비벼야 한다. 하지만 냉동트럭이 입국 검사대 앞에 멈춰 서고 통과신호를 기다리는 동안엔 일체의 움직임을 멈춘 채 오로지 정신의 운동에너지만으로 생명현상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경 경비대원들 중에는 콜리키에게 매수된 자들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냉동트럭은 실물 확인 없이 국경을 통과할 수 있지만, 운이 나쁘면 무장한 군인들이 화물칸까지 직접 들어가 내부를 확인하기도 한다. 비밀 공간이 발각될 위험에 처하면 트럭 운전사가 경적을 울릴 텐데, 인간 화물들은 그 신호에 맞춰 세 대의 냉동트럭에서 일제히 빠져나와 국경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야 한다. 그들을 쫓는 경비대원들의 집중력을 방해하기 위해 콜리키는 인간 화물 모두에게 똑같은 옷을 입혔던 것이다. 경비대원들의 숫자가 턱없이 적고 의욕도 크게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운이 좋다면 절반 이상의 인간 화물들은 무사히 국경을 넘을 수 있다. 국경 경비대의 책임자는 자신의 실패를 결코 상부에 보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무원들 역시 불안한 소식으로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스로 숨어든 자들은 비밀 접선 장소로 찾아가 스무 개의 콘돔을 모두 게워내고 일련번호를 확인받은 다음 가짜 여권과 천오백 유로씩을 받는다. 국경을 넘지 못하고 붙잡힌 자들은 자신이 삼켰던 화물을 유치장 화장실에서 모두 게워내야 하는데, 그들을 뒤따라 화장실로 들어온 청소부가 그걸 수거해 간다. 실패자들은 콜리키에게서 보석금을 빌려 법원에 지불하고 안전하게 추방된다. 일주일 안에 원금과 삼십 퍼센트의 이자를 갚지 않는다면 콜리키는 자신의 부하를 채무자의 가족에게 보내어 원금과 이자뿐만 아니라, 인질 한 명당 하루에 이천 달러씩 계산하여 수고비까지 받아낸다. 그렇게 번 돈의 대부분은 국경 검문소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여러 루트를 통해 전달되는데, 가끔은 콜리키조차도 누가 범법자인지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다. 마피아 조직의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그리스나 알바니아 정부와 거래를 시도한 배신자는 결코 이승에서 은신처를 찾을 수 없다. 콜리키는 자신의 임무를 항상 깔끔하게 처리해 왔기 때문에 상부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지금의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조직 안팎에서 자신의 명성을 위협하는 도전이 거세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인 불법 체류자들에게 직업을 빼앗겼다고 판단한 그리스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무능한 정부를 성토하고 인종차별주의에 경도된 정치인들이 적대감을 증폭시키자, 그리스에서는 구직자의 피부색과 언어와 종교가 국적이나 능력보다 중요해졌다. 자연히 출입국 검사가 강화되었고 국경 경비대원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으며, 당직 장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총기를 사용할 수 있는 법령까지 공표되었다. 그러자 밀입국하려는 알바니아인들은 그리스 국경 대신 이탈리아 국경 쪽으로 몰려갔다. 하지만 콜리키는 수요와 공급이 시장가격을 결정한다는 전통적인 경제이론에 따라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을 각각 넘는 인간 화물에게 차등 조건을 적용함으로써 ― 즉, 전자는 열다섯 개의 마약 콘돔을 삼키기만 하면 이천 유로의 정착금을 지불받았으나 후자는 고작 천 유로에 서른 개의 마약 콘돔을 날라야 했다 ― 사업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스인들에 비해 이탈리아인들이 더 많은 분량의 상품을 소비하는 대신, 그리스에서의 판매가격이 이탈리아의 그것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콜리키 조직의 수익은 이전보다 오히려 늘어났고, 이 결과만 놓고 보면 콜리키는 장밋빛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콜리키를 초조하게 만드는 변화는 내부에서 일어났다. 