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있어서 구원

[단편소설]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

 

 

채기성

 

 

 

    그해 나는 가톨릭 사제가 되려고 했었다.
    만 서른 전까지만 신학대학교 편입이 가능했기 때문에 그해가 내게는 사제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교적이 있던 성당의 신부님에게서 추천서를 받고, 예비 신학생 모임을 다니면서 신학대 편입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그동안 걸어왔던 이십대의 길에서 벗어나 한편으로 비켜서 있게 됐음을 깨닫게 됐다.
    옆으로 물러서서 그동안의 이십대에게 가던 길을 내준 다음, 이십대가 나를 앞서서 가는 것을 바라본다. 비켜서 있던 나는 옆으로 난 작은 길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말하자면 그런 기분이었다. 예비 신학생 모임을 하며 오가던 혜화의 거리에서 피어나는 생동이 나에게는 어쩐지 길을 내준 이십대의 그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생동의 길을 이제는 다시 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예비 신학생 모임에 나와 함께 다니던 준우의 얼굴에는 내 것처럼 보이는 쓸쓸함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으로 깊숙이 저며 드는 어떤 종류의 공허함과 소외를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을 서로에게 말하거나 드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넌 결국 사제가 될 수 없을 거야.
    모임을 마치고 습관적으로 맥주를 마시러 찾아간 곳에서 준우가 그 얘기를 꺼냈을 때, 차라리 그렇게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며 갑작스레 반향하듯 떠오른 생각 때문에 나는 놀랐다. 도로 중간에 멈춰서 견인차를 기다리는 차처럼, 어딘가로 가려고 애쓸 필요 없이 누군가 그대로 이끌어 가는 대로, 그저 내버려두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같은 것들이 함께 떠올랐던 것이다. 어떤 선택이든 양가적인 감정을 갖게 되기 마련이니까. 나는 그 생각으로 자꾸만 의식을 비집고 헤어 나오는 그런 감정과 목소리들을 밀어냈다. 그렇지만 어떻게 돼도 그만이니까, 같은 생각이 왜 그렇게 강하게 의식 저변에 밀착되어 있다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튀어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제가 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동시에 벗어나고 싶은 마음.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큼은 숨기고 싶은 그런 마음 때문인 걸까.
    내가 포기하기라도 할 것 같아서?
    준우에게 반문하면서 맥주가 들어 있는 잔을 들어 올렸다. 입에 살짝 닿은 맥주 거품이 입술 안쪽에서 뭉개졌다.
    넌 지금도 사제 같아 보이거든.
    준우의 머리 뒤로 소란스럽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한두 사람이 취했는지 심하게 휘청거렸고 함께 들어온 몇이 취한 사람을 부축하고 있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착해 보이잖아, 너는.
    빈 테이블로 향하던 무리 중 유난히 취해 있던 한 중년의 남자가 팔꿈치로 준우의 어깨를 건드렸다. 준우는 옆으로 고개를 들어 자신을 건드린 노란 재킷을 입은 남자를 살짝 올려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내 경험상, 사제가 잘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 정말 사제가 되는 경우는 드물더라고.
    취한 무리들은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여전히 취기에 들떠 있는 채로 목소리를 높여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상대방의 말에 반박하듯 언성을 높이던 노란 재킷의 남자가 준우의 어깨 위에 팔을 걸치고는 기대다시피 서 있자, 준우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다시 남자를 확인한 다음 팔꿈치로 신경질적으로 밀쳐냈다.
    사제가 전혀 연상되지 않는 의외의 사람들이 되더라니까, 나처럼.
    준우는 히죽 웃더니 내가 잔에 부어 놓은 맥주를 가볍게 들어서는 목을 젖혀서 넘겼다. 상체가 우람한 그에게 소품처럼 보이는 유리컵 때문인지, 맥주를 마시는 게 아니라 작은 잔에 담긴 에스프레소를 단번에 넘겨버리는 것처럼 보였다. 준우에게서 멀찌감치 튕겨나가 버린 남자는 여전히 취해 있는지 그 자리에서 그저 눈을 깜빡거리고만 있었다.
    너는 그 길을 선택한 게 아니야.
    농담처럼 짓고 있던 장난 어린 표정은 어디 가고 준우는 나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취한 무리의 사람들이 준우 뒤를 어지럽게 서성이고 있는 모습이 위태롭게 보였다.
    그쪽으로 도망가는 거지.
    나와 눈이 마주친 준우의 눈꺼풀 한쪽이 떨렸다. 거짓말 탐지기처럼. 그건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면서도 싫어할 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 그가 종종 내게 직설할 때마다 나는 가늘게 떨리는 그의 눈꺼풀을 바라보고는 했다. 그게 취미인 것처럼 준우는 자주 사람의 마음을 건드렸다.
    넌 절실함이 없어.
