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멀미와 함께 살아가는 법

〔글틴스페셜〕

 

 

우주 멀미와 함께 살아가는 법

 

 

전혜진

 

 

 

    머릿속에서 불꽃이 튀었다. 내 귓속에서 두근두근, 심장 뛰는 소리가 묵직하게 울려 왔다. 마치 동맥에서 주먹이 튀어나와 고막을 직접 두드리는 것처럼. 머리가 어질거렸다. 그리고 귀 안쪽부터 부어올라 귓속이 꽉꽉 차오르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려고 애쓰자 머릿속이 빙빙 돌았다. 속이 메스껍다 싶더니 바로 구역질이 올라왔다.
    이건 일종의 멀미다. 아주 지독한 멀미.
    배를 타고 폭풍이 휘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로 나간 것도 아닌데. 버스를 타고 산꼭대기에서부터 전력질주로 내려오는 것도 아니고, 우주정거장에 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멀쩡히 지상에 두 발을 붙인 채 가만히 있다가도 갑자기 지독한 멀미에 시달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혀를 차며 말씀하셨다.
    – 무녀리 같으니, 저걸 어디다 쓰겠나.
    무녀리,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두 번째 뜻은 "말이나 행동이 좀 모자란 듯이 보이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다. 한 마디로 나는, 모자란 놈이라 이렇게 만날 길바닥에서 멀미를 한다. 할머니의 말씀은 그런 식이었다.
    "또 쟤야? 지난번에도 저러지 않았어?"
    귓속이 웅웅 울렸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같은 반 아이들의 말 몇 마디가 귓바퀴를 치듯이 지나갔다.
    "뭐가 문제야? 어디 아프대?"
    "몰라. 꾀병 아니야?"
    예전에 엄마가 그런 말을 했다. 임신을 하면 입덧을 하는데, 사람마다 증상은 다르지만, 그 입덧이라는 건 대체로 끝나지 않는 멀미 같은 거라고. 그리고 엄마 생각에 그 입덧 중에서 가장 심한 것은 역시 우주 멀미와 겹쳐진 입덧이라고 했다.
    남들은 임신을 하면 하던 일도 멈추고 매사에 조심을 한다는데, 용감무쌍한 우리 엄마는 그만 나를 임신한 채로, 뻔히 알면서도 우주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우주 멀미에 우주 입덧까지 이중고에 시달렸다지. 내가 이런 멀미로 고통스러워하면, 엄마는 내 등을 쓸며 그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솔직히 그 이야기는 내겐 요만큼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우웩……."
    하다못해 우주에서 입덧을 했다는 우리 엄마에게는 붙잡고 토할 종이봉지라도 있었겠지. 지금의 내겐 그런 것도 없다. 토하고 싶으면 화장실에 가야 하지만, 비척비척 달려가다가 바닥에 나자빠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바닥을 밟으나 허공을 밟으나, 내겐 어느 쪽도 허방다리 같았다. 나는 그저 손목에 찬 팔찌에 달아 놓은 비상버튼을 꾹 눌렀다. 그리고 그 자리에 최대한 안전하게 주저앉았다. 혹시라도 넘어지면서 다치지나 않을까, 두 팔과 손으로 머리를 감싸면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전부였다.

 

    ***

 