코소보 전쟁 이후로 러시아와 중국에서 새롭게 합류한 조직원들이 짧은 기간 내에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려고 새로운 사업을 발굴해 내고 무모한 경쟁을 벌이면서, 콜리키처럼 전쟁 이전부터 조직에 헌신해 오던 조직원들의 입지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불문율은 결정의 합당한 근거로 더 이상 인정받지 못했고 무한경쟁의 문화는 전통적 금기마저 파괴했다. 오랫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경찰간부나 고위 공무원들까지 공격당하자 상부는 마지못해 신입 조직원 몇 명을 공개처형했지만, 그들의 열정 때문에 조직 전체의 사업 역량이 개선되었다는 평가까진 취소하지 않았다. 그래서 콜리키는 조직이 새롭게 시작한 장기밀매나 대리모 사업을 드러내놓고 반대할 수 없었다. 이 두 사업은 전적으로 과거나 미래가 없고, 국적이나 종교의 구별도 없으며, 여자와 아이를 특별하게 보호하지 않는 소수 민족들 덕분에 가능했다. 하지만 콜리키는 자신의 개인적인 상처 때문에라도 이 사업에 결코 개입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훗날 상부 조직을 이끌게 된다면 불법적인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무기거래 사업이나 지하자원 채굴 사업을 시작할 것이다. 무장한 경호원들을 식당 입구에 배치하는 조치만으로는 도저히 안심할 수 없어서 벽을 등지고 앉아 권총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어 둔 채 홀로 식사를 하는 일이 점점 지겨워지고 있었다.
    세 대의 냉동트럭이 아지트를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올리브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콜리키는 러시아 출신의 부하가 대여섯 명의 여자들을 앞장세우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아랫배가 도드라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들은 임신한 게 틀림없었다. 마치 일부다처제가 러시아의 발명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알바니아 여자들 앞에서 한껏 거들먹거리는 부하를 보자 콜리키는 역겨움을 느꼈고 본능적으로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권총을 확인했다. 아무리 자신이 악명 높은 마피아의 일원일지라도 임신한 여자들의 입속에 마약 콘돔을 쑤셔 넣고 냉동트럭에 실을 만큼 타락하진 않았다. 더욱이 대리모 사업에 대한 어떤 명령도 상부 조직으로부터 내려오지 않았다. 엄연히 자신이 하부 조직의 책임자이므로 자신의 권위에 소속되어 있는 자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자신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며, 규칙을 어길 경우에는 응당한 처분을 내릴 수밖에 없다. 콜리키는 권총 방아쇠에 집게손가락을 건 채 그 러시아인이 명중률 백 퍼센트의 사정권 안으로 걸어 들어올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렸다.
    도대체 언제쯤 이곳의 역사는 총이 아닌 펜을 든 사람에 의해 다시 기록하게 될 것인가.
    한때 동유럽의 맹주였던 유고연방이 티토의 죽음과 공산권의 몰락 이후 여러 국가들로 쪼개질 때만 하더라도, 선의의 경쟁과 호혜적 교류가 모두를 번창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웃이 이웃을 학대하고, 이웃이 이웃을 강간하고, 이웃이 이웃을 고문하다가, 기어이 이웃이 이웃을 죽이는 역사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공명정대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이곳에 파견된 평화유지군들마저 비극 앞에서 눈을 감고 입을 막은 채 그저 따분한 행정업무를 처리하면서 월급을 받았다. 만약 국제사회가 군인들 대신 공무원들이나 예술가들을 파견했더라면 이곳에서의 파괴와 학살의 역사는 좀 더 빨리 끝났을 것이고, 무일푼의 피난민이었던 콜리키는 곳곳에 흩어져 있던 가족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올리브 농장을 재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쟁은 승자와 패자를 모두 패배시켰고, 가족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겨우 살아남은 콜리키는 생존을 위해 마피아가 되었다. 