    어쩌자는 거냐며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나는 말없이 준우를 보며 숨을 내쉬었다. 그 말이 감정을 그을려서 불꽃을 내더니, 그 열기로 가슴을 점점 부풀어 오르게 하고 있었다. 그때 더 이상 못 참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건 내가 아니라 준우였다.
    취한 무리 사람들이 오고 가며 자신의 몸에 닿는 게 결국 거슬렸는지 준우는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봤다. 무리의 사람들은 대부분 육십대 이상으로 보이는 남자들이었다. 공통적으로 마른 사람들이었고, 키가 다 고만고만하게 작고 왜소했다. 술기운이 목이며 얼굴에 붉게 점화되어 있었다. 준우는 벌떡 일어난 채 뒤에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노려보더니, 자기보다 서른 살은 많아 보이는 사람들을 노려보면서 들릴 듯 말 듯하게 욕을 섞어 가며 경고하듯 말했다. 덩치가 좋고 키가 큰 준우에게 두세 사람이 가려질 정도로 상대방들은 몸집이 작았다.
    나는 내 눈앞에서 뒤섞여 흔들리는 광경을 약간은 취기가 오른 채 바라보고 있었다. 준우가 사제가 된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눈꺼풀이 심하게 떨리는 것과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직설을 하고, 곤란한 상황을 참아내지 못하면서 쉽게 분노하게 될까. 그런 생각들과 함께 나는 준우가 내게 했던 도망이라는 말을 곰곰이 씹어 보고 있었는데, 대체 어디로부터의 것을 말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다가 그게, 정혜에게까지 닿아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간혹 서점에는 자기가 만든 책을 소개하러 오는 사람이 있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지 한가운데 위치해 있는 것도 아니고, 동네의 오래된 사진관이며 세탁소, 미용실 같은 상점들에 묻혀 있는 작은 독립서점을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책을 입고시키려 하는 사람들은 종종 있었지만 그렇다고 책이 팔리는 것도 아니었다. 서점 주인이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낮 시간 동안 내가 서점을 맡게 된 것도 역시 책이 잘 팔리지도, 생계를 유지해 갈 수 있을 만큼의 수익이 나는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서점 일이 크게 신경이 쓰일 만한 것은 없어서 간혹 우두커니 앉아 책을 읽었다. 서점은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 오후 한나절 내내 햇볕이 통째로 쏟아질 듯 안쪽으로 들어왔다. 책장의 한 페이지를 읽고 넘기면, 그만큼 빛이 옆으로 이동하고 있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서점의 시간은 책장 사이에 있었다. 그 시간이 나른한 표정으로 담벼락 위에 올라 졸음에 겨워하는 동네 길고양이의 그것 같다고 나는 가끔 생각했다.
    해리도 자신의 책을 알리기 위해 서점에 방문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독립출판으로 만든 책을 직접 서점에 홍보하고, 입고가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서점의 사정이 그렇게 녹록하지도 않고, 책이 잘 팔리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줬지만, 그녀는 자신의 책을 서점에 두고 싶어 했다. 해리는 그때부터 자주 서점을 찾아왔다. 그녀는 올 때마다 서점 안에 하나밖에 없는 테이블에 앉아 책들을 읽다가 돌아가고는 했다. 서점 책장 한편에 놓아 둔 해리의 책은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들의 일상을 기록한 사진집이었다. 나는 가끔 그 사진집을 열어 보았다.
    해리는 지각이라도 한 것처럼,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서점 문 앞으로 가쁘게 뛰어 들어오고는 했다. 나는 해리가 저 멀리서 오고 있는 모습을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볼 때마다 서둘러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리가 서점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신기하게도 지금은 없는 다른 계절의 냄새가 났다. 해리는 방금 내가 비켜난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그렇게 같은 공간에서 동선을 달리하던 해리와 가까워지게 된 것은 그녀의 고양이, 잃어버린 고양이 때문이었다.
    혹시, 이런 고양이 본 적 없으세요?
    키우던 두 마리 고양이 중에서 한 마리가 가출을 했다며 서점 문을 열며 해리가 사진을 내밀었다. 분명히 그녀의 사진집에 있는 고양이 중 하나였다.
    알죠, 잘 알고 있죠.
    해리는 서점 주변이나 동네 어귀에서 자신의 고양이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은 것이었는데, 나는 그녀의 사진집 속의 고양이를 서둘러 떠올려버린 것이었다.
    어떻게…… 아, 책을 읽으셨구나.
    의아해하면서 같이 치켜진 눈썹이 고양이를 아는 이유를 짐작하고 나서는 다시 미소와 함께 내려앉았다.
    집을 나가서요.
    미소는 금세 사라지고, 이내 해리는 힘없이 말했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 멀리 안 가는데, 겁이 많아서 몸을 숨기면 잘 못 찾거든요.
    그녀가 서점과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고양이가 멀리 못 간다고 하면 동네 근방 어딘가에 있을 것이었다. 나는 서점 문을 잠시 잠가 두고 해리와 함께 주변으로 고양이를 찾으러 나섰지만, 쉽게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저기.
