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클 외 1편

[신작시]

 

 

서클

 

 

오은경

 

 

 

    네가 네 입으로 말했지

 

    오물거리는 입술로
    더위 속에서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며
    나를 떠날 거라고 네가 떠나겠다고
    하지만 내게 다른 선택권은 없는 것 같았어 전에
    만나던 사람과 함께 있었으니까 단 하루였지만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으리라는 건 알고 있었지

 

    나는 더는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꿀 먹은 벙어리 같은 네 표정을 돌려놓기 어렵겠지만 노력할 거야 봐봐,

 

    사납게 짖던 도베르만은 흔적도 목줄을 잡아 두던 쐐기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는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데 네가 만족하려면 나는
    얼마나 여기 더 머물러 있어야 해? 믿음이라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이기에 네가   
    떠나는 거야?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리까지 가버리면

 

    나는 누군가 다른 사람을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   
    너와 만났던 나는 누구이고 다른 사람들은 다 정체가 뭐야? 내가 누군가가 되었던 것처럼
    너도 나를 이해해 줄 순 없었어? 너는 왜

 

    나랑 만난 거야? 나는 너를 보고 겁내지 않았지 그때
    우리는 단둘이었잖아

 

 

 

 

 

 

 

 

 

 

 

 

 

 

자각몽

 

 

 

 

    네가 곁에 없었을 때
    나는 잠만 잤어
    널 편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네가 이렇게 빨리 올지 몰라서 아니, 이번에도 내가 잘못한 거지 뭐
    무슨 변명을 더 할 수 있겠어

 

    조금도 기쁘지 않았어

 

    그래도 재밌었잖아 내가 봤어 너 좋아하는 거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눈 안에 속눈썹이 들어간 것 같은데
    좀 불어 줄래? 이리로 가까이 와서
    같이 누울래?
    너는 나를 이해하지? 그래서지?
    이야기를 듣고 나눌 상대가 필요했던 거잖아 그게 나였고
    너였으니

 

    이불을 덮어 줄 사람1)이 부족했던 거구나   
    추위를 견디며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원망할 자신이 더는 없었으니까
    나는 주위를 배회했어
    누구도 나를 좋아할 것 같지 않았는데 너는 여기에 있어 전과 같은 자세로

 

    눈을 감고 있었을 때는
    어떤 꿈을 주로 꿔?

 

    네가 등장하지 않는 너의 꿈

  1)  이부자리를 펴고 잠자리에 들면 아무도 당신에게 이불을 덮어 주러 오지 않을 것입니다. 질 들뢰즈, 클레르 파르네, 〈디알로그〉 중에서.

 

 

 

 

 

 

 

 

 

 

 

 

 

 

오은경

작가소개 / 오은경

1992년 광주광역시 출생. 2017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문장웹진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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