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고래 통신

[글틴스페셜]

 

 

고래고래 통신

 

 

전삼혜

 

 

 

    여름방학 막바지에 발등을 다쳤다. 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발을 휘저어 찾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책장을 걷어찬 걸로 끝났으면 기껏해야 발가락 좀 아프고 말았을 텐데, 걷어찬 책장에 대충 쌓아 둔 책들이 발등 위에 떨어졌다. 그러니까 평소에 책 정리 잘하랬잖아!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택시를 타고 정형외과에 갔다. 발등에 금이 갔다니. 일주일 정도는 돌아다니지 말라는 말에 침대에 누운 채 개학을 맞이했다. 반 깁스나마 할 수 있게 되어 절뚝거리며 늦여름의 막바지에 나는 2학기를 맞았다.
    "쌤, 저 왔어요."
    "발등은 괜찮아?"
    이미 사고 소식을 알고 있던 담임이 나를 맞아 주었다.
    "죽겠는데요. 교무실까지 계단 오르다 오늘 끝나는 줄."
    담임은 '입은 멀쩡하네.'라며 내 손에서 진단서를 받아들었다. 진단서를 시스템에 입력하던 담임은 잠시 얼굴을 찡그리더니 나에게 손짓했다. 나는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쭉 뺐다. 아, 이건 뭔가 귀찮은 일이 생길 예감인데. 모니터에는 '봉사활동 시간을 입력하세요'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봉사 시간요? 그런 숙제 있었나?"
    "20시간. 통지문에 써져 있었잖아. 마지막 주에 봉사활동 다 같이 간다고."
    그랬나. 그랬나 보네. 못 간 건 아쉽지 않았지만 나는 일부러 아쉬운 척을 했다.
    "아이고, 어쩌죠. 제가 몸이 이래서 깜박했네요. 아쉬워라."
    가당찮은 소리라는 듯 담임이 헛웃음을 지었다. 연기력을 좀 더 갈고닦아야 할 것 같았다. 음. 이대로 순순히 넘어가 주면 참 고마울 텐데. 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담임을 보았지만 담임은 이내 사이트 몇 곳을 찾아보더니 나에게 프린트 몇 장을 출력해 내밀었다.
    "다녀오렴, 금토일 2박 3일 봉사활동."
    "쌤, 저는 지금 저를 도와줄 자원봉사자가 필요한 것 같은데요······."
    구시렁거리면서도 나는 프린트를 받아 읽었다. 20시간 날로 먹기는 텄네. 교육청에선 언제나 대체를 준비해 준다며 담임이 뭐라 말을 했지만 그건 건성으로 들어 넘겼다. 금요일 병결 처리는 된다 치고 이게······ 이쪽에 연수원이라는 게 있었나? 학력경진대회라는 타이틀과 장소, 날짜가 적힌 첫 장을 넘기고 나는 눈을 껌벅거렸다. <본 대회는 여성 장애 학생들의 학력경진과 장애-비장애 학생의 합동연구과제를 도모하는 경연의 장으로서 기능하며 비장애 학생에게는 봉사정신, 장애 학생에게는 도전정신을 함양할 기회로······> 네?
    "그러니까, 지금 이 발로, 장애인을 도우러 가라는 말씀?"
    "산 타는 걸로 바꿔 줄까? 토요일에 청계산 쓰레기 줍기 8시간, 콜?"
    "아, 매너가 없으시다. 정말······ 쌤이 장애인이면 지금 나한테 도움을 받고 싶어요?"
    담임은 헛소리하지 말라며 내가 들고 있는 프린트에 인가 도장을 찍었다.
    "도움이 필요한지 아닌지는 받는 사람이 판단하는 거야."

 

    결국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신청 시스템에 내 개인정보를 납부했다. 담임은 '그래도 수련원 시설이 좋아서 다니는 데 불편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이 대회가 원래 다 조 짜서 오는 건데 가끔 이렇게 티오가 나서 너 같은 어린 양을 도와주는 거라며 생색도 좀 냈다. 뭔 상관입니까. 장애인이 다 거기서 거기지. 공부를 잘하는 애들이 모여 봤자 다 똑같지. 파트너가 누가 걸리든 중간에 팽개치고 오면 정말 청계산으로 보내겠다는 담임의 으름장을 뒤로 흘리며 교무실을 나섰다.

 

    그렇지만 자기를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파트너가 걸릴 줄은 몰랐지.

 

    담임의 말대로 연수원에는 거의 문턱이 없었다. 계단 옆에는 어김없이 경사로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덥고 다리를 다쳤다는 것만 빼면 이런 데서 봉사활동이라니 운이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사이 반 깁스는 풀었지만 운동화 안에 플라스틱 고정보호대를 차고 있어서 발에 땀이 찼다. 나는 접수대에 가서 내 이름과 학교를 댔다.
    "강솔 학생. 추가 접수 학생이네요? 그러면 파트너가······."
    접수대에 앉아 있던 사람은 한숨을 한 번 쉬더니 일어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
    "이원 학생! 일어나서 2시 방향으로 직진, 열다섯 걸음 정도요."
    왜 저렇게 부르지, 라고 생각하며 뒤를 돈 나는 바로 연수원에 온 것을 후회했다. 흰색 지팡이를 짚으며 앞으로 온 애는, 상당히 특이한 모습이었다. 이 행사가 여성 장애 학생 대상이라고 했으니 일단 여자이긴 할 텐데, 쇼트커트로 자른 머리카락 하며 훌쩍 큰 키. 게다가 나를 가장 후회하게 한 것은 머리 전체에 밴드를 둘러 고정한 그 애의 고글이었다. 새까만 고글. 시각장애인이라니, 망했다.
    내가 후회하는 사이 그 애는 내 앞에 와서 섰고, 4시 방향이라는 말을 듣고 내 쪽으로 얼굴이 오게 몸을 향했다. 아, 어쩌지. 지금이라도 못 하겠다고 할까. 핑계를 궁리하던 내 앞에서 그 애는 손목에 찬 밴드를 몇 번 매만지더니 피식 웃었다.
    "뭐예요, 얘 발등 다친 거 같은데? 얘가 내 파트너라고요?"
    ······응?
    대체 무슨 소리야. 내 후회가 얼떨떨함으로 바뀌자 그 애를 부른 사람이 엄하게 말했다.
    "이원 학생. 지금 개회 15분 전이고, 이 학생이 마지막 기회예요. 파트너가 없으면 대회 참가 안 되는 거 알죠?"
    마치 내게는 선택권이 없다는 양 돌아가는 대화의 양상이 조금 짜증은 났지만, 나는 그때까지 뭐가 뭔지 분간이 안 가는 상태였다. 이원은 뭔가 투덜대다가 다시 방향과 걸음 수를 지시받고 지팡이로 바닥을 툭툭 치며 돌아갔다. 내 어깨를 살짝 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제야 <지도교사 임수경>이라는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고, 나가자는 눈짓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반쯤 얼이 빠져 따라갔다.
    가장 가까운 그늘에 잠시 서서 우리는 말이 없었다. 먼저 입을 연 건 지도교사라는 그 사람 쪽이었다.
    "편하게 불러요. 오는 애들은 수경 쌤이라고 부르는데, 그래도 되고."
    "아, 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거 같은데요. 나는 머릿속의 혼란을 최대한 잠재우며 질문을 정리했다.
    "시각장애인······ 아니에요? 방금 그 애."
    "원이요? 맞아요. 등급제 있던 때 기준으로 2급인가 3급 정도. 음······ 엄청, 엄청 눈이 나쁘다고 보면 대충 맞아요. 그런데 발 다쳤어요?"
    "네. 거의 나아서 반 깁스는 풀었는데······."
    나는 주섬주섬 운동화를 벗어 안의 고정보호대를 드러냈다.
    "정말 다쳤네. 봉사활동 할 수 있겠어요?"
    "네······ 그런데 쟤, 제가 다친 건 어떻게 안 거예요?"
    수경 쌤이 이마를 짚었다.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원이는 매년 이 모양이에요."