마피아 조직만이 그곳에서 유일하게 종교와 인종과 국적을 구분하지 않은 채 개인의 능력과 전통을 존중해 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망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출신의 부하가 명중률 백 퍼센트의 사정권 안으로 걸어 들어오자 콜리키는 양복 안주머니의 권총을 꺼내는 대신 그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단숨에 꼬꾸라뜨렸다. 영문을 알지 못한 러시아인은 콜리키의 발밑에서 버둥거리면서 알바니아어로 '죄송합니다. 제발 살려주세요.'를 연발했다.
    "너는 누구의 명령을 받는 것이냐? 아니면 스스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이냐?"
    러시아인은 버둥거리는 걸 멈춘 채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오직 조직과 보스의 명령만 받들어 행동할 따름입니다. 판단하거나 생각하는 건 결코 저의 역할이 아닙니다."
    그의 완벽한 알바니아어 발음 때문에라도 콜리키는 더욱 멋쩍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왜 저 여자들은 하나같이 임신을 하고 있는 것이냐? 누가 저 아이들의 아버지란 말이냐? 그들은 러시아인이냐, 아니면 중국인이냐?"
    "보스께서 뭔가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제발 흥분하지 마시고, '너희들의 오른손이 소유한 것은 제외하라.'5)는 코란의 말씀을 떠올려 주십시오."
    러시아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코란의 문구는 마치 십자군 전쟁을 선포하는 교황의 칙서에서 발췌한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콜리키는 수치심과 분노를 함께 표현하기 위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다행히 총알은 러시아인을 거치지 않고 바닥에 박혔는데, 총소리만큼은 한낮의 권태를 단숨에 산산조각 낼 만큼 날카로웠다. 그런데도 콜리키 발밑의 러시아인은 조금도 움찔거리지도 않은 채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저도 끝까지 반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티아라 유곽에서 몸을 팔다가 도망쳐 나온 저 여자들은 그리스에서 도착한 뒤에도 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다고 하나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자신의 자궁 속에다 무려 마흔 개의 마약 콘돔을 숨기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것으로도 모자라 스무 개를 더 삼키겠다는 걸 가까스로 막았습니다. 아무리 그리스 국경의 경비대원들이 잔혹하다고 하더라도 임신한 여자들의 애원만큼은 묵인해 주지 않을까요?"
    그제야 콜리키는 신규 조직원들이 조직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어렴풋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어쩌면 상부 조직은 새로운 사업을 방해하고 있는 자들에게서 권위를 박탈하여 이국 출신의 모험가들에게 건넬지도 모른다. 마피아도 엄연히 인간들의 조직인 이상 세대 간의 갈등과 통합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콜리키는 두려움을 부하들 앞에서 드러내 보이지 않기 위해서 또다시 한 발의 총알을 바닥에 박아 넣었다. 돌의 파편이 튀어 얼굴에 상처를 냈는데도 러시아인은 고통의 기색을 조금도 드러내 보이지 않은 채 온몸에서 힘을 뺐다.
    "어느 시대 어느 세계든지 여자들만큼은 살아남을 것이고 그녀들에게서 아이들은 끊임없이 태어날 것이므로, 보스가 걱정하는 역사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콜리키는 그 러시아인의 얼굴에 침을 뱉은 뒤 발밑에서 그를 놓아 주고 자신의 사무실로 걸어갔다. 사바나의 야생세계와 마찬가지로 마피아 조직에서도 상대에게 등을 보이는 행동은 곧 패배를 의미했지만 콜리키는 괘념치 않았다. 소파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자 그의 몸속으로 뜨거운 총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5)  코란 4:24