    "일어났어?"
    눈을 뜨자, '또 여기냐?' 싶을 만큼 익숙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 익숙한 목소리까지 더해지자 다른 모든 문제를 제쳐놓고 먼저 쪽팔리고 번거롭다는 생각이 앞섰다.
    "이야, 넌 어떻게 1년에 딱 두 번 수업 들으러 오면서, 어떻게 그때마다 멀미를 해요. 이쯤 되면 꾀병 아니냐고 내가 묻고 싶어지잖아."
    "아닌 것 아시면서 놀리지 마세요."
    나는 보건쌤의 목소리에 겨우 대답했다. 눈앞은 여전히 흔들거렸고 목덜미가 식은땀으로 눅눅해져 있었다. 그래도 침대에 누워 있어서 그런지 견딜 만했다.
    "힘들어 죽겠다고요. 멀쩡한 사람이 눈 감으면 어디가 위인지 어디가 바닥인지 분간이 안 가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아세요. 쌤까지 놀리면 정말 화낼 거예요."
    "어이쿠, 무서워라."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한 학기에 2주씩 1년에 총 한 달 동안 들어야 하는 출석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나올 수 있는 건 순전히 보건쌤 덕분이다. 보건쌤은 엄마 친구인데, 근처에 살아서 수시로 우리 집에 놀러 와서는 엄마와 서로 헐뜯고 놀다가 싸우고 돌아간다. 그럴 때 보면 대체 몇 살이신지 물어보고 싶어진다. 엄마 말씀으로는 학교 다닐 때부터 심심하면 싸우는 사이였다고 했다. 그런 데다 그때는 한 학기에 넉 달 반 이상, 그렇게 두 학기 하고도 한 달을 더 학교에 나와야 했다니까, 정말 무시무시하게 싸우는 사이였을 거다. 아니면 무척 친한 친구였을지도 모르고.
    "이야, 넌 네 엄마에게, 딴사람은 몰라도 자기 기저귀를 갈아 준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소리도 못 들었어?"
    그때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맑은 목소리였다. 귀에 익은 목소리. 하지만 대화를 해본 적은 없는, 그저 듣기만 해서 내게는 배경음악 같은 그런 목소리가, 키득키득 웃으며 보건쌤과 말을 섞고 있었다.
    "쌤 쟤 기저귀도 갈아 줬어요?"
    "어어, 그럼."
    "……많이 아프긴 아픈가 보네."
    잠깐, 쟤는 또 누구야.
    그리고 기저귀는, 그건 발달센터도 다니기 전의 일이라고. 지금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거야!
    "아, 쌤! 지금 무슨 말을……!"
    나는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바로 눈앞이 빙빙 돌았다. 뻔히 눈으로 보면서도,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나는 침대 난간에 겨우 매달렸다. 그리고 머리를 왼쪽 오른쪽으로 주억거렸다. 내 침대로 발걸음 소리들이 다가왔다. 한쪽은 익숙한 슬리퍼 소리, 다른 쪽은 운동화를 끌며 걸어오는 소리. 그 소리들이, 내 심장이 마구 뛰는 소리와 뒤섞여 귓속에서 쨍하게 울렸다. 보건쌤의 손이 내 팔을 잡았다. 나는 숨을 헐떡이다가, 차라리 눈을 질끈 감은 채 외쳤다.
    "정말 싫어!"
    "싫은 건 싫은 거고, 넌 왜 가만히 있다가 침대에서 떨어지려고 그래."
    그리고 운동화를 신은 아이가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보건쌤이 이끄는 대로 침대에 누웠다가, 실눈만 겨우 뜬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쟤 왜 저러는 거예요? 아, 혹시 메니에르 병인가 하는 그런 거예요?"
    "아냐, 멀미야. 메니에르 병은 어떻게 알아?"
    "고모가 전에 가만히 있어도 멀미가 난다면서 병원에 갔거든요. 그럼 쟨 뭐예요? 설마 불치병?"
    "20세기야 뭐야, 우리 반 애가 불치병으로 쓰러졌어요 그러려고?"
    보건쌤이 피식피식 웃었다. 나는 뗏목을 탄 채 풍랑을 만난 것 같은 기분으로 보건실 침대에 매달린 채, 눈만 굴려 보건쌤과 그 애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 친구의 명예를 위해 말하자면, 나는 얘가 학교에 입학한 이후로는 한 번도 기저귀를 갈아 준 적이 없어."
    "……학교가 아니라 발달센터 다닐 때도 기저귀는 안 찼어요."
    나는 중얼거렸다.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차라리 눈 딱 감고 도망이라도 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어지럽고 제대로 균형을 잡을 수가 없어서 도망조차 칠 수 없다. 그때 보건쌤의 서늘한 손이 내 이마를 덮었다.
    "너 그러고 보니, 슬슬 생리할 때 되지 않았어? 시작은 했니?"
    "……사생활이거든요."
    "엄마하고도 의논해 보고, 산부인과에도 가보든가. 아니다, 아예 NASA쪽 병원에 가서 물어보는 게 나을 수도 있겠네. 네 귀 말이야."
    "생리랑 이게 왜요."
    "그게, 아까 얘가 메니에르 이야기를 해서 말인데."
    보건쌤은 바퀴가 달린 둥근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나는 눈만 돌려 보건쌤을 바라보았다.
    "귀가 소리만 듣는 기관이 아니지. 그 안쪽을 내이라고 하잖아. 그 안에 달팽이관이니 세반고리관이니 전정기관이 있고. 생물 시간에 배웠지? 근데 이 전정기관 안에는 림프액이 차 있어요. 그 안에 이석이라는 게 있고. 세반고리관 안에도 림프액이 있고."
    보건쌤은 설명을 하다가 늘어져라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했다. 운동화를 신은 아이는 어느새 내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주 간단히 말하면 메니에르 병은 이 림프액이 순환이 안 되어서 내이가 붓는 바람에 어지러운 거야. 이석증이라는 건 이석이 제자리에서 떨어져서 엉뚱한 데를 건드리거나 하는 것이고. 그런데 둘 다 호르몬하고 관련이 있다는 것 같지. 중년에, 주로 갱년기 여성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걸 보면……."
    나는 눈을 감으며 투덜거렸다.
    "사춘기랑 갱년기가 같아요?"
    "야, 일단 이석증은 의외로 여성호르몬하고 관련이 있어요. 넌 사람을 돌팔이로만 보지 말고…… 아니다, 내가 너한테 말해서 뭐 하겠냐."
    보건쌤은 바로 광대뼈를 손끝으로 툭툭 치더니 엄마에게 참으로 다정하게도 전화를 걸었다.
    "야, 뭐 해. 바빠? 바쁘긴 개뿔. 당장 튀어 와서 말 더럽게 안 들어먹는 네 딸내미 병원이나 좀 데려가라. 또 쓰러졌다. 또 쓰러졌어."

 

    ***

 