 

    짧은 시간 동안 수경 쌤은 최대한 많은 정보를 내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원이는 보호기관에 살면서 이 대회에 매년 참가하고 있다는 것. 이 대회는 여성 청소년 중 성적우수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파트너를 이루어 숙식을 같이하며 진행된다는 것. 그리고 원이라는 애 성격이 아주, 아주, 매우, 특출나게 이상하다는 것.
    "원이가 쓰고 있는 건 초고기능 반향정위 장치예요. 그게, 음파라는 게 앞에 있는 게 뭐냐에 따라서 통과 속도가 다르거나 튕겨져서 돌아오거나 한대요. 손의 역할을 고주파수 음파가 대신하는 게 원이가 사용하는 '시그널'인데 의료기관 지원을 받아서 시범 사용자로 선정이 됐어요."
    "그런데 왜 파트너가 필요해요?"
    수경 쌤은 씁쓸하게 웃었다.
    "눈으로 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을 원이가 혼자서는 알 수 없으니까요."
    아마 학생 다리에 대고 뭐라고 한 것도 반향정위 때문일 거예요. 내가 대신 사과할게요. 원이는 친구가 없어요. 머리는 정말 좋지만, 사람을 대하는 걸 잘 못해요. 이건 누르면 소리가 나서 위치를 알려주는 목걸이형 발신기고, 이건 숙소 키, 이건 학생이 쓸 태블릿이에요. 작은 천 가방에 담긴 물건들을 건네주며 수경 쌤은 내 손을 잡았다.
    "부탁할게요."
    설명을 듣고 강당으로 돌아가 이상한 파트너 옆을 찾아가 앉자, 개회식이 시작되었다.
    왜 이런 이상한 애에게까지 신경을 써주는 걸까. 개회사는 소장 뒤의 스크린으로 수어와 문자 중계가 동시에 되고 있었다. 건성건성 들으면서도 내용을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다는 건 좋았다. 주위를 힐끔 둘러보니 몇 명은 태블릿에 헤드폰을 연결해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군. 여기 오는 애들은 그래도 '완전히 안 보이는' 건 아니라지만 자막으로 따라가는 건 힘든 건가. 정작 내 파트너는 헤드셋도 끼지 않고 태블릿을 보지도 않은 채 앞을 보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머리가 정면을 향하고 있었으니 아마도 앞을 보고 있을 터였다. 눈이 어디 있는지 보이질 않으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뭐 그게 대수랴. 나는 내 2박 3일이 얼마나 피곤할 것인가를 가늠하고 있었다. 몇 명의 시선이 원이 쪽을 훑는 게 느껴졌다. 내 파트너는 친구는 없어도 적은 많은 것 같았다. 한숨을 참고 있는 내 옆구리를 이원이 쿡 찔렀다.
    "강솔 맞나? 이름 뭐랬지?"
    "맞아."
    옆구리를 문지르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내 발도 건사하기 힘든 터라 휠체어를 밀어야 하는 파트너보다는 이쪽이 낫겠다 싶기도 했지만, 역시 껄끄러웠다. 봉사 시간만 아니라면 그냥 핑계를 대고 집에 가버리고 싶었지만 담임의 잔소리가 무서웠다. 내가 무슨 표정을 짓든 이원은 그저 싱글거리고 있었다.
    "긴장해라. 여기 애들, 성질 되게 더럽거든."
    이원의 말에 나는 허, 하고 헛웃음을 토해버렸다. 아니, 수경 쌤 말로는 네 성질이 제일 더러운 것 같던데. 내가 헛웃음을 짓거나 말거나 이원의 말은 이어졌다.
    "기억해야 될 거야."

 

    경고 같은 그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제까짓 게 무슨. 나는 일부러 중얼거리며 생각을 밀어내려 애썼다. 내 중얼거림을 들었을 텐데도 이원의 표정은 계속 싱글싱글이었다. 하지만 그 표정도 개회식이 끝나자마자 사라졌다. 친절하게도, 주최 측에서 우리가 단 명찰에 파트너인지 경진대회 참가 당사자인지 적어 놓은 덕에, 나는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간 애가 '참가 당사자'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애가 이원이 걸려 넘어지기 좋을 위치에 의자를 슬쩍 밀어 놓는 것도.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원이 먼저 일어나서 그쪽으로 소리를 질렀다.
    "야, 유치하게 이딴 장난칠래?"
    의자를 밀어 놓은 그 애는 자기 파트너와 무어라 손짓을 주고받았다. 내가 이원 옆에 서서 '청각장애 같은데.'라고 말을 했지만 이원은 계속 씩씩거렸다.
    "누군지 견적 나오네. 아······ 강솔, 걔 어느 쪽에 있냐?"
    음. 이 복수에 동참을 해줘야 하나. '어느 쪽'이냐는 말을 듣고 좀 고민했지만 나는 별 양심의 가책 없이 '1시 방향'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원은 몸을 조금 틀더니 그 애가 있는 방향으로 가운데손가락을 날렸다. 나는 풉, 웃어버렸고 그 애의 표정은 짜증으로 물들었다. 다시 내 쪽으로 몸을 돌린 이원이 지팡이로 앞을 툭툭 짚었다.
    "앞은 너보다 덜 보여도 의자 끄는 소리는 내가 더 잘 듣거든? 매년 난리야, 진짜."
    앞을 몇 번 휘저어 보던 이원은 팔을 뻗어 내 팔꿈치를 잡았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내가 몸을 빼자 이원의 몸이 옆으로 휘청였다. 뭐지. 그 잘난 <시그널>로 내 뼈에 금 간 것도 알아내더니. 미안한 마음에 다시 이원의 팔을 잡자 이원이 자세를 바로 하고 내 귀에 속삭였다.
    "시그널 감도 최고로 올리면 머리 울려. 좀 도와라. 도우러 온 거 아님?"
    그래라. 나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그러나 꽤 어색하게 이원에게 내 팔꿈치를 잡게 하고 문 쪽으로 이동했다. 이원은 내가 방향을 이리저리 틀 때마다 비틀거렸다. 방향이 꺾일 때마다 몇 시 방향, 앞에 뭐, 지시를 해야 한다는 걸 내가 몰랐으니 별수 있나. 문 앞에 아까 의자를 밀어 놓은 애와 파트너가 기대어 서 있었다. 싸울 것 같으니 모른 척 지나가려는 내 옆으로 또렷한 말소리가 들렸다.
    "엿먹어."
    파트너가 욕을 했겠지, 생각하고 그쪽을 보니 <참가자> 명찰을 단 그 애가 입을 열어 말하고 있었다.
    "엿. 먹으라고. 엿."
    이번엔 내가 한 대 맞은 표정이 되었고, 엿을 먹은 이원이 옆에서 허리를 굽혀 가며 웃었다.
    ······선생님, 청각장애인이 구화도 한다는 거 왜 안 알려줬어요?