 

 

    4. 마그립(Maghrib, 일몰)

 

    슈코더르 호수 위로 해가 잠기고 있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 일몰 예배를 드려야 하는 도리안 촐라쿠는 검은 양들처럼 여기저기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 관광객들을 초조한 눈빛으로 둘러보았다. 그는 목양견을 대동하지 않은 걸 후회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시아에서 건너온 관광객들은 예의 바르고 부지런하며 호기심이 많지만 모국어 이외의 언어에 서툴러서 가이드의 설명을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데도 질문을 거의 하지 않는다. 게다가 다른 언어권의 일행들과 섞이는 대신 자신들만의 시공간을 확보하는 데 열중한다. 그들이 신뢰하는 건 이국의 관광 가이드가 아니라 모국어로 적힌 가이드북이고, 여행의 목적은 새로 구입한 카메라와 손목시계의 성능을 확인하는 것이며, 지금 이곳에서 자신과 함께 관광할 수 없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큰 부채감을 지니고 있어서 자신의 현재를 방부 처리하여 고스란히 그들에게 생생히 전달해 줄 방법을 끊임없이 궁리한다. 해외여행을 통해 지난한 삶을 한꺼번에 보상받겠다고 벼른 자들은 수중의 돈을 모두 탕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시아인의 성향을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촐라쿠로서는 그저 미소와 침묵으로써 그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방식은 훗날 자신이 알바니아를 떠나 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인지 촐라쿠를 따라 나선 관광객들은, 그가 무슬림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밝힐 때를 제외하면, 거의 실망한 적이 없다. 젊고 잘생긴 데다가 알바니아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해박하면서도 그는 결코 편협적인 사견을 말하는 법이 없으며 고리타분한 주제를 반복하지도 않는다. 제 입으로 한번 불러 본 이름은 끝까지 기억하며 그들이 잠깐 들려준 그들의 모국어를 완벽하게 따라하여 환호를 이끌어 낼 줄도 안다. 관광지에서는 자유 시간을 많이 허락하는 한편 손님들을 부지런히 쫓아다니면서 사진을 함께 찍거나 기념품 상인과의 흥정을 도와주고, 각국의 가이드북이 추천한 음식을 직접 검증해 주기도 한다. 촐라쿠는 자신의 직업이 모국의 불운한 역사와 연관 있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인정했다. 가난과 공산주의는 알바니아 사람들의 이동을 오랫동안 제한했고, 그 빙하의 시간이 지역마다 독특한 생활방식을 발명해 내고 유지시킨 덕분에 알바니아에 뛰어난 관광 자원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게다가 코소보 전쟁은 발칸 반도 전체의 물가를 서유럽의 그것보다 훨씬 낮추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총성이 멈추고 전범들이 기소되자, 유럽 지도의 마지막 조각을 완성하려는 관광객들이 이곳으로 몰려들더니 마치 미개의 대륙에 최초로 도착한 선교사들처럼 알바니아인들의 마을을 기웃거리면서 우월감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새 슈코더르 호수는 망자들의 핏빛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로자파Rozafa 성 주위에 흩어져 있던 관광객들은 약속시간보다 반시간 늦게 촐라쿠가 기다리던 곳으로 돌아왔다.
    "이제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호텔 식당에 환상적인 저녁식사를 준비해 놓았으니 너무 아쉬워하실 필요는 없어요. 알바니아에 오셨으면 롬스테이크와 타라토르는 꼭 드셔야 한다고 여러분의 가이드북에 분명히 적혀 있을 겁니다. '그대가 알바니아를 따르면 그대는 알바니아인이다.' 저처럼 채식을 해야 하는 분들에겐 별도의 식단이 제공될 예정입니다."
    관광객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팽팽한 시위를 떠나 자신에게 날아오자 촐라쿠는 능숙하게 몸을 피하면서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과녁을 벗어난 시선들은 서로 씨줄과 날줄로 교차하면서 무지갯빛 그물처럼 허공 위에 펼쳐졌다.
    "오른쪽으로 흐르는 강이 부나Buna강이고 왼쪽으로 흐르는 강이 드리니Drini강입니다. 날씨가 좋으면 여기서 아드리아 바다까지 볼 수 있다고 여러분의 가이드북에 적혀 있을 텐데, 오 년 동안 이곳을 만 번쯤 방문한 저조차도 아직까지 그 사실을 직접 확인하지 못해 유감입니다. 아마도 이곳이 알바니아 최대의 공업도시로 성장하기 이전에는 그런 기적이 가능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스모그가 명예로운 왕관이라고 자랑스러워하는 알바니아인들도 있지만, 저와 같은 관광가이드에게는 해고 통지서를 배달하는 집배원의 모자처럼 보이네요."
