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가 내려온다

[글틴스페셜]

 

 

단어가 내려온다

 

 

오정연

 

 

 

    오늘도 단어는 내리지 않을 모양이었다.
    화성에 도착하고 일주일. 매일 아침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실눈부터 떠보지만 끝내 실망하며 잠드는 나날이었다. 화성 궤도 진입 직전 최서연이 지구에서 지학 소식을 알려 왔다. 이로써 우리 반에서 단어가 내리지 않은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아니, 사실 나는 이미 우리 반도 아니었다. 평생 평균 이하 그룹에 속했던 기억이 없는 내가 그렇게 된 것은 내가 '여기'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 물리적, 심리적, 언어적 환경이 갑작스럽게 변했기 때문에 생긴 지연 현상이라고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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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 15살 즈음 사람에겐 단어가 하나씩 내린다.
    어느 날 갑자기 단어가 턱 하고 ('턱'인지 '짠'인지 '쾅'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내리는데, 들러붙는 느낌에 가깝다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아시아 지역에서 사람들은 이 사건을 지학이라고 부른다. 〈논어〉에 따르면 열다섯에 學이라는 글자를 받은 공자가 이를 계기로 배움의 길에 들어섰다는 일화 때문이다. 모두가 서둘러 어른이 되고, 재빨리 늙는 시절. 15세쯤이면 결혼하고 직업을 정하고, 평생 어떻게 살겠다는 결정도 가능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15살에게 무슨 결정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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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살의 마지막 날들을 나는 화성 검역소 가족 생활동에서 보냈다. 블랙홀과 함께였다. 우리 반에서 반장이 최초로 단어를 받았다는 소문을 전한 날, 엄마는 다음 달 화성에 가자고 말했다. 마치 옆 동으로 이사한다는 말처럼. 옆 동네도, 옆 도시도, 옆 나라도 아닌 옆 행성, 화성으로 가자고 했다. 항공우주 기술자인 엄마는 항공우주연구소 연구원으로 초광속항법 개발을 위한 다국적 프로젝트에서 5년째 일하고 있었다. 미국의 NASA, 중국의 국가항천국, 유럽의 우주국 등이 참여하는 팀이 실험 완료는 물론 우주선의 개념 디자인까지 마친 직후, 화성 공전궤도 원일점 근방에서 웜홀이 관측됐다. 그러자 다국적 프로젝트팀을 화성으로 불러들여 본격적인 연구소를 세우기로 각국 정부가 합의를 했다. 스페이스 특공대가 따로 없었다.
    그날은 중등교육 졸업시험을 정확히 100일 남겨 둔 날이었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있는지 아닌지를 좌우하는, 사실상 대입 시험이었다. 대학에 가고 싶은 중학생이라면 시험이라는 블랙홀로 일상의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고도 남았을 시기. 어차피 따라야 하는 결정이었고 파격적으로 좋은 조건이라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는 말을 엄마가 태평하게 전했다. 엄마 자체가 블랙홀 같았다. 나는 전의조차 상실했다. 엄마는 한국에서 대학에 가기 위해 내가 이번 시험을 열심히 준비한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화성의 대학도 요즘엔 지구 못지않은 수준이고 내 성적이면 대학과 전공을 골라서 갈 수 있다는데, 말문이 막혔다.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기억이나 했던 걸까, 이 블랙홀. 일본에 있는 아빠가 재혼만 안 했더라면 일본으로 보내 달라고 했을 것이다. 일본에서라면 한국 대학 전형을 준비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테니. 아니, 아빠와 아줌마 사이에 아이만 없었어도. 오랫동안 아이가 안 생겨서 고생했다는 아빠가 해맑은 얼굴로 아들 소식을 전한 게 불과 일 년 전이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에겐 언제고 단어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지학이 대기권 밖에서 일어날 때마다 불길한 단어가 내린다는 도시 전설이 있었다. 웬만하면 이주선에 오르기 전에 지학이 일어나게 해달라던 기도는 보답 받지 못했다. 이주선 안에서는 단어를 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어찌 됐든 빨리 받는 게 낫겠다는 마음이 반반으로 나뉘었다. 막상 전자의 승리가 확정된 이후, 그러니까 화성 착륙 이후로는 무슨 단어든 내리기만 하면 좋겠다는 심정이 됐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단어가 내린다는 사실을 기억하려 애썼다. 청력이나 발화 능력이 없어 말을 들어본 적이 없거나 한 번도 말을 입 밖에 내어 해본 적이 없는 이에게도 단어는 찾아온다고 했다. 선천적 언어장애가 있거나 어린 나이에 실어증에 걸린 이들도 단어를 받는다는 것이 각종 심리검사 및 의학영상기술에 의존한 실험 결과 밝혀졌다. 평생 단 하나의 단어와 함께 한다는 점에서 지학 앞에 모두는 평등했다. 그러니 나에게 단어가 내리지 않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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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 단어가 인간에게 내렸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그나마 처음엔 단어가 아닌 '말'이었다. 기원전 3천년의 파피루스나 쐐기문자에도 왕자가 무슨 말을 받았다거나, 노비의 딸에게 불길한 말이 내린 것이 알려져 일가를 사막으로 추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말이 내리는 일 자체는 전혀 특별할 게 없는 것처럼 다뤄졌다. 지학의 역사가 문자언어보다 길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반면 숱한 실험 끝에 '신난다' 혹은 '조심해!' 