    "<도천수관음가>는 신라 경덕왕 때 희명이 쓴 10구체의 향가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 노래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신라 경덕왕 때 서라벌 한기리에 사는 여인 희명의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갑자기 눈이 멀었다. 하루는 그 어머니가 아이에게 노래를 지어, 분황사의 천수대비상 앞에서 눈을 뜨게 해달라고 빌라고 하였다……."
    교실 안에 운동화를 신은 아이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리던 것이 떠올랐다.
    밖은 더웠다. 꽉 닫힌 창문 너머로도 매미가 울어대는 것이 들려올 정도였다. 교실 안은 에어컨을 틀어 쾌적했지만, 복도 쪽은 나가기만 해도 더웠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교복의 반팔 셔츠는 땀에 젖어 등에 달라붙었다. 후추통처럼 생긴 국어 겸 부담임만이 이 교실에서 더위에서 자유로운 유일한 존재인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의 구형 캐터필러 쪽에서는 엔진의 열기가 뿜어져 나와, 그가 움직일 때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열기를 피해 다리를 움츠려야 했지만.
    말하자면 이건 학교가 아니라 학교 체험에 가깝다. 그때 그 시절, 우리의 엄마 아빠들은 이렇게 학교에 모여앉아 공부를 했었지. 공연히 어떤 부모들이 아이들을, 2차 세계대전 끝났을 무렵에나 입었을 것 같은 군복을 입히고 진흙탕에 뒹굴게 하며 "해병대 체험" 같은 것을 보내는 게 아니다. 다만 그 사설 해병대 체험은 아동학대 논란마저 나오는 일이고, 이 학교 체험, 아니, 학교의 소집 교육은 교육부에서 지시한 필수 과정이라는 차이 정도는 있겠다.
    그런 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어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으면 평생 또래 친구를 못 사귈 것 같은 아이도 있고, 심지어는 학교에 가서도 친구를 못 사귀곤 하니까. 나처럼. 아니, 그 애도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눈여겨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보고 있을 때는 늘 혼자였던 것 같았는데.
    "천수관음은 천 개의 손과 그 손바닥마다 하나씩 천 개의 눈을 지닌 보살이다. 그 앞에 합장하고 앉아 두 눈이 없는 자신에게 한 개의 눈을 줄 것을 기원하는 이 노래는, 중생들의 괴로움을 돌아보는 관세음보살에게 중생이 그저 관세음보살을 한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며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은 그 목소리를 듣고 중생을 구제해 주실 거라는 소박하고 진솔한 신앙에서 기인한다……."
    그 애는 어쩌다가 보건실에 있었던 걸까.
    병원의 둥근 통 안에서 나는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들을 떠올렸다. 내 귀 안쪽, 정확한 위치에 주사를 놓기 위해 단층촬영 장비가 빠르게 회전하며 내 머리 구조를 찍어대기 시작했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내 심장소리와 겹치며 한여름의 매미처럼 울어대기 시작했다. 맴맴맴맴. 나는 눈을 깜빡였다. 내 몸을 받치는 침대가 좁아서 나는 꽁꽁 묶인 채 우주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득 그 애가 오늘 아침 국어 시간에 향가를 읽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과거에서 미래까지 일체 중생을 구제한다는 그 보살의 자비심 때문에, 관세음보살은 천수대비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전쟁이 계속되고, 기근이 이어지고, 사람들의 생활 속에 늘 불안이 자리하던 시대에, 모든 일반 대중의 삶을 보호한다는 관세음보살은 그렇게 눈 먼 아이에게 눈을 주고, 아이를 원하는 부부에게 아이를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분황사에는 지금 관세음보살은커녕 절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절 안마당에는 그저 덩그러니 석탑 하나만 남아 있다. 나는 문득 그 절이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생각했다. 눈 먼 아이들은 누구에게 의지하지. 자비를 구하는 중생은 누구의 이름을 불러야 하지. 나는 기약 없이, 대답을 구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던 사람을 떠올렸다.
    묵직하게 속이 쓰라렸다.

 

    ***

 

