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의 풀을 뽑다 외 1편

[신작시]

 

 

마당의 풀을 뽑다

 

 

이상국

 

 

 

    1908년 옥천에서 태어난 김기림은
    도호쿠 대학을 나와 시인이 되었다
    바다를 청보리밭으로 알았다거나
    무슨 산맥들이 아라비아 옷을 입었다든지 하는
    구라파풍의 시를 남기고 북으로 붙들려 갔다
    같은 해 양양에서 태어난 나의 아버지는 시골 유생으로
    필사본 만세력과 주역을 가지고 담배벌이를 하거나
    비오는 날 공회당에서 자아비판을 했고
    세필 끄트머리에 침을 발라 가며
    나에게 축문 쓰는 법을 가르쳤다
    김기림은 북조선에서 인민으로 죽었고
    아버지는 수복지구에서 촌부로 생을 마치는 동안
    자빠지고 엎어지고 그 사이가 백 년이 넘었다
    시인은 넘쳐나고 노래는 많아도
    아버지가 부르던 학도가를 나는 지금도 부른다
    사회진보 깃대 앞에 개량된 자 임무가 중하다지만
    봄은 짧고 나라는 힘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민은 죽어나고
    그렇게 개고생한 아버지들은 가고
    아무것도 아닌 아들만 남았다
    북에 있는 김기림의 아들은 뭘 하며 사는지
    며칠째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은 날
    마당의 풀을 뽑다가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멸치와 맥주

– 이승훈 시인 생각

 

 

 

 

    그가 비 내리는 북천을 등에 지고
    맥주를 홀짝이고 있을 때
    의자다리 같은 몇 개의 말이 겨우 그를 받쳐 주고 있었는데

 

    그의 事物들이 나중에 불립문자와 내통하는 것을
    나는 일종의 불륜처럼 생각했다
    볼장다봤거나 타락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결국 禪에게 속았거나 선이 속은 것이다
    그러나 못 속는 게 바보다

 

    이형 공양간에 맥주랑 멸치 있겠지요?
    그럼요 禪 속에 뭐가 없겠어요!

 

    젊은 이성선도 살아 있었고
    겨울 속초에서 처음 만난 그는 검은 가죽가방을 들고
    면도날처럼 새파란 시인이었다
    비 오는 날 파키스탄풍의 모자를 쓰고
    30여 년의 말들이 오늘은 북천을 흘러간다

 

    굳이 문자로 표현하자면 그는 돌아갔다
    이것은 사람이 세상에 없다는 비유이다
    그에겐 다행이다
    더는 말에게 멱살을 잡히거나
    아부할 이유도 없고
    사랑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
    고백하건대 나도 이제 말은 지긋지긋하다

 

    말과 이별할 무렵 그는
    맥주와 구부정한 멸치교에 입문했다
    나는 그때 그가 더 좋았다

 

    사람은 어딘가 약해 보일 때가 좋은 것이다
    내가 이 시를 쓰는 건 그에게
    이 말을 전하기 위해서다

 

 

 

 

 

 

 

 

 

 

 

 

 

 

이상국

작가소개 / 이상국

강원도 양양 출생. 1976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뿔을 적시며』 『달은 아직 그 달이다』 외. 백석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수상.

 

   《문장웹진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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