같은 수준에서 의사소통하는 것으로 알려진 대부분의 유인원들에겐 지학 비슷한 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학은 단어로 이뤄지지만, 단어 그 자체는 지학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개별 단어를 모아 복잡한 아이디어를 전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체계가 필요하다. 물리적 조건으로는 어느 것 하나 유리할 바 없는 원시 인류가 생존하려면 높은 수준의 사회적 협동(이를테면 그룹 사냥)이 필수였다. "매머드!" "사냥!" 정도로는 부족하다. 가정적인 구문('숲 너머 초원에 가면 매머드 떼가 있고, 우리는 그들을 절벽으로 몰기 위해서 불을 사용해야 한다')을 사용해야 한다. '사냥하다'뿐 아니라 '사냥했다'와 '사냥할 것이다' 같은 표현이 가능해진 무렵의 어느 아침, 첫 사냥을 나서기 전 잠을 설친 누군가의 머릿속에 '사냥'이 내렸을 것이다. 열다섯 살짜리 인류의 조상은 그저 사냥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잠을 설쳤다고 생각했다.
    (선사시대의 경우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중세 이후 지학은 어떤 말이든 '단어'만 내렸다. 혹은 지학에 참여한 말만이 단어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명사와 동사, 형용사와 부사, 감탄사와 심지어 조사까지 모든 품사가 인간에게 내렸지만, 어미만 내린 적은 없었다. 그래서 한국어에서 어미는 '단어'가 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동사나 형용사처럼 매번 모양을 바꿔 활용하는 단어라면 사람들에게 내리는 형태만이 '기본형'으로 등록될 수 있었다.
    지학의 시작보다 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지학의 이유다. 많은 민족의 신화는 이에 대답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거인이 세상의 끝에서 끝까지 다니며 만물의 '이름'을 붙이고, 위기의 순간에 영웅이 하늘의 '말'을 듣는다. 혹은 간단히,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말씀'의 화자인 신으로부터 생명을 받은 최초의 인간은 땅 위의 생물들에게 이름을 주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만물에 이름을 붙이자 그 이름이 다시 그 자식에게 내렸다. 최초의 인간은 비로소 세상이 두렵지 않았다.
    인간이 세상에 부여한 질서가 다시 인간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의미가 권력이 됐다. 사람들은 한 인간이 받은 단어가 개인의 가장 내밀한 정수를 반영한다고 혹은 결정한다고 믿었다. 누군가의 단어를 아는 것은 그의 치명적인 약점을 손에 쥔다는 뜻이었다. 제사장과 마법사는 개인이 받은 단어에 대한 해석을 빌미로 사람들을 협박했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혼인할 때 서로의 지학 단어를 교환했다. 나의 모든 것을 너에게 준다는 의미였다. 어느 민족이든 대부분의 남자는 강한 의미의 단어를 받은 여자를 두려워했는데, 세상이 흉흉해지면 그런 여자들은 마녀라고 불렸다. 마녀가 되어 쫓겨난 여자들은 깊은 숲에 숨어 살다가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길 잃은 아이들을 거둬 키운 뒤 마을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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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과 화성 등 태양계에 건설된 개척지에서 이주민이나 방문객의 심신 검역은 최우선이었다. 화성의 검역을 통과하는 데는 무려 한 달이 필요했다. 이는 3개월간의 비행시간(그나마 화성과 지구가 가장 가까운 시기를 이용해서 이 정도)에 한 달이 더해진, 총 4개월의 지루한 평화를 뜻했다. 지구에서의 3분의 1에 불과하나마 중력이라고, 처음 화성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감동은 상당했다. 그 이후로 이어진 검역소에서의 하루하루. 필수 적응 교육과 훈련 등 정해진 스케줄은 4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8시간의 수면시간은 칼같이 지켜야 했으니 남는 자유시간은 모두 12시간. 사람들은 체력을 단련하고, 화성의 역사와 환경과 사회에 대해 공부하고, 구직활동을 하고, 화성 영어를 배웠다. 나 역시 화성 영어를 학습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나의 관심사는 화성 영어의 탄생 및 진화 과정이었다.
    태양계의 개척지는 여러 국가에서 이주한 시민들이 원래 국적을 유지한 채 살아가는 연방 도시였다. 화성인들은 사적인 공간에서는 각자의 모어로 소통하되, 학교나 일터 등 공공영역에서는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했다. 고도의 전문 인력으로 이뤄진 화성 이주 첫 세대에서는 영어 소통이 비교적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다양한 민족적, 직업적, 경제적 배경을 가진 이주민들이 도착하자 많은 것이 빠르게 변했다. 극한의 환경이었기에 신속 정확한 의사소통은 생존과 직결됐고, 제 각각인 영어 숙련도를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은 "안 돼, 빨간 버튼, 누르다" "꼭, 확인하다, 산소 탱크" 같은 식으로 말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민족 언어의 단어와 그 단어를 조직하는 방법까지 흘러들었다. 말하(여지)지 않은(못한) 부분을 채우고 싶어 하는 인간의 무의식 덕분에 이 제한적인 공용어가 빠른 속도로 유아기를 벗어나 복잡한 구조를 갖추기 시작했다. 손쉬운 통제를 위해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노예들을 한데 모아 일을 시켰던 아메리카 대륙의 농장이나 다민족 도시국가에서 벌어진 일도 이와 비슷했다. 다민족 공동체가 필요에 의해 공용어를 만들어내는 일은 인류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었다. 혹자는 화성이 바벨탑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바벨탑을 세울 땐 그 탑에 오를 엘리베이터도 건설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화성 영어의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분류사였다. 