 

    "차민정하고 유사라지? 욕한 애가 차민정, 파트너가 유사라. 완전 진상이네. 작년에도 그러더니 올해도 또 난리야."
    바깥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는데 이원이 묻지도 않은 말을 조잘거렸다. 투 머치 토커 확정. 그럼 작년에도 이랬단 말인가. 이원의 투 머치 인포메이션 덕분에 나는 수경 쌤이 알려준 것보다 더 많은 지식을 습득했다. 이 대회는 올해가 8회째고 이원과 차민정은 2년 전에 처음 만났다는 것. 유사라는 그때부터 차민정의 파트너였다고 했다. 주로 인터넷으로 교류하던 애들이 페어로 나오는 대회라고. 그러니까 보통은 첫 참가자여도 파트너와 어느 정도 교류가 있고, 나처럼 생초짜로 끼어드는 일은 드물다고 했다. 하긴, 누가 2박 3일간 자기의 안전을 초보 파트너에게 맡기고 싶겠는가. 이해는 갔다. 하지만 파트너가 없는 것보단 어설픈 파트너라도 있는 게 나으니 주최 측에서는 종종 '봉사활동'을 이유로 파트너를 모집하는데, 올해는 그게 나라고 했다.
    "앞이 보이면 달려가서 멱살을 잡든 할 텐데, 시그널은 감도를 올려도 상대가 도망가 버리면 추적을 못 하거든. 추적 가능한 반경이 좁아."
    이 와중에도 이원은 반성이 아니라 시그널의 반경 좁음에 대해 투덜거리고 있었다. 글쎄, 2년이나 싸워댔으면 너에게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사이가 좋아질 방법 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 거니. 그런 생각을 하는 내 옆에서 이원이 쭉 기지개를 폈다.
    "상관없다~ 나는 올해로 이 대회 끝이니까~"
    "왜?"
    내 물음에 이원은 비밀이라도 말하듯 팔찌를 몇 번 돌렸다. 아마 그게 이원에게는 '주위를 둘러본다'는 동작과 비슷한 것 같았다. 그러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향하고 작게 속삭였다.
    "지구 생활이 끝나거든."

 

    나는 그 말을 '올해가 지나기 전에 죽어버리겠다'는 말로 오해했고, 입을 뻐끔거리다가 간신히 말을 꺼냈다.
    "야, 생명은 소중한 거야. 자살은 좀 아니지! 그, 앞이 안 보여도 희망을 가지고!"
    "무슨 개소리야."
    이원은 코웃음을 치고 좀 더 작게 말했다.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난 외계인이야. 내가 있던 별로 돌아갈 거야."

 

    신이시여. 아니, 담임이시여. 장애인을 보조하라고 했지, 자길 외계인이라고 우기는 애를 보조하라고는 안 하셨잖아요? 내가 상상도 못 한 전개에 기막혀 하는 사이 이원은 낄낄 웃으며 내 몸 여기저기를 찔러댔다. 계세요? 너 거기 계시냐? 신나게 웃어 가며 손가락으로 내 목이며 몸을 찌르는 이원의 손을 털어내면서도 영 떨떠름했다.
    "개소리는 네가 하는 게 개소리지. 외계인이 무슨 시각장애인이야. 지구 정복이나 하지."
    이원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지구인들은 진짜 상상력이 부족하다니까."
    만난 지 두어 시간 만에 온갖 험한 소리를 주고받는 건 대회 취지에 어긋나지 않을까. 하지만 상대가 상식인이 아닌데 나도 굳이 상식인이 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자기네 종족은 원래 시각이 아니라 초음파로 통신하고, 자신은 지구에 파견된 유학생이며, 비장애인 지구인들에게서 정말 엿같은 대접을 받으며 '지구인에게는 공감이라는 게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이······ 인간을 내가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러니까 나 잘 때 고글 벗기지 마."
    "고글 벗기면 뭐, 촉수 나오냐?"
    반쯤 포기한 내 말에 이원은 의외로 진지하게 대답했다.
    "우리 종족은 눈이라는 게 없어서······ 지구로 올 때 좀 대충 만들었거든. 보기 좋지는 않은가 봐."
    작년 파트너가 자기 말을 안 듣고 고글을 벗겼다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고, 이원은 히죽거리며 말을 맺었다.
    이렇게까지 상상력이 풍부한 시각장애인은 난생처음 봤다.

 

    별 탈 없이 첫날이 흘렀다. 차민정과는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학력 테스트 고사장이 장애유형별로 분류가 되어 있는 덕일까. 이렇게 따로 스케줄이 잡혀 있는데도 악연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감탄스럽기도 했다. 이원이 테스트 보조 헤드셋을 끼고 저시력자용 문제지를 들여다보는 동안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게도 보조 문제지가 주어졌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풀 수가 없었다. 파트너 점수가 참가자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하니 별 상관이야 없겠지. 나도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닌데, 내가 고사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가끔 이원이 태블릿 입력 펜을 떨어뜨리면 주워 주는 게 전부였다. 바닥이 밝은 색 타일이고 태블릿 펜도 흰색이기 때문에 이원은 한번 펜을 떨어뜨리면 한참을 헤맸고 나는 그걸 잠시 지켜보다가 펜을 주워서 다시 이원의 손에 쥐어 주었다.
    내가 필요하긴 한 걸까.
    일이 없으면 나에게는 공짜로 봉사 시간이 생기는 편이니 좋아해야 했지만 마음이 이상했다. 짜증이라고 해야 할까, 분노라고 해야 할까. 고사장은 조용했고 내 마음은 시끄러웠다.
    쉬는 시간에 잠시 나와서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마시는데 목에 걸고 있는 호출기가 울렸다. 나는 일부러 자판기에 표시된 점자 하나하나를 훑어보다가 조금 늦게 들어갔다.
    "뭐야. 왜 불러."
    "화장실 가려고 불렀다. 넌 필요할 때 없고 그래."
    이원이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나는 팔을 내밀며 빈정거렸다.
    "넌 나 없으면 할 줄 아는 게 없냐?"
    일순간, 고사장 안의 공기가 써늘해졌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시선'들이 차갑게 나에게 꽂히는 게 느껴졌다.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모두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랬지. 여기는······ 도움이 필요한 곳이었지.
    실수였다.
    "넌 내가 아니면 도울 게 없잖냐."
    내 팔을 잡고 일어서며 이원이 쾌활하게 말했다. 여기저기서 큭, 큭 웃음소리가 들렸다. 싸늘하던 분위기가 다시 여름 더위에 녹아내렸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수도꼭지를 틀며 나는 물었다.
    "문제는 풀 만해?"
    "그럭저럭. 빡세네."
    이원이 손을 씻으며 대답했다.
    "왜, 어렵디?"
    이원이 치고 나왔다. 나는 우물우물거렸다. 다행이었다. 이원은 지금 내 긴장한 표정까지는 볼 수 없을 테니까. 말할 수 없었다. 풀 수 없는 문제였다고,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원이 손에 묻은 물기를 터는 동안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나는 내 감정의 정체를 알았다. 열등감이었다.
    "뭐야. 어디 갔어?"
    숨조차 죽이고 가만히 서 있자 이원이 투덜거렸다. 나는 호출기를 눌렀다. 이원과 내 호출기에서 동시에 삐, 소리가 났다. 이원은 내 쪽으로 몸을 틀고 손을 뻗었다. 아까 자판기 앞에서 미적거리던 것처럼, 나는 한 템포 늦게 손을 내밀었다. 여기 있다고 말을 해도 될 것을 일부러 호출기를 눌러 알리면서, 나는 속으로 말했다. 웃기지 마. 나는 너한테 열등감 같은 거 안 느껴.
너는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나는 이원의 식판을 대신 받아 주고, 이원이 고개를 깊게 숙이고 식사하는 것을 지켜봤다. 이원은 숟가락질 하나, 젓가락질 하나도 느리게 했다. 어쩔 수 없이 이리저리 반찬이 흩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냥 지켜보았다. 다른 애들이 파트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거나 손짓으로 무언의 수다를 떠는 것을 보면서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원은 내가 식판을 반납하고 돌아올 때까지 앉아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조금 기분이 좋아졌고, 동시에 나 자신이 조금 역겨워졌다.
    이딴 봉사 시간 따위. 박차버리고 나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직 대회 종료까지는 하루하고도 반나절은 더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두 번의 밤이 있었다.