    "엊그제 봤을 때는 죽을 줄 알았는데, 살아 있네?"
    그 애를 다시 만난 건 다음다음 날이었다.
    나는 그 애를 흘끔 쳐다보았다. 머릿속이 흔들리지 않는 지금 보니 누군지 알겠다. 만날 저 뒤쪽에서 혼자 밥 먹는 애. 다리가 조금 불편해서 늘 운동화를 찍찍 끌며 다닌다. 그리고 목소리가 예쁘지. 국어 시간에 책을 읽는 목소리가 유난히 낭랑하다. 이름이 뭔지, 어떤 아이인지, 그런 것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와는 상관없다. 나는 밀어내듯 대꾸했다.
    "시비 걸려거든 가."
    "야, 우리 밥이나 같이 먹자. 이렇게 알게 된 것도 인연인데."
    "……야, 너 여기 입학해서 쭉 다닌 거야?"
    "어. 너는?"
    "그럼 우린 지금 계속 같은 반이었던 건데. 그럼 우리가 몇 년째 한 반인 거야, 이게……."
    나는 그 애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목소리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었다.
    한 마디로 우리는 둘 다 친구 없이 조용한 애들이었다. 같은 반에서 몇 년을 지내도 접점이라는 게 거의 없을 만큼.
    "근데 왜 갑자기 친한 척이야."
    "야, 보건은 그때 회의 들어갔고 딴 애들 다 보고만 있어서 내가 너 업어다가 보건실로 갔잖아. 기억 안 나?"
    솔직히 말하면 기억이 안 난다. 한번 어지럼증이 시작되면 말이다. 그리고 귓속이 붓고, 토할 것 같고, 어디가 바닥인지 어디가 위쪽인지, 이럴 때는 천지가 분간이 가지 않고, 바닥이 어디인지 몰라서 무섭고, 울고 싶고, 죽고 싶어진다. 이래서야 누가 생명의 은인이라고 해도 기억할 수 있을 리 없다.
    "근데 넌 학교 다닌 게 몇 년인데, 누구랑 밥 먹는 건 처음 본다?"
    "너도 없잖아."
    그 애와 나는 서로를 쿡쿡 찔러 보듯 한 마디씩 주고받으며 학교 식당으로 향했다.
    1년에 2주씩 두 번 학교에서 보는 게 고작이라고 해도, 외향적인 아이들은 친구를 요령껏 잘 사귀고 다닌다. 아무리 학교에서 보는 날이 며칠 안 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같은 반 아이들이란 대체로 한 동네 아이들이다. 그러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같이 다닌 아이들도 있고, 또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오자마자 친구들을 사귀어서 학교에 안 갈 때에도 늘 찰떡들같이 붙어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의무교육을 마친 뒤에도 계속 친구로 남기도 한다니 그야말로 평생친구라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그게 잘 안 된다. 몇 번인가 노력을 해보긴 했지만, 조금 가까워지는 것 같다가도 발작이 일어나면 말짱 헛것이었다. 그런 일에 얽히고 싶은 아이들은 없으니까. 내가 학교에서 쓰러지거나 할 때마다 '저 애의 친구'라는 명목으로 끌려 다니며 수발을 들고 싶진 않을 테니까. 그러니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멀어졌다. 얽히지 말자고, 번거로우니까 가까이 가지 말자고. 그리고 조금 지나자, 아이들은 내가 누구인지 곧 알게 되었다. 그 애들에게는 소소한 뒷담화라도 내겐 신상이 탈탈 털리는 그런 기분이 드는 일이었지만.
    "나, 너 아기 때 영상 봤어."
    식판을 들고 오며, 운동화를 신은 아이가 내게 소곤거렸다. 나는 조금 허세를 부리듯 어깨만 한 번 으쓱하고 말았다.
    부모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아이의 영상은 아이가 일정 나이가 되면 비공개로 처리된다. 하지만 뉴스 같은 데 나온 건 다르다. 그런 건 기록되고 남겨지고 계속 검색되니까.
    "너, 우주에서 태어났다며."
    임신한 상태로 우주에 나간 과학자가 우주에서 낳은 아이. 인류 역사상 우주에서 태어난 첫 번째 아이. 스페이스 차일드. 뭐 그런 거창하고 남부끄러운 수식어들이 덜 닦인 태지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는, 생후 일주일에 뉴스에 나왔던 내 모습. 이젠 슬슬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그래도 들을 때마다 진땀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삼중고로만 기억되는 헬렌 켈러처럼 내가 살면서 무슨 업적을 세우든 사람들은 나를 스페이스 차일드라고만 부를지도 모른다.
    "별거 아냐, 그냥 실험이었어. 실험용 무균돼지 같은 거."
    나는 대충 무심한 척 대꾸하다, 문득 무녀리라는 말을 다시 떠올렸다. 사전에 붙어 있는 예문에는, 처음으로 태어난 새끼돼지가 체구가 작고 경쟁에서 뒤처졌더라는 이야기가 나와 있었다. 잠깐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겠지만, 뭔가 부족한, 뭔가 모자란, 그런 아이.
    나도 마찬가지다. 그 뉴스가 나올 때만큼은, 나는 인류의 미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비실하고 변변치 못한, 제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실패작. 나는 그저 무녀리에 불과했다.
    "실패한 실험이지만 말야."
    나는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입가만 당겨 가며 웃는 모양을 만들어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식판에 담긴 점심밥이 영 맛이 없어서야. 웃음이 나오지 않을 만큼 맛대가리가 없어서, 그래서 내가 이런 되다 만 표정을 짓는 거야. 나는 이 돼먹지 못하게 못생긴 웃음에 이유를 만들어 붙이려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이유를 갖다 대어도, 뱃속에서부터 쓰디쓴 무언가가 거꾸로 올라오는 듯한 느낌만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내가 모자라서 그래. 덜떨어진 애라서."
    "……혹시 네가 아픈 것도, 우주에서 태어난 것 때문이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너 이후로 우주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없는 것도……?"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의자 등받이에 견갑골을 댄 채 발로 바닥을 밀었다. 낡은 의자에서 끼이익, 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아마 그런 것 같아."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사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 아니, 우리 엄마가 태어나기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옛날에 말야. NASA에서 우주로 로켓을 발사하면서 송사리들을 같이 보냈대. 근데 송사리 중에 몇 마리가 우주에서 태어났나 봐. 너, 송사리가 헤엄칠 때 어떻게 하는지 혹시 알아?"
    "글쎄? 아, 부레에 공기를 넣는다던가? 스쿠버다이빙 할 때처럼?"
    "스쿠버는 안 해봐서 모르겠고, 네 말대로 호흡할 때는 부레에 공기를 넣고, 가라앉을 때는 빼고 한다더라. 근데 우주에서 태어나서 자란 송사리들은 부레를 쓸 줄 몰랐대. 우주에서는 위아래가 없으니까, 부레에 공기를 넣는다고 떠오르지 않으니까."
    "그럼 어떻게 되었는데?"
    "몰라. 지구에 와서 헤엄을 제대로 못 쳤대."
    그나마 송사리는 부레가 아주 사라진 건 아니었다.
    역시 1991년이었나. 옛날에, 저 미 항공우주국, 통칭 NASA에서는 이번에는 해파리를 우주로 보냈다고 한다. 몇 마리였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천 마리가 훨씬 넘게, 많이. 그 우주 해파리들은 우주에서 번식을 하고, 태어나고 살고 죽었다.
    나는 그 해파리들과 그 후손들의 운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 천 마리가 넘는 해파리들이 모두 죽은 뒤에도, 그 후손들은 계속 번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우주 해파리의 자손들이 살고 있는 수조에 중력을 만들어주자마자 해파리들은 제대로 헤엄을 치지 못했다. 떠올라야 할 상황에서 가라앉거나 방향감각을 잃어버렸고 제자리에서 맴을 돌기도 했다. 마치 나처럼.
    나는 그 다큐멘터리를 본 이후로 종종 아쿠아리움에 갔다. 얕은 물가부터 깊은 바다 속까지, 물속 생물들을 보여주는 수조들을 여러 개 지나 걷다 보면, 사방이 유리 수조로 된 어둑한 동굴 같은 방과 마주하게 되곤 했다.
    그곳에서 나는 조용히 이 해파리들을 바라보곤 했다.
    몽환적인 조명 아래 둥글게 피어나는 보름달물해파리, 긴 촉수가 물에 번져 그대로 주홍빛으로 녹아내리는 듯한 붉은쐐기해파리, 반짝거리는 빗해파리. 중력 따윈 느끼지 못하는 듯 수조 안을 너울너울 춤추듯 움직이는 해파리들을 꿈에 잠긴 듯 바라보며, 나는 늘 우주를 생각했다. 내가 태어난 곳은 혹시 저런 곳이었을까, 하고.
    오직 그곳만이 내겐 고향 같았다.
    '그건 내가 할머니 말씀대로 무녀리이기 때문일까.'
    그 어둠 속에서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해파리들을 바라보고 돌아설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뭔가 부족한 건 아닐까. 모자란 건 아닐까. 그래서 인류 역사상 최초로 우주에서 태어났으면서도 감히 우주를 꿈꾸지 못하고, 이 해파리들의 낙원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웅크려 앉은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우주를 갈망하기는 고사하고 이 지상에서도 제대로 서 있지 못한 채, 늘 비틀거리고 주저앉기만 했다. 나는 그런 내가 싫고도 싫어서, 자꾸만 짜증이 났다.