    무엇인가 본 것처럼 해리가 골목 입구 어귀에 서 있던 검은색 미니밴 쪽을 가리키며 달려가서 나도 따라갔다. 밴 밑으로 계속 두리번거리면서도 무릎 길이의 스커트를 입어서인지 좀처럼 허리를 숙이지 못하는 해리 대신 내가 두 무릎을 땅에 맞대고 재빨리 아래 공간을 둘러봤다. 그러나 그 아래 있는 것은 다른 길고양이였다. 나는 무릎을 털고 일어나면서 찾고 있던 고양이가 아니라며 말할 참이었는데, 그때 사선으로 내 목덜미 근처로 해리의 시선이 닿아 있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러니까 굽혔던 허리를 완전히 편 그때는 해리의 시선이 이미 나를 지나쳐 가고 있었다. 잠시 마주쳤던 해리의 눈빛이 조각으로 잘려 바람개비처럼 눈앞에서 빙그르 돌았다.
    아닌 건가.
    해리는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시선은 이제 내게 닿지 않고 다른 곳을 서성였다.
    괜히, 죄송해요.
    해리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바쁘신데, 제가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까 봐요.   
    그녀는 그렇게만 말하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뒤돌아섰다. 나는 발걸음을 옮기는 그녀를 그저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때, 나도 모르게 손을 뻗으며 그녀를 불러 세웠다
    저기요, 저기.
    여자가 반쯤 고개를 돌렸다. 착각인가, 그렇게 생각한 것처럼 그녀는 다시 고개를 바로 하고, 두서너 걸음을 앞서 걸어갔다. 그때,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앞으로 걸음을 내딛고 있을 때, 그 걸음을 멈추게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나는 그녀의 세계에 속하지 않을 그런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그녀가 내게로 방향을 틀었을 때, 나의 삶의 방향도 함께 그녀 쪽으로 얼마간 움직였던 것이다.
    조금 더 같이 찾아봐요, 찾을 때까지.
    날이 저물고 있는 순간이었는데, 붉은 해를 뒤에 두고 서 있는 그녀의 앞모습이 검게 그을린 것처럼 어둡고, 아까 나를 보던 그 눈빛만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정혜에게서는 가끔 연락이 왔다. 아직 나와 함께 근무했던 회사를 다니고 있는 정혜는 내가 알 만한 사람들의 안부를 뜬금없이 전해 주기도 하고, 그 자신이 근래 시작하고 있는 운동이 좋다며 일러주기도 했다. 서점에서 일하면서 책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하자, 그녀는 한심하다는 듯 정신을 차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왜 회사를 나가서 그 고생이냐며 버릇처럼 정혜가 종종 내게 충고를 하고 나면, 나는 그게 정혜가 잘살고 있다는 증거인 것만 같아 내심 기분이 나아지기도 했다. 정혜를 생각하면 나는 몹시도 어두워지고는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언제 한번 볼까, 라고 정혜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아무 말 없이 침묵했다. 정혜도 내 침묵의 의미를 아는지 그냥 해본 소리라며 얼버무리고는 했다. 나는 되도록 온건하게 정혜에게서 멀어지고 싶었지만, 가끔 정혜는 수시로 그 간격을 자의적으로 좁히려고 했다. 나는 이만큼이나 멀리 와 있었는데 틈만 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돌아가 있는 상태로 관계를 좁히려는 정혜가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게 연락을 받지 말았어야지.
    예비 신학생 모임을 마치고 간 스타벅스에서 정혜 얘기를 꺼내자 준우는 그렇게 대꾸했다. 이른 봄이 시작된 혜화의 스타벅스에는 어두운 톤의 점퍼와 패딩을 입은 사람들과 밝은 무늬의 가벼운 옷을 껴입은 사람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어두운 톤의 점퍼를 입고 있는 사람들은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어 온 것 같았고, 문을 열 때마다 빛을 등에 이고 온 것 같은 밝은 무늬의 옷을 입은 사람들은 언제든 바깥으로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준우와 마주하고 있던 나는 우리가 이곳의 겨울옷과 봄옷의 사람들 그 사이 어디에도 섞이지 못한 고립된 다른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 유독 사람이 많은 곳에 올수록 그런 감정을 느꼈다.
    정혜가 너를 놓지 못한다기보다 네가 놓으려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잖아.
    준우가 내게 꾸짖는 말투로 말했다. 그의 서슴없는 말들은 나를 초라하게 했다. 그는 꼭 정혜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내게 공감하기보다 늘 그렇듯 직설의 말로 나를 베었다. 상처를 내지 않으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며 충고하는 듯이.
    죄가 뭐라고 생각해.
    나는 문득 생각난 말을 준우에게 던졌다. 준우는 사이즈업해 주문한 돌체라떼를 손바닥으로 움켜쥐고 뱅글뱅글 돌리며 나를 바라봤다. 섞지 말고 층을 살려 마시는 거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준우는 흔들어 마시기 위해 늘 라떼를 선택하는 것 같았다. 그는 순순히 무엇인가를 그대로 두는 법이 없었다.
    그건 갑자기 왜? 준우가 담담하게 반문했다.
    남에게 해를 입히는 것만이 죄가 아닌 거야.
    무슨 말을 하려는 건데?
    준우가 사납게 대꾸하자,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입을 닫아버렸다.