 

    저녁에는 참가자와 파트너 스케줄이 따로 있었다. 참가자는 배리어프리 영화 감상이었고 파트너는 일정 브리핑이라고 했다. 이원은 대강당으로 들어갔다. 이원의 지팡이가 탁, 탁 소리를 내는 걸 들으며 나는 소강당으로 갔다.
    "여러분 중에는 여기 꾸준히 오는 사람도 있고, 이번에 처음 온 사람도 있을 거예요."
    앞에 유사라가 앉아 있었다. 나는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안내를 들었다.
    내일 오전에는 지난해에 발표했던 공동 연구주제 설명, 그다음엔 자유 시간, 저녁에는 학력 테스트가 한 번 더 있고 밤에는 레크리에이션이 있다는 말이 이어졌다. 참가자가 캠프파이어를 원하지 않으면 다른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으니 내일 점심 전까지 정해 달라는 전달사항을 끝으로 안내가 끝났다. 캠프파이어라. 외계인이 캠프파이어를 좋아할까. 나는 모닥불 앞에 서 있는 이원을 그려 보려 애썼다. 눈을 모르니 표정을 그리기가 쉽지 않았다. 고글에 모닥불 빛이 비칠까. 자리에서 일어나는 내 어깨에 누군가의 손이 닿았다.
    "강솔 학생?"
    "어, 수경 쌤."
    수경 쌤은 애들이 다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소강당 문을 닫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 나에게 수경 쌤이 미소를 지었다.
    "발은 괜찮아요? 무리하면 안 될 텐데."
    "괜찮아요. 계단도 얼마 없고, 다니기 편해요."
    그렇구나, 라며 수경 쌤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이랑 지내는 건 어때요?"
    "뭐, 그럭저럭······ 요. 시간도 얼마 안 지났고. 별일 없었어요."
    내 대답에 수경 쌤은 다행이라며 작게 웃었다.
    "잠은요? 둘이 같이 잘 수 있겠어요?"
    왜 이렇게 말하지. 나는 의문을 담은 눈으로 수경 쌤을 보았다.
    "파트너랑 참가자가 같은 방 쓰잖아요? 그게 규칙이라고······."
    "그렇긴 한데."
    수경 쌤이 한 번 더 문 쪽을 돌아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원이는, 작년에 좀······ 문제가 있었어요."

 

    "흉터가 있어요. 등록증 사진 보면. 고글로 가리는 부분에, 눈 위쪽으로 좀 크게. 원이는 그것 때문에 고글 벗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데, 씻거나 할 때는 벗어야 하잖아요. 작년에 파트너가 원이가 세수하는 도중에 화장실 문을 열었나 봐요. 난리가 나서······ 파트너는 울고, 원이는 소리 지르고. 물론 파트너 학생이 잘못했어요. 하지만······ 협동심도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니까."
    "흉터요?"
    내 되물음에 수경 쌤은 잠시 미간을 찡그렸다.
    "어차피 원이는 이번이 마지막 참가고, 강솔 학생과는 친해진 것 같으니 말해 둘게요. 원이는 고정 파트너가 있던 적이 없어요. 성격이 유난해서 아예 팀을 짜는 게 아니라 단독으로 등록하고 파트너 학생이 봉사활동 신청을 하면 페어가 되는 식이에요. 아마 고정 파트너가 있었다면 그 학생도 알게 되었을 얘기고 하니, 진지하게 들어줘요."
    수경 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이는 자동차 사고로 가족을 잃었어요. 시력의 대부분도요. 누리과정 이전 일이고, 그 후로 보호시설에서 자랐어요. 사람이 극한적 환경에 몰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생기는 증상들이 있어요."
    수경 쌤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허언증이라든지."

 

    내년엔 기관 추천으로 해외로 간다고, 그래서 올해가 한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해고 원이의 마지막 캠프라고, 수경 쌤은 말했다. 어차피 고정 파트너였다면 알게 되었을 거란 말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하며. 조용히 가라앉은 나를 보고 수경 쌤은 다시 힘없이 웃었다.
    "받아들이기 힘들 거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아뇨, 그게 아니라."
    나는 입을 열어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건 원이의 사생활 아닌가요. 아무리 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해도 밝히기 싫은 건 밝히지 않을 권리가 있지 않을까요. 서류에 새겨진 기록이라고 해도. 지금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은, 꼭······
    불쌍하니까, 눈감아 달라는 이야기로 들리는데요.
    나는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일부러 발신기를 누르던 내 모습이. 한 박자 늦게 손을 내뻗던 내 모습이. 반찬을 흘리는 걸 그냥 보기만 하던 내 모습이. 원이는 보지 못했을 나의 작은 행동들이. 머릿속에 사진처럼 선명하게 되새겨져서.
    수경 쌤은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거짓말을 지어내야 했다.
    "그,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는데, 시그널이 쓰는 반향정위라는 게, 제 휴대전화나 그런 거에 문제라도 일으키면 어쩌나 해서요······ 저 휴대전화 바꾼 지 얼마 안 돼서."
    수경 쌤은 아까보다 훨씬 환하게 웃었다.
    "아, 괜찮아요. 원이도 휴대전화 쓰거든요. 시그널이 쓰는 고주파수는 그쪽엔 영향을 안 주게 처리를 한대요."
    나는 안심했다는 것처럼 마주 웃었다.
    "그럼 같은 방 쓰는 걸로 알게요."

 

    나와 이원은 숙소로 돌아왔다. 여름밤이라 풀벌레가 찌르르거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숙소 앞에 카드키를 댔다. 붉은 빛이 깜박거리며 '문이 열렸습니다' 소리가 났다. 이원이 지팡이로 문을 톡, 건드렸다. 나는 말없이 문손잡이를 잡고 당겼다. 이원은 들어가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안 들어가?"
    내가 먼저 말을 꺼내자 이원은 손으로 뺨을 긁었다.
    "강솔 너 아까부터 조용하다."
    "뭐래."
    나는 침착을 가장하며 대답했다.
    "별거 아니면 됐어. 불 켜고 안에 구조 설명 좀 해줘."
    나는 원이를 앞세우고 방에 들어갔다. 벽을 짚고 선 원이에게 방 안의 사물을 하나하나 일러주었다. 앞으로 두 발자국 가서 3시 방향에 화장실 문, 앞으로 여섯 발자국 가면 3시 방향에 네 침대 있어. 나는 9시 방향 거 쓸게. 네 짐은 침대 발치에 벽 붙여서 두면 되지? 짧은 시간 동안 이원과 대화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원은 직접 걸어가서 사물들을 손으로 짚어 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디 있는지 알겠다."
    "······다행이네."
    내 혼잣말에 이원이 고개를 들어 내 쪽을 향했다. 내 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나는 한 발자국 뒤로 주춤 물러섰다. 이원은 가만히 있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교대로 샤워를 하고, 이원이 자리에 눕는 것을 확인하고 불을 껐다.
    내가 누울 때까지 이원은 고글을 쓴 채였다.
    나는 이원과 반대쪽 벽을 보고 누워 눈을 깜박거렸다.
    '허언증'
    그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 감정은 뭐지.
    아쉬움? 다행스러움? 여러 가지 색깔의 감정이 치솟았다 가라앉았다. 거칠고 날카로운 감정들은 이원과 서로 빈정거릴 때는 오히려 들지 않던 것들이었다. 그때는 온 힘을 다해 이원에게 지지 않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은 몸을 돌려 이원을 향해 누울 수가 없었다.
    반향정위라는 건 초음파를 일종의 손처럼 사용하는 거라고 했다. 대략적인 크기와 위치부터 섬세하게는 재질과 굴곡까지 측정할 수 있다고. 눈이 아니라 손이었다. 결국 그 반향정위조차 이원에게 눈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이원은 처음 만났을 때의 건방진 애와 다른 애가 되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허언증이라는 말을 들어서. 가족을 잃었다는 말을 들어서. 이원이 나랑 다를 바 없는 그저 그런 애라는 말을 들어서. 그럴 수 있지. 불쌍한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은 불쌍한 감정을 느끼는 거지.
    그런데 왜 나는 이 불쌍한 감정이 역겹게 느껴질까.
    이원의 낮고 규칙적인 숨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한 번도 이원 쪽으로 몸을 돌리지 않았다.
    내가 일어났을 때 이원은 이미 세수를 끝낸 뒤였다. 감도를 맞춘다며 손목에 찬 장치를 이리저리 돌리는 모습을 보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여기저기 비누 거품이 남아 있었다. 샤워기를 틀어 화장실에 남은 거품을 씻어냈다. 세면대 옆에 호출기가 떨어져 있어 집어 들었다.
    "너 이거."
    별 생각 없이 나는 이원의 침대에 호출기를 던졌다. 이불 위에 떨어진 호출기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원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방금 뭐 한 거야?"
    "아. 네 호출기······ 욕실에 떨어져 있었는데 방금 침대 위로 내가 던졌어. 미안."
    "그럼 그렇게 말을 하지. 몇 시 방향?"
    나는 말하는 대신 호출기를 주워 이원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
    이원은 호출기를 받아 잠자코 목에 걸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침 먹으러 가자."
    우리 둘은 숙소를 나왔다. 하루 좀 걸어 다녔다고 발에 무리가 갔는지 발등이 살짝 욱신거렸다.