분류사는 이름을 가지는 세상의 모든 사물을 성별이나 수, 성격에 따라서 나누는 말이다. 영어에서 단수 명사 앞에 붙이는 a, 유럽 언어에서 모든 명사에 여성/남성/때로 중성이나 무성 등 성별마다 다르게 부여하는 관사, 책 한 권의 '권' 같은 말들. 그런데 분류사가 발달하지 않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화성인들이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분류사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구에만 존재할 수 있는 물건과 화성에만 있는 물건을 구분하더니 나중에는 지구에서 화성에 이식된 것, 화성에서 지구로 건너간 것까지 세분했다. 한 '잔'의 물, 처럼 몇몇 특징적인 명사에만 상용하던 수 분류사를 일상어에서도 엄격하게 사용하면서 없던 수 분류사도 왕성하게 생겨났다. (이를테면 한 '구'의 사람들, 은 최대 거주인원 30명이었던 초기 화성 주거단지 한 동에 사는 사람을 말한다.)
    블랙홀 함께 하는 식사 시간. 나는 "이 가족 생활동에는 무려 세 '구'의 사람들이 있대요." 같은 화성 영어에 대해 새로 얻은 정보를 전했다. 엄마는 자유시간 내내 화성 영어 자료를 찾아보는 나를 신기해했다. 그러고는 화성 근방의 웜홀 탐사선에 장착할 망원경의 규격에 대해 설명했다. (각자 자기 할 말을 평행하게 늘어놓는 것으로도 우리는 대화가 가능했다. 갈등을 건드리지 않는 최고의 방법이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지학이 궁금했다. 나한테 어떤 단어가 찾아올지, 내 주변의 어른들은 어떤 단어를 받았는지, 단어가 내린다는 건 어떤 기분인지, 인간은 왜 이런 이벤트를 겪게 되었는지, 말이란 무엇이고 단어는 무엇인지 궁금해 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지구에서 친구들은 이런 나에게 단어 '덕후' 혹은 문법 '덕후'의 꼬리표를 붙인 뒤 신기해했다. A. I.로 대체 불가능한 영역을 담당하는 한줌의 인재(人才)가 되기 위해 우리는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무한경쟁에 익숙해졌다. 어근분리("깨끗도 하다", "정직도 하다"처럼 한 단어 중간에 조사가 끼어들어 쪼개지는 현상)며 "잘못" 같은 합성어의 신기한 세계(이미 서로 반대말인 두 단어 '잘'과 '못'이 합쳐졌는데 '못'이 '잘'의 의미를 집어삼키더니 또다시 그 앞에 '잘'이 붙은 합성어 '잘잘못'이 '옳고 그름'을 의미한다)를 케이팝스타의 팬미팅 뒷이야기라도 되는 양 전하는 중학생은 당연히 흔하지 않았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국어학자가 되고 싶었다. 국어학과의 경쟁률은 부동의 1위. 원하는 대학의 국어학과에 진학하려면 국어 성적은 물론 전 과목의 성적도 꼼꼼히 필요했고, 나는 그런대로 잘 해왔다. 화성까지 와버렸으니 이젠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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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학은 각자가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나라의 말, 즉 모어 안에서 일어난다. 부모의 언어가 다르거나 이민 2세대라면 얘기가 좀 복잡했다. 자식이 어떤 언어를 모어로 여기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지라 어떤 부모들은 내린 단어가 어느 나라 말인지부터 알고 싶어 했다. 이민 2세인 아이에게 현지어가 내린다면, 대부분의 한국인 부모는 아이가 자신들과 멀어졌다며 슬퍼했다. 한국으로 이주한 결혼이민 여성의 자녀들 대부분이 엄마 나라의 언어로 단어를 맞이하자, 부랴부랴 결혼이민자 여성 및 그 자녀의 한국어 교육이 제도적으로 보완됐다. 자라면서 자신이 받은 단어의 언어와 점점 멀어져 더 이상 그 말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되어버린 경우도 허다했다. 제아무리 완벽한 다언어 구사자라도 지학은 한 가지 언어로만 이뤄진다는 사실이 통계적 사실로 증명됐다. 제아무리 다언어 구사자라 할지라도 모어는 오직 하나라는 증거였다.
    자녀에게 기왕이면 좋은 의미 혹은 뜨는 품사의 단어가 찾아오길 바라는 게 부모의 당연한 마음이었다. 품사로 따지면 모든 언어에서 동사가 으뜸이었다. (그러나 한국어에서 동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해당 언어학 전문서적까지 섭렵한 몇몇 극성 부모들은 동사도 동사 나름이라고 믿었다. (대부분의 풍문이 그렇듯 완벽하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부모들이 각 품사의 하위분류까지 줄줄 읊는 것은 기본인데,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도착하다' 같은 달성 동사도 좋지만 한번 발생한 일이 그대로 지속되는 '만들다' 같은 완성 동사가 가장 좋다는 식이었다.
    19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종 지학 대비 아이템이 유행에 따라 뜨고 졌다. '멋진 동사 100개로 지학에 대비하기' 같은 부제가 붙은 동화책이라든가 '위인의 지학 단어 100개'로 구성된 단어카드 정도는('카드 100장 매일 3회 이상 보여주기'가 아니라면) 양반이었다. 한 시기를 풍미했던 아이템으로 '마인드컨트롤'이 있었다. 텔레포트라도 보내버릴 듯 굉장한 외형의 헬멧을 쓰면 원하는 지학 후보 단어를 오감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이 기기를 사용한 아이들에게 (머리가) '아프다'나 (목이) '결리다', (어깨가) '뻐근하다' 등이 내린 사례가 비공식적으로 전해지는 걸 보면 마인드컨트롤 효과가 없다고는 볼 수 없었다.
    백일이 지나자마자 지학을 준비해야 좋은 단어를 받을 수 있다면서 15년 계획을 세워 주는 코디네이터부터 이미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를 받은 아이가 주어진 단어의 의미를 좋은 방향으로 발현하도록 자기 암시를 돕는 테라피스트까지 이쪽 분야에 불황은 없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언어학적 혹은 국어학적인 지식이 매우 중요했다. 언어학자는 논평가이자 사회학자였고, 심리학자이자 심령학자였으며, 미래학자이자 예언가였다.