 

    해리의 고양이는 결국 찾을 수가 없었다. 고양이를 잃고 크게 상심해 보였던 해리는 이전보다 자주 서점에 들렀고, 그저 가만히 앉아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전처럼 해리가 오면 자리에서 일어섰던 나는, 이제 그녀의 맞은편에 그대로 앉아서 책을 읽었다. 서점 일을 마치고는 저녁 오후 시간을 별다른 일 없이 함께 산책을 하거나, 한강변에 가서 나란히 앉아 있기도 했다. 해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녔지만 그만둔 후에 인근에 있는 대학의 수의학과에 다시 편입하면서 이쪽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공원에서 만난 두 마리의 새끼길고양이들 덕분에.
    해리가 강 건너 빌딩 쪽을 멀리 바라보며 한동안 꺼내지 않았던 자신의 고양이들에 대해 말했다. 나이가 같은 해리와 자주 시간을 보내면서 말을 놓고 지내기로 할 무렵이었다.
    내 인생이 통째로 바뀌어버린 거야. 이제 그중 하나는 없지만.
    섭섭함이 담겨 있는 표정이 마주 오는 바람 속으로 밀려들어갔다. 한강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 있다가 해리가 말을 할 때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람의 유속에 따라 헤엄치듯 그녀의 눈가가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했다.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저 그녀를 감싸거나 휘감는 바람의 결을 느끼는 게 좋았다. 해리가 그 고양이들을 직접 보살피고 싶어 수의학과에 가게 된 거라고 덧붙여 말할 때는 그녀의 눈가에 작은 주름들이 지어졌다.
    한강변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가는 동안 길 양쪽으로 늘어선 가로수 중앙에 검게 비어 있는 하늘이 보였다. 비가 오고 청명해진 날씨 때문인지 구름 없이, 검다 못해 투명한 밤하늘이었다.
    사제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
    나란히 길을 걷던 해리가 하늘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해리가 그렇게 물어 왔을 때는 그 투명한 밤하늘이 모두 땅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것 같은 착시가 일었다. 왠지 모르게 그 말이, 조금 어지럽게 느껴져서였다.
    글쎄…….
    나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해리의 옆모습을 잠시 쳐다봤다. 해리의 모습이 혜화의 스타벅스를 드나들던 밝은 옷을 입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 같았다. 그때 뭔가 나는 이 검은 세계에 그대로 멈춰버리고, 해리는 밝은 옷으로 갈아입고 볕이 드는 문 쪽으로 걸어갈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내가 영원히 넘어설 수 없는 문이라는 생각을 하자 해리와 같이 걷다가도 이따금씩 서러워졌다.   
    죄를 짓지 않고 싶어서.
    해리가 가만히 나를 옆으로 돌아보더니, 죄를 짓지 않고 싶어서 사제가 되겠다고? 하고 다시 물어 왔다.
    응, 아마도 그런 이유로.
    말을 마치기도 전에 터진 해리의 웃음이 양편의 가로수 길 밖으로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러고 보니 해리가 그렇게 활짝 웃는 모습은 처음이었던 것 같았다.
    정말, 오랜만이야.
    뭐가?
    나를 웃게 만든 거. 엄마가 아빠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라는 영화를 보고 너무 좋아서 내 이름을 해리로 지었다는 걸 처음 들었을 때만큼, 정말 웃겨.   
    해리는 웃음을 연발해 터뜨리다가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멈춰 서서 한참을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딛으면서 가만히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웃음이 이제 막 지는 꽃잎처럼 동시에 잦아들던 때였다.
    그게 그녀의 단순한 감정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나와의 어떤 종류의 시작이었는지 그때의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그 순간이 지금 내 삶의 영역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경계의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그때 일이 생각나는 걸까.
    해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이 내 손가락 사이로 파고 들어와서는 힘을 주어 움켜쥐었다.
    아빠.

 