 

    카드키는 이원에게 줬다. 어차피 붙어 다녀야 되잖아. 그렇게 말하며 카드키를 손에 얹어 줄 때도 이원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학력 테스트를 치렀다. 이원이 문제를 푸는 동안 나는 참가자들 옆의 도우미를 보았다. 제각각이었다. 가만히 있는 애, 엎드려 자는 애, 문제지를 들여다보는 애. 이원은 테스트를 끝내고 점심을 먹으면서도 별 말을 걸지 않았다. 나에게 뭔가 물으려 하지도 않았다. 웬만한 일은 지팡이를 뻗어 탁탁 두들겨 보고, 손목에 찬 팔찌로 시그널을 조절하며 해결했다. 나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8시 방향에 밥, 10시 방향에 소시지. 12시 방향에 계란말이. 반찬의 위치를 알려주는 말이 고작이었다.
    점심식사를 하고 식당을 나가기 직전, 캠프파이어 참석 여부를 결정하라던 말이 생각나 이원에게 물었다.
    "저녁 먹고 캠프파이어 있다는데, 넌 어떡할 거야?"
    이원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안 갈래. 불은 만질 수가 없어서 별로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소리를 내어 대답했다. 알았어. 이원은 태블릿을 켜고 음성으로 조작했다. 일정 알려줘. 태블릿도 음성으로 대답했다. 오후 자유 시간 및 연구주제 작성. 이원이 음성을 끄고 문 쪽으로 지팡이를 뻗었다. 열려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가는 이원의 뒤에서 내가 물었다.
    "연구주제, 작성 어떻게 해?"
    이원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슬쩍 입 꼬리를 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원 특유의 비아냥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내가 하자는 거 할 거야?"
    "어r 응."
    내가 대답하자 이원은 손을 내밀었다.
    "가고 싶은 데가 있어. 거기 가서 얘기하자."

 

    이원이 '가고 싶다'고 한 곳은 뜻밖에도 연수원 내의 생태모형관이었다. 실험동으로 가자고 해서 무슨 이상한 걸 보러 가나 했더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숙소 카드키를 대자 문은 삑, 소리를 내며 열렸다.
    "여긴 숙소 카드키로 대충 다 열려."
    모형관에는 동물 박제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구시대의 유물이었다. 이원은 시각장애인 안내 모듈을 하나 집어 들더니 능숙하게 조작하며 앞으로 혼자 걸어갔다. 모듈은 이원의 위치를 파악해서 걸음 수와 주변 전시물들의 방향을 안내해 주었다. 나는 이원의 뒤를 따라갔다.
    "실험동이라 휴대전화가 거의 안 터져. 시그널 사용에는 별 문제가 없긴 해."
    이원이 걸어가 선 곳은 고래 모형 앞이었다.
    "고래?"
    "응. 나 고래 좋아해."
    "왜?"
    이원은 고래 쪽으로 몸을 향한 채, 나에게 등을 돌리고 대답했다.
"고래 중에는 초음파로 통신하는 애들이 있거든. 그게 마음에 들어."
    얼핏 배운 기억이 난다. 인간이 듣지 못하는 초음파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아마 그건 이원이 손처럼 시그널을 다루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이겠지만, 사용하는 도구가 같다는 것만 해도 어느 정도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건가.
    이원이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너, 어제 무슨 얘기 들었어?"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이원은 키득키득 웃었다.
    "눈이 별로 안 좋으면 여러 가지에 민감해져. 피부에 닿는 시선이나 목소리 톤 같은 거. 말투도 마찬가지고. 너, 어제 나랑 만나자마자 엄청 싸웠지? 솔직히 나 그거 되게 맘에 들었다? 나한테 안 지려고 난리치는 거."
    이원은 탁,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그런데 저녁 이후부터는 아니더라."
    톡. 톡. 톡. 이원은 가볍게 바닥을 치며 말을 이었다.
    "나 그런 거에 민감하고 익숙해. 쟤는 불쌍한 애구나. 도와줘야지. 눈감아 줘야지. 버릇없이 굴어도 다들 그러려니 해주고. 점심까지만 해도 나랑 죽을 듯이 싸워대던 애가 갑자기 나한테 친절해지고 조용해졌다는 건, 뭔가 들었다는 거겠지."
    "야. 그게······."
    "아. 괜찮아. 신경 안 써. 누가 뭐라고 했든. 다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니까."

 

    나는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냥······ 나는, 네가, 그런 거짓말 안 해도 괜찮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이원의 손이 멈췄다.
    "거짓말?"
    내가 무어라 설명하기도 전에 이원이 아- 하고 빈정거렸다.
    "사고? 흉터? 아.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너도 내가 말한 것보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걸 더 믿는구나."
    "수경 쌤이 말한 게 사실이겠지. 수경 쌤이 나한테 거짓말을 왜 하는데?"
    이원이 몸을 돌려 내 쪽으로 머리를 향했다.
    "난 수경 쌤이 거짓말했다고 한 적 없어. 그건 사람들이 믿게 하려고 우리가 만들고 국가에 등록한 설정이니까. 니가 외계인이면 다른 사람들하고 섞여 살려고 그럴듯한 설정 하나 지어내는 게 빠르겠냐, 외계인을 받아들이게 하는 게 빠르겠냐? 그런데 너, 지금 하나 착각한다."
    이원이 내 쪽으로 발을 내딛을 듯하다 멈춰서며 말했다.
    "나는 너한테, 강솔이라는 개인한테, 일대일로까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뭐, 그렇지. 네가 수경 쌤 말을 내 말보다 더 잘 믿는 이유야 알아. 수경 쌤은 비장애인이고 나는 장애인이니까. 그리고 너는 비장애인이니까."
    이원은 다시 몸을 돌려 나에게 등을 보였다.
    "그럼 어차피 네가 믿지도 않을 얘기지만, 내가 뭘 만들고 싶은지 얘기할게. 내가 만들고 싶은 건 고래들의 말을 통역하는 장치야. 고래 종류별로 사용하는 특정 주파수를 수집한 다음, 유형별로 분석해서······ 뭐. 그런 거."
    "왜 그런 게 만들고 싶은데?"
    나는 이원의 등에 대고 물었다.
    "내가 다시 지구로 오면, 우리는 인류와 대화하지 않을 거야. 인류가 얼마나 우리에게 적대적인지 충분히 봤거든. 우리는 고래들과 대화할 거야. 고래들은 똑똑하고 상냥해. 자기를 죽이려 드는 인간을 구해 주기도 하고."
    "······그래."