 

    ***

 

    "네가 어제 말한 게 뭔지 알겠어."
    운동화를 신은 그 애는 내게 말했다.
    그동안 친구를 안 사귀어서 몰랐는데, 사람은 고작 하루만에도 꽤나 친한 척을 하고 지낼 수 있는 모양이다. 심지어는 그 애나 나처럼 누가 봐도 친구 없을 것 같은 아이라고 해도.
    아니, 어쩌면 그 애는 충분히 친한 척을 할 수 있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송사리는 못 찾았고, 해파리도 그랬다며. 몸에서 중력을 감지하는 센서가 고장 난 거라고."
    "……말하자면 그렇지."
    "그래, 인간의 전정기관처럼, 해파리도 황산칼슘 결정이 몸 안에 있어서 그게 쏠리는 방향에 따라 몸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무중력 상태에서 태어난 해파리들은 그게 없었대. 그래서 방향감각이 제대로 기능을 못 해서 원하는 대로 헤엄치지 못한다고."
    나는 그 애가 떠드는 소리를 듣다 말고 눈을 딱 감았다. 그래서 뭐, 그걸 알면 우리가 친한 친구가 되기라도 한다는 거야, 뭐야.
    "……뭐, 비슷해."
    하지만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대꾸는 했다.
    "사람도 그래. 사람이 움직이면 귓속에 이석이라는 게 있어서, 이게 중력이 어느 쪽인지 감지를 한대. 또 몸을 움직이면 림프액이 따라서 움직이고……. 근데 말이야. 내 귀 안에는 이석이 없대. 그래서 가끔 주사를 맞으러 가야 해."
    "주사?"
    "응, 이석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주사. 만들어도 수시로 부서지고 없어져. 그러면 난 또 어지러워서 주저앉고 토하고 하는 거지."
    "몸에 나쁜 건 아니야?"
    "아냐. 특별히 이상한 건 아니고 칼슘이랑 뭐가 들었대. 원래 이석에 든 성분 그대로."
    사실은 엊그제 엄마 따라 병원 가서 귀찮은 이야기도 잔뜩 들었다.
    골다공증도 여성호르몬과 관련이 많은 것 아시죠. 예, 호르몬이 칼슘 대사에 영향이 있으니까요. 그게 여자들에겐 좀 더 취약하죠. 또 임신, 출산을 하면 더 심해지기도 하고. 여자 아이니까 더 신경 써야 해요. 지금으로서는 이석 주사를 더 늘리는 건 전 반대예요. 조금씩 추이를 봐 가면서 늘리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응? 병원에 자주 오기 싫다고? 그러면 어쩌나.
    어쩌긴 뭘 어쩌겠어요.
    사람이 우주에 오래 있으면 뼈와 근육이 약해진다고 한다. 지구의 중력을 늘 감당하며 살아온 인간의 몸은, 중력이 사라지면 편하게 좀 쉬는 게 아니라 기능이 퇴화된다는 것이다. 근육은 줄어들고, 뼈는 이렇게까지 튼튼할 필요가 없다며 칼슘을 배출해 골다공증이 생기기도 한다. 대충 한 달에 1% 좀 넘게 운동능력이 감소한다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 우주에서 1년 가까이 머무르다가 지구에 돌아온 과학자들이 약해진 근력으로 갑자기 지구의 중력을 맞닥뜨리며 비틀거리거나 넘어지는 등 볼썽사나운 꼴을 보이는 일도 왕왕 있었다고. 대체 사람의 몸이라는 건 뭔지. 이 얼마나 허술하게 이루어져 있는 것인지. 들을수록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우주에 있는 동안에도 몸이 퇴화되지 않도록 수시로 온몸에 전극을 붙여 자극을 주거나, 일부러 수축시켜 부하를 걸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유지되지 않는 몸. 그런 나약한 것이 인간의 몸이다.
    엄마는 우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우주 멀미 하나에서만큼은 벗어날 수 없었다고 했다. 멀미에 입덧이 더해진 우주 멀미라고 해야 할지 우주 입덧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그 무언가는, 엄마가 우주에 다녀온 흔적으로 내게 평생 따라다니는 멀미로 남았다. 나는 무녀리처럼 몸은 작고, 뭘 먹어도 토하고,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대근육이나 소근육, 다른 발달은 다 정상인데 어느 쪽이 위이고 어느 쪽이 아래인지를 알지 못해서 그렇게 비실비실 자꾸만 주저앉았다. 아주 아기였을 때는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한 친구, 또 한 친구가 목을 가누고, 손발로만 지탱한 채 몸을 들어올리고, 벽이나 소파를 잡고 기저귀를 두른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흔들며 일어나려 하고, 마침내 땅을 딛기에는 어쩐지 완벽하지 않은 듯 보이는 그 오동통한 발로 대지를 딛고 서서 걷고 뛰고 달리며 날아오르는 내내, 나는 늘 다른 아이들에게 밀려나고 주저앉는 늦된이였다.
    "우리 엄마는 말야."
    솔직히 말하면, 운동화 신은 그 애와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몇 년째 한 교실에서 얼굴 보는 사이이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며칠 전 쓰러졌을 때 그 애가 보건실까지 부축해 준 것과 어제오늘 밥 같이 먹은 것을 빼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사이.
    "내가 어릴 때 아팠을 때, 사실 NASA쪽의 의사들, 유명한 과학자들이 죄다 달려와서 날 검사하거나 했어. 아무래도 우주에서 태어난 아기 짐승들은 많이 봤어도 아기 사람은 처음이니까 말야."
    "굉장하다, 야."
    "굉장하지. 할 수만 있으면 나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얇게 포라도 떠서 해부하고 검사하고 연구하고 싶었을걸? 그렇긴 해도 그때 그 선생님들은 진짜 세계구급이긴 했을 거야.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의사 선생님들한테 사인이라도 받을 걸 하는 생각마저 드는걸."
    "너희 엄마한테 부탁하면 받을 수 있지 않아? 지금이라도 말야."
    "그건 엄마가 받아오는 거지 내가 받는 게 아니잖아."