    촐라쿠는 멋쩍게 웃으며 관광객들의 표정을 하나씩 들여다본 다음 다시 등을 돌리고 허공에다 말의 씨앗을 흩뿌렸다.
    "발칸 반도에서 가장 큰 저 호수를 알바니아 사람들은 슈코더르라고 부르지만 세르비아 사람들에게는 스카다르스코Skadarsko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스쿠타리Scutari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의 호수에 붙여진 세 개의 다른 이름이야말로 발칸 반도의 과거와 현재를 잘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네요. 전 정치가나 군인이 아니니까 슬픈 이야기를 계속하진 않겠습니다. 아무튼 슈코더르는 원래 아드리아 바다의 일부였는데 모래톱으로 허리가 잘리면서 호수가 되었지요. 지금은 유럽에서 야생 펠리컨을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지요. 하지만 여태껏 저도 고작 두 마리쯤 목격했으니 더 늦기 전에 확실한 보호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 같긴 합니다."
    관광객들은 촐라쿠의 설명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초조하게 사진기의 셔터만 눌러댔다. 두 번 다시 자신의 생을 이곳으로 데리고 오지 못할 그들에겐 허공 속에서 무늬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이국의 언어보다는 초점이 흐릿한 사진들이 훨씬 유산으로서 높은 가치를 갖게 될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촐라쿠는 입을 다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서 그들을 호텔에 데려다주고 그곳의 화장실 바닥에서라도 예배를 올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뿐이었다.
    그때 일본 여자가 손을 들더니 성벽을 가리키며 어설픈 영어로 이렇게 물었다.
    "저기 전설······ 로자파······ 아이······ 조각······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젊어서 아이를 낳았다면 그 아이가 이미 자신과 비슷한 나이로 성장했을 만큼 그 여자는 늙어 보였다. 하긴 그 전설 때문에 아시아의 관광객들이 비행기를 두서너 번 갈아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이곳으로 온다. 그리고 촐라쿠는 잠꼬대로라도 그 전설을 완벽하게 들려줄 수 있다. 하지만 서로의 언어 사이에 장벽이 놓인 이상 완벽한 설명과 이해는 불가능했으므로 촐라쿠는 언덕을 앞장서 내려가면서 건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알바니아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로자파 전설을 저 역시 당장이라도 들려드릴 수는 있지만, 이곳을 직접 찾아와서 성벽을 쓰다듬고 풍광을 살핀 여러분의 감동을 제 불안한 언어가 훼손시키게 될까 봐 몹시 두렵네요. 그래서 자세한 내용은 호텔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들려드릴게요. 단, 모든 전설에는 진실과 거짓이 적당히 섞여 있고, 어느 누가 어떤 목적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내용과 교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하지만 버스에 오른 관광객들은 로자파 전설에 대한 호기심을 이내 잃어버린 채 자신들이 찍어온 사진들을 살피거나 가이드북을 읽다가 허기와 피로에 짓눌려 하나둘씩 졸기 시작했다. 회색 윤슬만으로 촘촘하게 장식된 슈코더르의 수면이 촐라쿠에게는 마치 이교도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안에서 걸어 잠근 모스크의 정문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는 마이크의 전원을 끈 채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서 코란 몇 구절을 소리 내지 않고 암송했다. 자신과 같이 무슬림인 버스 기사에겐 그 소리가 들리는지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리듬을 맞췄다.
    그때 일본 여자가 통로로 걸어와 촐라쿠 옆에 앉았다. 그녀는 어쩌면 자신이 가이드북에서 모국어로 읽은 내용이 진실인지 알바니아인에게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인지도 몰랐다. 아시아인들은 순박하지만 동시에 철저하니까. 그래서 촐라쿠는 낮은 목소리와 건조한 톤으로 로자파 전설을 들려주었다.