    국립국어청처럼 한 나라의 언어를 기록하고 분류하며 연구하는 기관의 위상은 엄청났다. 물론 국립국어청 같은 기관이 태곳적부터 있었던 건 아니다. 인류가 지학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었다. 운명을 개척하는 개인의 의지가 말 그대로 하늘을 찌르던 시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들러붙는 말을 객관적으로 연구하고 분류하면서 사람들은 드디어 지학의 권위에서 벗어났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지학 단어를 다루는 기관이 있는 사회라면 지학의 절대적인 영향력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국립국어청은 통계청과 긴밀하게 공조하면서 어떤 단어들이 새로 내리고 혹은 더는 내리지 않게 되는지를 조사했다. 최근 20년간 아무에게도 내린 적 없는 단어는 공식적으로 사전 표제어에서 내렸다. '진지'가 사라졌을 때, "한국어의 공손성 축소,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제목의 호들갑스런 기사가 타임라인을 장식했다. 하지만 한 사회의 변화를 살피고 싶다면 사라지는 단어보다는 새로 태어나는 단어를 살펴보는 편이 확실했다. 최근 5년간 50건 이상의 지학 사례가 누적되면 사전에 등재됐다. 지난 세기에 태어난 단어 중 가장 짧은 건 'ㅋ/ㅎ'이었다. 뜨고 지는 표제어가 많을수록, 해당 언어가 많은 이들에게 사용되는 건강한 언어라는 뜻이었다.
    21세기에 접어들어 관형사, 부사, 감탄사의 생명이 갈수록 짧아지고, 안 그래도 한국어에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했던 명사가 점차 비대해졌다. 갈수록 파악해야 할 대상이 많아지는 세계를 반영한 결과였다. 하지만 '사랑'이니 '용기' 혹은 '악의'처럼 거창한 개념어는 점차 줄어들었다. '컵'이나 '연필'처럼 무뚝뚝하고 한결같은 단어들 역시 찾아보기 힘들었다. 반면 '것'이나 '지' 혹은 '뿐' 같은 한없이 랜덤한 의존명사를 받는 사람들은 늘어났다. 지구화에 의해 '쓰나미'나 '스테이케이션', '꽌시'처럼 동일한 단어가 여러 언어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증가하자 같은 단어를 받은 각국의 네티즌이 온라인에서 모였다. '프로베네시드'처럼 난데없는 전문용어가 내린 이들 역시 즐겨 뭉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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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엄마의 단어를 몰랐다. 무슨 품사인지도 몰랐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엄마한테는 친구도 별로 없어서 감탄사와 같은 독립언이 아닐까 싶다가도, 사소한 디테일까지 따져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평소 태도로는 조사, 그중에서도 보조사일 것 같았다. "한 입으로 두말하지 말기"를 가훈으로 내걸 정도인 걸 보면 평생 모습을 바꾸는 법이 없는 명사나 부사가 아닌가 싶지만, 세상에 저렇게 특이한 사람이 있나 싶을 땐 난데없는 활용형의 동사나 형용사가 엄마의 단어가 아닐까 생각했다. 몇 번이고 물어봤지만 엄마는 "그런 거 다 미신이야."라며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20세기부터 지학을 그저 (성인식이나 첫 영성체 같은) 일종의 의식처럼 받아들였다. 2차 성징이 나타난다고 바로 짝짓기를 하는 게 아니듯(큰일 난다) 단어가 내렸다고 평생 그 단어에 붙들려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무슨 단어가 내릴 줄 알고!). 하지만 내 일상을 28퍼센트쯤 고단하게 만든 첫 생리를 돌이켜보면, 밑도 끝도 없이 나에게 단어가 찾아오는 경험을 무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단어를 맞이한 사람들이 자신에게 지학이 일어났다는 걸 동네방네 알리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이해할 만도 하다. ("나 어제 생리 시작했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여자애는 없다.) 그러나 일정 나이를 넘어서면 모두가 지학을 통과했다는 걸 전제로 했다. 자신에게 어떤 단어가 내렸는지는 아주 친한 사람, 대부분의 경우 가족 한정으로 알렸다. (그러나 국립국어청의 지학단어 총 조사에는 어쩐 일인지 모두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순순히 자신의 단어를 밝힌다고 했다.) 물론 당장 나의 모든 계정에 접속할 수 있는 개인정보들이 숱하게 돌아다니는 마당에 부질없는 풍습일 뿐이지만. (하지만 지학단어 유출 사례는 들어본 적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러므로 나는 사람들이 혈액형이나 띠, 별자리보다는 확실하게 단어에 좌우된다고 믿었다. 일단 네 가지 혈액형, 십이지, 열두 별자리보다(세 가지를 모두 경우의 수로 조합한다고 해도 4 곱하기 12 곱하기 12는 576가지) 단어내림은 경우의 수에 있어 압도적이다. (국민단어 총 조사 결과를 집대성한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된 단어만 해도 40만 개를 훌쩍 넘어섰다.) 사주가 통계라면 지학은 엄연한 과학이었다. 이를 미신으로 치부하며 알려들지 않았던 엄마는 지학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일본어 학자인 아빠와 공학자인 엄마는 서로의 직업만큼, 아니 모어만큼 달랐다. 얼핏 굉장히 닮은 두 말은 실은 다른 뿌리에서 출발한 전혀 다른 언어였다. 인접한 지역에서 지지고 볶으며 영향을 주고받은 탓에 비슷한 면이 많아졌을 뿐이었다. 서로의 말에 유사한 표현이나 단어, 문법 요소가 있어 으레 그러려니 싶은 짐작이 전혀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인과 한국인은 그런 통념 때문에 더더욱 서로의 단어를 이해하는 데 실패하는 일이 잦았다.
    나는 1년에 한두 번 방학 때마다 아빠를 만났는데, 지지난 여름방학에 아빠가 자신의 단어를 알려줬다. 盗まれる. '훔쳐 지다'라는 의미다. 띄어쓰기를 한 것으로 알 수 있듯 한국어에서 '훔쳐 지다'는 단어가 아니다. 일본어 역시 예전에는 사전에 '훔치다' 기본형만이 등재돼 있었다. 아빠 세대에 접어들어 일본에 피동형 동사의 지학 사례가 급증하고 급기야 단어로 인정받았다. 피동문이란 주어가 동사의 능동적인 주인이 아니라, 의지와 상관없이 동사를 '당하는' 입장에 있는 문장을 뜻한다. 일본어가 본래 동사에 피동 표현을 붙이는 것이 한국어에 비해 자연스러운 언어이긴 했다. 그러나 아예 그런 표현이 지학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또 다른 얘기였다. 주변국 언어학자들은 책임 소재를 흐리고 싶어 하는 시대적인 흐름을 반영한 것이 아니냐며 볼멘 분석을 늘어놓았다.
