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생산 외 1편

[신작시]

 

 

비생산

 

 

안미옥

 

 

 

    *
    들어 봐
    이제부터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할 거야

 

    중요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시작되지 내가 어제 혼자 거실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

 

    열쇠를 돌리는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는 계속될 수 있다 계속되다가 다른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다

 

    아무도 없어도 계속될 수 있다

 

    유리 안에 든 모래 알갱이가 하나씩 떨어지다가
    시간을 알게 해주듯이

 

    *
    빈 유리병에 깃털을 담는다

 

    그러니까 걸어 다니면서 깃털을 하나씩 줍고 있었던 거야 이건 모두 내가 지나온 길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당나귀의 꼬리에는 새빨간 깃털 당나귀는 꼬리털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꼬리털이 새빨간 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당나귀는 이제 꼬리를 어떻게 할까
    유리병이 붉은 깃털로 다 채워질 때까지
    내가 궁금한 것은 그것

 

    *
    그것은 넘어지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끝이 아니니까

 

    *
    너는 울며불며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모두가 주목할 수 있도록

 

    그 순간을 참아

 

    도려내고 싶은 말들은 언제나
    참았다 한꺼번에 내뱉은 말들

 

    아무도 주의 깊게 듣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모두 그것만 기억하지

 

    *
    내가 가진 것을 줄게
    너는 내 얼굴을 향하여 두 손바닥을 펼치고
    온 힘을 다해 준다

 

    받는 것을 할 줄 알아? 너는 알 거야

 

    목소리를 향하여 나는 그것을 받는다 빈 손바닥에서 빈 얼굴로 전해지는 것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건 다 테두리다

 

    끝에 가선 다른 이야기가 될 거야

 

    우리는 느리게 듣고 있다

 

 

 

 

 

 

 

 

 

 

 

 

 

 

누군가의 현관

 

 

 

 

    현관문 앞에 서서
    왜 끔찍한 이야기를 일상처럼 이야기해

 

    내가 아주 오랫동안
    여자 아이였을 때

 

    모퉁이를 아무리 돌아도 숨을 곳이 없었다
    어둠이 이렇게 밝다

 

    둘 곳이 없어
    문밖에 세워 둔 가구처럼
    오늘은 과거로 가득한 하루

 

    실마리라고 생각해서 잡아당겼는데
    더 꽁꽁 묶어버렸다

 

    옛날 일과 만나는 순간에
    내가 숨고 싶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를 의심하느라 시간을 발에 쏟고 있었고

 

    왜 그를 무서워해서
    그에게 힘을 부여하니

 

    매일 조금씩 비틀어지는 뼈
    그러니까

 

    나는 지겹고
    우리는 괜찮다

 

    사람들은 비둘기를 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혼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안미옥

작가소개 / 안미옥

2012년 《동아일보》로 등단했다. 시집 『온』이 있다.

 

   《문장웹진 201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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