    기원전 세 명의 형제가 슈코더르 성벽을 쌓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벽은 매일 밤 저절로 무너져 내렸다. 성벽을 완성하려면 인신공양이 필요하다는 현자의 조언에 따라 형제는 자신의 아내들 중에서 다음날 점심식사를 가장 먼저 들고 나타나는 여자를 성벽에 묻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두 형들은 그 계획을 자신의 아내에게 미리 귀띔해 주고 비극을 피해 갔다. 막내의 아내인 로자파만이 다음날 점심식사를 챙겨 성벽에 나타났고, 형들의 배신을 알아차리지 못한 막내는 울면서 자신의 계획을 아내에게 들려주었다. 로자파는 오히려 남편을 위로하면서, 성벽 안쪽에 묻힌 뒤에도 어린 아들에게 젖을 물리고 요람을 흔들어 줄 수 있도록 자신의 오른쪽 가슴과 오른쪽 눈, 그리고 오른쪽 다리를 성벽 밖으로 내놓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의 소원대로 성벽에는 세 개의 구멍이 뚫렸고 그 이후로 수천 년 동안 난공불락의 명성을 이어 가고 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듣고도 일본 여자의 표정은 거울처럼 맑고 고요했기 때문에 촐라쿠는, 그 일본 여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나이를 먹을 때까지 단 한 명의 아이도 낳아서 길러 본 적이 없다고 확신했다. 거기서 이야기를 멈추고 싶었지만 그 여자의 시험을 아직 통과하지 못한 것 같아서,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로자파의 오른쪽 가슴에서 흘러나온 젖이 슈코더르 호수로 흘러들어 오랫동안 물빛이 우윳빛을 띠었다고 전해지지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알바니아의 어머니들은 슈코더르 호수에 제 젖가슴을 적시면서 로자파의 모성애가 자신에게 스며들길 기원하고 있답니다. 하지만 전쟁 동안 그 호수는 죽은 자들의 붉은 피로 들끓기도 했지요."
    일본 여자가 제자리로 돌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호텔이 나타났다. 촐라쿠는 관광객들에게 호텔 방 열쇠를 일일이 나누어주면서 식당의 위치와 식사시간을 알려주었다. 그러고는 호텔 화장실 바닥에서 하루의 네 번째 예배를 늦게나마 마쳤다. 땀으로 묵직해진 옷이 마치 죄인에게 입히는 수의囚衣처럼 느껴져서 가방 속의 샌드위치를 차마 삼킬 수가 없었다. 귀가하기에 앞서 촐라쿠의 왼손이 한 가지 죄악을 더 저지를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로비로 돌아갔더니 세 명의 중년 남자들이 외출 채비를 마친 채 서성거리고 있었다. 심야관광 옵션을 예약한 자들은 모두 네 명이었으므로 마지막 손님을 기다려야 했다. 로비의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다른 관광객들의 주목을 받아야 하는 상황을 피하게 하려고 촐라쿠는 그들을 호텔 밖으로 데려가 담배를 나누어주면서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행동방침을 일러주었다.
    "알바니아 마피아의 악명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만, 필사적으로 저항하지 않는 자들마저 해를 입힐 만큼 몰상식하진 않습니다. 그저 지갑과 귀중품을 포기하면 그만입니다. 빈 지갑을 꺼내어 그들을 조롱하지 마세요. 아시아 관광객들이 수중에 큰돈을 넣고 다닌다는 사실은 유럽의 갓난아이조차 잘 알고 있으니까요. 물론 저희는 지금 알바니아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찾아가려 하고 있고, 마피아가 정부를 대신해 그곳의 질서를 통제하고 있지만, 당장 일 분 뒤에 일어날 일을 누가 미리 알아차릴 수 있겠습니까? 알바니아의 속살을 경험하는 동안 제가 건물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혹시라도 불상사가 일어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밖으로 뛰어나오세요."
    그때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러고는 '아이 엠 소리'를 연발했는데, 처음엔 늦어서 미안하다는 뜻으로 해석했으나 나중엔 그들과 함께 갈 수 없어서 미안하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했다. 그러자 자신이 크게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한 누군가가 날카로운 모국어로 짧게 중얼거렸고, 비록 그 언어가 어느 나라에 속해 있는지 알진 못해도 비난과 경멸의 의미를 담고 있는 사실을 의심하는 자는 없었다.
    세 명의 모험가들과 촐라쿠를 태운 택시가 슈코더르 시내의 유곽에 멈춰 섰다. 그들은 골목 양쪽에 오십 미터쯤 늘어선 수십 명의 창녀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으면서 어느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오 분쯤 지나 골목에 홀로 나타난 촐라쿠는 가방 속에서 샌드위치를 꺼내어 전봇대 아래에서 먹기 시작했다.