    결국 엄마와 아빠는 서로의 단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헤어졌던 것 같다. '말이 안 통해서'('궁합이 안 맞다'와 '말 혹은 지학 단어가 안 통하다/어울리다'는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이다) 헤어진다는 설명이 둘만큼 어울리는 한 쌍은 또 없었다. 엄마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상황에 끌려 다니거나 상황을 핑계 대는 아빠를 두고, 입버릇처럼 아빠의 단어를 탓했다. 아빠는 그 어떤 상황에도 평소의 루틴이나 소신을 별 생각 없이 고집하는 엄마의 무신경함에 매 순간 상처받았다. 하루를 일 년같이 싸운 끝에, 결국 엄마는 일 년 만에 아빠와 이혼을 결심했다. 결심을 실행에 옮긴 것은 그로부터 반년 뒤, 내 백일이 지난 다음날의 일이었지만. 이후 두 분은 한국과 일본의 주요 국가기관에서 각자 좋은 커리어를 쌓아 갔고 나는 방학 때마다 일본과 한국을 왕복하는 걸 즐겼다. 모두에게 만족스런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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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몰라도(그게 언제든 태초는 아니겠지만), 그와 함께 인간에게 말이 내리기 시작했고 언어와 지학 모두 진화했다. 생물의 종이 겪는 진화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스케일이었지만 그 어떤 생물 개체의 삶과 죽음을 떠올리든 그보다는 묵직한 규모였다. 지학의 단위는 시간과 공간을 굽이쳐 흐르며 모양을 바꾸고 나뉘거나 서로 합쳐졌다. 한때 중국인에게는 글자가, 아프리카인에게는 문장이 내렸고 이는 그들 언어와 문자의 특징과 관계가 있었다. (상관관계인지 인과관계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인간이 사는 모습의 꼴이 두루두루 그만그만해졌을 무렵 인간에게 내리는 말의 단위 역시 비슷해졌다.
    칼라하리 사막에 흩어져 사냥으로 배를 채우는 민족이 받은 단어와, 양쯔 강 지류에 모여 농사로 곳간을 채우는 이들에게 내린 말은 같은 점보다 다른 점이 많았다. 그러나 모두가 각자의 사회와 문화를 유지하기에 모자람 없는 말에 둘러싸여 살았다는 것은 공통점이었다. 그 말들 안에는 인간의 몸이나 삶과 죽음처럼 어디에나 있는 개념뿐 아니라 특정 지역에 서식하는 동식물 혹은 지역 한정 자연현상을 일컫는 말처럼 아주 작은 공동체에만 속하는 것도 많았다. 사회와 역사가 충분히 무르익기 전에는 절대로 등장할 수 없는 단어도 있었다. '어떤 공동체가 A라는 단어를 가지고 있다면 그들의 말에는 이미 B가 있다'는 식으로 단어와 개념, 단어와 단어 사이에 모종의 경향성이 있었다. 이를테면 어떤 부족이 '국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그들은 '가족'이란 낱말을 이미 사용하고 있으리라는 짐작 같은 것 말이다.
    하나의 단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말을 탄생시키고 사용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이 보였다. 오래전 한국어로 '얼우다'는 '결혼하다'는 의미였고('얼다'는 '성교하다'는 뜻), 오늘날 '다 자란 사람'을 뜻하는 '어른'은 그러므로 본래 '결혼한'이라는 뜻이었다. '말과 행동이 의젓하다'는 의미의 '점잖다'는 '젊지 않다'에서 유래했다. 세대가 입장과 퇴장을 이어 가는 속도를 짐작할 수 있는 그런 말들. 그런 말들이 있는 세상에서 지학은 마법과 잘 어울렸다.
    척박한 땅에 멀리 떨어진 채 각자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며 살아가는 호주 원주민에겐 글말이 없었다. 이들의 기억은 서로 그물망처럼 연결됐기에 기록해 둘 필요가 없었다. 거대한 시공의 그물에서 각자의 단어가 매듭 역할을 했다. 개별 부족들은 구성원들에게 내린 단어를 키워드로 엮어 이야기를 이어 가는데, 이를 씨줄과 날줄 삼아 그 부족 공동체와 구성원 개인의 역사가 됐다. 부족의 소년과 소녀들은 열다섯 살이 되어 단어를 받으면 대륙을 관통하는 여행을 떠났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여러 부족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배웠다. 자신이 받은 단어의 참된 자리와 의미를 깨달을 때까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이는 넓은 세상의 이야기 속에서 발견한 자기 부족의 좌표를 부모와 조부모에게 알려줬다. 이들이 업데이트해 나가는 이야기는 대륙 혹은 거대한 땅의 끝없는 역사였다.
    마법의 시대가 끝나자 사람들은 더 이상 지학 단어로 운명이 결정된다거나, 지학 단어가 인생의 키워드라고 믿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 단어가 해당 언어 속에서 어떤 위치인지, 그 좌표를 확인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했다. 자신의 단어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됐는지, 뜻풀이가 어떻게 제시됐는지는 기본이었다. 어떤 품사인지, 단일어/합성어/파생어 중 무엇에 해당하는지, 덩어리로 함께 쓰이는 단어는 무엇인지 등 단어의 좌표를 정의하는 방식은 그밖에도 많았다. '더러움'은 사전에 있는데 '깨끗함'은 왜 없냐는 항의, '잘생기다'를 동사가 아닌 형용사로 만들어 달라는 시위 등 크고 작은 민원을 조율하여 분기별로 업데이트하는 것은 국립국어청의 주된 업무 중 일부다. '너무'의 뜻풀이가 '일정한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에서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로'로 수정됐을 때는, 똑같이 '너무'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도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부정적인 말과만 쓰일 수 있던 용법이 넓어진 것을 축하하는 이들과, '너무'의 고유한 의미가 퇴색된 것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접전을 벌였다. 자신에게 들린 단어가 '짜장면'인지 '자장면'인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싸운 결과, 두 가지 모두가 복수표준어로 사전에 나란히 등재됐다.
