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 드리머 외 1편

[신작시]

 

 

루시드 드리머

 

 

김하늘

 

 

 

    포궁胞宮에 따뜻한 물이 고이는 걸 느꼈어
    그림자도 가지지 못한 생명이
    가난한 의지를 가지고 살아갈 때
    의도한 무수한 미래들은
    나에게 슬픈 일이 벌어질 거라는
    작은 예감을 던져 주고 갔어
    나를 지탱하는 작은 숨,
    가위로 잘라내지 못한 삶,
    불규칙적으로 추출되는 꿈, 모두
    내가 아는 이야긴데

 

    자꾸만 증식하는 살덩이가
    나를 갉아먹고 있을 때
    그것을 몰래 사랑하는 일
    어쩌면 가장된 애정으로,
    신음을 내면서 내게로 걸어 들어오면,
    잠시 내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고,
    슬픔의 언어로 꿈의 삶을 낱낱이 기억하며,
    몇 번이나 더 응원해야 하는지
    또는
    네가 썩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며
    이마에 우표를 붙이고 어딘가로 배달되는
    너를 유실함으로써,
    알 수 없는 기원을 느껴

 

    잘 아는 얼굴이었다가도
    자꾸만 뚱뚱해지는 기억 속에서
    너의 기분을 점점 잊어 가는 그 나날들
    겁먹은 고양이처럼 네 앞에서 화를 내다가
    발가벗은 나의 나체에서
    네가 다시 탄생하고 있다는 것,
    아무도 모르는 소문이 되어 가고 있을 때
    나는 희미한 얼굴들에게서
    너의 모습을 찾기 위해 아등바등
    이 꿈속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 너무 많아
    흔쾌히 신호를 보내지 않는 너를
    애써 미워했다가,
    난감한 자세로 안아 주기 위해

 

    아직 남아 있는 여분의 꿈에서
    반드시 너를 데려오기 위해
    빈집마다 창을 두드리며 볕을 내어주었지
    모르는 밤마다 골고루 곪아 가던 너를,
    마음대로 부르지 않겠다던 약속
    네가 오래 보이지 않으면
    고요히 되새기는 걱정들
    모두 내게로 돌아와 박히는 화살
    너의 시작은 후회였으나
    나의 끝은
    열 번도 더 꾼 꿈이었구나

 

    꿈이면
    상실하는 것이 익숙할 줄 알았지

 

 

 

 

 

 

 

 

 

 

 

 

 

 

미물

 

 

 

 

    손가락 하나를 걸고
    우리는 약속했지
    작은 먼지처럼 살겠다고,
    이름 모를 잎사귀가 되겠다고,
    턱이 낮은 우물처럼 가까워지겠다고,
    어떤 소용도 없을 무언가가 되어
    인간의 기교를 버리겠다고,
    아주 유의미한 이 욕구는
    그렇게 개역되었다
    내 안의 마음이 소실로 가득 찼을 때
    온전히 너를 다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너무 늦게 깨달았을까

 

    땀 많은 손을 내밀었을 때
    그 땀의 온도만큼 뜨거웠던 너의 더운 숨
    잘 아는 노랫말처럼 당연했던 그 기색,
    우리는 이보다 더 허무해져야 해
    닳고 닳은 돌처럼,
    돌의 구실도 못 하는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완전한 미래를
    미리 사는 느낌이 들어
    손에 익은 건반을 악보도 없이 치는
    그런 유려한 삶에서,
    몇 번인가 우리는 다시 아름답게 빚어지고,
    수많은 밤낮을 오래오래 견디며
    우리는 웃었어

 

    굴러다니는 술병에 남은 진득한 액체처럼
    내 삶도 아무 곳에서나 벌어졌지
    내가 침묵하는 사이 네가 다가왔고
    나의 침묵과 너의 침묵이 만나
    눈썹 위로 차곡차곡 쌓이던 어느 날
    마음의 열도는 다시 붐해졌어
    매 순간 새로 하는 다짐처럼, 또 우리를
    아무것도 아니게 하는 첫 마음이
    과연 이곳으로 인도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이 계절에도 흰 그늘이 있어
    우리가 짧게 쉬어갔던 걸까

 

    사실 모두와 공존하고 있지만,
    작은 틈새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에 대해
    아무도 골똘해지지 않을 거야
    마음에 작은 선인장 하나쯤 품고 사는 것도
    그럭저럭 살 만해
    메마른 삶에서 더욱 죽지 않는 숨결
    단비가 없어도 무섭게 사랑하고
    자신의 마음을 독려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삶
    고둥처럼 속을 까발리면
    더욱 별 볼일 없는,
    매일 처음 사는 느낌으로
    우리는 하나의 장면에 갇힌다

 

 

 

 

 

 

 

 

 

 

 

 

 

 

김하늘 작가소개 / 김하늘

1985년 대구 출생. 2012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으로 『샴토마토』가 있음.

 

   《문장웹진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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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김하늘 시인님 샴토마토 읽고 시 읽는 게 권태로웠는데 너무 즐거워졌어요!! 진짜 문장 웹진으로 김하늘 시인님 작품 올라와서 너무 행복해요ㅠㅠ 문장웹진 최고… 김하늘 시인님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