 

 

    5. 파즈르(Fazr, 새벽)

 

    알라는 어김없이 새벽 세 시에 엘세이드 마브라이의 영혼을 흔들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마브라이는 이불 위에 앉아서 촛불을 켜지도 않은 채 벽을 향해 짧은 기도를 올렸다. 기도소리가 사라지는 곳을 따라가다 보면 황금으로 빛나는 메카가 나타날 것이다. 목숨이 끊기기 전에 그곳을 순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창문이 있던 자리까지 벽돌로 메워버린 그 방에서 자신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잠이 든 사이에 들이닥칠지도 모를 죽음에 대비하여 자신이 지닌 최상의 의복을 갖춰 입고 메카 쪽으로 머리를 둔 채 매일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눈먼 잠이 자신의 영혼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찾지 못하는 날이면 그는 정수리까지 뒤집어쓴 이불 속에서 수십 차례 자맥질하다가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전날 저녁의 기도문 속에서 사악한 정령이 은신처로 삼았을 만한 문장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마브라이는 머리맡을 더듬어 성냥과 초를 찾아냈다. 촛불이 제 모양새를 갖추기도 전에 그는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서둘러 촛불을 끈다. 지금보다도 더 어려운 시절이 닥쳐올 것에 대비하여 무엇이든 아끼지 않으면 안 된다. 벽을 더듬으며 부엌으로 나온 그는 어제 타다 남은 숯을 모아 화덕에 불을 지피고 새로운 장작 몇 개를 던져 넣는다. 황덕불이 부엌 안의 가난을 어슴푸레 밝히면 그는 마당의 우물로 가서 얼굴과 손을 씻고 메카를 향해 머리를 네 번 조아린 다음 하루의 첫물을 길어와 부엌에서 밀가루 반죽을 시작한다. 그제야 눈먼 잠이 찾아와 그의 영혼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아내기 위해 이곳저곳을 아프게 찔러대지만 마브라이는 발을 구르거나 뺨을 때려 가면서 자신에겐 알라 이외의 신이 없음을 알린다. 이마와 겨드랑이에 땀이 맺힐 때쯤이면 잠은 밀가루 반죽 속에 갇히고 화덕 속에서 꿈의 형상에 따라 부풀어 오르다가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을 때쯤 슬그머니 도망친다. 그러면 곧 구수한 빵 냄새가 아잔 소리처럼 집 안과 마을로 퍼지며 가족들과 이웃들을 깨우는 것이다.
    빵을 만드는 시간은 마브라이와 그의 가족들에겐 기도 시간만큼이나 신성하다. 그가 만드는 빵으로 일곱 명의 가족이 끼니를 해결하고 생필품을 산다. 더 큰 화덕을 부엌에 들일 수만 있다면 더 많은 빵을 구워서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안전한 집으로 이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할 가문과의 악연을 끊어내지 못하는 한 그에게 결코 안식은 없다. 그의 상상을 초월한 합의금을 지불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이 지옥을 빠져나갈 수 있겠으나, 알바니아에서 그렇게 큰돈을 지닌 자는 오직 마피아뿐이고 그들은 결코 빵을 팔아서 그 큰돈을 벌어들이지 않았다. 그러니 마브라이의 가족이 저주를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미할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전쟁이나 전염병으로 절멸하는 것뿐이다. 기적이 없는 한 마브라이 집안은 잔인한 복수의 굴레 속에서 끝내 패배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미할 집안에는 무기를 들 수 있는 남자들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자들이 각각 열 명 이상씩 남아 있는 반면, 마브라이 집안에는 고작 네 명의 남자와 세 명의 여자가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데다가 설상가상으로 두 명의 여자들은 이미 폐경기까지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머니와 어머니는 고작 열일곱 살의 마브라이를 서둘러 결혼시키려 애쓰고 있지만 어느 부모도 제 딸을 지옥으로 보내려 하진 않는다. 마브라이 역시 미할 집안과의 원한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진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을 생각이 전혀 없다. 아직도 그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다.