 

    믿는다, 안 믿는다를 말해 봤자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원은 나에게 마음을 닫아버렸다. 한편으로는 짜증이 났다. 내가 왜 이원의 말에 따라야 하는지, 이런 비난을 듣고 나서도 이원과 같이 다녀야 하는지. 나는 태블릿으로 연구주제 작성 양식을 불러왔다. 맨 위에는 연구주제 제목을 쓰는 부분이 있었고 그 아래 참가자와 파트너의 이름을 입력하는 부분이 있었다.
    "연구주제 제목 정해야 되는데."
    이원은 아직도 나를 보지 않았다.
    "넌 바쁘신 몸이잖아. 그것까지 신경 안 쓰셔도 돼."
    끝끝내 나를 나쁜 쪽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서 나는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분명한 악의를 담아 말했다.
    "너 정말 삐뚤어졌다."
    이원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안내 모듈을 반납하고, 이원은 벽에 붙어 난간을 잡고 걸었다. 지팡이가 앞을 더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느린 걸음이었지만 내 도움을 원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나 확고해서 나는 오히려 먼저 달려 나가고 싶었다. 꾹 참고 실험동 입구까지 왔을 때 이원이 휴대전화를 꺼내 음성 시계를 불러왔다. 세 시 오십사 분입니다.
    "저녁식사 6시지? 시간 많네. 난 영화 보러 갈래. 넌 뭐 할래?"
    "어, 글쎄······."
    갑자기 태평하게 바뀐 이원의 목소리에 나는 주춤거렸다.
    "비장애인용 시청각실도 있으니까 너도 영화 보든지. 숙소 키 나한테 있던가?"
    이원은 주머니를 뒤지더니 숙소 카드키를 꺼냈다.
    "이거 내가 갖고 있는다."
    "······."
    내가 말없이 보기만 하자 이원이 웃었다.
    "서너 시간 방치한다고 봉사 시간 안 주는 거 아니니까, 친한 척은 적당히 하자."
    밀어내는 건지, 풀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이원은 볕이 잘 드는 곳을 골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흰 지팡이에 여름 햇빛이 부서졌다. 나는 태블릿을 꺼내 전원을 켰다. 연구주제 양식이 텅 빈 칸들을 담고 떠올랐다. 내가 이러려고 여기 왔나. 자괴감이 들었다. 다시 고개를 들 때까지 이원은 내 시야에서 사라지지도 못하고 있었다. 느리고, 느렸다. 누군가 쟤를 도와주겠지. 여기는 나 아니더라도 봉사자들 천지니까. 나는 이원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었다.
    나 혼자 시청각실에서 내리 영화 두 편을 보는 동안 이원에게서는 아무 연락도 없었다. 이원이 어디로 갔는지도 확실하지 않아서 나는 혼자 식당으로 향했다. 밥 먹고 싶으면 지가 연락을 하겠지. 나는 투덜거렸다. 혹시나 싶어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신호음만 갈 뿐 받지 않았다. 문자라도 보낼까, 하다가 나는 그냥 혼자 밥을 먹기로 했다.
    캠프파이어 시간에는 뭐 하려나.
    나는 뭐 하지.
    이리저리 서성이는데 누군가 내 눈앞에 손을 흔들었다.
    주춤, 혹시라도 이원일까 싶어 뒤를 돌아보니 유사라가 있었다.
    "안녕."
    나는 어색하게 인사했다. 차민정이 무어라 수어를 하자, 유사라가 말했다.
    "아까 이원 봤는데, 이원이 너한테 말 좀 전해 달라는데."
    내 표정이 찡그려졌는지 유사라와 차민정이 수화로 무언가 주고받았다.
    "뭔데."
    미안하다는 말일까, 잠시 기대했다.
    "호출기 좀 가져다 달래."
    "뭐?"
    유사라의 말에 내가 언성을 높이자 둘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나는 곧바로 후회했다. 얘네한테까지 그럴 필요는 없는데. 나는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유사라가 다시 말했다.
    "너네 아까 실험동에 있었지? 이원이 자기 호출기 실험동에 놓고 온 거 같은데 길 못 찾겠다고 가져다 달래. 말하면 알 거라고 했는데, 너 실험동 어딘지 알아?"
    "잘 기억 안 나는데."
    "그럼 우리랑 같이 가. 아직 캠프파이어 전까지 시간 있잖아."
    생글생글 웃는 유사라에게 나는 '캠프파이어 안 간다'는 말도 못 하고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차민정과 유사라는 앞서 걸으며 무어라 손짓을 했다. 나는 둘의 손짓을 보며 노을이 지는 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쟤넨 사이가 좋네. 쟤네는 서로한테 거짓말 같은 거 안 하겠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복도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차민정이 복도 옆에서 비상용 손전등을 꺼냈다. 손전등 불빛으로 앞을 비추며 걷다가 유사라가 내 쪽으로 걸음을 맞췄다.
    "이원하고 싸웠어?"
    나는 한숨을 쉬었다.
    "잘 모르겠어. 싸운 건지."
    "이원 성격 안 좋지. 나랑 민정이도 걔 싫어해."
    유사라가 말하고 깔깔 웃었다. 나도 따라서 힘없이 웃었다.
    "아, 여기다. 저기 안에 호출기 있네."
    명랑한 유사라의 목소리에 나는 앞을 보았다. 열린 문 안으로 책상에 놓여 있는 호출기가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건 왜 빠뜨리고 다녀. 나는 얼굴을 찡그리고 호출기를 집어 들었다. 끼이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반쯤 닫힌 문 밖에 유사라와 차민정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호출기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문 쪽으로 향했다. 유사라가 멈추라는 손짓을 했다. 내가 선 채로 의아해하자 유사라가 말했다.
    "아, 할 얘기가 있는데 깜박했다."
    경쾌한 목소리.
    "뭔데?"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랑 민정이는, 이원 친구도 완전 싫어해."
    쾅.
    문이 닫혔다. 삐리릭. 문 잠기는 소리. 그리고 문 앞으로 뭔가 무거운 걸 끌고 오는 소리.
    "알아서 열고 나와!"
    까르르륵, 웃음소리와 달려가는 발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아, 짜증나······ 나는 맥이 풀려 주저앉았다. 장난 되게 정성스럽게 치네. 아까 그 소리는 뭐야. 의자라도 밀어다 막았나.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일어나 문손잡이를 밀었다. 조금 열린 문틈으로 보니 역시나, 앞에 무언가 막혀 있었다. 미치겠네. 이거라면 문 틈새로 발 써서 밀어내면 치울 수 있긴 한데.
    ······.
    그런데 나, 지금 발로 뭘 밀어낼 수가 없잖아.
    다쳤으니까.
    나는 다시 주저앉았다.

 

    "엿 제대로 먹었네······."
    나는 허탈하게 중얼거리며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이원에게 문자라도 보내면 어떻게 되겠지. 휴대전화 화면을 켠 나는 눈을 깜박거렸다. 배터리가 절반도 채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안테나는 하나밖에 뜨지 않았다. 뭐야, 왜 이래? 두 번이나 휴대전화를 껐다 켰지만 그대로였다. 당황하는 내 머릿속으로 이원의 말이 울렸다.
    실험동이라 휴대전화가 거의 안 터져.
    정말, 제대로 엿 먹었구나.
    설상가상으로 실험동 내부 전원을 전부 내렸는지, 벽에 있는 스위치를 닥치는 대로 눌러 봐도 전등 하나조차 켜지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멍청한 강솔.
    유사라가 '이원 친구도 싫어해'라고 했을 때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내가 이원이랑 친구라니. 그런데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구나. 나랑 이원은 계속 붙어 있었으니까. 유사라랑 차민정은 친구니까, 나랑 이원이 친구로 보였을 수도 있겠구나.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는데. 이원은 앞이 안 보이니까. 그러니까, 비장애인인 내가, 장애인인 이원이랑 친구로 보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정작 나는 못 했는데.
    그것보다, 나······ 밤새 여기 있어야 하나?
    왈칵, 두려움이 밀려왔다.