    고등학교 때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언니를 따라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온 적이 있었어. 그때 역에서 우연찮게 아빠를 본 거야.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의 손을 잡고 있는 아빠의 모습을. 그런 표정을 본 적이 없었어. 엄마를 대할 때는 표정이랄 게 없었거든. 다른 사람의 손을 맞잡고 기대감에 찬 모습으로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거야.
    언니도 함께?
    아니, 언니는 나를 앞질러만 갔지 내가 왜 그렇게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도 않는지 알지 못했어. 처음 보는 서울이 낯설거나 규모에 압도당한 줄로만 알고 있었겠지.
    아버지가 아닐 수도 있었잖아.
    해리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아니, 아빠가 신은 샌들 안쪽으로 내 것과 꼭 닮은 발가락이 가지런히 모아져 있었어. 내가 사드렸던 그 샌들 안쪽으로. 그걸 모를 수는 없지. 역 안의 많은 사람들 틈에서 나는 그때 아빠의 그 촌스러운 샌들이 제일 먼저 보이더라고.
    그래서.
    샌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다리와 신발들에 묻혀 점점 사라질 때까지 나는 지켜보고 서 있었어. 아빠와 여자가 아니라 그 촌스럽고 투박한 샌들만. 그 샌들 앞쪽을 발가락으로 꾸욱 누르고 있는 모습을. 누가 잡아끌어 간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게.   
    그때의 장면이 선명히 보이는 것처럼 해리는 길 앞쪽을 가는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아빠의 샌들이 보이지 않게 됐을 때, 나는 직감했어. 나는 아마도 아빠를 잃을 것이라고.
    돌아오는 길은 이제 끝나고 있었고, 해리와 나는 손을 잡은 채로 해리가 살고 있는 빌라 앞에 섰다.
    그런데 그거 알아?
    어떤 걸?
    그런데 그런 건, 사실 잃는 게 아냐. 버리는 거지.
    해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그건 그녀가 내게 자신이 품고 있던 비밀 하나를 열어서 보인 것이라는 것을 나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는지는 되도록 가늠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껏 내가 만났던 사람들도 그때의 아빠와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
    해리는 옆으로 돌아 나를 빤히 쳐다봤다. 뭔가를 알아보고 싶어 하는 눈빛으로.
    죄를 짓고 싶지 않다고 했지?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죄를 짓지 않아 줄 수 있어?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해리는 웃어버렸지만 나는 그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해리의 눈빛은 나에게 해답을 구하기보다 어떤 간절함을 담은 것처럼 보였다. 투명하고 공허한 그 눈빛 너머로 그녀가 감당해 왔을 상처와 오래된 비밀의 무거움이 내게 건네졌다. 나는 그 무게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서 있었다.
    '넌 절실함이 없어.'
    나는 그때 준우가 내게 했던 그 말을 떠올렸다. 해리에게서 느껴지던 절실함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나는 이내 궁금해졌다. 그때 상대적으로 가볍기만 한 것 같은 나의 무게가 시소처럼 들어 올려졌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지금 어떤 존재여야 하는 걸까, 그런 물음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사제가 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준우였다.
    방통대 뒷길 쪽에서 낙산공원으로 향하는 계단길에서 준우가 막 그 얘기를 꺼냈을 때는 이제 막 여름 한철이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사람들은 빈 몸에 가깝게 옷을 입기 시작했고, 준우와 나는 아직 두 겹 정도의 옷을 껴입고 다녔다.
    내가 사제가 되는 게 신의 뜻이 아닌 것 같아서.
    큰 몸을 헐떡이며 계단을 오르면서 준우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 선택은 온전히 준우의 것이었음에도 그 말을 듣고 난 이후 내게 불씨가 없는 것 같은 마른 분노가 일었다. 이제 와서 신의 뜻을 핑계로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게 앞뒤가 맞지 않기도 했고,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일들에 쉽게 분노를 표출하던 그의 심지가 이제 와 가소롭게 여겨져서였다. 그런 일을 천연덕스럽게 쉽게 얘기하는 그가 또, 얄밉게도 보였다.
    겁나서 그런 거야.
    누가?
    평소의 그처럼 준우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그 말에 갇힌 사람처럼 준우는 잠시 허둥거렸다.
    아냐, 아냐.
    아니긴.
    아니라고!
    아니면 아니지, 왜 그렇게 화를 내?
    계단을 내려오던 앞쪽의 남녀가 우리 쪽을 힐끗 쳐다봤다. 요즘의 우리는 만나면 늘 이런 식이었다. 서로를 미워하고, 보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도 서로가 잘 견디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 만나고 있는 것처럼.
    준우가 숨을 가쁘게 내쉬다가 멈춰 섰다.
    고통스러워서 그래.
    준우는 숨을 뱉어내듯이 말했다.
    너도 알잖아. 내 지랄 같은 성격.
    준우의 낯빛이 쓸쓸하고 거칠어 보였다.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미안해진 내가 위로처럼 말을 건넸지만, 준우는 마다하는 듯 손을 들어 내 말을 끊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이건 신의 일이잖아. 그럼 신의 뜻을 따라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거스를 수 없겠더라고.
    뭘?
    나라는 사람을 말이야. 내가 가진 기질과 품성, 이상, 이런 것들을 거슬러야만 신의 뜻을 받을 수 있는데 그게 잘 안 돼. 고통스러워.
    걸어온 게 힘이 든 건지, 아니면 그런 내면의 갈등을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인지, 준우는 계단 위에서 양쪽 무릎을 손으로 짚으며 허리를 굽혔다. 나는 준우가 이제 다시는 마음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체념의 표정은, 이상하게도 해리가 아버지를 말했을 때와 조금은 닮아 있는 것 같았다.
    죄가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지?
    응, 아마도.
    그때부터였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게.
    준우는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양옆으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이마와 구레나룻 옆으로 겨우 땀이 삐져나왔다. 준우는 온 힘을 쓰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허리를 세우고는 말했다. 마치 화가 난 듯이.
    신의 뜻을 받아내지도 못하면서 사제가 되겠다는 게, 내겐 죄야.
    나는 혼자가 된 것 같았다.