    외래어가 유입되고 시대가 달라져 없던 단어가 갑자기 내리기 시작하거나(대부분의 언어로 민주주의가 내리게 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어제까지는 누구에게도 내린 적 없던 유행어가 점점 널리 쓰이면서(예컨대 '한남') 지학에 참여하기도 했다.
    품사 중에서는 동사가 대체로 문제였다. 전혀 다른 의미를 두루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웃기다'를 보자면, 과연 주어가 목적어를 웃게 하는 데 성공했는지 아닌지를 앞뒤 상황을 모른 채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웃기지 마"는 웃으면서 하는 말일까, 웃을 생각이 없는 사람이 하는 말일까?) 어느 날 당신에게 '놓다'가 찾아왔다면, 간결하고 중립적인 느낌이라 시시하다 여길 일이 아니다. 일단 '놓다'의 뜻풀이는 무려 28개. 일차적으로는 자립 가능한 본동사지만, 다른 동사 뒤에서 의미를 더해 주는 보조동사로도 활발하게 쓰인다. '놓다'를 사용하는 관용구는 또 얼마나 많은지. '(말을) 놓다' 같은 경우 28개의 뜻풀이 무엇에도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아 새로운 뜻으로 추가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표준국어대사전 업데이트 시기마다 공방이 치열했다. '사전을 바꾸는 인생'이란 표현이 어느 언어권에나 있는 건 당연했다.
    모두들 어느 정도는 자신이 받은 단어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거창하고 대단한 한자어를 받은 이들과, 그럴싸하고 남다른 고유어를 받은 이들 사이의 은근한 줄다리기는 역사가 유구했다. 21세기 이후에는 외래어 보유자들의 자의식도 성장세였다. '배추' 등 아무리 들여다봐도 한자어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단어부터 '폼나다'처럼 한 번만 더 생각하면 외래어라는 걸 상기할 수 있지만 형태와 의미 모든 면에서 한국어와 찰떡궁합인 단어까지 하위분류도 섬세해졌다. 그러나 단어를 중심으로 모이는 건 철저히 취미나 취향 혹은 동호회의 영역에 머물렀다. 사람들은 지나치게 깊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지독하게 자의적인 지학 따위에 좌우되기엔 먹고사는 문제가 산적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임의적이기로 따지면 인간의 언어 혹은 존재만 한 게 또 있을까. (꽃을 '꽃'이라 부르고 밥을 '밥'이라 칭하는 것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진정한 절망은 '며느리밑씻개' 같은 흉측한 단어가 (그야말로) 들러붙는 경우다. 15살에 그 단어를 받아버린 C는 이후 10년간 같은 단어 혹은 비슷하게 찜찜한 식물명(이를테면 '개불알꽃')이 내린 사람들을 규합하여 비속어와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는 식물 학명 창씨개명 운동본부를 설립했고 끝내는 '가시모밀'이라는 새 단어와 함께 살게 됐다. 운명을 개척한 좋은 사례였다.
    사전을 펼쳐 보면 대개 하나의 단어가 하나 이상의 뜻풀이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돌다'라는 동사는 그 의미가 무려 23번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자신이 받은 단어의 의미가 그중 정확히 무엇인지는 본인만 안다. ("생기가 돌다"의 '돌다'인지 "머리가 돌다"의 '돌다'인지는, 미묘하지만 중요한 부분이다.) 살다 보면 결국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지만 결국 모르고 죽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먼 길을 '돌아' 가다"와 "순찰을 '돌다'"의 '돌다'는 거의 정반대의 의미인데 둘 중 무엇인지 모른다는 건 참 답답한 노릇이다.) 자기 단어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오로지 당사자의 몫이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뜻풀이를 알아냈어!"는 "진로를 결정했어!"라는 말과 같은 의미였다.
    절친이나 배우자, 부모 자식 등 인생의 동반자가 된 이들에게 내린 단어들 사이에도 마치 궁합처럼, 임의적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관계가 있었다. '건지다'가 내렸던 D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각각 '두다'와 '놓다'를 받았고, 두 아들은 20대 내내 '건져 두는' 것과 '건져 놓는' 것 중 어떤 표현이 더 긍정적인지를 놓고, 아니 두고, 자기들끼리 경쟁을 벌였다. '데'나 '이', '바'와 같은 혼자서는 쓰일 수 없는 의존명사를 받은 이들은 자신의 단어와 잘 어울리는 명사나 동사를 곁에 두고 싶어 했다. '나다'와 '데'가 내린 두 소녀가 '없다'가 내린 마지막 멤버를 끝내 찾아내어 밴드를 결성하자 '난데없다'를 가진 기획사 사장 E가 이들을 발굴했다. (태양계 최고의 케이팝 뮤지션 탄생비화로 이는 제법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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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복선에서 그리고 검역소에서, 여러 언어가 공존하는 바벨탑 주민들은 서로의 단어가 무엇인지 영어로 묻고 각자의 언어로 답했다. 예로부터 여행길에 오른 사람들은 서로의 단어를 화제 삼아 친구가 되었다. 사물 혹은 사람의 이름을 아는 행위에는 마법 같은 힘이 깃들어 있었다. 태어난 땅에서 스스로를 날려 보낸 이들이 낯선 땅과 중력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을 서로의 지학 단어로 극복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단어가 무엇이고, 그 낱말은 어떤 언어에 속하는지, 그 언어는 또한 세계 언어의 그물 속에서 어떤 매듭에 해당하는지······ 하나의 단어에 대한 설명이 어느새 한 사람의 평생을 아우르는 일이 흔했다. 그렇게 통성명이 끝날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언어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왕복선 안에서 누가 더 많은 언어를 수집했는지 나른한 경쟁이 벌어졌다. 검역소에서 사람들은 조용히 2차전을 시작했다.
