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 외 1편

[신작시]

 

 

살구

 

 

이은규

 

 

 

    살구나무 아래 앉아 그늘에 대해 생각한다

 

    손차양, 한 사람의 미간을 위해
    다른 한 사람이 만들어준
    세상에서 가장 좁고 가장 넓은 그늘
    그 아래서 한 사람은
    한낮 눈부신 햇빛을
    부음처럼 갑자기 들이치는 빗발을
    괜찮다 괜찮지 않다 내리는 눈송이를
    기꺼이 바라보며 견뎠을까, 견딤을 견뎠을까
    한 생이 간다 해도 온다 해도 좋을

 

    이제 다른 한 사람은 없고
    긴 그늘을 얼굴에 드리운 한 사람만 남았다
    살구나무는 잘 있지요
    안 들리는 안부는 평서문과 의문문 사이에 있고
    살구꽃말은 수줍음 또는 의혹

 

    절기 내내 숙제에 열심이지요
    살구라는 여린 이름의 안쪽을 떠올리는 것
    모든 이름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비밀
    살구(殺狗)의 기원
    개를 나무에 매달아 손님께 살뜰히 대접하자
    다음 해 하양과 분홍을 다투어
    살구꽃이 만발했다는 오래된 이야기
    수줍은 의혹으로 가득 찬 페이지는 무겁다
    나무의 그림자들이 나이테에 새겨지듯

 

    때로 어떤 예감은 법칙보다 서늘하고
    저 새는 왜 안 들리는 안부를 부리에 물고 왔을까
    후드득 살구 한 알이 떨어지는 순간

 

    먼 속삭임들, 지축을 울릴 텐데 울릴 것만 같은데

 

 

 

 

 

 

 

 

 

 

 

 

 

 

수플레 팬케이크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는 꿈을 떠올리게 한다 포근한 수플레 팬케이크는, 코끝을 간질이는 수플레 팬케이크의 꿈마저 사라진다면 어떠할까 이제 봄날의 대기를 향해 천천히 사라지는 일만이 남아 있을 것 만약 수플레 팬케이크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 접시마저 사라진다면 테이블마저 사라진다면, 그 풍경에 대한 기억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면 어떠할까 사랑스러운 실패작 부풀어 오르다 사라진 이름들 수플레 팬케이크에 슈가 파우더를 예쁘게 뿌리는 방법에서부터, 국경을 넘어 이뤄야 할 원대한 꿈에 이르기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부풀어 오를 수플레 팬케이크의 건축에 대해   

 

 

 

 

 

 

 

 

 

 

 

 

 

 

 

류휘석

작가소개 / 이은규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다정한 호칭』,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문장웹진 201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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