    마브라이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부의를 듣자마자 급히 모로코에서 귀국했으나 곧장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시외버스로 아홉 시간을 달려 낯선 시골에 숨어 지내던 가족과 삼 년 만에 재회했다. 미할 집안의 남자들에 의해 부관참시 당하는 걸 피하기 위해 아버지의 무덤은 아리아드 바다 한가운데 세워졌다고 했다. 영정사진 속의 아버지는 마치 고통을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순진하게 웃고 있었다. 마브라이는 자신이 죽은 뒤에도 함정을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장례식을 마치는 대로 그는 모로코로 돌아가고 싶었다. 카펫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무슬림이 알라에게 경배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몇 십 년이 걸릴지 모를 도제교육을 마치는 대로 고향으로 돌아와서 카펫 공방을 차릴 계획이었는데 아버지의 무모한 공명심 때문에 마브라이의 꿈은 산산이 파괴되고 말았다. 귀국을 말리던 스승과 동료들의 걱정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걸 이제야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만약 자식의 미래를 걱정했던 아버지였다면, 큰아들이 모로코의 카펫 공방에서 하루에 스무 시간씩 일하여 송금해 준 돈을 미할 집안의 남자들에게 모두 빼앗겼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직접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경찰이나 마피아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밖에 없었다면 그 즉시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용서를 구했거나, 미할 집안에 소속된 사람들을 모조리 없애 후환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제 자식을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마당에서 장작을 패다가 미할 집안에서 날아온 총탄에 절명하면서 가족들에게 자신의 복수를 요구했다. 그는 떳떳하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용감하고 명예로운 행동이라는 사실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일 의지도 거의 없었다. 공산정권 시절에는 인종이나 민족의 개념도 없었고 소유와 분배를 두고 다투지도 않았다. 카눈Kanun의 전통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어서 이웃을 죽인 살인자들도 감옥이나 협동농장에서 죗값을 성실하게 치르고 나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어쩌면 마브라이의 아버지 역시 그런 결말을 낙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이 떠난 자리를 마피아들이 차지한 이후로 선량한 사람들이 정당한 처벌과 진정한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는 무슬림의 관습법을 부활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미할 집안의 사람들은 주장했다. 다행히 할머니의 기지 덕분에 마브라이의 가족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고향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시골에 숨어든 이후에도 그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지하 감옥에서 보내면서 복수의 전통에 저항하고 있다. 마브라이가 굳이 새벽에 빵을 만드는 까닭도 미할 집안의 남자들이 잠들고 있는 사이에 그걸 이웃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브라이는 첫 번째로 구워진 빵들을 쟁반에 받쳐 들고 집 안을 돌며 알라의 뜻을 전한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이미 잠자리에서 일어나 예배 준비를 끝냈다. 늘 허기져 있는 동생들은 구수한 빵 냄새가 꿈과 현실 중 어느 쪽에서 나는지 구분하지 못하여 잠자리 주변을 서성거린다. 좁은 집에 살면서도 굳이 가족들이 한 방에 모여 잠들지 않는 까닭은 최악의 상황에서 가능한 한 많은 생존자를 구해 내기 위함이다. 죽은 아버지가 깨어나 복수를 채근하지 못하게 하려고 마브라이는 발소리를 죽이며 걸었다.
    그런데 흰 실과 검은 실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시간이 되었는데도 첫째 여동생이 평소와는 달리 부엌에 나타나지 않았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방마다 촛불을 켜고 샅샅이 뒤져 보았으나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마브라이가 모로코에서 그녀의 생일선물로 보내준 은 접시와 찻잔 세트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비몽사몽간에 꿈의 입구를 잘못 찾은 게 아니라면 대리모 노릇이라도 자청하기 위해 제 발로 미할 가문을 찾아갔을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마브라이의 빵을 토끼처럼 조금씩 뜯어 먹으면서, 가문 사이의 악연을 풀려면 전쟁이 아니라 결혼이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끝〉

 

 

 

 

 

 

 

 

 

 

 

 

 

 

 

김솔

작가소개 / 김솔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 번째』, 『망상,어語』, 장편소설 『너도밤나무 바이러스』, 『보편적 정신』, 『마카로니 프로젝트』, 『모든 곳에 존재하는 로마니의 황제 퀴에크』 출간. 제3회 문지문학상·제22회 김준성문학상·제7회 젊은작가상수상.

 

   《문장웹진 2019년 10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