 

    휴대전화 배터리는 이제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안테나는 여전히 한 칸. 창문을 열면 전파가 통할지도 몰라. 나는 바닥을 기다시피 해서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창문까지 가는 사이에 몸이 책상이며 의자에 부딪혔다. 창틀로 기어 올라가다시피 해 창문을 열었다. 창문은 반만 열리는 안전창문이었다. 옆으로 겨우 절반, 머리와 어깨가 간신히 빠져나갈 정도였다. 한쪽 손으로 휴대전화를 쥐고 쭉 뻗으니 안테나가 두 칸으로 늘어났다. 됐어. 이제 전화는 걸 수 있겠다. 나는 손을 쭉 뺀 채 더듬더듬 휴대전화의 최근 통화목록을 불러오고 굳어버렸다. 여기에서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이원뿐이었다. 안내지에 수경 쌤이나 본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지만 안내지는 방에 있었다. 그리고 최근 통화에 떠 있는 이원과의 통화 기록은, 이원이 내 전화를 받지 않은 기록이었다.

 

    만약 내가 도움을 청했을 때 이원이 모른 척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떡하지?

 

    그때 기적처럼 휴대전화가 울렸다. 하마터면 진동 때문에 휴대전화를 떨어뜨릴 뻔했다.
    이원이었다.

 

    다시 팔을 거둬들이면 전화가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통화 아이콘을 터치했다. 스피커폰으로 돌리자마자 이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강솔 너 어딨냐! 멍청아!"
    "어······."

 

    왈칵, 눈물이 났다. 흐어어어어엉. 소리 내어 우는 게 휴대전화 너머에도 닿았는지, 이원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야, 너 어디 아프냐? 왜 울어? 너 어디야?"
    "나, 나 여기······ 실험동······."
    "실험동인 건 알아! 왜 거기 있어?"
    "너, 너 호출기 잃어버렸다고······ 유사라가······."
    이원이 한숨을 쉬는 소리가 이쪽까지 들렸다.
    "유사라를 믿냐! 내가 도움이 필요하면 너한테 말하지, 유사라한테 말을 하겠냐고!"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는 팔이 아픈 것도 잊고 소리를 쳤다.
    "발은 아프고, 걔네는 도망가고, 네가 부탁을 누구한테 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래서 뭐, 아, 밖에 캠프파이어 때문에 시끄러워서 안 들려! 나한테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이런 것까지 내가 말을 해야 하나.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도와달라고! 여기 실험동 302호야!"
    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앞도 제대로 못 보는 애한테 도움을 청하다니. 제정신인지. 아무리 나를 도울 상대가 이원뿐이라고 해도,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인가. 힘이 빠져서 휴대전화를 놓칠 것 같았다. 다시 울음이 밀려 나왔다. 울어버리려던 찰나, 침착해진 이원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렸다.
    "알았어. 금방 갈게. 나도 실험동 다 왔어. 3층이랬지? 창밖으로 뭐라도 내밀고 있어."
    "네가 어떻게 오려고······."
    "반향정위. 믿어 봐."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바닥났다.

 

    대체 어떻게 하려는 거지. 나는 팔을 거두어들이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어깨와 팔이 찌릿찌릿하게 아팠다. 창밖으로 뭘 내밀고 있으라고? 지금 내밀 수 있는 건 내 팔밖에 없는데, 팔이라도 내밀고 있으라는 건가?
    하지만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이원의 '금방 갈게'라는 한 마디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바보같이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 양팔을 최대한 창문 너머로 쭉 뻗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오 분, 십 분? 휴대전화가 꺼지자 시간이 가는 것도 잴 수 없었다. 어떻게든 이원이 찾아오리라 믿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반향정위로 나를 찾아내려고 이원이 애쓰고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그널이 쏘아내는 고주파수가 내 손을 찾을 수 있게 해야 하니까. 휴대전화조차 끊긴 지금, 이 덥고 깜깜한 곳에서 구원이라는 게 그것뿐이라니.
    밤은 시야를 좁게 하고, 이원은 달릴 수도 없는데, 정말 여기로 올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기다려야 했다.

 

    아, 더는 못 버텨.
    팔 떨어져 나갈 거 같아.
    그렇게 생각하며 두 팔을 거두어들이려 할 때.

 

    "강솔!"
    구원이 도착했다.

 

    저 아래에서 이원이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확인했다. 그러면······ 눈 감아!"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나는 이원의 말을 따라 눈을 꼭 감았다.
    선명하게 눈 안에 빛이 터졌다. 감은 눈 안에 빛의 잔상이 일렁였다.
    "이제 눈 떠."
    어쩐지 아까보다 목소리가 가까워진 것 같은데. 눈을 뜬 순간 나는 내 앞에 보이는 광경을 의심했다.
    3층 창문 앞에 이원이 떠 있었다.
    "아, 창문 이거 안 열리네. 너 뒤로 좀 가라."
    "야, 너 지금 뭐, 뭐 하는 건데?"
    "시끄러우니까 일단 뒤로 가라고!"

 

    내가 뒤로 물러서자, 다시 한 번 빛이 터졌다.
    빛이 사라진 뒤, 어둠 속에 서 있는 이원이 보였다.
    안전걸쇠가 뜯어진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아, 머리 울려······ 시그널 최대로 올리고 오다가 기절하는 줄 알았다."
    이원이 뜯어진 창문을 벽에 기대어 놓고, 바닥을 더듬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근데 내가 지금 뭐 뜯은 거냐?"
    "안전걸쇠······."
    내가 멍하니 대답하자 이원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창문을 뜯은 게 아니면 됐다. 나가서 닫는 걸로 대충 커버 치자······."
    나는 이원의 말을 들으며 급히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지금, 반향정위로 날 찾고, 3층 위치까지 날아왔······ 어? 그리고 안전걸쇠를······ 뜯었어? 어떻게? 뭘로? 그리고 나가서 닫는다고? 저기로 나가겠다고?
    "창문으로 나간다고?"
    "문으로 못 나가서 나 부른 거 아니었어?"
    아. 그랬지. 그렇긴 한데······.
    "여기, 3층인데······ 너, 아까, 번쩍 하고······."
    더듬거리는 내 질문에 이원이 바닥에 드러누우며 대답했다.
    "말했잖아. 외계인이라고······ 지구인에게 납치당하지 않으려면 필살기 하나는 있어야지······."

 

    어쩐지 그 말을 납득할 수 있었다. 너무 어이없는 상황에 상식이라는 필터가 멈춰버린 탓도 있겠지만. 남들이 보기엔 그냥 시각장애인 여자애니까 잡혀갈 수도 있고, 끌려갈 수도 있다. 그러니까 지구인에게 잡히지 않을 만한 필살기 하나는 있어야 여태까지 어디론가 사라지지 않고 외계인으로 지낼 수 있었을 거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이원이 비틀대며 일어섰다.
    "여기 있지 말고, 나가자. 업혀."
    끄덕끄덕거리다 나는 곧 정신을 차리고 이원의 팔을 손가락으로 톡톡 쳐 알았다는 대답을 했다. 나는 이원의 등에 업혔다.
    "야, 나가면 네가 길 찾아라. 나 머리 아파 기절할 거 같다."
    창문을 활짝 열고, 우리는 공중에 떠 있었다.
    바람에 나뭇잎이 떨어지듯 부드럽게 우리는 땅으로 내려앉았다.
    창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굳게 닫혔다.

 

    실험동에서 숙소까지 긴 길을 걸으며 나는 이원에게 물었다.
    "호출기는 어떻게 된 거야?"
    "영화 볼 때 줄 걸려서 풀어 놨는데, 그때 몰래 가져갔나 봐. 헤드폰 쓰고 있어서 몰랐어. 나중에야 알았는데 그거 가져가서 뭐 하나 했지. 이런 데 쓰는구만."
    나는 비틀거리는 이원이 잡기 좋게 팔꿈치에 힘을 주었다.
    걸으며, 나는 계속 물었다. 어색한 밤의 침묵을 깨기 위해. 혹시라도 내 입에서 고맙다는 말이 나올까 봐. 정말로 고마워서 다시 엉엉 울고 싶었지만 따지고 보면 이건 다 이원 때문인데 고맙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바보 같은 자존심. 나는 내 속마음이 들리지 않게 계속 이원에게 물었다.
    "걸쇠······ 어떻게 자른 거야?"
    "초음파 커터. 그것도 필살기. 미세하게 조정해야 해서 엄청 힘들어."
    "초음파로 다 해결하는 거야? 날아다니는 것도?"
    "내가 숨도 초음파로 쉰다고 하지 그러냐······. 날아다니는 건 나도 자세히 몰라. 종족 특성이야."
    "진짜 외계인이구나."
    "빨리도 믿는다."