    이누이트 소년을 만난 것은 화성 착륙을 얼마 남겨 두지 않아 왕복선 전체에 묘한 흥분의 기운이 감돌 무렵이었다. 태양이 땅 밑으로 충분히 가라앉지 않아 한밤중에도 희붐한 하늘에 만족한 채 여름의 70일을 보내야 하고, 겨울의 70일 동안은 먼동이 터 오는 하늘 이상으로는 밝아지지 않는 날들을 견뎌야 하는 곳에서 왔다고 했다. 나와 동갑인 그 아이의 지학은 이누이트어 중에서도 지역 방언으로 이뤄졌다. 사용자 수가 1천 명을 넘지 않아 몇 십 년 전 시한부 선고를 받은 언어였는데 몇 년 만에 단어가 내린 바람에 나름 소소한 화제였다고 했다. 그런데 그 단어가 하필 'ᐅᖃᖅᓛᖅᑕᕋ'여서 더욱 말이 많았다는데······ 몇 십 번쯤 반복해 들은 결과 나는 '라우카크라아크타라' 정도가 최선의 한글 표기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나중에 그에게 말할 것이다'라는 뜻이었다. (이하 '말할것이다'.) 당연히 단어가 아니었다.
    그 말의 발음과 의미를 듣고 얼떨떨함을 감추지 못하는 나를 말할것이다는 익숙하게 바라봤다. 이누이트어는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어근에 조사나 어미가 줄줄이 붙어 문장이 된다고 했다. 게다가 이누이트 문자에는 띄어쓰기가 없었다. 에스키모 말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가리키는 단어가 수백 개에 이른다는 낭설이 무지한 사람들을 오랫동안 매혹시킨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춥겠더라' 같은 말도 단어 하나로 볼 수 있을 텐데, 그 의미는 '나는 온도가 낮으리란 것을 과거에 직접 느껴서 추측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 (한국어는 어미를 잘만 활용하면 많은 정보를 굉장히 효과적으로 담을 수 있는 절묘한 언어였다. 그중에서도 화자가 직접 감각한 사실에 대해 말할 때만 사용할 수 있는 회상의 어미 '-더-'는 으뜸이었다.) 기본형이 아닌 새로운 활용형 단어가 내리는 이상 현상이 말할것이다의 말에도 일어났고, 덕분에 기본형 '말하다 ᐅᖃᖅ'가 내릴 상황에 미래시제, 일인칭 주어와 구체적 3인칭 목적어를 의미하는 어미가 주렁주렁 붙어서 나타난 것이다. 특별한 지학 사례의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말할것이다의 가족은 화성 연합 도시의 초청 거주민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개척지 내의 민족적/언어적 다양성을 중시하기 시작한 개척지 자치 기구는 매년 일정수의 소수 민족을 개척지로 초청했다.)
    인사를 나눈 이후 말할것이다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매일 정해진 시간에 왕복선의 천체관측실에서 만났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별빛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할것이다가 말했다.
    "우리같은 수렵민족에게는 넓은 땅이 필요해. 아무리 비옥한 땅이라도 1㎢ 안에 살 수 있는 수렵인의 수는 많지 않아. 내 고향처럼 얼어붙은 땅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도시를 부담스러워했어. 도시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겐 그저 작은 마을 수준이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가 너무 가깝다는 거야."
    압도적인 별빛도 점차 눈에 익을 즈음 별의 바다도 깊이 혹은 밀도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별빛이 희귀하여 암흑이 강조된 구역이 있었다. 말할것이다가 그곳을 가리켰다.
    "나랑 우리 가족 모두 왕복선 발사대에 가기 위해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어. 국경을 넘고 뭍인지 바다인지 모를 곳을 날아 도시에 가까워지던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비행기가 뒤집힌 줄 알았거든. 구름 위로 치솟아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보이는 게 아니라면 저렇게 많은 빛이 보일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말할것이다는 화성에 오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드넓은 땅을 누비며 살아왔던 이누이트인과 화성은 제법 잘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그 기쁨이 마치 내 것인 양 따스하게 느껴졌다. 검역소에서 보내야 하는 한 달 역시 말할것이다는 기꺼워했다.
    "할아버지가 그랬어. 우리는 고작 옆 도시로 여행을 떠날 때도 중간에 몇 번씩 멈춰서야 한다고. 영혼이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거야."
    하물며 옆 행성까지 5천 6백만 킬로미터를 날아왔으니 한 달은 족히 필요했겠지. 나는 내 영혼이 나를 따라오면서 부디 단어도 함께 데려와주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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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과 화성, 그리고 태양계 전체로 인류의 활동반경이 넓어진 지난 세기 이후 지학의 양상이 달라졌다. 변이 또한 이례적으로 많아졌다. 없던 단어가 새로 생기고, 있던 단어가 사라졌다. 늘 있는 일이라 여기기에는 의미심장한 변화였다. 이를 바로 눈치 챈 관계자는 거의 없었다. 기본형이 아닌 활용형을 받거나, 중세 한국어에서 생명이 없는 명사의 관형격 조사 역할을 했던 사이시옷(고갯짓, 햇살 등의 단어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현재는 '~의'로 통일됐다)이 내리는 등 시간을 거스르기도 했다. 오래전 그 땅에서 사라진 것으로 보고된 소수 언어가 전혀 상관없는 영국 소년에게 들러붙는 일도 있었다.