 

    내가 예비 신학생 모임을 나가지 않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해리와 함께하는 시간이 커져 갈수록 나는 어떤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깨닫게 됐다. 사제가 되고 싶다는 나의 지향은 그대로였지만, 이제는 순수하게 그것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해리의 존재가 함께 떠올랐다. 그리고 그 양상은 이제 내게 어느 한쪽으로의 선택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제가 되는 것과 해리와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함께 공존할 수 있을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신의 세계를 지향하려고 했을 때, 나는 이미 그 세계에 속해 있는 사람이었다. 해리는 그 세계 바깥에 존재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느새 해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면 나는 이 세계를 빙빙 돌다가 원심력으로 한 번에 해리에게 닿는 상상까지 하고는 했었다. 내게, 신의 세계 밖에서 잡고 싶은 것이 생긴 것이었다.
    사제가 되고 싶어 하잖아.
    예비 신학생 모임에 가지 않고 있다고, 더 이상 갈 계획도 없다며 고백처럼 다짐하는 나에게 해리가 말했다. 왠지 해리에게서 그 말을 듣는 것이 내게는 이질적으로 들렸다.
    다른 의미를 찾아보려고. 굳이 그 길이 아니더라도.
    진심이야?
    해리가 조심스러운 어투로 물었다. 그녀는 더는 묻지 않았다. 나는 그날 해리를 떠나지 않고, 그녀의 집에서 새벽까지 함께 있었다. 해리가 내 가슴속에서 작은 새처럼 떨었다.

 

    해리와 내가 상처와 기억을 가감 없이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이어져 갈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거나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모름지기 해리와 나의 관계의 크기는 서로의 상처를 자양분 삼아 점점 자라 오고 있었다. 그렇게 함께 공유했던 것들은, 그녀가 나를, 내가 그녀를 떠나야 하지 않을 이유들로 서로의 몸 안에 스며들어 잠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서로에게 꺼내 놓았던 상처들은 우리가 관계의 깊이를 키워 갈수록 가끔 미묘하게 비틀렸고, 그래서 배타적으로 밀어낼 수밖에 없는 성질이 되어 가기도 했다. 그런 상황 앞에서 해리와 나는 종종 당혹스러워하기도 했다. 정혜의 문제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몇 번쯤인가 정혜가 연락을 해왔다. 해리와 함께 있을 때였다. 처음 몇 번은 함께 있을 때도 해리의 연락을 받았지만 그다음부터는 받지 않았다. 그러고도 계속 연락이 왔다. 해리가 정혜에 대해 물었다. 서점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휴대폰 액정 위에 뜬 정혜의 이름을 해리가 보고 나서였다.
    예전에 만나던 그 사람인가 봐, 해리가 짐작한 듯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연락을 하지 않고, 받기만 해.
    그런데 왜 아직까지.
    나는 대답을 망설였고, 해리는,
    이유가 있나 봐.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내 대답을 기다렸다.
    죽어버릴까 봐. 그 애는 늘 혼자여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는 없었다. 더 충분하게 설명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게 전부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 말을 할지 망설였지만 나는 결국 입 밖으로 내뱉어버렸다.
    내가 버렸기 때문에.
    해리는 내게서 시선을 거둬 다시 책으로 가져갔다. 차분한 듯 보였지만 애써 불편한 감정을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양쪽 어깨가 솟아 경직되어 있었다. 테이블 위에 붙여 놓은 것 같은 양쪽 팔의 두 손이 힘을 준 채로 동그랗게 말아져 있었다.
    있잖아.
    고개를 숙인 채 해리가 말했다.
    나 요즘, 동물들의 죽음에 점점 무뎌져 가나 봐.
    테이블을 비추던 볕도, 서점 밖에서 들리던 새소리나 서점 옆에 있는 미용실에 들리던 동네 아주머니들의 소리도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해리의 목소리만이 또렷하게 들렸다. 해리는 학교에서 동물들을 대상으로 실습을 할 때마다 힘들어하고는 했다.
    다행이다.
    나는 무심코 그렇게 대답해 버렸다.
    다행이라고, 뭐가.
    해리의 눈빛이 날카롭게 세워졌다가 흩어졌다.
    동물들에게는 안됐지만, 죽음에 무뎌지는 게…….
    너는 몰라.
    해리가 내 말을 끊어내며 말했다.
    동물들 죽음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찔러 가는 게 아무렇지 않게 되는 게 무섭단 말이야, 나 자신이.
    해리는 정색하며 나를 쳐다보며 말하다가 한 마디 덧붙였다.
    누구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걱정이 될 정도로.
    정혜의 존재가 해리와 나 사이로 튀어나왔을 때, 서로가 취했던 태도는 우리가 각자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랐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쌓인 상처의 크기만큼이나 완고하고 절대적인 윤리의 완벽성을 상대방에게도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것은 해리에게도 나에게도 아직 지워지지 않은 상처들이 그대로 존재하고, 무의식적으로 여전히 서로를 방어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해리 씨라고 했나?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준우를 바라봤다. 공원으로 오르는 길의 중간 즈음이었다. 노란 셀로판테이프를 통과한 빛이 준우의 안경을 물들이는 것 같은 오후의 노을이었다. 그의 안경에 비치는 혜화가, 이 도시가 조금은 쓸쓸해 보였다.
    그녀가 네게 뭔데.
    글쎄, 아직 잘 모르겠어.
    그 말을 듣고 준우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난 널 잘 알아.
    어떤 걸 잘 안다는 거야.
    준우는 예의 그 삐딱하고 냉소적인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넌 정혜에게서 도망간 거야. 정혜의 세계가 너무 무겁고 힘들어서.
    그런 얘기는 그만 해.
    너의 삶을 누군가가 감당해 줄 것 같아? 신이?
    나는 대답 대신 길목에서 보이는 도시를 내려다보며 팔을 들어 나란히 서 있는 준우의 저쪽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그건 내 몫이야.
    준우가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준우의 눈빛 끝에 매달려 있는 것은 홀가분함이 아니었다. 어딘지 모를 그의 쓸쓸함이, 지향해야 할 세계를 잃어버린 사람의 표정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예비 신학생 모임에 같이 다니기 시작했을 때 준우도 나도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지금의 삶을 이루고 있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단절해야 하는 걸 의미했고, 더 나아가 그 범위가 과거로부터 소유해 온 모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즉, 온 생애의 것을 단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준우는 그 경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것이었다. 신은 어쩌면 준우에게 지향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보다 더 나은 이상적인 세계의 원형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준우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서 더 낯설기만 한 그런 세계. 자기 생의 익숙한 세계를 깨트려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고독한 세계.
    그나저나 넌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나는 준우에게로 말을 돌렸다.
    글쎄. 세상 끝 절벽에 선 기분. 세상에 내가 믿었던 게 다 사라진 기분이라고 할까.
    자주색 빛의 해가 빠르게 도시 밑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빛은 준우의 머리 뒤로 넘어가고 도시는 차가워지고 있었다.