 

    숙소 앞은 조용했다.
    "야, 좀 숨어 있을까?"
    이원의 말에 나는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왜?"
    "너 가둔 애들이 캠프파이어 보고 오다 놀라 자빠지라고."
    "그거 재밌겠네. 콜."
    나뭇잎 사이에 몸을 숨기고 쭈그려 앉아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깨와 어깨가 맞붙어 있어 말할 때마다 진동이 느껴졌다.
    "애들이 좀 멍청했어. 내가 반향정위 달고 다니는 걸 알면 고주파 실험실에 널 가뒀어야지 혼선되게."
    "끔찍한 소리 하지 마."
    그런데 정말 고주파 실험실에 갇혔으면 날 못 찾아냈을까? 아니, 이원이 나를 찾으려고 생각한 게 더 신기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애들이 내가 못 나온다는 걸 알아채면 누군가를 부를 텐데. 이원은 어떻게 알고 굳이 날 구하러 온 걸까.
    "문자 왔어."
    "뭐라고 왔어?"
    이원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문자 내역을 불러왔다. 경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수신된 메시지입니다. 네 파트너 아직 안 나왔어? 이원이 다음 문자를 불러왔다. 미안해. 네 파트너 실험동에 있어.
    "기가 막혀서 문자 온 번호로 전화 걸었는데 내 전화 안 받더라고.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데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네가 전화로 말해 줘서 걔네 둘인 거 알았다."
    "하하······."
    힘없이 웃는 내 어깨를 이원이 툭, 쳤다.
    "말할 거야? 수경 쌤이나 다른 사람들한테."
    "글쎄. 그러려면 네가 외계인인 것까지 밝혀야 할 것 같은데."
    "으음. 아무래도 그건 좀 곤란해서."
    "그래서 지금 내가 너 때문에 감금당한 걸 그냥 넘어가 달라는 거야?"
    조금은 풀어진 내 말투에 이원이 뒷목을 주무르며 대답했다.
    "화를 낼 거면 나한테 내. 나는······ 걔네가 왜 날 싫어하는지 이해하니까."

 

    나는 여기서 다른 사람들에게 굽히고 살 필요가 없어. 지구를 떠나면 그만이잖아. 내가 살던 별에는 앞을 못 본다고 불쌍해하거나 하찮게 여기는 사람은 없어. 시각이 없는 게 정상이니까.
    그런데 차민정은, 그냥 여기서 타협하며 살아야 되잖아. 캠프가 끝나면 비장애인들 득시글거리는 배려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는 거잖아. 그런 생각 하면, 내가 뻔뻔하게 구는 것만 봐도 엿먹이고 싶은 거 이해는 해. 잘했다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좀 숙연해지려던 찰나에 이원이 덧붙였다.

 

    "날 못 가둔 것도 그런 거야. 난 갇히면 혼자 힘으로는 절대 못 나와. 그런데 넌 보이고 들리니까, 어떻게든 빠져나올 거라 생각을 했나 보지. 네가 다리를 다친 건 걔네는 당연히 몰랐을 거고."
    어둠에 눈이 익으니 이원의 반팔과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상처들이 보였다. 무릎도 까져 있었다. 넘어졌구나.
    "날아서 오지 왜 실험동까지 걸어왔어?"
    "미쳤냐? 들키면 어쩌라고."
    "그러네······ 너 다쳤다. 안 아파?"
    "아파. 들어가면 약 발라 줘."
    아무리 조심해도 나뭇가지나 그런 걸 다 볼 수가 없으니까 잔뜩 긁히네, 이원이 혀를 찼다. "안 보이게 내일은 긴소매랑 긴바지 입어야겠다."
    그 말은 아마 배려였을 거다. 상황을 골치 아프게 만들지 않으려는 배려. 적어도 이 장난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진 않았을 거라는 순진한 믿음을 배반하지 않으려는 배려.
    "망했다. 연구주제 발표 준비할 시간 하나도 없네."
    이원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개요는 아까 잡아 놨잖아."
    "그거 농담이었는데."
    "난 괜찮은 거 같은데?"
    이원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심이야?"
    "응."
    내 확신 어린 대답에 이원이 깔깔 웃었다.

 

    "좋네. 그러면 주파수 분석만 하지 말고 드론에다 고주파 발생기를 달아버리면 어떨까? 돌고래용 챗봇 같은 거야. 여기저기 흩어진 돌고래들한테 라디오 방송을 해주는 거지. 이쪽 소식도 전해 주고. 돌고래 소식도 모집하고."
    나는 이원의 원대한 스케일에 한숨을 푹 쉬었다.
    "저기, 인간 세계에는 고주파를 사용하는 다른 기계도 있는데······ 기계 다 망가질 것 같은데."
    "저한테는 기계보다 고래가 소중하거든요."
    "여기 아직 지구거든요. 너 아직 지구에 있다고."
    이 외계인은 내가 감동에 빠질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도 솔깃한 아이디어였다. 어차피 현실성이 있는 건 현실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해야 하는 분야지, 곧 이 별을 떠날 외계인의 관심사는 아닐 터였다. 캠프파이어가 끝난 건지 바람을 타고 더운 공기 사이로 사람들이 내는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놀래킬 준비 하자."
    "아. 응."
    일어서다가 비명이 저절로 나왔다. 오래 쭈그려 앉아 있었더니 발등이 쑤셨다. 나는 이원이 일어서는 걸 부축하며 말했다.
    "들어가면 내가 약 발라 줄게, 발등에 금 갔는지 시그널로 좀 봐주라."
    "너 약 발라 주는 거 봐서."
    불빛들이 흔들리며 숙소 쪽으로 다가왔다. 톡톡 땅을 치는 소리와 휠체어 바퀴 끄는 소리, 말소리도 함께. 나는 풀숲 밖으로 뛰쳐나갈 타이밍을 엿보며 이원의 손을 잡았다.
    "그거, 연구주제 제목은 뭘로 할까?"
    "글쎄. 넌 뭐 생각해 놓은 거 없어?"
    "고래고래 통신?"
    내가 농담 삼아 던진 말에 이원은 씩 웃었다.
    "지금까지 지구인이 한 모든 작명 중에 가장 맘에 든다. 너 통신국장 시켜 줄게."

 

    하나, 둘, 셋 하면 뛰쳐나가자.
    그리고 방에 돌아가면 씻고, 약 바르고, 연구주제 발표 준비하는 거야.
    하나.
    둘.

 

 

 

 

 

 

 

 

 

 

 

 

 

 

 

전삼혜

작가소개 / 전삼혜

    한국 SF를 더 읽고 싶었고 나아가 SF작가들과 같은 필드에서 겨루고 싶어 SF를 쓰기 시작했다. 대학 재학 중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부문을 수상하며 데뷔했고, 2011년 백일장 이야기를 담은 첫 장편소설 『날짜변경선』을 문학동네에서 출간했다. 『날짜변경선』은 2017년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지원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SF 단편 「소년소녀 진화론」을 시작으로 청소년 SF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퀴어 청소년 이야기를 다룬 단편 「창세기」의 한국어 및 영역본으로 2016년 퀴어 축제 《무지개책갈피》 부스에 참여했다. 장편소설 『날짜변경선』과 SF 단편 4편을 포함한 단편 모음집 『소년소녀 진화론』, 경장편 『전지적 마왕 시점』을 출간했고, 청소년 소설 앤솔로지를 포함 약 10여 권을 출간했다.

 

   《문장웹진 2019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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