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주의보 외 1편

[신작시]

 

 

폭염주의보

 

 

하채연

 

 

 

    노랗게 끓는 이마를 쓸어 넘기며 걷는다
    조금만 더 뜨거워지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만 같다

 

    더 예보한다면 뭔가 있을 것만 같다
    조금 더 팔을 뻗어 침대 밑 비밀 하나를 집듯이

 

    햇살에 허상들만 더 또렷해진다
    건물의 모서리를 직각으로 세우며 태양이 우릴 비웃는 날 파란 불이 켜져도 건너지 않는 양산과 여자 검푸르게 말라 가는 나뭇잎들

 

    늘 가능할 것처럼 손가락 개수를 세다가 손가락은 열 개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적이 있다 그것을 세는 손가락은 끝내 셀 수 없으니까

 

    손가락 너머

 

    저기에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일그러진 얼굴로 서로를 마주하고

 

    먼지가 쌓인 쪽지를 펼치면 흰 백지가 다시 쓰여 있다
    펼치는 것의 이유엔 다음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다시 백지
    비밀에 자주 화상을 입고

 

    뜨거운 빛을 맞으면서
    나날이 촉수를 곤두세우는 선인장을 상상한다
    건물 꼭대기 위 박제된 망자들이 들끓고 있다

 

    저기

    올해는 매미가 울지 않는다고
    그러나 끈질기게 들려오는

 

    울음과 울음

 

    젖은 어깨가 부딪히지 않게 사람들은 길을 잘 건넌다

 

 

 

 

 

 

 

 

 

 

 

 

 

 

보도블록 징크스

 

 

 

 

    대학교 정문 앞에서부터 예순네 걸음째
    껌이 지그재그로 눌러 붙은 보도블록
    발을 헛디뎌
    틈 사이 푸르게 돋은 풀을 밟은 날
    고양이는 눈앞에서 펑 터져 죽어버렸고 이윽고
    맞은편 편의점에선 누군가 복권에 당첨되었다며 소리를 질렀다
    동기들은 차라리 인생이 구라였으면 좋겠다며 키득거렸다
    너를 기다릴 땐 보도블록을 세 번 꽝꽝꽝 밟았다
    그날은 네가 나를 덜 사랑하는 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서 인생은 더 어려워졌다
    예술가와 비구니의 간극에 대해 생각하다가
    넘어질 뻔했다 아쉬운 건 그러지 않았다는 것
    잡은 것은 모르는 이의 손
    미끄러지는 것에 익숙한 발목 때문에 무릎은 늘 외로웠고
    보란 듯이 예순네 걸음째 보도블록을 지나는 개미들의 행렬
    부스러기 같은 걸 떼어 주면서 연애를 익혔고
    애들은 애들이 되지 못해서 말이 없어졌다
    싫어하는 애들을 꼽다 보면 거울에 애들이 비쳤고
    점점 어려워지는 인사 때문에 뒤돌아서 비열해지곤 했다
    고백할 수 있다면 나에게서 빠져나올 수 있을 텐데
    초상화 후원을 말하는 목소리는 늘 울렁거리듯 귓가를 스쳤다
    나 대신 네가 태어날 때쯤
    꿈의 적도에서 외줄을 타는 상상을 하면서
    너의 이름을 불렀다가 놓아 주곤 했다
    그것은 인사를 위해 머뭇거릴 만큼의 시간
    보도블록을 모른 척 지나쳐 버린 날
    서로를 끌어안고 태어난 새끼고양이들
    그 수를 세다가 나는 반짝
    넘어져 버렸다

 

 

 

 

 

 

 

 

 

 

 

 

 

 

 

하채연

작가소개 / 하채연

22019년 《 경인일보 》 신춘문예 등단.

 

   《문장웹진 2019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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