    사람들이 이 특이현상을 눈치 채고 연구 대상으로 삼은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시공간이 뒤엉킨 지학 현상이 화성 공전 궤도 근방의 웜홀과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겠냐는 추측까지는 더욱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웜홀을 통한 우주 항해 및 탐사가 비약적으로 발전하자, 연결된 우주 한복판에서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지도 모르는 행성이 발견됐다. 그 행성과 이상 지학 현상 사이의 연관관계가 있으리라는 가설을 바탕으로 우주의 언어 지도가 그려질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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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역소 탈출까지 일주일이 남았다. 모두들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붉은 행성에서 펼쳐질 삶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다. 나는 검역소 탈출이고 뭐고 아무 단어도 내릴 기미가 없다는 사실 앞에 노심초사했다. 열여섯 번째 생일이 3일 앞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자료실에 쳐박혀 화성에서 보고된 특이 지학 사례를 멍하니 바라보던 중 스크린 한구석에 속보가 떴다.
– 화성 근처 웜홀을 통해, 산개 성단의 탄생 관측 성공!
    초광속항법 다국적 프로젝트 팀 중 내로라하는 우주기술 선진국의 과학자들은 이미 화성에서 연구를 한창 진행 중이었다. 각종 관료주의와 서류작업 때문에 대한민국은 언제나처럼 다른 몇몇 국가들과 함께 후발대를 담당했다며 엄마는 늘 투덜댔었다. 선발대의 주력 목표는 쉽게 말하자면 온갖 관측 장비를 실은 무인우주선으로 웜홀 부근을 기웃거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던 중 우연히 그 너머에서 총 길이 4광년에 이르는 거대한 가스 구름을 발견하여 촬영에 성공한 것이다. 촬영이라야 가시광선을 사용한 것이 아니므로 온갖 후반 작업을 통해 보정해야만 인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헤아릴 수 없는 별빛을 거느리게 될 성단, 혹은 헤아릴 수 없는 별 무리가 탄생하는 광경을 실시간으로(······라는 말이 우주 범위로 시공간을 넓히고 나니 영 모호하긴 하지만) 목격했다는 흥분이 짧은 뉴스 클립에서도 느껴졌다.
    보정을 거친 이미지를 화성 곳곳의 플라네타리움은 물론 검역소의 간이 플라네타리움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는 말에 나는 플라네타리움으로 향했다. 말할것이다를 그곳에서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단한 발견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 스크린으로 확인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열 개 남짓한 좌석은 하나를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하나에 말할것이다가 비스듬히 누워 돔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장에서는 인간의 시지각에 최대한 친절한 상태로 매만져진 천체 동영상이 재생됐다. 나도 그 옆에 자리 잡았다. 수천 수만 수억 개의 항성으로 자라날 별의 씨앗이라기보다는 불발탄의 화염 속을 헤매는 반딧불이처럼 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단어가 내렸다.
    뿌연 가스 기둥을 헤치고 글자 하나가 머릿속에서 또렷해졌다. 낱말 하나가 우아하게 스포트라이트처럼 내 머리 위에 쏟아지는 걸 상상했는데 이거 뭔가 망한 거 아닌가, 싶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리고 나타난 글자가 바로······
    ······?
    ······이?
    이?
    이, 그리고 끝이었다.
    치아이거나 사람을 뜻하는 의존명사 '이'이거나 숫자 2, 최악의 경우 벌레 이일 수도 있었다. 충격과 공포가 가라앉으면서 남은 단 하나의 '이'가 '은/는' 혹은 '이/가' 할 때의 바로 그 주격조사라는 것을 알았을 땐 꽤나 안심이 됐다.
    명사도 좋고 동사면 더 좋고 의성어나 의태어도 재밌겠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조사. 조사 물론 좋지. 조사와 어미는 한국어의 꽃이니까. 하지만 주격조사라니, 같은 조사라도 웬만한 단어에 쓱쓱 다 붙을 수 있고 특별한 의미를 더하기도 하는 '은'이나 '도' 같은 보조사라면 또 몰라. 웬만해선 생략되고 앞에 있는 단어가 주어라는 걸 기계적으로 알려줄 뿐인 격조사라니······.
    "나 방금 단어를 받았어."
    나는 홀린 듯 중얼거렸다. 말할것이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축하해."
    나는 문장을 통째로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말할것이다'가 부러웠다. 더 이상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어 보였으니까. 한국어 주격조사에 대한 나의 설명을 들은 말할것이다가 말했다. 별들의 요람을 바라보던 중에, 문장의 주인을 표시해 주는 말을 받다니 굉장하다고. 말할것이다야말로 어떤 사태가 벌어지든 그 안에서 빛나는 구석을 발견해 내는 굉장한 능력이 있었다. 따뜻한 것, 달콤한 것, 포근한 것을 손에 넣기 위해 오랜 시간과 먼 거리를 견디는 이누이트들의 재능이었을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관측 동영상이 내일을 기약하며 반복 재생을 멈췄다. 스크린이 걷히자 눈앞에 하늘이 펼쳐졌다. 방금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 온 천체들이 쏟아질 듯 가득했다. 항성과 그 빛을 반사하는 행성과 위성들이 굽이쳐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내가 지금 이곳에 와 있고, 말할것이다를 만났고, 어디선가 성단이 태어났고, 나에게 주격조사가 내렸다. 모든 사태에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결국은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점점 기분이 좋아졌다. 그것이 중요했다.

 

 

 

 

 

 

 

 

 

 

 

 

 

 

 

오정연

작가소개 / 오정연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에 「마지막 로그」가 가작으로 당선되어 과학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SF 허스토리 앤솔로지 『우리가 먼저 가볼게요』에 수록된 「미지의 우주」 등을 썼다.

 

   《문장웹진 201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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