    하지만 나는 누구에게든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가 보다.
    그러니까 왜 우주에 나가고 그랬어. 예정과 달리 임신을 했으면 우주에 나가지 말지, 지상에서 남들처럼 태교라도 하실 것이지, 왜 '이럴 때야말로 우주에서 임산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해 볼 기회'라면서 지구를 떠나고 그랬어. 나는 이 모든 것이 엄마가 나를 우주에서 낳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수많은 말들을 엄마에게 쏟아냈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많은 말들을 그저 꾸역꾸역 삼키고 있었다.
    "그런 의사 선생님들이 내 머리를 틀에 고정시키고 촬영을 하거나, 내 귀에다가 이따만 한 주삿바늘을 밀어 넣거나 했어."
    "……아팠겠다."
    "응. 근데 다들 나보고 참으라고 하더라. 이런 최고의 의료진들과 인공지능들이 널 돌봐주는데, 남들은 꿈도 못 꿀 특혜를 누리고 있는데 왜 못 참느냐고. 난 요만 한 어린애였는데. 몸도 못 가누는 어린애한테 그게 무슨 개소리야."
    내가 입을 비죽거렸다. 그 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게 특혜라고 할 것 같으면 자기들이나 그런 주사를 맞든가 말야."
    그래도 이 아이와 이야기를 하면서 한 가지 알게 된 게 있다.
    어떤 일들은 입 밖으로 꺼내 놓아야만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아무리 오랫동안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여서, 이제는 돌이 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드는 말들도 꺼내서 풀어 놓으면 흐릿하고 가벼워진다고.
    예전에 보건쌤이 나를 붙들고 그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나는 이제야 그 말이 조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말야. 절에 다니긴 하는데 완전 나이롱 신자야. 솔직히 말하면 살면서 엄마가 절 근처에라도 가는 거 두 번 봤나? 여튼 그런데."
    "아, 우리 엄마도 그래. 성당은 1년에 딱 한 번, 성탄미사 때만 가시거든."
    "너희 집은 1년에 한 번은 가네. 근데 내가 그렇게 주사 맞거나 검사 받으면서 울고 그럴 때마다 엄마가 뭔가 중얼중얼 하는 거야."
    "기도 같은 거 하셨어?"
    "어, 비슷한 것. 나중에 할머니한테 들었는데 엄마가 관세음보살을 그렇게 찾더래."
    "기도하셨네."
    "야, 난 솔직히 그게 더 짜증나는 거야. 과학자가 그게 뭐야. 뭐든 다 알아서 우주까지 다녀온 과학자면, 그것보다는 좀 더 실속 있는 일을 하셔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다고 널 두고 연구하러 가면 서운했을 거잖아."
    "아니, 그거 말고. 내가 좀 덜 아프게 어떻게든 해본다거나."
    운동화를 신은 아이가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뭐야, 너. 엄마가 대단한 과학자라고 자랑을 하든가, 욕을 하든가, 둘 중 하나만 해."
    "……과학자인데 아무것도 못 해줬으니까 더 나쁜 거야."
    나는 종알거렸다.
    어린 내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자꾸만 넘어질 때마다, 내 귀 옆에 긴 주삿바늘을 찔러 넣어 만들어도 만들어도 자꾸만 부서지고 사라지는 이석을 다시 만들어 넣을 때마다, 나는 의사들의 어깨 너머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엄마를 바라보았다.
    연구실에서는 무엇이든 다 아는 최고의 과학자였지만 내 앞에서는 모든 것이 처음이고 서툴렀던 엄마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 망가지기라도 할 것 같은 표정으로 바싹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관세음보살을 부르곤 했다.
    나는 그게 더 슬프고도 싫었다. 마치 내가, 과학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어딘가에 홀로 떨어져 버린 것 같아서. 불보살의 가피라도 빌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다고 믿어버리는 것 같아서. 아니, 즈믄 손에 즈믄 눈을 지녀 모든 중생을 들여다본다는 그 보살조차도, 내 이 고통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서. 보살의 눈동자는 이 땅 위에서 태어난 생명들을 돌보기에도 한없이 부족하여, 저 먼 우주에서 탯줄을 끊은 나에게까지는 순서가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아서.
    "다음에 말야."
    그 애가 내게 말했다.
    "너, 스쿠버다이빙 해본 적 있어?"
    그 애가 조금 쓸쓸한 얼굴로 웃었다.
    "난 말야, 내 다리가 너무 무겁거나 하면, 물속 깊이 들어가곤 해. 그러면 이게 아무 문제도 되지 않으니까. 너 혹시 안 해봤으면 같이 가보면 좋겠어.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곳들 많으니까."
    "해보고 싶은데, 그 속에서 발작을 일으키면 대책이 없잖아?"
    나는 조금 자조하듯 중얼거렸다.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몰라서, 그냥 물속으로 처박으면……."
    "그렇긴 한데…… 발작 일어났을 때 중력을 전혀 감지 못 하는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다. 약하게 느껴지고, 그게 영 익숙해지지 않을 뿐이지. 아무래도 다음에 병원에 가면 한번 물어라도 봐야 할 것 같았다. 물론 괜찮다고 하더라도, 이 아이와 함께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갈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말이다.