 

    정혜에게 다시 연락이 온 것은, 독감으로 열이 치솟아 학교에도 가지 못한 해리를 보살피느라 잠시 그녀의 집에 머무를 때였다. 해리는 밤새 몸이 자꾸만 마르고 건조해지는지 자주 깨서 물을 찾았다. 열이 오르면 해열제와 물을 먹이고, 잠을 잘 못 자면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책을 읽어 줬다.
    해리의 침대 옆에 얇은 이불을 깔고 잠시 누워 있다가 설핏 잠이 든 새벽이었다. 갑자기 휴대폰 벨 소리가 정적 속에서 들려왔다. 한동안 벨 소리가 이어졌다가는 끊겼다가 다시 울렸다. 그 소리가 해리의 목소리로 변환돼서 들릴 때야 나는 겨우 잠에서 깨어났다. 내 전화를 해리가 대신 받은 것이었다.
    재영 씨와 만나고 있는 사람인데요.   
    나는 몸을 일으켜서 해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봤다. 식탁으로 쓰고 있는 작은 테이블 옆에 다른 사물들과 같이 짙은 어둠으로 스케치되어 있는 해리의 뒷모습이 보였다. 휴대폰 너머에서는 말이 없었다.
    여보세요.
    해리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신호음이 들렸다. 상대편이 전화를 끊은 것이었다.
    그분이야.
    내가 해리 옆으로 다가가자 그녀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하면서 담요를 어깨 위로 끌어올렸다.
    그분에게 전화해 줘.
    해리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낮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실에 있는 커튼 틈 사이로 시퍼런 새벽빛이 나와 해리 사이의 경계를 만들어냈다.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얘기해 줘, 내가 보는 앞에서.
    해리가 앉은 상태에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그때 해리가 자신에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겠냐면서 농담처럼 말했을 때의 눈빛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 그게 왜 그렇게 나를 서늘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너만은 다르겠지, 라는 뜻의 눈빛. 그것은 다른 여자의 손을 잡은 아버지로부터, 고등학교 때 자신을 차에 태워 볼을 만지던 한 남자 선생님으로부터, 텅 빈 존재로 관계 맺었던 주위의 남자들로 인한 불신의 경계에서 온 것이었다. 동시에 내가 자신의 삶을 그대로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는 눈빛이었다. 나를 보는 얼굴 속에 담겨 있던 그 눈빛과 표정은 해리, 그녀가 겪었던 외부 상처에 대한 경계와 불안이 만들어낸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같은 방식으로 상처 입고 싶지 않다는 절실함이 그 눈빛 속에 있었던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을 내가 지금 배반하려 하고 있는지 몰랐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못 해.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침묵하던 해리가 의자 밑으로 털썩 주저앉아서 울기 시작했다. 큰 소리의 울음이 아니었고, 되도록 참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터뜨린 울음 같았다. 그런데 그 울음이 내게는 너무나 견딜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그런 울음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새벽이 물러가고 있었다.

