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병원 외 1편

[신작시]

 

 

인형 병원

 

 

박세랑

 

 

 

    불량품으로 태어나 흥청망청 놀고 다녀요

 

    기계처럼 뛰던 심장이 지직거리고

 

    시끄러워진 수다나 치료하러 병원 가야지!

 

    울어야 할 순간에 웃음이 폭발하던 날

 

    여기저기 당한 일은 많은데······ 갈 데가 없어서 나풀나풀 돌아다녀요

 

    새로 산 물건처럼 포장도 뜯기 전에 부서져 버리고

 

    떨어진 영수증은 멀리 날아가는데   

 

    거울 속에서 얼룩덜룩 웃음이 흩어져 나와요

 

    여러 갈래로 찢어진 내 목소리를 침대 위에 묶어 둔

 

    의사는 진찰을 시작해요

 

    속 시끄러워진 라디오를 켤 때마다 이봐 거절당할까 봐 무섭지?

 

    그래서 아무한테도 연락 못 하는 거지?   

 

    망가진 내가 어제 꾼 악몽들은 사실

 

    오래전에 전부 겪었던 일들이라고······ 중얼중얼 혼자 떠들어대요

 

    맞아도 꿈적 안 하니까 날아오는 돌덩이들   

 

    때린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맞은 사람만 넘쳐나는 병원에서 머리 하고 구두를 신고

 

    비틀비틀 연습한 악필들만 보여줄래요

 

 

 

 

 

 

 

 

 

 

 

 

 

 

 

알리바이

 

 

 

 

    나는 부뚜막에 먼저 오른
    새침데기 고양이

 

    다정한 입술로 우아하게 뜯어먹는
    고등어는 맛있다

 

    나한테 여섯 번이나 차인 남자애가 팬티를 뒤집어 입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린 발목을 자꾸만 배달시켜도
    오른쪽보다 한 치수 작은 왼쪽을 더 좋아한 거 아니었니?   
    내 가슴이 짝짝이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도

 

    입이 삐뚤어진 반장 계집애가
    너 어젯밤 울고 있는 내 남친 만났지?   
    전화기 사이로 튀어나와 사시사철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겨도   
    선생님이 출석부에 없는 내 이름 위로 좍좍 두 줄 그어도

 

    가위로 앞머리를 자른다는 게 내 눈썹 내 면접시험 내 합격 수기까지 몽땅 베어 먹은 미용실 아줌마는
    어때? 앞이 훤하지? 더 잘 보이지?

 

    불행은 사소하고
    언제 떨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롱 래시 실크毛
    가짜 속눈썹 같지만

 

    접시 위에 늘어뜨린 나의 고등어는 아름다워

 

    지퍼가 고장 난 옆집 오빠 얼굴을 몇 개비 피워대다
    속치마를 태워 먹은 소녀들의 세계는 아찔해

 

    얌전한 고양이는 실은
    바닥을 나뒹구는 얼음 냄새가 무서워 부뚜막에서 내려갈 줄을 몰라

 

    눈을 깜빡깜빡,
    가냘픈 포즈로   
    처음 만난 고등어처럼 네 입술 물어뜯는데

 

    치렁치렁 비린내가 머리카락을 땋고 있는 오늘은
    화창한 소녀의 날씨

 

 

 

 

 

 

 

 

 

 

 

 

 

 

 

유수연

작가소개 / 박세랑

2018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시 부문 당선.

 

   《문장웹진 201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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