 

    ***

 

    한 주의 마지막 날은 수업이 일찍 끝난다. 나는 끝나자마자 가방을 챙겼다. 근데 다음 주 계획서를 나눠주고 나가려던 부담임이 나를 보고 렌즈를 깜빡였다.
    "보건 선생님께 가봐요."
    "예에."
    나는 부담임에게 고개를 끄덕해 보이며 돌아섰다. 그때 그 애가 내 어깨에 턱을 걸쳤다.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가 두 손으로 얼른 그 애를 밀어냈다.
    "같이 가자. 나도 보건쌤한테 인사나 하고 가게."
    "너하고 보건쌤, 대체 무슨 사이야?"
    "이웃사촌. 우리 옆집이야."
    그럼 얘도 우리 집 근처라는 이야기인데. 집에 갈 때 같이 가자고 해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보건실 문을 여는데, 대책 없이 달콤한 냄새가 났다.
    "야, 살았다. 마침 너희 둘 다 왔구나."
    보건쌤은 이 여름에 무슨 변덕이신지, 뜨끈뜨끈한 김을 사정없이 내뿜고 있는 빵 덩어리들을 눈앞에 둔 채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게 다 뭐예요."
    "뭐긴 뭐야. 스콘이라는 거다. 집에 가서 너희 엄마랑 나눠 먹어. 아, 너도."
    "……그러니까 이 따끈따끈하게 갓 구운 빵이 왜 이렇게 많은 건데요."
    "구웠지."
    "쌤이요?"
    "어, 그래…… 레시피대로 만들려다가 아무래도 이거 누구 코에 붙이나 해서 양을 좀 늘렸는데."
    나는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휘갈겨 쓴 글씨로 적혀 있는 레시피를 집어 들었다.
    "4인분…… 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그런데 지금 여기 있는 스콘은 적어도 스무 개가 넘어 보였다.
    대체 얼마나 많이 만든 거야.
    "내가 다 먹으려고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어. 여기 들어가는 설탕 양을 보고서."
    "쌤."
    "아, 괜찮아. 이거 버터 말고 같은 무게의 올리브유를 넣었으니까 괜찮아. 살 안 쪄."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버터나 올리브유나 지방은 1그램에 9Kcal이라고요!"
    "잠깐, 버터는 수분이 들었잖아. 올리브유는 100% 기름이고."
    "헉, 그럼 버터보다 칼로리가 더 나가는데!"
    "아니야!"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쌤은, 레시피대로 만들려다 보니 양이 적어서 많이 만들었고, 또 만들다 보니 퍼 넣는 설탕의 양이 장난이 아니라서 그걸 우리 엄마에게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다. 그런 데다.
    "야! 그래, 내가 오늘 점심시간에 학교의 전기세로 스콘을 잔뜩 구웠거든. 그래그래, 네가 낸 세금 말이지. 먹고 살쪄라. 너 다이어트 방해하려고 만든 거야. 야, 횡령? 횡령 좋아하네. 재료는 내가 사온 거거든?"
    보건쌤이 엄마랑 통화하는 내용이 참으로 심상치 않았다. 친구라면서 두 사람이 떠드는 걸 보면 마치 사이 나쁜 유치원생 둘이서 너랑 다시 안 논다며 고개를 홱홱 돌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한숨을 푹 쉬며 보건쌤이 꺼내 놓은 종이 백에 스콘들을 쓸어 담았다.
    그때 보건쌤이 전화를 끊으며 쓸데없는 말씀을 굳이 덧붙이셨다.
    "아, 너희 집에 갈 때 같은 방향이지? 쟤 말야, 우리 단지에서 길 하나 건너에 살아."
    "쌤, 그거 개인정보……."
    나는 뭔가 말하려다가 그냥 보란 듯이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같이 가자고 할 생각이었어요."
    어쩐지 보건쌤에게 아주 단단히 당한 기분이 들었다. 처치 곤란한 같은 반 아이와 처치 곤란한 스콘 한 무더기, 아니, 그 애가 든 것까지 총 두 무더기를 들고, 우리는 한여름의 열기가 이글거리는 학교 밖으로 나왔다.
    "날도 더운데 무슨 스콘이야."
    "그러게."
    우리는 버스가 언제 오는지 확인하며 투덜투덜, 보건쌤에게 당한 이야기들을 서로 꺼내 놓기 시작했다. 뭐, 간단히 말해서 뒷담화라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보건쌤 덕분에 우리가 이야기라도 하게 된 거니까, 나름대로는 은혜를 갚는 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보건쌤이 들으면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소리칠 것 같긴 했지만, 왜, 청출어람 청어람이라는 말도 있는걸.
    스콘을 잔뜩 들고 버스를 탔다가 다시 집 앞에서 내렸다. 고소하고 달콤한 갓 구운 스콘 향기만큼 수다를 떠는 것도 고소했다. 온라인으로야 언제든 이야기할 사람을 찾아볼 수 있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감각이 쏟아지는 가운데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한낮의 햇살과 더위, 편의점 사이로 새어 나오는 냉기. 발밑을 바싹 따라오는 짙은 그림자, 셔츠가 등에 달라붙는 그런 느낌들. 나는 문득 그 애와 조금 더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그건 또 뭐냐."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양산을 쓴 할머니가 독살스러운 눈빛을 감추지 못한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무녀리가 꼭 저 같은 것하고만 어울려 다니고."