 

    해리와는 며칠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전화기가 꺼져 있거나 혹 신호가 가도 받지 않았다. 해리에게 보낸 메시지들에는 답이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서야 해리는 직접 서점으로 말없이 찾아왔다. 오래 앓은 것처럼 창백한 낯빛이었다.
    테이블 앞에 우두커니 앉아 나를 바라보는 해리에게 내가 괜찮은 거냐고 묻자 그녀는 실습 시간에 미정맥 채혈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찔러댄 실험용 쥐가 대여섯 마리는 돼.
    해리는 손가락을 접어 가며 실험하는 데 사용된 쥐들의 개수를 세었다.
    경구 투여하느라 괴롭힌 실험용 쥐가 또 세 마리. 꼬리에서 피 뽑느라 찔러댄 쥐가 대략 다섯 마리.
    손가락들을 쥐었다 폈다 하는 해리의 얼굴에 건조한 습기가 곰팡이처럼 피어나는 듯했다. 온기와 채도의 구분이 없어 보이는 그저 하얀 바탕의 손바닥에 메마른 그녀의 감정들이 다른 혈관으로 이동하지 못한 채 갇혀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있잖아.
    해리는 양손을 모두 내려놓고 말했다.
    눈 밑 모세혈관에서 피 뽑다가 죽인 쥐가 한 마리. 심장에서 채혈하다 죽인 쥐가 한 마리.
    그렇게 죽인 실험용 쥐들을 차례대로 말하다가, 해리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방금 전까지 힘없이 얘기할 때와 달리 해리는 나를 보며 힘주어 말했다.
    차라리 그렇게 죽여 버린 건 아무렇지도 않은 거 있지.
    해리는 창백한 낯빛으로 담담하게 얘기했다.
    난 늘 누군가를 죽이고 있는가 봐.
    그렇게 말하고 해리는 내 이름을 불렀다.
    재영아.
    목의 혈관으로만 울리는 가느다란 목소리 같았다. 해리는 어떤 기대도 갖지 않고 있다는 듯이, 그게 꼭 내가 아니라 이 세상의 것에 대해서도 그렇다는 듯이 조금은 귀찮아하는 듯 하는 목소리로, 아니 어쩌면 그건, 그녀가 최대한 힘을 낼 수 있는 목소리로 하는 말인지도 몰랐다.
    난 네가 다시 사제가 됐으면 좋겠어.

 

   넌 죄가 뭐라고 생각하는데?
    아주 오래전에 묻고 싶었던 질문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준우가 물었다. 그의 질문을 뒤로 하고 서점 문을 열어 놓자,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렸다. 몇 개의 낙엽들이 서점 안쪽으로 굴러 들어왔다. 사람들은 한 겹씩의 옷을 더 입고 있었는데, 나는 빈 몸에 가까운 지난 계절의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 더는 오지 않는 한 사람을 생각했고, 이제는 원한다고 해도 들어갈 수 없게 된 신의 세계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런 건 이제 내게 소용없는 질문인데.
    그런가? 괜한 질문을 해버렸네.
    준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준우의 긴 한숨이 뻗어 가다가 소멸되는 것을 나는 잠시 바라봤다. 나는 그 한숨을 밀어내고 싶었다. 이 세상의 숨들을 밀어내고 남은 진공 상태에 있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숨과 호흡이 없는 세계.
    잊는 것.
    무슨 의미야.
    준우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지나온 길과 사람의 흔적 같은 걸 잊는 것 말이야.
    모두가 지난 일이란 잊기 마련이야.
    나는 그것을 죄라고 생각해.
    준우도 나도 말이 없었다. 왜 사제가 되고 싶으냐는 해리의 말에 정확히 대답할 수 없었던 그 순간을 나는 떠올렸다. 흔적이 될 또 다른 길을 만들어 가고 싶지 않다고는 고백할 수 없었다.
    언젠가 말이야, 준우.
    말해.
    지나온 그 길의 흔적 위로 다른 흔적들이 쌓이고, 이젠 찾을 수 없을 만큼의 세월이 흘러도 내 영혼은 그때의 흔적을 기억할 수 있을까.
    준우와 눈이 마주쳤다. 어쩐지 몸에서 한 계절이 빠져나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꾸는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것은 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우리 앞 테이블에 가만히 골동품처럼 멈춰서 있는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갇혀 있던 시간이 흩어져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채기성

작가소개 / 채기성

201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문장웹진 2019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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