    할머니는 그 애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반바지 교복의 무릎에서 발목 사이, 그 애의 하얀 운동화 위로 연결된 관절들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무례하고 무참한 시선이었다.
    할머니가 내게 그러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늘 그랬으니까. 태어났을 때부터 늘. 아니,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 싫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나는 할머니 기준으로는 늘 문제가 많았다. 할머니가 그렇게 예뻐하는 우리 엄마의 발목만 잡았다는 거다. 엄마가 결혼을 안 하고 임신한 것도, 우주비행사가 되기 직전에 두 줄이 떠버린 것도. 남들은 딸이 임신을 하면 그렇게 살피고 챙겨 주며 애지중지한다는데, 엄마가 임신한 상태로 우주에서 지낼 때의 신체 변화를 확인해 볼 기회라며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주정거장에 가서 지내는 바람에 할머니가 엄마의 산바라지를 할 기회를 놓친 것도, 전부 내 탓이라고 했다. 낳아 보니 머리가 곱슬거리고 피부색이 거무데데한 것도, 할머니의 그 귀하디귀한 딸인 엄마가 '어디 가서 써먹을 수도 없는' 장애인을 낳은 것도 다, 전부 내 잘못이라고. 내 귀에 없는 그 작은 돌조각 하나가 나를 언제나 할머니 앞에서 죄인으로 만들었던 것은 안다.
    하지만 내 친구에게까지 그러는 건 너무하잖아.
    나는 뭔가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입이 바싹 마르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그 애가 나를 붙잡으며 물었다.
    "무녀리가 왜요?"
    "……."
    "여러 마리의 짐승 새끼 중 제일 먼저 나온 새끼가 무녀리죠. 그런데 왜요?"
    그 애가 눈을 똑바로 뜨고 말했다. 나는 그 애의 입을 틀어막고 대신 대답하고 싶었다. 그건 국어사전에 실린 첫 번째 뜻이야. 할머니가 말하는 건 두 번째 뜻이고. 제일 먼저 태어난, 그래서 가장 몸뚱이도 작고, 먹는 것도 시원치 않은, 비실비실해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새끼돼지 같은 거라고. 하지만 그 애가 문득 내 손을 잡았다.
    "모든 지구인 중에 처음으로, 이 지구의 문을 열고 나가서 태어났잖아요. 그런데 왜요. 뭐가 문제예요."
    나는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할머니를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내 등 뒤에서 할머니가 악을 썼다. 전부 나 때문이라고, 늘 나를 저주하듯 내지르는 그 레퍼토리가 지겹게도 반복되었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그러라고 해."
    그 애가 속삭였다.
    "무녀리라는 말은, 문을 연 아이라는 뜻이야."
    어쩌면 너는 저 바다의 부력 속에서는, 혹은 우주의 무중력 속에서는 더는 그 지독한 멀미를 하지 않을지도 몰라. 처음으로 뭍으로 올라왔던 양서류의 먼 조상처럼, 처음으로 활강이 아니라 날갯짓을 했던 새들의 먼 조상처럼, 억센 팔로 나무를 기어오르는 대신 처음으로 두 발로 땅 위에 섰던 인간의 조상처럼, 너에게는 다른 세계가 있는 거니까. 처음으로 문을 열었던 누군가의, 나약하고 작지만 끈질기게 버텨 나가는 힘이, 그렇게 새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거니까. 그 애가 그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귓속에서 두근거리는 소리가 났다. 내가 또다시 발작, 아니, 우주 멀미를 일으키려는 전조인지, 그 애가 운동화를 끄는 소리인지, 그게 아니면 가슴 어디선가 뭔가 고장 난 듯이 심장이 뛰기 시작한 것인지, 그 순간 나는 분간할 수 없었다.

 

 

 

 

 

 

 

 

 

 

 

 

 

 

 

채기성

작가소개 / 전혜진

라이트노블 『월하의 동사무소』로 데뷔했다. 『다행히 졸업』, 『텅 빈 거품』, 『감겨진 눈 아래에』 등의 앤솔러지에 단편을 수록하였으며, 작품으로는 SF인 『홍등의 골목』, 스릴러 『족쇄-두 남매 이야기』와 『280일:누가 임신을 아름답다 했던가』 등이 있다. 『레이디 디텍티브』와 「펌잇」 등 만화․웹툰 스토리 분야에서도 활동 중이다.

 

   《문장웹진 201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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